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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343화 (1,34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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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보옥을 손에 쥐며 홍길동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되지?”

“준비가 되었으면 내가 주문을 외워 보내드리겠소.”

“시작해.”

우우우우

신령스러운 빛을 내는 보옥을 향해 홍길동이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웠고, 나는 잠시 후 생경한 공간에 도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긴?’

내가 아는 천계의 풍경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만장단애와 하늘을 찌를 듯한 첨산고령(尖山高嶺), 기경스러운 운무(雲霧)가 자욱한 것은 같았으나 - 다른 점이라면 눈앞에 떠다니는 천공의 성(城)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성에는 해자가 딱히 없었다. 하늘을 떠다니니 그럴 수밖에 없었고 돌로 이루어진 성벽 너머로 장중한 고대양식의 누각들이 가득하다는 게 보였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천공의 성까지의 거리는 얼핏 보아도 오십 리가 훨씬 넘었으나 천공의 성은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에 저 성의 실제 크기는 어마어마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래서 곤륜성(崑崙城)이라고 하는 거군.”

마치 여태껏 천계 곤륜에 존재했던 수많은 영산과 영토를 합쳐서 하나의 성으로 벼려낸 듯한 거성(巨城)! 이렇게 현재의 천계를 잘 표현하는 말은 있을 수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어째서 성인 것일까?

원래 천계에서 성 따위를 만들 필요도 이유도 없었는데 왜 굳이 거성을 축조한 거지?

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걸 알아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지.”

나는 천공의 거성을 향해 날아가려고 준비했다. 내력을 소모해서 뛰어들려는 순간, 옆에서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삼황오제의 사도 백웅이시여.”

내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휙하고 바라보니 그 곳에는 비단날개옷을 입은 선녀(仙女) 세 명이 서 있었다. 내가 말없이 그들을 주시하자 그들 중 중앙에 서 있던 아름다운 선녀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천녀(天女)의 장(長)인 옥형(玉衡)이라 하옵니다. 귀하를 모시러 왔습니다.”

“옥형….”

“옆의 둘은 요광(搖光)과 천권(天權)이옵니다.”

전생하면서 천계를 많이 드나들어본 것 같지만 내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심지어 지선 망량의 기억에도 딱히 옥형이라는 인물은 존재치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옥형을 보자마자 바로 그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강하다!’

화안금정으로 살펴보니 저 선녀옷에서 흘러나오는 영기의 흐름만 봐도 그녀가 대라신선 이상, 어쩌면 투선급 강함을 지닌 존재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나는 옥형 뿐만 아니라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두 명또한 옥형과 비슷한 실력이란걸 알아채자 당황스러웠다.

‘뭐지? 지선 망량의 기억에 저런 선녀들은 분명 없었는데…. 망량도 모르는 투선급 실력자가 존재했었단 말인가?’

근데 어디선가 저 선녀들의 이름을 들어본 것 같은 기시감도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어찌되었든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데려다 주시오.”

“네.”

촤라락….

선녀 옥형이 자신의 비단날개옷의 소매를 떨치자 마치 천하를 뒤덮듯 거대한 비단이 우리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고치에 들어간 것처럼 칭칭 싸이게 될 정도가 되자 갑자기 비단이 한순간에 쫙 하고 풀려났다. 그와 동시에 주변 풍경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찰랑….

고요한 연못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정자가 눈앞에 있었고 마치 마음을 씻어내는 듯 청량하고 녹음(綠陰)이 우거진 자연 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정자에 세 명의 노선(老仙)이 앉아서 나를 기다림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서 노선들이 있는 정자로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서 정자로 올라섰고 신발을 벗고 그들이 앉은 평상으로 갔다. 이윽고 내가 평상의 상석(上席)에 풀썩 주저앉자 내 맞은편에 이미 앉아있던 노선이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있어 생소한 곳에 온 것일진대 무척 담대하구려. 그대가 지닌 힘의 자신감 때문인가?”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지금의 곤륜성이 과거의 천계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굳이 듣고 싶은 것이오? 나는 굳이 무례를 범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닫고 있었을 뿐이오.”

빠지직

그 순간 내 도발적인 말투 때문인지 분위기에 금이 가는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 아닌 게 눈앞의 노선들이 흘려낸 강대한 기운이 실제로 현실세계의 법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힘의 흐름을 감지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강하긴 하군.’

