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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최강의 패?
나는 그 말에 어리둥절해서 망량을 쳐다보았는데 그는 부채를 탁하고 접으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심중을 다 털어놓기에는 장소가 좋지 않군. 우선 앞으로의 거취부터 논의하고 자리를 파하는 게 어떻겠소?”
[동감이다.]
백련교주가 그렇게 말하고는 두 명의 호법사자를 스윽 쳐다보았다.
[호법사자들은 본교로 즉시 복귀하라.]
[존명!]
“…….”
[한백령. 불만이 있어 보이는군.]
그 말대로 수신류 호법사자 독고준은 즉시 무릎을 꿇으며 명령에 따르려 했으나 화신류 호법사자 한백령은 쌍검을 든 채 이를 앙다물고 백련교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후 말했다.
“교주. 적어도 나는 앞으로 백련교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듣고 가야겠소.”
[이봐!]
독고준이 살기를 내뿜으며 일어섰지만 한백령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영문도 모를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음은 당연하겠지. 하지만 교주가 저 소을촌장의 술법이나 저주에 당했는지 의심스럽구려.”
[그럴듯한 의심이군. 허나 그런 하잘것없는 의심에 일일이 대답할 생각은 없다.]
백련교주가 천천히 말했다.
[오늘부터 백련교와 소을촌은 운명공동체이며 혈맹이다. 지금은 그것만 확실히 해 두지. 더 이상의 질문은 본교에서 하게.]
“…….”
[이만 가시게.]
“존명.”
파앗
독고준과 한백령이 동시에 신형을 옮겨 장내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망량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피곤하게 되었군. 전생자라는 정보를 저들에게 다 알려줘버렸으니, 저들 본인은 당장은 알아채지 못해도 조만간 당신들의 대화가 어떤 뜻인지 알게 될 것이오.”
[상관없다. 어차피 그들도 원래 백웅의 전생동료였으니까.]
“그런가. 전생의 인연인가….”
망량은 잠시 읊조리다가 나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백웅. 기왕 이렇게 된거 그냥 흑요석을 동료들에게 다 주시오.”
“……!!”
“하던대로 가자 그 말이오.”
난데없는 제안에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나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그건….”
“어차피 아수라에 제천대성에 여동빈에 나와 백련교주까지 끌어들였으면 당신의 소박한 삶은 물건너갔소. 그렇다면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냥 편한대로 힘을 휘두르는 게 백 배는 일이 수월하오. 괜히 힘 아끼려다가 더 골치아파지겠지.”
“…….”
“그리고 주지 않는다면 더 큰 후환이 뒤따를 거요. 난 장담할 수 있소.”
“후환?”
“시간이 없단 거요.”
망량이 다소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
“여태껏 좋게좋게 말해왔지만 사실 지금 당신 상황 그리 좋지 않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아직 해결된 게 단 하나도 없다는 게 현실이오.”
“윽.”
망량이 손가락을 들어서 천천히 하나씩 꼽기 시작했다.
“첫째. 세계를 휩쓸 대홍수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모으지 못했고 대비도 안 되었소. 둘째. 진짜 찾아봐야 할 백련교주 호월은 아직 찾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소. 셋째. 미봉책을 연발하면서 아슬아슬하게 평화를 지키고 있지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일 뿐인데, 정작 당신은 진정한 평화를 위한 복안이 하나도 없소. 맨날 이런 식으로 두더지 잡듯이 나쁜 놈이 출현하면 직접 주먹 걷어붙이고 한판 붙으러 갈 거요? 고작 이런 무식한 행위가 책략의 전부라면 설령 팔부신중을 싸그리 다 소멸시켜도 세상에 평화는 오지 않소.”
“…….”
“중요한 건 나쁜놈을 그때그때 때려잡는게 아니오. 군마(群魔)가 감히 대가리를 내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절대적인 힘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 지금 우리는 이렇게 방향을 잡아야 하오.”
