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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310화 (1,30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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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무적이라고?

나는 스사노오의 말에 수상쩍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말이군. 스사노오 당신도 원래 힘을 다 찾으면 [옛 지배자]와 대등한 반열의 고대신이 아닌가? 힘을 다 찾아도 츠쿠요미란 놈을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그 놈이 강력한 존재라는 말이야?”

내 질문에 스사노오가 대꾸했다.

[힘의 문제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무적’이 된다는 이야기다.]

“……?”

[좀 더 단순히 말하자면…. 츠쿠요미의 [밤]이 시전되는 동안 놈은 그 어떠한 공격에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설령 나나 아마테라스같은 같은 삼귀자라고 해도 놈에게는 영향을 미칠 수가 없고 다른 놈들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설령 [옛 지배자]의 주문이나 권능이라도 놈에게 피해를 못 준다.]

“뭐라고!!”

설마 그런 의미로 무적이란 얘기였던가?

‘힘이 엄청 강하다는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네.’

내가 다소 당황하고 있을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아수라가 말했다.

“이상하오. 그 말대로라면 츠쿠요미는 절대적인 힘의 격이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소리이고 단지 그 [밤]이라는 영역 속에서 무적상태란 이야기인데, 도리어 상대하기 쉽지 않소? 그 츠쿠요미의 공격력이 그리 특출난 게 아니라면.”

[너희는 무언가 착각하고 있군.]

“뭘 착각하고 있단 말이오?”

[츠쿠요미의 [밤]이 펼쳐진 동안 전세계에 대홍수(大洪水)가 일어날 거라는 소리다. 대홍수를 일으키는 재앙의 원흉은 바로 술자인 츠쿠요미 그 자신이지. [밤]이 시작됨과 동시에 대홍수도 시작될 거고, 대홍수를 막기 위해서는 술자 츠쿠요미를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 츠쿠요미가 무적상태라는 이야기다.]

“……!!”

아수라와 망량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망량이 팔짱을 낀 채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 [밤]은 언제까지 펼칠 수가 있습니까?”

[츠쿠요미가 마지막으로 펼쳤을 때는 9년이었다. 아마 너희도 잘 알던 사건이겠지.]

“설마…. 곤 임금이 치수를 펼쳤다고 하는 그 고대의 시점이란 말입니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전 세계에 동시에 어둠과 동시에 대홍수가 밀어닥친 시기에 모든 문명이 홍수에 피해를 입었지. 아마 네가 짐작하는 그 시기가 맞을 것이다.]

망량의 말은 나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곤이 치수를 행했을 때를 얘기하는 거군.’

곤이 그 사건 당시에 삼황오제 전욱 등에게 저항하다가 봉인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 대홍수가 몰아쳤던 그 기간이 9년이라고 들은 것 같다.

“으음….”

나는 스사노오에게 물었다.

“9년씩이나 전개했었다고? 그럼 [밤]이라고 하는 건 츠쿠요미가 원할 때까지 무한정 펼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마 그러할 것이다.]

“제기랄! 그래서 막을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설마 대홍수라는 게 [옛 지배자]에 버금가는 동영의 신격인 삼귀자 본인이 매개가 되어서 시전하는 술법이었다니!

상상치도 못한 대홍수의 원인에 내가 어이없어하자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망량이 입을 열었다.

“스사노오시여. 그 사실을 어디서 어떻게 알아내신 건지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

침묵하던 스사노오가 입을 열었다.

[츠쿠요미 본인이 내게 알려왔다.]

“무, 무슨…?!”

예상치도 못한 정보의 근원에 다들 놀랐다. 설마 세계파멸의 음모를 꾸미는 당사자가 자신의 정체를 알려줄 줄이야? 스사노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형제의 인연으로 말해주더군. 어차피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대업이니 관여하지 말고 얌전히 힘을 키우는 데만 집중하라고…. 츠쿠요미는 대홍수 이후의 세계에서 내가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개같은 소리.”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놈의 계획을 냄새 맡고 다니는 걸 눈치 채고는 쓸데없는 훼방을 차단하려 한 거겠지.]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넌 실제로 놈의 유혹에 걸려들었잖아. 계획에서 빠지겠다며?”

