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325화 (1,322/1,615)

1325====================

사신지혼(四神之魂)

칠요를 같이 찾아달라고?

나는 그 말에 고민했다.

‘칠요를 찾으면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지?’

파우스트가 과거에 말한대로라면 칠요의 공명을 이용해서 태허의 힘을 강화시켜 윤회포의 효과가 좋아지기에 칠요를 찾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말대로 한다면 수상쩍은 나일라토프의 손에 의지하지 않아도 파우스트의 도움으로 귀환할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월요와 화요, 수요는 확실히 손에 넣을 수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보장이 없어.’

하지만 고작 한 달.

한 달의 시간동안 칠요를 찾으면 얼마나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지구상에 있는 칠요라면 순식간에 찾을 수 있을 테지만 칠요 중에는 행방이 아예 이세계로 넘어가버린 것도 있다. 심지어 목요나 금요, 토요는 내 세계와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아는 그 위치에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한 달로는 절대 그 3요까지 찾아내는 게 불가능하리라.

특히 일요의 경우에는 나머지 6요를 다 찾지 못하면 얻지 못하게 되어있는 구조였다. 이 세계에서 칠요의 시련을 또 해야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잘 모르겠소.”

섣불리 이 자리에서 확답을 줄 수가 없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코가 꿰이거나 쓸데없이 행보를 방해받기만 할 것이다.

“확신이 서지 않은 모양이군.”

이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보다, 한 번 비무를 하지 않겠소?”

나는 난데없는 이혼의 제안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비무?”

“같은 절대지경으로써 당신과 대무(對武)해보고 싶구려.”

그 말을 듣고 이혼의 눈동자를 보니 호승심이 느껴졌다. 나는 그 눈을 보자 이혼이 순수한 무인이라는 직감이 들었으며, 그가 무슨 마음으로 비무를 신청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소. 대련장으로 갑시다.”

마침 나도 이혼의 무위가 궁금하던 참이다. 그가 어떤 무공을 익히고 있고 어떤 경지인지 볼 수 있다면 이런 기회가 또 없으리라.

“가 볼까.”

스윽

나와 이혼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뒤에 서 있던 블라디미르 부사령관이 똥씹은 듯한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령관! 직접대결은 안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소!”

그러자 이혼이 아차하는 표정을 짓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아, 그렇겠군. 익숙치 않아서 깜박하곤 하오.”

“이 기지에서 새어나오는 에너지반응만으로도 외계인에게 탐지당한단 말이오. 제발 자중하시오.”

“알았소, 알았소.“

이혼이 손을 내젓더니 파우스트를 쳐다보았다.

“파우스트 박사.”

파우스트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테이블 위에 있던 웬 버튼을 눌렀다.

끼기깅 -

그러자 나와 이혼이 앉아있던 바로 앞에 손 모양의 새파란 화면이 돌출되어 나타났다. 딱 봐도 손바닥을 그 화면 위에 찍으라는 표시였기에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이혼을 쳐다보았고, 이혼이 말했다.

“그 화면 위에 손바닥을 대면 대련장으로 갈 수 있소.”

“흠….”

나는 그 말대로 손바닥을 화면 위에 대 보았다.

[훈련장으로 사용자의 의식을 이동시킵니다.]

슈슈슉!!

“……?!”

아, 아니 뭐지?!

순간이동을 한 건가?!

그렇다 해도 전후좌우가 모조리 새하얀 공간이라니 여기는 마치….

내가 약간 당황하고 있을 때 내 맞은 편에 이혼이 나타나 있었다. 이혼은 자신의 손을 푸는 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말했다.

[여기는 가상현실이오. 정확히 말하면 가상현실 훈련장이지.]

[뭐? 아….]

내 목소리도 현실의 육성이 아니라 가상현실의 음성처럼 기계음으로 변조되어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맞아! 이성계함을 아수라와 함께 탈취했을 때 그 전함 내에도 이런 전투훈련실이 있었잖아!’

하지만 이런 방식과는 사뭇 달랐었다. 나는 이성계함에서는 ‘공간조작회로’를 써서 공간을 넓히고 더미데이터의 아바타를 소환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상현실으로 의식을 옮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나는 혹시나해서 말했다.

