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316화 (1,313/1,615)

1316====================

사신지혼(四神之魂)

그러자 내 말에 열받은 듯 천인이 광소를 터뜨렸다.

[크흐흐흐. 오늘은 다들 아수라 그 놈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좋다, 어디 그 입방정만큼 실력이 있는지 보겠다!]

치지지징!!

[사사광륜(死四光輪).]

다음 순간 한 번의 주문과 함께 천인의 몸 주위에 4가지 종류의 각각 다른 색깔의 구체가 떠올랐다. 나는 저 주문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긴장하면서 검을 든 손에 힘을 꽉 넣었다.

‘시작인가.’

천인과 제대로 싸워보는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첫 만남에는 천인이 시간을 정지하는 술법을 써서 내게 힘을 과시했을 뿐 제대로 겨루지 않았다. 그 후에도 깔짝거리며 대치하거나 간접적으로 놈의 전투를 본 적은 있지만 나와 일전을 벌인 적은 없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팔부신중과의 전면전을 그동안 피해온데다가 팔부신중의 삼강이라고 불리는 천인과 싸우기엔 그간 실력이 부족했던 탓이리라. 정확히 말하자면 싸우려고 작정하면 천인과 싸울 기회는 당연히 있었지만 쓸데없이 목숨을 거는 격이었으므로 덤비지 않았다는 느낌이리라.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어떻게든 이 결투는 이겨야 하며, 내 힘 또한 팔부신중에 필적할 정도로 끌어올린 상태! 어차피 싸워야 할 거라면 이겨야 하고, 이기려면 괜히 적에게 주눅들 필요는 없다!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천인에게 대처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것은 28번째 전생에서 전뇌자를 통해 얻었던 지식에 기반한 것이다.

‘대웅제국에서 천인에 대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저 놈은 최소 10만개 이상의 술법을 알고 있으며 달통해 있다! 수천 년간 살아오면서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은 고대의 술법과 사법을 모조리 익혔고, 무한에 가까운 술법력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전장을 만들어내는 놈이다! 사실상 [옛 지배자]을 제외한 존재들 중에서는 대라신선조차 상대가 안 되는 최고의 술법전문가!’

나는 전뇌자에게 받았던 지식을 떠올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 천인을 상대로 가장 유효한 대처법…. 아마 그거겠지!’

고오오오

나는 검뢰를 끌어올리며 천인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먼저 덤벼들지는 않고 천인과 대치만 했다.

‘절대 먼저 공격하면 안 돼.’

천인은 선공해서는 안 된다. 여태껏 쌓아온 무수한 전투경험과 대웅제국의 지식은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일단 저 사사광륜부터가 전뇌자의 지식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술법인데 천인 자체가 알고있는 술법이 무시무시하게 많다는 걸 입증했다. 그런 천인을 상대로 먼저 덤벼들면 무조건 내가 모르는 술법으로 한 대 맞을텐데 문제는 한 방만 맞아도 인간의 몸으로는 빈사상태가 되리라는 점이었다.

“…….”

과연 계획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천인이 훗 하고 중얼거렸다.

[술법을 반사하는 능력이라도 있나보지? 어디 그렇다면 선공 해 주마.]

퓨퓽!!

천인이 소환해낸 4개의 사사광륜이 빛을 내뿜더니 허공에 마치 기포같은 걸 가득 발사했다. 그 기포는 직선으로 뻗어나오지 않았으며 거품이 삽시간에 사방에 가득 찬 듯 했다. 내가 힐끔 주변을 채운 빛의 기포덩어리를 쳐다보자 천인이 자신의 손가락을 퉁 하고 떨치며 말했다.

[터져라.]

퍼퍼퍼펑!!

다음 순간 수천 개나 되는 빛의 기포가 터지며 하나의 기포마다 수백 개나 되는 광륜(光輪)이 튀어나와 불규칙하게 튀어다녔다. 심지어 그 속도조차도 너무 빨라서 당산의 만천화우 이상으로 보일 정도였다.

위력이야 말할 것도 없이 금강동인조차 두부처럼 박살내는 수준이리라. 저런 괴물같은 공격을 호신강기로 막으려 들면 아무리 절대지경이라도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천인의 무서움!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이미 반사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삼보절기(三步絶技)

천(天)의 걸음에 이어 지(地)의 걸음으로 이어졌을 때 나는 이미 공간을 스쳐서 아슬아슬하게 기포의 범위를 모조리 회피할 수 있었다. 타인의 눈으로 보면 실로 예술적이라 할만한 영역이었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무한히 피할 순 없지만….’