[…너희가 오기 전에 무척 많은 생각을 했다.]

스사노오가 자신의 옥좌를 소환하여 걸터앉으며 말했다.

[그리고 결론은 아무리 생각해도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였지. 츠쿠요미의 [밤]을 깰 방법은 적어도 내게는 없다. 그렇다면 너흰 찾을 수 있을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일이년 안에 그게 가능하겠느냐?]

“…….”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재앙이라면 나는 나를 따르는 이 교토의 인간들만을 내 권능으로 수호하여 살리겠다. 그러면 사멸 이후의 세계에서도 인류의 명맥은 보존되겠지.]

“빌어먹을! 그게 무슨 대안이야?! 그냥 포기한 거잖아!!”

나는 성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삼귀자 츠쿠요미가 뭐하는 놈인지 몰라도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게 말이 된다는 말인가?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밤]이라는 술법을 시전하기 전에 츠쿠요미란 놈을 먼저 공격해서 쓰러뜨리면 되는 거 아니야? 항상 펼칠 수 있는 술법도 아닐 텐데 그런 공략도 하지 못한단 말이냐!!”

“백웅의 말이 맞소. 츠쿠요미의 본체를 찾아내서 먼저 칩시다.”

[…….]

나와 아수라의 말에 스사노오가 자신의 이마를 짚더니 말했다.

[그 생각을 안 해본 줄 아는가? 허나 놈의 본체는 절대로 먼저 칠 수가 없단 말이다.]

“당연히 놈의 거점이 되는 차원계가 만신전처럼 존재하면 당연히 쳐들어가서….”

[츠쿠요미는 자기만의 차원계가 없다. 아니,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뭐라고?”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이 세계에 관여할 때는 오로지 [꿈]을 통해서만 [집행하는 자]로서 현현하게 되어있지. 내 앞에도 [꿈]의 형태로 나타났다.]

“……?!”

[평상시에는 이 우주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신이다. 오로지 꿈의 힘을 빌려서만 출현한다. 그렇기에 가상의 월신(月神), 츠쿠요미노미코토(月夜見尊)인 것이다.]

“뭐 그딴 게 다 있어?!”

나는 황당해서 비명을 질렀다.

설마 재앙을 일으키기 전에는 이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재앙신이라니!

그 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망량이 나를 보며 말했다.

“백웅. 아무래도 곤 임금이 말했던 흑월(黑月), 흉행의 집행자라는 게 그 츠쿠요미를 말하는 것 같소.”

“아!”

“그렇다면 그 자의 뒷배도 명확해지지.”

망량의 말에 나는 문득 얼마 전 곤과 거래했던 정보에 대해서 생각해냈다.

[계약대로 흑월이 뭔지 말해주지. 내가 알기로 그것은 바로 신(神)을 상징하는 것이다.]

[나의 시대에 대홍수가 일어날 때 대홍수를 주도한 존재는 바로 삼황오제였다. 그런데 삼황오제는 그 당시 한창 사방의 신격들을 제압하고 있던 중이었기에 여력이 많지 않았다. 섣불리 힘을 썼다가 인과율의 역풍을 맞을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들은 적당한 대리인을 찾아내었고 그 자에게 시켜 전세계에 홍수의 재앙을 일으켰다.]

[그렇다…. 삼황오제가 아닌 삼황오제의 대리자, 흉행의 집행자라 할 수 있는 그 신격이 출현했을 때…. 흑월(黑月)이 중천에 떠오른 걸 보았다. 그 신의 신력에 감응한 자연현상이었을 것이다.]

[그 신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라는 것만 알고 있다.]

[무성(無性) 그 자체가 그 신의 정체성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자라고 들었다. 또한 아주 비밀스러운 존재라고….]

나는 기억을 더듬다가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삼황오제?! 삼황오제가 흑월 츠쿠요미를 집행자로 부린다는 말이오?!”

“틀림없을 것이오. 정보가 딱 맞아떨어지는구려.”

“…….”

생각지도 못했던 진실이었다. 동영 삼귀자의 일인이 설마 삼황오제의 부하노릇을 하고 있다니!

나는 스사노오를 돌아보며 말했다.

