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313화 (1,310/1,615)

1313====================

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그 말에 반문했다.

“이환?”

“진짜 이름은 이환웅(李桓雄)이다만, 단군신화에서 따온 이름이라 나는 별로 안좋아하거든. 그래서 입대할 때는 가명인 이환으로 입대했다.”

“…….”

아니 지금 니 이름이 가명인지 아닌지 관심 없는데….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자칭 이환, 아니 이환웅은 유들유들하게 말을 이었다.

“자, 내 숨겨진 비밀을 털어놨으니 이제 흉금을 털어놓은 사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이 새끼는 묻지도 않은 걸 줄줄 말하면서 뭔 소리야….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이환이 아니라 이환웅이라 그 말이지?”

“내 상사한테도 얘기하지않은 비밀이라구. 그 인간은 나를 이환으로 알고 있거든.”

“빌어먹을. 네 가명같은건 관심 없어. 인류연합이란 건 [옛 지배자]와 싸우던 무리같던데, 넌 혹시 하은천(河銀天)이 누군지 알고 있나?”

이환웅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은천? 하씨 일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나?”

“하씨 일족?”

“자칭 삼사(三師)의 후예라고 하는 무술가 일족이 있긴 한데.”

잠시 머리를 굴리던 이환웅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하은천이 누군지 모르겠어. 하지만 네가 나를 원래 세계로 되돌아가게 해주면 내가 하씨 일족에 부탁해서 알아봐 주지.”

“흠. 너는 하씨 일족과 친하다는 말이냐?”

이환웅은 왠지 쓴웃음을 지었다.

“뭐 친하다면 친하지?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고.”

“…….”

나는 잠시 고민했다.

‘눈앞에 있는 저 놈의 이름이 하은천이 아니라 이환웅이라면 저 녀석은 십이율주가 아니라는 말인가?’

사실 팔부신중이나 수해의 왕과 부딪힐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멸해까지 온 것은 혹시나 십이율주가 이 자리에 왔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영 뜻밖의 근미래 이세계진입자가 왔으니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하씨 일족과 친하다고 했으니까 하씨 일족 내의 하은천을 찾는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는 말했다.

“이환웅 소령.”

내 부름에 상대가 움찔했다.

“…갑자기 왜 목소리를 깔고 그러시나?”

“여기가 인세 최악의 비경(秘境)인 아오키가하라 수해이고, 그 수해에서도 최후의 단계인 멸해(滅海)라는 건 알고 찾아온 거냐?”

이환웅이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겠는데? 난 그냥 계백함에 입력되어 있던 대로 찾아온 것뿐이야. 계백함의 인공지능에 이 세계를 벗어나서 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장소를 물어봤더니 여기를 표시했거든.”

“이해가 안 가는군. 계백함이라고 하는 저 [방주]가 네 소유란 말이냐?”

“방주? 왜 스승님이 만든 우주전함을 방주라고 부르는 건지 나야말로 모르겠군.”

“네 스승이 만들었다고?”

“그래.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인간이거든.”

힐끔 계백함의 잔해를 쳐다보던 이환웅이 말을 이었다.

“명목상으로는 동북아해방군이 제작하고 소유하는 전함이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스승님이 만들어낸 거야. 제자인 나한테는 공짜로 하나 주셨지.”

나는 약간 감탄했다.

“으음…. 스승이란 놈이 참 대단한 자군. 그 자도 절대지경이냐?”

“아니. 무공은 하나도 못해. 그냥 과학자야.”

그렇게 대답한 이환웅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무튼 전후사정을 좀 더 설명해주고 싶다만 여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닌 것 같아서 일단 나를 도와줄 지부터 확답을 듣고 싶군.”

“…지랄맞게 당당하군. 넌 내가 너를 죽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냐?”

“어렸을 때부터 죽을 고비를 꽤 넘겨서 감이 있거든.”

이환웅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당신은 내 감으로 볼 때 ‘좋은 사람’같아.”

“…….”

“방금 총 쏜 것도 내가 아는 정보를 다 말해주는 걸로 봐줬으면 해.”

“아니 상식적으로 봐 주겠냐…?”

나는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그리고는 약간 떫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일단 네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지. 대신에 너는 나한테 알고있는 걸 전부 말해주고, 더불어서 십이율주 하은천의 정체도 밝혀줘야 한다. 여기에 동의하는가?”

