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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전욱의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치, 칠요의 계약을 파기할 수 있었다는 말은… 지금 칠요의 계약은 모조리 파기된 상태란 말입니까?”
[지금 네 눈으로 그 증거를 보고 있지 않았던가?]
전욱은 힐끔 아래쪽의 유적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더 이상 칠요가 종말의 계약을 유지하지 못하므로 그건 그저 강력한 유물에 불과하다. 당연히 수호자 또한 필요가 없으며 우리도 칠요와 굳이 이어져있을 필요가 없는 것. 모든 힘이 반감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어떻게 그런….”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반문했다.
“칠요가 사실상 삼황오제와 지구에 와있는 수백의 [옛 지배자]끼리의 충돌을 막아주는 휴전협정의 계약물이 아니었습니까! 그 계약을 황제가 깼다는 건 다시금 [옛 지배자]와의 전쟁이 시작되어도 할 말이 없다는 걸 텐데.”
그렇다. 칠요의 계약이란 사실 삼황오제와 [옛 지배자]들 사이의 휴전약속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절대 끊어질 수 없으리라 생각한 계약인데, 그게 깨졌다는 건 신들의 전쟁이 시작되리라는 뜻!
그러자 전욱이 말했다.
[네 말대로다. 모든 정전협정이 깨졌으니 [옛 지배자]들이 준동하려 했지. 그러나 그들은 모두 전면에 나서지 않고 아직도 은인자중하며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다.]
“나서지 않는다고요?”
[황제 공손헌원이 뭔가 수를 쓴 거겠지. 그들이 손을 직접 쓰는 일은 극히 드물며 그마저도 종속된 외계인들에게 가벼운 명령을 내릴 뿐 종말에 대비하여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옛 지배자]는 단 한 마리도 없다.]
“……!!”
[후후…. 아마도 부상(浮上)하게 될 흉신(凶神)을 두려워하는 걸 수도.]
“그러면 전욱 님께서는 어째서 월요의 유적에서 부름에 응하신 겁니까?”
이어진 대답은 다소 허탈했다.
[다들 동면이나 다름없는 상태라서 누가 연락을 받아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본좌의 관할구역과 가까웠기에 어쩔 수 없이 나와 봤을 뿐.]
“…….”
하긴 전욱이 요동 쪽을 관리하고 있었으니 위치상으로 볼 때 다른 삼황오제보다 가깝긴 했다. 그리고 본디 월요를 관리하던 여와가 소멸되었으니 힘 잃은 칠요를 얻겠다고 굳이 대문짝을 두들기는 건방진 인간을 확인하러 겸사겸사 나온 것이리라.
전모를 파악한 나는 멍하니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최초의 문자가 계약을 파기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주십시오! 그 최초의 문자 자체가 그만한 권능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까?”
[…….]
전욱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렇다. 종말을 앞두고 있을 때 난데없이 황제는 칠요의 계약을 파기하는데 최초의 문자를 사용했지…. 그리고 그 최초의 문자는 처음부터 ‘다른 약속’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다른 약속이라니요?”
[우리는 황제가 말하는 ‘약속’이 당연히 칠요의 정전협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주술어에 그 사실이 명시되어 있었고. 그러나 교활한 황제는 창힐과 짜고 2중계약을 하고 있었지.]
“어떤 계약입니까?”
전욱은 분을 참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만하는 자]의 계약. 황제 공손헌원이 태초에 탄생할 때부터 갖고 있던 힘의 계약…!! 놈은… [더 높은 존재]와의 계약을 이용해서 하위계약을 파기했다는 말이다!! ‘최초의 문자’는 바로 그 매개체였다.]
“……?”
[창힐이 그 때 약한 척 했던 것도 모두 연기였고 기만… 크크…. 주인이나 그 노예놈이나 둘이서 짜고 삼황과 사제를 모조리 농락했다니.]
“연기라뇨?”
전욱은 한탄하듯 말했다.
[놈들은 얼마나 속으로 우리를 비웃었을까…. 창힐에게 약점이 되는 문자라서 우리가 언제든 창힐을 잡아 죽일 수 있다 생각했지만…. 결국 창힐은 시선을 끄는 바람잡이였을 뿐 진짜는 황제가 우리를 기만하는 도구였다.]
무슨 소리지?
[옛날 얘기는 이만 됐다.]
슈욱!
갑자기 내 눈앞에 웬 조그마한 호리병이 나타났다. 나는 그 용암처럼 시뻘건 호리병의 목을 바로 붙잡아서 살펴보았는데 겉으로는 별달리 특이한 점이 없어보였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반문했다.
