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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머지않아 소을촌 뒷산에 방주를 착륙시켰다. 그리고 광구를 이용해서 명령했다.
“방주를 계속해서 투명상태로 유지해 줘.”
[에너지소모를 최소화하며 스텔스모드 유지하겠습니다.]
우웅
나는 방주에서 내린 후 생 제르맹과 함께 망량에게로 갔다. 사실 함선 내에서 얘기를 듣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생 제르맹이 망량도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해야겠다고 고집을 피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망량에게로 가자 망량이 의아해했다.
“왜 그리 불안해보이는 얼굴들이오?”
나는 고개를 까닥하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어 그게, 생 제르맹이 그러는데, 십이율주가 2명이 돼버렸을 거라고….”
“……!!”
망량 또한 표정이 확 달라지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생 제르맹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시오.”
“후우. 당신은 비교적 지혜자이니 내 말을 쉽게 풀어서 백웅에게 설명해줄 수 있겠지….”
“그건 걱정 마시오. 내가 최대한 백웅에게 설명하겠소.”
“…….”
그래서 망량 앞에서 이야기해야겠다고 고집부린 거였냐!
생 제르맹은 간단하게 방주를 뚫었을 때 발견했던 은빛 회로와 의혹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리고 백웅이 십이율주를 3일후로 보냈단 얘기를 하더군. 나는 거기서 아차싶었소. 이건 큰 문제일 거라고….”
망량이 선 채로 턱을 괸 채 곰곰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설마, 백웅이 바람의 힘으로 십이율주를 3일후의 미래로 날려버린 순간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율주가 재생성되었다는 가능성을 말하는 거요?”
“바로 그렇소.”
“어처구니없군…. 흠…. 그래서 십이율주가 2명이 되었다니.”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깜짝놀라서 외쳤다.
“뭐?! 그런 일이 가능한 건가?! 율주가 미래로 갔는데 왜 그 자리에 바로 또다른 율주가 만들어진단 말이야?!”
그러자 생 제르맹이 말했다.
“우선 확실한 건 십이율주가 이 시대보다 최소한 500년 앞서있는 초과학력의 주인이라는 사실이오. 또한 그는 세계수를 점거하여 그 막대한 영력을 맘대로 휘두를 수도 있소. 그리고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십이율주라는 자는 설령 영혼을 뽑아내어 죽여도 또다시 되살아나고, 얼음에 당해 봉인당해도 되살아나는 기묘한 불사성(不死性)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군.”
“그렇소. 놈은 어찌된 일인지 죽긴 죽는데 얼마후면 감쪽같이 되살아나서 어깃장을 놓곤 하오.”
“나는 거기서 생각했소. 그 자는 십중팔구 세계수의 힘을 이용해서 불사능력을 쓰는 거라고.”
“……?”
응?
세계수를 이용한다고?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생 제르맹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일단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당신들은 세계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소?”
나는 기억을 짜내며 열심히 대답했다.
“음…. 내가 전에 십이율주한테 듣기로는 뭐라더라, 아홉개의 세계에 걸쳐있다던가? 그리고 엄청난 마력이 잠재되어있고, [옛 지배자]의 영향력을 봉쇄하는 능력이 있고, 또 세계수의 힘을 칠요와 연동시켜서 봉황을 소환할 수 있고, 어….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제갈사의 설명을 생각해냈다.
“혼돈의 알에서 부화하지 못한 [옛 지배자]라던가….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소.”
“호오!”
생 제르맹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상당히 많이 알고 있군! 아니, 그 정도면 웬만한 마도사나 연금술사도 잘 모르는 수준까지 파고들어 있는데…. 백웅이여! 그대는 왜이리 지식과 지능의 수준에 괴리가 심하단 말이오?”
“…….”
어째 저게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데….
내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자 생 제르맹이 말을 이었다.
