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300화 (1,297/1,615)

1300====================

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천계에서 내려오기 전 화룡신검을 제천대성에게 맡겼다. 전에도 했던 일이지만 화룡신검을 천계의 뒷문 근처에 놔두면 강렬한 영기 덕분에 회복이 빨랐기 때문이다. 제천대성은 내 부탁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아, 그리고 이번 생에 항우놈 끌어들이지 마라. 안 건드리면 자기동네에서 나오지 않을 놈이니까, 그냥 건들지 말라고.”

“왜입니까?”

“왜는 왜야. 안빈낙도의 삶이 멀어졌어도 항우는 지금의 네 힘으로 통제할 수 없어. 그리고 항우를 진심으로 끌어들이려 해도 놈의 숙원인 우희 문제를 해결하려면 숙적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잖아. 그놈의 숙적까지 끌어들이는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잖냐?”

“흠…. 그렇군요.”

항우의 숙적의 ‘정체’를 생각하니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항우의 힘은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부작용이 컸다.

“또 하나. 여의봉을 너한테 주마.”

나는 대뜸 손을 뻗어 여의봉을 건네주려는 제천대성에게 놀랐다.

“네?! 진신병기를 저한테….”

그러자 제천대성이 약간 짖궂게 웃었다.

“착각은 하지 마라. 완전히 주는 게 아니라 단말 대용이니까. 예전처럼 빌려주는 거야.”

“단말 대용이라니요?”

“여동빈처럼 너한테 단말을 박아서 소환될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른 대라신선처럼 육체를 완전히 버리고 고위정신체가 된 게 아니거든. 그래서 단말로 소환되면 도리어 지금보다 약할 수도 있단 말이지. 난 육체도 엄청 쎄니까 정신만 불려가면 반쪽이 되어버리지.”

“아.”

생각지도 못했던 점이다. 내가 탄성을 흘리자 제천대성이 말을 이었다.

“수보리한테 배운 주문 중 하나를 가르쳐 주마. 이 주문을 쓰면 여의봉을 매개로 나를 딱 한 번 그 자리에 소환할 수 있을 거다. 뭐 암천향 같은 데로 가 버리면 못 쓸 테지만.”

“헉. 그런 소환주문이 있었습니까? 왜 지금까지는….”

제천대성이 귀를 후비적거렸다.

“귀찮아서 안 가르쳐줬겠지. 내 일도 아닌데 불려다니는걸 좋아하는 놈이 누가 있다고 그래? 너같으면 가르쳐 주냐?”

“안 가르쳐주겠죠….”

“하지만 너한테 불려다닐 이유는 생겼으니까 정말 급한 일일때만 여의봉을 매개로 날 불러라. 알겠냐?”

“네.”

제천대성이 약간의 진심을 담은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서 내 얼굴 앞에 갖다대었다.

“급하지 않을 때 부르면 나한테 명치 한 방 맞을 각오 하고.”

“…….”

맞으면 죽을 것 같은데….

어찌되었든 나는 제천대성을 뒤로 하고 아수라와 함께 현실세계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바로 뛰어서 복귀하던 도중 아수라가 나를 멈춰세웠다.

“백웅. 잠깐만.”

“왜 그래?”

“되돌아가는 김에 이 근처에 있는 항산에 가 보자. 그곳에 천제단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반고의 상을 회수하는 게 낫겠지.”

“아! 그렇군.”

타다닷

나는 깜박 잊고 있던 걸 되살리며 항산의 천제단으로 가서 반고의 상을 회수했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영적인 힘이나 효과가 없지만, 인과율이 맺혀있기에 나중에 반고에게 공양의식을 할 때 사용될 수가 있었다. 아수라가 말했다.

“혹시나 이 곳에 제갈유룡이 천제단을 장악하려고 수하를 보냈는지 의심했는데 그렇진 않은 모양이군.”

“팔부신중까지 한패가 된 상황에서 굳이 천제단까지 차지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천제단을 얻으면 봉선의식(封禪儀式)을 행할 수 있겠지만 지금 봉선의식을 빌 황제 공손헌원과 창힐은 봉인되었거나 소멸당했어. 차지해봤자일 텐데….”

