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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그들의 시선에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일 난 거 아닌가?!’
가면을 벗길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삼황오제에게 있어서는 무척 중대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황제가 씌운 가면이란 바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악의 제약이자 동시에 혼돈이 인과율을 얻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했다. 내가 가면을 벗길 수 있다는 건 단숨에 그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당황하다가 말했다.
“…이 모든 게 복희 님의 안배입니다앗!!”
[……!!]
가면을 벗길 수 있는 게 내 고유능력이라고 생각되면 삼제가 내게 집착하는 수준이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위대한 복희의 안배로 넘겨버리는 게 좀 더 내 보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소호가 커다란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복희의 안배라고? 무슨 소리냐?]
“음…. 그러니까!”
나는 헛기침을 한두번 하고는 말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복희 님의 안배로 [큰 굴레]의 미래를 볼 수 있었고 그 덕에 칠요를 빠르게 모을 수 있었습니다. 오제님들의 미래와 황제의 흉계 또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약한 인간일 뿐인 저로서는 그걸 안다고 해서 막을만한 힘이 없다는 걸 복희 님께서 걱정하셨습니다.”
[설마…. 복희가 네게 가면을 벗기는 능력을 줬다는 것이냐?]
좋아!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복희 님은 본디 황제의 가장 강력한 숙적 중 하나였으니 당연히 황제가 씌우려는 가면의 정체를 연구하고 그걸 벗길 방법을 연구하셨습니다. 하지만 워낙 술법이 강력하여 제대로 된 파해법은 마련하지 못하고 저에게 가면을 벗기는 능력의 형태로 넘겨주셨던 겁니다.”
[으음….]
[…….]
내 말에 셋은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말이 아무리 즉석에서 끼워맞춘 것 같아도 딱히 논리에 빈틈은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파보면 내 말의 헛점이 드러나겠지만 사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기도 했다.
‘삼제 입장에서는 내 능력의 근원이 어찌됐냐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진짜 중요한 건….’
이윽고 내 생각대로 소호가 다소 초조한 말투로 말했다.
[복희가 어쨌든 간에 알 바 아니다! 그래서 네놈이 우리의 가면도 벗겨줄 수 있다는 거겠지?]
미끼를 물었다!
나는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걸 방금 전에 짐작하고 있었기에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더 이상 캐묻기 전에 재빨리 자신있는 말투로 대답했다.
“당연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그걸 위해서 칠요를 모으고 있었던 겁니다.”
[무슨 뜻이지?]
“칠요를 모은 자는 강대한 인과율도 지닐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까?”
나는 짐짓 한숨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방금 보시면 아셨겠지만 이 능력은 공짜로 발동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엄청난 신력과 상당한 인과율을 소모해야만 가능한 겁니다. 저도 지금 가면을 벗기느라 죽을 뻔 했고 인과율이 거의 다 소모되었습니다.”
[으음!]
“칠요를 모으면 인과율을 많이 얻어서 손쉽게 복희님의 권능을 발동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계약이 해제되는 바람에 그다지 소득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제곡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럴듯하구나. 네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네게 칠요의 힘과 마력을 모여준다면 당연히 우리의 가면도 벗겨줄 수 있다는 말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우리에게 가면을 벗길 수 있다는 얘기를 안했던 거지? 가면을 씌워보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나?]
윽!
갑자기 날카로운 부분을 찌르고 오자 나는 움찔했지만 즉석에서 임기응변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그 정도의 신뢰가 쌓이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전욱이 흉소를 지었다.
[크크크…. 솔직하란다고 정말 솔직해지는군. 죽고 싶으냐?]
쿠구구
‘끄아아아악!!’
미치겠다!!
나는 전욱이 내뿜는 살기에 일순간 정신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아무리 내 수준이 그 동안 많이 올랐어도 본체가 정면에서 살기를 내뿜으면 도저히 필멸자의 정신으로 감당키 힘든 압박이 오는 것이다. 강대한 신력의 근원이 없다면 아마 지금 터져서 죽었으리라.
나는 피부살갗이 다 타버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리며 더듬더듬 말했다.
“그, 그, 그렇지만, 아직 저로서는, 확, 신할 수 없섯ㅅ…슙…니…다….”
[무엇을 확신할 수 없었다는 거지?]
“어찌됐, 든 제왕들께서는 황제의 수하…. 귀하 중 한 명이 반역의 의지를 버리고 도리어 배신하여 황제에게 밀고할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도리어 그 가능성이 높다 생각했습니다.”
[…….]
내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삼제는 정말로 이번에는 살기도 분노도 보이지 않고 잠잠한 반응이었고 너무 조용해서 내가 어리둥절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윽고 눈치 챘다.
