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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생 제르맹에게 방주의 비밀공간을 뚫는 데 필요한 지원을 물었다. 그러자 생 제르맹이 대답했다.
“내가 소을촌에 옮겨온 공방이 있소. 거기에 필요한 물품을 넣어주시오.”
“넣어달라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일단 [통로]부터 만들어야겠군.”
그렇게 말한 생 제르맹이 방주 바깥으로 나가더니 바로 앞에서 웬 깃털로 된 필기도구를 꺼내더니 근처의 절벽에 크게 네모를 그렸다. 그러자 네모공간이 일렁이더니 마치 총천연색의 통로처럼 변했고, 생 제르맹이 통로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을촌의 공방에 필요한 재료를 보급하면 곧장 연결된 이공간을 통해서 바로 여기서 작업할 수 있소. 귀찮게 왔다갔다할 필요는 없지.”
“……!!”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순간이동하는 통로?! 이렇게 편리한 게 있으면 진작 말해주지….”
생 제르맹이 깃털 필기도구를 검지로 튕기며 대꾸했다.
“연금술사 전용 상급마도구이긴 하지만 그렇게 편리하지 않소. 공방과 이어진 이 통로를 이용할 수 있는 건 나뿐이고 그나마도 일방통행. 이쪽에서 저쪽으로 뭔가 집어넣어 소을촌으로 보낼 순 없소. 그리고 이건 연금술사만이 쓸 수 있으니 당신은 못 쓰는 거요.”
“흠.”
“나는 계속 여기서 숙식할테니 노예상들을 없애고 얻은 재료나 물품을 요구하는대로 넣어주시오. 그럼 보름 내로 뚫겠소.”
“알았소. 부탁하오.”
나는 생 제르맹에게 방주의 비밀통로 해제를 부탁하고는 마을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망량에게 생 제르맹의 보급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고 다시 무공수련을 하러 가기로 했다.
카앙!
나는 여동빈에게 무영탈혼검법을 부딪혔다. 그러자 여동빈은 곧장 월공투계를 이용해서 되치면서 내게 탈혼검기를 반사시켰는데, 나는 탈혼검기를 피하려 하다가 갑자기 환영이 중첩되며 옷자락이 크게 스치고 말았다. 내 실수를 본 여동빈이 나직이 말했다.
[연자여. 이 수련은 숙련도의 부족을 깨닫는 것이기에 무작정 횟수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다. 방금은 그대가 무영탈혼검의 성질을 이해했다면 아무리 반사된 검기라 해도 그런 식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윽, 죄송합니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여동빈이 말했다.
[오늘 월공투계의 수련은 여기까지 하고 거기 앉아보라.]
“……?”
나는 얼떨결에 여동빈과 일 장의 거리에서 서로 가부좌를 튼 채 마주보게 되었다. 이런 적은 처음인지라 어리둥절하고 있자 여동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의 전생기억속에서 가장 무인으로서 강할 때가 언제였던 것 같은가?]
나는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내 동료를 지키려고 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무(武)에 몰입하여 자연체(自然體)에 가까워졌을 때 그대가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
어, 괜히 뻘쭘하구만….
내가 머리를 긁적이자 여동빈의 말이 이어졌다.
[자연체에 가까워지면 무인이 본신의 역량을 모두 내뿜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 신검합일(身劍合一)의 집중력이 혼연일체가 되는데 어찌 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자연스럽다는 건 무엇인가? 그대가 지금 나를 통하여 숙련도가 낮은 기술들을 수양하여 그 숙련도를 올릴수록 그대의 자연체는 더 강력해질 게 틀림없는가?]
“아마 강력해지겠지요.”
[아닐 수도 있음을 유념해라.]
“……?!”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흠칫하고 놀라자 여동빈이 말했다.
[의외의 말인가?]
“그, 그건 백가지 기술을 겉핥기로 익혀봤자 하나의 기술을 대성한 자를 못 이긴다는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말입니까?”
[그건 무예계의 중턱에도 오지 못한 하수들이 일삼는 수련격언일 뿐. 어찌되었든 한두 가지 분야에서 극에 도달한 절대무인인 그대에게 적용될 이야기가 아니다.]
“흠, 그럼….”
[조금 다른 이야기다.]
여동빈이 나직이 말했다.
[모든 이가 그렇듯 집중력이 올라가 자연체에 도달했을 때 그대의 움직임은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렇다면 자연체를 움직이는 것은 이성인가 마음인가?]
“……!!”
그제서야 내가 여동빈의 말을 약간 알아듣자 여동빈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얼마 전 그대가 아수라와 망량을 통해 한 번 고뇌해본 화두이다. 그대는 마음이라고 결론을 내렸으나, 자연체 상태에서 마음이 몸을 움직임에도 어째서 몸은 이성(理性)의 극한을 따르는지를 생각해보라.]
