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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달기와의 대화가 어느정도 마무리되자 달기가 바로 말을 꺼냈다.
“그럼 태음지계로 가자.”
“잠깐!”
“왜?”
나는 보나마나 달기가 태음지계를 아는가에 대한 질문이 또 이어질거라는 걸 예측했다. 그래서 일단은 화제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달기. 우리 용건이 먼저다. 우리는 칠요를 모으는 중이고, 현재 칠요 중 5요를 손에 넣은 상태다.”
“……!!”
“그러니까 네가 먼저 우리가 칠요를 모으는 걸 도와다오.”
달기는 예상치 못한 얘기였는지 흠칫하고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의심어린 기색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이냐?”
“봐라.”
우웅
나는 즉시 목갑에서 지금까지 모은 월요, 화요, 수요, 목요, 토요를 꺼내서 허공에 띄웠다. 그러자 칠요의 힘을 감지한 달기가 잠시동안 멍한 표정을 보였고 나는 달기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입을 열었다.
“월요부터 토요까지 모았고 남은 건 금요 뿐. 그리고 6요를 다 모으면 칠요의 시련이 시작되고, 칠요의 시련을 통과하면 마지막 칠요인 일요(日曜)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어있다. 이걸 알고 있었느냐?”
“호오…!!”
“다만 칠요의 시련을 행할 생각은 없다. 내 목적은 칠요의 시련이 아니라 6요를 모을 때 한 순간 삼황오제가 다 모이는 순간 - 그 순간에 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
나는 달기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포착하고는 마무리를 짓듯이 빠르게 말했다.
“이제 조금만 하면 다 모은다. 순서로 볼 때 당연히 날 먼저 도와주는 게 맞겠지? 태음지계를 통과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건 나도 알고 있다. 당연히 칠요의 힘을 조금이라도 더 모아서 널 돕는 게 성공률이 높아질 것이다.”
“흐음! 그럴듯하구나.”
사실 나는 태음지계가 뭔지도 모르고 거기를 어떻게 뚫는지도 모르겠지만 마치 아는척 허세를 부리는 게 나을 것이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달기가 말했다.
“좋다. 네 말대로 하겠다. 그래서 금요는 어디있느냐?”
“성지 팔리아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어떤 신의 사도가 석화저주를 써서 그 곳의 수호자들을 전멸시켰다. 그래서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그래서? 본녀에게 찾아달라는 소리냐?”
“엥? 아니 너 왜 그러냐? 뭐 그렇게 삐딱해?”
나는 기가 막혀서 툴툴대다가 말했다.
“애초에 난 여기에 ‘선지자’라는 우주적인 정보상이 왔다는 얘기를 들어서 찾아온 것 뿐이다. 선지자에게 금요의 위치라도 물어볼 생각이었지. 그런데 뜻밖에 네가 와 있었을 뿐이라고.”
“…….”
“금요를 찾을 방법은 지금부터 생각할 참이다. 아무리 그래도 태음지계와 비교하면 금요 쪽이 입수난이도가 낮겠지.”
그러자 달기가 입을 열었다.
“서방상제(西方上帝) 소호금천(少昊金天).”
“뭐?”
“그가 금요의 창조자일 것이다. 그러니 네가 소호에게 연락해서 공양물을 바치고 금요의 위치를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를 것 같구나.”
“……!!”
아 그렇네?
‘달기도 제곡에게 공양을 해서 내 정보를 알아냈었지! 마찬가지 방법으로 금요의 정보를 얻어내라는 거구나.’
칠요를 창조한 삼황오제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 굉장히 상황에 딱 맞는 해결법이었기에 나는 내심 감탄했다.
그 때 옆에 있던 대조영이 말했다.
“백웅. 삼황오제에게 직접 공양을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들은 어설픈 공양물은 받아주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에게 제례의식을 행하던 천제단(天梯壇)은 지금 외계 괴물들의 터전이 되어있네.”
“외계괴물들이 천제단을 차지하고 있다고요?”
