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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여동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생소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손에 들린 선검을 한 번 쳐다본 후 말했다.
“…선검은 한 자루 뿐인데 어찌 두 자루라고 하십니까?”
“연자의 기억 속에서 그대는 나를 여러 번 소환하였다. 그 중에서는 검의 가르침을 구하여 지금처럼 소환했다가 검류(劍流)의 혼란을 종식시키려 천둔검법(天遁劍法)의 5단계까지의 요결을 배운 적이 있지 않은가.”
“그랬었지요.”
여동빈이 내 말에 그저 지긋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에 잠시동안 어리둥절해하다가 이윽고 뭔가를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서, 설마?”
“바로 그 때의 요결전승이 그대의 선검(仙劍)이 되었다.”
“……!!”
그럴 수가?!
나는 예전의 기억을 회상해 보았다.
[연자의 경지와 의념이해도가 원숙해서 더 이상 신(信)과 해(解)의 요결을 습득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니, 마지막 둔(遁)을 전해주마.]
[입멸(入滅), 공(空), 천둔이 이어지게 되니 상관없다. 그 정도는 되어야 혼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연자는 이미 신(信)으로 시작하여 해(解)로 이어지며, 입멸(入滅)하여 공(空)을 깨달아 천둔(天遁)이 되는 천둔검법의 5단계 요결을 모두 습득했다. 그리하여 본디 선검(仙劍)의 경지에 도달해야 옳은 것!]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천둔검법의 요결은 그대 내면의 모순을 치유하는 데만 쓰여, 그대를 올바른 선검의 경지에 올려놓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천둔검법을 더 가르칠 수는 없다.]
그랬다. 본디 재능도 부족한데 절세무공을 너무 얕고 넓게 익힌 여파로 검류의 혼란이 찾아왔었고 그대로라면 발전은커녕 심마에 휩싸일 위기였기에 여동빈의 도움으로 천둔검법의 5단계를 받아들여 내면의 혼란을 잠재웠던 것이다. 나는 예전 기억을 되살리며 말했다.
“장삼봉 진인이 그 이후 제게 말하길 제 영혼에 꽂힌 천둔검을 강화시켜야 제 무공의 용량에 존재하는 한계를 타파할 수 있다 했고, 저는 이후 생에서 공양의식을 이용해서 선검을 강화시켰습니다.”
“그랬더군.”
“그 후 여동빈께서 직접 선검으로 변신하여 제게 도움을 준 적이 있었고…. 이후에 직접 선검술을 사사하여 연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당연히 그 때 제 영혼에 꽂혀서 강화되었던 선검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단 말입니까?”
“…근본적인 착각이 일어난 이유는, 그대가 전생자(轉生者)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특수성 때문인 듯 하구나.”
“네?”
“그대의 검류에 존재하던 혼란을 가라앉히고 공양의식으로 강화된 그 선검은 지금도 그대의 심저(心底)에 조용히 잠자고 있다.”
여동빈이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그대가 들고 있는 그 흑백(黑白)의 선검(仙劍)은 내가 부여했던 천둔검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이다.”
“……!!”
뭐라고?!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이야기에 나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나는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그럴 수가?! 그 선검이 강화되어 그 힘의 여파를 제가 선검술로 쓸 수 있게 된 게 아니었단 말입니까?!”
여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그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아니다. 절대 그런 식으로는 선검술을 각성할 수 없으며 사용할 수도 없다. 이미 심저에 박혀있는 선검은 그 자체로 힘을 다하고 있을 터인데 어찌 외연으로 영향력을 확장시킬 수 있겠는가? 그대도 선검술을 익혔을 터인데 그게 그렇게 편리한 만능술수같던가?”
“……!!”
“여태껏 그대에게 내가 이 모순을 짚어주지 못한 것은 그대가 전생자라는 사정을 전혀 모를 뿐더러 여태껏 선검술을 익혀온 과정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그… 그렇다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손에 들려있는 흑백의 선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건 대체 뭐란 말입니까?”
“…….”
여동빈은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이 한없이 이어지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아수라가 툭하고 내뱉었다.
“심각한 얘기 도중에 미안하지만, 왠지 근처에서 기척이 느껴지는군. 누군가 네댓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는 힐끔하고 아수라가 제천대성을 쳐다보자, 제천대성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마 정기적으로 순찰을 하는 신장(神將)들일 거다. 들키면 귀찮으니까 날 따라와.”