“그걸 고민하는 게 이 수련과 연관이 있습니까?”
[생각을 해 보아라.]
여동빈의 눈에서 약간의 신광이 어리며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마음이 없이 기계적인 이성만으로 최적의 움직임을 따를 수 있는 무예의 경지가 있다면 그게 자연체보다 궁극적으로 나은 것인지를.]
“…….”
[이는 무인이 바라는 이상(理想)과도 연관이 있다.]
…과연…. 그런 말인가.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고뇌하라. 그리고 끊임없는 늪에 스스로 빠져라.]
치링 -
여동빈의 검음(劍音)이 울리며 그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 또한 검을 들고 마주섰다. 다시 자연스럽게 수련상태로 들어갔을 때 여동빈이 말했다.
[심마를 털어버리려고 하는 게 도리어 심마를 깊게 할지니, 그 어둠의 깊이를 스스로 직시하여 파헤치도록 하라!]
카가강!!
카강!
나는 여동빈과 세 시진 내내 칼을 부딪히며 수련을 하다가 여동빈이 되돌아가자 언덕의 수풀에 누워서 생각을 했다.
‘최적의 움직임…. 가장 완벽한 움직임….’
여동빈이 내게 내놓은 화두는 틀림없이 하나의 절대지경을 의미했다.
‘천의무봉(天衣無縫)!’
모든 절대고수들이 입을 모아서 인위적(人爲的)이라고 말하는 십이율주의 절대지경!
한 치의 빈틈조차 존재치 않는 그 완벽한 최적의 움직임은 극성에 도달한 검마의 무영탈혼검법으로도 구멍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천의무봉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절대지경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완벽(完璧)함이 인위적인 이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 과연 마음의 극한에 도달한 자연체로 천의무봉의 완성도를 넘어서는 게 가능할 것인가?
여동빈이 제기한 화두는 바로 이것이다.
어찌되었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성의 극한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움직임이 있다면 한 가지 껄끄러운 사실이 튀어나온다.
“…그 무(武)에 마음따윈 필요하지 않으니까.”
결과적으로 최고의 움직임을 끌어내었다면 이기기 위해 갖출 건 다 갖춘 것이다. 그게 이성의 결과물이든 마음의 결과물이든 서로 죽고 죽이는 승부의 장에서 알 게 뭐란 말인가? 어찌보면 무인의 마음을 가장 정면에서 부정하고 있는 게 천의무봉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여동빈은 그 천의무봉에 대해서 고민해볼 것을 요구한 것이리라.
하지만 왜?
‘음…. 잡무공의 숙련도를 올리는 게 꼭 강함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건 대충 이해가 가는데 그게 천의무봉이랑 뭔 상관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내가 미래에 천의무봉을 타파할 것을 기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언뜻 연결고리가 생각나지 않아서 의문이 들었지만 여동빈이 괜히 내게 이걸 제시한 건 아닐 것이리라.
나는 아수라를 불러서 이 문제를 물었지만 그 또한 말을 흐렸다.
“여동빈이 그 말을 했다면 대충 짐작가는 건 있지만 이건 네 과제다. 네가 스스로 고민해야 진전이 있다.”
“쳇.”
“지랄말고 대련이나 하자. 요즘 몸이 굳어서 심심하다.”
“…….”
카앙! 카앙!!
나는 본의 아니게 투지가 오른 아수라와 대련을 또다시 두 시진 내내 해줘야만 했다. 아수라가 떠나가자 나는 풀썩 주저앉았다.
“후우, 진빠지는군.”
나는 오늘의 수련이 끝나자 혼자 드러누워서 한참을 끙끙대며 고민했지만 한참 후에야 대충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수련을 열심히 하다보면 천의무봉의 파해법도 깨달을 수 있다는 소리겠지 뭐.”
아무것도 모르면 아는 체 해서는 안 된다.
그냥 솔직하게 지금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걸 타파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오랜 기간 재능없이 수련해오면서 깨달은 진리였다.
‘이제 슬슬 해 볼까.’
나는 수련을 마치고 미호와 서문혜, 사공린을 불러서 그들에게 기억을 전송해 주었다. 이들은 본격적인 뇌신류라기엔 애매한 자들이었고 기억을 주는 편이 훨씬 더 성장이 빨라보였기에 망량이 권장했던 것이다.
우우웅!
“……!!”
“이럴 수가?!”
“아….”
그들은 기억을 받자 경악한 듯 했다. 특히 사공린의 반응이 상당히 격했는데, 그녀는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허둥지둥대는 기색이었다.
“내, 내가 황제 공손헌원의 화신…?”
나는 사공린의 손을 덥썩 잡으며 진정시켰다.
