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304화 (1,30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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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백련교주와의 만남 후 그는 백련교로 되돌아가겠다고 하며 말했다.

[백웅. 제갈사는 몰라도 제갈유룡과 제갈부를 영입하는 건 너무 늦어선 안 된다. 마도의 종사인 제갈사는 본인이 본인을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란 걸 너도 알겠지만 후자의 두 명은 달라. 어설프게 마도에 몸을 담은 그들을 너무 몰아붙이면 한계를 모르므로 선을 넘게 되어있다.]

“알고 있어.”

[다행히도 여태껏 네가 최대한 몸을 사렸던게 그들이 선을 넘지 않게끔 조율했던 역할을 했던 것 같군. 앞으로도 상황을 주시하면서 행동하라.]

경륜있는 조언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백련교주에게 말했다.

“앞으로 어쩔 생각이지?”

[나 또한 그대처럼 무공을 연마할 것이다. 그대에게 받은 흑요석의 기억을 이용하면 나는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어차피 망량의 계책대로 팔부신중을 없앨수만 있다면 당분간 큰 변란은 없을 터….]

백련교주가 슥 하고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옥좌의 파수병’에 대해 개인적으로 짚이는 게 있다.]

“뭐?! 어떤 게?!”

[무공을 연마해서 더 높은 경지에 올라야만 내 짐작이 사실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냥 지금 말해주면 안되냐?”

[적어도 이건 달마의 후계자로서 내가 알아봐야할 일이다. 그리고, 수신류의 서고를 다시 뒤져보는 것 또한 나밖에 할 수 없지... 그래도 미리 언질을 하자면.]

백련교주가 말했다.

[백련교의 ‘잃어버린 역사’ …그 때 호월이 무언가를 했다. 난 그걸 조사하겠다.]

“흠.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볼 때까지 죽지 마라.”

[후후…. 천하의 백련교주의 목숨을 걱정하는 건 오로지 그대밖에 없을 것이다.]

백련교주는 웃은 후 내게서 흑백련을 받아서 떠나갔다. 흑백련을 쓰면 소교주의 영기를 안정시켜서 [옛 지배자]의 강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후 망량과 진소청을 둘 다 불러서 이야기했다.

“진소청. 본의아니게 뇌신류를 속이고 있지만 양해해다오. 특히 이광에게는 이 일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입니까?”

“응?”

진소청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책사 망량께서 모든 이에게 흑요석을 주어 동료로 삼자 하셨습니다. 당연히 지금껏 뇌신류 사람들도 많든 적든 태사부와 인연이 닿았기에 영입한 것이고 전생의 인연이 있겠지요. 그 인연이 제 스승인 이광과는 없었습니까?”

“…….”

너무 일리있는 말에 나는 뭐라 대답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약간 허둥대자 옆에서 듣고 있던 망량이 말했다.

“그건 내가 대신 말하지. 당사자가 직접 얘기하면 말이 꼬일테니.”

우리의 시선이 망량에게로 향하자 그가 입을 열었다.

“진소청. 짐작은 했겠지만 백웅은 사실상 이광에게 원한이 있네. 그 원한은 이광이 자초한 것이며 줄곧 백웅 인생의 큰 응어리였지. 어떤 종류의 원한이었냐면 이광이 일문의 스승답지 않은 쪼잔한 짓을 했던 게 근본원인이었다 할 수 있네. 물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 이유도 컸지만….”

“그랬군요.”

“다만 백웅은 이번 생에 그 원한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가기로 했던 것일세. 본디는 이광의 직계제자인 자네가 줄곧 만류해왔기에 그걸 잊어버리려 했었으나 이번에 과도한 모험을 겪으며 백웅의 정신력에도 한계가 왔고 심마의 초입에 들었어. 그런 정신력의 고갈을 미리 짐작했기에 더 이상 자신의 숙원을 미루지 않고 솔직해지려 한 것이겠지.”

“…….”

“솔직히 말해서 지금 백웅과 이광 사이의 응어리가 다 풀렸는지는 제 3자인 나로서는 감히 재단할 수 없네. 허나 확실한건 백웅이 얼마 전 이광에게 제시했던 란나찰 10만번은 결코 과한 게 아니었단 사실이지.”

그러자 진소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을 정리하기 간단해졌군요. 태사부께서 약속 하나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약속을?”

내 반문에 진소청이 담담하게 대꾸하며 포권했다.

