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5====================
사신지혼(四神之魂)
상황이 정리되자 내게 공공이 말했다.
[…그래서 결국 요순을 소환해서 이룬 게 무엇인가? 금요의 정보보다 더 대단한 걸 손에 넣었는가?]
나는 그의 말에 흠칫했지만 이내 태연하게 대답했다.
“요순에게서 강력한 마력을 손에 넣었소!”
[으음…!! 방금 전 의천검에서 퍼져나왔던 엄청난 그 힘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소.”
나는 힐끔 내 손에 들려있는 의천검을 내려다보았다. 의천검의 검날은 아직도 시꺼먼 마력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응축된 마력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꿈틀거렸다.
‘정말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력이….’
달기가 두어 차례나 크게 채정(採精)하듯 게걸스럽게 마력을 긁어갔는데도 어느새 한계치에 도달해서 부풀어있는 마력. 당연히 인간수준에서 논할 수 있는 마력이 아니며 신적인 존재나 다룰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마력이 더 뿜어져나오지 않게 조심하며 말을 이었다.
“이 의천검은 아까 전과 달리 봉인이 풀린 것 같소. 아마 이 의천검을 제물로 바친다면, 더 큰 대가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오.”
[으음…!!]
공공이 내 말을 듣자 당혹스러운듯 말했다.
[진심인가? 그 정도의 마검(魔劍)이라면 신조차도 탐낼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 그걸 그대의 힘으로 삼지 않고 삼황오제에게 바쳐도 괜찮은가…?]
“…….”
어, 지금 의천검이 그렇게 센가?
내가 당황해하자 대조영이 말을 거들었다.
“내 생각도 같네. 그 마력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지금 그 의천검은 칠요(七曜)보다 더 강력한 마검일세. 앞으로 신을 상대한다면 그걸 제물로 바치기엔 아까워보이네.”
“음…. 정말 그 정도로 강하오?”
“허허. 자네 스스로 의천검의 힘을 느끼고 있을텐데도 그리 말한다니….”
대조영이 약간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설마 의천검이 딱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감추고 있다는 말인가? 이토록 욕심이 없을줄은 몰랐군.”
“…….”
“그건 분명 초월급 마검일세.”
나는 약간 뜨끔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내게는 사대신기도 있고 칠요가 5개나 있어서 딱히 의천검에 집착할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칠요가 계약이 파기되어서 위력이 반감되긴 했지만 칠요공명을 하면 그럭저럭 쓸만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마력이 과하면 흑웅이 부활하는 기간이 늦어져.’
그래서 내게 있어서 이 의천검은 계륵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마검이라도 제물로 바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칠요면 충분하오. 다음 천제단으로 가지요.”
[다음 천제단?]
“그렇소.”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천제단은 오악(五岳)에 있으니 개중 화산의 천제단 하나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4개가 남아있으니까.”
금요의 행방을 찾아야하는데도 먼저 요순을 소환하는 실험을 해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천제단은 하나뿐만이 아니라 중원의 오악에 하나씩 있으므로, 설령 화산의 천제단을 소모하여 당장 재의식을 치를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천제단을 사용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때였다.
“제법 열심히 하고있군, 백웅.”
슈욱
갑자기 장내에 나일라토프 교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말 그대로 홀연히 등장한 것이었고, 아마 순간이동같은 기술을 썼으리라는 짐작이 들었다. 대조영과 공공이 대번에 그를 경계했고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려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공격하지 마시오. 아군이니.”
나일라토프가 훗하고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려 했다.
“훗. 반갑소. 내 이름은 나일라….”
퍼억!!!
“크억.”
풀썩
나는 나일라토프의 심장이 꿰뚫려서 단숨에 죽은 걸 보자 경악해서 외쳤다.
“다, 달기!! 무슨 짓을 한 거야!”
마력탄을 손가락으로 발사해서 일격에 나일라토프를 처치한 달기는 마뜩찮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인형]을 보내는 수상쩍은 놈을 놔두라는 것이냐?”
“인형?”
“인형을 치워라.”
달기가 누군가에게 협박하듯 말했다.
