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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동료들과 함께 방금 전 함선이 사라졌던 장소로 가 보았다. 그러나 그 장소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텅 빈 혼돈의 바다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자 망량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백웅. 화안금정을 써서 차원의 왜곡을 살펴 주시오. 그리고 그 왜곡이 뻗어있는 방향을 내게 알려 주시오.”
“으음!”
나는 바로 화안금정을 발동하면서 눈에 힘을 주었고, 내 눈에는 서서히 세상이 흑백으로 변하면서 새하얀 거미줄같은 균열이 눈앞에 나타남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깔때기가 밑으로 빨려들듯이 생겨나 있던 그 균열은 망량의 말대로 어딘가로 새하얀 실이 이어져 있었고, 나는 그 방향을 쳐다보다가 어느 쪽으로 향했는지 알아채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쪽이오.”
“역시 최고수준의 [눈]이라 편리하군. 잠깐 기다리시오.”
망량이 중얼거리며 시해지술을 시전했고,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침묵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듯 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으음…. 광폭할 정도로 차원이 찢겨버렸군! 대체 어떤 아수라장일지….”
“무슨 말이오?”
“팔부신중이 그랬는지 아니면 방금 전 그 함선이 그랬는지 모르지만, 왜곡장의 끝에는 차원이 갈가리 찢겨서 거대한 차원의 구멍이 생겨나 버렸소. 하지만 저 정도로 불안정한 차원의 구멍이라면 들어가서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소….”
“구멍에 들어가면 멸해(滅海)로 갈 수 있겠소?”
“아마 그렇겠지만 차원을 통과할 때 우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하오. 그렇지만 아직 내 힘으로는 그 정도 방어술법은 쓸 수 없소.”
“흠.”
망량이 자신감이 없는 듯 했지만 이해할 만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망량이 내게서 삼황내문의 기연을 받은 지 일이 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아직 초인적인 술법경지에는 많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힐끔 세이메이를 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방어술법을 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여기선 쓰지 않겠다.”
“엉?! 왜 그러는 거야.”
“그냥 네가 사대신기를 쓰는 게 낫다. 물의 바루나를 이용해서 방어막을 전개하면 내 음양술보다 훨씬 강하고 확실한데다가, 방금 전 입해의 마물을 흡수하면서 생겨난 마력까지 처리가 가능하지 않은가.”
“아하!”
세이메이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나는 바로 사대신기를 소환하려 했지만 바로 그 때 망량이 급히 나를 제지했다.
“잠깐 백웅!”
“왜 그러는 거요?”
“정말 뒤따라 갈 거요? 지금부터는 더 이상 생사를 장담할 수 없고 개죽음당할 가능성이 크오. 기껏 팔부신중을 함정에 다 빠뜨려놓고 이렇게 위험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건….”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뒤쫓아 가자고 한 건 당신이잖소.”
“…막상 와 보니까 두려워지는구려. 미래의 함선, 차원왜곡에 거대차원문까지 지,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나니….”
망량은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낀 듯 눈동자가 흔들리며 몸이 떨리는 게 보였다.
“당신의 기억으로 간접적으로 보았을 때와는 체감이 다르오. 인간세상의 전투와는 차원이 다른 싸움에 말려들었다는 게 실감이 나기 때문이오….”
“…….”
“소, 솔직히 각오가 안 되었소. 나는.”
“음….”
“머리로는 지금 저 함선을 쫓아서 저들의 대치상황에 뛰어들어 정보를 얻는 게 옳다고 알고 있지만, 목숨을 내놓고 모험에 뛰어든다는 건 도무지….”
여태까지의 망량과는 다소 다른 생소한 모습이었다. 언제든 간에 망량은 생사에 초연해보였고 당당했는데 죽음의 두려움을 이토록 생생하게 느끼다니?
‘…여태껏 싸워왔던 전장들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소박한 편인데 말이지.’
나는 대륙이 터지고 별이 터지고 우주가 날아가는 것도 봐왔기에 이 정도의 싸움은 별로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망량의 또 다른 모습에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그렇군. 아예 희망이 없다시피 했던 다른 전생에는 패배가 기정사실이었으니까 도리어 책사로서 생사에 초탈해질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나마 뭔가 해볼 만한 여력이 생긴 이번 생에는 그 욕심과 미련이 망량에게 두려움을 만들어낸 것인가.’
