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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홍길동에게 말했다.
“따라갈수도 있지만 나는 서문공백에게 볼 일이 있다. 그 일을 네가 방해했으니 불쾌함이 한층 강해지는군.”
“이런. 속박술을 풀겠소.”
슈욱 하는 소리와 함께 그때까지 못 움직이고 있던 서문공백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서문공백은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품에서 권총을 꺼내어서 홍길동에게 발사했다.
타타탕!!
하지만 당연하게도 홍길동은 피하지도 않았고 권총은 그저 홍길동의 몸을 허망하게 관통하고 말았다. 마치 허깨비를 쏜 듯한 모습에 서문공백이 흠칫 놀랐다.
“아니, 어떻게 총을 맞고….”
“서문공백, 대라신선은 고위 영체이니 물리적 공격을 마음만 먹으면 모두 무효화시킬 수 있소. 여기선 일단 가만 있으시오.”
대라신선의 본체는 최소한 검기를 쓰지 않으면 털끝하나 건드릴 수 없다. 그나마도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고 검강을 쓰는 고수조차도 대라신선과 싸움이 성립될까말까한 것이니 저깟 권총 따위는 대라신선에게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이리라.
나는 한숨을 쉬고는 홍길동을 곱지 못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설마 내게 대라신선의 힘을 과시하려고 서문공백을 겁박한 거냐?”
그러자 홍길동이 당황하며 말했다.
“전혀 아니오. 단지 이야기가 깊어지기 전에 주의를 끌고자 했을 뿐이오. 불쾌하셨으면 사과드리오.”
“어찌되었든 지금은 따라갈 기분이 아니다. 나는 서문공백에게서 과거에 있었던 광검마의 비사를 들어야 하니 썩 꺼져라!”
나는 홍길동의 과거 모습도 생각났고 그다지 맘에 드는 놈이 아니었으므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막말로 저 놈의 말을 무시해도 아무 상관없는 상황이기에 더 세게 나갈 수가 있었다.
그러자 홍길동은 의외라는 듯 힐끔 서문공백을 보며 말했다.
“설마 저 자가 검마 서문대룡의 후손이었소?”
“……?!”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넌 검마를 아는가?”
홍길동이 잠시 몸을 떨었다.
“물론이오. 천계의 신선으로써 어찌 그를 모를 수가 있겠소? 소멸하기 전의 천계에서 그 장절한 싸움을 벌인 흉마(凶魔)를.”
흉마?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왠지 홍길동은 마치 검마를 언급하면서 역병이나 귀신처럼 소름 돋는다는 듯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검마를 안 좋게 표현하는 홍길동이 짜증났지만 동시에 호기심이 생겨서 반문했다.
“그렇다면 검마가 천계에서 싸우는 걸 직접 본 적이 있다는 소리인가?”
“그렇소. 다만 나는 그 당시에 갓 등선한 애송이였기에 감히 그의 앞에 정면으로 나서지 못했소.”
“음…. 애시당초 검마가 왜 천계에서 싸웠던 거지?”
“…….”
홍길동은 잠시 눈치를 보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서문공백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말했다.
“이러는 건 어떻겠소? 저 서문공백이란 자가 과거의 기록을 사도 백웅 님께 이야기하면 내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직접 보고 들었던 내용으로 보충설명을 하겠소. 그렇게 하면 화가 풀리시겠소?”
“…호오!”
“천계에서 그가 무엇을 했는지도 알려드리겠소.”
나는 홍길동의 제안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검마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다곤 하지만 직접 검마를 보았던 놈의 목격담까지 듣는다면 더욱 정확하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충분한 정보를 준다면 너희 천계에 찾아가는 것도 생각해보마.”
“하해와 같은 배려에 감사드리오.”
드르륵
잠시 후 서문공백이 의자 두 개를 놓았고 우리는 거기에 앉았다. 서문공백은 아직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홍길동을 쳐다보다가 책상 위에 있던 고문서를 펼치며 입을 열었다.
“서문세가의 검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바로 검마 서문대룡의 호적수였던 무당파(武當派)의 명룡자(冥龍子)라는 무림기인의 회고록(回顧録)으로 시작되오.”
“에엥?! 며, 명룡자?!”
“왜, 왜 그리 놀라시는지….”
“…….”
미치겠다. 여기는 정말 외우주가 맞는 것인가?
아무리 내 세계와 많은 것이 비슷하다지만 명룡자의 이름이 난데없이 튀어나오자 나는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당황을 추스리고는 손짓을 했다.
“아무것도 아니니 계속하시오.”
“음…. 명룡자의 회고록에는 검마 서문대룡이 딸인 서문혜를 찾아 천지를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실종되었고, 그 후 이십여 년이 지나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적혀 있소. 그리고 다시 나타난 서문대룡은 광기(狂氣)에 사로잡히기 직전이었고 웬 물고기 같은 괴물의 수급(首級)을 들고 있었다 하오.”