슈슈슉
그러자 갑자기 나일라토프의 시체가 마치 홀로그램처럼 사라졌고, 그 자리에 다시금 나일라토프가 출현했다. 그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클론(clone)도 인형이라면 인형이지. 하지만 가이아의 메인서버에 동기화도 된 클론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건 언짢은 일이군.”
“흥. 역시 신적인 존재구나.”
코웃음을 친 달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보나마나 이쪽의 상황을 다 염탐하고 있었겠지. 그리고 또 다른 흉계를 꾸미러 이 자리에 나타난 게 아니냐?”
달기의 말에 나일라토프 교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후후. 아니라곤 못 하겠군.”
“…….”
아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이용해서 염탐하고 있었겠지.
순간이동 능력을 쓰려고 손목시계의 형태로 차고 다녔으니 그 동안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나일라토프에게 전해주었으리라.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나일라토프에게 말했다.
“나일라토프. 네가 나를 어떻게 이용하든 상관없다. 나는 내 목적만 이루면 돼.”
“그렇겠지. 서로 필요에 따른 관계라는 걸 확실히 하고 넘어가니 참 좋군.”
나일라토프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 막나가는 행동은 어떨까 싶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어째서 갑작스럽게 칠요를 모으고 있는 건지 들을 수 있을까?”
“메피스토를 통해 들었다면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이혼 인류해방군 사령관이 부탁한대로 칠요를 모아주고 있을 뿐이야.”
“그건 나도 알지. 하지만 육요(六曜)가 모였을 때 일어난다는 현상을 듣고 나니까 좌불안석이 되어서 가만있을 수가 없더군.”
나일라토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백웅. 너는 외인(外人)이지 않은가? 삼황오제를 집결시키는 그런 대의식을 저지르고 뒷수습을 하고 갈 자신이 있나? 그건 틀림없이 이 세계의 미래를 격변시킬 것이다.”
“……!!”
“뭐 ‘너’라면 그래도 되긴 하겠지만 여기는 내 제자인 이환웅의 세계. 당연히 스승으로써 이 정도 우려는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일라토프는 내가 육요를 모아서 삼황오제 결집을 시키려는 계획을 이미 들은 모양이었다. 공공이나 대조영을 설득시킬 때 했던 말이 적지않게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반대로 내가 묻고 싶은데.”
“무엇을?”
“너는 확실히 이 세상을 말세에서 구해줄 마음이 있는 건가? 이환웅을 키워서 말세에 대비하는 건 알겠지만 이 세상을 구해준다는 말은 한 적이 없잖아.”
“…….”
나는 밀리고 싶지 않았기에 강하게 쏘아붙였다.
“만일 네가 구해줄 생각이 딱히 없다면 내게 할 말은 없겠지. 어찌되었든 난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위를 한 거니까.”
나일라토프가 약간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을 짓더니 히죽하고 웃었다.
“이거…. 할 말이 없는데.”
“…….”
“후후. 사실 있긴 하지만 여기서 할 말은 아니군.”
의미를 알 수 없는 진한 미소를 남긴 나일라토프의 몸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해라, 백웅. 참고로 다른 외계인 두 무리만 더 쓰러뜨리면 이환웅의 업은 다 해결됐다고 봐도 된다. 벌써 이환웅의 할 일을 거의 다 해줘버렸군.”
파앗!
나일라토프의 신형이 씻은듯이 사라졌다. 놈이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며 침묵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대조영이 말했다.
“백웅. 그 순간이동능력을 가진 손목시계가 메피스토란 거겠지. 그게 아마 우리의 정보를 나일라토프란 자에게 전해줄 게 분명하니 당장 버리게.”
“순간이동능력 때문에 갖고 있는 건데 혹시 대체할만한 게 있소?”
“난 축지법을 쓸 수 있네. 나뿐만이 아니라 저 둘도 그만한 술수나 권능을 갖고 있겠지. 굳이 저런 괴인에게 정보를 넘겨주면서까지 순간이동능력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일세!”
“…….”
지극히 옳은 소리였다. 아무리 나일라토프가 나를 원래세계로 귀환시켜줄 조력자라고 하지만 아직 저놈을 전면적으로 믿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일라토프 정도면 시계가 있든 없든 내 행동을 감시하는 게 가능할 것이오. 그게 불가능했다면 굳이 지금 나타나서 내게 정보를 아는 티를 내지 않았겠지. 그렇게 멍청한 자가 아니오.”