“아니오. 그저 수천 년의 시간동안 공손가가 사공가로 변하면서 진실의 전승이 끊겼고, 그 고대의 혈맥을 이용해서 황제가 강제로 각성시킨 것뿐이오. 당신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소.”
“아아…!!”
사공린은 백짓장처럼 새하얀 얼굴로 몸을 떨다가 한참 후에나 자신을 추스리며 말했다.
“그럼 황제가 봉인된 동안에는 제가 천마로 각성할 일은 없는 거군요.”
“그렇소. 그러니 안심하시오.”
“…참 묘한 기분이에요. 마치 당신 본인이 되어서 그 기나긴 여정을 직접 체험해온 듯한 기분.”
사공린이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말했다.
“천마의 힘이 없는 저는 그저 무공재능이 좀 있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해요. 백웅 님을 도와드리기 힘들까봐 두렵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천마의 힘에 의지할 생각도 없었소. 당신은 당신일 뿐이고, 이 소을촌에서 함께 인간의 힘을 키워나갔으면 하오.”
“알았어요. 최선을 다해서 전생의 실수를 만회하겠어요.”
나는 사공린의 손을 꾹 잡으며 그녀와의 회자정리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자, 뜻밖에도 미호가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백웅….”
“미, 미호. 왜 그래?”
미호가 약간 목을 메며 눈물을 훔치는 듯 했다.
“이 미련한 녀석아. 네 녀석은 뭘 믿고 이리 미련하단 말이냐? 내가 뭐라고 수십 번의 삶동안 나만을 바라보겠다고….”
“…….”
“하아…. 절세미남이 됐다고 깔깔대며 좋아하던 내가 약간 부끄러워졌구나. 본녀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일이 평생 없었는데 너도 참 대단한 녀석이다.”
“하하. 칭찬해주는 거야?”
“흥. 평생 한 적 없던 각오를 다지려 한다.”
미호가 묘한 눈으로 양옆의 둘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허투루 해서는 너를 다른 녀석들한테 뺏길 수도 있잖느냐. 얕볼 녀석들도 아니고.”
그러자 사공린과 서문혜가 크게 당황해하며 손사래를 쳤다.
“미호 님, 무,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아, 아니에요. 그런 생각 없어요.”
미호가 심술궂게 씩 웃는 듯 했다.
“그럼 너희 얼굴에 홍조는 왜 드러나있느냐?”
“…….”
“그냥 이번 생은 서로 솔직하게 가자꾸나.”
뭔가 분위기가 무척 어색해졌을 때 서문혜가 급히 말을 꺼냈다.
“백웅 님! 저… 저를 늘 해적섬에서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그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하는 것뿐이오. 몰랐으면 몰라도 안할 순 없잖소.”
“그래도 늘 전생할 때마다 시간낭비를 감수하고 도와주시니….”
“당신도 검마도 나의 소중한 동료요. 미안해할 거 없소.”
서문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지금 기억을 받으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낸 것 같아요. 말씀드려도 될까요?”
“응? 어떤 거요.”
이어진 서문혜의 말은 약간 뜻밖이었다.
“백웅 님. 저번 29번째 삶과 이번 30번째 삶에 제가 해적섬에서 이성이 깨어날 때 봤던 환영에는 차이가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응…?”
“백웅 님께서는 급한 일이 산적해있어서 깊이 생각지 못하고 지나가셨던 것 같지만 저는 제 기억을 위주로 보게 되었으니 바로 알게 되었어요.”
“…….”
이건 무슨 소리지?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라서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빠르게 되살려보기로 했다.
[아냐…. 몰라…. 내… 내 안의 또다른 뭔가가… 다, 당신을… 죽이라고 하고 있어…!! 당신만은… 살려둘 수… 없다고…. 계속 말하고 있어….]
[거대한 은빛의 거인이 꿈에 나타났어요…. 그리고 자기한테 오라고….]
기억을 되새겨보니 서문혜를 구했을 때 반응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나는 뭔가를 느끼고는 말했다.
“29번째 삶에서는 당신 내부의 뭔가가 날 죽이라고 폭주시켰고, 이번 삶에서는 은빛의 거인이 꿈에서 찾아오라고 권유를 했군. 그리고 저번 삶에서는 금천제령대법에 요란하게 반응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없고 그냥 잠만 들어있었소.”
“맞아요.”
“두 삶의 환영이 서로 다른 존재란 말이오?”
그러자 서문혜가 말했다.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29번째 삶의 서문혜가 뭘 봤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단지 제가 봤던 존재를 말하자면, 그 은빛의 거인은 아마 삼황(三皇) 신농(神農)일거예요.”
“……!!”
신농!
삼황의 일좌이자 지금은 봉인된 거신족의 제왕이자 신!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확실하오?”