대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제단은 강력한 영맥(靈脈)이 모여드는 장소이고 잠재된 신력이 존재하는 곳이니까…. 세속의 일을 가끔 전해듣기로 천제단에는 가장 강력한 외계종족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 들었네.”
“흐음….”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얼마 전 전욱이 내게 말하길, 천제단에 충분한 제물을 바치면 신선 100명이 존재하는 천계 곤륜성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금요를 찾으려면 마찬가지로 천제단에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건….’
나는 생각을 마치고는 입을 열었다.
“어차피 천제단을 우리 손에 넣어야겠군. 그래야 금요의 위치도 알 수 있고 천계로도 갈 수 있겠구려.”
강력한 외계종족이 천제단을 장악하고 있다는 건 차라리 잘된 일이다.
어차피 나는 이번에 나일라토프의 의뢰 때문에 이환웅 대신에 외계종족을 처단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일석이조!
“음…!! 그렇게 되는가.”
나는 대조영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달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달기. 들었으면 알겠지만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천제단부터 장악해야할 것 같다. 거기에 있는 외계종족을 쓸어버리는 걸 도와다오.”
“후후. 도와주는 건 상관없지만 그렇다면 나도 하나 더 요구하겠다.”
“뭔데?”
“말하는 양을 보아하니 천제단을 이용해서 천계 곤륜성으로 갈건가 보구나.”
이윽고 달기의 눈빛에 은은한 혈광이 맴돌았다.
“나도 곤륜성으로 같이 간다. 동의하느냐?”
“…….”
나는 달기의 의도를 뻔히 읽을 수 있었다.
‘곤륜성에 있는 신선들을 잡아먹고 자기 힘을 더 늘릴 생각이군….’
그리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지금의 천계 곤륜성은 강대해진 달기를 막지 못하고 그대로 멸망할 게 뻔했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윽고 말했다.
“좋다. 대신에 내가 곤륜성에서 귀환할 때 너도 같이 귀환해야한다.”
“알았다.”
어차피 나도 내 이득을 위해서 곤륜성에서 신선을 살육해서 100명의 영혼을 홍호로에 넣어올 참이었다. 내가 지금 달기의 욕심을 가리켜 뭐라고 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대신에 최소한의 양심으로 내가 귀환할 때 달기를 같이 귀환시켜서 살육을 최소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메피스토. 오악(五岳)에 진을 치고 있는 외계종족 세력을 보여줘.”
[사용자 명령 수행중.]
삐빅 -
잠시 후 손목시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눈앞에 거대한 화면이 나타났고 거기에는 중원 전토(全土)와 더불어 중원을 침공하고 있는 모든 외계세력들을 알기 쉽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내 명령대로 오악에 존재하는 외계종족의 위력을 눈에 띄게 색깔별로 보여주고 있었다.
“흐음. 숫자표시는 나일라토프가 말했던 외계인들의 티어(tier)를 말하는 거냐?”
[그렇습니다. 5티어가 가장 약하며 1티어가 가장 강력합니다.]
“…화산(華山)에 있는 외계인들이 제일 강하군. 제일 높은 숫자야.”
나는 화산에 새겨져있는 외계인의 빨간색 티어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눈을 좁혔다.
“2.5티어라. 그렇다면… 마왕(魔王)에 준하는 위력이란 뜻이냐?”
[그렇습니다. 적성외계종족 중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강력한 라키올 종족입니다. M101 은하의 패주(覇主) 종족입니다.]
“내가 전에 없앴던 4티어 파르텔퀴안과 비교하면?”
[라키올 종족의 25개 전단 중 1개전단이 파르텔퀴안보다 더 강력합니다.]
“꽤 센 놈들이긴 한가보군.”
내가 메피스토와 대화하는 걸 옆에서 듣고 있던 달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고 당장 가자. 시간이 아깝구나!”
“아니 적이 어떤 놈인지 정도는 좀 알고 가야….”
