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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345화 (1,34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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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내 말에 옥형이 목갑을 받아들고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건 수납능력을 지닌 뛰어난 마도구로군요. 여기에 성좌의 가호를 불어넣어 적재(積載)용량을 확장시켜달라는 말인가요?”

“그렇소.”

“안될 것은 없지만 우리의 가호를 받으려면 별개의 인과율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공양(供養)을 하십시오.”

“물론 그래야겠지. 단 확실히 하고싶은게 있소만.”

“어떤 걸 확실히 하고싶습니까?”

나는 손을 내밀어 옥형의 손에 들려있는 목갑의 뚜껑을 딸깍 열어서 그 안의 시꺼먼 내부공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기왕 용량을 확장해주는 김에 이 마도구에 존재한다는 사악한 [함정]까지 같이 제거해주실 수 있겠소? 그것까지 해주신다면 충분한 공양을 할 수 있소.”

“…….”

옥형이 눈에 이채를 띄며 좀 더 자세히 목갑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잠시 살펴볼 시간을 주시지요.”

그리고 세 명의 성좌는 셋이 차례로 목갑 내부를 돌려보면서 뭔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내심 씨익 웃었다.

‘좋아! 내가 생각해도 이번엔 머리를 잘 쓴 것 같다!’

생 제르맹이 내게 했던 경고가 생각났던 게 유효했던 것 같았다.

[절대 목갑을 꽉 채우지 마시오.]

[뭐 그렇다 칩시다. 그 한정조건을 어기면 어떻게 되오?]

[나도 모르겠소. 위험할 거요.]

지금 내가 보기에 이 천계의 보물은 아무리 봐도 목갑의 용량으로도 다 품을 수 없어보이는 수준! 이미 들어있는 것도 많았기에 당연히 넘칠 게 뻔했다. 역대 천계의 보물을 전부 담는다는 건 결코 일개 마도구로는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꽉 채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최대용량을 넓히면 어떻게 될까?

[꽉 채우면] 위험한 거니까 한정조건을 어기는 게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잘은 모르겠지만 이 목갑에는 틀림없이 비등같은 함정이 숨어있는게 분명했기에 기왕 하는바에 신에 가까운 성좌들의 힘으로 목갑의 저주까지 해제하면 일석이조일 것이리라!

내가 내심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옥형이 말했다.

“뭐지? 이건 굉장히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있군요.”

“복잡하다는 얘기는 다른 연금술사한테서도 들은 것 같소.”

“마치 이것 자체가 무언가의 제물인 것 같군요….”

“제물?”

“…….”

옥형이 다른 성좌들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말했다.

“껄끄러우나 당신의 부탁대로 하지요. 만일 전욱의 뜻대로 일이 흘러간다면 결국 천계도 생존할 길이 열리는 것. 구천현녀의 부탁대로 천계를 생존시키려면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니까요.”

“고맙소.”

“그럼 당장 인과율에 필요한 공양물을 내놓으십시오.”

말투는 점잖은 선녀같지만 역시 속에 들어있는 게 성좌라서일까? 상당한 오만함이 느껴졌지만 도리어 그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목갑의 용량을 확장하고 저주까지 해제하는 대가로 신격인 성좌에게 어떤 보물을 내놓아야 할까?

‘흠…. 이거면 되겠지. 조금 아깝지만.’

나는 잠시동안 고민하다가 마음을 결정하고는 물건을 내놓았다.

“여기 있소.”

물건을 본 옥형이 눈을 반짝였다.

“보기 드문 성검(聖劍)이군요. 서방의 물건인가요?”

“그렇소.”

내가 내놓은 것은 바로 아서 왕의 엑스칼리버였다. 금요를 수호하려고 성지 팔리아스를 지키다가 할치올레이푸라의 석화에 당해서 죽은 그의 유물을 내가 얼마 전에 회수했던 것이다. 어차피 내게는 육요가 있으므로 딱히 엑스칼리버가 필요하지 않았고 격으로 봤을 때 딱 내어놓기 좋은 것이었다.

다만 아까운건 사실이라 나는 내심 입맛을 다셨다.

‘쩝…. 그렇다고는 하지만 엑스칼리버의 능력도 한 번 써보고 싶었는데.’

동양 기준으로는 절대지경에 미치지 못하는 아서왕의 실력으로도 나를 위협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바로 엑스칼리버만의 특수능력이었다. 검객으로써 당연히 한번은 써보고싶었지만 상황상 여의치 않았다.

한 번 써보지도 못한 귀한 물건을 남한테 바로 주는 건 아까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옥형은 크게 만족한 듯 엑스칼리버를 자기 손에 들며 말했다.

“이 또한 별의 힘을 벼린 것. 우리 성좌에게는 무척 좋은 공양물이니 만족합니다.”

“그럼 빨리 목갑을 확장시켜주시오.”

“알았습니다.”

잠시 후 세 명의 성좌가 목갑을 가운데에 두고 서로 손을 맞잡은 채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머나먼 이계의 주술을 시전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인간형의 모습이 풀리면서 아까와 같은 성좌의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파지직…!!