내가 최강의 회피보법을 이용해서 기포의 살육공간을 피해내었으나 딱 삼 보까지의 자유만이 인정되었다. 아무리 삼보절기라도 한도를 넘은 극변(極變)이나 무한에 가까운 현란을 상대로 무한히 피할 순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삼 보의 여유 정도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바로 지금이다!’

나는 음신지력을 끌어내어서 최대한의 방어술법을 펼쳤다.

혼원지순(混元之盾)

이중첩(二重疊)!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전신에 방어술 혼원지순이 전개되는 게 느껴졌다. 2중첩으로 한 탓에 까딱하면 실패할 뻔 했지만 어쨌든 아슬아슬하게 된 것이다.

나는 긴가민가하던 게 성공하자 내심 뛸듯이 기뻐지는 걸 느꼈다.

‘해, 해냈다…. 무영창(無詠唱)!!’

전생 최초의 업적!

주문을 외우지도 않고 혼원지순을 전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최소한 상급술사만이 쓸 수 있다는 경지인 무영창!

그것은 그 술법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술법을 이루는 기둥의 다리를 빼도 버틸 수 있는 자의 특권이었다. 그런 탓에 지상에서 날고기는 술법사들도 보패나 법구의 힘을 빌리지 못하면 무영창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지선을 넘어 대라신선쯤 되어야 그게 자연스러운 경지로 자리잡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지금 무영창 시전에 성공한 이유 - 그것은 얼마 전부터 서서히 감이 돌아오고 있는 게 느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력을 이용해서 술법을 다루는데 필요한 특유의 감각이 미세하게나마 체현되며 통제할 수 있게 되고 있었다.

‘마력을 자주 소모한 덕에 내면의 흑웅이 깨어나고 있다….’

원래 음신지력을 나 대신에 통제하여 술법을 쓸 게 해주던 정령인 흑웅 - 지금은 잠들어 있지만 그 흑웅이 마력의 소모로 인해 천천히 깨어나는 덕이었다. 나는 내심 씨익 웃었다.

‘음신지력의 통제력이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아서 도박을 걸어봤는데 성공했구나!’

물론 기초중의 기초인 방패술법이라서 무영창이 쉬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멀었다. 다른 최상위 술사들이 하는 것처럼 괴물처럼 강대한 술수를 무영창으로 쓰는 건 아직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흑웅이 다 깨어나면 나도 가진 음신지력만큼 술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촤아아앗!!

2중첩 혼원지순을 전신에 걸어놓은 나는 삼보절기가 끝나자마자 사방에서 날아드는 광륜을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백 개나 되는 광륜은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방패모양의 혼원지순을 전혀 뚫지 못했고 끼긱거리며 긁히는 소리만 났다. 그걸 본 천인이 당황했다.

[뭣! 무림인인줄 알았는데 술법사였나?]

퍼엉!!

하지만 이중첩 혼원지순으로는 사사광륜의 파괴력을 막는 데 한계가 있었는지 곧장 방패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시간적 여유라면 내가 의념과 기력을 모으는 데는 아주 충분한 시간이었다.

고고고고

나는 잠깐의 순간 충분한 집중으로 끌어올린 의념을 이용해서 안광을 빛내며 빠르게 쇄도하며 천인에게 일격을 날렸다.

절대검뢰(絶對劍雷)

무량단(無量斷)!

무량(無量)을 베는 번개가 세계의 법칙을 왜곡하며 천인의 몸을 사선으로 내려그었다. 천인은 그 일격이 너무 빨라서 마왕의 감각으로 감지는 했으되 술법으로 대응까지는 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무량단에 베인 실선같은 궤적이 점차 폭발하더니 거대한 빛과 폭렬음을 토해내었다.

쿠콰콰콰콰쾅!!

쿠르르르….

수백 장이 빛에 휩싸이며 마치 핵이라도 터진 것같은 폭발이 미친듯한 속도로 공간에 번져나왔다. 나는 무량단으로 벨 때만큼 빠른 속도로 검을 거둬들이며 후방을 향해 파천일보를 시전해서 벗어났다.

