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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제갈현의 말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뇌신기 인드라를?”
아니, 전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는 게 맞는 말이리라. 그만큼 지금 제갈현의 제안은 내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제갈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훗하고 웃으며 자신의 말에 부연설명을 했다.
“간단한 얘기요. 나는 지금 그저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데, 그런 내가 신이 되기 위해서는 원래 어떻게 해야하겠소?”
“음…. 신이라….”
나는 신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여행경험으로 얻었던 지식으로 대충 이야기해보았다.
“백련교주와 망량선사의 말로는 융합의 경지를 수련해서 혼돈의 신성(神聖)을 얻어야 한다고 했소.”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그거지. 하지만 내게 설령 그럴만한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장 당신이 한달 후에 되돌아가는 이 시점에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오. 그렇다 해서 신선이 되려고 해봤자 그들은 진정한 신에게 아득히 미치지 못하는 정신체에 불과하니 내 목표에 비하면 무척 떨어지지.”
제갈현이 씩 하고 웃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기억을 되새기던 중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오.”
“또 다른 방법? 그게 뭐요?”
“바로 신(神)과 직접 계약하여 그 신의 힘을 직접 받아들이는 것! 신력(神力)이 별개의 수련 없이 가장 직접적으로 내게 부여될 것이며 가장 빠르고 확실하오. 다만 이 방법을 쓰고자 한다면 사도나 화신이 되어야하는데 그러려면 충분한 인신공양과 제물, 그리고 자격이 필요하오.”
“음…. 설마 [옛 지배자]와 계약하는 대신 사대신기와 계약해서 신기의 신력을 얻겠다는 말이오?”
“바로 그것이오.”
제갈현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당신의 기억 속에서 가장 강대한 사대신기는 바로 뇌신기 인드라! 그 힘을 얻는다면 나는 오래지 않아 하급 신의 지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
“본디 봉인되기 전 인드라의 힘은 삼황과 맞먹을 정도였으니 충분히 그렇지 않겠소.”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 그런데 인드라는… 무척… 성깔이 드럽소. 그래도 괜찮단 말이오?”
이게 문제다.
인드라는 아직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내 명령따윈 아예 듣지 않는데다가 황제와의 결전에서 내 뒤통수를 친 경력까지 있었다. 제갈현이 내 기억을 봤다면 차라리 바루나나 바유를 계약하려고 하지 난폭한 뇌신과 계약하려는 게 말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갈현이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죽으면 그냥 내 운이라 생각하겠소. 당신 탓할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음. 뭐 그렇다 칩시다. 근데 사실은 나도 인드라의 힘을 언젠가 써야하니 당신에게 다 줄 수는 없소만….”
“그건 당연하오. 내가 원하는 건 뇌신기 인드라와의 가계약이오.”
“가계약?”
“나는 인드라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할 것이고, 인드라는 그걸 대가로 일시적으로 내게 힘을 부여해주는 형식이오. 당연히 당신이 걱정 안 해도 나는 정통한 사대신기의 계승자가 아니니 인드라의 힘을 다 얻을 수도 없을 것이고. 나는 가계약한 신력의 흔적을 이용해서 신이 되려는 것이오.”
“흠…. 하지만….”
“부탁하오.”
간절한 제갈현의 말에 나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제갈현의 말대로 해도 상관없겠지만 그가 무척 걱정되었다. 인드라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미친 새끼였기 때문에 도저히 일개 인간과의 교섭에 응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언컨대 인드라가 그냥 벌레 죽이듯이 제갈현을 지져죽일 확률이 9할9푼이었다. 본디 바루나나 바유 같은 유순한 사대신기들도 인간을 깔보는 기색이 강한데 인드라야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에이…. 그렇지만 그 외에는 제갈현을 신으로 만들 방법이 보이지 않는군.’
본인이 생각한 계획을 본인이 책임지겠다는데 더 나서봤자 오지랖일 것이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렇게 하지. 그럼 어떻게 해야 당신과 인드라를 가계약시켜줄 수 있겠소?”
“다시 숭산의 천제단으로 가주시오.”
“응? 천제단?”
“당신의 전생 도중에 시도하지 않은 행위가 있었지. 일단 갑시다.”
“알았소.”
