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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받아라!]
번쩍!
이청운의 노호성과 함께 뇌전(雷電)이 솟구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허공에 수백 개나 되는 현란한 백광(白光)의 선(線)이 그려지더니 검마 서문대룡의 전신이 핏줄기만 남기고 터져나갔다.
푸콰콱
마치 권능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그저 뇌신지혼을 쓴 이청운이 평범하게 뇌신류의 무공으로 섬격(纖擊)을 그었을 뿐이고 특별한 초식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하는 자는 저항조차 못하고 번개의 속도에 유린당하는 것이다.
‘몇 번이지? 치명적인 흐름 십여 개는 읽었지만 나머지는 의념을 맞대고 있지 않으니 잘 알 수가 없어.’
홍길동의 시점이라서인지 의념천주로 직접 감지할 수 없다. 그 때문인지 같은 절대지경인 나조차도 그저 관전만으로는 뇌신지혼이 어떤 속도와 궤적을 가지는지 간파가 불가능하다.
‘역시 뇌신지혼이군….’
나는 뇌신지혼이 싸우는 걸 보자 새삼 경탄스러웠다.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저게 무술인지 의심을 품을 정도의 전율스러운 빠르기! 말 그대로 뇌전의 속도를 구현하는 뇌신지혼은 사실 일반적인 무공으로는 대결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본디 사람이 아무리 의념의 도움을 받아서 무기의 속도를 강화하더라도 초음속을 넘는 수준까지만 가능했고 뇌전의 속도는 그걸 아득하게 초월하기 때문이다.
심천무량(心天無量)
그러나 핏줄기만 남고 터졌는데도 전투가 끝난게 아니라는 듯, 이번엔 백련교주가 이청운의 뇌신지혼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만다라(曼茶羅)를 날려서 압박을 가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날리는 듯 했지만, 이윽고 스팟 하는 잔공음(殘空音)과 함께 거대한 만다라가 스쳐지나가는 틈 사이에서 희끄무레한 게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빠르구나…!!]
찬탄하듯 중얼거린 백련교주가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만다라(曼茶羅)가 강렬하게 회전을 시작했고 면(面)으로 펼쳐져있던 만다라는 구(球)의 형태로 뒤바뀌면서 막대한 부피로 부풀어올랐다. 보나마나 요리조리 회피하는 적의 퇴로를 막으려는 초식이 분명했다.
슈와악 -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괴음이 울려퍼짐과 동시에 한 줄기의 흑선(黑線)이 천공으로 쇄도했고 그와 동시에 의념천주로 만들어진 거대한 흑검(黑劍)의 날이 산이라도 쪼갤 것처럼 천충(天衝)할 기세로 내뿜어졌다. 흑검은 그대로 만다라의 구를 쪼개어버렸고 흑검의 의념 한가운데에는 검마 서문대룡의 신형이 들어가 있었다.
상황은 명백했다.
검마는 뇌신지혼에 당한 게 아니라 약간의 피해를 입은 채 흘려내는데 성공했고, 피해내던 검마에게 백련교주가 추격타를 넣었지만 검마가 새로이 의념의 흑검을 소환하여 만다라를 절단해버린 것이다!
고오오오
치킹 치킹 치킹
허공에 떠오른 검마의 흑검은 처음에는 하나뿐이었으나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또 다른 날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종래에는 총 여덟 자루의 흑검이 되었다. 칼날로 공작이 깃을 편 듯한 형상이었고 단언컨대 내가 살면서 보아온 적이 없는 의념절기였다.
‘저건 대체 뭐지?’
나는 검마 밑에서 무영문의 검술을 오랫동안 배워왔기에 그가 어떤 무예를 익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여태껏 봐 왔던 검마의 무공중에 저 흑검과 비슷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무영문의 무영탈혼검법으로 저런 형태의 절대지경을 개화하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의혹을 품고 있을 때 백련교주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이청운. 저게 자네가 말했던 팔대흉검(八大凶劍)인가?]