“너도 알겠지만 봉선의식으로 굳이 그 둘만 부를 수 있는 건 아니지. 삼황오제 중 아무라도 소환할 수 있고 외계의 [옛 지배자]도 소환할 수 있다.”

“음….”

“다만 이걸로 제갈유룡의 책략도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겠군. 놈은 팔부신중과 연금술의 신, 헤르메스의 힘을 믿고 갈 생각이며 천제단의 봉선의식에는 집착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말한 아수라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천제단의 감시가 소홀하다면, 반대로 우리 쪽에서 봉선의식을 이용할 수도 있지 않겠나?”

“…….”

흠…. 생각해본 적 없는 책략인데.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말했다.

“봉선의식은 결국 신에게 소원을 비는 거잖아? 하지만 나는 원한다면 삼황오제의 본전에 직접 찾아가서 직접 얘기를 할 수도 있어. 할 생각은 없지만.”

“아니, 그게 아니다. 좀 다른 얘긴데….”

아수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만일에 네가 천계에서 봉선의식의 권리를 획득해서 봉선의식을 시행한다면 두 가지의 사용법이 있을 것 같다.”

“두 가지라? 그게 뭔데?”

“하나는 네가 아닌 다른 동료에게 봉선의식의 혜택을 불어넣어줌으로써 불로불사로 만들고 강화시켜줄 수 있지. 이건 전생자인 네게 있어서는 큰 이득이다. 그 멍청한 주후총 황제조차도 상당히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었으니 강대한 동료가 봉선의식을 거친다면 최소한 수백 년치 이상의 강화효과가 있겠지.”

“흠, 그렇군. 또 하나는?”

“그건….”

이어진 아수라의 ‘천제단의 두 번째 사용법’에 나는 눈을 부릅뜨고 놀랐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게 가능할까? 아니, 가능하다 해도 난 지금 그럴 힘도 이유도….”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신’이라면 그 소원을 거부하지 않겠지.”

“아,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의미야? 뭐가 도움이 되는데?”

“굳이 찾아갈 필요도 없잖아? 귀찮음을 피할 수 있으니 충분히 좋은 전략이지.”

“…….”

나는 질린 눈으로 아수라를 바라보았다.

‘이 새끼… 미쳤어….’

이런 발상은 진심으로 죽고 싶어 환장하지 않는 한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봉선의식을 이런 용도로 쓰려는 놈이 인류역사상 존재하긴 했을까? 책사들이 이딴 계책을 내게 말해준 적이 없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나는 기가 막혀 하면서도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됐어. 이만 돌아가자.”

타닷

나는 아수라와 함께 마을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망량에게 귀환을 알리면서 말했다.

“오늘부터 특별경계태세로 들어가겠소.”

“역시…. 오는 거요? 그 자들이?”

“물론….”

“흐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는 있으나 솔직히 무섭구려.”

망량은 약간의 두려움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련교주와 호법사자들이 쳐들어오면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소.”

“걱정 마시오. 그들도 무고한 인명피해를 내려는 자들이 아니니 내가 그들과 담판을 지을 것이오.”

“믿고 있겠소.”

“그럼 나는 마을사람들을 가르치러 갈 것이니, 만일 백련교주가 찾아와서 날 찾는다면 그리로 인도해 주시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광과 진소청을 따로 불러서 수련장소로 데리고 갔다. 나는 며칠간 정양하여 기력을 회복한 이광에게 말했다.

“이광. 약속은 약속이니 네게 구궁파천뢰를 전수하도록 하겠다.”

이광은 약간 독기가 빠진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란나찰 10만 번을 하면서 완전히 생사를 넘나들었기에 그로서도 지칠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그런 이광이 묵묵부답이자 말을 이었다.

“그리 기력이 없어서 되겠느냐? 머지않아 백련교주가 날 찾아올 것인데.”

“……!!”