하도 날 이용하려는 놈들한테 당하다 보니 이 정도는 굳이 머리를 안 굴려도 감이 오는 편이다. 신적인 영역에 도달한 전함 가이아를 보유하고 있는 나일라토프는 굳이 시계에 의존하지 않고도 내 행동을 감시할 수 있으리라.
“음…. 그것도 그렇군.”
“나일라토프는 아직 적이 아니오.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하면 되는 거요.”
섣불리 먼저 판단내리고 내쳐버리면 손해밖에 남지 않는다. 제대로 자를 수 있는 타이밍은 기다리다보면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생각인가?”
“당장 항산(恒山)으로 갑시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금요의 정보를 얻을 테니.”
“오악 중에서 굳이 항산인 이유가 있는가.”
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찾고 싶은 게 있어서.”
파앗!!
우리는 바로 메피스토의 능력으로 항산 근처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항산 근처에 외계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걸 발견했고, 메피스토가 그 외계종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항산의 천제단을 점거하고 있는 건 3.5티어의 피즈롤룬 족입니다.]
나는 아까처럼 천공에 가득 떠 있는 형광해파리 덩어리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저 형광해파리 하나하나가 외계인들일 것이다.
“꼭 해파리처럼 생겼군…. 특이한 건?”
[특이사항으로는 사신(邪神) 렐크로바우스를 섬기는 종족입니다.]
“…….”
렐크로바우스?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
말세(末世)에 등장해서 메피스토펠레스와 싸웠던 그 [옛 지배자]!
그 놈이 선악과를 얻어서 우주 바깥으로 튀겠다고 덤벼왔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분명 적궁백시를 응용해서 메피스토가 놈을 처리할 수 있게 도왔었지.’
그런데 하필이면 외우주에 와서 그 놈을 섬기는 종족을 마주치게 될 줄이야!
나는 묘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며 옆에 있던 자들에게 말했다.
“별로 강한 놈들은 아니니 빨리 정리합시다.”
쿠콰콰쾅
잠시 후 피즈롤룬 종족의 대다수의 병력을 쓰러뜨리고 항산의 천제단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아까와는 달리 별달리 전투랄 만한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달기를 상대로 제법 저항했던 패주종족 라키올과 달리 놈들은 달기의 환살 한방에 거의 다 전멸해서 전투의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라키올에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신공양 흔적도 없군. 지배자를 소환해서 대항할 엄두도 못낸 건가.’
쿠구구….
외계인들이 학살당한 잔해를 뒤로 하고 나는 잠시 내가 알고 있던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약간 산을 뒤져보다가 뭔가를 찾아낼 수가 있었다.
“있군.”
반고의 상!
소소하긴 하지만 항산에서 얻어 낼만한 보물을 손에 넣은 것이다.
‘다른 천제단에 가도 되지만 기왕 하는 거 보물을 같이 얻는 게 효율적이겠지.’
일련의 작업을 마친 후 나는 항산의 천제단 위에 섰다. 그리고는 의천검을 슥 하고 들어서 제단 위에 올라갔는데 옆에서 대조영이 말했다.
“아까 자네 말대로라면 요순이 큰 부상을 입어서 봉선의식에는 나오지 못하는데 의천검은 요순과 가장 큰 관련이 있는 유물이 아닌가.”
“음, 그렇소만.”
“그렇다면 의천검을 제물로 바치면 그 마력 때문에 삼황오제와 연관없는 지배자가 뜬금없이 나타날 확률이 높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건 금요를 창조한 소호금천이니, 그와 관련 있는 유물이 없는가?”
“흠….”
소호금천을 확실히 소환할 수 있는 유물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전국옥새일 것이다.
무조건 소환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내 수중에는 전국옥새가 없었고, 이제 와서 전국옥새를 찾기도 힘들다. 과거 황궁에 있었다지만 이 시대는 그때부터 수백 년 후인데다가 중원전토가 외계인에게 뒤집혀버려서 거기에 그대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소호금천과 관련 있는 걸 어떻게 제물로 바칠 수 있을까?
‘그래. 그거야.’
