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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달기의 등장에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달기가 뭔가 목적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목적이 있는 놈과는 대화할 수 있어….’
그냥 나를 때려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달기의 성격상 이렇게 유하게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으리라. 하지만 달기는 어찌되었던 고위 마왕이었고 얕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나는 내심 긴장한 채 말했다.
“도와달라고? 무엇을 도와달란 말인가?”
그러자 달기는 무표정하면서도 느긋하게 대꾸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거라. 바깥에 있는 네 동료들이 네 살기를 느끼고 벌써 들어와버렸지 않느냐.”
슈슉!!
달기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당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대조영과 공공의 신형이 순간이동하듯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또한 최소 대라신선 이상가는 존재였기에 내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 같자 바로 감지해낸 것이다.
“강력한 존재군.”
[마왕인가?]
그들 또한 달기를 크게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삽시간에 3대1의 구도가 만들어졌으나 달기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 듯 했다. 달기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복희의 제자. 종언(終焉)을 앞두고 무엇을 하고싶은건지 모르겠지만 본녀를 도우면 나쁠 게 없을 것이다.”
“…….”
나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나 들어보지.”
잠시동안 살벌한 긴장의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서로 날을 세우고 있으면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싸움을 미루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리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달기였다.
“태음지계(太陰之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다오.”
“……?”
“그러면 본녀도 너희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도록 하겠다.”
태음지계?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기에 힐끔 대조영과 공공을 보았지만 그들 또한 잘 모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달기가 이쪽의 상황을 눈치챈 듯 미간을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
“…그 복희의 제자인데 태음지계를 모른다고? 그럴 수가 있느냐?”
헉!
뭔가 지금 반응은 실수를 해버린 거 같은데?!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일단 침착하게 수습해보기로 했다.
“내가 아는 중에는 그런 게 없다. 하지만 부르는 명칭이 다를지도 모르지. 네 멋대로 이야기를 꺼내놓고 실망하는 게 어딨나?”
그러자 달기가 미심쩍은 듯 시험하는 질문을 했다.
“흐으음…. 그렇다면 태양(太陽)의 영(靈)과 태음(太陰)의 영(靈)에 대해서는 알고 있느냐?”
“…….”
“이건 술법의 신 복희의 제자로서 모를 수가 없으리라.”
씨발…. 알 리가 없잖아….
‘그게 대체 뭔데!’
하지만 여기서 모른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기세에서 밀리면 바로 달기가 교섭하려는 의욕을 잃고 전투를 벌이거나 도망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 나를 믿고 따라오고 있는 대조영과 공공마저 내게서 신뢰를 잃으리라.
‘대충 때우자!’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표정을 빠르게 관리하며 말했다.
“그거군. 스승님께서 말하셨던 게 기억나는군. 설마 넌 태음지계에서 중대한 물건을 훔치려는 거냐?”
태음지계가 뭔지는 몰라도 거기에 들어가려 한다면 당연히 달기의 성격상 뭘 훔치려 하는 것이리라! 이것은 대도(大盜)의 직감이다.
달기는 내 말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
“…….”
찍어봤는데 맞나보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화난 척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달기여! 복희의 제자인 내가 그걸 도와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무슨 의도로 말한 것이냐!”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짐짓 때려 맞춰보았지만 효과는 괜찮아 보였다. 달기는 내 외침을 듣자마자 다소 냉막한 표정으로 대꾸한 것이다.
“그대와 나의 처지가 별다를 바 없을 터인데 말세를 앞에 두고 여유작작하구나.”
“뭣이?”
“본녀는 이 세상에 버려진 여와의 음신(陰神). 그대 또한 복희가 소멸하여 끈 잃은 연이나 다름없어졌다. 서로의 종사(宗師)를 잃은 이 마당에 사소한 법칙에 구애되어 영원한 종말을 받아들이겠단 말이냐?”
“…….”
“어차피 우리의 창조주는 우리를 버리고 신좌(神座)로 되돌아갔다. 그러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순간이 온 것이다. 그대 또한 그 때문에 칠요를 모으며 세상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냐?”