그 순간 번쩍 하고 이광의 눈에 번갯불이 돌아온 것 같았다. 그는 호랑이처럼 형형한 안광을 내뿜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사부!”

“말한 그대로다. 백련교주가 무영문에 찾아가서 배후를 캐어물었고 우리 소을촌의 존재와 내 존재를 알아챘다. 그 때문에 무영문주와 무영검제가 우리 마을의 주민으로 와있는 거고.”

“…….”

“백련교주는 머지않아 찾아와서 나와 자웅을 가리려 할 것이다. 이긴 자가 중원제일고수가 될 테니까.”

내 말에 이광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진소청까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뜬금없이 인생 최대의 숙적과 며칠 내에 맞닥뜨릴 상황에 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광은 금세 평정심을 되찾더니 말했다.

“사부. 부탁할 게 있소.”

“백련교주와 싸운다면 같이 싸우게 해달라는 것이냐?”

“그렇소.”

“네 실력으론 백련교주의 일초지적에 불과하다. 솔직히 방해만 될 뿐이다.”

“크윽….”

이광이 진심으로 분해하는 표정을 보자 나는 고소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기분만 마음속에 퍼져나갈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왜 씁쓸한 거지?’

당연히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나는 그런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구궁파천뢰를 죽을 각오로 익히고 팔황경천신공(八荒驚天神功)과 천랑뇌신결도 숙련시켜 일백(一白)이라도 시전할 수 있다면 참여시키지 못할 것도 없지. 충분히 전력이 될 테니까.”

“팔황경천신공이 무엇이오?”

“뇌신류 제 2대 종사 초무린의 독문절학이다. 고대에 실전되었던 걸 내가 수습하여 익혔고 구궁파천뢰의 근간으로 만들었지.”

“……!!”

“할 수 있겠나?”

이광은 잠시 멍해져 있다가 자신의 창을 거세게 붙잡으며 외쳤다.

“하겠소!! 난 하고 말겠소!!”

그리고는 더욱 처절하게 외치며 눈에 핏발을 세웠다.

“또한 언젠가는 사부를 뛰어넘을 것이오!”

“…….”

절세신공을 가르쳐주려는 사람의 면전에서 저런 소리를 하는데도 놀랍거나 기분 나쁘지가 않다. 왜냐하면 저게 바로 내가 아는 이광이었고, 도리어 나는 평소의 이광으로 되돌아온 것 같아서 흡족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래. 그래야 이광이지.’

나는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좋다. 어디 해 보자.”

나는 그 날부터 다른 제자를 가르치는 시간을 조금 줄이며 이광과 진소청을 가르치는데 시간을 많이 쏟았다. 그리고 이광은 구궁파천뢰의 초반을 배우는 데 내 생각보다 뛰어난 오성을 발휘하며 빠르게 진도를 빼기 시작했다.

키기기깅!!

“흐아아압!!”

겨우 닷새만에 팔황경천신공의 삼 성(三成)에 도달한 이광이 무환천랑백팔식을 완벽히 암기해서 펼치는 걸 보고 있자 나는 약간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뭐가 이렇게 빨라?’

물론 진소청 정도는 아니다. 진소청은 이것보다 두 배는 빠르게 배웠으니 진소청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광의 수련속도만 하더라도 범재(凡才)가 상상치 못할 정도였고 명실상부한 천재의 영역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복잡하기 짝이 없는 무환천랑백팔식을 그 짧은 시간에 완벽히 암기했다는 건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내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것이 뇌신류의 종사 이청운이 선택한 직계제자의 진짜 재능인가.’

나는 이광을 약간 얕보고 있었다. 기껏해야 그의 무공은 정윤보 수준이었으며 중원 최정상급 고수이긴 했지만 진정한 최강자들에 비하면 지독하게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가 어째서 이청운의 제자이자 중원의 모든 뇌신류를 통솔하는 종사의 자격을 얻는 위치에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이광이 이청운에게 제대로 사사한 기간은 기껏해야 십여 년 남짓으로, 그 이후 뇌신류에 뿔뿔이 와해되며 진정한 뇌신류의 진수를 배울 기회는 없었다. 이후 이광은 거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 의존해서 독학으로 실력을 상승시켰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구파일방의 장문인을 뛰어넘는 초고수의 한 명이자 황궁 사신위의 청룡이 된 것이리라.