“알면 뭐할 셈이냐? 어차피 다 찢어죽일 놈들일 터!”
“…….”
나는 할말이 없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메피스토에게 말했다.
“메피스토. 화산의 천제단에 최대한 가까운 위치로 우리를 이동시켜줘.”
파앗!!
잠시 후 우리는 순식간에 화산의 천제단이 정면에서 내려보이는 근처 봉우리에 나타났다. 그리고 봉우리 위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화산의 풍경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우우웅 -
끼기깅! 끼깅!!
암운(暗雲)이 물결치는 혼탁한 어둠의 천공 속에서 마치 해파리처럼 생긴 거대한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었다. 산보다 더 거대한 그 해파리에서 마치 영혼처럼 부유하는 둥근 빛덩어리들이 촉수를 내뿜으며 유영하고 있었고, 그 밑에는 이질적으로 촉수와 융합한 듯한 이족 문명의 철갑(鐵甲)이 화산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대지를 침식하고 있던 그 철갑에서는 실시간으로 피처럼 붉은 기포가 보글거리며 솟아오르고 있었고 차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게 생긴 사족보행 괴물들이 화산 여기저기를 활보하는 게 보였다.
“……!!”
딱 봐도 이족문명이라는 게 느껴지는 혐오스러운 모습!
보통 인간이라면 저걸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어느 정도 무너질 정도의 위용에 나는 잠시동안 멍해졌다. 은하계 저편에서 날아온 외계종족이라기에 이질적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꽤 자극적인 외형이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달기였다.
[흥…. 어차피 다 벌레같은 것들, 어떤 벌레가 더 역겨운가는 굳이 따질 것조차 되지 못한다.]
쿠구구구
달기의 마력이 폭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기의 몸뚱이가 격렬하게 뒤틀리더니 점차 반인반요(半人半妖)처럼 변했고, 사람과 구미호가 뒤섞인 듯한 칠흑의 요인(妖人)으로 변신을 끝냈다.
[먼저 간다!]
콰과광
잠시 후 음속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날아간 달기가 한 차례 천공을 찢어버리는 손톱을 날렸고 그와 동시에 허공에 떠있던 산보다 더 거대한 거대해파리가 죽 찢어져버리고 말았다. 폭발음과 함께 거대해파리에서 수만 개의 전광(電光)이 뿜어져 나왔고 하늘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은 기괴한 외계종족들이 날아드는 게 보였다.
슈키키킥!
키아아악
[아하하하하…!!]
콰과광!!
달기는 아홉 개의 꼬리를 휘둘러서 여유롭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모든 것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 전투장면을 보고 있던 대조영이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도대체 저 끝없는 마력은 어떻게 손에 넣은 것이지?”
“아마 금오십천군을 잡아먹었을 것 같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저 정도 힘을 손에 넣을 수 없어.”
이어진 대조영의 말에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지금 달기는 반요(半妖)상태라서 가진 힘의 1할도 쓰고 있지 않아. 그러나 이미 저 마족(魔族)들을 모두 압도하고 있잖은가.”
“1할도 쓰지 않고 있다고?”
“이 정도 잔챙이들을 상대하는 데는 반요상태면 족하다는 걸세.”
“…….”
“본체의 힘이 상상도 되지 않네. 아까 용케도 저런 괴물과 교섭했군.”
그 말대로였다.
크롸아아아아 -
라키올 종족에서 갑자기 소환진을 수천 개나 일으키더니 거기에서 머나먼 이계의 것으로 보이는 우주전함들이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주전함의 선두(船頭)에서 눈을 멀어버릴 정도로 강대한 광선포격이 시작되었고 그 모든 포격들이 달기에게 일점사되는 게 보였다.
쿠콰쾅
꾸콰콰콰콰쾅
마치 대륙을 일격에 날려버릴 듯한 그 장엄한 포격 속에서 달기의 광소가 메아리쳤다.
[아하하하하하!!! 벌레들아, 그리도 죽는 게 소원이라면 나의 꼬리를 해방시켜주마!]