“각자도생을 하려고 태음지계로 간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말도 안 되지는 않지.”
이윽고 달기는 고혹적인 미소를 띄며 말했다.
“태양지계와 태음지계의 힘을 모두 얻게 되면 법문(法文)이 존재하는 곳으로 바로 도약할 수 있게 되니까.”
“……?!”
법문?!
난데없이 여기서 법문이 나오다니!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
“크윽.”
사실 전혀 못 알아들었지만 알아들은 척 연기를 하자 달기가 내게 새하얀 섬섬옥수를 내밀며 말했다.
“칠요를 꽤 모은듯 한데 그 힘을 합쳐서 한 번에 법문의 힘을 얻어버리자. 그리고 법문의 힘을 이용해서 이 세계를 벗어나버리는 거다.”
“이 세계를 벗어난다고?”
“뭘 자꾸 모르는 척 하는 거지? 어차피 이 세계의 종말은 확정이니 외우주(外宇宙)로 도망칠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니 그대로서도 큰 이득이 아닌가?”
“…….”
“법문의 마력이라면 [수호자]를 가볍게 제압하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겠지.”
머, 머리가 아프지만 하나는 알겠다.
‘달기는 무생노모(無生老母)의 법문(法文)이 있는 장소를 알고 있어!!’
그리고 그 법문에 바로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태양지계와 태음지계라고 하는 특수한 세계에 진입해서 무언가 ‘힘’을 얻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내가 머리가 별로 좋지는 않지만 달기는 지금 뭔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걸 도저히 알아낼 방법이 없었기에 내가 당황한 척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옆에 서 있던 대조영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개인의 생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어차피 이 세계가 멸망하면 모든 것이 소멸할 터인데 이 굴레를 벗어나 다른 굴레로 옮겨간다 한듯 그것이 진실로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이냐.”
그러자 달기가 요이(妖異)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가만 보니 네놈은 예전에 내가 봉인된 곳에 찾아왔던 놈이었구나. 인간으로써 신의 힘이 깃든 자, 대조영이라 했던가?”
“그렇다. 나는 대조영이다. 달기 네가 인간으로 변한 건 처음 보는구나.”
어?
저 둘은 구면(舊面)인 모양이었다.
“후후후후. 종말을 예견하여 각지의 강력한 존재들에게 예언시를 설파하고 다녔던 모양이군. 하지만 결과가 어찌되었지? 모든 영웅은 사멸하였고 황제의 승리와 흉신의 재림만이 남았다. 실패자 주제에 감히 본녀에게 훈수를 두겠다는 모양이 가소롭구나.”
“…….”
대조영이 침묵하자 공공이 말했다.
[달기여. 나의 주군께 들은 바가 있다. 외우주는 단순히 굴레의 바깥이 아니라 거대한 [경계]…. 그렇기에 그 어떠한 혼돈의 신격도 외우주를 넘으려 하지 않는다 하였다. 단순히 수호자를 쓰러뜨린다 하여 완전히 다른 세상을 넘을 수 있을 리가 없노라.]
“그건 법문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과는 대화하지 않겠다.”
[뭐라고.]
공공이 약간 열받은 듯 했지만 달기는 도리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쪽을 도발했다.
“웃기는구나. 제법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본녀가 약간 고개를 숙여주니 너희 따위를 어찌하지 못할 줄 아느냐? 아하하하하…!!”
쿠구구구구구!!
쿠오오오
잠시동안 달기에게서 어마어마한 마력(魔力)이 분출되어 마치 폭풍같은 기세를 휘날렸고 그 마력의 파장에 나는 물론이고 대조영과 공공도 약간 비틀거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를 못했다.
파지직! 파지직!!
달기의 인간형태가 약간 환영과 겹쳐지면서 반인반요(半人半妖)와 비슷하게 변하는 게 보였다. 틀림없이 마력을 약간 개방한 것이고 아직 완전체의 힘은 드러내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달기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미… 미쳤군!!’
이 정도의 마력이라면 팔부신중 개개인은 이미 가볍게 압도하고도 남는다. 이미 과거에 내가 백련교주와 함께 상대했던 본체 달기의 힘을 상회하고 있는 것이다! 팔부신중 최강이라 하는 천인과 아수라조차 지금의 달기가 전력을 다하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학살당하리라.