“물고기같은 괴물?”
“아마 그 시대의 이족이었을 거라 추정하오. 아무튼 그는 명룡자에게 딸을 되찾을 방법을 찾았다고 이야기하고는 다시 사라졌고 그걸로 회고록은 끝이오.”
“……?”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회고록이 끝이라고? 어째서 그렇소. 검마 서문대룡이 무림의 절반을 쓸어버렸다 하였으면 당연히 회고록에도 그 내용이 남아있어야 하지 않소?”
“그게 자료를 찾아보니 명룡자 또한 어느 순간 홀연히 무림에서 증발했다고 되어 있소. 그래서 그 원인은 모르오.”
“…….”
“그리고 그 회고록이 아닌 혈무림전(血武林傳)이라는 고서에서 본격적으로 검마 서문대룡의 이야기가 나타나오. 검마 서문대룡은 명룡자의 회고록이 쓰여진 후 십여 년 후, 광검마가 되어 무림에 출현했으며 제일 먼저 해남파(海南派)를 공격해서 멸문시켰소. 그리고 일 년 동안 구파일방을 돌아다니며 모조리 학살을 저질렀고 오대세가와 군소방파는 물론이고 황궁의 철기병 일만 구천여 명을 하룻밤 만에 전멸시켰소.”
“……!!”
“그 이후 황궁에 쳐들어가서 금의위를 전멸시키고 황제 주후총의 얼굴가죽을 산 채로 뜯어내어서 제 얼굴에 쓰고 다녔고 황제는 머지않아 사망했소. 또한 기분내키는 대로 수만여 명을 죽이고 다녔소. 그는 마지막으로 무림의 패자(覇者)였던 백련교를 공격하여 교주와 호법사자와 일대결전을 벌였으며 그 승패는 전해지지 않는다고 되어 있소.”
“무, 무슨….”
“그 당시에 중원무림이 초토화당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무맥(武脈)이 끊겼으며 후대의 무공이 크게 약화되었소. 그리고 우리 서문세가는 흉수인 검마 서문대룡을 배출한 대가로 무림에서 추살당했고 필사적으로 추적을 피하여 간신히 생존해왔던 것이오.”
서문공백은 씁쓸하게 말했다.
“…이 시대에 절대지경 고수는커녕 초절정고수도 거의 존재치 않는 현실도 아마 그 때문이겠지.”
나는 서문공백의 말을 들으면서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검마의 무공이 그 정도로 막강해질 수 있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지금의 행보는 너무나 피에 미친 살인마 그 자체였다. 내가 아는 검마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멸망시키고 피칠갑을 하며 인간의 얼굴가죽을 산 채로 벗길만한 위인이 아닌 것이다. 필요가 있다면 행하겠지만 절대로 그런 잔혹한 행위를 즐기는 자가 아니다!
그러자 서문공백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홍길동이 입을 열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내가 알고 있는 것 같구려.”
“정말인가?”
“그렇소. 나는 그 당시에 약 삼백오십 세였고 등선한지 얼마 안 된 신선이었소. 그래서 지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할 임무를 받았었고 당연히 검마 서문대룡의 만행도 직접 지켜보았지.”
“…지금 서문공백이 한 말이 전부 사실이란 말인가?”
“사실이오. 도리어 기록이기 때문에 담백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 내가 보았던 그 자는 진정한 혈귀(血鬼)였소. 그는 절대로 사람을 베어죽이는 일을 멈추는 법이 없었소.”
“…….”
대라신선 홍길동까지 인정한다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외우주의 세계에서 검마 서문대룡은 정말 피에 미친 살귀가 되어서 무림을 반쯤 멸망시켰던 것이다!
‘검마가… 서문혜를 잃은 것만으로 그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다니.’
내가 당혹해하고 있을 때 홍길동이 말을 이었다.
“필설로 형용하기보다는 내가 보았던 그 당시의 일을 직접 보여주는 게 이해하기 쉬울 것이오.”
“보여준다고?”
지잉
홍길동이 영력을 집중시키자 그의 손 위에 웬 새빨간 거울이 나타났다.
“이 혈비경(血緋鏡)을 쓰면 충분히 가능한 일.”
츠아아아 -
보패 혈비경이 새빨간 빛을 내뿜자 그 빛이 허공에 커다란 화면을 만들어 내었다. 그 화면은 마치 현실감 있게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으며 1인칭 시점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게 보였다. 그걸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서문공백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VR을 빔프로젝터로 보는 것 같군….”
“현세의 말은 이해하기 힘들군. 어쨌든 이 혈비경은 내 과거의 기억을 시각화하여 남이 볼 수 있도록 띄워줄 수 있는 공능이 있소. 이걸 보면 과거의 검마가 어땠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오.”
“흠….”
“혈무림전의 뒷부분인 백련교와의 전투. 그건 역사서에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나 내가 직접 보았던 걸 그대로 옮겨드리겠소.”