타닷

내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파괴의 흔적과 시꺼먼 매연을 보고 있을 때, 천인의 음산한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퍼졌다.

[크윽…. 제법… 하는구나.]

타격을 받은 게 틀림없는 목소리였다.

[내가 술법을 쓰고 난 직후에 자동방어술법이 약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군…. 그것도 가장 약해지는 곳을 정확히 베다니.]

“…….”

[누구한테서 내 정보를 들은 거지?]

파지직

번개가 튀면서 그 자리에 천인의 새하얀 신형이 나타났다. 그러나 멀쩡하지 못한 듯 내가 베었던 사선의 참격 부위가 찢겨지고 갈라져 있었고, 그 안에서 청혈(靑血)이 줄줄 새어나오는 게 보였다.

나는 훗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너한테 죽은 수많은 고수들의 염원과 분석이지. 그들이 내게 네 약점을 알려주었다.”

[내가 네 부하들을 죽였다고? 최근 그랬던 기억이 없는데….]

“…….”

모를 수밖에 없겠지.

28번째 생 대웅제국의 요괴대전 시절 - 대웅제국의 무수한 무림인들이 분연히 일어나 팔부신중을 쓰러뜨리는 토벌군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절정고수와 초절정고수들이 마왕 팔부신중에게 도전했고 그 중엔 천인에게 덤빈 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극강의 술법에 뼈도 못추리고 학살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팔부신중에게 살해당했으나 그들이 싸웠던 자료는 모두 기록으로 남았고 대대로 팔부신중의 약점을 분석한 내용이 전해져왔으며 나중에 전뇌자에 입력되었다.

나는 그 자료를 보고서 천인이 선공할 때를 노려 방어술법으로 피해를 무효화시키고 검뢰 무량단으로 반격하는게 최적의 전법이라는 걸 알아차렸던 것이다. 또한 천인의 자동 방어술법이 가장 약해지는 부분이 어딘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직접 마주한 적은 없으나 500년간 대웅제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했던 그 모든 인간들. 그들의 염원이 나로 하여금 지금 한 번의 교환으로 천인에게 중상을 입히는 데 성공하게 한 것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그대들이 대웅제국에 바친 충성만큼 이 자리에서 천인을 박살내주겠다!’

이건 대웅제국 초대황제로서의 업일 것이다!

“뒈져.”

타다닷!!

나는 재차 천인에게 달려들었다.

[또 당할 줄 아는가?]

그러자 천인은 곧장 무영창으로 알 수 없는 술법을 다섯 개나 펼치면서 내게 즉각 반격했다. 그러나 무영창임에도 불구하고 화안금정을 켰기 때문인지, 그 술법의 이름과 명칭같은 게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술수(術手) 마라괴주(魔羅傀蛛)

마술(魔術) 장혈수(裝血手)

저주(詛呪) 흑발검(黑髮劍)

결계(結界) 백원칠성진(白元七星陣)

강화(强化) 회혼갑(回魂鉀)

촤좌자잣

갑작스럽게 눈 앞에 천라(天羅)와 같은 거미줄이 세계를 뒤덮듯이 펼쳐지며 일단 내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둠의 안개같은게 피어오르더니 기습적으로 내 목을 노리고 괴물의 핏빛 손목이 튀어나와 공격해왔고, 그 습격을 피해내자 내 그림자에서 창날같은 머리카락의 칼날들이 등을 찔렀다.

‘큭!’

이거 빡센걸!

카강

내가 필사적으로 모든 무공을 발휘해서 연속된 습격을 쳐냈을 때 치링 하는 소리와 함께 천인의 몸 주위에 백색의 결계가 나타나서 둘러쌌으며 동시에 천인의 몸 위에 마치 내가 했던 것처럼 모종의 방어술법이 걸리는 게 보였다.

“……!!”

하나같이 계통도 종류도 다른 술법인데 모조리 무영창으로 연속으로 써버린다고?!

‘제기랄! 술법 하나는 천계 십이대선조차 우습게 여길만 하군!’

내가 내심 경악하고 있을 때 천인이 말했다.

[과연 멸해까지 올만한 자로군. 보통 무림인의 검강 따위로는 내 몸을 해칠 수 없어서 방심했는데 네놈의 일격은 충분히 나를 죽일만하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 죽기 싫어서 몸에 갑옷을 칭칭 둘렀냐?”