파앗
나는 제갈현과 함께 숭산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제갈현이 곧장 천제단 위에 섰고 내게 같이 올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잠시 후 둘 다 위에 올라가자 그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마침 잘 된 거요.”
“제물은 뭘로 하면 되겠소?”
“의천검의 잔여마력을 제물로 바쳐 사대신기를 [신]으로써 소환하면 되오.”
나는 그의 손을 잡은 상태에서 깜짝 놀라서 말했다.
“……?! 그런 게 가능하다고?”
“가능할지 어떨지는 모르오. 하지만 생각해보시오. 사대신기 또한 신기가 되기 전에는 우주의 네 기둥을 이루는 강대한 정령신이지 않았소? 그들 또한 정해진 의식에 따른다면 천제단에 [지배자]로써 소환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지.”
“으음…. 너무 모험같소.”
지금까지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뭔가 저지른 적은 많지만 지금 제갈현의 한 수는 완전히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소환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소환된 인드라를 설득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신이 될 방법은 이것밖에 없소. 제발 부탁하오.”
“…….”
나는 힐끔 뒤편에 서 있던 공공에게 말했다.
“공공이여. 의천검의 마력을 제단에 넣을 테니 의식을 진행해 주시오.”
[알았다.]
우우우우
잠시 후 공공이 주문을 외우며 영기를 불어넣었고 소환의 의식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빛이 강해지자 내 손을 잡고 있던 제갈현이 말했다.
“지금이오. 사대신기를 염상(念想)하며 뇌신 인드라를 부르시오!”
나는 눈을 꾹 감고 사대신기의 공간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곧장 네 개의 원 중에서 뇌신 인드라가 있는 위치를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인드라!! 제물을 바칠 테니 제갈현과 가계약을 맺어다오!”
…….
잠시동안 침묵이 감돌다가 인드라의 좌(座)에서 험상궂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이 아니라 다른 잡놈과 계약하라고?]
“그… 그래! 제갈현이 직접 너를 지명했다!”
[…웃기는군…. 크크크.]
인드라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어디 그 배짱을 봐서 몇 마디 정도는 해 주지….]
“응?!”
[간다.]
파지직!!
잠시 후 나는 현실세계로 되돌아왔고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어마어마한 뇌광(雷光)을 뿜어내는 신기, 바즈라가 소환되는 게 보였다. 소환된 바즈라는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엄청난 속도로 먹어치우는 듯 시꺼먼 기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웅웅
공명이 울린다. 그리고 번쩍거리는 바즈라에서 거대한 신의 말이 울려퍼졌다.
[제갈현이여. 딱 한마디만 들어주겠다. 그 한마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너는 타죽을 것이다!]
“…….”
제갈현은 예상했다는 듯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와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강하게 외쳤다.
“인드라여! 나는 [큰 굴레]를 돌려 당신의 봉인을 풀어줄 수 있소!”
엥?!
무, 무슨 소리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제갈현의 한 마디에 나조차도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인드라 또한 놀란 건 마찬가지인지 잠시동안 공명이 멈추었다. 그러더니 인드라가 말했다.
[어떻게?]
그러자 제갈현이 인드라 쪽으로 자신의 손을 쭉 하고 뻗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여긴 보는 눈이 많으니 당신과 일대일로 이야기하고 싶소! 나를 정신세계로 초대하시오.”
[좋다…. 헛소리라면 바로 죽이겠다!]
파지지직
“……!!”
다음 순간 제갈현의 몸이 번개로 변하더니 신기 바즈라를 향해 솟구쳐서 빨려 들어갔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나는 황당할 지경이었는데 도저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조차 가지 않았다.
‘대체 무슨?’
제갈현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한참 후 바즈라가 진동(振動)하기 시작했다. 강렬한 음파를 뿜어내던 바즈라는 일순간 천지를 백색으로 물들이는 무시무시한 뇌광을 뿜어내었고, 동시에 인드라의 앙천광소가 들려오는 듯 했다.
[흐하하하하!! 그거 재밌겠구나!]
치지지직….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바즈라는 어느 새 제갈현의 손에 잡혀 있었다. 다만 평소처럼 강대한 번개의 기운은 없이 평범한 금강저의 형태였으며 대신에 제갈현의 전신에 마치 뇌신지혼이라도 쓴 것처럼 뇌전의 힘이 백색으로 튀어오르고 있었다.