“이번 생 내에 이광 사부에게 흑요석을 주어 결자해지(結者解之)를 도모해 주십시오. 결코 이 일을 후생(後生)으로 넘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이것만 약속해주신다면 이 진소청은 그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고 태사부를 죽을 때까지 따르겠습니다.”

진소청의 말에 내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잠시 입을 뻐끔거리자 옆에 있던 망량이 부채로 자신의 하관을 가리며 큭큭 웃었다.

“과연 진소청이군. 딱히 기억을 받지 않았음에도 일의 요체를 아주 정확히 파악했어.”

“그, 그건….”

“받아들이시오. 진소청 말대로 당신과 이광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수박겉핥기론 정리되지 않아. 적어도 대등한 정보가 있어야 서로 할말 못할말 하면서 안되면 뇌신류답게 한판 싸우면서 끝장을 낼 수 있겠지.”

“으음….”

나는 고뇌했다. 사실 이번 생에 이광을 받아들이며 가장 염려하며 고민했던 선택의 순간이 눈 앞에 다가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딱히 그러고 싶지 않아….’

왜 결자해지를 해야한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성이 차지 않는다. 란나찰 10만번에서 끝내지 않고 이광을 이리굴리고 저리굴리면서 복수심을 채우고 싶다. 내가 수 년간 당했던 모욕과 구타를 합산하면 그 정도는 절대 아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몇 년간 이광을 굴려줘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내가 망설이자 망량이 핀잔을 줬다.

“이거 보시오. 이러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에게 소인배기질이 있다 하는 게 아니오? 물론 단순히 은원의 합산을 따지자면 당신이 훨씬 억울한게 사실이지. 허나 세상의 인간관계라는 걸 다 받은만큼 풀어줘야만 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칼에서 피가 마르는 날이 없었을 것이오. 전생자인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소? 당신은 이미 원수에 가까웠던 백련교주와 제갈유룡도 필요에 따라 세계구원의 진심을 인정하지 않았소?”

“…….”

통 하고 망량이 접힌 부채로 내 머리를 가볍게 두들겼다.

“좀 더 여유를 가지시오. 30번이나 전생하며 온갖 경험을 해온 당신은 이미 이광이 범접할 수 없는 차원의 존재이며, 전생자이고, 세상을 구할지도 모르는 구원자요. 전생의 기억도 없는 이광과 옛날 일로 기싸움하는 것 자체가 당신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걸 정녕 모르겠소?”

나는 망량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좋아. 진소청, 약속하겠다.”

“감사합니다.”

진소청이 흑요석을 ‘언제’ 줄 것인지 확답을 듣지 않으려 한 게 이상했지만, 나는 그 또한 진소청의 지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게 그 확답을 요구해서 괜히 신경을 거스르지 않았으며 어차피 내가 진소청과 망량의 눈치때문에 이광에게 과한 행동을 하지 못하리라는 걸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처럼 이광을 막 대하지는 못할거라고 생각해서 조금 씁쓸해졌지만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유능한 동료들이 생긴 셈이었기에 마음이 약간 편해졌다.

“그럼 이광을 비롯해 뇌신류 사람들에게는 당분간 흑요석을 금지하는걸로 결론을 내리지. 구궁파천뢰의 성취가 어느정도 높아지면 그 때 고려하는 걸로.”

망량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구궁파천뢰? 흑요석을 금하는 것과 상관이 있소?”

“아주 큰 상관이 있소. 사실 진소청 뿐만 아니라 모든 뇌신류 무인들이 구궁파천뢰를 익힐 가능성이 있는 한 흑요석은 당분간 금지시킬수밖에 없소.”

“왜 그렇소?”

“흑요석을 받는다는 건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심마의 근원을 그들에게도 전이시키는 셈이 되어버리거든. 물론 당신과 달리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면 대충 극복하겠지만 어차피 성장한계를 막는다는 점은 같고….”

망량이 말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이제부터는 술법사가 필요하니 소을촌에서 술법사를 양성했으면 좋겠소.”

뜻밖의 말에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응? 술법사? 왜 뜬금없이….”

망량이 고개를 저었다.

“뜬금없지 않소. 여태껏 전생하면서 당신은 술법계열은 죄다 내 사제에게 의존했잖소? 하지만 내 사제는 사실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으니 당신 일에 끌려다니다가는 수련시간이 없어서 손해를 보게 되오. 또한 사제는 굳이 당신 흑요석 없어도 혼자서 잘 크는 천재이기도 하오. 사제가 없어도 잡스러운 일 정도는 소을촌에서 알아서 해낼 수 있는 술법역량이 있어야 앞으로 길게 갈 수 있소.”