“스사노오여! 츠쿠요미가 삼황오제의 부하인 게 확실한데 왜 그놈은 삼황오제를 따르게 된 건지 알고 있는가?”

[자세한 사정은 나도 모른다. 츠쿠요미는 나나 아마테라스와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우리와 달리 처음부터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존재치 않았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명]을 갖고 태어난 존재였다.]

“사명?”

[나는 [옛 지배자]와 끝없는 싸움을 계속할 사명…. 그리고 아마테라스는 [지배자의 악]을 견제할 사명…. 우리 삼귀자는 우리 어버이인 이자나기노미코토가 만들어낸 혼돈 때문에 역풍으로 탄생한 거나 다름없으므로 혼돈에 거스르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츠쿠요미의 사명이 뭔지는 모르겠다.]

“…흐음.”

예상보다 복잡한 뒷사정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망량이 말했다.

“스사노오시여! 감히 말씀드리는데 들어주시옵소서.”

[계속하여 나를 설득하려 하는가?]

“만일에…. 우리가 츠쿠요미를 대홍수 전에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온다면 우리와 함께 츠쿠요미를 죽이러 가주실 수 있사옵니까?”

[……!!]

스사노오는 움찔하고 놀란 듯 했다. 그리고 한동안 고뇌하다가 입을 열었다.

[…약속하겠다. 허나 너희 생각보다 대홍수의 때는 임박했으니….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건 알아서 하겠사옵니다.”

그렇게 대꾸한 망량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갑시다, 백웅.”

우리는 스사노오의 궁전에서 물러나왔다. 그리고 망량은 스사노오의 육신통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먼 거리에서야 입을 열었다.

“백웅. 스사노오는 방법이 없다고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입장일 뿐이오. 전생자인 당신은 무려 3가지나 츠쿠요미를 막을 방법이 존재하오.”

나는 그 말에 대번에 안색이 환해졌다.

“정말이오?! 말해주시오!”

“첫 번째. 봉선의식을 이용하는 것이오. 봉선의식을 통해서 삼황오제를 불러낸 후 그들에게 충분한 제물을 바치고 대홍수를 미뤄달라고 하면 그만이오. 어찌되었든 츠쿠요미는 삼황오제의 수하이니 삼황오제의 의지만 꺾으면 그만이니까.”

“아하!!”

나는 첫 번째 방안부터 무척 간단했기에 탄성을 질렀지만 이윽고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처음부터 대홍수는 봉선의식으로 막으면 되는 거였잖소? 왜 여태껏 말을 안 해준 거요.”

“흠…. 사실 나도 기억을 받았을 때 당신이 30번이나 전생해놓고 이걸 왜 모르나 싶었소. 다만 당장 급한 일도 아니니까 그냥 그러려니 했던 거지. 어쨌든 당신은 심마도 겪고 무공수련한다고 바빴잖소. 봉선의식 준비하고 제물 준비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리고 대홍수의 단서를 찾는다고 세계를 뒤적거리다가 또 뭔가 얻어걸릴지 누가 알겠소?”

“…….”

“그리고 두 번째 방법. 첫 번째 방법을 좀 더 간단하게 만든 것이고 최근에도 논의된 방법이오. 바로 천계를 접수하여 복희를 부활시키는 거지. 복희의 영향력이면 굳이 제물을 바치거나 봉선의식을 하지 않아도 대홍수 정도는 어떻게든 무마될 거라 생각하오.”

“오!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구려.”

“그리고 마지막 방법은…. 츠쿠요미가 있는 [꿈]으로 직접 찾아가서 죽이는 것이오.”

“……?”

나는 의아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 첫 번째 두 번째 방법으로 이미 차고 넘치는 것 같긴 한데 마지막 방법은 뭔가 좀 희한하구려. 그 놈이 현실세계가 아닌 꿈속에 산다는데 그게 어딘지 알고 찾아간다는 거요?”

“다 방법이 있소. 실제 차원계가 아니라 꿈이라 하면 더 간단히 찾아갈 수 있지. 하지만 이 방법은 가능하면 안 썼으면 하오.”

“왜?”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불리하니까…. 첫 번째 두 번째 방법으로 해결되는 게 최선이오. 최후의 방법이니 지금은 생각하지 맙시다.”

