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315화 (1,312/1,615)

1315====================

사신지혼(四神之魂)

아수라의 죽음을 바란다고?!

‘대체 어떤 새끼가!!’

나는 크게 당황했다. 상정했던 소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동료의 죽음은 내가 절대 바라는 게 아니었기에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입찰한다!

내가 손을 들자 내 앞에 떠 있던 황금빛의 원형구조물이 큰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만치 멀리에서도 황금빛이 보이는 듯 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이환웅이 말했다.

“호오, 저 황금빛으로 경매의사를 판별하는군.”

이환웅은 입찰하지 않았다.

이윽고 나타난 황금빛은 내 것을 포함해서 총 5개가 떠올랐다. 수해의 왕은 느긋하게 입찰의사를 살피는 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다…. 너희 앞의 금정(金鼎)에 자신이 입찰할 대가를 올려라.]

파지직

다음 순간 금정이라고 불린 황금빛 원형구조물이 커다란 금빛 그릇처럼 변형했다. 이 위에 경매의 입찰대금을 올리라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외쳤다.

“잠깐! 물어볼 게 있어!”

[뭔가?]

“굳이 보물이나 물질이 아니라 무형의 대가를 대금으로 제시하고싶다면 가능한가?”

[후후…. 예상했던 질문이군.]

수해의 왕은 느긋하게 대꾸했다.

[가능하다. 금정 위에 손을 올리고 염원하면 내가 그 생각을 읽어주겠다.]

“…….”

나는 휙하고 옆에 있던 이환웅을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한 질문은 이환웅이 한 번 질문해보라고 시킨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이환웅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

“그렇단 말이지? 역시 빨리 덮어씌워서 끝내버리는 게 유리하겠어.”

“이환웅. 필승법이 있단 말이냐?”

“아직은 없어. 아직은….”

이환웅이 말을 이었다.

“이번 공격은 가불기 속성이 있으니까 그냥 최선을 다해 막는 수밖에 없을 거 같군. 뭐 아수라라는 동료가 세다면 안막아도 되고.”

“가불기가 뭐냐?”

“못 막는다 그 말이지 뭐. 이 세계엔 역시 없는 말인가 보군.”

“제기랄….”

나는 이환웅의 말에 신경질을 냈지만 역시 딱히 대책이 없다는 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에 팔부신중이 이 안건을 올렸고, 조금이라도 대가를 바쳤다면 그냥 못본척할 경우 아수라는 무조건 죽게 될 것이다.

‘…잠깐? 팔부신중은 아수라를 봤던가?’

나는 그 순간 팟 하고 다른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서… 설마….’

그런 건가?

나는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에 잠깐 전율했다.

‘하, 하지만 틀렸다가는 아수라가 죽을 텐데….’

나는 몹시 망설였다. 지금 머릿속의 추측이 틀릴 경우 나는 어이없게 동료 한 명, 그것도 이번 생에 가장 큰 동료인 아수라를 죽게 내버려두는 셈이었다.

‘…내 생각을 믿어보자.’

내가 멍청하다고는 하지만 이럴 때의 판단까지 틀리진 않다.

그리고는 슬며시 금정 위에 올려두었던 손에 힘을 주면서 머릿속에 염원했다.

[내가 이번에 대가로 바칠 것은 이번 입찰 1위가 바친 대가와 동등한 수명이다!]

내 생각대로라면 보물은 아껴두고 일단 수명을 쓰는 게 나을 거야!

수명은 나한테 별로 가치가 없는데다가 일단 대면하는 게 중요하니까!

‘1위의 대가가 크면 클수록 내가 갑자기 수명을 모두 잃고 돌연사할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내 생각대로라면 이번 1위는 별로 큰 대가는 내놓지 않았을 터!

[흐흐…. 꼼수를 쓰는군. 하긴 이 정도는 인정해줘야 할까?]

수해의 왕은 벌써 어떤 의도로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지 눈치 챈 듯 했다.