눈앞의 세 명의 신선이 현재 천계의 수장인건 맞는 것 같다. 일부러 도발적으로 말한 것은 그들의 힘을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셋 중에서 내 맞은편에 있던 한 명만은 전혀 힘을 방출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왼쪽에 앉아있던 노인이 창노한 음성을 터뜨렸다.

“아무리 삼황오제의 사도라지만…!! 우리를 그리 업신여길 셈인가!”

나는 그 노인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딱히 업신여길 생각도 없소, 보현진인(寶賢眞人).”

“나를 알고 있는가?”

“물론이오.”

나는 지긋이 나머지 두 명을 차례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태을진인(太乙眞人)과 연등도인(燃燈道人)도 알고 있지.”

그렇다.

내 눈 앞에 있는 건 바로 천계 십이대선 중 세 명!

그것도 보현진인을 제외하고 남은 두 명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전투까지 해봤던 기억이 있기에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자 분노하던 보현진인이 흠칫하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대체 누구지…? 우리는 속세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리도 쉽게 우리의 정체를 알 수 있다니, 설마 삼황오제가 그대에게 우리의 정보를 주었는가?”

“…….”

나는 보현진인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고는 중앙에 앉아있던 연등도인을 쳐다보았다.

“이해가 가지 않는구려. 천계는 본디 옥황상제를 위시하여 구천현녀와 서왕모가 그를 보좌하며 삼청(三淸)이 최상위 수뇌부였을 터. 그대들 십이대선 또한 고위직책이지만 삼황오제의 사도인 나와 교섭하는데 그자들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지?”

연등도인을 쳐다본 이유는 방금 전에 보현진인과 태을진인은 내게 살기를 흘렸으나 연등도인만큼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자야말로 이 자리에서 가장 냉정하게 나와 이야기가 될만한 상대이며 상대측의 대장이라는 걸 교섭해오며 얻은 경험으로 알아챈 것이다.

“으음….”

연등도인은 침음성을 흘리다가 억눌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대를 얕보아서 그런 게 아니오. 설마 삼황오제가 그대에게 우리 곤륜성의 사정을 말하지 않았소? 알면서도 굳이 물어보는 거라면 모욕인 것 같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기본적인 이야기만 들었을뿐 자세한 건 모르오. 당신네들에게 찾아올 생각도 별로 없었소만.”

“…옥황상제와 서왕모는 소멸하였으며 구천현녀는 깊은 동면(冬眠)상태가 되었소. 또한 삼청은 모두 소멸하였으니…. 우리 십이대선이 남은 곤륜의 선인들을 책임지고 있소이다. 그대를 무시한 게 아니오.”

“…….”

옥황상제와 서왕모, 삼청이 소멸한 내역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구천현녀의 동면은 왜인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물어보기로 했다.

“구천현녀가 동면하다니? 어째서요.”

“그건 우리도 모르겠소. 허나 그녀는 본디 우리같은 일개 신선과 근원을 달리하는 신적인 존재…. 그녀만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오.”

“그럼 십이대선 중에 당신들 말고 남은 아홉 명은 어디 갔소? 나를 대접하는데 세 명이면 충분하단 건가?”

“…후우….”

연등도인은 꺼지듯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천계에 흉신의 사도가 창궐하던 때 다 소멸했소. 아홉이 다 소멸해버려서 남은 건 우리 셋뿐이오.”

“……!!”

“우리 천계가 이토록 몰락한 걸 보니 속이 시원하시겠구려.”

연등도인이 약간의 원한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으나 나는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천계는 말 그대로 이미 멸망한 거나 다름없구나!’

강대한 힘을 지닌 옥황상제, 서왕모, 구천현녀, 삼청이라는 구심점이 모조리 소멸하거나 와해되어버렸고 십이대선조차 칠할이 절멸하여 세 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렇다면 굳이 천계를 성의 형태로 축조한 것도 더 이상 외적의 침입에 대처할 힘이 없어서 방어적으로 변한 것이리라.

나는 미안한 마음에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미안하군. 아무튼 이제 상황은 알겠으니 나를 부른 용건을 말해주시오.”

“…그러지.”

연등도인이 살짝 한쪽 눈을 크게 뜨더니 말을 이었다.

“삼황오제의 사도여. 그대가 원하는 건 아마 신선 백 명의 영혼일 것이오. 맞소?”

“……!!”