“흐음! 하지만 적들이 마왕이나 [옛 지배자]면 그런 건 별로 쓸모없….”

“…지 않소. 왜냐하면 끝까지 적의 수준을 거기까지 높이지 않는 게 전제거든. 그리고 저변이 충실해야만 강력한 동료들이 좀 더 쉽게 강적에게 집중할 수 있소.”

“으음.”

“당신이 여태껏 너무 높은 수준의 적수만 만나와서 감이 안잡히는 모양이지만 일단 내 말대로 해 주시오. 인간을 초월한 힘에만 집착하다가는 단체의 힘을 간과할 수가 있소.”

“알았소. 술법사를 양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오?”

“우선 모산파부터 복종시키고, 그 다음 모산파의 도인들을 불러와서 소을촌민들 중 재능있는 자들에게 술법을 가르치는 거요. 우선 이렇게 기초를 만들어놓고 이후에는 천계의 지선(地仙)이나 대라신선을 불러와서 본격적으로 상급술사로 양성하는거지.”

“…….”

“이렇게 하면 일도 안하고 놀고먹는 소을촌민들을 재활용하면서 동시에 몇 년 후엔 강력한 전력으로 성장시킬 수 있소.”

나는 망량의 제안에 당황해서 입을 벌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모, 모산파는 그렇다 치고 천계의 신선들은 어떻게 불러온단 거요?”

“그거야 아까 말한대로 복희에게 공양을 성공시켜서 천계를 당신이 움직일 수 있게 되니까 하는 말이오. 아무리 그래도 천계의 신선을 직접 움직이면 대가가 크니까 그들을 스승으로 초빙해서 인간들을 성장시키는게 인과율으로 손해가 덜하겠지.”

“아니 복희를 회복시킨다는 보장도 없는데….”

“딱히 안될것도 없소만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시오. 지금 당신 능력으로 그깟거 못 이루겠소? 내가 볼 땐 충분하고도 남는 일이니 당연히 될 거라 믿읍시다.”

“…….”

나는 멍하니 있다가 망량에게 말했다.

“뭔가… 뭔가 달라졌구려. 예전에 기억을 받은 망량은 이렇지는….”

그러자 망량이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하나같이 뭔가 한숨만 쉬고 축 처져있고 얼굴이 썩어있었지? 그랬던 전생의 망량들과 내가 좀 다르다는 소리겠구려.”

“…아니 뭐 그렇게까진….”

“내가 딱히 더 특별해서 그런건 아니고, 주변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라오. 가장 큰 장애물이 전부 봉인된 상태에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면 제갈세가의 책사로 자격미달이니까 당연히 억지로라도 자신감을 짜내야지.”

“응?”

“후훗. 그냥 머리가 좋은 만큼 상황파악도 빠르다고 알아주시오.”

망량이 쫙 하고 손을 펼쳤다.

“자, 수련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가서 모산파에서 뛰어난 술법사를 잔뜩 데려와 주시오!”

“알았소.”

타닷

나는 망량의 말대로 모산파로 가서 모산파 장문인인 도산법사를 만났다. 그리고 도산법사에게 찾아온 용건을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본파의 장로들을 파견하겠습니다.”

“고마워.”

도산법사는 총 다섯 명의 장로들과 그 장로들 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는 일대제자들을 선발하여 내 앞에 데려왔다. 나는 그들을 목갑에 넣은 후 소을촌으로 데려왔고, 그들이 도착하자 망량은 소을촌민 중에서 술법재능이 꽤 뛰어난 백여 명을 추려서 그들에게 제자로 배정했다.

그런데 모산파의 장로들 중 하나가 크게 반발하는 듯 했다.

“아무리 장문의 명령이라지만 이런 외지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술법의 가르침을 베풀라는 건 좀 아닌 것 같소!”

그러자 망량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가르침을 베풀어준다면 나 또한 당신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어주지. 그걸로 대등한 교섭이 아니겠소?”

“뭐라고? 너따위 백면서생이 모산파의 장로를 뭐라고 생각하느냐!”

모산파의 장로가 화난 듯 불진을 휘두르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밧줄덩어리가 허공에서 만들어져서 망량을 덮쳤다. 망량은 그 자리에서 서서 당하는 듯 했지만, 잠시 후 모산파의 장로가 도리어 자신이 만들어낸 밧줄에 꽁꽁 묶여있는 게 보였다. 모산파의 장로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허억 이건….”

“술법되치기. 간단하지 않소?”