오미해방(五尾解放)
환영지호(幻影之狐)
포격의 섬광 속에서 달기의 반요형태가 서서히 더욱 덩치가 커지더니 여우의 모습에 점차 가까워져갔다. 그리고 변신하는 동안 달기는 모든 광선의 힘을 그대로 무효화시키거나 자신의 몸에 흡수하는 듯 했다. 이윽고 변신을 끝내자 반투명한 여우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고, 달기의 눈빛이 혈광을 뿜었다.
[모조리 미쳐죽어라!]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으오오오오 -
외계종족의 우주전함의 표면에서 마치 물방울이 튀듯이 기묘한 왜곡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주전함 밖으로 처음 보는 이형의 외계종족들이 꾸물거리며 기어나왔고, 그 생물체들은 이윽고 전신이 뒤틀려서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나갔다.
끼아아악!!
꺄그아아아아악
수십만의 외계생물체가 단숨에 학살되는 걸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공공이 말했다.
[환살(幻殺)! 정신오염의 권능이군. 하지만 [옛 지배자]의 보호를 받는 주술종족이라면 정신방어력이 인간의 수백 배일 텐데 종잇장처럼 뚫어버리다니.]
퍼버버벙
우주전함이 터져나가기 시작했고 지상에 있던 괴물들도 환살의 영역 속에서 다 미쳐버려서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는 듯 했다. 나는 저게 달기의 진짜 실력 중에 절반도 드러내지 않은 것이라는 걸 깨닫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진짜…. 무식하게 강하다.’
삼황오제의 본체라도 오지 않으면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의 힘!
아까 대조영이 품은 의문이 무척 지당했다.
저 말도 안 되는 마력은 도대체 어디서 얻은 것인가?
나는 달기에게 뭔가 비밀이 있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음…. 저건?”
쿠구구구
달기가 외계인들을 학살하는 동안에도 저 멀리 산 중턱에서 황금빛의 원구가 떠오르며 빛을 발하는 게 보였다. 그걸 제일 먼저 눈치 챈 것은 나인 듯 했고, 나는 화안금정을 이용해서 그 빛을 좀 더 자세히 관찰했다.
츠아아 -
‘신력(神力)! 그리고 외계인들이 잔뜩 모여있… 우웁!!’
나는 시력을 강화시켜서 본 광경에서 잠시동안 토악질을 할 뻔 했다.
인간고기!!
아니, 차라리 인간 회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무언가’가 잔뜩 나열되어 있었다. 장기와 뼈가 발라져서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그것은 틀림없는 인간 제물들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시체를 나열했다면 역겨움이 덜했겠지만 문제는 그 제물들의 얼굴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심지어 살아있다는 점이었다.
‘사악한 주술의 힘!!’
저 라키올이라는 종족은 과학과 주술을 동시에 발달시킨 사악한 종족인 듯 했다.
저놈들이 전신을 횟감처럼 분해해놓고 목숨을 붙여놓은 이유는 뻔하다.
가능하면 [옛 지배자]가 먹기 좋게 하위종족인 인간제물을 포장한 것이다!
그 숫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기에 나는 이 일대에 살던 인간들이 모조리 라키올 종족의 인신공양 제물로 바쳐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놈들에게 있어서 우리 인간은 가축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저렇게 잔혹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걸 바로 실감할 수가 있었다.
쿠구구….
그리고 인간들을 인신공양 제물로 잔뜩 늘어놓은 가운데 라키올의 제사장으로 보이는 거대한 외눈의 외계인이 지팡이 같은 걸 휘두르며 신력을 집중시키는 게 보였다. 그리고 지팡이가 휘둘러질 때마다 얼굴만 남은 횟감같은 인간들이 잔뜩 고통어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아아악!!
그 지옥도가 펼쳐지는 동안 외계인 제사장이 서 있는 제단에는 강력한 힘이 마치 흘러들어가듯이 모이는 게 보였다. 그 힘은 틀림없는 신력(神力)이었고, 나는 그걸 보는 순간 제사장이 서 있는 제단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는 양옆에 있던 대조영과 공공에게 외쳤다.