나는 그 말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그건 28번째 삶에서처럼 또다시 대웅제국 황제가 되란 말이오? 하지만 그랬다가는 또 별의별 놈들이 시비를 걸어올 테고 혼란스러울 뿐일 텐데….”
“그럴 필요도 없소. 당신은 이미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았으니까.”
“무슨 소리요?”
“이 소을촌 자체가 훌륭한 대기(大器)란 말이지.”
망량은 훗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는 확실히 합시다. 당신이 평화를 지키려는 건 단순히 의협심 때문이 아니라 효율 또한 추구하는 걸로.”
“둘 다 추구할 수 있다는 거요?”
“큰 관점에서 보면 이미 둘 다 추구하고 있었소. 그건 바로 무인의 육성(育成)이오.”
스윽
망량이 허공으로 부채를 겨누며 말했다.
“여태껏 당신의 행적을 보면 온갖 신화적 단서를 찾아다니는 중에 개인적 수양도 쌓아야 했고 동료들이 성장할 시간 또한 마련해야만 했지. 그러나 개죽음도 자주 당하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10년 이상 생존한 경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천재와 영웅을 동료로 모았어도 그들은 제대로 대성할 기회가 없었소. 대웅제국 때 겨우 한 번 성공했지만 그나마도 당신이 부재했기 때문에 성장한 동료들을 제대로 써먹을 기회도 없었지.”
“음 그렇긴 하오만….”
“이번 생은 관점을 바꾸시오. 당신이 세계의 평화를 추구하려는 건 바로 동료들의 육성시간을 벌어주려는 것! 세상의 온갖 잡다한 재앙과 군마를 소멸시켜서 거대한 우산(雨傘)을 형성하고, 너른 평화 속에서 동료들이 안정적으로 클 수 있게끔 하는거지.”
“……!!”
“이게 바로 효율이오. 과거 당신이 약해빠졌을 때는 할 수 없었던 전략이지만 이젠 당신이 상당히 강해졌으니 반대로 동료들이 성장할 때까지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 거요.”
“그렇군…!!”
옆에서 듣고 있던 백련교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같다. 그래서 소을촌을 섣불리 해체시키기보다는 이대로 운용하면서 도리어 더욱 규모를 키워줘야 할 것이다.]
“잠깐. 더 규모를 키우면 일개 성이 될테고 성에서 더 커지면 역모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텐데….”
[백웅.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응?”
[제갈유룡과 제갈부를 계속 삽질하게 내버려둘 생각은 아닐 터. 팔부신중을 외우주로 날려버리고 나면 그를 끌어들여서 동료로 만들면 그만이지 않은가.]
“아….”
그 생각을 못했네!
내가 탄성을 터뜨리자 망량이 말했다.
“방향은 잡혔으니 이제 슬슬 최강의 패가 뭔지 말해볼까 하는데….”
[잠깐.]
“응?”
[누군가 엿듣고 있군.]
키잉!!
그 순간 백련교주가 심천무량을 시전하며 어디론가 강기를 쏘아내었다. 마치 범어와 같은 형상의 그 강기는 엄청난 속도를 지니고 있었고 강호의 내로라하는 최절정고수들도 일격에 감당치못하고 방어가 꿰뚫릴 정도의 위력으로 보였다.
투웅!
그리고 백련교주의 강기는 누군가의 창격(槍擊)에 튕겨나갔다. 정확히는 란(欄)이 운용되며 내회전으로 한 번 위력을 죽인 후 외전으로 흘려보낸 솜씨였다. 아주 절묘하게 백련교주의 기습을 흘려낸 그 자는 그래도 팔끝이 떨리는지 잠시 멈칫거리다가 뒤로 한 발짝을 물러섰다. 남은 경력(經力)을 흘려내려는 시도였다.
나는 삼십여장 밖, 아무것도 없던 곳에 홀연히 나타난 그 자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지, 진소청!!”