“그렇다. 임의로 붙인 이름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뇌신지혼의 소모를 줄이려는지 다시 인간형으로 되돌아온 이청운이 자신의 애꾸눈의 상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놈이 흉검을 하나 전개할 때마다 두 배씩 강해진다. 나는 오검(五劍)을 보다가 이 꼴이 되었으니 절대 오래 끌어선 안 된다.”
[…….]
교주가 물끄러미 이청운을 보다가 말했다.
[오른팔을 다쳤군.]
주륵….
그의 말대로였다. 이청운의 오른쪽 팔에는 아까는 없었던 얕은 검상(劍傷)이 나 있었다.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검상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는 게 보였고,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검마는 팔대흉검을 전개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방금 전의 초식전개 속에서 뇌신지혼에 반격했다는 것!
이청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놈은 내 무공을 한 번 마주친 적 있어. 뇌령의 흐름을 감지해서 감으로 맞춘 것 같군.”
[그것만으로도 불세출의 괴물이군. 세상에 그 어떤 고수가 뇌신지혼을 상대로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어째서 다른 호법사자들이 당했는지 알 것 같구나.]
“…교주. 놈은 인간으로서는 못 이길 존재다. 그래도 계속 할 셈인가?”
[우문(愚問)이군. 저 자는 틀림없이 악신(惡神)의 주구(走狗).]
교주의 눈에서 안광이 폭사했다.
[백련교의 지존으로서 여기서 물러서면 앞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쩌엉!!
백련교주가 합장(合掌)했다. 그 엄청난 의념과 내공이 퍼져나오면서 무한의 내공, 원영신이 감응했고 그의 전신에서 혼돈이 넘실거리며 암흑의 기류를 만들어내었다.
“……!!”
백련교주가 뿜어내는 힘이 방금 전까지의 수십 배에 이르자 이청운은 흠칫했고, 그런 이청운에게 백련교주가 말했다.
[이청운. 너와 나의 공방일체로 지구전으로 몰아가 원영신에 존재하는 무한의 힘을 이용해서 승리를 거둘 생각이었지만 저 자의 역량이 예상을 상회한다. 팔대흉검이 전개될수록 강해지는 거라면 내가 지닌 전력(全力)이 팔검(八劍)을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다음번에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건다. 흉검을 펼치기 전에 초전박살을 내야만 하겠지. 하지만 내가 지닌 힘을 일깨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부웅!
그 말에 이청운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창을 휘둘렀다.
“시간벌이를 하란 말이군. 해 보마.”
나는 백련교 최강자인 둘의 전략이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한의 체력과 기력으로 검마를 지치게 해서 이길 생각이었지만 그 때까지 버틸 수가 없다고 생각한 거군.’
동시에 그 말은 검마가 전력을 다하게 되면 백련교주보다 더 강할 것이라는 걸 교주가 스스로 인정한 셈도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 아연해지고 말았다.
‘이런 제길…. 상황파악이 안 되잖아? 직접 안 보니까 모르겠어!!’
나는 이 혈비경으로 보는 회상의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이 회상이 실감나게 그 당시의 전투상황과 대화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저 천리안을 이용한 관찰일 뿐이라서 의념(意念)과 힘의 흐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의념천주와 육감(六感)을 이용해서 감지할 수 있는 게 무척 많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는 상대가 어떤 기술을 쓰고 얼마나 강한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다!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것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그래서인지 백련교주와 이청운이 실감하고 있는 검마의 강함은 그저 대화로만 유추할 수 있을 뿐 명확하게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나는 별 수 없이 안력에 더 집중하면서 시각적인 정보로나마 최대한 유추하기로 마음먹었다.
뇌신지혼(雷神之魂)
뇌갑주(雷甲胄)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이청운의 오른팔 위에 일렁거리는 번개의 손목방패 같은 게 나타났다. 의념으로 만들어진 거라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저건 뇌신지혼을 방어에 응용할 때 나타나는 형태인 듯 했다. 나는 이청운이 뇌갑주의 형태를 쓰는 걸 본 적이 없었고 딱히 설명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의아했다.
‘응? 왜 여태껏 한 번도 안 썼던 거…. 아하!!’
나는 잠시 후 이유를 알아차렸다.