“그 말대로요. 다만 당신이 얘기한 용법 대부분은 그 십이율주라는 자가 세계수를 쓰는 방법일 뿐 실제로 세계수의 특징은 [무한한 마력]이라 할 수 있소. [옛 지배자]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봉황을 소환하거나 하는건 다 무한한 마력에서 파생된 사용법일 뿐이지.”
“그렇구만.”
“그렇다면 어째서 세계수는 무한한 마력을 갖고있다고 생각하오?”
“혼돈의 바다에서 태어나 [옛 지배자]가 될 뻔 했으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겠소?”
“아니오. 그 이유도 있지만 그건 발아단계에서 엄청난 마력의 근원을 보유하는 이유이고, 내가 말하는 건 성체가 된 세계수가 그 이후에도 무한한 마력을 지속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이유요. 그 무한한 마력은 어디서 나오는거라 생각하오?”
“음…….”
모, 모르겠는데….
갑자기 그렇게 어려운 걸 물으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망량이 입을 열었다.
“[아홉 개의 세계]. 생 제르맹 당신은 그걸 말하고 싶은 거구려.”
“바로 그렇소.”
생 제르맹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체가 된 세계수는 겉으로는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물리적인 실체가 없소. 가공할 마력을 이용해서 현실계에 투영한 상(像)이 맺혀진 것에 지나지 않지. 실제로 세계수는 고위차원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 세계수가 뻗고있는 뿌리가 세계의 구획을 넘어 아홉 개의 세계에 뻗쳐서 그 세계에 존재하는 마력을 빨아오고 있는 것이오.”
“……!!”
망량이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 아홉 개의 세계란 무엇이오? 다른 차원(次元)을 말하는 것이오?”
“우주의 창생과 함께 만들어졌던 고세계(古世界). 우리 연금술사들은 그 아홉 개의 고세계를 각기 아스가르드, 미드가르드, 요툰헤임, 헬, 알브헤임 등으로 칭하고 있소. 그리고 그 고세계에서부터 고신과 거인족들이 탄생했다고 보고 있소. 몇몇 엘더들의 고향이기도 하지.”
“흐음.”
“본디는 세계수가 힘을 흡수해오는 건 저 9개의 세계라고 생각했었지.”
생 제르맹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건 틀린 이론이오. 사실 우리 연금술사들은 얼마 전 이 이론을 폐기해버렸소.”
“무슨 소리요? 신나게 설명을 해 놓고.”
“우주도(宇宙圖)를 그려서 차원의 배치를 고전적인 연금술으로 파악했을 땐 세계수가 칭하는 아홉개의 세계가 저 고신계를 뜻하는 줄 알았지. 그러나 성좌의 배치가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달라지자 계산도 달라졌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아챘소.”
“그게 아니라는 건….”
“우주의 극초기에는 아스가르드나 요툰헤임에서 힘을 끌어왔을지 모르지만 사실 세계수는 그 어떤 평행세계에서도 마력을 빨아올 수 있다는 게 밝혀진 거요.”
“…….”
“그래서 [아홉 개의 세계]란 그저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하게 되었소. 그 9개의 고신계에서만 힘을 빨아올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세계수가 실질적으로 힘을 빨아올 수 있는 세계의 숫자는 무한개이니 당연히 마력도 무한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군.”
“그런 거요.”
“재밌는 연금술 이론 얘기는 잘 들었소. 근데 그게 십이율주의 불사능력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해주지 않겠소?”
그러자 생 제르맹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한의 평행세계에서 무한의 마력을 빨아온다는 건 달리 말하면 뿌리를 통해 그 평행세계와 현실세계를 잇는 통로를 만들었다는 뜻이오. 그런데 그 뿌리를 통해 마력 뿐만이 아니라 평행세계의 또 다른 매질이나 존재를 소환할 수 있다면…?”
“……!!”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세계수를 이용해서 불사능력을 구현한다는 건 그것밖에 방법이 없소. 무한의 마력과 함께 평행세계에서 원하는 존재를 끌어오는 것밖에는.”
“그럴 수가….”