그랬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진소청!
자신의 창을 꼬누면서 자세를 잡고 있던 진소청이 갑자기 탓 하고 거리의 절반을 압축시켜서 우리에게 접근했다. 진소청의 돌격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으려는 듯 백련교주가 그에 맞서서 허공에 쇄도했고, 삽시간에 진소청과 백련교주가 격돌했다.
심천무량(心天無量)
쐐액
교주가 만들어낸 심천무량의 영역이 순식간에 진소청을 감쌌고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에 교주의 수룡장(水龍掌)이 정면으로 진소청을 타격하려 했다. 엄청나게 빠르고 정밀한 일격이라서 저 일 초는 도저히 초절정의 수준에서는 받아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
구궁파천뢰(九宮破天雷)
심어창(心御槍)
육극어뢰(六極御雷)
파지지직!!
진소청의 전신에서 번개가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창이 여섯 개로 분열했다. 분열된 여섯개의 창 하나하나가 마치 뇌창(雷槍)과 같은 뇌정을 뿜어내고 있었고, 이윽고 은은하게 떨리는 뇌정 속에서 진소청이 한쪽 발을 태산처럼 굳힌 채 회전하기 시작했다.
퓨퓨퓽
회전과 동시에 여섯 갈래로 나눠졌던 창로(槍路)가 마치 환상처럼 허공에서 결합하며 아슬아슬하게 수룡장을 스쳐서 백련교주의 목젖을 찌르려 했다. 그 아슬아슬한 차이는 의도된 것으로써, 절묘한 반격으로 위력을 높이려는 시도로 보였다. 나는 그 일 초의 흐름이 너무나 정밀해서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아!”
저렇게 완벽한 초식이 있단 말인가?!
여섯 개의 분열된 창식 하나하나에 뜻이 담겨있었다!
위잉
그리고 백련교주는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진소청의 초식보다 그의 속도가 훨씬 빨랐으므로 자연스럽게 반격을 강기로 튕겨내며 도리어 연속된 중첩장력(重疊掌力)을 열여덟 번이나 뿜어내며 진소청의 퇴로를 막아버렸다. 나는 그 반격에 진소청이 맥을 못추고 간신히 뒤로 물러서는 걸 보자, 기술은 몰라도 진소청의 힘과 속도가 아직 많이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
타닷
진소청이 뒤로 물러서며 초식의 교환이 끝나자, 백련교주가 눈에서 신광을 내뿜었다.
[진소청… 내게 도전하는 것인가?]
“아직은 그대의 팔 한쪽도 가져갈 자신이 없소. 갑자기 덤벼들어 죄송하오.”
담담하게 대꾸한 진소청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태사부. 엿들어서 죄송합니다.”
“진소청….”
나는 복잡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진소청이 다 들었구나.’
나는 그에게 말했다.
“왜 엿들었느냐?”
풀썩
진소청은 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문의 원수인 백련교주를 쳐서 없앨 기회가 생긴다면 태사부를 돕기 위해 몰래 따라왔습니다.”
“어떻게 모습을 숨겼느냐.”
“전수해주신 구궁파천뢰를 응용했습니다.”
“뭐?”
구궁파천뢰로 어떻게 몸을 숨긴다는 소리야?
“이런 식으로….”
치지지지직….
“……!!”
놀라운 일이었다. 꿇어앉은 진소청의 몸에서 일순간 뇌정이 번쩍이며 빛나는 것 같더니, 이윽고 그의 몸뚱아리 중 절반은 현실에 남아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새파란 뇌정으로 변해서 번개의 가루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지게 되자,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투명했으며 심지어 기척조차 기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번쩍!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번갯불이 번쩍이더니 진소청의 몸이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났다. 나는 저 은신술의 수준이 말도 안된다는 걸 깨달았으므로 나도 모르게 입을 쩍하고 벌리고 말았다.