[이혼. 이 전투훈련실에 10단계까지 강화할 수 있는 기능이 있소?]

[그런 건 없소. 이건 그저 모의전투를 위한 가상현실일 뿐.]

이혼이 꾹 쥐고 있는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현실의 전투와는 사뭇 다를 거요. 그저 가상현실이 측정한 데이터가 반영되었을 뿐이니 결과가 정확할 수도 없겠지. 다만 서로의 무공을 가늠해보는데 이보다 안전한 방법이 없어서….]

[이해했소.]

[그래도 당신이 외계인과 싸울 때 보여줬던 무공을 동영상으로 측정했으니 어느 정도는 당신의 힘이 반영되어 있을 거요.]

즉 이건 가상현실일 뿐이기에 현실의 역량을 10할 완벽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마 서로의 기술과 초식을 가늠해보자는 거 같군.’

큰 부상이나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좋은 점이었다. 나는 자세를 잡고는 이혼에게 말했다.

[선공하시오.]

[권성 이혼, 하수로서 기꺼이 받아들이지.]

우웅

이혼은 대놓고 기를 모았다. 축기(蓄氣)를 하여 무기에 모으면 힘과 기술이 더욱 강해지는 게 상식이지만 그걸 방해하려고 도중에 견제나 방해를 받는 일이 많았다. 아무래도 선공기회를 얻은 김에 축기를 강화해서 한번에 강한 기술을 내게 쏟아부을 셈인 모양이었다.

‘어디 실력 좀 볼까.’

나는 이혼의 공격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혼의 의념이 끓어오르더니 그의 의념천주가 한 순간 크게 빛났다. 이혼은 전신에 마치 이글거리는 듯한 기세를 휘감은 채 내게 돌진해 왔다.

태백신공(太白神功)

천수일월장(千手日月掌)!

파파파팟

“……!!”

순식간에 수백 개나 되는 장인(掌印)이 분열되더니 하나하나에 강력한 열양장력을 머금고 내 전신요혈을 노려왔다. 틀림없이 강력한 의념절기였기에 나는 흠칫하면서 천수일월장을 최대한 신법만으로 피하려 해 보았다.

삼보절기(三步絶技)

내가 천과 지의 보법을 밟자 천수일월장의 장력 중에서 절반 이상의 변화를 회피할 수 있었고, 나머지 변화는 일일이 피하는 게 귀찮았기에 마주 호신강기를 뿜어내며 뇌신류의 뇌운장(雷雲掌)으로 맞서보았다.

꾸웅!!

쿠구구

육중한 장력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천수일월장과 뇌운장이 허공에서 바스라지며 기(氣)의 잔향이 가루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그 흩날리는 변화 속에서 이혼이 이번에는 권법(拳法)을 운용하며 덤벼오는 게 보였다.

태백신공(太白神功)

비봉칠풍권(飛鳳七風拳)

투콱 하는 소리가 내 손바닥 사이에서 터져나왔다. 비봉칠풍권의 첫 초식부터 간파하고 바로 막아내자 이혼의 권력이 반감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혼은 도리어 힘을 더하더니 어깨를 반회전시키며 나선권(羅線拳)의 초식으로 변형시키며 파생절초를 썼고, 나는 그 파생절초의 변화를 주의깊게 읽으며 양 손을 마치 방패처럼 써서 막기 시작했다.

‘보이는군….’

파앙!

파앙!

이혼의 비봉칠풍권은 변화무쌍하면서도 장중한 파괴력을 담고 있었으나 나는 마치 미래라도 보이는 것처럼 이혼의 권법을 하나하나 읽어내서 부드럽게 흘리고 쳐내고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게 가능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왜인지 몰라도 이혼의 마음이 권법 너머에서 자연스럽게 읽혀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건 어떤가!]

봉황혈쇄각(鳳凰血碎脚)

백팔격(百八擊)

쐐쇄쇅

권법연계가 잘 통하지 않자 이혼은 이번에는 현묘한 발차기를 이용해서 허공에서 두세 번이나 발의 각도를 꺾으며 순식간에 108번의 발차기를 해 왔다. 보통의 초절정고수라면 이 봉황혈쇄각의 난무가 너무 화려해서 미처 다 피하지 못하고 절반이상 격중당할 정도로 현란한 발차기였다.

