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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곧장 대조영이 말하는 장소로 향했다.
파앗
휘이잉 -
찬바람이 가득 불어오는 바닷가의 절벽. 나는 대조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신이 말한 문무왕의 왕릉(王陵)이 여기인 것 같소만, 무덤이라곤 보이지 않고 그저 바다밖에 없구려.”
그러자 뒤에서 따그닥하며 말을 몰던 대조영이 대꾸했다.
“문무왕의 무덤은 바다속에 있네. 정확히는 저 중앙의 바위이지.”
“뭣이? 무슨 왕이 자기 무덤을…. 아!”
그 순간 나는 과거 해동밀천주의 가면을 썼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러고 보니 문무왕은 자기 자신을 동해용왕 오광에게 공양해서 용(龍)으로 신화(神化)했었지! 그렇다면….’
나는 저 멀리에 보이는 중앙의 바위가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는 말했다.
“진짜 무덤이라기보다는 신화공양의 장소구려!”
“그렇네. 그리고 바로 저기에 목요 해인이 존재하지.”
대조영은 그렇게 말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문무왕. 우리가 온 걸 알고 있을 텐데 이만 나와보게나.”
우우우우우!!
다음 순간 - 문무왕의 왕릉이라고 하는 바다의 바위에서 신령스러운 오색빛이 치솟아 올랐고 그 오색빛이 몸 길이가 삼 장에 이르는 용(龍)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실체화된 용은 아니었으며 영기(靈氣)로 이루어진 몸뚱이로 보였다.
여의주(如意珠)를 입에 물고 있던 그 용이 영언을 내뿜으며 말했다.
[대조영! 천사백여 년이나 지나서 내 앞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인가!]
“생전에 그대가 내게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왔다는 뜻이지.”
그렇게 말한 대조영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당제국 현종(玄宗)이 2차 대군을 일으켜 신라(新羅)를 치려하는 걸 요동에서 막아준 건 바로 나였다. 그대는 죽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내게 빚을 갚겠다고 제왕으로서 약속하지 않았던가?”
[…….]
“영적인 존재가 된 지금도 그 약속은 유효하리라.”
[목요 해인을 내놓으라는 말인가.]
“그렇다. 문무왕이여.”
그러자 문무왕이라 불린 용은 탄식하며 말했다.
[오오…. 목요의 힘으로 간신히 이 땅에 엄습하는 무한한 사기(邪氣)를 억누르고 있을진대…. 이걸 너희에게 넘겨주면 동해의 모든 인간들이 이족에게 오염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만두어라.]
“사기라고? 어디서 오는 사기인가?”
[아주 먼 대양(大洋)…. 아주 흉맹한 ‘무언가’가 깨어나려고 꿈틀거리는 그 파동만으로도 세상에 전율이 일어나노라. 옆에 있는 섬나라 동영은 이미 사기에 오염되어 인간과 이족의 반마(半魔)가 태어나고 있다.]
“…흉신(凶神)이군.”
그렇게 중얼거린 대조영이 말했다.
“어차피 세상은 다 망해버렸다. 이 반도의 생명들이 조금 일찍 죽는다하여 달라질 것은 없을 테니, 차라리 새로운 희망에게 목요의 힘을 넘기거라.”
[새로운 희망이라고?]
문무왕의 반문에 대조영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여기 삼황 복희씨의 제자인 백웅이 있다. 그는 이미 칠요 중 사요(四曜)를 모았으니 조만간 칠요를 모두 모아 이 세상을 구할지도 모른다!”
[……!! 태초의 용신 복희 님의 제자라고…!!]
문무왕은 크게 경악한 듯 빛나는 용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문무왕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반갑소, 문무왕. 내가 바로 복희 님의 제자인 백웅이오.”
[오오….]
“부탁이니 내게 목요 해인을 넘겨주시오.”
문무왕은 절규하듯 외쳤다.
[…백웅이여! 넘겨주는 건 어렵지 않으나…. 이 동해의 가련한 인간들은 어찌한단 말이냐…. 동영의 왜족들에게 총포(銃砲)로 짓밟혀 고통 받던 민초들에게 이족의 공포가 또다시 덮쳐오는 생지옥을 차마 인간의 도리로써 바라볼 수 있으랴!]
“…….”
[그것은 본왕의 도리가 아니다…. 최소한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다오!]
나는 문무왕이 생각보다 백성들을 가련하게 여기는 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소. 흉신이 못 까불게 내가 어떻게든 해볼 것을 약속하겠소이다.”