휘잉
이윽고 우리는 제천대성을 앞세우고 더 깊은 영산으로 들어갔다. 한참동안 심산유곡을 지나서야 소름끼치게 맑은 연못이 나타났고, 그 연못에 도착하자 제천대성이 말했다.
“여긴 순찰범위에서 벗어난 곳이니 안심해도 돼.”
나는 여동빈에게 다시 질문하려 했다.
“여동빈. 이 선검의 정체는….”
“모른다.”
“모른다고요?”
“그렇다…. 그대의 기억을 공유했으며 이 장소까지 오는 동안 생각을 거듭해보았음에도,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으로는 그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허나 그럼에도 그대의 선검이 내 선검과 다를 바 없이 선검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사실.”
“…….”
“또한 선검을 발동하려 하자마자 구천현녀께 신호가 간다는 것 또한 그 선검의 인과율이 제대로 구천현녀님과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 정도라면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는 선검이 맞다.”
“제길….”
나는 이를 악물었다. 머리가 너무 복잡했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버럭 외쳤다.
“가짜이지만 동시에 진짜 선검이란 말입니까?! 무슨 그런 게 다 있어요!”
“그 표현이 맞군. 허나 내가 아까부터 연자에게 하려던 말은 선검의 정체를 따지려는 게 아니었다.”
“네?”
“처음부터 그대는 무예의 도를 익히고 선검의 경지를 높이려고 내게 부탁했었지. 그리고 그대는 이제 그대의 선검이 하나가 아닌 둘이며, 그 중 하나는 정체가 의심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이젠 어쩔 것인가?”
“…….”
“의심스러운 쪽을 굳이 고집하겠는가?”
“저기…. 잘 모르겠습니다….”
여동빈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나는 대화의 흐름을 놓친 것 같은 느낌에 초조해졌다. 지금 여동빈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옆에서 팔짱을 끼며 나무에 기대어 대화를 듣고 있던 아수라가 불쑥 입을 열었다.
“백웅의 심령(心靈)에 박혀있는 ‘진짜’ 선검을 끌어내야 한다는 소리가 되겠군.”
“뭐!”
“백웅. 여동빈의 말은 어려운 게 아니니까 차분하게 생각해 봐라.”
내가 놀라서 아수라를 돌아보자 아수라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봐라. 지금껏 너는 선검술의 수준을 올리려고 부단하게 노력을 해 왔지만 개미눈물만큼만 나아졌을 뿐 사실상 선검술로 인과를 축적하는 경지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수련기간이 짧긴 하지만 이 정도로 성과가 희박하다면 의심해볼 수 있는 게 하나 있지.”
“뭘 의심한다는 거냐?”
“바로 지금 네가 사용하는 그 흑백의 선검이 선검인 척 하는 가짜이기 때문에 네 성취가 늘지 않는다는 의심이지.”
“…….”
“그렇다면 지금 네 내면에 잠재되어있을 검선 여동빈의 진짜 가호, 천둔(天遁)의 선검(仙劍)을 끌어내어 그 선검을 수련해보는 게 옳은 수련일 수 있다는 거다.”
“이 흑백선검을 버리고 진짜 선검을 써 보라는 건가?”
“그래. 바로 그 말이지.”
나는 그제서야 여동빈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만일에 지금 내가 쓰는 이 ‘흑백선검’이 가짜라면, 내 안에 잠재된 진짜 선검을 써서 수련해보자는 것!
붕 뜨는 현학적인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여동빈에게 포권을 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
나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제 심령에 들어가 있는 선검을 뽑아 주십시오!”
“…….”
“…….”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여동빈은 딱히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어색한 침묵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안 되는 겁니까?”
“연자여. 이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이야기다.”
“네?”
“그대의 검류에 있던 혼란을 바로잡아준 선검을 유형화(有形化)시켜 심결(心決)을 현실으로 꺼낼 수 있다는 건,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이 내가 줄곧 말해왔던 무형검(無形劍)을 깨달은 경지이다. 그건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대 자신이 무형검에 이르러야 한다.”
“…….”
나는 여동빈의 말을 알아듣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네?! 애초에 무형검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선검수련을 하는 건데….”