[…….]

아…. 그런 건가.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어째서 내가 이렇게 쉽게 싸우는지를 깨닫고는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그리고 봉황혈쇄각의 난무를 적당히 방금 전처럼 양완을 이용해서 흘리고 막아내다가 문득 이혼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발검(拔劍)했다.

치리링!!

검뢰(劍雷)의 뇌명음(雷鳴音)이 터져나오며 순식간에 이혼의 목젖 앞에 도달해 있었다. 이혼은 순식간에 헛점을 찔린 형상이 되자 더 이상 초식을 펼쳐내지 못하고 굳어버렸고, 나는 천천히 검끝을 내려서 거두며 이혼에게 말했다.

[이혼, 당신….]

나는 말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무례할지도 모르는 말을 입밖으로 내고 말았다.

[어째서 절대지경인데 초식의 진의(眞意)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오?]

[…….]

내 질문에 이혼은 정곡을 찔린 듯 딱딱하게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비무는 내 패배요. 역시… ‘진짜’ 절대지경은 다르군.]

따악

이혼이 손가락을 마주친 순간, 나는 가상현실에서 현실로 의식이 되돌아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혼 또한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다시 회의실에 앉아있는 상태였다. 나는 이혼에게 말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소. 내가 오랫동안 무예를 수련한 건 사실이지만 당신의 무공에 헛점이 너무 많이 보였소. 마치 경지에 무공 수련기간이 따라가지 못하는 듯한….”

“…….”

“너무…. 무공의 깊이가 얕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소?”

아무리 내가 묘예의 역을 많이 수련했고 실전경험이 많고 무쌍패를 수련하며 화경에 달통했어도 이혼의 무공은 너무 얕았다. 무공을 진정으로 이해해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마치 초짜가 달달 외워서 그 위력만을 구현화하는 듯한 절대적인 위화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정말로 이혼이 태백신공을 이해해서 절대지경의 의념천주를 이용해서 무공을 구현화했다면 방금 전처럼 쉽게 상대할 순 없었을 것이다. 삼보절기로 대충 피하고 뇌운장으로 반격까지 가능했던 것은 그의 무공과 의념이 전혀 같은 경지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이다.

내 질문에 반응한 건 이혼이 아닌 블라디미르였다. 블라디미르 부사령관은 인상이 험악하게 변하더니 말했다.

“뭐 그런 게 다 궁금하오? 우리 사령관에게 수치를 주지 말고 이제 나가시….”

블라디미르가 축객령을 내리려는 순간 이혼이 입을 열었다.

“나는 아직 한 살도 안 되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

“매일같이 무공을 수련하고는 있으니 원래 이혼의 무공에 도달하려면 최소한 10년의 시간이 필요하지.”

뭐?!

나도 블라디미르도 당황해하고 있을 때 파우스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혼.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소. 어차피 백웅은 우리에게 구원자나 다름없으니 그의 신뢰를 얻으려면 모든 걸 말하는 수밖에 없지.”

이혼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말을 이었다.

“백웅. 나는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권성(拳聖) 이혼(李琿)의 클론(clone)이오. 그러니 절대지경의 경지는 강제로 취득했으나 그 경지에 맞는 무공이 뒷받침되지 않소.”

“크, 클론이라고?”

“클론에 대해 알고 있소?”

“당연히 알지. 복제인간이잖소! 그 말대로라면 진짜 권성 이혼은….”

이혼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당신의 예상대로요. 진짜 권성 이혼은 1년 2개월 전, 대한제국의 황족들을 대피시키다가 외계인들의 궤도포격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소. 수도 한성과 함께 역사 속에서 소멸해 버리고 말았지. 그러나 그는 인류에게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절대지경이었기에 그 힘이 필요해서 파우스트 박사가 나일라토프의 도움을 받아 나라는 클론을 다시 만들어낸 것이오.”

“……!!”