‘내가 오제의 정곡을 찌른 거야.’
눈앞의 삼제는 공동의 적인 황제를 상대로 임시로 동맹을 맺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들끼리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서로 싸울 수도 있는 사이였다. 지금은 승산이 보인다고 생각하여 황제타도를 위해 손을 잡고 있지만, 만일 불리하다면 저 3명 중 하나가 배신해서 황제에게 밀고해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이 분위기는 좋지 않다.’
이대로 놔두면 내가 그들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갑작스러운 분노를 살 가능성이 있다. 나는 그렇게 되기 전에 재빨리 분위기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서로 불신이 남아있어서는 절대 황제 공손헌원은 타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스스로가 신뢰의 증거가 되기로 하고 사도가 되려 마음먹은 것입니다. 그리고 적당한 신뢰가 쌓이면 제 능력을 밝히려 했습니다.”
그러자 전욱이 마치 멀리에서 나를 겨눠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공동사도가 되어서 누군가가 혼자 배신하지 못하는 장치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냐?]
어?
아무렇게나 입을 열었는데 전욱이 알아서 대화의 발판을 만들어주자 나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화의 단서를 잡자마자 급히 말했다.
“그, 그렇습니다. 한 명의 사도라면 누가 배신할 때 대처할 방법이 없지만 공동의 사도가 된다면 누가 배신할 경우 굳이 차원을 넘지 않아도 바로 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리가 있군.]
[흐음….]
[…….]
제왕들은 내 말에 신중하게 고민하는 듯 했다. 나는 그 반응을 보자 아직까지는 내 말이 제대로 잘 먹히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아니, 그만큼 지금 내가 보여준 능력이 달콤하게 느껴져서일 가능성이 높았다.
소호가 성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그럼 칠요의 가계약을 다시 이어주고 마력과 인과율을 준다면 즉시 우리의 가면도 벗겨줄 수 있다는 걸로 이해하면 되겠지?]
“물론입니다! 인과율만 생기면 해드리고 말굽쇼!”
휴, 잘됐다!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을 탈피하고 싶어서 내가 급히 대답하자 뜻밖에도 전욱이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지, 소호.]
[뭐냐 전욱? 이놈의 가면을 빨리 벗어버리고 싶단 말이다!]
소호가 사납게 으르렁거리자 전욱이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가면은 우리의 본래 마력을 제약하고 있지만 동시에 삼황오제로서 이 세계에 관여할 선제적 권리 또한 부여한다는 사실을.]
소호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칠요가 유명무실해져서 가계약이라도 맺어야하는 이런 상황에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애초에 칠요조차도 정전협정에 의의를 뒀던 거지 우리의 진짜 힘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다!]
[그게 아니지. 우리가 황제를 칠요의 공간에 불러들여 암살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아라.]
[뭐?]
[그 회의장에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옛 지배자]가 억지로 참가하려 하면 어찌될 것 같은가. 정령체만이 거할 수 있는 그 공간에 진입할 때 모든 순수한 혼돈의 힘은 감멸(減滅)당하지.]
[……!!]
[진입한 후에는 상관없지만.]
소호는 뭔가 눈치챈 듯 했다. 옆에 있던 제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과연. 우리가 전력(全力)을 가지고 황제암살에 임하려면 그 회의장에 가면을 쓰고 들어갈 필요성이 있단 말이군. [가면]을 가지고 있으면 힘이 반감되지 않으니까.]
[그렇다. 가면을 벗는 건 바로 ‘그 때’다.]
전욱이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저 백웅이란 놈도 그 상황이 되면 좋든 싫든 우리의 가면을 벗겨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저 놈이 제일 먼저 황제를 선제공격하게 될 것이고, 황제의 반격을 받아서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으면 우리의 가면을 벗겨줘야 할 것이다.]
[오오….]
[우리는 저 놈이 가면을 안 벗겨주면 그냥 관망만 하면 된다. 그리고 꼬리를 자르면 그만이지. 수치스럽겠지만 다음 기회를 도모할 수 있다.]
[과연 훌륭하다, 전욱.]
둘은 전욱에게 감탄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전욱의 말을 듣자마자 우거지상이 되었다.
‘씨발!! 왜 저렇게 머리가 좋단 말이냐!’
나는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전욱은 그 짧은 순간에 나를 계책으로 옭아매어서 내가 가면을 벗기지 않을 수 없는 올가미까지 구상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공론화가 되어버렸으면 이제 나는 절대로 이 계획에서 발을 뺄 수 없게 된 것이리라. 전욱이 난폭하지만 동시에 두뇌회전도 빠른 간웅이라는 걸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제곡이 내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어찌되었든 너는 이미 우리의 공동사도이다. 우리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으며, 그 힘을 이용하여 지상에서 빠르게 힘을 모으도록 하라.]
