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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이걸로 칠요 중 일요를 제외한 육요(六曜)를 다 모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손위에 있는 금요를 보면서 약간 옛날 생각에 잠겼다.
‘설마 뜬금없이 외우주로 나와서 다 모으게 될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단시간에….’
사실 처음에는 나일라토프의 의뢰만 수행하고 재빨리 원래 세계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내 직감이 잘만하면 칠요도 모을수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실패하거나 다 못모으면 그냥 포기할 생각도 강했는데 어쩌다보니 다 모으게 될 줄이야!
이로써 전생 두 번째로 칠요의 시련에 도전할 자격이 갖춰진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기에 곰곰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대조영, 공공. 내가 당신들을 기만한 셈이 되어서 미안하오. 하지만 내 얘기를 좀 들어주겠소?”
“…….”
[말해라.]
어찌되었든 그들은 일단은 내 말을 들어주려는 듯 했다. 나는 그들의 눈을 쳐다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오랜 시간 복희 님의 명에 따라 큰 굴레의 흐름을 바꿀 한 차례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은인자중하며 힘을 모았소. 그리고 알다시피 이런 말세(末世)에 어중간한 술법의 힘은 무의미하고 가장 강력한 패로 쓰일 수 있는 것은 신력(神力)! 그래서 나는 수천 년 동안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에 존재하는 신의 유물을 찾아서 신력을 흡수해왔던 것이오.”
그러자 대조영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유물에서 신력을 흡수하는 건 가능한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네 정도의 수준으로 힘을 얻는 게 가능한 것인가? 자네의 신력은 얼핏 보아도 마치 신격 하나를 통째로 잡아먹은 것 같은데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세.”
역시 대조영은 신력에 관해서 박식한 듯 했다. 그래서 그의 통찰 또한 묘하게 핵심을 찌르고 있는 것 같았으며 나는 움찔했다. 하지만 나는 기죽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기연(奇緣)이 있었소. 당신 말대로 동방의 고대신 중 하나의 유체를 통째로 먹어치울 기회가 있었지.”
“……!!”
비교적 솔직히 이야기해서일까? 대조영은 내 말의 진위를 판단하지 못하고 헷갈려하는 듯 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또한 그 힘을 이용해서 원래 지니고 있던 전욱의 신력을 강화시켰던 것이오. 세상에 나같은 방식으로 신력을 강화시킨 예가 없기에 잘 설명이 되지않을 수도 있겠군.”
“아니…. 이해했네. 그렇다면 가능한 일이긴 하지.”
그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공공이 눈을 번뜩거렸다.
[나는 납득치 못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너는 어찌 복희의 부활을 시도하거나 복희의 신력으로 전환하지 아니했는가? 당연히 네 종사(宗師)의 힘을 손에 넣어야 할 터인데 원수나 다름없는 전욱의 힘을 얻고 사도가 되어 가랑이 밑으로 기어들어가다니!]
“스승께서 용납하신 일이오. 도리어 그게 명이었소.”
[무엇이?]
“아직도 모르겠소?”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이 말세에서 과거 삼황오제간의 은원관계는 더 이상 중요치 않소! 세상의 종말이 코앞에 다가와있고 황제는 이미 적수를 다 제거했단 말이오. 중요한 건 황제를 칼로 찌르는 것이지 어떤 칼로 찌르느냐가 아니라는 걸 정녕 모르겠단 말이오?”
[…….]
“내게 있어서 칼로 찌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바로 전욱의 칼을 얻는 것. 비교적 황제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전욱의 신뢰를 얻어야만 황제를 없앨 기회가 생기는 게 아니겠소.”
[아무리 그래도 과거의 숙적에게 굴복한다는건….]
“황제 공손헌원은 조건만 갖춰지면 당장 내일이라도 세계의 종언을 고하려 할 것이오. 우리는 절벽 끝에 서 있으며 황제의 승리, 그것만은 막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란 말이오. 난 그걸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소!”
[으, 으음….]
공공은 생각지 못했던 얘기였는지 당황하는 듯 했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힘겹게 말했다.