“날 따라오시오!! 천제단을 제압해야하오!!”
틀림없다.
저기는 화산의 천제단!
외계인들이 인신공양을 하여 천제단을 통해 자기들이 모시는 [옛 지배자]를 여기에 소환하려는 것이다!
“좋아!”
[알았다!]
투쾅
우리 셋은 거의 동시에 날아서 맞은편의 천제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하자마자 그 천제단을 지키고 있던 외계인들에게 칼을 날려서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촤악!
검뢰(劍雷)로 단숨에 촉수외계인을 수십 마리나 베었을 때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투명한 광선이 날아왔다. 나는 흠칫하며 삼보절기로 피했는데 거기에는 또 허무의 공간으로 통하는 함정이 있었다.
아공간 주술인가?!
슈웅
“으윽 씨발!”
나는 찰나의 순간에 의념천주(意念天柱)를 강화시켜서 내가 함정에 갇히기 직전 공간 전체를 수직으로 절단해서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만 늦었어도 그대로 시공의 미아가 될 뻔했다는 걸 깨달았고 가슴이 철렁해졌다.
‘제길…. 파르텔퀴안 때문에 이 새끼들도 비슷한 수준인 줄 알고 얕봤는데 마왕에 준하는 은하계 패주급 종족은 좀 다르다 이건가?’
설마 필멸자 수준에서 시공간을 갖고 놀 줄은 생각도 못했다. 사용하는 주술이나 마법, 과학의 수준이 차원이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이런 놈들을 상대할 때는 단순한 공격력보다는 예측하지 못한 기습을 막아낼 수 있는 철저한 방어력이 더욱 효율적이었는데 무공은 방어력에 있어서는 그리 뛰어나다 할 수 없었기에 곤란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 나도 같은 방식으로 상대해주지!”
우웅
나는 바로 수요와 화요를 꺼내서 교차시켰다.
‘무량단으로도 되겠지만 차원결계를 깨는 데는 칠요가 훨씬 좋아!’
그리고 정면에 있던 라키올 종족의 외눈 제사장을 노려보며 외쳤다.
“칠요공명!!”
쿠오오오!!
다음 순간 칠요의 힘이 증폭되면서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나는 바로 그 순간 반쪽짜리의 힘을 갖고 있던 수요와 화요에서 강대한 신력이 생성되면서 서로의 힘을 더욱 크게 만드는 걸 알 수 있었고 써본 지 오래된 칠요공명의 힘에 반가운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칠요공명이 만들어낸 쌍요무형파(雙曜無形派)가 제사장을 향해 날아갔다. 제사장은 자신의 지팡이를 휘둘렀는데 그러자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그 존재감을 드러내었고 무형파를 막아내려는 듯 쩡 하는 소리를 내었다.
쿠구구구….
‘꽤 하는 주술사로군…!!’
겉으로는 놈과의 거리가 기껏해야 오십여 장이라서 한달음에 목을 벨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놈이 열 겹이 넘는 차원결계를 쳐두었기에 몇 번이나 사선을 넘어야만 했다. 나는 그 사선을 무공만으로 넘기에는 위험하다 여겼기에 쌍요공명을 발동시킨 것이다. 그리고 저 놈이 사용하는 주술의 수준을 보자 최소한 대라신선급이라는 걸 느끼자 꽤 까다로운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라키올. 굉장히 강력한 외계종족이다….’
인간족 따위는 백 번 멸망시키고 남을 정도로 강하다. 이정도 되니까 은하계를 지배한 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놈들조차 2.5티어 취급을 받는 것 - 여태껏 역사와 머나먼 별세계에 숨어있던 마(魔)가 동시에 지구에 출현하는 악몽같은 세상.
그것이 말세(末世)!
콰과광!!
[으오오오오…!!]