아마 다른 동료들은 몰라도 나만이 이런 망량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나는 그런 망량이 한심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망량이었어도 똑같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몇 번을 죽어도 죽음은 두렵고 아프게 느껴진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망량의 말에 대꾸했다.
“걱정 마시오. 내 목숨을 걸고 안 아프게 죽을 수 있게 해 주겠소.”
“…….”
“무슨 수를 쓰더라도.”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아픈 것이다.
안 아프게 죽이는 게 배려일 것이다.
그리고 진심어린 내 말에 망량은 멍하니 있다가 문득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한 거요?! 하하하하하…. 으하하핫.”
“응?”
“하하하하하핫…. 이게 전생자로군…. 그래…. 이런 게 전생자인 거야. 기억만 볼 수 있다고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는 게 아니었어.”
그는 약간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신나게 웃더니 부채를 입가로 가져가며 말했다.
“내가 추태를 부렸구려. 그 말대로 안 아프게 죽을 수 있다고 믿을 테니 어디 가 봅시다.”
“좋소!”
망량이 용기를 되찾자 나는 바로 사대신기의 공간으로 향했다.
우웅
“바루나여! 나 부탁하노니 멸해의 차원문에서 안전할 수 있는 방어막을 나와 내 동료들에게 만들어줘!”
내 부탁을 들은 바루나가 허공에서 물의 정령같은 형상을 드러내더니 대답했다.
[좋아. 그 대가로 지금 가진 마력을 그에 상응하여 가져가겠는데 동의하는가?]
“알았어!”
[계약이 성립되었다.]
촤좌좍
사대신기의 공간에서 나오는 순간 나와 동료들을 한꺼번에 감싸는 물의 방어막이 생겨나 있었다. 세이메이가 그 방어막을 자신의 손으로 만져보더니 감탄한 듯 말했다.
“과연 사대신기…. 예상이상의 위력이구나.”
“세이메이. 이 방어막이 있으면 멸해로 진입할 수 있겠지?”
“충분하고도 남는다. 가자.”
파앗
우리는 망량의 시해지술으로 만들어진 새하얀 통로를 따라서 진입했고, 잠시 후 망량이 이야기했던 거대한 차원의 구멍 앞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차원의 구멍을 보는 순간 나는 아까 망량이 경악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크기가 대륙 수준이구나.’
아주 멀리에서 보고 있는데도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이니 짐작할 만 했다. 나야 이런 초거대한 물체를 하도 많이 봐 왔으니 별 감흥이 없었지만 망량 입장에선 놀라웠으리라. 나는 그 차원의 구멍에서 혼돈의 기류가 마치 폭풍처럼 뿜어져 나오는 걸 보자 위험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사대신기 바루나의 힘을 믿고 걱정을 접었다.
“가자!”
우우우우 -
이윽고 우리 전부가 차원의 구멍 안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몸의 형태가 짜부라지는 듯한 압력과 함께 뼈가 아팠고 머리통도 뒤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압력은 잠시였고 이윽고 전신의 혈류가 되돌아오며 눈앞이 총천연색의 혼돈으로 가득 차는 걸 볼 수 있었다.
…….
‘동료들이 안 보여.’
망량이나 아수라, 세이메이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의 안개 속을 나 홀로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마지막 구역인 멸해에 들어온 게 맞긴 맞는 건가?
“흐음.”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계속해서 걸었다. 신기하게도 혼돈의 바다인 입해와는 달리 이 멸해는 마치 깊디깊은 어둠의 산맥을 걸어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발밑에 정체불명의 대지가 제대로 밟혔으며 걷기도 수월했다. 다만 걸을 때마다 섬칫하며 혼돈의 물결같은 게 진동과 함께 일어나는 게 신기했다.
‘침착해져볼까….’