망량 또한 약간 얼굴이 창백해진 것 같았다. 나는 옆에서 듣는 중에도 둘이 뭔 소리를 하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했고, 망량에게 질문했다.
“망량. 그래서 율주가 어떻게 2명이 됐다는 소리요?”
“지금 들은 대로요.”
이어진 망량의 말에 나는 상황을 약간 이해할 수 있었다.
“세계수인 신단수가 다른 평행세계에서 마력을 빨아들이는 [뿌리]를 통로로 삼아서, 그 통로를 통해 평행세계의 십이율주를 데려오는 것이오.”
“……에엥?!”
“그렇게 되면 세계수가 존재하는 한 십이율주는 불멸의 존재가 되지. 왜냐하면 십이율주가 죽을 때마다 세계수가 평행세계에서 또 한 명 소환해오기만 하면 되니까….”
“…….”
“그래서 당신이 3일 후의 시간으로 [현재]의 십이율주를 보내버린 순간, 세계수는 십이율주가 소멸되었다고 인식해서 곧바로 평행세계의 십이율주를 소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가설을 세운 것이오. 맞소? 생 제르맹.”
생 제르맹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말을 하고싶었소!”
이, 이건 무슨….
나는 머리가 띵해짐을 느끼고 외쳤다.
“그게 가능하단 말이오?! 아니, 거 뭐시기, 가능해?!”
“단순하게 세계수의 능력만 생각하면 가능한 일이오. 허나….”
망량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건 동시성(同時性)의 원칙에 위배되는군. 그렇지 않소?”
“동시성의 원칙?”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하나의 [굴레]에 동일한 존재가 2명 있을 경우 인과율이 그 존재를 심판하여 단 하나만 남기게 되오. 당신은 이미 그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고 그 덕에 팔부신중도 반쯤 와해시킨 게 아니오.”
“아…!!”
창힐!
나는 망량이 창힐의 예시를 말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자 상황이 잘 이해되었다.
‘창힐이 과거에 내 몸을 뺏으려 할 때, 그 놈이 과거의 굴레에서 온 창힐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창힐은 인과율이 부족해서 소멸당했었지!’
그리고 그때 창힐을 천암비서에 먹어치우게 한 덕에 지금 나는 전생하자마자 창힐을 먼저 삭제시키고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약간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짓자 망량이 생 제르맹을 쳐다보았다.
“생 제르맹. 신단수의 뿌리를 통해 평행세계에서 찾아온 십이율주 또한 현재의 십이율주와 동일한 인물일 터. 당연히 인과율에 심판받아 동시성 때문에 하나만 남아야 할 것이오. 십이율주가 2명이 되었으리라는 당신의 추측은 억측이오.”
“아니오. 동시성의 법칙이 뭘 말하는 건지는 알겠지만 모순이 되지 않소.”
“왜 모순이 되지 않는다는 거요?”
“평행세계는 시공간의 분화로 생겨난 불안정한 지지대. 생각해보면 평행세계의 숫자가 무한대라면 [옛 지배자]의 숫자도 무한대여야하지 않소? 그러나 그 악랄한 마신들은 무한히 분열하거나 하지 않소. 그것은 바로 혼돈에 시간이 귀속되기 때문이며, 평행세계는 시간축에서 분화할 수 있는 독립성이 존재치 않기 때문이오. 현실에 딸려갈 뿐이고 신성(神聖)들이 인식하는 절대적인 시간축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하위계라는 것이오.”
“…….”
“쉽게 말하자면 평행세계는 실재계의 그림자같은 것이오. 실재계의 시공간이 변화하면 평행세계도 변화하지만 그 역은 적용되지 않소. 동시성이 적용되기에는 상하관계가 확실한 거지.”
망량이 뭔가를 이해한 듯 중얼거렸다.
“그렇군. 외우주와의 차이점이라면 외우주는 시간축에서 분화할 수 있는 독립성이 존재하는 것이고, 평행세계는 그 독립성이 존재치 않는다는 말이구려.”
“잘 이해했소.”