성질같아서는 패죽이고 싶지만 내 목숨과 동료들의 목숨까지 각오하면서 멸해로 진입해서 얻게 된 유일한 정보원이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이 놈이 어떤 정보를 갖고있는지는 좀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동의한다.”

놈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아 그리고 나한테 총쏜 거 사과해라. 아무리 그래도 사과 한마디 없이 넘길 순 없다.”

“응? 사과?”

“그럼 안 하려고 했냐?”

그러자 이환웅이 냉큼 직각으로 상체 전체를 숙이면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한번만 살려주십쇼!”

“…….”

“큰 절도 할까? 난 어렸을 때부터 궁중예의도 많이 배워서 46가지 절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

나는 내가 도리어 질려서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됐다…. 사과하는데 거리낌이 없군.”

이환웅은 씩 웃는 듯 했다.

“이런 외딴 오지에서 절대지경 고수한테 도움 받는데 이 정도 쯤이야.”

“좋아. 이걸로 은원은 정리하지.”

나는 이환웅 소령과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기로 했다. 물론 그냥 다짜고짜 저 놈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이혼대법으로 내력을 알아내도 되겠지만 왠지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인성이 더러운 놈이지만 일단 사과를 하는 걸 보면 십이율주 정도는 아냐. 어차피 정보같은 건 이환웅을 소을촌으로 데려가면 충분히 들을 수 있겠지.’

어쩌면 동료가 될 수도 있을 놈인 것 같다. 나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 후 이환웅에게 말했다.

“네 말대로 여기에 가만히 있는 건 위험하다. 그 계백함을 수리하는 건 불가능하니 나와 같이 이 곳을 빠져나가자.”

“빠져나간다고? 이 곳에 내 원래 세계로 되돌아가는 방법이 없다는 건가?”

“음.”

나는 이환웅의 질문에 약간 난처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힐끔 주변을 화안금정으로 살피다가 말했다.

“딱히 출구가 될만한 장소는 보이지 않는군. 어떻게 하지?”

내가 난감해하자 이환웅이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말했다.

“계백함이 폭발할 것 같으니 우선 여기서 피하자.”

“그러지.”

타닷

내가 이환웅과 함께 약 오 리 정도를 멀어졌을까?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쯤 멀어진 계백함의 잔해가 폭발하는 소리와 섬광이 터져나왔다.

쿠콰콰쾅

제법 장엄한 폭발이었지만 그 빛과 폭음은 아주 잠깐 일어나고는 곧장 소멸되었다. 마치 빛 그 자체가 이 멸해의 어둠이 먹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폭발을 지켜보던 이환웅이 씁쓸하게 말했다.

“이런 제길…. 스승님께 뭐라고 말하지.”

“이환웅. 네 스승은 뭐하는 자인가?”

“아직 그걸 구구절절 말해줄만큼 우리가 친밀하진 않잖아? 우선 현재상태부터 짚어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자고.”

“…….”

묘하게 미꾸라지처럼 내 질문을 빠져나간 이환웅이 말을 이었다.

“아까는 어떻게 출구가 될 장소가 없다는 걸 알았던 거지?”

“화안금정을 썼으니까.”

“화안금정이라고? 그게 뭐지?”

“초능력을 가진 눈으로 살펴보면 근처에 특이한 영기나 흔적이 있으면 모조리 알 수 있고 요괴의 본질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은 어둠만 가득할 뿐 다가갈만한 단서가 보이지 않아.”

내가 대꾸하자 이환웅은 뭔가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다가 말했다.

“아까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멸해라고 했는데 이 곳이 어떤 장소인지 조금만 설명해줄 수 있을까?”

“그거야….”

나는 내가 아는대로 멸해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이환웅이 손가락을 딱 하고 마주치며 말했다.

“그렇군. 그래서 계백함의 인공지능이 이 곳으로 오라고 인도했던 거였어. 당신 말대로라면 내가 [외우주]에서 온 존재이고, 내가 되돌아가려면 외우주로 향하는 출구인 수해의 멸해를 넘어야하는 거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듣던 것과는 좀 다른 곳이군….”

“이제 나갈 방법이 생각났어.”

“…응?”

갑작스러운 이환웅의 말에 내가 그를 돌아보자 이환웅이 씩하고 웃으며 말했다.

“[수해의 왕]을 찾는 거야. 그리고 그 자와 교섭해서 여기를 빠져나가는 거지.”