뇌신지혼은 본디 뇌속으로 적을 타격하는 무공이므로 적과 오래 공방을 주고받는 건 딱히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게다가 특성상 공격중시일 수밖에 없으므로 굳이 뇌전의 속성으로 방어를 할 필요도 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온다!]
팔대흉검 중 제 일검(第一劍)이 마치 흑조(黑鳥)의 날개가 떨어지듯이 느릿하게 두 사람을 향해서 날아들었다. 나는 그 일검의 흑인(黑刃)이 날아가는 형태가 어디에서 많이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근거리까지 제 일검이 날아왔을 때, 이청운은 뇌신지혼을 쓰면서 전신을 흑검의 날에 부딪히듯이 전방으로 쇄도했다. 이청운이 유(柔)의 수법을 모르는 자도 아닌데 굳이 강대강으로 싸우는 이유를 지금 보는 것만으론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틀림없이 이유가 있으리라.
꽈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뇌신지혼과 흑인이 충돌했다. 이청운은 찰나의 순간에 정확하게 뇌갑주의 오른 팔목을 흑인의 첨단(尖端)에 갖다 대고 있었고, 그는 바로 다음 순간 전신의 뇌령지기를 폭출(爆出)하며 검마의 명치에 뇌창(雷槍)을 투척했다.
푸욱 - !!
뇌창이 검마를 꿰뚫은 음영(陰影)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청운이 원한과 살의를 담아서 외쳤다.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 이제부터 뇌전으로 네놈이 움직일 수조차 없게 해 주마!!]
완벽한 시간차를 노린 반격! 이청운의 무공숙련도가 극치에 이르렀기에 저런 반격이 가능한 것이다. 실로 보는 나조차도 경탄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화려한 기예였다. 이청운은 검마 정도의 달인이 의념절기를 전개한다 해도 생겨날 수밖에 없는 아주 사소한 빈틈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상황은 지켜보던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으오… 오오오오!!”
기합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른 검마가 자신의 명치에 꽂힌 뇌창을 그대로 한쪽 손으로 붙잡아서 빼내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절대지경의 고수가 저렇게 무식한 짓을 할 줄이야? 이청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냉혹한 목소리로 자신의 손가락을 창으로 겨누며 말했다.
[지져주마!]
파지지지직!!
이청운의 의념이 도달하자 검마의 명치에 꽂힌 뇌창은 마치 천공의 번개를 맞은 것처럼 무시무시한 뇌전과 불꽃을 튀겼다. 인간이라면 이미 즉사하고도 남았을 것이고 피와 뼈를 증발시킬 정도의 기세!
파지지지직!!
이청운은 그로부터 수십 번이나 계속해서 뇌전을 보내어 검마를 감전시켰고 이대로 승패를 내버리려는 듯 힘을 전혀 아끼지 않았다. 산이라도 불태울 법한 저만한 뇌전을 계속 쏟아 붓는데도 어찌 승리를 확신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죽어라!!]
부들부들
그러나 뇌전에 직접 당하고 있음에도 검마 서문대룡은 끝까지 시꺼멓게 타는 손을 창에서 놓치지 않았고, 그의 입술이 덜덜 떨리는 와중에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 어… 어검… 되치기….”
[뭐?]
슈칵!!
그것이 이청운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뜬금없이 인식의 바깥에서 날아온 흑색 칼날, 제이검(第二劍)이 그대로 이청운의 상반신을 절단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뇌전의 속도를 지닌 이청운이 피할 수 없었던 것은 틀림없이 저 흑색칼날이 지닌 의념절기만의 특성일 것이다.
타닷
마치 빨려 들어가듯 검마의 손에 되돌아간 흑색의 검은 손잡이가 따로 없었다. 그저 칼날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 칼날을 손에 잡고 있는 검마의 손에서는 쉴 새 없이 시뻘건 선혈이 흘러내리는 듯 했다. 검마는 크게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흐아… 아… 크흐으… 흐흐…. 으흐흐흐흐.”