[도저히 너라는 자의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네 말은 일리가 있지만 대체 네가 어떤 존재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가늠해서 무엇하려 하오? 어차피 우리는 필요에 따라 손을 잡은 관계이고,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나를 떠나면 그만이오.”
[…….]
“붙잡지 않을테니 떠날테면 떠나시오. 지금 했던 이야기는 최소한의 의리일 뿐.”
내가 다소 강하게 나갔지만 공공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에도 말했듯 나도 황제가 어떤 음모를 꾸몄는지 알고 싶다. 일단은 끝까지 가겠다.]
“좋소. 앞으로 더 이상 이 얘기를 하지 않겠소.”
[알았다.]
공공과의 관계를 매듭짓자 대조영이 입을 열었다.
“다 좋다고 치지. 그래서 이젠 어찌할 셈인가? 육요를 다 모았으면 다음에 뭘 할지도 미리 정해두었을 터.”
“음….”
대조영의 말대로 뭘 해야할지는 명확하다.
‘삼황오제의 회의공간을 여는 것! 그리고 그 공간에 초대된 황제 공손헌원을 삼제와 함께 암살하는 계획이 있지.’
이제 회의공간을 여는 선결조건으로 육요를 다 모았으니 적당한 천제단에 가서 의식만 시행하면 끝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오. 그리고 인류 해방군을 좀 더 도와줄 필요가 있으니 나를 따라서 외계인을 토벌하는 일에 동참해 주시오.”
나일라토프의 남은 의뢰를 수행해서 언제든지 일이 꼬이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동시에 인류해방군을 도와주면서 혹시나 내가 잘못한 게 없는지 되짚어볼 시간이 필요했다. 대조영과 공공에게 굳이 변명을 한 것도 사실은 그들이 내 일을 도와줄만한 동료들이기 때문이었다.
“흠…. 이제와서 굳이? 그들을 구해준다 하여 대세는 눈꼽만큼도 바뀌지 않거늘.”
“……?”
대조영의 반문에 나는 약간 황당한 기분이 들어서 말했다.
“무, 무슨 소리요? 외계인들이 처참하게 인신공양을 하고 각지의 인간들을 학살하는 상황이 아니오? 당연히 도와줘야지.”
“어차피 종말이 오면 다 죽은 목숨이 아닌가. 자네가 대의(大義)를 수행하는 자라면 그런 사소한 인정 때문에 시간과 힘을 낭비해서는 아니된다 생각하네.”
“…….”
“복희의 유언을 받들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모아 황제를 찌를 칼을 만들려는 게 아닌가. 칼날이 무뎌지게 하는 건 대의의 실행을 거스르는 일일세!”
도리어 강변하는 대조영의 모습에 나는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똑같다.’
대조영에게서 백련교주와 제갈유룡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다.
사소한 인정(人情)보다는 대의(大義).
인간의 생명보다는 세계구원.
더욱 거대한 정의를 위해서 인간적인 가치를 포기하는 행위는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대조영 또한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을 구하려고 발버둥쳐온 영웅이기는 마찬가지이니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잠시 할말을 잃고 대조영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해줄 말은 공공과 같소. 강요하지 않을테니 내 행동이 마뜩찮으면 떠나도 좋소.”
“뭐라!”
대조영이 당황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인간의 생명을 사소하다고 여기는 생각에 맞춰줄 수는 없어!’
대조영이 지닌 신력의 근원과 그의 내력을 파악하지 못하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렇다 해도 억지로 그의 비위를 맞춰줄 생각은 없다. 신념이 다른 자에게 억지로 맞춰줄 때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못할 말을 했다 생각진 않네.”
대조영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지만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나도 마찬가지요. 인간을 구하는 일이 잘못된 일이라 생각지 않소.”
“이토록 원대한 계획을 실행하는 자가 너무 무르구나.”
“멋대로 생각하시오.”
그러자 대조영은 한숨을 쉬었다.
“알았네. 끝까지 돕겠네.”
어떻게든 둘은 다시 동료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메피스토를 통해서 오악의 천제단 위치를 하나하나 살폈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화산과 항산을 제압했으니 다음은 숭산(崇山)으로 가겠소.”
파앗!!