“누가 그걸 모르나? 화안금정을 써도 영기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옛 지배자]라고 하는 강대한 신적 존재의 반열에 가깝다면서? 그렇다면 이 세계 전체가 수해의 왕의 영향력에 있을 건 틀림없고, 도리어 너무 거대한 존재 때문에 좁은 시선으로는 놈을 볼 수 없을 수도 있지.”

“…….”

이환웅이 자신의 인중을 손가락으로 쓱하고 훑더니 말을 이었다.

“안에서 바깥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겠군. 영기가 아니라 혼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나? 힘 그 자체를 볼 수는 없어도 혼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는데. 계백함에는 소울 인사이트 계측능력이 있었거든.”

“호… 혼?”

“그래. 스승님께 배우기로 [옛 지배자]라고 하는 놈들은 엄청나게 거대한 혼을 갖고 있다고 했거든. 그렇게 거대한 혼이면 어딘가에 떡하니 보이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딱 하나의 해결책이 생각났다.

이혼대법!!

나는 나도 모르게 경악하고 말았다.

‘마… 맞아!! 예전에 달마가 있던 외우주로 갔을 때, [옛 지배자]를 봉인하려고 놈들의 혼을 이혼대법으로 감지했던 적이 있어!’

그 때 느꼈던 신의 혼은 어마어마하게 거대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 이환웅이 정확하게 그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나는 이혼대법을 이용해서 [옛 지배자]를 감지한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못 하고 있었기에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잠깐 기다려라.”

나는 급히 이혼대법의 요결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우웅

잠시 후 이혼대법으로 혼을 감지하는 파장이 퍼져나가자, 파장은 머지않아 지평선을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혼(魂)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서 내 머릿속에 보여주었다.

두근….

두근….

마치 심장처럼 맥동하는 그것은 예전에 마주쳤던 [신] 테스카틀리포카처럼 생생하게 그 존재감을 떨치고 있었다.

‘틀림없어. 저게 [수해의 왕]이 지닌 혼이다.’

신의 혼이란 대개 비슷한 느낌인가, 하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나는 나도 모르게 휙하고 이환웅을 돌아보았다.

“넌 어떻게 이걸 알아챘지?”

이혼대법이라는 해결책을 가진 나조차도 이 세계에서 영기의 흐름을 추적한다는 화안금정이라는 방법에 매몰되어서 바로 방법을 깨닫지 못했다. 화안금정은 영기라고 하는 힘의 흐름 자체는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너무 거대하며 이질적인 실체를 지닌 신의 혼같은 상위존재는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주전함을 몰고다니던 근미래의 군인같은 놈이 곧장 [옛 지배자]의 실체를 깨닫는 방법을 바로 알아차리다니!

그러자 이환웅이 말했다.

“스승님이 신성의 혼과 백을 분리하는 걸 본 적이 있거든. 그 때 이론설명을 들었던 게 기억났다.”

“뭐?! 혼과 백을 분리했다고?!”

나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설마 그 자가 이혼대법을 쓸 수 있었단 말이냐?”

“이혼대법?”

이환웅은 의아한 듯 반문하더니 말을 이었다.

“모르겠군. 스승님은 [옛 지배자]를 포획한 후 본질을 쪼그라들게 한 후에 원심분리기로 혼과 백을 분리해내셨어.”

“……?!”

“원심분리기의 원리는 모르겠지만 과학자니까 과학으로 하셨겠지.”

“하셨겠지라니….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는 모른다는 거냐?”

“몰라.”

이환웅이 다소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어릴 때부터 꽤 천재라 불려왔던 나였지만 스승님이 어떤 과학기술과 생각을 가졌는지는 전혀 모르겠거든. 차원이 다른 천재라서.”

“…….”

“아무튼 그런 건 지금 중요한 건 아니잖나? 일부터 진행하자고.”

“…그러지.”

미친 소리같다.

‘과학으로 [옛 지배자]의 혼백을 분리한다고?!’

과학으로 전함을 만드는 건 그러려니 하겠지만 물리법칙은 물론 시간의 흐름마저 조종하는 우주적인 신성, [옛 지배자]의 혼백이라는 위대한 것을 고작해야 과학으로 다스린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위대한 존재들에게 장난감 취급받는 걸 수도 없이 보아왔기에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과연 이환웅의 [스승]은 뭐하는 놈이지?

‘저 놈이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은데….’