파지직!

목갑이 둥실 떠오르며 강렬한 뇌전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좌 옥형이 한층 강하게 신력을 발휘하며 주문을 외웠다.

[성좌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목갑이여 타고난 용적(容積)을 확장할 지어다!]

그 순간 나는 목갑이 마치 살아있는 입처럼 쩍하고 뚜껑을 벌리며 따각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틀니가 부딪히는 것처럼 따각따각거리던 목갑은 갑자기 내부에서 기이한 흑암(黑暗)의 기운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스스스

흘러나온 흑암의 기운은 마치 흑색 안개처럼 짙어지며 근처의 시야를 메우기 시작했다. 뜻밖의 상황에 나는 흠칫해서 옥형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오?!”

대답이 잠시 동안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옥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의 언어로 말하는 게 내 귀에 들려왔다.

[…처음부터 ‘안’에 있었단 말이냐?]

[들켰군…. 하하하.]

낯선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설마 성좌를 속일 수 있다니. 필멸자는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수준의 마법(魔法)이 정녕 가능한가? 네놈은 누구….]

옥형의 말에 ‘누군가’가 유쾌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게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마찬가지로 신의 언어였다.

[북두칠성의 성좌였군. 나는 계약 당사자와 이야기하고싶으니 제3자는 잠시 빠져주게나.]

[네 녀석, 설마 그때 그 마법사…!!]

옥형이 어둠 너머에 있는 존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뭔가 알아챘다는 듯 외치는 순간이었다.

슈와아악!!

다음 순간, 나는 온 세상이 흑암으로 뒤덮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걸 깨달았다. 이런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므로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일단 긴장하며 만일의 사태에는 사대신기를 발동해서 이 상황을 빠져나갈 마음의 준비를 했다.

…….

약간 시간이 지난 후, 어둠 너머에서 새하얀 불빛이 내 쪽으로 둥실 날아오는 게 보였다. 이윽고 그 불빛은 마치 따라오라는 듯 내 주변을 맴돌았고, 나는 불빛을 경계하다가 따라가기 시작했다. 경험상 이런 경우 일단 따라가는 편이 시간낭비가 덜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 공간을 만든 놈이 날 만나고 싶어 하는 거겠지….’

잠시 후 나는 새하얀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새하얗다고 표현을 했지만 나는 이 공간에 쌓여있는 수많은 보물들을 보자마자 여기가 어딘지 눈치챌 수 있었다.

“목갑 내부?”

저기 잔뜩 쌓여있는 건 내가 이번 생을 시작하고 나서 모아놓은 모든 보물들이었다. 보물 외의 시시콜콜한 것들도 꽤나 넣어뒀기 때문인지 거리를 두고 보니 높이가 일 장은 되는 것 같았다.

그 때 나를 여기까지 안내한 불빛이 서서히 인간의 형태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내 눈 앞에 서 있는 것은 고대의 법복(法服)을 입고 있는 웬 젊은 사내였다. 그는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날개가 달려있는 신발을 신고 있어서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머리카락이 흑발이긴 하지만 눈동자 색깔이 파란색이라서 전형적인 서양인으로 보였다.

“읏차….”

놈은 무척 편하게 금화가 쌓여있는 조그마한 능선 위에 앉았다. 나는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누구냐?”

내 질문에 상대가 싱긋하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누구냐니? 당연히 눈치챈 거 아니었나 백웅.”

“너같은 놈 모른다.”

“이거 참 섭섭하군…. 두꺼비가 있는 동굴에서 주워진 후 꽤나 오랜 시간을 같이했을 텐데 나를 몰라보다니.”

“뭐?”

그는 자기자신을 지팡이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목갑의 정령! 성좌가 가호를 불어넣어준 덕분에 각성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자고.”

“헉…. 진짜냐?!”

나는 놈의 자기소개에 움찔했다.

세상에 목갑의 정령이라니!

강대한 신력을 불어넣으면 물건이 각성하여 정령이 깃든다는 건 과거 무라마사에게 시험해봐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 성좌 또한 신에 가까운 존재였기에 그런 성좌 셋에게 가호를 받은 목갑에서 정령이 생긴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자 자칭 목갑의 정령이 갑자기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구라지 등신아. 기껏 성좌의 가호를 받은 정령 따위가 진짜 성좌를 제끼고 너만 이 공간에 소환하는 게 가능할 것 같은가?”

“…….”

“대충 놀렸는데 정색하고 속아버리다니 지능이 낮구나.”

아니 어쩌라고!!

나는 눈앞에 있는 놈이 종잡을 수 없는 부류라는 걸 알아채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기랄! 사람 놀리지 마. 그래서 네놈은 대체 뭐라는 거야?”

“크크크.”

놈은 마치 재밌는 동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관찰했다. 나는 그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서 기습적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무량단(無量斷)

전조도 없는 극속의 일참!

“……!!”

