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328화 (1,325/1,615)

1328====================

사신지혼(四神之魂)

내가 공공의 말에 침묵하자 공공이 말을 이었다.

[화요를 가져갈테면 가져가라. 막지 않는다.]

“…….”

나는 홀린 듯 화요의 방으로 가려 했지만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멈칫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공공. 어차피 생의 의지가 없다면 나를 도와주시오.”

[무슨 소리인가.]

“아마 지금 화요에는 수천 년간 응축된 화기(火氣)가 모여 있을 것이오. 그 화기를 처리하는데 도움을 줬으면 하오.”

예전에 화요를 얻을 때는 이 화요의 화기를 제거하기 위해 화룡신검을 갖고 오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 낙양에 화룡신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으니 공공의 도움을 구하는 게 나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공공이 아무런 의욕이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일 없다…. 난 그대를 막지 않겠지만 도와줄 의리도 없음이다.]

나는 그 말에 화안금정을 발동시켜서 공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침음성을 흘렸다.

‘음…. 우리 쪽 세계와 달리 지금 공공의 몸에는 축융이 공공에게 걸었던 불꽃의 저주가 없다. 그 말은….’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축융이 일부러 저주를 해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찌됐든 축융의 저주해제를 대가로 공공에게 협력을 구할 수도 없겠군. 저주가 없다면 공공을 어떻게 해야 움직일 수 있을까?’

내 힘을 최대한 사용하면 화기를 감당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위험부담을 최대한 줄이고 싶다. 그러려면 공공의 힘을 빌려야 한다.

나는 그 사실을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공공에게 말했다.

“공공. 주군도 죽고 삶의 희망이 없다면서 자진(自盡)하지 않고 세상의 종말을 부득불 보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 후후…. 격장지계(激將之計)로 날 움직여보겠다는 건가?]

“그냥 궁금해서 그렇소.”

[황제 공손헌원…. 그 자가 종말의 마지막에 무슨 짓을 할지 궁금해서이다. 모든 이를 파멸시킨 그 뱀같은 존재가 도대체 무엇을 꾸몄는지 보고나서 죽고 싶다.]

“그렇군….”

원하는 게 있다면 어떻게든 구워삶을 수 있지.

나는 공공을 설득할 방도가 생겼음을 깨닫고 씨익 웃었다.

“난 그걸 이미 알고 있소. 당신에게 알려줄 수도 있지.”

[…뭐라고?]

“복희 님이 미래를 예지하셔서 내게 전달해서 보게 되었던 미래. 그걸 알고 있는 건 세상에서 나 뿐이오. 귀찮게 종말을 기다리지 않아도 나를 통해서 황제의 음모가 뭔지 알 수 있지.”

[믿을 수 없다. 내게 그걸 알려주겠단 말이냐?]

“그렇소. 대신 당신은 지금부터 내 부하가 되는 것이며 화요의 화기를 제어해줘야겠소.”

[…….]

공공은 단숨에 크게 고뇌하는 표정이 되었다.

“싫으면 마시오. 화요의 화기를 제어하는 건 귀찮은 일이겠지만 내게 영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짐짓 화요의 방으로 걸어가는 척 하자 공공이 급히 나를 멈춰 세웠다.

[기다려라.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 제안에 따르겠다.]

“종말까지 느긋이 지켜볼 줄 알았는데 그러지는 않는구려?”

[비아냥거리지 마라. 종말까지 기다린다 해도 황제의 음모를 알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 나도 아니까.]

자존심이 상한 듯 중얼거리던 공공이 자신의 거검을 서서히 들며 말했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좋소. 갑시다.”

나는 화요가 있는 장소인 도원(桃園)으로 향했다. 그리고 화요 근처에 묻혀있을 용화수의 씨앗을 찾아보았는데, 내가 알고 있던 나무등걸의 위치에는 용화수의 씨앗이 보이지 않았다.

“응?”

[왜 그러나?]

“분명 여기 있었을 텐데….”

나는 약간 당황하면서 도원에 있는 복숭아나무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죄다 반쯤 썩어서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나무등걸에 용화수의 씨앗이 보이지 않았다.