“그런데 평행세계가 그런 하위계라면 그 평행세계에서 불러온 십이율주 또한 원본 십이율주보다는 불완전한 존재여야 하는게 아니오?”
망량의 질문에 생 제르맹이 대답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연금술사들 또한 평행세계에서 자기자신을 소환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존재들은 도플갱어가 되어서 악마화되거나 혹은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소멸되었소. 평행세계에서 뭔가 소환해서 제대로 고정시켜 써먹은 경우는 연금술과 마도사 역사상 한번도 없는 거요. 평행세계는 너무나 불완전한 차원계니까.”
“평행세계에서 자기자신을 소환해서 써먹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군. 그러나 십이율주는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가보군.”
“그렇소…. 백웅의 의뢰대로 [방주]의 벽을 해체하여 그 은빛 회로를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오.”
생 제르맹이 약간의 호기심과 공포가 혼재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주역사상 손꼽힐 정도의 최고의… 악마적인 초과학(超科學). 양자(量子)를 유사생명에 가둔다는 미친 기술력이라면, 어쩌면 세계수의 힘을 빌려 그 미친 부활능력을 구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오!”
“…….”
망량은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러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백웅. 생 제르맹의 말을 이해했소?”
“어… 그러니까… 아무튼 십이율주가 2명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 아니오?”
“그렇소. 잘 알아들었구려. 그럼 묻겠는데…. 당신은 만일 평행세계에서 자기자신을 소환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소?”
“응?”
뜻밖의 질문에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조금 생각해보고 대답했다.
“어…. 계속 소환하지 않겠소? 나랑 같은 실력인 놈들이 많다면 앞으로 싸울 때 엄청난 도움이 될 건데.”
“그렇겠지. 당신같은 초인이 10명만 있어도 이 세상을 무척 쉽게 제패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십이율주는 여태껏 그렇게 하지 않았소. 십이율주같은 절대고수가 100명 있다면 해신따위는 일각 내에 잡을 수 있을건데.”
“…….”
“왜 평행세계 소환을 그동안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시오? [옛 지배자]와 싸우려고 혈안이 된 십이율주가 왜 안 했겠소?”
“음…. 뭔가 제약이 있는 게 아니겠소? 죽어야만 발동할 수 있다던지.”
“그런 시시한 제약이 아닐 것이오. 어차피 무한의 마력을 부리는 세계수를 맘대로 쓸 수 있는데 그딴 사소한 게 발목을 잡을 리 없지. 좀 더 중대한 이유가 있을 것이오.”
망량이 약간 식은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예를 들자면… 둘 중에서 누가 [진짜]인지를 가려야 한다던가.”
“……!!”
“이런 경우 아무리 무한소환이 가능해도 할 리가 없지. 말 그대로 정체성의 파괴니까…. 누가 자기자신이랑 굳이 목숨걸고 싸워서 존재를 증명하고 싶겠소?”
뭐?!
나는 깜짝 놀랐지만 이윽고 망량의 말이 일리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평행세계에서 넘어온 나 자신도 [나]라면 누가 진짜인지 가려야만 하지 않을까?
내 동료들과 함께 싸우면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건 한 명뿐일 테니 말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뭔가를 깨닫고는 팟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럼, 지금 십이율주는 설마…!!”
“아마도 당신이 생각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을지도 모르오.”
망량이 머나먼 동쪽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십이율 내에서 두 명의 십이율주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면 최고겠군.”
그렇다.
얼떨결에 3일 만에 나타난 십이율주가 맞닥뜨리게 될 것은 아마 세계수가 임의로 사망으로 판정했을 때 또 다시 불려나온 십이율주 그 자신!
과연 그들은 서로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 목숨걸고 싸울 것인가?
‘오오오! 그렇다면!’
나는 그걸 생각하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참을 수 없었고 이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계책을 외쳤다.
“좋아! 십이율주 놈을 계속해서 마력이 모일 때마다 바람을 이용해서 미래로 날려보내면 놈은 무한히 싸우지 않겠소!”