“크으으으윽…!!”
제갈현의 피부에서 연기가 흘러나오며 마치 피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그는 극렬한 고통을 참아내려 하다가 선 채로 기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고,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며 비틀거리며 제자리에 섰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가계약에 성공했소. 한동안 바즈라는 내가 쓰겠소.”
“……!!”
성공했다고?!
나는 정말로 자기가 원한 것을 이뤄낸 제갈현의 모습을 보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성공확률이 없어 보이는 도박을 성공해낼 줄이야! 나는 당황해서 제갈현에게 말했다.
“대체 인드라에게 어떤 이야기를 한 것이오? 그 난폭한 놈을 설득할 줄이야….”
“별 거 아니오. 인드라가 봉인된 것은 [큰 굴레]의 과거에 있었던 일이니 다시 말하자면 [큰 굴레]를 바꿀 수만 있다면 현재 신기가 되어버린 인드라의 봉인이 바로 풀려버린다는 뜻. 나는 그 방법을 제시한 것뿐이오.”
“[큰 굴레]를 바꾼다고? 대체 그 방법이 무엇이오!”
“…….”
제갈현은 힐끔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여긴 보는 눈이 많소. 우선 서문공백에게 검마의 비사를 듣고 오면 얘기해주겠… 쿨럭.”
갑자기 제갈현이 입에서 울혈을 토해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를 진맥했는데 혈맥이 고갈되었고 근육이 전기에 타버린 듯 했다. 아무리 인드라가 봐줬다고는 하지만 그 뇌전의 여파만으로도 반죽음 상태가 되어버린 게 분명했다. 나는 급히 제갈현에게 내공을 불어넣으며 임시로 치료했고, 옆에 있던 공공에게 말했다.
“기절해버린 것 같은데 혹시 치료술법을 쓸 수 있소?”
[지금 내가 쓸 만한 술수는 없다. 그 인간의 안위가 걱정된다면 일펜레드 종족에게 치료해달라고 부탁하겠다.]
“일펜레드?”
공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래 봬도 인간 따위의 의술보다는 수천 년 앞서있는 종족이다. 그 인간을 잘 치료해줄 거라 생각한다.]
“알았소. 부탁하오.”
파앗
나는 곧장 서문공백에게로 향했다. 그리고는 곧장 검마의 비사를 들으러 가기로 했다.
“서문공백은 어딨지?”
“아! 백웅 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군용차에 탔다.
시간낭비를 피하려는 적절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순간 나 자신에게 놀라서 멈칫했다.
‘음... 내가 너무 냉정한가?’
왜인지 모르지만 나는 내 행동이 차갑다고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본디 망량이 저 정도로 부상을 입었다면 그가 나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치유과정을 돌봐줄 것인데, 왜인지 제갈현에게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동일인이긴 하지만 외우주의 인간이기에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끼이익
“다 왔습니다.”
나는 복잡한 심경을 추스리며 이윽고 군용차에서 내려서 서문공백의 관사로 들어갔다. 그는 사령관답게 5층짜리 저택을 통째로 개인용 관사로 이용하고 있어서 꽤나 으리으리했다. 군인들에게 안내받아 5층에 있는 서문공백 사령관의 방으로 들어가자, 그는 의자에 앉아서 오래된 고서(古書)를 읽고 있었다.
서문공백은 안 쓰던 안경을 쓰고 있었고, 한 손가락으로 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오셨군.”
“그 동안 별 일 없었소?”
“그대가 우리의 강적을 송두리째 토벌해주었는데 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소? 다른 전선(戰線)에서 강대한 외계인세력을 격파했다는 승전보를 전해 들었소. 이로써 중원대륙에 있던 외계인 세력의 7할이 사라진 셈이오.”
서문공백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내 앞에 와서 큰절을 했다.
“이 서문공백은 동북아 해방군 사령관으로써 진심으로 대영웅께 감사하나이다!”
헉?!
나는 뜻밖의 행동에 당황해서 그를 급히 일으켜 세웠다.
“대영웅은 무슨… 나도 내게 이득이 되는 일이니 했을 뿐이오. 날 부담스럽게 하지 마시오.”
“허어…. 정녕 감사한 마음뿐이오.”