나는 알쏭달쏭해하면서도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가 해야 할 일부터 되짚어보았다.

‘흠…. 이 혼백의 흐름을 따라가면 수해의 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직 동료들과 합류하지도 못한 상황이고 또한 이 멸해에는 팔부신중 전원이 이미 들어와 있다. 운나쁘게 팔부신중들과 맞닥뜨릴 경우 일이 얼마나 꼬이게 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환웅에게 말했다.

“이환웅. [수해의 왕]에게 찾아갈 순 있겠지만, 내 경험상 [옛 지배자]는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줄 때 반드시 대가를 필요로 한다. 하물며 [수해의 왕]은 이 멸해의 주인이자 외우주로 향하는 문의 수문장이니까 틀림없어.”

“그렇다고 들었어.”

“네 소원대로 외우주의 문을 넘어서 다른 세계로 가려면 그만한 대가를 그 자에게 바쳐야 할 거다. 하지만 계백함이 부숴졌는데 네가 그에게 내놓을 대가가 있나?”

“…….”

“일단 널 도와주긴 하지만 그 대가까지 대신 지불해줄 의리는 내게 없다.”

이것부터 확실히 해놓지 않고 무작정 수해의 왕을 찾아갈 수는 없다. 내 질문에 이환웅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난 이미 내놓을 게 준비되어 있어. 그냥 가 보자고.”

“뭐? 어떤 대가지?”

“이런 거.”

이환웅이 틱 하고 자기 주머니에서 동그란 단추같은 걸 누르자 그 안에서 후두둑 하고 뭔가가 튀어나왔다. 공간을 조작해서 뭔가를 보관하는 기술이 적용된 단추인 듯 했다.

‘보물?’

몇 가지의 보물이나 무구(武具)로 보였다. 나는 그것들을 살펴보다가 익숙한 한 가지의 보물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으… 은하구절편?!”

틀림없다!

십이율주의 진신병기이자 칠요에 버금가는 절세무구인 구절편, 신기 은하구절편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자 이환웅이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뭐? 당신도 그 이름을 아는 거야?”

“너… 은하구절편을 어디서 얻은 거냐! 이건 십이율주의 무기다!”

“흐음. 뭐 여기까지 왔으면 얘기해야하나….”

이환웅이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난 정신이 들어보니까 난데없이 거대한 나무의 정상에 와 있었다. 계백함의 시험비행을 위해서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는데 말 그대로 정신을 차려보니까…. 이게 말로만 듣던 이세계 진입인가 싶었지.”

“이세계 진입이라.”

“그리고 계백함을 움직여서 밑으로 내려가던 중에 웬 이상한 방이 중턱에 보이길래 잠깐 들어가서 그 안을 탐색했다.”

“중턱의 이상한 방?”

이환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이 보물들은 그 방에서 찾아낸 거야. 근데… 은하구절편이라니…. 무기에 한자가 음각되어 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진짜라니.”

응?

뭔가 굉장히 씁쓸해하는 반응이었기에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은하구절편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나?”

“아니…. 그게 그… 으음…. 월하정야갑도 그렇고….”

이환웅이 몹시 꺼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마치 수치스러운 기억을 헤집어서 괴로워하는 듯한 표정을 짓던 이환웅이 잠시 후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몰라! 제기랄. 중학교 때 평소에 머릿속에 구상하던 설정집이 현실에 떡하니 있으면 당신같으면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아?”

“어? 설정집? 무슨 소리냐?”

“난 여기가 내 꿈속이거나 악몽속인가 했다고. 그런데 더럽게 현실적이라서 이게 도저히 꿈 같지는 않고…. 이건 꿈은 아니겠지….”

이환웅은 잠시 횡설수설하며 혼란스러워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 보물들을 얻고 나서 웬 날아다니는 술법사 세 명한테 공격받다가 급히 도망치다보니 계백함에 찍혀있는 좌표대로 온 것 뿐이다. 그게 다야.”

“흠.”

이환웅의 말대로라면 놈이 들렀던 중턱의 ‘이상한 방’은 아마도 평소에 십이율주가 자신의 무기나 보물을 모아두는 장소일 것이리라. 은하구절편은 늘 십이율주가 휴대하는 건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휴대할 때도 있고 안 쓸 때는 그 장소에 보관했다가 소환술법으로 가져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충 상황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가 보자. 되든 안 되든 그 보물을 이용해서 수해의 왕과 교섭해 볼 수밖에.”