[……?! 저 대양 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마신(魔神)을 제압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나는 자신 있게 내 가슴을 주먹으로 쾅 치며 말했다.
“난 가능하오. 정 뭣하다면 스승인 복희의 이름도 걸 수 있소!”
복희는 이 세계에선 이미 죽었으니까 이름 걸어도 상관없다!
[……!! 대, 대단하구나!! 이걸 받아라.]
쿠오오오 -
내 기세에 크게 감격한 듯한 문무왕이 잠시 후 자신의 여의주를 토해내듯 내 쪽으로 날렸다. 그리 빠른 속도가 아니었고 내 앞에 마치 멈추듯 천천히 날아온 여의주는 이내 딱 양손에 들어올만한 크기의 광구가 되어서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내가 여의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문무왕이 말했다.
[목요 해인의 힘을 잃지 않기 위해 그동안 내 여의주의 힘을 소모하여 보관해 왔다. 여의주를 깬다면 바로 목요를 쓸 수 있으리라!]
“음…?! 당신의 여의주까지 같이 준 것이오?”
[그대가 백성들을 보호한다고 약속했으니 더 이상 용의 힘은 필요 없노라.]
“허….”
[그리고 이것도 받으라.]
문무왕이 자신의 눈을 빛내자 바다에서 무언가 기다란 피리 같은 게 촥 하고 나타나서 내 앞으로 날아왔다. 나는 그 피리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흠칫했다.
“만파식적(萬波息笛)!”
[호오…. 한 눈에 만파식적을 알아보는가!]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나는 전생하면서 해동밀천주를 두들겨 패고 그놈의 가면을 쓴 후 보물고를 털어서 만파식적을 훔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건 해동밀천이 갖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왜 여기에….”
[해동밀천? 그런 건 모르겠고 이건 나 문무왕이 용이 된 이래 쭉 보관하고 있었노라.]
“……?”
응? 뭐지?
분명 해동밀천주의 기억으로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문파인 해동밀천의 밀교에서 전해져오는 만파식적이라고 했는데 이 세계에서는 문무왕의 품을 떠난 적이 없단 말인가?
‘그럼 우리 세계에서 누군가가 문무왕의 무덤을 뒤졌다는 건가…? 그리고 그 만파식적을 해동밀천에 줬다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잠시 후 문무왕이 말했다.
[나는 목요를 쓰는 것만으로도 힘이 벅차서 만파식적을 잘 쓸 수 없었지만…. 그대라면 목요와 만파식적을 함께 쓸 수도 있으리라.]
“함께 쓴다고?”
[그렇다. 아주 오랫동안 목요와 만파식적은 같은 장소에 있으며 영력의 파장을 맞춰왔기에, 이 둘이 힘을 합치면 상승작용이 일어날 것이리라. 사실 만파식적은 목요를 위해 만들어낸 보조용 보패….]
그렇게 말한 문무왕이 서서히 안광이 뿜어져 나오던 눈을 감기 시작했다.
[부탁한다…. 백성들을 구해다오….]
슈르륵
문무왕의 영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옆에서 쳐다보고 있던 공공이 말했다.
[영력의 근원인 여의주를 타인에게 준 것은 심장을 내준 것과 마찬가지. 저 용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과 다름없구나.]
“…….”
[백웅이여. 이로써 오요(五曜)를 손에 넣었으니 이제 남은 건 금요와 일요뿐이다. 그 행방은 짐작 가는 곳이 있는가.]
나는 문무왕의 최후를 잠시 아련한 눈으로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요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손에 넣을 수 없소. 나머지 육요를 모두 손에 넣고 나서 칠요의 시련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사실상 금요야말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칠요일 것이오.”
[칠요의 시련이라…. 우리 셋의 힘이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아니되오. 칠요의 시련은 지금 우리 힘보다 최소 열 배는 강해야 통과할 수 있을 거요.”
[……!!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
제천대성에 신공표, 게다가 지금처럼 반감된 칠요의 힘이 아니라 전성기 칠요의 칠요공명에 천우진과 절대지경 동료들과 초상기인 진의 힘까지 다 빌렸는데도 마지막 일요의 시련까지 가니까 전멸위기에 놓였었다.
‘어쩌다보니 벌써 5요까지 모아버렸지만 칠요의 시련은 안 돼. 너무 어려운데다 시간도 전력도 없어….’
그 악랄한 난이도를 이미 알고 있는 나였기에 고작해야 나, 대조영, 공공 수준의 힘으로 도전하는 건 망상이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애초에 내 목표는 칠요의 시련을 통과하는 게 아니오. 포기하겠소!”