잠시 후 숭산에 도착하자 메피스토의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숭산에 주둔하는 외계종족은 3티어의 일펜레드 종족입니다.]
“…이상하군.”
나는 저 먼 발치에 있는 산에서 진을 치고 있는 ‘일펜레드’ 종족을 화안금정으로 관찰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저 놈들은 인간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거지?”
일펜레드 종족은 이족보행이었으며 팔도 멀쩡히 두 개 였으며 다안족(多眼族)도 아니었다. 아니, 생긴 것만 보면 그냥 인간 중에서도 백인(白人)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었다. 인간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저 날개였고 휘황찬란한 한 쌍의 비익(飛翼)이었다.
즉 날개달린 인간!
‘머나먼 우주에서 왔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사마령 교수에게 듣기로 이 우주는 너무나 넓기에 인간족과 비슷하게 생긴 외계종족은 없다고 봐도 좋다고 했다. 왜냐하면 행성마다 주어진 자연환경과 조건이 천차만별이었기에 인간족과 유사하게 진화할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낮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저런 식으로 인간과 거의 똑같이 생긴 종족을 보게 될줄은 몰랐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공공이 말했다.
[그럴만도 하지.]
“공공. 저 일펜레드 종족을 아시오?”
[그렇다. 저 자들은 우리 거신족(巨神族)의 분파(分派)이니까.]
“……!!”
거신족?
내가 놀라자 공공이 말을 이었다.
[이상할게 뭐가 있지? 본디 인간족은 우리 거신족의 형상을 본따서 이족의 손으로 빚어진 하위종족이다. 저 일펜레드는 거신족의 분파이긴 하지만 그래도 거신족의 피가 제대로 흐르는 방계들이지. 생김새가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그렇군.”
인간 자체가 거신족을 본따서 만들어졌기에 진짜 거신족의 방계와 모습이 비슷할 확률도 있는 것이었구나!
[백웅이여. 말이 나온 김에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무슨 부탁이오?”
[저 자들은 학살하지 말고 교섭을 해 달라.]
공공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저들은 어찌되었든 고대신을 섬기는 자들이며 극악한 성향이 아니다. 단순히 혼돈스러운 악이라 생각하여 학살하기에는 찝찝하다.]
“음…. 알았소!”
방계 거신족이라면 공공의 말대로 해볼 여지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공과 함께 일펜레드의 본진을 향했다.
[누구냐!]
경비병으로 보이는 일펜레드의 비익족 병사들이 우리에게 창처럼 생긴 병기를 겨누며 가로막았고 공공이 대답했다.
[나는 위대한 염제의 후예이자 거신의 장로인 공공이다. 너희의 지휘관을 만나고 싶다.]
[잠깐 기다리거라!]
잠시 후 병사들이 우리를 둘러싸며 어디론가 안내했고, 그 장소는 바로 숭산의 천제단이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나는 그 장소에서 승려들이 염불을 외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응?!”
틀림없다. 저 수십여 명의 승려들은 가사를 갖춰입고 있는 소림사의 승려들이다!
당연히 외계인들이 천제단을 장악했다면 인간들이 모두 학살당했을 줄 알았는데 살아있기에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승려들이 염불하는 장소를 지나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강대한 비익족이 나타났다.
그 비익족은 한눈에 봐도 상당히 강한 영기와 신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심한 힘이 그 자의 날개에 맺혀있었으며 사악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 비익족 지휘관은 공공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공공에게 무릎을 꿇었다.
[헉! 정말이었구나….]
[잘 지냈나?]
[장로님! 오랜만에 뵙니다.]
공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펜레드의 족장이여. 내 권위를 인정해주어 감사하노라.]
[어찌 그런 황송한 말씀을…. 거신족의 위계에서 저와는 비교도 되지 않으시는 고귀한 분이시지 않습니까.]
일펜레드의 족장은 공공을 크게 존중하는 모양이었다. 공공은 간만에 대우를 받자 기분이 좋은 듯 슬며시 웃다가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을 하게 되어 미안하네만 이 천제단을 포기하고 본성으로 떠나주게.]