[안 되나?]

[물론 된다. 어디 한 번 볼까….]

슈슈슈슉

잠시 후 다섯 개의 금정이 빛나더니 허공에 둥실 하고 각자가 입찰한 [대가]가 허공에 떠올랐다. 하나하나를 살펴보던 수해의 왕이 말했다.

[입찰 1위로 나선 것은 망량이다. 삼황내문의 술수 중 태부신죽(胎簿神竹)의 술수를 영원히 내게 바치는 대가를 내세웠다.]

수해의 왕이 말을 이었다.

[망량의 대가와 동등하게 백웅의 수명을 6년 소멸시키겠다. 입찰자들은 소망을 얻기 위하여 결투를 시작하라.]

우웅!!

다음 순간, 나는 어떤 기이한 공간으로 순간이동했고 잠시 후 십여 장의 거리를 두고 내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 있음을 알아챘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외쳤다.

“망량!!”

망량은 전에 없이 기쁜 표정으로 빙긋 웃었다.

“후하하. 도박을 했소만 정말 잘됐구려. 내 의도를 알아차렸군!! 대가를 적게 걸다니 아주 잘했소!”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난 별로 머리가 좋지 않소.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어려운 선택을 하게 만들다니…. 내가 당황해서 대가를 많이 썼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소?”

“후후.”

“당신 원래 이렇게 무모했던가….”

“그렇지만 눈치챘잖소?”

망량이 약간 득의양양한 기색으로 말하면 슬며시 자신의 손 위에 부적을 띄웠다. 그리고는 부적을 내게 날리며 말했다.

쓔웅

“이번 소망과 입찰은 당신과 내가 접선하기 위한 핑계라는 것을!”

“아슬아슬했소.”

카앙!!

[전투]를 [연출]하기 위해 내게 날린 망량의 하급 부신술을 검강으로 튕겨냈다. 나 또한 싸우는 척을 해야했기에 평범한 보법으로 망량에게 접근하며 대충 칼을 휘둘렀고, 망량이 술수를 써서 종이환영을 남기고 피해내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팔부신중이 소망을 쓰기 전에 이 공간에서 아수라를 본 적이 없다는 걸 눈치 챘기에 망정이지….”

그렇다.

수해의 왕은 틀림없이 내 시야 뿐만이 아니라 팔부신중의 시야에서도 망량 일행을 감추었으리라. 그렇다면 나타난 순서상 팔부신중들이 [소망]을 쓰거나 수정하던 시기에는 그들은 망량 측에 아수라가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으리라.

“바로 그거요.”

파파팟

수십 개의 부적이 떠올라서 허공을 유영하더니 내게 날아왔고, 나는 삼보절기를 이용해서 현란한 신법으로 피해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망량은 종이로 학을 만들어내어 내 쪽으로 날리며 말을 이었다.

“팔부신중 저 자들은 그 시점에 아수라가 우리 편이 되었단 걸 몰랐소. 이 상황에서 아수라를 죽이려고 소망을 비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지. 오히려 소망을 이용해서 수해의 왕에게 아수라를 데려와 달라고 빌면 몰라도.”

“팔부신중은 아무도 입찰하지 않았던 거군.”

“그렇소. 고작해야 삼황내문의 술법 하나밖에 안 걸었는데 내가 1위가 되었다는 건 팔부신중 측에서는 아무도 입찰하지 않았다는 것. 저들 입장에선 영 영문모를 소망이니까.”

망량이 나직이 말했다.

“틀림없소. 아마 수해의 왕은 팔부신중들에게는 나나 아수라, 세이메이의 모습이 안 보이게끔 해둔 것이오. 의도야 뻔하지.”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당신의 의도가 보이더구려. 아수라를 죽인다는 소망을 빈 이유는 반드시 내가 입찰하게끔 만들려는 거였소.”

나는 나직이 대꾸했다.