마치 흐느낌에 가까운 그 괴성은 절대 그가 제정신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쿨럭 하고 피를 토해내었고, 그 모습은 무척 약해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방금 전의 일격을 보는 순간 무척 기시감이 느껴졌다.
‘뭐지? 내가 아는 무영문의 무공 중에 비슷한 건 단 하나도 없는데…. 무척 익숙해.’
마치 - 어검(御劍)이라는 하나의 분야에 있어서 극(極)에 도달한 무언가.
정수(精髓) 그 자체가 느껴졌던 것이다.
[오래 기다렸구나, 마인(魔人)이여.]
잠시 후 백련교주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진다.
[내 오랜 악우(惡友)를 해치운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쿠구구구구!!
태허와 혼돈을 결합시켜 인위적으로 신의 사도에 버금가는 힘을 얻는 백련교주의 변신! 역시나 외우주라 할지라도 백련교주의 비장의 한 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듯 했다.
혼돈천괴장(混沌天壞掌)
백련교주는 더 이상의 반격을 용납치 않다는 듯 앞으로 장인(掌印)을 내뻗었고, 그 장인은 순식간에 검마 서문대룡의 흑인(黑刃)을 모조리 동강내었다.
“크하아악…!!”
검마는 입에서 피화살을 내뿜으며 뒤로 날아가면서도 반격을 하려는 듯 어검의 수법으로 수백 개나 되는 어검을 만들어서 날렸지만 혼돈천괴장은 마치 혼수막어(混水摸魚)를 하듯 장난처럼 검마의 공세를 파해했다.
우웅
한 차례 혼돈천괴장이 윤전(輪轉)한다. 동시에 교주의 몸이 허공에서 가부좌를 튼 상태가 되었고, 한 손에서 내뿜는 혼돈천괴장과 별개로 다른 한 손이 단전(丹田)에서 인(印)을 맺은 채 무한의 힘을 끌어 모으는 게 보였다.
까강!!
그 순간 아까 이청운을 베었을 때처럼 기습적인 제삼검(第三劍)이 백련교주의 목을 베려고 배후에서 날아왔지만 백련교주는 보지도 않고 막아내었다. 아니, 정확히는 제삼검의 공격력이 그가 발휘하는 원영신의 방어막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백련교주는 힐끔 뒤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특성을 가진 어검이군. 하지만 그렇게 되면 흉검과 함께 절대지경을 두 개나 얻은 셈인데 그만큼 재능을 낭비할 여력이 있었단 말인가? 둘은 전혀 다른 영역의 무예이건만.]
“…….”
[절대지경의 상리(常理)를 무시하는 자로군….]
이미 검마는 땅바닥에 푹 패일 정도로 처박힌 채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혼돈천괴장의 압력을 이겨내는 것만으로도 힘이 벅차 보였다.
틀림없다.
검마가 모든 역량을 다 펼치기 전이라면 혼돈의 힘을 각성한 교주를 상대로는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청운이 시간을 충분히 끌어준 시점에서 이미 검마는 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리라.
[궁금한 점이 많지만 더 이상 그대와 무(武)를 겨룰 여유가 없다. 그대의 업보를 뉘우치며 사라져라.]
위이잉!
심천무량(心天無量)
대화엄(大華嚴)
회전하는 삼원(三圓)의 만다라(曼茶羅)! 나는 500년 후의 미래에서도 나타났던 저 절기가 여기서도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자, 저게 원영신 그 자체의 특성을 강화시켜서 만들어내는 권능에 가깝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예를 닦으며 혼돈을 다스리는 능력을 오랫동안 키워나가던 백련교주가 원숙단계에서 얻게 되는 무예인 것이다.
대화엄의 위력은 달기가 내뿜는 최강의 숨결보다 더 강하다는 걸 생각하면 저 삼원의 만다라를 맞게 되는 순간 검마 서문대룡은 분명 뼛조각 하나 남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리라.
그 때였다.
검마가 갑자기 자신의 손을 뻗어 눈 쪽으로 향했고, 그는 이윽고 끔찍한 비명소리를 터뜨렸다.
“끄, 끄으, 끄아아아아아아악!!”
뚜두두둑!!