‘왜 없지?’

용화수의 씨앗은 세계수의 씨앗이니 얻어내기만 하면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설마 없을 줄이야! 그것도 화요는 저기에 멀쩡히 있는데 용화수의 씨앗만 없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가 가져간 건가…?’

하지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화요의 수호자인 공공이 의욕을 잃었다 해도 여전히 화요의 결계는 쳐져 있었으며 공공도 멍하니 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모든 장벽을 뚫고 화요의 도원까지 올 정도의 능력자가 화요는 눈길도 주지 않고 용화수의 씨앗만 가져갈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는 건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어리둥절했지만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는 공공에게 말했다.

“화요의 화기를 제어해주시오.”

[알았다.]

쿠구구구….

공공이 손을 뻗어서 화요를 붙잡자 엄청난 화기가 넘실거리며 그의 몸을 이글거리며 태우는 듯 했다. 그러나 공공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 화기를 그대로 흡수하며 받아넘기는 듯 했고 결국 몸 전체가 약간 그을린 것 외에는 피해가 없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본디 전욱과도 겨루던 강대한 거신족인데다 저주가 풀려서 그 힘이 해방되었으니 화요의 화기 정도를 감당하지 못할 리는 없는 것이다.

[다 됐다.]

화기의 제어를 끝낸 공공이 내게 화요를 휙 던져주었고 나는 화요를 바로 잡아서 살펴보았다. 역시나 화요의 영기는 절반 이하로 약해져 있었고 내가 알던 화요 간장의 위력까지는 내지 못할 듯 했다.

‘하지만 뭐, 이 정도만 있어도 감지덕지지….’

나는 공공에게 말했다.

“공공. 혹시 용화수의 씨앗이 이 도원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소? 사실 나는 그것도 겸사겸사 찾으러 왔었소.”

[전혀…. 그런 게 있었단 말인가?]

“음.”

[나는 약속을 지켰으니 너도 약속을 지켜라.]

“그럼 받으시오.”

나는 내 28회차 막바지의 기억을 담은 흑요석의 술법을 시전해서 공공에게 전해주었다. 혹시 몰라서 내가 전생자라는 걸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빼놓은 기억이었다.

그러자 공공은 크게 몸을 떨더니 당황해서 말했다.

[뭐… 뭐지? 이 기억에 따르면 세계는 이미 한 번 멸망했었다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살아서 내 앞에 있는가?]

“그것까지 밝힐 이유는 없소. 이건 복희 님이 읽어낸 예지니까 그저 미래의 줄기일 뿐일 거요.”

나는 대충 거짓말을 했다.

[으음!]

“중요한 건 이제 당신도 황제 공손헌원의 계략이 뭔지 알게 되었다는 점이지.”

나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놈은 처음부터 삼황오제를 제물로 삼아 혼자만 승천하여 [옥좌] 앞으로 갈 생각인 거요. 그 모든 흉계가 완결되기까지는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소.”

[……!!]

“다만 이건 복희 님이 읽어낸 미래. 그래서 어떻게 조각이 맞춰져서 미래를 구성하는지는 모르는 상태요. 그러니 당신이 나를 좀 도와주면 좋겠소.”

[어떻게 도와달란 건가?]

“빠른 시일 내에 칠요를 모아야 하는 일을 도와주시오. 그게 아니면 지금 이 세상을 침략하는 외계인들과 싸워줘도 좋고.”

[…….]

“날 도와준다면 황제에게 한 방 먹일 기회가 생길 것이오.”

공공이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 말대로 하겠다!]

나는 공공을 부하로 만드는 데 성공했음을 느꼈다.

‘좋아. 그럼 월요, 화요, 수요를 얻었으니 목요를 찾으러 가 볼까?’

나는 곧장 메피스토펠레스를 불렀다.

“메피스토. 장백산(長白山)으로 이동해라. 옆에 있는 거신족도 함께.”

[명령 실행합니다.]

파앗!