“망량 당신이 아수라를 죽인다는 소망을 빌어, 이렇게 당신과 내가 입찰결투의 형식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까가강 - !!

내가 단숨에 만승검결을 휘둘러서 모든 부적술과 종이학을 쳐 내자 망량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문득 히죽 웃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눈치 보여서 오랫동안 작전을 짜지는 못하겠구려. 수해의 왕이 적당히 하라고 내게 정신력으로 직접 압박을 가했소. 기발한 작전이라고 인정은 해 줬지만 너무 이용해먹지는 말라는 거지.”

“으음.”

“그나저나 직접 싸워보니 백웅 당신은 정말 강하긴 하구려. 대충 싸운다곤 해도 내가 알고 있는 공격술법은 전부 최대한 써봤는데 전부 장난처럼 흘리는군.”

약간 투덜대던 망량이 말을 이었다.

“백웅. 이 경매는 기회라고 할 수 있소. 우리는 이걸 잘 이용하면 수해의 왕으로부터 많은 걸 얻어낼 수도 있지.”

“어떻게 말이오?”

“우선 이 소망은 당신이 승리해서 가져가시오. 그리고 아수라의 살해를 이루는 대신 다른 소망으로….”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말했다.

“당신들 셋 중 하나를 먼저 여기서 귀환시키면 된다는 거지?”

“응? 아니오.”

“엥?”

“왜 그래야하겠소?”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반문한 망량이 말을 이었다.

“우릴 굳이 귀환시킬 필요 없소. 아니, 우리들 자신조차도 그런 소원은 한 명도 빌지 않았소. 작전을 그렇게 짤 필요가 없는데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려.”

“무, 무슨 말이오?”

“흐음. 이 자리의 이해관계를 잘못 알고 있군. 이환웅이란 자가 자신의 입장을 당신에게 설파한 건가?”

그렇게 중얼거린 망량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내 말대로 해 보시오.”

잠시동안 나는 망량에게서 작전을 전해들었다. 그리고 의견교환이 끝나고 나자, 나는 짐짓 망량의 목에 칼을 대는 시늉을 했고 망량은 손을 크게 들었다. 망량이 겁먹은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졌소! 항복이오!”

[짜고 치는 것도 이 정도면 우습구나…. 흐하하. 인정해주지.]

처음부터 우리의 대화를 다 들었기 때문일까?

호탕하게 웃던 수해의 왕이 말을 이었다.

[경매 입찰결과, 결투의 승리로 [아수라를 죽이고싶다]는 소망은 백웅의 것이 되었다. 백웅 너는 소망을 이루겠느냐?]

슈슉

말하는 동안에 망량의 신형이 소멸되었다. 아무래도 결투의 이차원 공간에서 추방되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힐끔 보다가 말했다.

“아니. 소망을 바꾸겠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찔끔찔끔 한판씩 따는 게 감질맛난다. 내 소망을 팔부신중 전체를 외우주로 보내고싶다는 소망으로 승급시키겠다!”

이것이 바로 망량의 계책!

‘팔부신중을 싹 다 보내버리는 건 내 역할로 하자.’

이렇게 한방에 다 보내버리는 소망을 갖고 있으면 나중에 꽃놀이패로 쓸 수 있다는 게 망량의 설명이었다. 팔부신중 또한 같은 소망을 빌고 있으면 입찰하지 않음으로써 놈들을 보내버리면 그만이고, 쓸데없는 소망이 경매에 나올 경우 그때서야 팔부신중을 다 보내버리면 되는 것이다.

팔부신중을 다 보내버리고 동료들만 남는다면 아주 쉬워진다.

그리고 남은 [소망]을 이용해서 망량을 비롯한 내 동료들이 소망으로 이득을 보면 될 것이리라.

내 말에 수해의 왕이 대꾸했다.

[아까 말했을 텐데. ‘전부’나 복수(複數)를 대상으로 할 수 없고 하나에 한 건 씩이라고.]

“제약을 걸면 된다고 했잖아?”