“나는 클론이기에 더 많은 실전경험을 쌓아서 진짜같은 무공을 갖춰야 하오. 그래서 당신같은 진짜 절대지경과의 비무를 요청한 것이오.”

“…….”

나는 뜬금없이 듣게 된 황당한 사실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제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자신이 클론이란 걸 말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군…. 그런데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텐데 이제 한 번 얼굴을 본 내게 다 말해주는 이유가 뭐요?”

“말했듯이 당신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요.”

“신뢰라고….”

“우린 알고 있소. 나일라토프라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인류를 도와주고는 있지만 임박해오는 파멸을 막기에는 터무니없이 인류의 힘이 부족하다는 걸…. 우리는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오.”

이혼이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탁이오. 염치없으나 제발 우리를 도와주시오. 이대로라면 우린 칠요를 한 개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멸망해버릴 것이오.”

“…….”

“원래 이혼이 있었다면 몰라도 내 불완전한 절대지경의 힘으로는 지금의 상황조차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하오. 수 년 후에는 ‘진짜’ 이혼만큼의 힘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 인류가 버티기는 힘드오. 당신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싶었소.”

나는 이혼이 처음부터 내게 다 털어놓을 셈으로 도박을 걸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온전한 절대지경의 무인이 있어도 외계인을 상대로 선전하기 쉽지 않은 마당에 심기체와 숙련도가 없다시피한 반쪽짜리 절대지경으로는 큰 전력이 될 수 없다.’

나는 그의 불안감과 간절한 의지를 느끼자 마음이 크게 움직였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말했다.

“이혼. 당신은 클론이니 본체가 지향하던 바를 함께 추구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터. 자신이 클론이란 걸 밝히는 게 엄청난 정신적 부담일 텐데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소?”

이혼은 팔짱을 꼈다.

“그 말대로 클론인 내게 이어진 이혼의 의지와 기억은 절대적이지 않소. 마치 하룻밤의 꿈처럼 아련하게 맺혀있을 뿐, 실제로 내게 이뤄진 인격의 형성은 전혀 다른 종류지. 나일라토프의 말로는 절대지경의 경지를 남겨두며 클론에게 이혼의 힘을 전승하기 위해서는 ‘꿈’의 형태로밖에 할 수 없었다 하오.”

“꿈…?”

뭔가 불길한 예감에 중얼거리는 동안 이혼은 말을 이었다.

“그렇다해도 어차피 다가올 세계의 멸망과 파멸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피할 수 없는 것. 그렇다면 대의와 내 생명을 함께 추구하는 편이 더욱 이득이지. 그리고 당신 입장에서도 사실 내가 진짜 이혼인지 아닌지는 별 상관없는 문제 아니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솔직히 상관없소.”

“바로 그거요. 내 정체성을 개의치 않는 자에게 내가 클론이라고 말한들 무슨 상관이겠소? 나는 왠지 당신이라면 이런 점도 이해해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근거있는 생각이오?”

“그냥 직감이오.”

나는 그의 대답에 씩 웃으며 말했다.

“직감, 그거 좋지. 나도 내 직감으로 볼 때 당신들을 돕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이혼이 말은 저렇게 해도 클론이라는 사실을 내게 털어놓는 건 적지 않은 부담일 것이고 진심을 다한 것이다.

나는 진심을 다한 무인이 부탁을 한 건 손쉽게 거절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이 세계에 오래 머물 수가 없소. 오래 지나지 않아서 내 세계로 돌아가야 하고 길어도 한두 달 후에는 떠나겠지만….”

나는 그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 때까지 찾을 수 있는 데까지는 칠요를 찾아주겠소.”

“……!! 칠요의 소재를 알고 있소?”

“그렇소. 다는 찾을 수 없겠지만 아는 만큼은 찾아주지.”

“정말 고맙소…!!”

이혼이 내게 감사를 표하자 나는 대꾸했다.

“칠요를 찾아주기만 하면 내가 너무 손해보니까 앞으로 인류연합의 모든 지원을 내게 무상으로 해줄 것을 요구하겠소.”

“물론이오.”

뒤에서 보고 있던 블라디미르는 얼굴이 다소 창백해져서 질린듯이 중얼거렸다.