“이 호리병이 뭡니까?”
[그건 만귀전의 보물인 홍호로(紅葫蘆)다. 이름을 부르면 상대의 영혼을 봉인하는 능력이 있지.]
이어진 전욱의 말에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신선(神仙) 일백 명의 영혼을 거두어서 홍호로에 담아와라. 그게 첫 번째 임무다.]
“……!!”
신선 일백명의 영혼을 거둬오라고?!
나는 난데없이 내려온 지령의 난이도는 둘째 치고 어째서 이런 명령을 내리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말했다.
“신선의 영혼을 가져오라니요. 천계에 직접 침입해서 싸우기엔 제 힘이 모자랍니다.”
[…무슨 말이냐?]
“십이대선이나 천계의 최상급 투선들이 덤벼들면 저는 합공을 오래 버틸 수가….”
나는 힘이 없는 척 전욱의 명령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전욱의 이어진 말에 다시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계가 멸망한지 수백 년이 지났다는 걸 여태 모르고 있었느냐? 복희의 제자라 하더니 그 정도 소식도 듣지 않고 은둔해 있었단 말인가.]
“처, 천계가 멸망했다고요?!”
[…….]
전욱의 화신에서 흘러나오던 암광이 크게 이지러졌다. 나는 그 표현이 전욱에게 불신감이 생겼음을 의미한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잠시 후 전욱이 험상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수족같은 부하들이 있었다면 굳이 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놈에게 일을 시키진 않을 터이다.]
“음….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모르는 일이라서.”
[천계는 진작에 망하여 그 생존자들은 곤륜성(崑崙城)이라는 이계를 만들어서 모여살고 있다. 네가 할 일은 그 곤륜성으로 가서 신선 백 명의 영혼을 잡아오는 것이다.]
“…천계는 왜 망한 겁니까?”
[흉신(凶神)의 사도(使徒)가 강림하여 멸망시켰다고 알고 있다.]
“……!!”
흉신의 사도!
나는 천계가 멸망한 이유가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흉신은 별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계속 수면상태인 거 아니었나? 여와가 소멸하여 서왕모가 없다지만, 그래도 천계는 천계…. 그 강력한 천계를 멸망시킬 정도로 강력한 사도를 강림시킬 수가 있다니!’
뭔가 또 다른 사정이 있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전욱은 지금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꽤 신경질이 난 것처럼 보였기에, 나는 별 수 없이 필요한 질문만 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곤륜성에는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습니까?”
[인간세상에 남겨진 천제단(天梯壇)이라는 유물이 있다. 그 유물에 충분한 대가를 바치면 갈 수 있을 것이다.]
“…신선들의 영혼이 필요하신 이유를 여쭐 수 있겠습니까?”
[건방진 놈.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주제에 궁금한 것만 쓸데없이 많군.]
나는 살기어린 그 말에 움찔했지만 애써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복희님의 예언에 따르기 위해서는 최대한 세상의 일에서 멀어져야 했던지라….”
[크크…. 변명만 그럴듯하게 하는 놈은 싫어한다.]
화륵 하고 전욱의 화신에서 암광이 치솟아오르더니 잔혹한 어투가 들려왔다.
[잔말 말고 홍호로에 신선 백 명의 영혼을 담아와라!! 네가 궁금해 하는 건 그 이후에 알려주겠다!]
“…알겠습니다.”
파앗!!
그 말을 끝으로 전욱의 화신이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텅 빈 하늘을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 월요의 유적에 내려갔고, 다시 찾아봐도 수호자나 거대거미 따위는 하나도 없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
어찌되었든 월요를 얻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며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천제단에 가서 제물을 바치고 곤륜성에 가서 홍호로에 신선 백 명의 영혼을 담아오면 되나….’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물어봐야겠군.”
하지만 나는 무언가 마음에 걸렸기에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제갈현이 있는 동북아해방군의 본부로 향했다.
“제갈현. 사실 월요의 유적으로 갔다가 이런 일이 있었소.”
내가 본부에 도착해서 제갈현에게 월요를 획득하고 전욱을 만났던 일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제갈현은 내 이야기를 신중하게 듣다가 말했다.
“백웅. 그 홍호로라는 유물은 아마도 서유기(西遊記)에 등장하는 금각은각형제의 보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오.”
나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서유기? 금각은각형제?”
그게 대체 뭐지?