꿀꺽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저’ 달기가 본체를 드러내면 혼자서 팔부신중을 전멸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라는 게 직감된 것이다. 내가 모든 봉인을 풀고 사대신기와 칠요를 이용해서 싸우더라도 도저히 승산을 점칠 수가 없었다. 흑웅까지 도와주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사실 흑웅의 실력이 측정할 수 없는 경향이 있었기에 그나마도 확실치가 않다.
확실하다.
지금의 달기는 [옛 지배자]에 버금가는 - 초마왕(超魔王)!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옛 지배자]의 사도로 들어가 있을 때보다 한참이나 더 강력해진 상태로 말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문득 나는 뭔가가 생각나서 입을 열었다.
“달기…. 설마… 미호(美狐)를….”
“……?”
스으으
달기가 우리에게 무력시위를 하다가 뜻밖의 질문인지 기세를 약간 거두었다. 달기는 의외라는 눈으로 나를 보다가 말했다.
“복희의 제자. 설마 내 ‘꼬리’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느냐?”
“……!!”
뭐라고…!!
불끈 하고 수요를 잡고 있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잠시 동안 달기의 강력함을 잊은 채 상당한 분노와 격정에 휩싸였고 성대가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호를… 잡아먹었나!!”
“우후후후…. 잡아먹었냐니. 아하하하하.”
달기는 갑자기 깔깔 웃으며 미친듯이 광소(狂笑)했다.
“자기 꼬리를 잡아먹는 놈이 있단 말이냐? 아하하하하!!”
“미호를 어떻게 했냐고.”
“흥. 말하는 걸 보아하니 복희와 여와가 소멸될 때의 상황을 전혀 모르나보구나.”
한심한 듯 나를 쳐다보던 달기가 약간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왕모를 앞세워 싸우던 여와가 내 꼬리를 여벌목숨으로 이용해서 소모해 버렸다. 본녀는 두 번 다시 그 꼬리를 찾지 못하게 된 것이다.”
“…….”
“고대에 내 꼬리를 떼인 것도 화가 나는데 그 꼬리 때문에 본녀에게 살기를 드러내다니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이구나….”
츠츠츠
달기의 눈에서 서서히 혈광이 흐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 혈광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세계에 미호가 없는 건 당연한 것이다.
‘그, 그래. 이 세계는 어쨌든 외우주야. 우리 세계와는 상관없는 우주…. 이곳에서 미호가 서왕모의 여벌목숨으로 쓰인 건 이미 정해진 역사였던 거야.’
도리어 우리 세계의 역사가 이질적인 게 아닐까?
본디 미호가 독자적으로 각성할 일은 없었는데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인과의 수레바퀴가 틀어진 건 아니었을까?
대조영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겠는가? 싸울 건가 아니면 달기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
“빨리 결정해야겠군. 더 이상 미룰 분위기가 아닐세.”
쿠구구구
대조영의 말대로였다. 달기의 인내심이 점차 한계에 치달아가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이성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본질은 극악한 마왕이기 때문에 자신이 힘에서 앞선다 생각하니 거침없이 무력을 써서 우리를 없애려 할 수 있는 것이다.
‘…달기는 법문의 소재를 알고 있다. 당연히 이 제안은 받아들여야 해.’
만일 달기를 통해 새로운 법문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면 당연히 내게 이득이다. 만일에 달기를 통해 3번째 법문의 소재를 알 수 있다면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무수한 교섭경험으로 인해 생겨난 직감이 내게 또 다른 말을 속삭이는 걸 느낀다.
그냥 제안을 받아들이면 끝까지 이용당할 뿐이다.
‘얕보이면 안 돼. 한 번 틀어봐야 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조건이라?”
달기의 반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선 첫 번째…. 네가 알고 있는 법문의 위치가 남극에 있는 건 아니겠지? 이 질문에 솔직히 대답해라.”
이건 반드시 확인해봐야 한다.