만일에 이광이 이청운에게 십 년, 아니 오 년만 더 배웠다면 어땠을까?

“…….”

나는 옆에서 같이 수련하고 있던 진소청을 바라보았다. 진소청은 계속해서 명상하며 구궁파천뢰의 뇌구만을 회전시키고 있었으며 육체수련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기초수련은 그만하고 구궁파천뢰 연계시전을 연습하라고 독촉하는데도 통 말을 들어먹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상함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진소청. 계속 기초수련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론 뇌정의 기운이 많아야 구궁파천뢰의 성취가 늘어나는 건 맞다만 지금은 연계시전을 연습해야 더 빨리 실력이 는다.”

그러자 진소청은 아무런 표정변화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태사부. 저는 뇌정의 회전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그 변화를 좇으려면 계속 집중해야 할 것 같으니 이대로 수련하게 해 주십시오.”

“…….”

나는 뭐라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금세 힘이 빠지고 말았다. 지금 구궁파천뢰의 성취는 내가 진소청보다 몇 배나 낫다고 자신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건 진소청이었다. 감히 내가 어떻게 진소청이 찾아낸 [방향]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별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

“흠…. 알아서 해라.”

그리고 제자들의 수련을 다 시키고 남는 시간에는 새벽에 산에 나와서 나직이 말했다.

“오시오, 여동빈.”

파앗!

잠시 후 여동빈이 단말을 통해 내 앞에 소환되었다. 희뿌연 영체로 소환된 여동빈을 보자 나는 말했다.

“공양물을 바치는 대신에 내가 원할 때 실체화되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련을 할 때만 말입니다.”

[연습상대가 되어주길 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이 세상에 제 상대가 될 만한 고수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검술에 대해서도 더욱 배우고 싶습니다.”

[좋다.]

“공양물로 금괴와 요도 무라마사, 그리고 노예시장에서 얻었던 보물 몇 점을 바치겠습니다.”

[받아들이겠다.]

우웅

잠시 후 내가 목갑에서 꺼낸 공양물들이 전부 소멸되었다. 여동빈이 공양을 받아들인 것이었고, 이건 여동빈을 현실에 실체화시키는데 필요한 인과율을 지불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스스스

현실의 육체를 지니고 여동빈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런 여동빈의 손에는 요도 무라마사가 들려있었다. 아무래도 공양물로 받은 거라면 직접 장비하고 나타날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여동빈이 말했다.

“연자여. 선검술에 대해 묻고 싶은 게 많을 것이다. 허나 전에도 말했듯 나 또한 흑백의 선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며 모든 것은 그대의 의지대로 아오키가하라 수해에서 팔부신중을 전멸시킨 후에 진짜 선검을 부활시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어설픈 배움은 안하느니만 못하겠죠.”

“선검술은 지속적으로 원(圓)을 그리는 수밖에 없다. 그대는 계속해서 원의 의미를 되새기거라.”

“틈틈이 하겠습니다.”

여동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대가 백련교주와의 대결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련은 월공투계(越空透界)라 생각한다.”

나는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월공투계? 그걸 어떻게 수련한단 말입니까?”

“…….”

“월공투계를 저도 배울 수 있습니까?”

“그건 아니다.”

스슥

여동빈은 나와 정확히 일 장의 거리를 두고 섰다. 그리고는 검을 아래로 내린 채 말했다.

“연자여. 성취가 낮은 무공절학을 써서 공격해 보라.”

“그럼.”

나는 그 말에 즉시 한 손에 공력을 집중시키며 강대한 장법을 뻗어내었다.

파지지지직!!

팔성(八成)

뇌령인(雷靈印)

팔성이라고는 하지만 내 공력 자체가 어마어마했기에 산을 날려버릴 수도 있는 일격이었다. 그리고 나는 뇌령인을 떨쳐낸 순간 여동빈의 의념천주가 발동하며 상상치도 못했던 현상이 일어남을 알 수 있었다.