“…….”
[지상에 있는 외계종족들을 마음대로 쓸어버려도 좋다. 네가 우리의 가호를 받는 한 그 누구도 맞서지 못하리라.]
말은 좋지만 결국은 자기들을 위한 일회용 암살자이자 미끼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이게 전부 내가 자초한 일이라서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나는 기분이 엿같았지만 어찌되었든 여기서 포기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씨발…. 그래, 이렇게 된 거 힘이나 최대한 모아보자.’
원래 세계에서 이 정도로 삼황오제의 권능을 모아서 진행하려면 굉장한 굴곡과 고난이 있을 텐데 말세라서 쉽게쉽게 진행된 감이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는 게 도리어 나을지도 몰랐다.
나는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두 가지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무엇이냐?]
“첫째. 금요의 행방을 알고 싶습니다. 두 번째. 원할 때 언제든 천계로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굳이 천제단을 이용하는 수고를 들이면 시간만 낭비할 것 같습니다.”
[일리 있는 부탁이군.]
소호가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 공간에서 나가게 되면 금요의 위치로 바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괜찮으냐?]
“헉! 그게 가능합니까?”
[내가 금요의 창조자인데 그깟 게 안 될 것 같으냐? 금요를 내 앞으로 소환시키는 건 안 되지만 그 정도는 손쉽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천계로 가는 건 그 사도의 문양을 발동시키면 간단할 것이다.]
“사도의 문양을?”
나는 힐끔 내 손바닥에서 빙빙 회전하고 있는 세 개의 문양을 보았다. 그러자 소호가 설명해 주었다.
[그 문양에 신력을 불어넣으면 내가 천계로 바로 보내주겠다.]
“좌표를 대신해서 계산해주시는 겁니까?”
[계산? 신에게 그런 게 필요하진 않다. 대충 보내주겠다.]
“…….”
아무래도 신들이 차원을 이동하는 방식은 필멸자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보내주십시오. 기왕이면 제 동료들도 함께 보내주십시오.”
[그러지.]
[잠깐!]
갑자기 제곡이 소호의 말을 가로막으며 끼어들었다. 그러더니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흉신 세력만은 건드리지 말아라. 알겠느냐?]
“……? 알겠습니다.”
[가봐라.]
파앗!!
잠시 후 - 나는 삼제들의 본체가 모여 있던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이동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긴?’
어둠과 짙푸른 안개가 잔뜩 깔려있는 드넓은 평야.
싸늘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고 있지만 무척이나 고요한 느낌이었다.
끝없는 평야의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다같이 순간이동 되었구나.”
“달기.”
꼬리 아홉 개를 펼치고 반요의 형태로 걸어온 달기가 요염한 미소를 띄었다.
“삼황오제의 마력이 느껴졌다. 그들과 교섭했나보구나.”
“…맞아.”
“후후후. 그럼 여기에 아마 금요가 있겠구나. 보나마나 금요가 있는 장소로 보내 달라 했을 테니까.”
정말 눈치 하나는 백단이군….
나는 달기의 잔머리에 혀를 내두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 금요만 찾아내면 육요를 다 모으는 셈이지.”
“그래서 육요를 다 모아서 어쩔 셈이지?”
갑작스레 들려온 서늘하면서도 살기가 섞인 목소리.
“…….”
내가 그 목소리의 방향을 보자, 거기에는 대조영이 자신의 흑마에 탄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는 강대한 신력과 투력의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대조영.”
“전욱의 사도였다는 걸 숨긴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삼황오제 소호에게 불려가서 무엇을 이야기했지?”
“진정하시오. 다 얘기해주겠소.”
대조영이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지. 이제 와서 자네의 말에 신뢰성은 없네. 우리가 어찌 자네를 믿겠는가? 복희의 제자였다면서 오제 전욱의 사도였으며 이제와서는 소호와 밀실교섭을 한 자네를… 자네 같으면 믿겠나?”
“…….”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없지 않겠나?”
할 말이 없어서 입을 꾹 닫고 있자 거대한 영언이 함께 들려왔다.
[백웅이여! 대조영의 말에 동감이다.]
쿠웅
하늘에서 떨어져서 강대한 화염의 힘을 분출하는 공공!
그는 이글거리는 화염의 거검을 든 채 분노를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우리를 이용해서 편하게 육요를 모으려 했던 것인가!]
“진정하시오.”
나는 골치 아픔을 느꼈다. 급조한 동료들이긴 했지만 이렇게 쉽게 관계가 틀어질 줄이야!