기껏 달기의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만일에 내가 이미 알고 있는 2개의 법문과 위치가 동일한 거라면 헛수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달기는 왠지 기분좋은 미소를 띄었다.
“우후후. 아니다.”
“…….”
나는 저 기분좋음이 왜인지 알 수 있었다.
‘젠장…. 저 녀석, 남극에 있는 법문은 모르고 있었구만. 내가 말하니까 새로운 법문을 위치를 알게 된 거야.’
본의 아니게 정보를 공짜로 준 셈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남극에 있는 건 엄청난 힘이 있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알든 모르든 상대에게 빼앗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연속해서 말했다.
“또 하나. 우리가 공짜로 일해줄 순 없으니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알고 나를 따라온 건지 말해.”
“아주 바라는 게 많구나…. 본녀가 당장이라도 너희를 몰살시킬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냐?”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태음지계는 너 혼자 열게 될 것이다.”
“후후…. 내 쪽이 아쉽다는 것이냐?”
“어려울 거 없지 않은가? 그저 대등하게 교섭하자는 것뿐이다. 네가 그렇게 큰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
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의 정보는 제곡(帝嚳)에게 들었다.”
“……!! 뭐라고!”
삼황오제 제곡이?!
나는 뜬금없는 대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닌지 대조영이나 공공도 크게 놀란 듯 했고, 공공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백웅이여…. 설마 제곡에게 원한을 산 적이 있는가?]
“아, 아니. 그럴 리가.”
내가 이 세상에 온지 며칠밖에 안 됐는데 원한을 사고 말고가 어딨어!
아니 그것보다 제곡이 어째서 내 정보를 달기한테 줬단 말인가?
“어떻게 제곡한테 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거지?”
“내 목적을 위해서 몇 가지 보물을 그에게 공양했을 뿐이니라. 특히 제곡은 의욕이 사라진 사제(四帝)중에서 유일하게 생기있게 돌아다니는 존재니까.”
“제곡이…?”
전욱, 요순, 소호 등은 황제에게 당했다는 절망감에 주저앉아있는데 제곡만 의욕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본녀를 도와주는 대가는 이걸로 하지.”
내가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할 때 휙하고 달기가 내게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탓
내가 물건을 낚아채듯 받자 그것은 시뻘건 빛이 이글거리는 귀걸이로 보였다. 강렬한 화염의 기운이 느껴지는 귀걸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달기가 말했다.
“절교(絶敎)의 보패인 이화령(梨花鈴)이다. 금광성모가 갖고 있던 것이지.”
“보패….”
“상급 보패라고 자신할 수 있다. 도와주는 대가로는 충분치 않느냐?”
나는 내가 대가를 받는 일은 드물었기에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화령을 물끄러미 보다가 문득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달기에게 말했다.
“금광성모라고? 금오십천군 중 하나일 텐데 그녀가 너한테 이 보패를 그냥 줬단 말이냐.”
“…….”
달기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요염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주는 순간 나는 오싹하는 기분과 함께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아차렸다.
그러면 달기가 힘이 강해진 이유, 금광성모의 이화령이 놈의 손에 있는 이유같은 게 바로 설명이 되어버린다.
‘이… 이 새끼….’
나는 멍하니 있다가 잠시 후 입술을 꾹 깨물면서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네가 제곡이나 다른 [옛 지배자]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걸 네 이름을 걸고 약속해라. 네가 남의 꼭두각시라면 우리 또한 위험해지니까.”
“좋아. 본녀 달기의 이름으로 나는 나 자신의 의지로만 움직이는 걸 약속하노라.”
우웅
[이름]의 약속이 잠시동안 빛을 내는 게 느껴졌다. 달기가 이름까지 서슴없이 거는 걸 보면 정말로 저 녀석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게 아니라 자율의지로 외우주로의 탈출을 계획하는 듯 했다.
“동맹은 성립되었다.”
나는 그 말을 꺼내면서도 못내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빌어먹을…. 괴물같은 새끼.’
틀림없다.
달기는 금오십천군을 죄다 잡아먹어서 그 힘을 불린 것이리라.
이렇게 잔인하고 강력한 놈과 손을 잡아도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