월공투계(越空透界)

여동빈의 절대지경이자 무적의 증거가 발현되는 게 느껴졌다. 그 어떠한 선공이나 속도에도 우선권을 잃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검선의 절기! 지금껏 월공투계는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거나 반격하는 데 쓰여왔지만 내 뇌령인에 대응하는 방법은 사뭇 달라보였다.

치지징

“……!!”

뇌령인의 새파란 뇌전의 장인(掌印)이 갑자기 맞은편에 생겨난 것 같았다. 완전히 똑같이 생긴 뇌령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눈을 부릅뜨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뇌령인이 허공에서 무언가와 펑 하고 부딪히며 그 기운을 크게 잃는 게 느껴졌고, 이어서 마치 시꺼먼 뇌전과 같은 어마어마한 속도의 칼날이 내 미간으로 쇄도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피잉!

나는 아슬아슬하게 여동빈의 반격을 피해내었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 방금 그건?”

“연자에게 밝히지 않은 월공투계의 또 다른 사용법이다.”

여동빈은 다시 나와 거리를 벌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월공투계의 [눈]으로 보았을 때 애매하고 성긴 의념(意念)…. 그 어설프고 성긴 구조 속으로 직접 내 무예의 의(義)를 침투시킬 수 있다면 거울처럼 맞받아칠 수 있다.”

“……?!”

“상대는 자신의 무공에 위력을 상쇄당한 후 무조건 천둔검에 반격당하게 되는 것이다.”

월공투계에 그런 능력도 있었단 말인가?!

‘과연 검선…!!’

내가 깜짝 놀라고 있을 때 여동빈이 말을 이었다.

“단지 이 공능은 숙련도가 완숙에 달한 절학을 상대로는 쓸 수 없다. 그대의 무량단이나 삼보절기를 응용한 합식(合式)에는 이 공능을 쓰기 힘들지. 여태껏 연자가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은, 그대가 불러내어 내가 싸웠던 상대가 대부분 무예의 숙련도가 완성된 자이거나 마왕같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음…. 수준이 떨어지는 양민학살용 능력이군요.”

“그건 500년 후 미래의 천박한 언어로구나, 연자여. 허나 뜻은 아마 통하리라.”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는 말했다.

“그래서 월공투계로 어떻게 수련을 한다는 겁니까?”

“그대의 현재 걱정은 숙련도가 떨어지는 잡다한 무공을 너무 많이 익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요.”

스윽

여동빈이 다시금 중단세를 잡으며 의념을 내뿜었다.

“몇 번이건 그 숙련도가 떨어지는 무공을 월공투계에 부딪혀라. 그대가 스스로 상쇄되는 무공을 마주칠 때마다 계속해서 개선점을 찾아내어라!”

“……!!”

“월공투계로 맞받아침은 그 무공의 뒤떨어진 약점만을 철저히 공략한다는 것. 부딪히다보면 스스로의 부족함을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나는 여동빈의 말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보다 더 빠르게 무공의 부족함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구나!’

본디 오랫동안 점수(漸修)하면서 부족함을 찾아나가야 하는 게 무공수련! 그러나 월공투계는 완성에 도달한 절대지경이자 완벽한 [눈]이었기에 숙련도가 부족한 무공의 헛점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찔러버리는 게 가능했다. 그렇게 완벽하게 헛점을 공략당하다 보면 마치 몇 년 동안 그 무공만 수련한 것처럼 빠르게 부족함을 깨닫는 게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이 수련의 위험함을 깨닫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반격당할 때 제가 실수하면 바로 요혈을 꿰뚫려서 부상을 입지 않습니까?”

“절세무공의 부족함을 고치는 것은 본디 짧은 시간에 불가능한 수련일진대 그것도 감수할 생각이 없었는가?”

“…….”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더욱 집중력이 도야할 것이다.”