나는 씩 웃으며 내 손을 크게 펴서 손바닥을 제단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좀 더 힘을 쓰면 될 것이오.”
“자네가? 어떻게….”
“보기만 하시오.”
나는 공공에게 의식을 진행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이윽고 공공이 진언을 외우며 봉선의식을 가동시켰다. 나는 신력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제단에 몰려드는 것을 느끼던 와중 제단에 대고 있던 손바닥에 정신을 집중하며 눈을 반개했다.
‘눈에… 모든 신력의 흐름을 모으고….’
너무 강하면 안 된다.
너무 강하면 내가 힘에 말려들어서 우주 밖으로 튕겨져 나갈 수도 있다.
가능하면 최소한의 힘으로 마력만을 감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잠시 후 신력의 흐름이 정점에 달했을 때, 나는 감각적으로 이 순간임을 깨닫고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광 - 선!!!”
소호금천도 자기 권능 쓰면 궁금해서 튀어나오겠지!
쿠콰콰쾅
내 눈에서 발사된 소호금천의 권능, 광선이 단숨에 제단을 폭격하는 듯 폭발음을 내었다. 힘을 최소한으로 해서 발사했는데도 제단 자체가 터져버리는 듯한 충격과 함께 내 몸과 의천검이 잠시 허공에 둥실하고 떠올랐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공공이 경악했다.
[뭣이?! 복희의 제자가 어찌 소호금천의 신력을….]
후두둑
돌먼지가 떨어지며 내 몸이 함께 제단의 폐허 위로 착지했고, 동시에 내가 뿜어낸 광선의 신력이 의천검의 마력에 융합하면서 기이한 광채를 내뿜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의식의 흐름이 거세게 흘러가며 허공에 거대한 존재감이 소환되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쿠구구구….
요순이 소환될 때와 비슷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안개같은 기운이 흐르다가 이윽고 제왕의 형체를 만들었고, 제왕의 화신을 통해 소호금천이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신언(神言)을 내뿜었다.
[네놈은 누구냐? 어떻게 내 권능을 쓰는 거냐.]
소환에 성공했다!
나는 소호금천에게 급히 부복하며 말했다.
“위대한 소호금천이시여! 저는 복희의 제자인 백웅이라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의천검의 마력을 바치려고 합니다.”
[음…. 이것은….]
소호금천의 관심이 잠시 의천검 쪽으로 향한 듯 했다. 그리고 의천검을 들어서 잠시 매만져보던 소호금천이 중얼거렸다.
[제법 괜찮은 물건이군. 아니, 이건 틀림없이 그거야…. 네놈은 이 물건의 가치를 알면서도 욕심이 없었단 말이냐?]
도리어 소호금천이 반문할 정도라면 대조영이나 공공이 말했던 대로 해방된 의천검의 힘은 상상이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흑웅을 일깨우는 게 먼저라 생각했기에 의천검에 대한 욕심을 버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없습니다. 그보다 위대하신 소호께서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영겁토록 칭송할 것입니다.”
[흐흠…. 뭐 안 될 것도 없는데.]
소호가 잠시 후 궁금하다는 듯 불쑥 꺼낸 이야기에 장내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백웅 네놈은 전욱의 사도인데 내 권능도 쓰고 복희의 제자이기도 하구나. 대체 뭐하는 놈이냐?]
헉!!
그걸 말하면 안 되지!!
내가 당황할 때 뒤에 있던 공공이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라고? 전욱의 사도라고?]
“…….”
[그 원수놈의 사도였다니!]
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천천히 공공을 뒤돌아보자 공공이 분노에 가득찬 얼굴로 거신족의 신력을 일으키고 있는 게 보였다. 시퍼런 염광(炎光)과 함께 그의 거검 또한 불꽃에 휩싸이고 있었다.
[복희의 제자로서 세계를 구한다더니 날 속였단 말이냐!]
심지어 대조영의 표정마저도 안 좋게 굳어졌다.
“뭣이. 전욱의 사도?”
표정이 변하지 않고 도리어 재밌다는 듯 히죽히죽 바라보고 있는 건 달기였다.
“후후후. 후후후후훗….”
보나마나 머릿속으로 깽판이 시작되면 나를 어떻게 이용해서 노예로 만들지 생각하고 있는 게 뻔하다.