망량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싫어하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좋소. 아무튼 스사노오가 겁을 줬지만 대홍수를 너무 걱정할 건 없다 이 소리군. 그럼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뭐요?”

“아니 걱정은 좀 해야겠지만…. 어쨌든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일단 아베노 세이메이를 만나러 가는 거요.”

“세이메이를?”

“팔부신중을 수해에 끌어들이기 전에 조율을 해봐야하니까.”

우리는 곧장 아베노 일족의 본거지로 향했다. 그리고 아베노 세이메이를 만나자 나는 아는 척을 했다.

“어이 반가워!”

“스사노오 님께 얘기는 들었어. 네가 백웅인가?”

“그래. 이거 받아라!”

우웅

나는 아베노 세이메이를 설득해서 흑요석의 기억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아베노 세이메이는 흑요석의 기억을 받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진정하고는 말했다.

“놀랍군…. 설마 이 시대에 동영 최고신격 삼귀자의 힘이 모두 출현할 줄이야.”

“혹시 츠쿠요미란 놈에 대해서 아는 거 좀 없어?”

“그대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자세히 아는 건 없다. 어찌됐든 동영신화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최고신이니까.”

“흠.”

“그것보다는 역시 당신의 팔목을 좀 보고싶다, 백웅.”

“엥? 내 팔목?”

“보여다오.”

세이메이가 무척 간절한 목소리로 말하길래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어쨌든 그에게 팔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세이메이는 내 팔목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생 제르맹처럼 자신의 눈에 무언가 술법을 걸고는 자세히 살폈다.

잠시 후 세이메이가 눈을 부릅떴다.

“여… 역시 있군. 설마 진짜로 필멸자가 이자나기노미코토의 이름을 소유하다니!!”

“고려 쪽에서 월요를 얻으려고 드잡이질하다가 뜬금없이 그렇게 됐다. 이거 뭐 잘못된 건가?”

“…전혀 알 수 없는 현상이라서 뭐라 말을 못 하겠지만, 이건 심상찮은 일이다. [이름]의 주인이 되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지?”

“당연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 [이름]의 힘에는 의지하지 않을 생각이야.”

“…….”

잠시 후 세이메이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아니. 이번 경우에는 이름의 힘을 써먹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 이건 음양사의 필두로서의 감이다.”

“뭐?”

“만일에 이름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제일 먼저 이자나기노미코토의 이름을 소환해라. 그 이름은 이번 대홍수 사태에 가장 요긴하게 쓰이게 될 것이다. 틀림없어.”

이자나기노미코토의 이름이 대홍수와 상관이 있나?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뭔가 이유가 있는 조언일 것이리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이메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망량의 계책대로 팔부신중이 수해에 온다면 내가 기꺼이 놈들을 위해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도록 하지. 맡겨만 둬라.”

“잘 부탁해.”

옆에 있던 망량이 말을 거들었다.

“아, 그리고 음양사 교두가 필요하니 실력이 뛰어난 자 몇을 뽑아서 소을촌에 데려가겠소.”

“알았다. 확실히 앞으로 백웅을 도울 술법사도 많이 필요하겠지….”

흐릿하게 대꾸하던 세이메이가 내게 말했다.

“백웅.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뭔데?”

“계획대로라면 팔부신중은 모조리 외우주로 가게 되어 사멸하게 될 것이다. 이건 네가 다짐했던 대로 팔부신중을 부하로 만드는 것과 위배되는데 괜찮은가?”

“그 얘기 말이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세이메이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고 싶지만 이번 생에는 그 놈들까지 신경쓰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힘을 쌓기는 힘들어. 다음부터라도 굴복시키면 되겠지. 그런 마왕들 신경 쓴다고 내 동료들이 다치게 할 수는 없어.”

“…….”

“왜 그래?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어?”

“백웅. 도중에 마음이 바뀌거나 하진 않겠지?”

“응?”

마음이 바뀌다니?

나는 어리둥절해했다. 세이메이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이메이는 그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했다.

“아니면 됐다.”

“실없기는. 아무튼 우리는 잠시 이곳에 머물겠다.”

“그렇게 해라.”