[…어째서입니까?]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이 천제단이 꼭 필요하네. 그렇다고 거신족의 일원인 그대들을 학살할 수도 없으니 점잖게 해결하고 싶군.]
[으음….]
그는 난처한 듯 고민하다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떠날 수 없습니다. 대신 이 천제단이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쓰게 해 드리지요.]
그러자 공공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떠날 수 없다? 이유라도 듣고싶군.]
[종말이 코 앞에 닥쳐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상관이지?]
[모든 권세있는 은하계의 종족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지구에서 벌어질 거대한 강림(降臨)이후에 우주의 판도가 뒤바뀔 것이리라고…. 그 거대한 사건에서 한 자리라도 차지해야만 자신의 종족이 노예로 전락하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게 아닙니까.]
[…….]
[저 또한 종족의 명운을 걸고 상위종족의 힘을 얻기 위해 이 지구에 왔습니다. 일족의 미래가 걸려있으니 양보하지 못합니다.]
나는 일펜레드 족장의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구나.
‘그렇구나. 우주의 수많은 외계종족들이 지구를 침략하는 이유는…. 종언의 의식이 벌어질 때 자기들에게 떡고물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서였어!’
동시에 나는 외계인들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종언이 이뤄질 때 지구가 통째로 [옥좌]에 흡수당하고 다 죽을 텐데 지구에 와 있으면 지들도 죽을 거 아냐? 대체 무슨 근거 없는 생각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일펜레드 족장이 무척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왜 알아서 빨리 죽으려고 안달이 난 것일까?
‘벌레같은 새끼들….’
이뤄지지도 못할 허상같은 꿈 때문에 인간들을 괴롭히다니!
하지만 어찌되었든 말로 좋게 끝내기로 약속을 했기에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일펜레드의 족장이여. 사실 곧 대신격들이 부활하여 지상에 있는 모든 잡스러운 존재들을 쓸어버릴 예정이오. 당신들을 배려해서 떠나라고 하는 거요.”
[아니? 당신은 누구요.]
“나는 백웅, 삼황오제의 공동사도요.”
우웅!
[허억…. 세 개나 되는 인(印)이…!!]
내 손바닥에 새겨져 있던 전욱, 소호, 제곡의 각인을 보여주자 상대는 크게 경악하는 듯 했다. 나는 손바닥을 움켜잡아 힘을 거두고는 말을 이었다.
“내 말이 거짓이라 생각하면 한바탕 싸워도 좋소. 나는 싸움도 별로 싫어하진 않는 편이니까.”
[…….]
“하지만 내 동료인 공공과 혈연이 있는 자들이니 공공의 말대로 기회를 주는 것이오. 뭐, 떠나지 않겠다면 여기 남아서 내 일을 도와줘도 괜찮긴 하오.”
[그, 그게 낫겠군….]
풀썩
일펜레드의 족장이 내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우리 일펜레드는 그대에게 종속되겠소. 모든 명령에 따르겠으니 우리 일족의 안위를 보증해주시오!]
“좋소.”
외계인들을 부하로 만들었다!
‘이것도 외계인을 물리친 걸로 치는 거겠지?’
나일라토프의 의뢰는 이제 거의 다 되었다. 나는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천제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 새 뒤따라온 대조영과 합류했고 나는 대조영과 공공에게 말했다.
“나는 잠시 갔다올 데가 있으니 이 곳에 대기해 주시오.”
“알았네.”
파앗
나는 메피스토를 이용해 동북아 해방군의 주둔지로 갔다. 그리고 그 곳에 있던 제갈현을 만났다.
“망량. 잘 있었소?”
뭔가 가부좌를 틀고 수련중이던 제갈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흐음…. 뭔가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군.”
“의천검 때문에 마력이 증폭되어서 지금 흑요석을 쓸 수 없으니 그간 있었던 일을 말로 전해 주겠소.”
나는 상당히 시간을 들여 제갈현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은 제갈현이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럴 수가…. 당신은 대체 무슨 생각이오? 조만간 원래 세계로 돌아갈 생각이면서 이렇게 빨리 황제 공손헌원의 암살각을 잡다니! 책임질 수 있는 일이오?”