동료들과 헤어진 불안감은 들지 않았다. 바루나의 방어력을 그만큼 신뢰하고 있는데다가 왠지 직감적으로 지금은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어둠의 산길을 걷기 시작했고 기감과 의념을 이용해서 주변상황을 탐지했다.
그 때였다.
파지직
파지지직
먼 곳에서 번개가 일어나는 게 보였다. 동시에 은빛이 살짝 비쳤기에 나는 그 장소를 향해 천천히 걸어서 다가가 보았다. 약 백오십여 장을 걸어서 언덕에 접근했을 때 그 물체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보였다.
“……!!”
저건 방주인가?!
내가 소을촌에 놔두고 왔던 [방주] 이성계함과 유사한 형태의 함선이 불시착해서 잿빛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게 보였다. 단지 이성계함과 다른 점이라면 저 함은 은빛이 훨씬 강하게 빛나고 있으며 이성계함보다 두 배는 거대해 보였다. 아직도 함선까지의 거리가 일 리 정도는 남아있는데도 저렇게 커 보인다면 당연히 거대함선이리라.
타닷
나는 빠르게 함선에 접근했다. 그리고 접근하자 함선이 여기저기 부숴졌으며 치직거리며 번개와 함께 불덩어리가 된 고철덩어리가 널부러져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고철덩어리들은 마치 인간처럼 생겼지만 속은 정교한 기계들이었기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안드로이드?”
틀림없다.
몸의 대부분이 기계인 안드로이드다!
28번째 생에서 대웅제국으로 향하던 도중 만났던 미 합중국 비밀요원들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혹시 적이 잠복하고 있나…?’
나는 의념천주를 써서 기감과 의념을 최대한으로 감응시키며 주변을 탐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이 함선의 주인을 찾아내야했기에 모든 기를 집중시켰다.
그 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드로이드를 아는 걸 보니 당신도 나처럼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인가?”
휙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제복을 입은 웬 핏빛 가면의 사내가 서 있었다.
“아, 당신한테 총을 겨누고 있다만 신경쓰지 마. 천천히 대답해도 좋아.”
단지 그 사내가 내 쪽을 향해서 권총을 겨누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와의 거리가 약 이십여 장이었기에 이 거리라면 권총의 손가락을 당기기도 전에 그를 격살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두려움은 느끼지 않았지만 핏빛 가면의 사내에게 큰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넌 누구지?”
“내가 먼저 물었는데 말이지. 순서를 지키는 게 어떨까, 친구.”
“우리말을 할 줄 아는군.”
지금 저 자와 나 사이에 말이 통하는 건 내가 저 자의 언어를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유창한 대명제국의 한족 언어가 들려왔기 때문에 대화에 응했을 뿐이었다. 지금도 저 자는 한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음?”
핏빛 가면의 사내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훗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아, 에테리얼 마스크에 자동번역 기능이 있어서 그래. 보아하니 중세 중국사람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시간이동을 했나보군.”
“…….”
에테리얼 마스크?
시간이동?
저 함선을 타고 [작은 굴레]를 이동했다는 소린가?
‘저 녀석은 뭐지?’
대체 왜 [방주]와 똑같은 함선을 갖고 입해에 나타나서 멸해에 진입한 것인가.
나는 뜻밖의 상황에 의아해졌고 상대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머리를 굴려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도저히 알 수가 없었기에 말했다.
“내 이름은 백웅. 소을촌의 촌장이다.”
상대가 요구하는 건 내 정체인 것 같았기에 일단 이야기를 해 줘야 대화가 진전될 것 같았다. 내 대답을 들은 핏빛 가면의 사내는 내 대답을 듣자 뭔가 실망스럽다는 듯 자신의 핏빛가면 옆부분을 꾹꾹 손가락으로 누르며 대꾸했다.
“백웅…. 전혀 모르는 이름이군. 대명제국 시대의 절세고수를 담은 데이터베이스에도 없잖아?”
“이제 내 이름을 말했으니 네 이름도 말해줄 수 있지 않나?”
“왜?”
“…아니, 왜라니. 통성명을 해야지.”
핏빛 가면의 사내가 피식 웃는 듯 했다.
“나는 말해준다고 한 적 없어.”
“…….”
아니 제기랄….