[피장파장 아닌가? 피차 전력을 다해서 싸울테니 네놈도 아까처럼 술법을 쓸테면 써라.]

내 비아냥을 가볍게 받아친 천인의 눈에서 섬광이 폭사했다.

[그리고 나 천인 앞에서 술법으로 결판을 내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깨닫게 해주마!!]

쿠구궁

갑자기 거대한 압력이 내려앉으며 나를 짓눌렀고, 나는 그 존재감 때문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인이 본격적으로 전력을 다한다는 걸 깨닫고는 내심 중얼거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팔부신중의 삼강으로 불릴만한 이유가 있군….’

다른 팔부신중과는 한단계 차이가 난다는 게 확실했다. 다른 놈들이 그래도 마왕의 육체에 의지해서 근접전과 특수능력으로 결판을 내는 것에 비해 천인은 천계의 대라신선을 초월하는 술법력을 이용해서 자리에게 유리한 전장을 만들어서 지능적으로 싸웠다. 심지어 마왕의 육체라는 내구력은 같으므로 공격력과 응용력이 남다른 천인이 막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 이 정도 되는 놈이니까 그 제천대성이 인정했던 것이리라.

방금만 해도 그렇다. 저런 상급술수를 제멋대로 난사하는 놈을 상대로 오래 끌어봤자 한 방만 잘못 맞아도 죽는다는 미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상대의 강함을 인정하는 것과 그 자의 승리를 인정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나는 절대 질 생각이 없었기에 검을 꾹 쥐고는 중얼거렸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면 나야 좋지. 최대한 무인으로 싸우려 했지만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디 해 보자.”

[어떤 대단한 술법을 쓸 생각인지 모르지만 내겐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셔?”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한쪽 손을 들어서 정신을 집중했다.

“생사부 소환!”

슈욱!

[뭣?]

다음 순간 나는 생사부를 불러내어 내 손에 든 후 곧장 천인을 노려보며 생사부에 이름을 썼다.

“죽어 개새끼야!”

치사해서 웬만하면 무인답게 안 쓸려고 했는데 니가 자초한거야!

비틀!

[크윽…!!]

츠아아아

내 눈에는 보였다. 잠깐동안이지만 천인의 몸 주위에 시꺼먼 망자(亡者)의 손이 떠올라서 놈의 피부를 매만지는 모습이! 그것은 영혼을 직접 어루만지는 손길이었는지 천인이 펼쳐놓은 결계나 방어술을 모조리 무시하는 듯 했고 천인이 잠시동안 고통스러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비틀거리긴 해도 아직 태세가 무너진 게 아니었고 금세 회복할 것처럼 보였다. 나는 지금 현 상황에서 생사부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차렸다.

‘그렇군! 해신처럼 [옛 지배자] 반열에게는 아예 안 통하지만 그래도 그 아랫급의 마왕에게는 잠시 타격을 줄 정도인가.’

그나마도 오래 잡아둘 순 없는 것 같아서 28번째 생에 전륜성왕의 힘을 얻었을 때의 위력에 비하면 초라했다. 그러나 이정도만 해도 상황에 따라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나는 내심 실험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빈틈!!”

나는 그 순간 생겨난 압도적인 빈틈을 향해서 다시 무량단을 써서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미리 펼쳐둔 결계술과 방어가 무량단을 막아주는 것 같았고, 무량단이 잠시 저항을 느끼고는 천인의 술법을 찢어버렸다.

츄왁!!

슈웅

[크흐윽…. 수정석비의 힘만 제대로 쓸 수 있어도….]

뭔가 중얼거리던 천인의 신형이 순식간에 순간이동해서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그리고 천인은 고통을 간신히 추스리며 양손을 합장하며 외쳤다.

[시간이여 정지하라!!]

쿠웅

천인이 무영창도 아니고 제대로 집중해서 걸어버린 시간정지의 술법이기 때문일까? 전신에 철쇄를 묶어놓은 것 같은 중압감이 들었지만 나는 이를 뿌득 갈면서 전신에 힘을 주어서 이겨내며 뛰쳐올랐다.

“그럴 줄 알았다!”

[뭣이!!]