그러나 아무리 대라신선급 주술사라 하더라도 쌍요공명의 진격은 막을 수 없었다. 쌍요무형파에 잠시 저항하는 듯 하던 주술방벽도 순식간에 깨지자 제사장은 비명을 지르다가 순식간에 무형파에 휩쓸려서 소멸당하고 말았다.
슈르르….
그리고 천제단에 몰려들던 사악한 신력은 공급을 멈추고 수그러들었고 주변에 있던 라키올 주술사들은 당황한 듯 여기저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대조영과 공공은 그런 패잔병들을 쫓아가서 다 잡아죽이기 시작했다.
“이 사악한 놈들! 다 죽여버리리라!”
[나도 돕지!]
푸콰콱
대조영이 신나게 흑마를 몰면서 외계종족들을 참살하는 걸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천제단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천제단에서 좀 떨어진 곳에 널려있던 살아있는 인간제물들을 씁쓸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처참하군. 적어도 당신들을 고통없이 보내주겠소. 와라, 생사부!”
파앗
나는 곧장 생사부(生死簿)를 소환했다.
“다행이군!”
외우주에서도 생사부는 소환된다.
다만 이 외우주 명계의 생사부일 것이고 내 세계의 것과는 다르리라.
그리고 생사부가 우리 세계에 있던 것과 달리 무척이나 낡고 헤진 상태라는 걸 알아차렸다.
‘역시나 이 세계도 명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군…. 그것도 훨씬 심한 상황.’
이래서는 저 인간제물들이 죽는다 해도 또다시 망령이 되어 끔찍한 고통을 겪을 뿐이리라.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생사부에게 명령했다.
“생사부여. 저 모든 자들의 영혼에게 안식을 주어라.”
우우우 -
이윽고 모든 제물들이 편안한 얼굴로 숨을 거두었다. 어차피 저들을 살려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이 정도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행위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생사부를 소환해제하고는 천제단 위로 올라갔다.
‘충분한 신력이 모여 있군.’
이 정도면 별개의 제물이 없어도 신격 주술에 박식한 공공의 도움을 받는 것만으로도 천제단을 발동시킬 수 있으리라.
나는 지긋이 하늘의 전황을 쳐다보았다. 우리가 천제단을 제압하는 것과는 별개로 달기는 여전히 오미환살(五尾幻殺)의 힘으로 여유작작하게 라키올 종족을 학살하고 있었다. 달기의 승리는 거의 확실했기에 나는 이제 천제단을 이용하는 일만 남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 어쩌지….”
[옛 지배자]의 소환은 막았으니 이제 내게는 두 가지 선택이 남아있었다.
하나는 이대로 이 제단에 제물을 바쳐서 천제단을 작동시켜 곤륜성으로 가는 것.
또 하나는 바로 금요의 행방을 알기 위해 소호금천을 소환하는 것.
‘순서상으로 볼 때는 소호금천 소환이 먼저다. 금요의 행방을 알아낸 후 곤륜성으로 가면 깔끔하겠지. 하지만….’
정말로 이 2개의 선택밖에 없는 걸까?
일이 순서대로 풀리고는 있지만 어쩐지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더 좋은 이용방법이 있지 않을라나?
“…….”
잠깐만… 설마.
‘그래…. 어차피 천제단은 여기만 있는 게 아냐. 그렇다면 내 입장에선 ‘그걸’ 확인해봐야 해!’
약 한 식경이 지난 후, 천공의 암운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라키올 종족이 도저히 달기에게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모든 병력을 철수시켰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달기, 대조영, 공공이 모두 내가 서 있는 천제단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달기가 말했다.
“자, 이제 소호금천을 소환하자. 복희의 제자니까 소환정도는 할 줄 알겠지?”
“…….”
“뭐 하느냐?”
“아니, 그러지 않겠다.”
달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라고? 금요의 행방을 알아내기로 했잖느냐.”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더 좋은 방법?”
나는 씨익 웃으며 달기에게 말했다.
“요순(堯舜)을 소환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