이 새끼 성격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내가 놈을 노려보고 있자 핏빛 가면의 사내가 슬며시 자신의 총구를 내리며 말했다.
“뭐 요식행위는 이쯤 해 두지. 보아하니 절대지경(絶對之境)의 고수같은데 총 따위가 통할 리가 없지.”
“뭐? 그걸 알아봤다는 건….”
“아, 잠깐만!!”
갑자기 핏빛 가면의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흠칫하자 놈이 심상치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집중해봐!”
“뭐라고? 뭐가 있다는 말이냐.”
“집중해!”
“……!!”
지금 나는 최대한의 기감을 발휘하며 사방 백여 장 이상을 감지하고 있는데 그런 내 감각을 피해서 모습을 숨긴 적이 있다고?! 그리고 그 적을 저 놈이 감지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강한 적인거지?!
나는 나도 모르게 크게 긴장해서 시선을 돌리며 적이 공격해오는지 집중력을 발휘해 보았다.
타앙!
무척이나 아슬아슬했다. 소리의 속도보다 훨씬 빠른, 거의 수백 배나 되는 그 총탄을 피해낸 것은 내 절대지경의 감각이 초인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을 뿐이었다.
“…….”
그리고 나는 황망한 눈으로 총알이 날아온 곳을 쳐다보았고, 그곳에는 어느 새 다시 권총을 들고 있는 핏빛 가면의 사내가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었다.
범인은 뻔했다.
집중하라고 해놓고 코앞에서 총을 쏜 것이다.
놈은 감탄한 듯 총을 가죽주머니에 넣고 박수를 쳤다.
짝짝짝
“잘 피하네~ 역시 절대지경!”
이 새끼가!!
나는 이를 갈아붙이며 검을 들었다.
“네녀석…. 죽고 싶냐!”
핏빛 가면이 내 살기를 맞이하자 움찔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아 진정해 진정해! 다 이유가 있어.”
“이유라고?”
핏빛 가면이 나름대로 간절한 목소리로 말하는 듯 했다.
“난 이제 고향에 돌아가야 하는데 이 이상한 이세계를 넘어가려면 보스몹을 잡아야 할 것 같아. 계백함의 인공지능에 입력된 좌표가 있는대로 따라왔는데 이젠 갈 곳도 없다고. 그래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한 번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강한지 확인하고 싶다고 총을 쏜다는 거냐? 이런 씨발….”
내가 다시 살기를 일으키자 핏빛가면이 당황한 듯 했다.
“아니 뭐, 미안미안!! 의념천주는 확인했는데 사실 절대지경 사이에서도 강함이 천차만별이잖아? 그래서 확인해봤으니 이해해 줘. 설마했는데 인류연합에서 제일 빠른 총알도 피해버리는군.”
“…….”
“어렸을 때부터 배신과 암살이 일상이었거든? 원래 이런 성격이니까 한번만 봐줘 제발. 스승님한테도 그렇게 배웠으니까 내가 실수해버렸네.”
뭔가 횡설수설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힘의 격차를 순식간에 깨닫고 어떻게든 이 자리를 모면하려는 행동으로 보였다.
‘이 놈. 무공을 상당한 경지로 익혔군.’
절대지경의 존재를 안다는 것, 그리고 의념천주를 식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만한 경지는 아니다. 더욱이 힘의 차이까지 단숨에 깨달았다면 생각보다 더 높은 경지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약간 기세를 늦추며 말했다.
“이세계? 보스몹? 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러자 핏빛가면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흠흠. 미안하니까 내 이름도 밝히지.”
푸쉭
핏빛 가면이 자신의 가면 옆에 있는 단추 같은 걸 꾹하고 누르자 서서히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가면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면이 완전히 벗겨졌을 때 잘생긴 외모의 흑발 미청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이는 영락없는 10대 후반의 홍안(紅顔)이었고 상당히 앳되보였다. 그가 마치 귀걸이처럼 작아진 자신의 가면을 가슴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나는 인류연합(人類聯合) 소속 동북아해방군(東北亞解放軍) 제 7사단 23연대 소속 이환(李桓) 소령(少領)이다. 제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