“경험상 몸을 사려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없소. 외우주로 자주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얻기로 했을 뿐이오. 그리고 지금의 공손헌원이라면 정말 상대못할 존재까진 아니리라 생각하오.”
육요의 힘과 사대신기의 힘이 있다면 어떻게든 놈을 죽이거나 최소한 싸우다 도망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아직 흉신의 부활이 남아있는데다가 공손헌원은 판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음…. 하긴 공손헌원을 만나서 죽든 살든 그것나름 소득이긴 하겠구려. 안 싸울 가능성도 높겠군.”
“……?”
“그냥 그렇단 거요.”
뭔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제갈현이 말을 이었다.
“내 생각이지만 지금 당신이 해야할 일은 세 가지라고 생각하오.”
“세 가지?”
“첫 번째. 알고 있겠지만 당신이 지금 제압한 숭산의 천제단을 이용해서 곤륜성으로 건너가서 신선들의 영혼 100개를 홍호로에 거둬오는 것이오. 하지만 이건 우선순위가 크지 않은 일이오.”
“그렇다면 나머지 2개의 일이 더 우선순위가 크단 말이오?”
제갈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두 번째. 서문공백을 찾아가서 광검마(狂劍魔)의 비사(秘事)를 듣는 것이오. 이게 훨씬 더 중요하오.”
“……!!”
나는 약간 불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별로 듣고 싶지 않소. 검마 서문대룡은 무척 훌륭한 절세고수이며 검객이오. 그가 타락하여 무림의 절반을 쓸어버렸다는 얘기를 어찌 믿을 수 있겠소?”
“하지만 들어야 하오. 왜냐하면 내 생각에 이 우주는 당신 세계의 또 다른 가능성이기 때문이지.”
“무슨 소리요?”
“생각해 보시오. 이 세계에 당신 같은 자가 있었다면 과연 이 꼬라지가 됐겠소?”
“……?!”
뭐?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제갈현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당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에 서문공백에게 진언하여 원래 천암비서가 있던 동굴으로 병력을 파견하여 뒤져보게 했소. 그러나 천암비서와 동굴따위는 그 위치에 없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소.”
“천암비서가 없었다고….”
“그렇소. 당신은 달마의 세계에서 천암비서를 발견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굳이 찾아보지 않은 모양이지만 이런건 무조건 확인해봐야 하는 거지. 드론으로 사령실에서 감시했기에 병사들이 천암비서를 빼돌렸을 가능성은 없소.”
“음….”
“천암비서가 아닌 다른 체크포인트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세계에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가 없을 확률은 매우 높소. 그러므로 이 세계는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사건이 뭉쳐서 생겨났다고도 볼 수 있는 거지.”
“무척 담담하게 얘기하는구려. 자기 세계의 일인데.”
“뭐 어쩔 수 없지 않소? 이제 와서 종말을 막을 방법도 없고.”
심드렁하게 대꾸한 제갈현이 말했다.
“즉, 당신이 서문혜를 구출하는데 실패했기에 검마가 미쳤을 가능성이 높소.”
“……!!”
“중요한 건 그것보다는 다른 거지만.”
나는 뜻밖의 소리에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다른 거라니? 뭐가 더 중요하단 것이오?”
“바로 ‘힘’이오.”
“힘?”
“그렇소. 아무리 검마가 미쳐서 폭주했다고 해도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고수들이 있으니 결코 한 명에게 당하여 절멸하지는 않소. 그럼에도 광검마가 과거에 무림의 절반을 멸망시킬 수 있었던 그 힘의 근원이 뭔지 알아야하오. 그래야만 당신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서도 광검마의 힘을 손에 넣을 가능성이 있지 않소?”
“…….”
“서문공백 사령관도 가문의 비사를 다 정리했다 하더군. 나와 대화가 끝나는 대로 바로 찾아가 보시오.”
…….
도저히 듣고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들어야만 하는 건가.
나는 각오를 굳히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세 번째는 바로 사대신기요.”
이어진 제갈현의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대신기 중 뇌신기(雷神器) 인드라의 권능 일부를 내게 넘겨주시오. 당신은 마력을 소모할 수 있고 나는 여기서 바로 신(神)이 될 수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