“말도 안 돼…. 내 술수를 주문도 불진도 없이 이렇게 간단히!”

망량은 쪼그려앉아서 부채로 그의 이마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지선(地仙)에조차 못 미치는 양반, 잘 들으시게. 마음같아서는 내가 직접 마을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지만 내가 익힌 술수가 워낙 독특한 거라서 일반인은 배울 수가 없지. 기초만 다져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힘드오?”

“…….”

“일을 잘 한다면 당신들의 술법실력이 진보할 수 있게 내가 약간 가르쳐주지. 잘 생각해보시오.”

“하… 하겠소….”

그리고 모산파 장로들과 일대제자들은 군말없이 허둥지둥 마을사람들을 가르치러 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있다가 신기해서 말했다.

“아니 삼황내문과 기연을 받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실력이 그렇게 빨리 는 것이오?”

“당신의 기억 덕분이오. 난 흑요석을 받은 순간 실력이 몇 배나 급증했소.”

“응?”

“당신의 기억속에는 이미 시해지술의 극에 가깝게 연마한 500년 후의 망량이 어떤 식으로 시해지술을 운용하는지가 들어있었지. 그것만 보더라도 내 실력은 서너배나 급증할 수밖에 없소. 왜냐하면 시해지술은 구천현녀의 힘을 소환하는 것이기에 그 용법만 제대로 알면 그게 바로 실력이 되니까.”

“……!!”

“아마 지금의 내 술법실력은 순수한 술법력을 제외한다면 지선과 천선 사이의 어딘가일거요. 몇 년만 더 수련하면 팔선과 겨룰 수도 있겠지.”

그 정도란 말인가?!

망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동료들 중에서 내가 기억에 의한 상승률이 제일 높은 동료일지도.”

“그, 그건 다행이구려.”

“다만 그런만큼 내게는 풀어야할 숙제가 또 하나 생긴 셈이오.”

“어떤 숙제가 있단 말이오?”

망량은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시해지술에 있어서 사제에 못지않을 정도의 천재적인 적성을 보이는 이유. 그건 아직 당신의 전생 중에 단 한 번도 해명된 적이 없소. 또한 500년 후의 망량조차도 그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소.”

“……!!”

“그건 아마… 당신, 전생자의 숙업이 다음 단계로 진행되어야만 풀리는 수수께끼일거라 생각하오.”

그렇게 말한 망량이 내게 부채를 겨누었다.

“알겠소? 이번 생에 당신은 놀면서 즐겨야 하오. 여유를 가지면서 충분히 저변을 늘리며 성장할 시간을 벌어야 하오. 그렇게 차분하게 하늘에 도달하면 그때서야 해명이 되는 수수께끼가 분명히 있을 것이오.”

“알았소.”

나는 그 순간 망량이 줄곧 보여왔던 원인모를 자신감과 패기가 이해가 되었다.

망량도 속으로는 두려움과 괴로움이 있겠지만, 동시에 이번 생이 더할 나위없는 기회라는 것도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의 절망감에 먹혀서는 안되므로 패기로 밀고나가는 것이리라.

‘…제길. 난 뭐하는 거냐.’

망량이 저렇게 노력하는데 아직도 과거의 내상이 도져서 심마를 끌어안고 있다고?

‘하지만… 분함만으로는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좋든 싫든 이번 생에서 뭔가 나 자신을 근본부터 바꿀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걸 위해서라면 소을촌도 버릴 수 없고 내 주변을 둘러싼 사소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가꿔나가야 했다. 단지 개개인의 능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광뿐만이 아니라 독고성에게도 구궁파천뢰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남는 시간에는 다른 이들을 가르치거나 여동빈에게 월공투계를 이용해서 내 무공의 미진함을 다듬어나가는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망량의 제안으로 검마와 무영검제에게는 흑요석을 주게 되었다. 어째서인지 물어보자 망량은 간단히 대답했다.

“그들은 구궁파천뢰보다는 그들 자신의 무공으로 극에 이를 가능성이 크고 흑요석의 도움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무인들이오. 또한 검마는 그런 심마를 겪지 않을테니 줘도 좋소.”

우웅!!

내게 그 둘을 따로 불러서 기억을 주자, 검마와 무영검제는 한참동안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무영검제가 멍하니 서 있을 때 검마는 더 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이럴수가. 믿기지 않는 현실이로군.”

“빨리 흑요석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번 생은 제가 너무 지쳐있었….”

“당연히 이해하고 말고. 도리어 지금이라도 날 믿고 기억을 줘서 고맙군.”