[뭐라고? 그렇다면 일요를 획득할 수 없으니 7요를 다 모으지 못하잖은가.]
“그래도 상관없소. 그건 어차피 황제 공손헌원의 함정에 지나지 않소! 나는 그 개삽질을 하지 않겠소!”
응룡에 구천현녀까지 드잡이질하면서 행성 박살내며 싸우는 멍청한 짓은 한번으로 족하다!
[으음…. 그럼 지금 계획은 금요(金曜)부터 얻으러 가는 거겠군.]
“그렇소. 내가 대충 위치를 알고 있으니 나만 믿고 따라오시오.”
내가 연거푸 이야기하자 내 말을 듣고 있던 대조영과 공공이 잠시 꿀먹은 벙어리처럼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
“…….”
“…응? 다들 왜 그러시오?”
그러자 대조영이 당혹한 듯 말했다.
“음…. 마치 그 모든 걸 겪어본 사람처럼 얘기하는군. 황제의 음모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고, 칠요의 시련이 함정이라니…. 종말에 대해서는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여기까지 아는 자는 처음 보네.”
공공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 음흉한 황제의 흉계를 어찌 그렇게나 알 수 있지? 게다가 금요의 위치까지….]
나는 잠시 후 쩌렁쩌렁 외쳤다.
“다 복희 님의 예언으로 인해 알 수 있었던 거요. 의심하지 말고 나만 따라오면 다 잘될 것이오!”
기왕 이렇게 된 거 복희의 예언이라고 하면 다 설명되리라!
“으음…. 과연.”
[대단한 자신감이로다.]
“그럼 갑시다!”
파앗
나는 그들을 데리고 금요가 있는 팔리아스로 향했다. 팔리아스로 향하는 차원결계는 본디 멀린이 주는 수정구가 있어야 깰 수 있었지만, 나는 차원결계 앞에 서자마자 화요와 수요를 교차시키며 내가 가진 신력을 집중했다.
우우우 -
쌍요공명(雙曜共鳴)!
콰칭!!
잠시 후 쌍요공명으로 뿜어낸 강력한 신력의 파장이 팔리아스의 차원결계를 깨버리고 말았다. 나는 과거와 달리 쌍요공명을 해도 체력소모가 그리 크지 않음을 깨달았다.
‘옛날보다 수준이 훨씬 높아진 건가? 아니…. 칠요 자체가 힘이 약해진 탓이 크겠지.’
슈욱
어찌되었든 결계가 깨진 틈에 팔리아스 내부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거신족의 봉인지가 보였다. 우리가 그 안으로 진입하자, 가공할 마력의 불쾌한 냄새가 확하고 코에 덮쳐오는 게 느껴졌다.
후욱….
“으윽. 이건….”
공공은 여기저기에 박살나 있던 거신족의 동상을 쳐다보더니 탄식했다.
[누군가 어둠의 세력이 이 성지를 모두 박살내었구나. 그리고 나의 동족들도 모두 석상이 된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살해당했다…!!]
“……!!”
[이곳은 버려진 곳이다. 이런 곳에 정말로 금요가 있단 말인가?]
“좀 더 들어가 봅시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더욱 안으로 진입했는데, 이윽고 흉측하게 박살이 난 한 아름다운 미녀의 석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미녀의 석상 잔해로 다가가서 잠시 얼굴부분을 살폈고, 그녀가 누군지를 깨달았다.
“호수의 마녀 비비안….”
그녀는 석화(石化) 저주에 당한 후 그대로 박살나서 죽은 모양이다.
‘전투는 수백 년 전에 끝났군.’
비비안의 실력은 서방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마법사였는데 이런 꼴로 버려진 것을 보면, 이 성지 팔리아스가 붕괴한 건 벌써 몇 백 년이나 지난 일인 듯 했다. 그녀 외에도 여기저기에 인간족 마법사와 정령술사들이 잔뜩 석화당해 죽어있었다.
그리고 조디악 멤버즈의 얼굴도 다 찾아낼 수 있었다. 모두 석상이 되어 죽어있긴 했지만 대개 내가 한 번씩 보았던 얼굴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성지의 전투에서 적에 맞서 싸우다 전멸한 모양이다.
“아서 왕. 멀린…. 흠.”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엑스칼리버를 주웠다. 아서 왕의 팔다리가 모두 석상이 되어 부숴져 죽었지만 그가 가진 보패급 병기는 남아있던 모양이다. 멀린도 아서 왕을 지키려는 듯 그의 앞을 가로막은 모습으로 석상이 되어 있었다.
“바토리. 한스 탈호퍼.”