뭐야?!

어떻게 알았지?!

나는 갑작스럽게 훅 치고 들어오는 연등도인의 말에 약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대꾸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내는 저의가 무엇이오?”

“우리는 일생일대의 마지막 도박을 하려 하오…. 그래서 당신을 불러온 것이오.”

“도박?”

이윽고 이어진 연등도인의 말에 나는 결국 표정관리를 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대가 원한다면 곤륜성에 있는 신선 백 명의 영혼을 드리겠소. 대신에 세계수의 열매를 얻을 때 우리 셋을 동행시켜주시오!”

“……?!”

뭐라고?!

나는 세계수의 열매라고 하는 가장 중대한 정보를 연등도인이 알고 있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전욱과의 거래내용까지 다 알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서 멍하니 있자 연등도인이 조심스레 말했다.

“열매의 성과는 그대가 얻되…. 우리는 그저 세계수의 열매 주변에 나타날 새로운 씨앗을 얻으려 하는 것이오. 그 씨앗을 얻게만 해 준다면 그대가 원하는 걸 모두 주겠소.”

“씨앗… 이라고.”

“그렇소. 씨앗은 당장 강대한 힘이 없고 기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니 우리에게 주셨으면 하오.”

“…….”

순간 내 머릿속에는 과거의 전생경험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세계수에서 팔부신중과 동료들이 싸웠던 그 당시의 결전…. 그 때 제갈유룡이 세계수의 씨앗을 목표로 침투해 왔었고 제갈사가 놈을 상대로 목숨걸고 싸워서 지켜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당시의 기억을 보면서도 세계수의 씨앗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연등도인의 말에 그 때의 기억을 환기한 것이다.

“…….”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서 침묵하자 연등도인 옆에 있던 태을진인이 약간 몸이 달았는지 입을 열었다.

“이미 이 세계의 종말은 피할 수 없소. 그렇다 하여 황제 공손헌원을 거스르고 종말에 대비할 힘이 있는 것도 아니오.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수의 씨앗을 이용해서 최소한의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것 뿐.”

“자구책? 세계수의 씨앗을 키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 이제 종말이 코앞인 상태에서 뭘 하겠다는 거요.”

“그건 우리만의 비밀이오.”

보현진인이 태을진인의 말을 받아서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우리는 흉신이 별 밑에서 떠오르는 그 날의 파멸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오. 파멸에 맞설 최소한의 구원이 필요하니 부디 사도님의 자비를 바라오.”

“…….”

이게 대체 무슨….

나는 황당한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멍한 상태에서 잠시동안 머리를 굴려서 상황을 애써 파악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에게 세계수의 이야기를 한 게 설마 나일라토프요?”

아무리 생각해도 세계수의 정보를 이야기할만한 건 그놈밖에 없다.

“그렇소.”

연등도인이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당신의 동료라고 자처하며 우리를 찾아왔소. 그리고 우리에게 세계수의 이야기를 해 주었고, 우리들이 어떻게 당신에게 도움이 될지를 고민해보라고 하더군.”

“…….”

“동시에 얼마 전에 전욱이 당신에게 홍호로를 통해 신선 백 명의 영혼을 가져오라는 임무를 줬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소. 그래서 우리는 커다란 고민 끝에 신중하게 결단을 내린 것이오.”

연등도인은 자못 비장한 말투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계 모두의 운명을 위하여 백 명을 희생시키기로…!!”

“…….”

“부디 부탁하겠소. 필요하다면 천계의 보패를 가져가도 좋으니 세계수의 씨앗을 우리에게 주시오….”

그렇게 된 거였군.

나는 상황이 어찌된 건지 알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나일라토프에게 달려가서 따져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지친다….’

머리가 그렇게 잘 굴러가는 편도 아닌데 억지로 쥐어짜내려니 괴롭다.

하지만 누군가 날 대신해서 생각해 주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사방천지에 날 이용하려는 놈들 투성이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날 도와주지 않는 게 바로 세상의 이치이리라.

‘…아, 그렇구나.’

나는 문득 정자 뒤쪽에 시립해 있는 세 명의 선녀를 쳐다보았고, 갑작스레 그들에게서 느껴졌던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것이다.

잠시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좋소. 대신에 나도 조건이 있소만.”

“말씀해보시오.”

“당신, 당신, 당신.”