내가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자 천인은 당황한 듯 계속 뒤로 빼면서 나를 피했지만 나는 계속 따라붙으며 검뢰와 어검술을 날렸다.

콰과광

아무리 천인이 상급술법으로 방어를 한다고 해도 내 검뢰의 위력은 그 이상이라서 종이를 덧댈때마다 칼날에 찢기는 듯한 형상이 나타났다. 천인이 명백히 수세에 몰리자 전신에서 백광을 뿜어내며 나를 공격했지만 그럴 때는 내가 도리어 삼보절기나 파천일보를 쓰면서 뒤로 물러섰다.

촤앗

나는 다시 한 번 헛점을 잡고 천인의 빈틈을 노려 놈의 몸통에 다시 한 번 칼자국을 낼 수 있었다.

[크윽.]

부상을 입은 천인이 자신의 술수를 다 읽힌 걸 알아채고는 망연자실해하며 외쳤다.

[어떻게 시간정지 수법을 알아챘단 말이냐!]

그야 첫 만남부터 삼장법사의 모습으로 시간정지를 썼으니까 모를 수가 있겠냐!

당연히 나는 그 이후로 줄곧 천인이 시간정지를 쓰면 어떻게 대응할지 심심할 때마다 생각한 것이다.

‘시간정지도 결국 술법이니까 음신지력의 신력으로 몸을 둘러싸면 잘 안 걸리는거지!’

파지지직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칼날에 전력을 집중하며 무량단을 펼칠 준비를 했다. 천인이 도리어 긴장하며 무언가 술법을 잔뜩 준비하는 모습이자, 나는 왠지 심술궂은 생각이 들었다.

‘저 새끼는 철저히 밟아버리고 싶군!’

그리고는 곧장 사대신기의 공간으로 가서는 부탁했다.

“사대신기여! [전설적인 심연의 광폭한 혼돈 속 초대형 변이 심홍 꽃게]의 이름을 제물로 바치노니 천인이 술법을 못쓰게 해 다오!”

슈욱

내 외침에 갑자기 아그니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한백령의 모습으로 말했다.

[좋다. 내가 놈의 머릿속에 있는 술법의 지식을 한동안 불살라 버리겠다.]

쿠궁

내가 현실세계로 돌아온 순간, 천인이 갑자기 모든 술법의 전개를 멈춰버리고는 극히 당혹한 듯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천인은 경악해하며 외쳤다.

[아, 아,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보나마나 뻔했다. 내 팔목을 보니 심홍꽃게의 [이름]이 삭제되어 있었고, 사대신기 불의 아그니가 그 대가로 천인의 술법지식을 불태워버린 것이다. 지식이 불타버리면 망각상태나 다름없으니 술법을 못 쓰는 건 당연하리라.

“죽어라아아앗!!”

대웅제국 무림인들과 정예군인들의 복수다!!

푸콰콱

나는 달려들어서 아무런 방어도 못하는 천인을 난도질했다. 천인은 순식간에 검뢰로 열여덟 조각이 나서 후두둑하고 살점이 떨어졌다.

스스스….

그러나 잠시 후 떨어진 살점끼리 모이면서 빛과 함께 형상이 다시 나타나는 걸 보자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음!’

역시 창힐의 권능으로 무한부활하는 게 적용하는 건가?

‘씨발…. 계속 죽여야 하나?’

나는 각오를 다졌지만 잠시 후 이상함을 느꼈다.

천인이 부활하긴 했지만 어째 정신을 못 차리고 허우적대는 듯 무방비상태였다.

[커헉…. 우어어….]

나는 놈이 죽음의 고통때문에 그러나 싶었지만 뭔가 달라보였다. 천인은 상대가 적의가 있었다면 거의 골백번은 죽을 정도의 시간동안 허우적거렸지만 이성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는 커녕 지금까지 안정되어 있던 천인의 몸뚱이가 크게 울룩불룩거리며 커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꾸드드득

꾸드득

[우어어어어어어!!]

강렬하게 포효하는 천인의 모습은 입해에 있는 혼돈의 마물들과 별로 다른 것도 없어 보였다. 나는 천인이 저 꼴이 된 게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세계수 결전때 팔부신중이 무한부활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

그 때는 살아나자마자 바로 원래의 힘과 권능을 쓰며 투입되어 결국 [옛 지배자]의 화신인 카르파도크마저 격퇴시킬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부활한 것은 영락없이 마물화가 되어버린 듯한 영락한 모습이었다.