나는 공공과 함께 장백산에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원래 목요는 장백산 신시에 있는 십이율주의 소유였기에, 혹시나 해서 이곳에 목요가 있는지를 찾아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장백산에 도착한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아… 아니?!”

쿠구구구

쿠르르르르….

어마어마한 화산(火山)! 장백산의 거대한 연못인 천지(天地)는 흔적도 없이 말라있었고 그 자리에서는 가공할만한 화산의 연기와 재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중심부에서는 끊임없이 활화산 같은 용암이 터져 나오는 중이었다!

쿠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화산이 한 번 터지는 소리가 났고 화산재가 저 하늘 끝까지 기둥처럼 치솟는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멍하니 서 있었고 공공이 기쁘다는 듯 웃었다.

[후후. 잘 됐군. 이 화산에서 힘을 회복하라고 날 데려온 건가?]

“아, 아니 그게….”

[잠깐 화구에서 내 힘을 보충하고 오겠다.]

슈욱

공공이 장백산의 용암으로 뛰어들자 나는 당황해하다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메, 메피스토펠레스! 이게 뭐야? 여기는 장백산일 텐데 어째서 화산이 터지고 있는 거지?”

[장백산, 대한제국(大韓帝國) 칭명 백두산(白頭山)이 활동을 시작한지는 5년 4개월 3일이 지났습니다. 잠재된 용맥이 폭발하여 휴화산(休火山)이던 백두산이 대분화를 개시했으며 대한제국의 관북(關北)지역과 관서(關西)지역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

[특급 위험지역으로 지정되었으니 사용자의 주의를 요합니다.]

“그렇다면 이 위에 있던 신시(神市)도 함께 소멸되었다는 것인가?”

내 질문에 메피스토펠레스가 띠링 하는 검색음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신시라는 지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뭣? 십이율(十二律)이나 만하령문도 없단 말이냐?”

[십이율은 대한제국의 음악(音樂)체계에서 쓰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만하령문이라는 명사는 존재치 않습니다.]

“……?”

십이율도 만하령문도 없다고?

이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말도 안 돼. 십이율주는 처음부터 십이율의 주인이 아니었단 건가?’

나는 혼란을 느꼈고 이윽고 머리를 털며 말했다.

“젠장…. 그러면 목요는 됐고 금요나 토요를 찾아야 하나? 하지만 금요는 성지 팔리아스까지 들어갈 수 있을지가 문제고… 그러면 토요를 찾아야겠군.”

나는 용암에 마치 목욕하듯 몸을 담그고 있던 공공을 불러내었다.

“공공! 이만 갑시다.”

[알았다. 어디로 가지?]

“옛 발해의 영토인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요.”

토요가 암천향에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까운 단서를 찾으려면 거기로 가야겠지!

파앗

나는 메피스토의 도움으로 즉시 상경용천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경용천부에 도착하니 예전과 마찬가지로 폐허가 된 발해의 수도를 볼 수 있었는데, 어쩐지 내가 예전에 봤던 것과 느낌이 달랐다.

‘음…. 왜 이런 기분이….’

뭔가 기분이 텅 비어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폐허의 중심 내부에 있던 [문]에 도착하자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이 부숴져 있다?!”

그랬다. 본디 이청운이 하루종일 뇌신지혼을 이용해서 두들겨도 부숴지질 않던 견고한 문이 마치 걸레짝처럼 산산조각나 있었다. 이청운이 말하길 수십만 관의 폭약을 들이부어도 깨지지 않을 문이었는데 이렇게 처참하게 부숴질 줄이야!

그 때 메피스토펠레스가 내게 경고했다.

[사용자의 주의를 요합니다. 특급 방사능 오염이 감지되었습니다.]

“뭐? 방사능?”

[52450메가톤 이상의 위력을 가진 최신형 수소폭탄이 기폭된 장소입니다. 모델 CNJ7839N-K9 으로 추정됩니다. 잔해방사능은 유전자변형을 일으킬 수 있으니 유의하십시오.]

“……!!”

수소폭탄?!