“미치겠군….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섭이 이뤄지다니….”

반면에 파우스트는 상당히 차분한 목소리를 내었다.

“백웅. 우리 총사령관의 비밀까지 공유했다면 나도 한 가지를 내어주어야 할 것 같군. 잠시 날 따라와 주시겠소?”

“그러지.”

저벅….

나는 회의실에서 나와 파우스트, 이혼과 함께 어디론가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던 중 파우스트가 말했다.

“사실 당신의 무력만으로도 우리 인류연합을 다 합친 것보다 강할 것이기에 우리가 당신에게 지원해줄 건 무력이 아닐 것 같소. 대신에 좀 더 유틸리티(utility)를 보유한 지원을 해주고 싶소.”

“유틸리티라면 어떤?”

위잉

자동문을 열고 들어간 파우스트 박사가 그 안에 비치되어 있던 웬 손목시계를 내게 건네더니 말했다.

“메피스토펠레스를 드리겠소. 칠요를 찾는 동안에 모든 종류의 맵핑(mapping)과 편의적 지원을 해줄 것이오.”

“……!!”

나는 그 순간 약간 놀라서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메피스토펠레스라면!’

강인공지능 메피스토펠레스!

그 존재는 율주의 세계에서는 종말 직전에 [옛 지배자] 렐크로바우스와 대등하게 싸울 정도로 강대하게 진화한 강인공지능이었다. 또한 나의 세계에서는 마찬가지로 세월이 지나자 등장했으며 프리메이슨의 그랜드마스터로서 전뇌자보다 더 강력한 강인공지능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설마 인공지능 메피스토펠레스요?”

“신비한 자로군. 마치 이미 알고있었다는 마냥….”

파우스트 박사가 눈에 이채를 띄더니 말했다.

“만일을 대비해 메피스토펠레스의 연산력 중 10퍼센트를 옮겨놓은 컴퓨터요. 분체라 하더라도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오.”

“…고맙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목시계에 말을 걸었다.

“메피스토펠레스. 들리나?”

[들립니다.]

“칠요를 탐색하는 걸 도와주면 좋겠어.”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기계음만 들려오는 걸 보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과거에는 그 무시무시한 강인공지능이었던 놈이 손목시계가 되어 있다니! 다만 그렇다고 주는 도움을 거절할 필요도 없었기에 나는 감사히 받고는 말했다.

“그럼 우선 월요부터 찾아볼까.”

나는 기지를 빠져나와서 허공에 대고 외쳤다.

“나일라토프! 순간이동시켜줘.”

[알았….]

“잠깐, 잠깐! 이렇게 계속 허공에 대고 외치기도 뭐한데.”

나는 나일라토프의 말을 끊고는 내 손목시계를 톡톡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가리켰다.

“메피스토펠레스한테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네 능력을 부여해줄 순 없냐?”

언제까지 이렇게 나일라토프에게 의지할 수는 없다. 나일라토프가 내 순간이동 요청을 핑계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덤으로 메피스토펠레스도 강화시킬 수 있다.

[흐음.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왜 말꼬리를 흐려?”

[강인공지능에게 능력을 부여하면 인과율이 소모된다고. 그 인과율소모를 감수하기는 싫은데.]

나일라토프가 꺼려하는 걸 듣자 나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뭐? 그래서 어쩌란 거야.”

[내가 인과율 소모를 감수할 만큼의 대가를 줘야겠지. 거래라는 게 기본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라는 건 알지?]

“…….”

나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는 이 익숙한 느낌을 바로 눈치 채고는 말했다.

“이 자식…. 제물 공양을 하라는 거냐? 네가 무슨 신이냐고!”

나일라토프의 유들유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했잖나. 나 자신은 몰라도 가이아는 인과율에 제약을 받는다고. 그리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능력을 넣어주는 것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가이아가 해 주는 거야.]

“어차피 전함 가이아도 네가 조종하는 거잖아? 무슨 차이냐고!”

[차이가 있지. 가이아 또한 자아가 있으니까. 그 사실이 중요해.]

“…….”

[아무튼 그래, 자네 표현대로 공양을 해야 능력을 부여해줄 수 있겠네.]