내가 의아해하고 있자 허공에서 싸늘한 수해의 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참하군. 주인잃은 개여…. 창힐의 육체조차 다스리지 못할 정도로 영락하다니.]

쿠직

그것이 천인의 최후였다. 수해의 왕이 소환한 듯한 거대한 손가락이 천인을 짓누르자 천인은 살덩어리가 되어서 터져나갔다. [옛 지배자]가 직접 죽여서인지 천인은 더 이상 부활할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그대로 싸늘하게 식어가는 듯 했다.

잠시 후 수해의 왕이 말했다.

[백웅의 승리로 결정되었다. 백웅 그대는 소원을 어떻게 하고싶은가?]

“잠깐. 그 전에….]

나는 재빨리 천인의 시체 잔해를 뒤졌다. 그리고 한참을 뒤지다가 뭔가 반짝이는 걸 발견하고는 주워서 들었는데, 딱 손가락만한 크기의 조각이었다. 나는 화안금정으로 그 조각에서 심상치않은 영기가 감도는 걸 알아채고는 중얼거렸다.

“역시 있었군.”

수정석비의 조각!

팔부신중이 수정석비 완전체를 뽀개버리고 자기들 몸에 흡수했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나는 연금술사 생 제르맹이 이 수정석비 조각을 회수해달라고 했던 부탁이 기억났기에 천인의 시체를 뒤적거린 것이었다. 이제야 천인을 죽여서 그 조각 중 하나를 회수한 셈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작아?’

그렇지만 수정석비의 크기를 생각하면 너무 조각의 크기가 작았기에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그 커다란 수정석비를 아무리 팔부신중끼리 6등분했다지만 최소한 어린아이 크기는 되어야하지 않나? 설마 소화되어서 작아진 걸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일단 수정석비의 조각을 목갑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흠. 나는 그 소망을 그대로 이뤄주고 싶다.”

[[나일라토프를 이 자리에 소환한다]라는 소망을 말이냐?]

“그래. 바로 실현시켜 줘.”

나는 말을 꺼내고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이환웅 소령과의 약속은 거의 지킨 건가….’

자기 과학자 스승을 소환해서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놈이 알아서 할 영역이었다. 아까 약속했던 걸 이뤄줬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안도감과 성취감이 들었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응?’

나는 이 결투의 이공간이 한동안 사라지지 않고 수해의 왕이 계속 침묵하고 있자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이봐!! 뭐하는 거야? 소원 이뤄달라고!”

잠시 후 수해의 왕이 뜻밖에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왜 그래?”

[불러오려 하니 저쪽에서 도리어 [문]을….]

수해의 왕이 잠시 후 경악한 듯 외쳤다.

[주시자시여…!! 무슨 소리십니까? 불가해(不可解)라니….]

쿠구구궁!!

허공에서 뭔가 빛이 발사되었고 수해의 왕이 격중당한 듯 했다.

[크아아아아악.]

수해의 왕이 외마디 비명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존재감이 끊겼고, 나는 그와 동시에 머나먼 곳에서 아지랑이처럼 수해의 왕의 신형이 추락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저게 환영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큰 타격을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수해의 왕이 혼돈의 심연 속으로 빨려들어가서 사라지자, 한동안 이 이공간에 정적이 흘렀다.

“……?!”

뭐, 뭐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수해의 왕이 당한 건가?!’

내가 크게 당혹해하고 있을 때였다.

콰직! 콰지직!!

나는 허공에서 마치 유리창이 깨어지듯 시공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거대한 전함(戰艦)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볼 수 있었다. 전함이 나타남과 동시에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장내에 새하얀 광선이 내려쬐었고, 그 광선을 통해서 [무언가]가 천천히 내려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우우웅

우우우우 -

전함에서 광선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건 왠지 병약해보이는 과학자였다. 새하얀 가운을 입은 채 안경을 쓰고 있던 그 과학자는 영락없이 인간의 모습이었고 강대하거나 초월적인 힘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땅에 내려앉은 과학자가 자신의 안경을 매만지더니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외우주를 넘을 때는 역시 마스크가 필수인가?”

“…….”

“후우. 잠깐만.”