그것도 핵폭탄같은 거 아냐?!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발해 열왕들의 유적을 지키던 문을, 누군가가 수소폭탄을 터뜨려서 부쉈단 말이냐?”

원래 봉황조각이 있어야 들어올 수 있는 장소였는데 그냥 가공할 물리력으로 때려 부숴서 들어올 줄이야!

[그럴 가능성이 92퍼센트 이상입니다.]

“흠…. 혼원지순!”

파앙

나는 가볍게 방어술법을 하나 걸어두고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공공이 나를 따라왔고, 그 또한 강대한 신족이라 방사능 정도에는 영향받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유적 내부로 들어오자 나는 사방을 떠도는 유령들의 기운에 인상을 찌푸렸다.

“망령….”

아무런 힘도 남지 않은 쭉정이 망령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나는 머지않아 그 망령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츠아앗

나는 이혼대법을 이용해서 한 마리의 망령을 잡아채서 영력을 불어넣어 생전의 모습을 복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왕관을 쓴 고대의 군왕이란 걸 알아채자 침음성을 내었다.

“음…. 발해 군왕들의 영이 모두 타락하여 망령이 되었구나.”

[아는 자들인가?]

“당신과 마찬가지로 종말을 두려워하여 이 왕실의 봉인에 스스로 갇혀있던 군왕들의 혼이오. 하지만 봉인이 박살나면서 그 영들을 보호해주던 주술도 함께 부숴져서 모두 망령이 되어버린 모양이구려.”

내 대답에 공공이 크큭하고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바보천치가 세상에 나 뿐만은 아니었구나. 어차피 모든 이가 평등하게 종말을 맞이할 텐데 이런 식으로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

발해 군왕들의 비참한 최후따윈 관심 없다. 중요한 건 이 자리에서 토요의 단서를 하나라도 얻고 싶었는데, 이렇게 망령으로 타락한 자들에게서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토요에 대한 정보는 없구려. 그럼 돌아가야겠….”

나는 별 수 없이 되돌아가려 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주 재밌는 자로군. 토요라고?”

나는 공공과 함께 거의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 장소에는 희뿌연 안개와 함께 웬 흑마(黑馬)를 타고 있는 의문의 사내가 보였다. 그 자는 기병의 창을 들고 투구를 쓰고 있었는데 갑옷 또한 시꺼먼 색깔이라서 마치 흑기병처럼 보였다.

‘낌새를 채지 못했다.’

절대지경의 감각으로도 저 흑기병의 출현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그것은 저 자가 내 경지와 대등한 초고수이거나 혹은 강대한 힘을 지닌 신족이나 마족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화요와 수요를 써서 싸워볼까.’

반쪽짜리 칠요라 하지만 여전히 칠요공명은 쓸 수 있을 것이다.

스릉

내가 그를 경계하며 쌍요를 뽑자, 흑기병은 약간 놀란 듯 말했다.

“화요와 수요까지 얻었단 말인가? 이 말세에 도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해낼 수 있었던 거지?”

“한 눈에 칠요를 알아보는군. 당신은 대체 누구요?”

“…….”

흑기병은 침묵하더니 히쭉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재밌군. 내 예지능력으로도 네 근원을 읽을 수 없다니…. 후후. 아주 재미있구나.”

“누구인지 물었소.”

“내가 누구인지 묻는가. 발해왕의 무덤에 들어온 침입자여.”

따그닥

흑기병이 천천히 안개를 뚫고 이쪽으로 말을 몰아서 걸어오기 시작했다. 공공과 나는 그를 경계하여 전투태세를 늦추지 않았고, 이윽고 안개 너머에서 그의 훤칠하고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그가 정체를 밝혔다.

“나는 발해제국(渤海帝國)을 세운 자. 종말이 찾아올 때까지 정처없이 떠돌고 있다가 이곳에 무례한 침입자가 또 들어왔다는 경보를 듣고 급히 찾아왔노라.”

“뭐?”

“호오. 나를 아는 듯한 얼굴이군.”

“…….”

나는 그 고대의 흑기병 사내의 말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발해의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이라는 말이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