올게 왔구나!
공공을 속였다는 약간의 죄책감과 더불어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사실 이 상황이 올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약간은 올 게 왔다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큭…. 이것만 넘기면 바로 육요를 다 모으는 건데….’
육요를 다 모으고 나서 삼황오제를 다 모으면 어쩐지 전생자로서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무너질 순 없어!
그 순간, 나는 임기응변으로 엉뚱한 변명거리가 생각나고 말았다.
‘제길…. 어쩔 수 없지!’
나는 공공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호시여. 의천검을 제물로 빕니다.”
[흐음. 본좌의 질문에는 대답치 않는다는 거냐?]
“…….”
[뭐 좀 있다 듣지. 그래서 어떤 소원을 빌겠느냐?]
“제 소원은….”
나는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말했다.
“사제(四帝)인 전욱(顓頊), 소호(少昊), 제곡(帝嚳), 요순(堯舜) 모두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니 저를 소호님의 사도로 삼아주십쇼! 덤으로 금요의 위치도 알려주시고.”
[…….]
“의천검이 제물이라면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에 소호금천은 물론이고 옆에서 듣고 있던 세 명도 당혹해하는 게 느껴졌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엉뚱한 소원이기 때문이리라. 소호금천은 내 말에 어이가 없는지 잠시 제왕의 화신을 경직시키고 있다가 말했다.
[아주 흥미롭군. 그래서 다음은 제곡도 불러낸다 이 말이냐?]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우리 넷의 사도가 되어서 뭘 하고 싶으냐?]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미 전욱 님에게서 제 이야기를 들어서 정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짐작하고 있으실 텐데.”
[호오…. 그래서 뭘 하고 싶다는 거지?]
“뻔하지 않습니까.”
나는 소호의 화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 분 모두 저한테 힘을 몰아주십시오. 그러면 육요를 모아서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힘으로 황제를 암살하는데 한 칼을 보태겠습니다!!”
조악한 변명이지만 지금은 이렇게 밀고나간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소호의 화신이 히죽하고 웃으며 말했다.
[미친 놈.]
따악
그의 화신이 손가락을 마주친 순간, 나는 갑자기 어딘가로 휙하고 끌려가는 걸 느꼈다. 거대한 차원의 통로를 순식간에 넘어서 알 수 없는 새하얀 이공간에 내동댕이쳐졌을 때 소호 금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재밌는 얘기군.]
두웅 -
“……!!”
나는 이 아공간에 세 명의 거대한 대존재(大存在)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셋의 모습은 제각기 새하얀 거인, 거대붕조, 그리고 흑암의 거인의 모습이라는 걸 눈치챘다.
동시에 아까 항산의 천제단에서 느꼈던 압박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압력이 내 영혼을 짓누르는 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거대한 힘이 폭풍처럼 무형의 공간에서 휘몰아치자 전신이 찢겨나갈 것 같았고, 공포심과는 관계없이 힘의 흐름만으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윽…으윽….”
나는 버티지 못하고 억누른 신음을 흘렸다.
“끄으으윽!!”
어마어마한 압력을 도저히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그럴 만도 하다.
여태껏 곁눈질로 보거나 배려받았던 것과는 달리 진짜로 본체를 정면으로 두고 있는데다가 배려도 없다. 내가 그 정도 ‘격’은 된다고 생각하기에 저들 모두가 내 사정따위를 봐주지 않고 본체의 우주적인 힘을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죽을 맛이군….’
내가 그 압력을 간신히 버티고 있자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웅이여. 네놈은 시킨 일도 제대로 안하고 소호에게 제물을 바치고 있단 말이냐? 이런 간사한 놈.]
“…….”
[그 덕에 네놈의 꿍꿍이를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지만.]
어둠의 거인 옆에 있던 백색의 거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찮지 않은가, 전욱. 이 말세에 와서 황제에게 대들어보려면 저 정도는 되는 놈이어야겠지.]
[후…. 그럼 설명해라.]
마뜩찮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던 전욱이 말했다.
[정말로 네놈 말대로 황제를 암살할 수 있을지를.]
그렇다.
난데없이 삼제(三帝)의 본체가 있는 곳으로 불려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