이제부터 우리는 이곳에 직접 찾아오게 될 팔부신중의 숫자를 확인해야 하고 더불어 놈들이 수해 내부로 들어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걸 위해서는 아베노 일족의 마을에 은신해서 몰래 상황을 지켜보는 게 필수적이었기에 찾아온 것이었다.

타닷

나는 머물기에 앞서서 수해 초입에 있던 검성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와 츠카하라 보쿠덴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 무공을 보여주며 말했다.

“보다시피 나와 여기 있는 아수라는 절대지경이오. 다만 당신들도 뛰어나니, 우리가 당신들과 수련한다면 당신들도 절대지경에 오를 수 있을 거요.”

“…….”

“우리를 따라오겠소?”

그들은 굉장히 놀란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카미이즈미 노부츠나가 말했다.

“너무 호의적이군. 아무 조건 없이 절대지경의 가르침을 베풀겠단 말이오?”

“당신들은 그만한 인성과 수양이 되어있음을 알기 때문이오. 어차피 이 세상에 사마(邪魔)가 가득한데 절대지경 고수 한둘 늘어난다고 뭐가 달라지겠소.”

“일리 있는 말이군. 가르침을 감사히 받겠소.”

그렇게 동영의 검호들을 영입한 후 아수라가 내게 말했다.

“백웅. 이번 생은 무인들을 많이 영입하는군. 정말 오랫동안 버틸 생각이 가득해 보여.”

“당연히 오래 버텨야지. 뜬금없이 왜 그래?”

“아니. 정 그렇게 인재들을 영입하려 한다면 이번 일이 끝난 후 바로 고려로 가서 이혼(李琿)을 영입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다.”

“이혼?”

“50년 후의 미래에 절대지경의 권성(拳聖)이 될 자. 동시에 [방주] 내의 전투훈련실에 더미로 소환되는 인물 말이다.”

“아…!!”

나는 뒤늦게 그 존재를 떠올리고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 그 자에 대한 건 딱히 생각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후 의아해서 반문했다.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나?”

“당연히…. 그 자는 아무래도 단순한 절대지경 고수가 아닐 듯 싶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이상하게 생각한 적 없었나? 이혼이라는 자가 50년 후에 절대지경이 된다는 건데, 방주 내의 전투훈련실에도 동일인물이 소환되었다. 그 말은 율주가 원래 있던 세계든 우리 세계든 이혼은 존재했으며…. 그 자는 절대지경에 이른 후 최소 500세를 살았다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

어 그러네?!

‘그러고보니 이상하군!’

내가 눈을 크게 뜨자 아수라가 말을 이었다.

“28번째 생까지는 그 자가 50년 후의 절대지경이라는 사실에만 주목했지만 [방주]에도 동일인물의 홀로그램 아바타가 출현한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이건 우연일 리도 없고.”

“우연이 아니라면….”

“우선 가정해야 할 게 있지. [종말]에 이르기까지 율주 세계의 역사와 등장인물은 우리 세계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수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혼이라는 인물이 미래에 십이율주 하은천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겠지.”

“으음…!!”

“29번째 삶에는 경황이 없어서 넘어갔지만 조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반드시 그 자를 찾아봐야 할 거다. 그 자를 조사하다보면 십이율주의 비밀에도 닿게 될 것이다. 만일 뭔가 나오는 게 없더라도 미래의 십대고수이자 절대지경을 미리 손에 넣는다면 나쁠 게 없기도 하다.”

“알았어. 그렇게 하지.”

이번 일이 끝나면 고려의 이혼을 찾아봐야겠다!

‘쩝…. 청월도 구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비등을 쓸 수 없으니.’

나는 입맛을 다셨다. 비등을 쓸 수 있으면 대충 사해의 수문장을 건너뛰고 청월만 냉큼 구해서 나올 수 있는데 비등을 쓸 수 없으니 통과하지를 못했다. 나중에 슬며시 꺼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자.”

나는 일행과 함께 아베노 세이메이를 찾아갔고, 그는 자신의 신력을 발휘해서 거대한 나무의 줄기에 큰 균열을 만들어내었다.

쩌적

그 줄기 내부에는 숨겨진 차원으로 통하는 문 같은 게 있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에서 바깥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세이메이의 인도에 따라 모두가 균열 내부로 들어가자 세이메이가 말했다.