[…….]

“망량의 말대로라면 너도 처음부터 이걸 염두에 두고 말했던 거잖아. 제약이 있으면 말해.”

[흐흐흐…. 이래서 책사와 만나게 하기 싫었는데. 너무 빨리 진행되는군.]

이 새끼가?!

나는 짜증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난 이런 곳에서 시간낭비하기 싫어! 지랄 말고 빨리 말해!!”

[크흐흐.]

수해의 왕은 음충맞게 웃다가 말을 이었다.

[제약은 너 또한 내 [소망]을 수용해야한다는 것이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원하는 일을 하나 해줘야겠다. 그게 바로 제약이지.]

“어떤 일인데.”

이어진 수해의 왕의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진정한 신(神)을 죽일 수 있는 검술(劍術)…. 그리고 그 전승자를 찾아서 내게 데려와라. 이 소망을 수용한다면 팔부신중 전체를 외우주로 보내는 소망으로 승급시켜주겠다.]

“……!!”

이, 이 놈이 말하는 건 설마…!!

나는 놈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미야모토 무사시가 오륜천서를 통해서 알게 된 존재이자 고대에 비류가 코토아마츠카미들과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찾아내려고 한 신비의 무언가였다.

원월천살법!

나는 이런 제약조건이 나올 거라고는 망량과도 미처 조율하지 못했으므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류와 수해의 왕은 같은 편이다.’

애초에 비류 또한 이 아오키가하라 수해에 존재하는 외우주의 문을 이용해서 [바깥]에서 현실로 들어온 [옛 지배자]. 비류가 자유자재로 수해를 출입할 수 있다는 건 결국 놈들이 한편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비류가 원하고 있었던 원월천살법 탐색의 사명은 수해의 왕 또한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나는 그걸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원월천살법은 나 또한 찾고 있는 거잖아?’

실재유무를 떠나서 신을 죽이는 힘이라는 건 내가 전생하는 동안 내내 간절하게 찾아다니고 있던 능력이다. 간접적인 신살의 방법은 많지만 원월천살법은 아주 직관적으로 확실하게 신을 죽이는 신살법인 듯 했다. 그걸 얻을 수만 있다면 내게 굉장히 큰 이득이 될게 뻔했고, 나 또한 찾고 싶었지만 그 동안 너무 단서가 없고 할일이 없어서 원월천살법은 손도 못 댔던 것이다.

나는 고민했다.

‘흠…. 어쩌지….’

나는 그러던 중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수해의 왕. 설마 이 웃기지도 않는 경매를 시작했던 게…. 처음부터 그 부탁을 내게 할려고 했던 것인가?”

[…….]

수해의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까처럼 음충맞은 웃음도 흘리지 않았다.

‘맞군….’

그러나 직감상 아마도 내 말은 진실인 것 같았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 이 대답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사실상 지금이 경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군. 수해의 왕 저놈의 입장에서는 내가 원월천살법을 탐색해주지 않는다면 다른 경매는 별로 관심도 없어질 것이다.’

왜인지 모르지만 수해의 왕은 원월천살법의 탐색에 무척이나 집착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어색함 없이 내게 그 임무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슬며시 팔부신중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약간의 이득을 주겠다고 꼬시는 느낌이었다.

무척이나 교활한 존재다.

그리고 힘보다는 지혜를 쓰기를 선호하는 놈이다. 자기의 힘을 과신하지 않고 철저한 계획을 수립해서 덤비는 게 도리어 무서웠다.

나는 이것 또한 수해의 왕이 황제 공손헌원과 닮은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거절할 이유가 없는 거래다. 나는 당장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 뭔가 꺼려져서 계속 망설여짐을 느꼈다.

‘왜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그냥 냉큼 받아들이면 그만이지 않은가?

다음 순간, 나는 내가 왜 이러는 건지를 깨달았다.

‘희생…!! 이 제안은 팔부신중에게 철저히 뒤집어씌우는 게 전제니까.’