“그렇다. 시작과 끝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커헉…!!”
선검수련을 해서 선검의 극한에 도달하면 아마 무형검에 이르게 될 건데 그 무형검을 써야 선검수련을 할 수 있다니 이런 웃긴 소리가 어딨어?!
그러자 바위에 걸터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천대성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동빈! 너무 고고한 척 하는 게 아니냐? 굳이 그렇게 낑낑대며 접근할 것 없이 원론적인 해결방법이 있잖아.”
“…….”
나는 한 줄기 빛을 본 듯한 기분에 급히 외쳤다.
“제천대성! 방법이 있다고요?”
여동빈은 침묵했고 나는 제천대성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제천대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흑백선검이 설령 가짜라고 할지라도 인과율이 구천현녀랑 연결되어 있다며? 그리고 선검술 자체가 구천현녀의 권능을 빌리는 술법이라며? 그러면 권능을 빌려주는 당사자인 구천현녀한테 가서 부탁 좀 하면 될 거 아냐~!”
“……!!”
“심결이니 무형검이니 하는 건 모르겠지만 구천현녀쯤 되면 시해지술로 어떻게든 해주겠지. 쉬운 얘기 아니냐?”
“그렇군요!”
나는 뛸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아수라가 큭큭 웃으며 내 기분에 초를 쳤다.
“크큭…. 자질구레한 건 신경 안 쓴다고 했겠다. 하지만 구천현녀를 설득해서 내면의 선검을 꺼내달라는 건 본격적으로 세상의 균형에 손을 뻗치는 걸 텐데?”
“윽.”
나는 그 말에 주저했지만 이윽고 제천대성이 말했다.
“어차피 천계에 온 이상 백웅이 해신족과 관련 없다는 걸 한번 소명해야 천계에서 더 귀찮게 굴지 않잖아. 그렇다면 그냥 구천현녀랑 한 번 만나서 백웅의 신원보증까지 해 달라고 하면 되지. 여동빈도 처음부터 그럴려고 백웅을 부른 거고.”
“오오…!!”
“캬캭. 이 형님이 책사해도 되냐?”
제천대성이 내 쪽을 돌아보며 으스대었지만 나는 냉큼 손을 비볐다.
“물론입죠!”
아수라는 나를 곯리려 했다가 실패한 듯 쳇 하는 소리를 내었다.
이윽고 제천대성이 여동빈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너, 아직 뭔가 숨기고 있지? 내가 말한 것 정도는 너도 알고 있었을 텐데 아직 백웅한테 얘기해줄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거냐?”
“…….”
“뭐 아마도 네가 속한 무신백좌의 비밀같은 거겠지. 이해는 한다만 여기까지 와서 감출 일이냐? 전생자인 저 녀석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 텐데.”
그러자 여동빈은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대꾸했다.
“원칙은 바뀌지 않소. 설령 전생자라 할지라도…. 신역에 정식으로 입문해야만 그에게 신역의 비밀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이오. 그것이 무신(武神)의 의지요.”
“거 참 깐깐하네 동빈이.”
제천대성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지만 나는 여동빈을 다소 서운한 눈빛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신역절기를 익힌 무신백좌들이 절대 밝힐 수 없는 비밀을 그들끼리만 공유하고 있으며 그것이 세상의 운명과 직결된 거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전생자조차 믿을 수 없다니 대체 왜 저렇게 폐쇄적인 걸까? 마치 전생자라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거 같잖아?
제천대성이 호쾌하게 말했다.
“다들 근두운에 타라고! 이렇게 된거 구천현녀가 있는 백릉산까지 바로 모셔다 드리지.”
휘잉 - !!
이윽고 근두운에 타서 구천현녀의 백릉산에 도착하자 우리는 구천현녀에게로 향했다. 예전처럼 비단처럼 펼쳐진 새하얀 모래들이 일어나더니 은빛의 길이 생성되었고, 그 끝에서 신령스러운 빛과 함께 구천현녀가 모습을 드러낸 듯 했다.
구천현녀가 나타나자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대가 백웅인가요?”
“그렇습니다, 구천현녀.”
나는 그녀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저는 이 자리에 한 가지 사실을 밝히고 한 가지를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무엇인가요?”