나는 그 말에서 절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일라토프 또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격(格)에 있어서 [옛 지배자]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미치겠군. 무슨 과학자가 신이 됐단 말인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지금 가진 건 아닌데 신혈(神血)이라고 하는 금속이 어딨는지 알고 있다. 그 금속의 소재지를 알려주면 될까?”

당장 내가 신혈을 쓸 건 아닌데다가 아마 이 세상에도 신혈이 고스란히 묻혀있을 테니 이게 제일 합리적인 제안일 것이다.

[신혈이라? 그게 뭐지?]

“초상기인이라고 하는 호문클루스의 궁극체를 만들기 위한 재료다.”

[…오호! 짐작가는 게 있군. 그거라면 충분해.]

파앗!

다음 순간 손목시계에서 빛이 났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순간이동 능력을 부여했다. 이제 신혈의 소재지를 말해라.]

“좋아. 신혈의 소재지는 여산(廬山)이다.”

[거래는 성립되었다.]

그동안 해 왔던 공양의식 중에서 제일 간단하게 끝난 거래가 아니었을까?

나는 나일라토프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강화도 마니산으로 가 줘.”

[명령 실행합니다.]

파앗!

나는 도착하자마자 기존의 월요의 제단이 있던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내밀한 곳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자 이윽고 익숙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월요의 제단이 그대로 있구나!

나는 내가 살던 세계와 그대로인걸 보자 기뻐졌다. 왜냐하면 이 사실은 한 가지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화요, 수요의 위치도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칠요 3개는 다 찾은 거나 마찬가지야!

나는 신바람이 나서 냉큼 월요의 제단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평소 하던 대로 월요가 숨겨져 있을 비밀공간을 찾아서 두리번거리다가 뭔가 이상함을 알아챘다.

“응? 왜 없지?”

나는 제단 근처를 몇 번이나 왔다갔다하며 찾아보았지만 역시 없었다. 원래 제단 앞에 세워져 있어야할 ‘그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비석(碑石)이 없다.

“……?”

본디 수호자의 시련, 수호자의 정체, 피를 바치는 의식을 암시하고 있던 월요유적의 비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원래 비밀공간이 있던 자리를 열심히 찾아내서 탐색했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알던 비밀공간에는 월요가 존재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여기가 월요의 제단이 맞긴 맞는 건가?

“아냐 틀림없어…. 내 기억과 똑같아. 여기 이외에 월요의 제단은 있을 수가 없는데.”

이제 내게 남은 행동은 하나뿐이다. 이 제단에 피를 떨어뜨려서 수호자를 소환해보는 것밖에 없다.

‘수호자가 나타나면 쓰러뜨려 주지!’

나는 검을 들어서 내 팔뚝을 살짝 베어 제단에 피를 뚝뚝 흘렸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딱히 별다른 변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

왜 안 나오지?

차라리 괴물이 나오기라도 하면 속편하게 때려죽이기나 하겠는데….

내가 괜히 초조해져서 머리를 벅벅 긁으며 기다리고 있자, 한참 후 내 머릿속으로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돈에 잠식된 말세(末世)…. 더는 관리할 필요가 없는 폐적(廢跡)이 마지막으로 본좌와 연결되어 있었다.]

어?

이 목소리는….

나는 말도 안 되는 현상에 순간적으로 전신의 털이 빳빳이 설 정도로 놀랐다.

내 생각대로라면 이런 곳에서 나타날 수가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네놈은 무엇이냐.]

내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을 때 내 눈앞에 있던 월요의 제단에 서서히 환영과 함께 제관(帝冠)을 쓴 고대의 제왕이 소환되었다. 그것은 실체가 아니었지만 가공할 존재감을 풍기고 있었고, 그 존재감은 아마 방금 전에 내가 바친 피가 [공양]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인 듯 했다.

그 어둠의 제왕이 서서히 암광(暗光)을 품은 눈빛을 내뿜으며 말했다.

[피를 바친 자여. 네놈은 어찌 본좌의 신력(神力)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삼황오제(三皇五帝) 전욱(顓頊)의 화신(化神)이 내 앞에 나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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