‘제길. 흑요석이라도 줘야 하나?’
하지만 흑요석을 줌으로써 이 세계의 역사가 얼마나 더 변동할지는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어쩌면 저들을 통해 기억이 유출됨으로써 내가 더 위험하고 험난한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 내게 별다른 신뢰가 없으며 전생의 고리에도 직접 걸려있지 않은 자들을 설득하는 건 무척 지난한 일이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우후후. 싹 다 죽여버리면 편할 터인데 뭘 그리 고민하는지 모르겠구나.”
“달기!!”
“그 괴물이라면 몰라도 기껏 말세에 처박혀 있던 마왕급 따위에게 대체 뭘 쫄고 있단 말이냐?”
쿠구구구
달기가 강대한 마력을 점차 해방하기 시작했고 나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틀림없이 달기는 자신의 무력으로 대조영과 공공을 다 죽여 버리려는 것이다! 그건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나는 재빨리 검을 뽑고는 달기를 막아섰다.
“하지 마!! 이런 식으로 대체 뭘 해결하겠단 말이야!”
“그럼 뭘 어쩌려는 거지? 이미 네가 콩으로 메주를 쒀도 못 믿겠다는 놈들을 끝까지 말로 설득하겠다는 것이냐? 삼황오제의 사도라는 지위를 갖고 있는 네가 도대체 뭘 위해서?”
“아니….”
“여와의 음신으로서 단언하노라, 백웅.”
달기가 새하얀 웃음을 지었다.
“힘 있는 자는 약자를 괴롭히고 죽여도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우주의 진리…. 태초의 혼돈부터 전해지는 유일한 섭리(攝理)다!!”
쿠구구구!!
다음 순간 달기가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입술을 꽉 깨물었고 대조영과 공공 또한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듯 했다.
‘빌어먹을.’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에서 달기와 갑자기 생사를 걸고 결전을 벌이게 될 줄이야!
하지만 잠시 후 또다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쓔웅 - !!
쿠콰콰쾅
[크아아악!!]
본체로 변신하려던 달기가 난데없이 허공 저편에서 날아온 괴광선을 맞고 폭발음을 내며 나가떨어졌다. 괴광선은 무척이나 거대했고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그 괴광선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본 적이 있었기에 눈을 부릅떴다.
‘저건!!’
후두두둑
나가떨어진 달기는 잠시동안 지평선 너머로 가 버려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달기의 뒷모습을 보다가 급히 대조영과 공공에게 말했다.
“우리 사이의 일은 나중에 정리합시다. 일단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힘을 합쳐야 하오!”
광선이 강하긴 했지만 달기가 한 방에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 뜻밖의 기습에 타격을 입은 것이리라. 달기라면 머지않아 전선에 합류할 것이고, 나는 달기가 합류하기 전까지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쩔 수 없군!”
[크윽. 아주 남을 마음대로 휘두르는구나.]
대조영과 공공은 그래도 눈치가 있는지 의문의 강적이 출현했기에 나와 힘을 합치기로 한 모양이었다.
타닷
우리 셋이 그대로 붙어서 방어태세를 갖추었고 광선이 날아온 하늘의 저편을 경계했다. 긴장상태에서 대조영이 내게 말했다.
“왠지 자네가 저 강적의 정체를 알고 있으리라는 직감이 드는군.”
“그것도 제왕의 직감이라는 것이오?”
“맞나보군.”
나는 마지못해 인정했다.
“…알긴 아오.”
“방금 전 자네는 금요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설마 저 강적이 금요를 수호하고 있는 자란 말인가?”
“아마 그럴 것이오.”
“모습만 봐도 무척 강한 존재 같아 보이는군…. 혹시 저 자의 이름도 아는가?”
쿠구구구
평야 저편의 어둠에서 구름과 함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
그것은 [기억] 속에서 보았던 것보다 몇 백 배나 거대해져 있었지만 전반적인 외형은 같았다. 전신이 말라붙은 듯한 눈 없는 인간형의 [무언가]가 기경스러운 촉수덩어리와 함께 산 너머에서 기어오고 있었다. 그 [무언가]의 양 손바닥에서는 창백한 불꽃이 흘러나와서 음산한 어둠을 불러일으킨다.
“…할치올레이푸라.”
나는 놈을 보는 순간 이를 꽉 물었다.
‘제기랄.’
저 놈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역시나 저 놈이었던 것이다.
서방 팔리아스의 수호자들을 전멸시킨 것도 저놈이리라.
[옛 지배자]들이 천마(天魔) 사공린에 대적시킬 비장의 무기일 정도로 강력한 머나먼 이계의 대사도(大師徒), 할치올레이푸라가 금요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