“저는 해신족과 손을 잡지 않았으며 놈들의 두령과는 원수관계입니다. 그 사실을 천계에 알려주십시오. 또 하나는… 제 심령에 존재하는 선검을 현실로 뽑아내 주십시오.”
“…….”
“또한 천계에 반역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고자 화룡진인을 암천향의 봉인에게 구출하여 그의 제자인 여동빈에게 신상을 인도했습니다.”
구천현녀가 침묵했고, 그녀에게로 여동빈이 다가가더니 예를 갖추며 말했다.
“저 여동빈의 이름을 걸고 백웅의 말이 진실임을 말씀드립니다.”
“여동빈. 당신이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백웅이라는 존재가 악하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그의 부탁도 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는 향후 천계의 어둠을 걷어낼 존재라고 확신합니다.”
“…그런가요.”
여동빈이 머리를 숙이고 있자 구천현녀는 신령스러운 빛이 일렁이는 손길을 내게로 내밀더니 심장이 있는 가슴팍에 갖다 대었다.
스윽
그러더니 구천현녀가 말했다.
“상당한 인과율(因果律)이 필요하겠군요. 그대는 내게 인과율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습니까?”
“인과율이 필요하다고요?”
“그렇습니다.”
구천현녀가 말을 이었다.
“그대의 심령에 존재하는 선검을 끄집어내는 건 가능한 일일 테지만, 그걸 끄집어냄으로써 그 이후 그대가 쌓아온 모든 성취가 영향을 받습니다. 그 영향을 무시한다면 인과율 소모 없이도 즉시 뽑아줄 수 있지만 아무래도 그걸 바라지는 않겠지요.”
“……?”
무슨 소리지?
내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여동빈이 무릎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백웅이여. 그대는 인과율을 지불해서 선검을 꺼내야만 한다.”
“왜입니까?”
이어진 여동빈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지금 그대의 절대지경 성취는 그 때 검류의 혼란을 틀어막은 결과로 생겨난 것. 혼란을 제어하고 있던 선검을 뽑아낸다면 검류의 혼란이 다시 발생하며 그대의 무공이 퇴보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인과율이다.”
“……!!”
제길, 그런 건가!
‘마치 보(洑)를 이용해서 임시로 홍수의 물을 가둬놓았는데, 보의 역할을 하던 선검을 치우면 그 혼란이 다시 쏟아진다는 거구나!’
지금도 성취가 지지부진해서 머리 터지겠는데 그러면 진짜 주화입마가 올 거야!
하지만 나는 잠시 후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좋습니다. 지불하죠.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고 조만간 다시 와서 지불할 테니 꼭 선검을 추출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건 한 번은 해야만 할 일!
어차피 해야 한다면 빨리 해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애초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검술에서 성취를 보기로 하지 않았던가?
반드시 내면의 선검을 꺼내놔야 해!
구천현녀가 투명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대에게 선검술을 익힌 경위를 묻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때가 아닌 듯 하군요. 다음에 선검을 추출하는 날이 온다면 그 날 다시 이야기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돌아가십시오. 복희의 모습을 빌린 자여…. 다음에는 그 경위도 말해주시길.”
“…….”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포권했다.
“다음에 뵙지요.”
나는 구천현녀의 앞에서 물러나왔다. 그리고 제천대성이 다시 근두운에 태워주자 아까의 연못에 도착할 수 있었고, 나는 당황스러워했다.
“어떻게 구천현녀가 그걸 알고 있지?”
“지금 네가 복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 말이냐?”
“네.”
제천대성이 도리어 어리둥절해했다.
“당연히 알겠지. 그녀도 복희가 인간모습을 하며 원시인들을 가르칠 때 전신(戰神)이자 정령의 왕, 지모신으로 존재했을 텐데. 탁록대전에도 참가했는데 모를 수가 있을까?”
“…….”
“이야…. 기억을 받은 직후엔 몰랐는데 너 정말 머리가 안 돌아가는 편이구나? 경험했던 건 대충 아는 편이지만.”
“윽…. 알고 있습니다.”
“캬캬캭.”
제천대성이 유쾌하게 웃었다.
“구천현녀가 그걸 따지려 들지 않는 건 여동빈이 네 신변과 실력을 보증했기 때문이지. 당분간 그녀가 우리 아군이라고 봐도 좋을 거다.”
“후. 그나마 다행이군요.”