검마의 손에는 꿰매어져 있던 눈의 실밥이 한가득 잡혀있었다! 검마는 모든 실밥을 뜯자마자 눈을 번쩍하고 떴고, 알 수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번쩍
아주 찰나의 순간 -
검마의 배후에서 어둠의 후광이 넘실거리며 여덟 개의 흑인(黑刃)이 부채가 접혀지듯 하나의 칼날로 변한다. 그리고 검마의 의지에 따라 빛의 속도로 대화엄의 삼원 사이로 시꺼먼 검기(劍技)가 파고들었다. 백련교주는 그 검기를 다시 한 번 만다라로 상쇄해버리려 했지만 갑자기 그의 표정에 경악이 떠올랐다.
[아니…?!]
겹친다.
먼저 날아오던 교차된 흑인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백련교주의 대화엄을 뚫을 수 없었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검기가 겹치면서 쌍검기(雙劍技)가 그 위력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그 순간 무척 기이한 현상이 보였다. 검마의 본체는 여전히 누워있는데도 백련교주의 코앞에 날아와서 ‘또 하나의 검마’가 교주의 코앞에서 중단세로 검을 날리고 있는 모순된 현상 - 그저 분신이나 환영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해 보였다.
그리고 결판이 나 버리고 말았다.
촤악….
조용히 피분수가 솟구친다. 백련교주의 혼돈화한 육체에는 커다랗게 십자(十字)의 상흔이 아로새겨져 있었고, 백련교주의 시꺼먼 피부가 점차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의 삼안(三眼)은 힘을 잃고 닫혀버렸으며 그의 전신에서 힘이 급속히 빠져 나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검마는 어느 새 비틀거리며 검을 지팡이처럼 써서 그 자리에 일어서 있었다. 하지만 검마는 이미 너무 많이 당해서 몸이 걸레짝처럼 변해있었기에 도리어 백련교주보다 빨리 죽을 것처럼 보였다.
백련교주는 물끄러미 자신의 십자 상흔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이 초식의 이름이 무엇인가?”
혼돈화의 효과가 남았기 때문일까? 그는 평소의 육합전성이 아니라 순수한 육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검마는 한동안 숨을 몰아쉬며 마치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단 하나의 체력도 남지 않은 것 같았지만 끝내 초인적인 근성으로 꺼지듯이 대답했다.
“…탈혼검령(奪魂劍靈) 최종오의(最終奧義)… 십자검(十字劍)!”
“과연…. 그대가 습득한 절대지경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였던가?”
“…….”
“천상(天上)의 절기(絶技)로다.”
교주는 한동안 감탄하듯 자신을 죽인 초식을 홀린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진정한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여…. 신(神)의 힘을 빌려 쓰지 않는 그대에게 졌다면 원한도 후회도 남지 않았을 터인데… 어찌… 사악한 권능을….”
“…….”
“원통… 하구….”
백련교주의 움직임이 멎었다.
푸콰콰콱!!
그리고 다음 순간 백련교주의 전신이 수백 조각이 되어서 터져나가고 말았다. 십자검에 담겨있는 검력(劍力)이 너무 막대해서 백련교주의 육체를 터뜨린 것이고, 혼돈화가 풀릴 때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일 뿐이었다.
멍하니 백련교주의 최후를 지켜보던 검마가 갑자기 발작하듯이 몸을 뒤틀었다.
“끄아… 아… 아아아악!!”
뿌드드득
그의 몸이 멋대로 변형하고 있었다. 마치 악마의 세포가 뒤틀리듯이 몸이 제멋대로 팽창과 수축을 거듭했고 피부 여기저기서 촉수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땡그랑
“끄아악! 악! 으아아아아악!!”
급기야는 그는 검객의 자존심인 검조차도 손에서 놓아버린 채 그 자리에서 발광하며 고통에 몸을 뒤틀었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소름이 돋아서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저, 저럴 수가.’
나는 검마의 인내심과 극기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다. 산 채로 피부를 도려내져도 비명 한번 안지를 정도로 뛰어난 검객이 바로 검마인 것이다. 그런 검마가 도저히 이성을 찾지 못하고 울부짖을 정도면 도대체 어떤 지옥의 고통이 그를 휘감고 있다는 말인가?