“네. 원래 그런 존재를 본적이 없었기에 뭔지 몰랐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백웅님의 기억 속에서 봤던 신농의 모습과 같았어요. 심지어 그 은빛거인이 봉인되어있는 주변장소의 풍경까지도….”
“풍경이라면….”
“그림자의 세계. 어둠 속에 회색 달이 떠 있었고 달을 등지고 백은의 거인이 제게 말을 걸었어요.”
“그렇다면 확실하군. 거긴 여와가 자신의 힘을 써서 신농을 봉인한 곳이오.”
뜻밖의 사실이었다. 이번 생에 서문혜가 깨어날 때 신농이 봉인지에서 직접 의사를 전해와서 서문혜에게 말을 걸었다는 말인가? 나는 이 사실이 중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는 말했다.
“삼황 신농의 봉인이 지금 약해져있다는 거겠군.”
“그래요. 하지만 백웅 님은 이번 생을 시작하고 나서 딱히 신농의 봉인을 풀려고 노력한 게 없지 않나요? 그런데도 제게 직접 의사를 전달할 정도로 신농의 상태가 호전됐다는 건…. 28번째 생에 황제 공손헌원을 봉인했던 게 백웅님의 전생이 시작하자마자 인과율로 인해 신농의 봉인에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아!”
“앞으로도 백웅 님의 전생이 시작하자마자 신농의 봉인은 약화되어있는 상태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어요.”
“그렇군!”
내가 탄성을 지르자 서문혜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29번째 삶과 달리 이번 생에 저는 딱히 거신족의 힘을 각성하지 않았어요. 내면에 알 수 없는 무한의 힘이 있다는 건 느껴지지만 그걸 깨울 방법을 모르는 상태예요. 자물쇠가 있지만 거기에 맞는 열쇠가 지금 제 손에 없는 느낌이죠.”
“흠. 그건 확실히 좀 이상하군. 왜 29번째에는 각성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되지 않은 거지?”
“제 생각은 이래요.”
서문혜가 눈을 빛냈다.
“아마 29번째 삶과 30번째 삶에 제 무의식에서 말을 건 존재는 둘 다 동일인물, 즉 삼황 신농이에요. 다만 저를 만났을 때 백웅 님의 상태가 변수가 된 거겠죠.”
“……?!”
이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내가 잘 이해를 못해서 어리둥절해하자 옆에서 미호가 끼어들었다.
“즉 이런 거군. 백웅의 마력이 충만한 상태에서 서문혜 너에게 접촉하게 되면 강대한 마(魔)가 접촉한 것이라 인식해서 신농이 자신의 먼 후예에게 적대하라고 경고해줬던 것이냐? 그래서 29번째 삶에서는 거신족의 후예를 지켜주기 위해 신농이 일부러 서문혜 너를 각성시켜줘서 대항할 힘을 준 거겠구나.”
서문혜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마 그래서 29번째 삶에 백웅 님과 일전을 벌였던 걸거예요.”
“반대로 30번째 삶이 시작했을 때는 마력이 상당부분 해갈되어있었고 29번째처럼 충만하지도 않았으니 일단은 각성을 보류해둔 거겠지. 신농으로서도 봉인이 해제되지 않은 지금 섣불리 인간세상의 일에 끼어드는 건 부담스러울 테니까.”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제서야 상황이 어찌된 건지 그럴듯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외쳤다.
“삼황 신농은 이미 어느 정도 세상에 개입할 수 있는 상태로군! 원거리에서 서문혜 당신을 각성시킬 수 있을 정도라면….”
“바로 그거예요. 그럼 백웅 님, 이번 생에 제가 거신의 힘을 각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될까요?”
“그거야 당연히….”
나는 서문혜가 유도한 대답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약간 흥분해서 외쳤다.
“당신을 신농 앞으로 데려가는 거요. 그 말은… 신농은 이미 거신족을 움직여 이 세상의 인과율에 개입할 의지가 있다는 것일 테고!”
굉장한 일이다.
갇혀있는 신농과 대화했을 때 그는 어느 정도 이 세상에서 관심을 끊은 상태였고 자신의 힘을 되찾았을 때도 적극적으로 종말을 해결하기보다는 거신족과 함께 이 세계를 떠나버리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머나먼 후예인 서문혜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면서 각성까지 시켜준다는 건, 신농 그 자체가 이 세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신농의 태도가 바뀌었어! 이건… 아마 앞으로 큰 차이가 될 거야!’
내가 놀라고 있자 옆에서 듣고 있던 사공린이 말했다.
“정말 그게 좋은 일일까요?”
“무슨 뜻이오?”
그녀는 약간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뭔가 감이 좋지 않아요…. 신농의 태도가 바뀐 이유… 그걸 알지 못한다면 큰 참사가 일어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