내가 이 거래를 받아들이게 되면 팔부신중은 절대로 이 경매에서 살아나갈 수 없게 된다. 외우주로 가면 가는대로 영영 이 세계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도 이 경매가 끝나는 대로 수해의 왕에게 공격받아 죽게 될 것이다. 아마 나와 내 동료들 또한 팔부신중을 합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비참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나는 일말의 연민으로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악당이라도 이렇게까지 비참하면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다. 내가 이번에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으득 악물었다.

신단수의 결전, 그리고 창힐에게 잡혀갔던 그 때만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씨발!! 마왕을 불쌍하게 여긴다고?! 저 새끼들은 창힐의 명령만 있으면 수십만 명도 우습게 학살하는 마왕들이야! 팔부신중때문에 얼마나 내 동료들이…!!’

주군을 잃고 떠도는 꼴이 불쌍하지만 연민따윈 없다!

저놈들 자체가 인간을 연민하지 않는데 연민받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저 새끼들은 제대로 당해봐야 해!

나는 마음을 다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원월천살법을 탐색하지. 그리고 찾아낸다면 반드시 네게 보고하러 오겠다. 이걸로 되겠나?”

[후후…. 좋다. 내 의도를 잘 따라주었구나.]

거래가 성립하자 기분이 좋아진 듯한 수해의 왕이 문득 허공에 투명한 손을 띄우더니 내 쪽을 향해 내저었다.

[나의 탐색자가 된 그대에게 가호를 내려주지….]

파앗!!

다음 순간 황금빛의 휘광이 내 몸 전체에 감싸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건?”

[수해의 가호.]

내가 내 몸을 둘러보자 수해의 왕이 말했다.

[그 가호가 존재하는 한 생사입멸(生死入滅) 수해의 어떤 곳이든 모든 마물은 그대에게 적대적이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공격하면 반격은 하겠지. 그리고 한 마리 정도라면 이 수해에서 데리고 나가서 부하로 쓰는 걸 허용하지.]

“……!!”

[이러면 시간낭비하지 않고 나를 빨리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가볍게 말하는 거였지만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물이 전부 내게 복종한다는 건가?!’

게다가 한 마리를 데리고 나갈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이점이다!

나는 수해의 가호가 생각보다 괜찮았기에 놀라다가 수해의 왕에게 말했다.

“겨, 경매가 안 끝났는데도 이래도 되나? 나한테 가호를 주다니 편파적인데.”

[알게 뭔가 싶군. 희생양 따위에게 무슨 공정을 유지해주지?]

“뭐?”

수해의 왕이 흐릿하게 웃더니 서서히 내 몸이 결투의 이공간에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대 또한 외우주로 가면 죽음이란 걸 알고 여기까지 팔부신중을 몰이사냥해놓고 말이다….]

슈욱

나는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내가 멍하니 있을 때 이환웅이 투덜대며 말했다.

“쳇. 이제 보니 책사같은 자와 짰던 건가? 정말 음흉하구만.”

“뭐?”

“대충 눈치챘다고. 팔부신중이 내놓은 소망이 아니란걸. 당신 동료가 당신과 만나려고 내놓은 소망이었잖아. 지금은 그 망량이란 자와 작전을 짜고 왔고.”

움찔

‘이 녀석 그 짧은 순간에 눈치챘나….’

엄청나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인 것 같다. 내가 경계어린 눈으로 쳐다보자 이환웅은 뭔가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떤 작전을 짰든 간에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를 원래 세계로 보내주겠다는 약속만 지켜달라고.”

“…그러지.”

나중에 소망이 남아돌면 이환웅의 소망을 들어주기는 편할 것이다.

이환웅과 대화하고 있을 때 수해의 왕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두 번째 소망이다.]

이어진 말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 스승님이신 나일라토프 님을 이 자리에 소환한다’. 이 소망에 입찰할 자는 손을 들어라.]