“으음. 십이율주가 자기자신과 반목하는 경우라면 그 계책으로 십이율주에게 정신적 타격은 입힐 수 있겠지만….”
“뭐 문제 있소?”
망량이 곤란하다는 듯 자신의 뺨을 긁적였다.
“만에 하나 십이율주가 대충 서로를 인정하고 100명의 평행세계 십이율주가 당신을 죽이러 오면 어쩔 거요?”
“…….”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길 수 없을 건데.”
어…. 그런 경우는 생각 안 해봤는데….
내가 멍하니 있자 망량이 피식 웃었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정보를 모아야 할 때요.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군불을 때면서 힘을 키우고 적들의 약점을 캐는 거지.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으니 차분하게 갑시다.”
“알았소.”
“일단은 십이율주가 정말 2명이 되었는지, 그리고 싸우는 중인지를 확인해야하오. 그리고 십이율에 대한 정보를 모을 필요성이 생겼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 뿐이지.”
“고려에 첩자를 보내면 되겠소?”
“그런 허섭스러운 방식으로는 십이율주의 상태 같은 건 알아낼 수 없지. 아주 간단한 계책이 있소.”
“어떤 계책이오?”
이어진 망량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미야모토 무사시를 이중첩자로 쓰는 거요. 당신도 이미 생각했던 계책을 이제 실행할 때가 온 거지.”
“……!!”
“놈을 이중첩자로 써서 십이율주의 상태를 알아냅시다.”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그, 그건 나도 생각했던 건데 황궁에 콕 박혀서 공간을 베고 숨어있는 무사시를 남한테 안 들키게 빼내는 방법이 없어서 포기했던 건데….”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당신은 만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구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평화를 지키려고 전 세계의 강적들을 두더지 때려잡기하는 식으로 단순무식해지는 거지…. 무사시 정도 처리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소.”
“방법이 있단 말이오?”
“아주 간단하오.”
이어진 망량의 말에 나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사사키 코지로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시오. 내가 네놈새끼한테 받은 오륜서를 통달하여 과거의 굴욕을 갚겠다고 결투장을 날리시오. 그 결투장에는 네놈의 심인(心刃)따위는 검선 여동빈의 심검에 발끝도 미치지 못한다고 적어놓고, 여동빈한테 심검의 흔적을 만들어달라고 해서 편지에 별첨하는 거요. 편지는 당신이 상급마도구인 리히트오그를 써서 대충 놈의 위치를 탐지하면 그 근처에 내가 시해지술을 써서 순간이동시켜 주겠소.”
“…….”
“하는 김에 날 이기면 검선 여동빈과 싸우게 해주겠다고 도발하시오. 이러면 무사시는 무조건 달려 나와서 당신하고 닥치고 칼싸움을 하겠지. 그리고 이겨서 굴복시키면 그만이오.”
나는 황당해져서 외쳤다.
“어…. 너무 단순하지 않소?! 이런 단순한 계책에 무사시가 걸려들 리가 없잖소! 무사시를 무시하는 거요?!”
“음…?”
“무사시 놈도 생각이 있으면 이렇게 의심스러운 함정에 달려 나올 리가 없잖소.”
망량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한 번 해보시오. 아마 될 거 같은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망량의 계책을 늘 믿고 있지만 이건 무리수 같다!
그래도 명색이 천하의 절대고수이며 동영제일고수인 이천일류 미야모토 무사시가 이런 단순한 계책에 걸릴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낙양성에서 한참 떨어진 이름 없는 산야의 공터에서 내 앞에서 잔뜩 살기를 품고 있는 미야모토 무사시와 마주서게 되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거대한 살기를 내뿜으며 으르렁거렸다.
“사사키 코지로오오오!! 네놈을 이기면 정말 검선 여동빈과 싸울 수 있느냐!”
“…….”
사사키 코지로의 모습으로 변태술을 쓴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버럭 외쳤다.
“그래 이 씨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