“내가 죽거나 큰 부상을 입지 않는 한 아무리 팔부신중이라도 이 공간의 존재를 알아챌 순 없을 거다. 안에서 잘 지켜봐라.”

“부탁한다.”

우리는 안에 숨어서 만 이틀 동안 조용히 숙식을 하며 때때로 명상수련을 하곤 했다. 내부공간은 꽤 넓었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그리고 이틀째가 흘러 사흘이 되던 날 -

쿠구구구구!!

거대한 소리와 함께 아베노 일족의 거주지에 큰 차원문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팔짱을 끼고 있는 팔부신중 가루라의 본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이 곳인가?]

“그렇다. 가루라.”

그의 말에 대꾸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팔부신중 긴나라의 인간형태 모습이었다. 그의 곁에는 야차와 천인, 그리고 마후라가, 건달파가 같이 와 있었다. 나는 그들 여섯의 모습을 보자 거목의 줄기 내부에서 눈을 부릅떴다.

“지, 지, 진짜….”

진짜 왔네?!

그것도 여섯 명이면 전부 다 왔네?!

내가 경악하고 있을 때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아베노 세이메이가 순간이동술을 써서 팔부신중 6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베노 세이메이는 은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자기 주변에 음양부신을 잔뜩 띄운 채 말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군. 너흰 누구지?”

그러자 긴나라가 한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말했다.

“음양사의 우두머리이자 실질적인 동영의 지배자, 천 년 이상을 살아온 신적 존재 아베노 세이메이여. 그대의 땅을 밟게 되어 미안하다. 우리는 팔부신중…. 사황(史皇) 창힐 님을 따르는 자들이다.”

“…….”

“우리는 이 땅에 외우주의 통로가 존재하며 그 곳에 창힐 님에 대한 단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찾아왔다. 잠시 조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다오.”

생각보다 긴나라의 태도는 무척 점잖아 보였다. 힘만으로 친다면 세이메이와 음양사들을 쉽게 몰살시킬 수 있을 텐데도 상당히 저자세로 나오는 것이다.

‘아마도 세이메이의 본거지에서 싸우게 되면 인과율을 크게 소모하게 되기 때문이겠지.’

가뜩이나 위험한 수해에서 관리자와 무력다툼을 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책사인 긴나라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세이메이는 무표정한 눈으로 긴나라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설마 창힐의 흔적이라 하는 건 입해(入海)의 끝자락에 존재하던 기이한 금빛 문자를 말하는 것인가?”

흠칫!

그 순간 팔부신중들이 저마다의 얼굴을 쳐다보는 기색이 느껴졌다. 긴나라가 세이메이에게 질문했다.

“어떤 문자였지? 아는 대로 이야기해 다오.”

“나도 직접 본 적이 없고 미리 들어간 뇌신류 인물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입해의 끝자락에서 생전 처음 보는 금빛 문자가 떠돌았다 하더군…. 수상한 거라면 그거뿐이다.”

“흠…. 세이메이여. 우리를 거기까지 안내해 다오.”

“거절하겠다. 나는 봉인을 유지하는 데만도 모든 힘을 쓰고 있으며 사해의 수문장은 굉장히 강력한 존재다. 우리는 그저 봉인을 관리할 뿐 수해 내의 마물들을 토벌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런가? 흐흐.”

긴나라가 음충맞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그냥 길잡이로 따라오기만 해도 좋다. 그 수문장인지 뭔지가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우리 팔부신중을 이길 순 없으리라.”

“흐음…. 그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는?”

“나중에 이걸 빌려주지.”

스윽

긴나라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파직거리며 붉은 번개가 튀고 있는 반투명한 구체였는데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그 구체의 한가운데에는 웬 돌조각이 둥둥 떠 있었다. 아베노 세이메이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인과율에 관련된 보물인가?”

“그렇다. 우리 밑에서 일하던 연금술사가 만들어낸 시제품이지. 갑자기 놈이 실종되는 바람에 완성되진 않았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다.”

“…설마, 인과율을 무화(無化)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인가?”

“호오!”