우우우우
혈비경의 화면이 점점 더 크고 선명해졌다. 그리고 이윽고 마치 그 당시의 홍길동이 되어서 관찰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사도여. 최선을 다해 보여드릴 테니 이로써 노여움을 푸시길.”
붉은 게 있다.
그 붉은 것은 ‘점’처럼 보였고, 이윽고 천천히 크기가 커졌다. 그리고 서서히 그 자의 모습이 사실은 전신에 피칠갑을 한 어떤 사내의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한 손에는 귀기어린 한 자루의 검(劍)이 들려있는 게 보였다. 다만 검 또한 온통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어서 원래의 외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보고 있는 나는 이게 천계의 신선 홍길동의 시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아주 먼 거리에서 천리안(千理眼)의 술법으로 염탐하고 있는 중이리라.
촤아악!!
혈염(血炎)과 같이 피분수가 번져나온다. 그와 동시에 붉은 사내의 근처에 있던 수십여 명의 인간들이 동시에 목이 베여서 둥실 떠오르는 게 보였다. 인간들의 손에는 병장기가 들려있었고 희미한 강기(罡氣)가 맺혀 있었기에 그들이 검하고혼(劍下孤魂)이 되기 전에는 상당한 고수들이었음을 의미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있던 붉은 사내의 입에서 알 수 없는 괴음이 흘러나온다. 그의 얼굴과 머리카락 또한 피로 잔뜩 젖어서 도저히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고 수염이 잔뜩 나 있었다.
우우… 우우우….
절대 이성 있는 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그 사실에 섬뜩함을 느끼고 있을 때 육합전성이 천하에 울려 퍼졌다.
[검마 서문대룡이여. 네 운명이 핏빛으로 물든 것이 백련교의 업보는 아닐 것이다.]
우우우….
[업보가 아닌 곳에 업보를 물으러 온 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둥실 하고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익숙한 얼굴 - 백련교주(白蓮敎主) 독고운천(獨孤運天)이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고, 그런 백련교주의 무공 또한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별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확고한 심천무량!
‘…응? 보통 싸우기도 전에 저걸 미리 전개했던가?’
내가 독고운천의 모습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 있을 때 백련교주 곁으로 날아온 어떤 자가 외쳤다.
“교주!! 조심해야 하오! 저 놈은 진정… 악마요!!”
피 끓는 목소리로 외치는 그 자의 얼굴에는 커다란 칼자국이 나 있었으며 심지어 그 칼자국이 죽 길게 그어져있어서 한쪽 눈이 애꾸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자의 흉측한 몰골보다는 그 얼굴이 내가 아는 얼굴이었기에 순간적으로 황당했다.
“……?!”
이… 이청운?!
이어진 독고운천의 말은 나를 더욱 어이없게 만들었다.
[뇌신류 호법사자 이청운이여. 남은 교인들을 데리고 대피하라고 말했을 텐데 내 명령을 거역하는 것인가?]
“어차피 당신이 죽으면 백련교는 여기서 끝이오. 다른 이에게 유지를 맡겼으니 나는 여기서 한백령과 독고준의 원수를 갚겠소.”
[…….]
“하는 김에 내 한쪽 눈의 원수도.”
독고운천은 잠시 허공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끝까지 함께하는 게 한때 최대의 호적수였던 그대라니 공교로운 노릇이군. 마음대로 하라.]
“알았소!”
파지지직!!
뇌신지혼(雷神之魂)
다음 순간, 이청운의 몸에서 뇌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전신이 번개처럼 변했다. 나는 그 모습이 생전의 이청운이 즐겨 쓰던 뇌신지혼 그 자체라는 걸 알아챘기에 경악하고 말았다.
[내가 방어를 맡겠다.]
“후! 그럼 내가 공격을 하겠소.”
후와악
동시에 심천무량의 거대한 원이 사방을 감싸는 방어막 형태로 전개되었고 이청운은 뇌기를 전신에 응축해서 최대한 체내에 가두는 듯 했다. 저것은 틀림없이 뇌신지혼의 힘을 한 곳에 모아서 일점에 집중한 공격을 하려는 게 분명했다.
‘세, 세상에….’
설마 저 두 사람이 손을 잡다니?!
절대지경 심천무량과 뇌신지혼이 힘을 합치는 경우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내가 경악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알 수 없는 괴음만 흘리고 있던 ‘붉은 사내’가 서서히 자신의 얼굴을 들어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위대한 자여… 제물을… 바치나이다…. 계약대로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터이니….”
붉은 사내의 검이 서서히 빛나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사내 - 검마(劍魔) 서문대룡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꿰매어져 있는 두 눈.
시꺼먼 실로 꾸깃꾸깃 꿰매진 상처의 틈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오자 피눈물이 그의 뺨으로 흐르는 듯 했다. 이윽고 그는 마치 지옥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절규를 내뱉었다.
“부디 제 딸을… 살려주십시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