파앗
그 처절하고 잔인한 광경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갑자기 끊어졌다.
정확히는 혈비경으로 보여주던 영상을 홍길동이 갑자기 멈춘 것이다.
홍길동은 자신의 혈비경을 잠시 탁자 위에 올려두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후부터는 검마가 그저 비명을 질러대다가 무차별 학살을 하기 시작했소. 그러다가 갑자기 그 자가 어떻게 했는지 우리 천계로 올라왔지.”
“…….”
“백련교가 이후에 어찌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교주와 호법사자를 모두 잃었으니 그 이후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거요.”
“그렇겠지.”
아무래도 파우스트가 말했던 대로 백련교가 힘을 잃고 종말 막바지까지 인류의 바짓가랑이나 잡아당기는 민폐로 전락한 것은 이때의 사건이 무척 컸을 것이다. 백련교주와 호법사자를 모조리 잃은 백련교는 그 이후 오백 년 동안 두 번 다시 전성기의 힘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궁금해져서 홍길동에게 물었다.
“그래서 천계에서는 검마가 어떻게 된 거지? 검마가 천계에 쳐들어갔다면 천계의 투선들에게 당해서 죽은 건가?”
“…으음. 이게 참, 말하기가 힘든데….”
무척 곤란해하는 표정이던 홍길동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난데없이 소멸했소.”
“소멸했다고?”
“정확히는… 천계의 초입에서 지선(地仙)과 신장(神將)을 대거 학살하고 대라신선들의 합공을 받던 중에 난데없이 증발했다는 표현이 맞을 거요.”
“……?”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는 평범한 학살 장면일 뿐이기에 굳이 혈비경을 써서 보여드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소.”
“증발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홍길동이 내 의문어린 표정에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우리 천계에서는 검마라는 자를 ‘누군가’가 일부러 빼내어서 데려갔다고 보고 있소.”
“…그러니까 원래라면 대라신선들의 합공에 죽을 운명이었는데 죽게 놔둘 수 없었기에 검마를 누군가가 살려줬다는 얘기인가?”
“바로 그거요.”
“그래서 그 누군가가 누구지?”
“그건 나도 모르오.”
“…….”
모르면 일단 죽으면 될 것 같군.
“응? 왜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시오.”
스릉
나는 화요와 수요를 빼 들었다. 그리고 공명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내가 말없이 살의를 일으키자 홍길동이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자, 잠깐 기다리시오! 나는 모르지만 다른 자는 알고 있을 수도 있소!”
“다른 자?”
“그렇소. 그게 바로 내가 당신을 찾아온 이유요.”
그는 조심스레 웬 보옥(寶玉)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곤륜성으로 바로 올 수 있는 이동용 보패요. 와서 우리 곤륜성의 대선(大仙)들을 만나신다면 검마에게 있었던 일의 진상을 알 수 있을 것이오.”
“…….”
“또한 그분들께서 당신에게 꼭 하고 싶으신 말이 있소.”
결국 이걸 말하려고 내게 혈비경까지 보여주는 호의를 베푼 것인가.
‘흠…. 어쩌지.’
이 제안을 받아들여서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뭔가 직감이 좋지 않았다.
‘이걸 받아들이냐 마느냐에 따라 이 외우주에서의 운명(運命)이 달라질 거라는 감이 든다.’
나는 잠시 동안 검마에 대한 정보의 중요성과 천계에 얽히면 얼마나 복잡해질지 등등을 고민해 보았다.
제갈현이 말했던 대로 어쩌면 세계수의 열매를 얻는 것보다 검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
‘탈혼검령.’
과연 이런 우연도 있을 수 있는 것일까?
500년 후의 대웅제국에 있던 검마 - 그가 얻었던 절대지경과 외우주의 타락한 검마가 얻은 절대지경의 이름이 같은 게 과연 우연일 수 있을까.
“…….”
나는 한참 후 입을 열었다.
“가겠다.”
이건 우연이 아닌 필연(必緣)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