검마는 약간 감격한 듯 말했다.

“정말 이번 생만큼은 해볼 만 하겠군. 뭐가 됐든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는 최선을 다해서 실력을 쌓겠네.”

옆에 있던 무영검제도 고개를 끄덕였다.

“뇌신류에게 일절함구하고 기억 속에 있는 무공을 연마하도록 하겠소.”

“…….”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검마에게 말했다.

“망량도 그러던데 이번 생은 해볼 만 하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응? 정말 몰라서 그러나?”

“잘 모르겠어서….”

“망량이 자네에게 압박을 주기 싫어서 자세히 얘기하지 않은 거겠지만 굳이 묻는다면 말해주지.”

이어진 검마의 말에 나는 약간 놀랐다.

“인과율을 읽는 괴물인 황제 공손헌원이 봉인되었고, 더욱이 자네와 조약을 맺어 흉신 또한 봉인되었지. 황제가 있었으면 인과율을 읽으며 미래를 예지하는 셈이니 여태껏 책사들이 아무리 자네를 위해 계책을 짜내봐야 황제에게 이용당할 뿐이었잖은가? 기억 속에 나왔듯이 아무리 지능이 높아도 인과율 자체를 읽는 자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못해. 그리고 흉신은 늘 해신이나 나인교를 움직여서 자네에게 강력한 힘으로 엿을 먹이기 일쑤였잖은가?”

“……!!”

“그러나 그 자들이 모조리 봉인되었으니 책사인 그는 활개를 펼 수 있는 것이고, 동시에 강력한 외적인 흉신조차 침묵하게 되었으니 그 어느때보다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있네. 그것도 흉신은 다음 회차부터는 부활하게 될 터이니….”

“그래서 이번 회차가 중요한 거군요.”

“바로 그것일세.”

검마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소을촌을 만든 것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 되었지. 황궁을 접수하여 대웅제국을 만들면 세력은 빠르게 늘리겠지만 적들의 수준도 급격히 높아져서 순식간에 삼황오제나 사도가 출현하겠지. 허나 황궁을 내버려두고 산골마을 촌장을 택함으로써 적의 수준을 최대한 억누르면서 아군이 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만든 것이야. 이는 모르고 했다고는 해도 신의 한수에 가깝군.”

“…….”

“그래도 압박은 받지 말게. 사실 남은 여정도 어렵다기보다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쉬운 작전을 진행하는 것에 가까워. 지금 중요한 건 기발한 한 수로 대국을 역전하는 게 아니라 뻔한 수를 차분하게 실수없이 둬 나가는 역량일세.”

“그래서… 망량이 그런 말을 했군요.”

이제야 망량이 여유를 가지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뻔하디 뻔한 쉬운 판처럼 보이지만 이 판을 즐기면서 여유를 가지지 않으면 언제든 천지가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마가 말을 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마을로 방주를 가져오는 게 좋겠네.”

“방주를요?”

“그래. 방주 내에 무인들을 훈련시키는 장소가 있더군. 그걸 활용하면 훨씬 빠르게 실력이 높아질 걸세.”

“그 생각은 저도 해 봤지만 방주의 내부를 뚫기에는 만상지투를 써도 목숨을 걸어야 해서….”

“자네가 굳이 목숨을 다 걸 필요가 있겠는가? 그 자를 데려가 보게.”

타다닷

나는 검마의 계책에 따라 마을 내에서 한 명을 목갑에 집어넣은 후 빠르게 숭산의 비밀장소에 있는 방주로 갔다. 그리고 방주 내부에 들어가자 막혀있는 비밀장소 앞에서 그를 꺼내었다.

“흐음! 입구는 지문인식이라. 제법이군.”

그는 비밀입구를 여기저기 더듬으며 살피다가 말했다.

“…우리의 비전 연금술에서 신비주의를 완전히 빼고 수리학과 과학만을 극도로 발달시킨 듯한 유적이군. 전자(電子)를 이용한 기술인가? 헌데 상당히 미래의 기술인 것 같아. 이런 걸 도대체 누가 만들었단 말이오?”

“십이율주란 자가 갖고 있는 유적이었소.”

“…….”

“내가 절대지경의 기술을 써서 강제로 통과할 수도 있지만 나도 목숨을 걸어야 하오. 그러기 싫어서 당신을 데려왔는데 가능하겠소?”

스윽

잠시 후 생 제르맹이 자신의 얼굴을 들더니 입을 열었다.

“도구와 지원만 충분하다면 보름 내로 뚫을 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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