서문공백은 주륵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신의 눈물을 쓱 닦으며 말을 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소도를 들고 총을 든 군인에게 맞서는 듯한 그 무력감…. 이쪽 병력은 수만이 죽어나가는데도 외계인들은 한 명도 죽이지 못했던 그 때의 무력함을 생각하면… 백 번 죽어서라도 이 은혜를 갚고 싶소.”
아무래도 이 세계의 인간은 정말 외계인에게 많이 당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게 바로 말세라고 생각하며 나는 서문공백에게 말했다.
“아무튼 나는 검마의 과거사를 들으러 온 거요. 그걸 알려줬으면 하오.”
“물론 알려드려야지. 나는 우리 서문세가의 과거 기록을 하나도 남김없이 밤을 새서 찾아보았소. 그리고 과거 검마 서문대룡이라 불렸던 선조의 과거사를 다 알아냈소만….”
서문공백은 말꼬리를 흐리더니 갑자기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건 마치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
왜 저래?
“뭔가 문제라도 있소?”
“그게… 그… 으음… 우욱.”
나는 서문공백이 아무 말도 못하지 못하는 게 뭔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왜 저러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이윽고 한 가지 이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누군가 있다.
‘서문공백을 속박술로 제어했어.’
스스스
나는 그 순간 절대지경의 의념천주로 확장된 제육감으로 아주 짧은 순간의 위화감을 간파해냈다. 그리고 [무언가]가 이 방 안에 있다는 걸 알아챘고, 그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누구냐.”
저벅
“위대한 삼황오제의 사도를 뵈오.”
마치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무언가가 걸어나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서문공백이 앉아있던 뒤편의 서재에서 홀연히 나타난 그 존재는 학창의(鶴氅衣)를 입고 있었으며 강렬한 선기(仙氣)를 내뿜고 있었다. 또한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상당한 힘을 지닌 보패가 틀림없어보였다.
‘뜬금없이 나타난 놈이 내가 사도라는 걸 알고 있다면….’
이미 동네방네 소문이 다 퍼진 건가?
“헉! 너는….”
하지만 나는 잠시 후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곤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아시오?”
“…….”
나는 도저히 이게 무슨 일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는 황당함을 최대한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호, 홍길동(洪吉同)?!”
그러자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 사도께서 내 정체를 일견에 간파하시다니 대단하오. 그것도 천계에 등선(登仙)하기 전의 이름을.”
틀림없다!!
눈앞에 있는 건 홍길동이다!
율도국왕이자 십이율의 대장로이며 절대지경의 고수인 그 놈이 어째서 신선처럼 보패를 들고 떡하니 내 앞에 나타나있단 말인가?!
“드, 등선? 설마 신선 중에서도 대라신선인가?”
“그렇소.”
대라신선 홍길동이 진중한 얼굴로 내게 포권하며 말했다.
“이 홍길동, 귀하를 곤륜성으로 모시고자 천계의 대선(大仙)을 대표해서 찾아왔소. 부디 초대에 응해주시길….”
“…….”
“귀하께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이 인간도 건드리지 않았소.”
나는 멍하니 있다가 문득 검을 들어서 홍길동을 공격했다.
무량단(無量斷)
투확!!
섬전같은 일격이 홍길동을 찰나지간에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검 끝에 걸리는 느낌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아차렸고, 전혀 엉뚱한 곳에 모습을 드러낸 홍길동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삼황오제의 사도가 무예의 초고수라니 예상치 못한 일이구려. 보패 혈비경(血緋鏡)의 힘이 아니었다면 절대 피해지 못했겠군.”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시뻘건 거울이 웅웅거리며 울리고 있었다. 저게 바로 혈비경이라는 보패일 것이고 무량단을 피할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리라.
“…갑자기 공격해서 미안하군. 확인해볼 게 있었다.”
“원하는 걸 확인하셨소?”
“…….”
나는 검을 검집에 넣으며 생각했다.
‘이런 제길. 황당하군….’
틀림없다.
방금 저 놈은 무공을 전혀 쓰지 않았다. 절대지경의 무량단을 상대로 놈의 독문절기를 전혀 쓰지 않고 그저 순수한 술법만 사용했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쓰지 않은 게 아냐…. 처음부터 무공을 모르는 거야.’
홍길동 저 놈은 인간일 때부터 무공을 익히지 않은 순수한 술법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