나는 손가락을 들어서 차례대로 눈앞에 있는 십이대선 셋을 가리켰다.

“……?”

그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나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희생되는 백 명의 영혼 중에 당신들 세 명이 포함된다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씨앗을 줄 뿐만 아니라 천계의 훗날도 내가 책임져주겠소.”

“……!!”

“……?!”

“뭣이!”

내 말에 연등도인, 태을진인, 보현진인이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인지 그들은 여유가 없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대장이라는 듯 제일 먼저 안색을 회복한 연등도인이 말했다.

“미, 미안하오만 우리는 씨앗을 가공하여 대책을 만드는 중대한 임무가 있소. 우리의 목숨은 걸 수가 없….”

“그러면 당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저기 있는 선녀들에게 전수하시오.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주지. 내가 알기로는 그녀들은 절대 당신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니,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과 지식이 있을 것이오.”

“아, 아니 무슨….”

“내가 모를 줄 알았소?”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연등도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녀들은 인간이 아니라 성좌(星座)인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는 걸!”

우우우우….

내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 서 있던 옥형, 요광, 천권 셋의 신형이 아지랑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기가 더욱 강해지면서 마치 빛으로 이루어진 광인(光人)처럼 변했고 이윽고 천녀의 옷이 그들의 몸을 뒤덮는 듯 했다.

‘마치 항아가 본 모습을 드러냈던 것과 비슷하군….’

내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뒤에 서 있던 옥형이 이번에는 신언(神言)으로 말했다.

[어찌 알아챘는가, 사도여.]

틀림없는 신적 존재의 위풍이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더군. 세상에 어떤 선녀가 투선급의 강함을 당연한 듯이 지니고 있고 그 숫자가 셋이나 된단 말이오? 삼황오제의 직계혈족인 항아쯤 되어야 가능한 일인데 그런 자들이 여태 명성도 없이 묻혀있었단 게 말이 안 되지.”

[…….]

“그리고 당신들의 이름을 잘 생각해보니 예전에 공부했던 내용이 떠오르더구려. 천하에 이름 높은 성좌인 북두칠성에 일곱 성좌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당신들의 이름이었소.”

정확히는 이 내용은 과거 망량 밑에서 삼 년간 만자문을 공부할 때 태을기서와 역술진본에 수록되어 있던 것이다. 워낙 옛날에 공부했던 것이라 깜박하고 있었는데 뇌정경의 효과로 다시 떠올린 것이다. 심지어 북두칠성의 존재는 내가 전생하면서 거의 마주쳤던 적이 없었으므로 떠올리기가 쉽지가 않았다.

선녀 옥형, 아니 성좌 북두칠성의 일좌(一座)이자 신적 존재가 서서히 말했다.

[그렇다. 천계가 몰락하던 그 날 구천현녀가 대주술으로 우리를 소환하여 천계의 마지막 보존을 부탁했노라.]

“……!”

[우리는 머나먼 성좌의 의지. 우리가 그 동안 천계의 마지막 정영을 우리의 신력을 이용해서 지키고 있었다.]

“그랬군요.”

성좌소환!

구천현녀쯤 되는 존재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리라.

눈앞의 성좌들은 삼황오제급 존재는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신선보다는 압도적으로 고위급 존재! 마왕보다 더 격이 높은, 지배자에 가까운 위계가 바로 눈앞에 있는 성좌들이었다.

내가 내심 납득하고 있을 때 옥형이 말했다.

[사도 백웅. 말하자면 그대의 말은 이런 것인가?]

옥형은 쓰윽 세 명의 대선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남의 목숨을 걸려는 자는 자신의 목숨 또한 걸어야 한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오.”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셋을 노려보며 말했다.

“침략자로서 할 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 정도의 각오가 없는 상대에게 내 소중한 씨앗을 넘겨주고 싶지 않은 것이오.”

[…….]

“사실 그깟 신선의 영혼 백 개, 나는 딱히 없어도 그만이오. 위대한 분들께 손발 비비면서 사과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려는 자들의 비위를 맞추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은 아니란 말이오!”

십이대선의 밑바닥은 예전에 봤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한층 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런 놈들과 교섭하느니 그냥 내 맘대로 하는 게 나을 것이다.

[흠….]

내 외침을 들은 옥형은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요광, 천기 두 명의 성좌와 뭔가를 의논하는 듯 하다가 뜻밖의 결론을 입에 올렸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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