“바로 내 차례군!”

그러자 이환웅이 바로 손을 들었고 금정이 번쩍였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그는 히죽 웃으며 내게 말했다.

“왜 그래? 손을 들어 줘.”

“손을 들라고?”

“그래. 팔부신중이 보나마나 내 소원을 뺏아서 외우주 1회 왕복권을 공짜로 얻으려고 할 건데 당신이 도와줘야지.”

“…….”

나는 힐끔 팔부신중 쪽을 쳐다보았고 그 쪽에서는 세 명이 입찰한 상태였다. 그리고 내 동료들은 한 명도 입찰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환웅의 현재 상태를 전혀 모르니 끼어들 일이 아니면 자원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망량의 전략인 듯 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뭐지? 일단 이환웅의 소망이니까 녀석이 원래 세계로 되돌아가게 도와주는 건 맞는데….’

뭔가 이상하다.

나는 왜 이상한지 언뜻 깨닫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리고는 뭔가 알아차리곤 말했다.

“야. 그냥 원래 세계로 되돌아가게 해달라고 하면 될 텐데 왜 네 스승을 여기 소환하는 소원을 빈 거냐?”

“후후. 내가 바본줄 알아?”

“뭐?”

“외우주를 그냥 넘어봤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이미 눈치 챘어. 그렇다면 차라리 외우주에서 스승님을 소환해서 이 상황에 대책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게 더 합리적이잖아.”

“…….”

“그냥 약속을 지켜줘. 스승님만 오면 어떻게든 되니까.”

일리있는 소리 같다.

‘과학자가 이 상황에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자기 결정이니까 책임지겠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지.”

나는 경매에 나서기로 한 후 손을 번쩍 들었다.

파지직

[좋다…. 너희 앞의 금정(金鼎)에 자신이 입찰할 대가를 올려라.]

금정이 번쩍였고 이윽고 항아리처럼 변화했다. 나는 그 안에 어느 정도 대가를 넣으면 적당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통크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후두둑

나는 여불위가 위영정지묘에서 소멸했을 때 채취했던 여산일대의 신혈을 가득 털어넣었고 소림사의 비밀장서각에서 그 동안 추려냈던 하급마도서 십여 종을 넣었다. 그리고 덤으로 비상용으로 갖고 있던 금괴와 은괴덩어리를 한가득 넣자 그것만으로도 양이 제법 많았다.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세간에선 중요하다고 치는 건 다 넣었다….’

이 정도면 1위가 가능하겠지?

내가 내심 생각하고 있을 때 잠시 후 수해의 왕이 말했다.

[입찰 1위로 나선 것은 백웅이다. 그러나 아까와 마찬가지로 1위에게 대등한 대가의 마력을 바치고 결투에 나선 존재가 있기에 결투를 시작한다.]

우웅!!

잠시 후 나는 결투의 이공간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바로 천인 삼장법사가 등장해 있었다. 놈은 인간형태가 아니라 처음부터 본체로 나타나있는 상태였다.

‘천인…. 내 수법과 똑같은 수법을 써서 따라붙었군.’

이렇게 되면 보물을 꺼내면 무조건 마력, 혹은 수명을 꺼내서 1위와 결투를 하려고 따라붙는 전략이 기본이 된 셈이다. 아니, 그게 아마 이런 괴팍한 경매를 시작한 수해의 왕의 진짜 의도일 것이리라.

놈은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경매에 나오는 모든 소망은 우리 팔부신중이 가져갈 것이다.]

“가져가서 뭐할 건데?”

[전부 외우주 왕복권으로 교환하거나 수해의 왕에게 이득을 얻어낼 것이다. 강대한 마왕에게 맞서게 된 네 운명을 탓하거라!]

“…다 말했냐?”

[인간 따위가 나와 맞설 셈이냐?]

천인의 말에 나는 침묵하다가 서서히 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씩 하고 웃으며 놈을 도발했다.

“너 아수라보다 약해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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