즉 내가 수련을 대충 하려고 하면 검선 여동빈은 반격할 때 봐주지 않고 나를 칼로 찔러버리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것도 만만치 않은 난이도의 극한수련이란 걸 깨닫고는 이를 악물었다.

“갑니다!”

나는 눈앞의 여동빈에게 달려들면서 생각했다.

‘이 수련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겠지만…!!’

알고 있다. 월공투계에 부딪히는 걸로도 통상적인 수련의 몇 배나 되는 효율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수십 년씩 고련해야하는 무공들의 수련치가 크게 낮아지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괴로움에 도전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멈춰있을 수가 없다.

더 이상 무공의 정체를 재능부족을 이유로 회피하지 않겠다.

아무리 어마어마한 비효율과 고통에 허덕이는 세월을 겪는다 하더라도 외면하지 않고 직접 부딪히기로 했기 때문이다!!

콰광

나는 이윽고 뇌신권과 오행강기를 한 번씩 써서 여동빈의 월공투계에 부딪혀 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맞은편에서 내가 시전한 것과 똑같은 강기가 날아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급히 상쇄를 막아내고는 여동빈의 역습을 막으려 했지만 이건 무조건 한 호흡을 뒤쳐졌기 때문에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푸욱!

여동빈이 용서없이 내 팔뚝을 칼로 한번 후볐다. 나는 호신강기조차 먹히지 않는 여동빈의 검기에 전율이 흘렀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뚝을 붙잡고 뒤로 물러섰다. 내가 빠르게 지혈하고 있자 여동빈이 말했다.

“상쇄시키는 그 순간 그대의 뇌신권에 존재하는 헛점이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였습니다’.”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식을 펼칠 때 존재하는 자세의 빈틈이나 쾌(快)에 동반되는 ‘힘’의 전달, 그 배분같은 것의 부족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마치 해답지를 미리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동빈이 서릿발같은 기운을 내뿜으며 나직이 말했다.

“본디 뛰어난 오성(悟性)으로만 간혹 깨칠 수 있는 그 헛점. 계속 덤비면서 그 헛점을 머릿속에 인식시키고 지금 이후의 점수(漸修)에서 그걸 고칠 방법을 찾는 것이다.”

팔뚝은 아프지만 의욕이 생긴다.

본디 재능으로만 깨칠 수 있는 영역을 여동빈의 절대지경의 힘으로 쉽게 열 수 있는 수련인 것이다.

‘좋아…. 해볼 만 해!’

이런 수련을 몇년만 한다면 지금까지 정체되었던 낮은 성취의 무공들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어! 그리고 얼마 후 있을 백련교주와의 전투에서도 훨씬 쓸 만한 초식이 많아질 거야!

나는 몸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여동빈께서는 절대지경을 두 개나 갖고 계신데 저도 여러 개의 절대지경을 가질 수 있을까요?”

“…….”

아수라만 봐도 여러 개의 절대지경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으며 그 기술을 쓸 수 있었다. 여동빈도 그렇고 여러 개를 가진 절대무인들이 종종 보였기에 나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동빈이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말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사실 연자는 그리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네?”

“깨닫지 못하였는가? 그대는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장엄한 뿌리를 얻기를 원하고 있다.”

이어진 여동빈의 말이 내 귓가에 박혔다.

“머지않아 그대가 선택한 결의가 마치 영겁(永劫)의 거목(巨木)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 달 하고도 사나흘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휘영청 밝은 달밤.

내가 다른 자들을 모두 가르치고 나서 홀로 수련시간을 가지려 하는 자정의 새벽, 인기척과 함께 망량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찾아왔소.”

나는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곳에 서 있는 망량 뒤편의 세 명의 인영(人影)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 중 무면탈을 쓰고 있는 괴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아마도 망량은 내가 말했던 대로 그들을 여기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한 것이리라.

내가 물끄러미 그들을 쳐다보자 무면탈의 괴인이 내게 육합전성을 보냈다.

[그대가 소을촌장인가?]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렇소.”

[듣던 대로 절대지경의 고수로군.]

“그건 당신도 그렇지 않소?”

나는 상대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백련교주(白蓮敎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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