내가 못 알아듣자 제갈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 이게 참 웃긴 일이군. 정작 당신은 손오공을 꼬시기 위해 서양 아메리카 대륙에서 윤전기까지 가져와서 서유기를 쓰게 만들었건만 당신의 세계에서 서유기는 존재치 않는다니. 이것이 무생노모가 일으킨 역사의 왜곡이라는 것인가?”
“뭔 소리요? 손오공이라는 건 제천대성을 얘기하는 건가?”
“우리 세계에서는 제천대성보다는 손오공이라고 많이 부르곤 하오. 흐으음. 사실 난 전설의 손오공이 실제로 스마트폰을 쓰는 이 세상에 있다는 것도 대학원생으로써 믿기지 않지만.”
제갈현이 탄식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 홍호로는 제천대성과 싸우던 강력한 대요괴들의 보물일 거요. 그게 만귀전으로 흘러들어 갔나보군.”
“홍호로의 출처 같은 건 별로 관심 없소. 전욱은 왜 신선 100명의 영혼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시오?”
“당연히 지금 자신이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일 거요. 신선 100명의 영혼을 섭취하여 힘과 인과율을 회복하려는 거겠지.”
나는 제갈현의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영혼을 먹는다고!”
“전욱이면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아마 신선 100명치의 인과율을 이용해서 황제에게 저항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려는 걸 거요.”
“음…. 내가 이 임무를 하는 게 좋겠소?”
나는 제갈현이 안된다고 하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제갈현의 대답은 반대였다.
“무조건 하시오. 지금 당장이라도 천제단으로 가서 제물을 바치고 곤륜성에 가서 신선 100마리를 잡아서 홍호로에 넣는 거요.”
“…….”
“어차피 약속을 했으니 해야 할 일이고 부하들에게 공과를 명확히 하는 전욱의 특성상 임무를 잘 해내면 뭔가 보상을 줄 것이오. 그 보상은 전생자인 당신에게 매우 도움이 되겠지.”
“…….”
“왜 그런 눈으로 보시오?”
“그, 그게 내가 아는 망량이라면 잔혹한 짓이니 그만두라고 할 것 같았소.”
그러자 제갈현이 피식 웃었다.
“미안하지만 난 제갈현이지 망량이 아니오. 그리고 설령 망량이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나처럼 말했을 거요. 이 세계는 어차피 외우주라서 당신과 별 상관이 없는데 뭐하러 생면부지의 신선들 목숨까지 챙겨주려 하는 거요?”
“그렇게 말하면 그렇소만.”
“어차피 그놈의 신선들은 지상계가 이 꼬라지가 되도록 한번도 돕지를 않았소. 그 쓸모없는 영혼이나마 전생자의 도움이 되는 게 다행이겠지! 죄책감 따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거요.”
신랄하게 내뱉은 제갈현이 힐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만 당장 찾아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일단 반쪽짜리 칠요라도 최대한 챙기는 게 더 나을 거요.”
“화요와 수요를 챙기라는 말이오?”
“그렇소. 당신이라면 그 칠요들을 잘 쓸 경우 곤륜성에서 위험할 일은 없겠지.”
“알았소. 그럼 지금 당장 움직이겠소.”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손목시계의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메피스토펠레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수요의 위치로 가라.”
[기억의 파장을 읽는데 성공했습니다. 사용자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파앗!!
내가 머릿속으로 강력하게 생각하자 잠시 후 나는 수요의 봉인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수요의 봉인지에 있는 나선의 계단으로 내려가기 전에 설산을 한 번 뒤져보기로 했다.
‘어디 보자.’
나는 설원을 한참 뒤적였지만 이윽고 이곳 어디에도 흑백련이나 천년설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또한 역사가 달라진 결과라고 생각하며 밑으로 내려갔고, 마찬가지로 금괴가 없음을 알아챘다.
쉬이익
그리고 여기저기에 사람의 해골이 널려있는 걸 발견했고 곳곳에서 뱀요괴들이 어둠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걸 볼 수 있었다.
‘보물사냥꾼들이 수요의 유적을 발견했던 거군. 그리고 대개 전멸했지만 금괴를 찾아서 튄 건가….’
검뢰(劍雷)
퍼버벅
나는 순식간에 약해빠진 뱀요괴 수십 마리를 전멸시키고는 수요가 있던 자리로 갔다. 그리고 의외로 수요는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걸 알아챘다.