지상에 있는 웬만한 초절정고수는 이 일격으로 결단 낼 정도로 빠른 기습공격을 행했지만 번갯불이 튀기는 그 참격은 헛되이 허공만을 갈랐다. 그리고 내가 잠시 굳어있는 동안 멀리에서 다시금 지팡이의 사내가 출현해서는 여유작작하게 말했다.

“신적 존재도 많이 만나봤을 텐데 학습능력이 없어보이는군. 네 무술실력은 대단하지만 신적인 존재가 장악하고 있는 혼돈의 공간에서는 [작은 굴레]에 저항하는 능력이 없는 한 씨도 안 먹힌다는 걸 모르는가?”

“…네 놈이 신적 존재라는 말이냐?”

“후우, 그걸 굳이 말해줘야 한다니. 넌 생각보다 지능이 떨어지는구나?”

“…….”

“신적 존재가 아니면 성좌 셋의 권능을 무시하고 널 여기까지 데려올 수 없지.”

저 개새끼가….

사사건건 나를 놀리고싶어서 안달난 듯한 놈은 내가 열받아서 노려보고 있자 잠시 후 우아하게 인사하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내 소개를 하지.”

스스스스

놈의 얼굴 위에 마치 새하얀 나무를 그려놓은 듯한 가면이 소환되었고, 가면을 장착한 놈이 말을 이었다.

“나의 이름은 헤르메스 트리스 메기스토스. 연금술과 마법(魔法)의 신(神)이다.”

“…헤르메스… 뭐시기? 어?”

내가 언뜻 놈의 기나긴 이름을 알아듣지 못해서 버벅거리자 헤르메스 뭐시기가 말했다.

“헤르메스 뭐시기가 아니야. 그냥 헤르메스라고 불러라.”

“그러지 뭐.”

“크크큭. 큭큭큭. 후하하하하….”

놈은 뭐가 웃긴지 한동안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것 같았다. 놈은 웃음끼를 참지 못하고 끅끅거리며 말을 이었다.

“크크큭… 하하…. 진작에 마주칠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나 오래 걸릴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백웅.”

“뭐? 무슨 소리냐?”

놈의 가면 밑에 있는 눈빛이 순간 광기어린 안광을 뿜어내었다.

“하하하하하. 정말 예상 못했단 말이다. 원래 세계에 판을 다 깔아놨는데 설마 외우주까지 와서야 나를 소환할 줄은…. 하하하하하. 나일라토프 때문에 외우주를 넘을 때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

뭐라고?!

“너는 정말 혼돈 그 자체로군.”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는 헤르메스 뭐시기, 아니 헤르메스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서 어리둥절했다. 놈은 자신의 가면 눈밑에서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간단한 얘기다. 말하자면 이런 거지.”

헤르메스가 자신의 지팡이를 앞으로 슥하고 내밀었다. 그리고는 지팡이 끝의 수정구슬에 빛이 모였는데, 그 빛이 뿜어지자 기이한 왜곡과 함께 ‘무언가’가 이 목갑 내부의 공간에 출현했다.

슈와아악

나는 출현한 존재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경악했다.

“야차?!”

저게 갑자기 왜 튀어나와?!

“……?”

눈앞에 나타난 팔부신중, 인간형 야차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헤르메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나는 분명히 외우주로 갔을 터인데 여기는 어디냐.”

“이런… 가련한 자여. 아직도 모르겠나?”

헤르메스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는 게 보였다.

“수정석비의 조각을 너희 몸에 이식했을 때부터 너희의 운명은 정해져있었다는 걸.”

후와아아악…!!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더욱 강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하자 야차는 전신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마치 빨려들어가듯 지팡이 쪽으로 연기처럼 흘러들어가기 시작했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해도 무의미한 듯 했다. 야차가 경악하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냐?! 대체 이 상황은 무슨….”

“스스로 수정석비를 자기의 몸에 박아 내 종속자(從屬者)임을 자처하지 않았던가? 너희의 영혼과 육체를 받아들이는 계약이 맺어졌으니, 너희가 설령 외우주로 향했다 하더라도 주시자께서는 너희를 내 앞에 소환하는 걸 용납하셨지.”

“……!!”

“뭣도 모르면서 외우주를 넘으려는 꼴이 정말 우습기 그지없었다. 하하하하…. 주시자란 존재가 있는줄도 몰랐지 않으냐.”

“서, 설마 너는!!”

헤르메스가 경멸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세피로트에 흡수되어라.”

슈와악!!

그것이 팔부신중 야차의 최후였다. 야차의 모든 육체와 영혼이 고스란히 지팡이에 빨려들어가서 흔적도 남지 않은 것이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저 새끼는 지금 뭘 한 거야?!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달아서 일어나자 나는 극히 혼란스러웠다.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헤르메스가 말했다.

“긴장하지 마라, 백웅. 지금 네 숙적인 팔부신중을 내가 멋지게 처리해줬잖아?”

“……?”

“나 헤르메스를 믿어도 좋다.”

그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전생자(轉生者)의 아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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