수천 년을 살아온 혈마법 마스터이자 마녀도 석상이 되어 있었으며 서양 최강급의 검호인 소드마스터 또한 마찬가지였다.
옆에 따라오던 대조영이 어리둥절해했다.
“서방의 고수들 같은데 이들과 아는 사이였나?”
“그냥 얼굴만….”
나는 대충 둘러대었다.
‘…엄청난 실력자로군.’
나는 그 전투의 흔적을 보며 내심 혀를 내둘렀다. 비비안은 물론이고 이 수많은 인간마법사들이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모조리 석화에 당해서 소멸당한 게 틀림없었다. 이들 중에 조디악 멤버즈가 모두 모였을 텐데 그들도 저항하지 못했다는 건, 쳐들어온 자의 힘이 그만큼 압도적이었다는 말이었으리라.
침략자의 특기는 틀림없이 석화저주일 것이다.
‘…엄청난 힘이야. 이 세계에 오래 머무르게 된다면 틀림없이 경계할만한 대상이다.’
누가 이랬는지 떠오르는 후보가 하나 있긴 하다.
그리고 그 놈이 만일에 적이라면 - 정말로 싸우고 싶지 않다.
과거 나보다 더욱 강력했던 내 동료들조차도 악전고투를 거듭해서 쓰러뜨린 괴물이기 때문이다.
‘제기랄. 그 놈이 볼일을 마치고 이 세계에서 나가버렸길 바라는 수밖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가장 좁고 어두운 방 - [서방의 수호자]와 과거에 교신했던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서방의 수호자]는 아무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나를 따라서 대조영이 걸어 들어오더니 말했다.
“이곳에 강대한 존재가 머문 흔적이 있지만 이젠 아무도 없군. 여긴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네.”
“…….”
나는 그 말에서 현 시점에 서방의 인간저항세력은 모조리 붕괴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성지 팔리아스는 파괴당하고 금요는 실종되고 서방의 수호자조차 신계로 돌아가 버린 막장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아니오…. 아직 가볼만한 곳이 있소.”
“그게 어딘가?”
나는 집념이 가득한 눈빛으로 대꾸했다.
“아스타나!!”
선지자와 거래하면 금요의 위치도 알 수 있을 것이고, 더불어 나일라토프의 흉계가 무엇인지도 짐작할 수 있겠지!
파앗
나는 둘을 데리고 아스타나로 향했다. 그리고 둘을 바깥에 세워둔 채 아스타나의 조그마한 성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끼익 -
나는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바로 외치려고 했다.
“선지자!! 거래…. 응?!”
하지만 안에 들어가는 순간 멈칫하고 설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웬 동양의 새하얀 백의(白衣)를 입은 여인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백의는 마치 고대 하나라의 복식과 같아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뒤태만 보아도 그녀가 굉장히 아름다운 존재라는 건 짐작이 가능했고, 이윽고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내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스윽
“여기저기 순간이동 술수를 써서 촐랑거리며 돌아다니길래 미리 위치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더구나. 그래도 한 수 앞서서 기다리는데 성공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잠시동안 숨이 멎을 것처럼 놀랐다.
“……!!”
아주 익숙한 얼굴.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인간미 없이 아름다운 경국지색의 미녀.
미호(美狐)와 마치 자매처럼 닮은 그 미녀를 보자 나는 주춤거리고 말았다.
“너, 너는.”
그녀는 힐끔 아스타나의 성당 곳곳을 둘러보는 듯 했다.
“네가 너 스스로를 복희의 제자라 칭한다고 들었다. 그 말대로 예전에 뵈었던 그 분의 모습을 따라하고 있구나.”
“…….”
역시…. 눈앞의 존재는 복희의 외모를 알고 있다.
내가 긴장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내게 질문했다.
“복희의 제자여. 이 인적 없는 장소에는 왜 온 거지?”
“너도 선지자를 찾아온 게 아니었나?”
“선지자…? 후후, 처음 듣는 이름이구나.”
“…….”
뭔가 잘못되었다.
뚜벅
뚜벅
내가 그런 예감이 확 들었을 때 그 백의의 미녀가 요이(妖異)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 등 뒤에 있던 동유럽의 화로가 확 하고 요사스러운 불길을 흘려내었고, 동시에 미녀의 등 뒤에서 커다랗고 풍만한 백색의 여우 꼬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노라.”
후와악
아홉 개의 꼬리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그 위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가 말을 걸었다.
“정말로 네가 복희의 제자라면 본녀를 도와줘야겠다.”
달기(妲己)가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