치리링 -
마치 처음으로 수요를 발견했을 때가 생각났다. 무저갱같은 공동에 외나무다리가 있으며 그 끝에 빛나는 검, 수요가 있는 것이다. 나는 여태껏 어떠한 보물사냥꾼도 수요를 얻지 못했다는 걸 알아채고는 바로 뛰어들어 수요를 낚아챘다.
‘거대거미는 나타나지 않는군.’
아무래도 보물사냥꾼들은 뱀요괴조차 못 이겨서 여기까지 못 왔던 모양이다. 나는 다소 허탈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고는 더 밑으로 내려갔고 전욱의 동상을 찾아내어서 목갑에 집어넣었다.
이걸로 수요의 유적은 다 둘러본 것 같다.
“메피스토. 화요의 유적으로 가자.”
파앗!
나는 화요의 유적이 있는 울룰루로 갔다. 그리고 여전히 결계가 쳐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요의 결계는 수호자와는 별개로 원래 쳐져있던 강대한 결계였나 보군. 그래서 칠요의 계약이 파기된 후에도 딱히 사라지진 않고 유지되고 있는 건가….’
나는 잠시 후 결계를 깨기 위해 움직였다.
‘원래는 다른 술법사들이 팔진도와 토요팔괘도의 힘을 빌려 내가 태평요술을 발동할 수 있게끔 도와줬고, 그 덕에 화요의 결계를 깰 수 있었던 거지만.’
지금 나는 아마 그럴 필요가 없으리라.
눈치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스으으으
나는 바로 순수한 신력을 모았고, 그걸 굳이 통제하지 않으며 내 기억에 박혀있는 대로 권능을 발동시켰다. 아니 - 애초에 이건 흑웅의 도움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권능인 것이다.
내 입에서 전욱의 부하만이 쓸 수 있다는 신언(神言)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나, 전욱의 사도로써 시간을 되돌린다….]
내 눈에서 신광이 신력의 소용돌이와 함께 번쩍거리며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화요의 결계여, 펼쳐지기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라!]
콰칭!!
다음 순간, 화요의 결계가 급격히 진동하더니 이윽고 완전히 깨져서 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간만에 써 보는 전욱의 사도권능이 잘 발동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군.”
흑웅이 없을 때도 대충 쓰곤 했던 능력이기에 이 권능의 통제력은 전욱이 대신 맡아준다는 예상이 맞아 들어간 것이다. [작은 굴레]를 전욱의 이름으로 조종하는 이 권능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다면 현재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별로 없었다.
스스스….
하지만 권능이 영원하진 않은지 금세 결계가 지렁이 같은 속도로나마 회복되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나는 급히 화요의 유적 안으로 뛰쳐 들어갔고, 그 안에서 화요가 있는 곳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뜻밖의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 당신이 어째서 아직도 여기에….”
[…….]
그렇다.
화요의 수호자 공공이 떡하니 유적 안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칠요의 계약이 깨져서 당신이 더 이상 수호자 역할을 할 필요가 없을 터! 어째서 화요의 결계를 깨서 나가지 않고 여기에 남아있는 것이오!”
그러자 공공이 침묵하다가 말했다.
[의문의 인간이여. 그대는 어째서 복희 님의 인간형 모습을 하고 있는가?]
“질문은 내가 먼저 했소만.”
[대답하라.]
“…나는 복희 님의 옛 제자인 백웅. 종말이 다가오기에 칠요를 회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소. 이 모습은 옛 스승에 대한 경의로 변신한 것이오.”
[그런가…. 후후…. 아무런 희망도 없는 이 세계를 이제서야 구하겠다고 나서다니….]
탄식하듯 중얼거리던 공공이 말을 이었다.
[백웅이여…. 내게는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았다…. 나는 살아있는 시체이니, 나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라.]
“…….”
[이제와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나는 그저 여기서 세계의 종말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을 뿐.]
“…이해가 안 가는군. 여와가 소멸했으니 염제 신농을 가두는 결계도 사라졌을 것 아니오? 어째서 주군인 신농에게 가지 않는단 말이오.”
공공은 힘없이 대꾸했다.
[복희의 제자여.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모르는가보군.]
“그 이후에 일어난 일?”
이어진 공공의 말에 나는 흠칫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와가 소멸한 직후, 황제 공손헌원이 만신전의 병력을 이끌고 주군, 염제 신농을 공격하여 살해하고 그 힘을 흡수하였다….]
“……!!”
[주군이 멸하여 거신족의 희망도 스러진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지금 이 세계가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인지를 한층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럴 수가….’
여기는 삼황(三皇)이 전멸한 세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