“…혹시해서 묻는 거지만 수해의 왕과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

흑웅의 힘과 사대신기를 다 털어서 싸우면 어쩌면 낮은 확률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직감으로 거의 무조건 내가 죽는다는 결과가 동반될 게 틀림없다. 수해의 왕은 해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인게 거의 확실하고 굉장히 [머나먼 세계]에서 왔다는 존재라는 언급이 있었기에 싸우기는 꺼려지는 존재였다.

나는 이환웅의 말에 대답했다.

“싸움은 좋지 않아. 하지만 싸운다면 이겨야겠지.”

“허어?”

“왜 그러냐.”

이환웅이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내가 아는 누군가와 비슷한 소리를 해서.”

“아무튼 준비됐으면 갈까.”

“가자고!”

우웅

나는 이혼대법이 이끄는 대로 거대한 신의 혼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이환웅이 그런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고, 나는 걷기만 해도 약 한 식경 후에는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길. 긴장되는군.’

어쩌면 여기서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섣불리 신법을 써서 빠르게 가지를 못하겠다….

나는 이환웅에게 긴장을 풀 겸 질문했다.

“아까 인류연합의 동북아해방군이라고 했지? 하은천은 거기서 원수 계급이라고 알고 있는데 정말 모르나.”

“엉? 아까 물어봤는데 또?”

“그래. 대답해줘. 하은천을 정말 몰라?”

내 생각에 이환웅이 인류연합을 언급한 걸 보면 이환웅 또한 하은천과 같은 외우주에서 찾아온 존재일 것 같았다.

‘빌어먹을. 어떻게든 십이율주의 정보를 알아내야 해….’

초조함을 담은 내 질문에 이환웅이 대꾸했다.

“흠…. 하은천이란 자가 정말 누군지 몰라. 동북아해방군에 원수 계급은 없고 전 인민해방군의 주석인 서문공백(西門恭帛)이 전 군을 통솔하고 있어. 나는 연해주 속령 발해군 제 8군단 소속이다가 임시로 인민해방군으로 옮겼지.”

“…….”

“근데 여러 번 들으니 꽤 괜찮은 이름인걸.”

아무래도 정말로 이환웅은 하은천과 잘 알지 못하는 사이같았다. 심지어 원수라는 계급조차 존재치 않는다니!

‘설마 하은천이 살던 시대와 다른 시대에서 온 놈인가?’

인류연합이 수십 년간 유지되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 자체가 허사일 수도 있다.

나는 약간 실망을 느끼면서 이환웅에게 다시 질문했다.

“넌 군인인것 같은데 누구와 싸우는 거지? 설마 외계인과 싸우는건가?”

“잘 아네. 언젠가부터 그 [옛 지배자]인지 뭔지와 외계종족들이 침공하기 시작해서 나도 싸우기 시작했어.”

“그런가. 그쪽 세계도 개판인 건 마찬가지인가보군….”

“뭐, 스승님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스승님이라고 했는데 그 스승님이라는 자의 이름이 뭔지 알 수 있겠나?”

그러자 이환웅이 멈칫하며 떫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궁금한 게 많은데. 아예 밑천까지 다 털어가시게?”

“당초에 알고 있는 걸 다 말해주기로 했었잖아.”

“그랬지. 쳇….”

이환웅은 툴툴거리다가 말했다.

“나일라토프(Nairlathorph) 교수님이야. 위대한 분이시지.”

“흠…. 서양인인가?”

“뭐 그렇지. 외견은.”

얼버무리듯 대꾸하는 이환웅이었지만 나는 껄끄러워하는 기세를 놓치지 않고 계속 질문했다.

“넌 상당한 수준의 무공을 익힌 것 같군. 초절정 수준은 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무공을 가르쳐 준 자가 네 사부가 아닌가?”

“…….”

“나일라토프 교수가 무공을 가르친 것 같진 않은데 왜 과학자를 스승이라 하는 거지?”

“당신, 지나치게 남의 개인사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군….”

“약속대로 말해다오.”

“끙.”

이환웅이 불편해하면서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잘난 무림고수들이 외계인한테 학살당하는 와중에 구해주신 게 그 분이셨기 때문이야.”

“뭐?”

“참 거지같은 일이었지.”