“사실 말이야, 아까부터 너한테 이걸 부탁할까말까 고민했거든?”
스윽
제천대성이 자신의 여의봉을 꺼내더니 말을 이었다.
“네가 신공표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을 테니까 부탁해볼까 싶었는데 그냥 안 할련다.”
“네? 어째서….”
“어차피 제어 못할 거 아냐. 신공표가 있으면 팔부신중도 다 때려잡을 수 있을 테지만 그 이후 신공표는 금오도를 장악해서 팔부신중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위험한 괴물이 되어버리겠지.”
“…….”
“너랑 만난 게 이번 생이라서 조금 아쉽군. 수단방법 안 가리고 적이랑 싸우는 시점이라면 좀 더 재밌게 날뛸 건데.”
그렇게 중얼거린 제천대성은 여의봉을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여동빈. 너는 이제 어쩔 셈이냐?”
여동빈은 심유한 눈빛으로 제천대성의 시선을 맞받았다. 그가 침묵하자 제천대성이 키득거리며 마치 곯리듯이 말을 이었다.
“너희 무신백좌가 500년 후에 황제의 천마신공에 싹 다 발리게 생겼는데도 계속 수련할 마음이 생기냐고.”
“제, 제천대성!”
나는 뜬금없이 역린을 건드려버리는 제천대성에게 깜짝 놀랐다. 아까 나도 언급하긴 했지만 그건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용도였을 뿐, 지금 저건 무신백좌를 전부 바보취급하는 소리가 아닌가? 나는 여동빈이 크게 상처받을까봐 염려했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는지 여동빈이 대답했다.
“그렇소. 혼연(渾然)의 속성을 극복하는 과제가 추가되었을 뿐이니.”
“혼연을 극복한다고? 뭔지도 감이 안 잡히는 걸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건데?”
“황제는 치우와 싸웠던 경험을 이용해서 신역절기의 파훼식을 만든 셈. 파훼식의 파훼식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소. 그리고 그가 연자에게 천마신공의 비결을 밝힌 이상 충분히 가능한 일….”
“호오.”
여동빈이 천천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자여. 그대의 선검술 수련은 우선 인과율의 대가를 지불한 후에 내면의 선검을 추출한 후 시작될 것이다. 그 때까지는 전신전령을 다해서 돕겠노라. 무엇을 하려하는가?”
“…….”
나는 여동빈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석 달 내에 아오키가하라 수해에서 결판이 날 겁니다. 그 때 참전해 주십시오.”
“참전이라 함은 팔부신중을 없애버리려는 건가?”
“그렇습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쥐며 말했다.
“팔부신중 놈들은 틀림없이 수정석비의 조각을 갖고 있겠지요. 망량의 계책에 덜 걸려든 놈이 있다면 그 놈들과 싸워서 빼앗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대로 황궁에 쳐들어가서 수정석비의 연구물을 뺏아도 되고요.”
이제 해야할 일이 확실해졌다.
‘망량의 계책을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시킨다!’
팔부신중이라는 장애물을 치워버림과 동시에 놈들이 보유하고 있는 인과율의 대가인 수정석비 조각을 잔뜩 얻어서 선검술 수련은 물론이고 수련공간의 마도구도 같이 만들 수 있다.
그야말로 일석삼조!
그리고 우리가 천계에서 되돌아가려 하자 제천대성이 말했다.
“난 서왕모가 허튼짓하지 않나 감시하고 있지.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로 와서 부탁하라고.”
“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뭔가 신경쓰이는 게 있었는데.”
“……?”
“맞다.”
제천대성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뭔가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아까 낙양에 침입할 때 그 야차라는 놈이 아니라 다른 놈이 정확하게 내 본질을 봤던 것 같거든. 아까도 그 시선이 신경 쓰여서 너희한테 빨리 찾자고 재촉했던 거다. 근데 그 놈이 누군지 아까까지는 몰랐는데 기억을 보니까 대충 짐작이 간다.”
“네? 야차가 아닌 다른 실력자가 있었단 말입니까?”
“그래. 내 짐작이지만 야차보단 더 셀걸.”
제천대성의 이어지는 경고가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마 헤르메스 뭐시기란 놈이겠지. 내 생각이지만 앞으로 그 놈이 가장 껄끄러운 적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