“그, 그건….”
“희미하게 느껴지는 경계를 뇌정으로 간섭하면 잠시 이 세상의 공간에서 유리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잔재주를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미야모토 무사시!!’
그 놈 또한 공간을 베어서 진소청처럼 모습을 숨기는 수법을 쓰지 않았던가? 나는 어쩐지 진소청이 시전한 은신술이 무사시의 것과 원리가 같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만 무사시는 공간을 베었으나 진소청은 뇌정을 이용했다는 차이일 것이다.
‘나는 방금 전까지 대화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백련교주는 상대적으로 육감이 더 예민했으니 진소청의 존재를 눈치챘구나.’
구궁파천뢰로 저런 응용이 가능하다니!
진소청은 대체 그 짧은 기간에 뭘 혼자서 깨달은 거란 말인가?
나는 대충 상황을 알게되었지만 복잡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진소청이 절세천재인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 고작 이런걸로 질투까지 하진 않지만, 중요한 건 그가 우리의 대화를 다 듣고 말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진소청을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백련교주를 갑자기 공격한 이유는?”
“사문의 대적(大敵)이 눈앞에 있는데 창 한 번 날려보지 않는다면 독고운천에게 살해당한 뇌신류의 선조들이 슬퍼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힘이 없으면 모르되 적어도 그와 몇십 합은 겨룰 힘이 있는데도 하지 않을 순 없었습니다.”
“…….”
“설령 저 자가 태사부의 맹우가 되었다 하더라도.”
역시 이야기를 다 들은 게 맞군.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진소청…. 네가 옆에서 들은 얘기는 전부 사실이다. 내가 태사부라는 건 거짓말이고, 나는 사실은 이 삶을 30번째 반복하고 있는 인간이다.”
“…….”
“속여서 미안하다.”
진소청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들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감정이랄 것도 없이 표표한 대연(大然)이 스며있어서 한 줌의 동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진소청이 말했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씀이십니까? 태사부 덕에 아무런 복수의 가락조차 없던 삶에서 구궁파천뢰같은 절세신공까지 지도받게 되었으니 저 자신은 크나큰 은덕을 입었지 않습니까.”
“내가 이강룡의 제자라는 건 거짓말이라고 이미 말했다. 그런데도 이런 나를 계속 태사부라고 불러주는 거냐?”
“제가 태사부로 모신 건 단순히 항렬때문이 아니라 그만한 자격이 있는 무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넘고싶었던 존재이기에 존경하고 있습니다.”
“음….”
“하지만.”
진소청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저는 태사부의 입으로 듣고 싶습니다. 사문의 원수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서까지 추구해야할 대의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진소청의 입장에서는 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백련교주 독고운천은 과거 뇌신류 종사 이청운을 결투에서 살해하고 나머지 뇌신류도 추방하거나 추살했었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숙적이자 최악의 존재가 바로 백련교주일텐데 실질적인 뇌신류 최고수인 내가 그와 동료라는 게 납득가지 않으리라.
“그건 이 흑요석을 받는다면….”
나는 바로 흑요석을 주려고 했지만 그 순간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 마시오!”
“……?!”
“아직은 기억을 줄 때가 아니오. 그저 말로만 설득해주시오.”
“무, 무슨….”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잖소.”
갑자기 망량이 억지를 부리는 게 곤혹스럽게 느껴졌지만 나는 일단 망량의 뜻에 따르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소청에게 말했다.
“…흑요석의 술법으로 기억을 받는다면 바로 알 수 있겠지만, 나는 이미 수 차례 전생하면서 백련교주와 반목하고 겨루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진짜 적이 백련교주가 아니라 이 세계를 갖고노는 태초의 절대악, 신이라고 불리는 [옛 지배자]라는 걸 알게 되었지. 그들은 주문 한 번으로 대륙을, 아니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우주의 지배자들이다.”
“…….”