세이메이의 질문에 긴나라가 크게 눈을 뜨더니 말했다.

“신의 화신격 존재라더니 과연 듣던 대로구나. 그 말대로 이건 인과율을 무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보물이다.”

“이름은?”

“플로지스톤(phlogiston)이라고 하더군. 연금술의 보물이니 이 정도면 길잡이를 할 만한 대가이지 않은가?”

“…….”

세이메이가 고민하는 척 하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입해까지 내가 그대들을 안내하겠노라.”

위잉!

세이메이가 차원문을 열자 그들은 잠시 후 다같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도 이제부터 세이메이가 팔부신중을 데리고 아오키가하라의 심해까지 인도하게 되리라.

좌아악

거목의 줄기가 쫙 열리면서 우리 일행이 내부에서 나오자, 망량이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모든 게 계획대로구려. 팔부신중을 이제 수해의 왕에게 부딪히게 하면 모든 게 끝이오.”

“…설마 이렇게나 잘 풀릴 줄은 몰랐소.”

나는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구출한 효성공주(曉星公主)를 통해 섬서성주에게 창힐의 소재를 암시하는 노래를 전하고, 섬서성주가 효성공주의 청으로 그 노래를 섬서 전역에 퍼뜨리는 계책…. 이런 단순한 계책이 통할 줄이야!”

그랬다.

망량의 계책은 매우 단순했다. 그냥 망량이 만들어낸 암시적인 노래를 이용해서 창힐이 아오키가하라수해에 있다는 걸 전하고, 그 노래가 섬서성주의 명으로 세상 전역에 퍼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팔부신중은 얼마 후 그 노래를 듣고 분석하던 중 창힐의 소재를 이야기한다는 걸 깨닫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리라.

하지만 이상할 정도다.

“그저 민간에 흐르는 노래에 지나지 않잖소? 그 노래를 팔부신중이 진심으로 믿고 이런 동영의 험난한 봉인지까지 다같이 찾아오게 되다니!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요.”

내가 놀라서 물어보자 망량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노래에 [벌레의 왕이 되어 천상을 짓밟는 천마가 된다네] 라는 구절이 있다는 거 알고 있었소?”

“그랬지.”

“그건 당신이 내게 황궁세력과 창힐, 팔부신중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을 때 문득 났던 생각이었소. 벌레의 왕이 되어 천마가 된다는 이야기는 이른바 창힐의 딸인 야차와 창힐 두 명 사이에서만 공유하는 이야기가 아니오?”

“그렇소만….”

“그 구절이 들어간 순간 다른 이는 몰라도 야차는 노래의 공신력을 강하게 신앙하게 되지. 절대자인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과의 인연을 잊지 못하고 넌지시 노래를 통해서 자신들을 부른다는 건 야차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없는 환상적인 미담이 아니겠소?”

“…….”

“단언할 수 있소. 팔부신중이 다 같이 몰려온 것은 내가 의도한 대로 야차가 그들 모두를 설득한 결과요. 아버지인 창힐이 어딘가 다른 차원계로 원정을 간 후 지원군으로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강하게 믿은 거지.”

“그, 그런가….”

나는 이야기를 듣자 약간 질린 표정을 짓고 말았다.

‘망량은 완전히 사람의 심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그저 노래 하나 띄워서 팔부신중을 수해에 끌어들인다고 하는 미친 계략.

이 유치한 계략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야차의 심리를 염두에 두고 간접적으로 그녀를 조종했던 망량의 심계 덕분이었던 것이다.

망량이 말했다.

“하지만 이게 가능했던 건 내가 전생자의 동료이기 때문. 당신이 창힐에 대해 모은 이 소중한 정보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낼 수 없는 계략이었지. 야차 입장에서 전생자가 창힐과 자신의 관계를 알고 있고 수천 년 전 은주 원시시대에 부녀끼리만 나누었던 밀담의 기억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어찌 할 수 있겠소?”

“그래도 이렇게 잘 통할 줄은….”

“후후. 느긋하게 갑시다.”

망량이 앞으로 걸어가며 다소 그답지 않게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평소에 당신 앞을 가로막으며 힘자랑 하던 팔부신중이 수해의 왕과 싸우면 어떤 결과가 날지 궁금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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