이환웅은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무공이 강하면 뭐해? 외계인 모선에서 궤도폭격 몇 방 맞으면 도시가 날아가면서 같이 뒈져버리곤 했고 카오스레이저 총 맞으면 호신강기가 분해되어버렸지. 애초에 상대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나일라토프 교수님이 모두를 구해주셨어.”

“어떻게 구해주셨다는 거지?”

“혼돈에 대항할 수 있는 진정한 과학기술을 전수했지. 그때부터는 체급이 맞아서 무림고수도 외계인과 싸울만하게 되었어.”

“흐음…!!”

“당신 같으면 이런 상황에 무림인과 과학자, 누구를 스승으로 삼겠냐고.”

그런 과학기술이?!

‘나일라토프 교수라는 자는 대단하군…!!’

내가 크게 눈을 뜨자 이환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봐. 당신도 괜찮으면 우리 세계로 가지 않을래? 여기가 내가 살던 세계의 과거인지 아니면 영 엉뚱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도와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

“글쎄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있거든.”

“그냥 물어봤어.”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중 어느 새 혼의 근원이 있는 곳에 도착해 있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마치 수백 개의 원형 파동과 공명이 공진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 도착하자 어느덧 어둠의 산맥은 완전히 빛으로 화해 있었고, 우리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이 마치 어둠과 괴리되듯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 바로 앞에는 [수해의 왕]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왔는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입을 꺼낸 수해의 왕.

놈의 모습은 무사시의 이야기에서 들었던 것과 같았다.

빛의 공간 속에서 인형처럼 무수한 초거대마물들이 떠다니고 있었으며 마치 밀도가 낮은 수조 속의 금붕어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 하나하나가 투선급의 마물이었으며 그런 게 수천 마리 이상 있다는 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또한 마물들의 한가운데에서 무면(無面)의 왕(王)은 마치 인간같은 모습을 한 채 둥둥 떠 있었다. 신격답게 어마어마하게 강대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나는 크게 위축되지는 않고 놈을 직시했다.

‘저 놈도 얼굴이 없군….’

황제 공손헌원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다.

황제 또한 무면의 존재였지만 단지 제관을 쓰고 있다는 정도의 차이였던 것이다.

어째서 무면에 인간형인 거지?

나는 묘한 기시감에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다음 순간 [수해의 왕]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직 그대의 동료들이 이 자리에 오지 않았군…. 불러와 주지.]

슈아악!

수해의 왕이 말을 끝내는 순간 이 공허의 공간 속에 순간이동으로 아수라, 망량, 세이메이의 모습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난데없는 순간이동에 놀라더니 이윽고 내게 외쳤다.

“백웅!”

“무사한가?!”

“수해의 왕이….”

정적.

갑자기 그들의 모습이 씻은듯이 지워져서 사라졌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동료들이 소멸한 듯한 형상이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수해의 왕을 쳐다보았고, 수해의 왕이 훗하고 웃는 듯 했다.

[장난에 동요하지 않는군.]

“장난이라…. 장난인 게 좋을 거다.”

[호오?]

나는 이를 으득 깨물며 눈에 기세를 집중시켰다.

“내 동료들을 해쳤다면 네놈을 죽이고 나도 죽을 테니까.”

[…….]

“동료들을 교섭에서 배제했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원하는 걸 말해.”

[아주 좋아…. 아무래도 내가 제법 괜찮은 패를 뽑은 모양이군.]

뭔가 기분 좋다는 듯 중얼거리던 수해의 왕이 말을 이었다.

[또 다른 손님도 일단 나오는 게 좋겠어.]

슈욱

다음 순간 저만치 떨어진 곳에 팔부신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조리 본체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고 위압적인 마왕의 본체가 6체나 나타나있는 건 상당히 웅장해 보였다.

[……!!]

[이런!]

[수해의 왕이 이 정도였다고?! 우리를 마음대로 옮길 수 있다니….]

[멸해 전체가 저 자의 이계였다니.]

하지만 팔부신중들은 뭔가 당황한 듯 했고 아까 입해에서 봤던 여유는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팔부신중들이 왜 저러는지 궁금했으나 수해의 왕은 그들의 모습을 즐기듯이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수해에 찾아온 걸 환영한다, 이방인들이여. 이리도 열렬한 성원을 보내주다니 정말 기쁘기 한량없구나.]

이어진 말에 나는 지옥이 시작될 것을 예감했다.

[그럼 경매를 시작해 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