“내가 계속 전생하고 있는 건 언젠가 신조차 모두 멸해서 이 세상을 안식에 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자 진소청은 다소 멍하니 듣고 있다가 말했다.
“으음….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태사부. 아까도 진공가향이란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걸 설마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던 겁니까?”
“그래. 진심이다.”
“어찌 그런….”
“나도 때때로 우습구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하늘을 보았다.
“나는 내가 겪어온 것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들 나더러 허풍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 특히 이번 생에 많이 느꼈다.”
“음….”
“말했듯이 흑요석을 받는다면 네가 모든 걸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망량이 반대하고 있으니, 우선은 이렇게 납득해 다오.”
“그런 뜬구름잡는 말에 납득할 수 있다면 정상인이 아닌 광인(狂人)일 것입니다.”
“…….”
그렇겠지.
“허나 태사부의 말이 거짓이라고도 생각지 않으니 이 진소청, 앞으로도 태사부 백웅을 따르겠습니다!”
다시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춘 진소청을 보자 나는 역시 진소청은 진소청이라고 생각했다.
‘진소청은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직감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진소청이 택한 길은 무모해보여도 대부분 옳은 결과를 내게 마련이었다. 나는 그것 또한 진소청의 재능이라 생각하자 입맛이 씁쓸해지며 동시에 무척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후우. 진땀 빼는군. 그럼 이제 얘기를 계속해도 되겠소?”
“아니 잠깐…. 왜 진소청한테 흑요석을 주지 말라고 한 거요.”
“성장가능성을 막으니까. 기왕 이렇게 된거 그가 더 뛰어난 경지에 오를 때까지 줄 필요 없소. 흑요석의 단점도 기억 속에서 봤으니까 하는 말이오.”
“응?”
“지금은 중요한 얘기가 아니니…. 일단 최강의 패가 뭔지부터 말하겠소.”
언급을 꺼리던 망량은 부채를 촤락 펼치며 외쳤다.
“그건 바로 천계요! 우린 잘만 하면 이번 생에 천계를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소.”
“천계? 천계는 갑자기 왜….”
“갑자기가 아니지. 당신은 아직 깨닫지 못한 거요?”
“잘….”
“당신이 회수한 금오도의 알. 그걸 복희한테 공양해 버리면 더 이상 이번 생에 골치아픈 일은 대개 정리될 거요.”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머지않아 가면의 부작용을 딛고 부활한 삼황 복희가 당신에게 천계를 줄 테니까!”
“아!”
그렇구나!
복희가 힘을 되찾으면 황제 공손헌원이 봉인된 현재 상황에서는 압도적인 아군이 될 게 분명하다! 그리고 가면이 뜯겨서 지성을 봉인하며 힘을 대부분 잃은 복희에게 금오도의 알이라고 하는 강대한 힘의 근원을 준다면 어쩌면 힘을 회복할 수도 있다!
그러자 망량의 말을 들은 백련교주가 말했다.
[그럴듯한 작전이지만 현재의 복희는 광룡(狂龍)이라서 소환하는 순간 살해당한다. 그리고 직접 공양을 주려고 해도 복희의 남매인 여와가 눈에 불을 켜고 감시중이라서 제대로 건네줄 방법이 없지. 서왕모 또한 의심이 많아서 우리를 전혀 믿지 않으려 들 것이다. 이건 어찌 해결하려는가?]
“훗.”
망량이 씩하고 웃었다.
“백웅이 가진 수는 무궁무진하니 굳이 믿게 할 필요도 없을 거요.”
그렇게 말한 망량은 날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미혹을 헤매지 마시오. 당신에게 부족한 책략이든 힘이든 주변에서 채워줄 터이니, 당신은 무공에만 모든 노력을 집중하시오.”
“정말 그래도 되겠소?”
“당연히 그렇소.”
망량은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느껴지는구려…. 아마 이번 생이 내 최고의 전성기가 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