과학자가 품속에서 흰색 마스크를 써서 자신의 얼굴에 쓰더니 뭔가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후 흰색 장갑을 끼고는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반갑네! 나는 나일라토프. 지나가던 과학자일세. 굳이 나를 불러주는 외우주가 있을 줄은 몰랐군.”

“아니…. 당신은….”

이 놈은 대체 뭐지?

뭔가 기분나쁜 느낌과 함께 왠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놈을 어디선가 몇 번 만나본 듯한 기분나쁜 기시감이었다.

“쿨룩. 쿨룩. 기침이 안 멎는군.”

“병걸렸소?”

“아주 달고 사는 편이라네. 몸이 약해서….”

“…….”

아무리 봐도 인간이다. 그것도 한 대 툭치면 죽을 정도로 약해보인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질문했다.

“…당신이 이환웅 소령의 스승이오?”

“맞네. 근데 그런 건 중요한 건 아니고…. 쿨룩.”

기침을 하던 나일라토프의 이어진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자네 전생자 맞지? 초면에 실례지만 몇 번쯤 죽었는지 알 수 있을까?”

뭐?!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나는 그 순간 위기감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한 눈에 내가 전생자인 걸 알아보고 수해의 왕을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는 과학자!

‘설마 [기어오는 혼돈]의 수하같은 건가?!’

황제 공손헌원에게 크게 데여본 나로서는 경기를 일으킬만큼 아찔한 상황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어진 건 오랜 전생경험이 불러온 자기방어적 행동이었다.

나일라토프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안경 덕분이지.”

“안경?”

“외우주를 돌아다니다가 심심해서 만든 걸세.”

서늘한 빛을 내뿜는 자신의 안경을 매만지던 나일라토프가 약간 자랑스러워하는 어투로 말을 이었다.

“양자의 진동패턴과 텐서(Tensor)의 관계성을 내게 전달해서 범우주상수를 측정하는 물건이지. 그 덕에 결함변인으로 발생하는 카르마 팩터(karma factor)까지 읽을 수 있는데, 이게 있으면 카르마 팩터가 비정상적으로 쌓여있는 존재를 측정할 수 있거든.”

“……?”

“아, 못 알아들어도 괜찮네. 어차피 이런 분야는 내 장난감일 뿐이니까. 장난감이 있으면 갖고놀면 되지 장난감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굳이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뭐, 뭐라고….”

정신없이 떠들던 나일라토프가 너스레를 떨었다.

“중요한 건 내가 전생자를 알아볼 수 있다는 거 아니겠나? 우주적으로 희귀한 존재를 보니 이거 반갑기 그지없군.”

“…….”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너… 너 설마 니알라토텝이냐?!”

내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나일라토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무슨 소린가? 그게 누구지?”

“시치미 떼지 마!! 거, 이제 보니까 이름이 비슷하구만!”

아깐 몰랐는데 니알라토텝이나 나일라토프나!

내가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자 나일라토프가 웃었다.

“하하. 뭐 이름이 비슷하구만. 내가 그 니알라토텝이라는 자라면 어쩔건가?”

“……!!”

그는 아주 상쾌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 이것도 인연인데 시험삼아서 나를 한 번 때려죽여보게. 그러면 증명되겠지.”

“니… 니미럴!!”

나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또 28회차같은 절망을 느껴야하는 건가?!

눈앞에 있는 게 정말 니알라토텝이란 말인가?!

“에라이 씨발!”

정말 그렇다면 이판사판이다!

퍼억

“커헉….”

나도 모르게 가벼운 뇌신권 한 방을 명치에 먹이자 나일라토프는 잠시 부들거리다가 쓰러졌다. 심장에 뇌전의 기력이 뻗쳐서 마비된 것이었다.

풀썩

앞으로 쓰러진 나일라토프는 잠시 후 숨이 멎었다.

“……?”

응?

너무 쉬운데?

수해의 왕을 일격에 격추시킨 놈 답게 뭔가 신비한 방법으로 반격하거나 마법으로 나를 태워버릴 줄 알았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

나쁜 예감이 든다.

나는 과학자 나일라토프의 시체를 여러가지 의학지식으로 살피다가 잠시 후에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어… 이, 이런….”

나일라토프의 시체는 그냥 인간이었다.

진짜 그냥 죽은 것이었다.

“…….”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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