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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296화 (1,29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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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이광의 말에 황당함을 느꼈다. 이광이 시행할 란나찰 10만번을 내게도 똑같이 같이 하자고?

‘내가 왜?’

내가 미쳤어?

이광 널 괴롭히려고 하는 건데 왜 하겠냐!

당연히 나는 대번에 이광의 말을 물리치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란나찰 10만번을 이광에게 시키는건 전생의 빚을 갚아주려는 것이므로 내가 굳이 같이 해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잠깐.’

그러나 그 때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기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입만 산 놈이라. 내 무공은 그동안 소을촌을 경영하면서 충분히 보여줬을텐데 지금 그런걸 주장하는 건 어이가 없군.”

“뭐라하든 좋소. 자기가 내린 수련치를 자기가 따라하지 못한다는 건 천하의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니겠소!”

“읍….”

그 순간 나는 폭소가 터져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내가 웃음을 억지로 참자 약간 볼이 부풀었고 이광은 내 표정을 알아챘는지 눈빛이 더욱 험상궂게 되었다. 그러나 이광은 불쾌함은 느꼈어도 내 웃음에 담긴 의미까지는 모르고 있으리라.

‘크크… 크크크크!! 완벽하구만.’

자기가 내린 수련치를 자기가 따라하지 못한다고?

그건 지금 내가 너한테 하고싶은 말이다, 이광.

이 시련은 바로 이광 네가 나한테 시켰던 거란 말이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의 현재진행형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런 건 그냥 이광을 패는 것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만족감이리라. 나는 한동안 웃음을 억제하려고 있는 힘껏 노력하다가 간신히 평정을 찾고는 헛기침을 했다.

“좋아. 그 말대로 해 주지. 단 내 입장에서 거절해도 되는 억지제안을 승낙하는 것이니 나 또한 네게 조건을 걸 수 있겠지?”

“어떤 조건 말이오?”

나는 이윽고 이광에게 가장 치명적일 제안을 했다.

“네가 란나찰에 성공하든 아니든 내가 10만번 시전에 성공한다면…. 이광 너는 진소청과의 사제관계를 파기해라!”

“……!!”

“본디 여기까진 말할 생각이 없었으나 나 또한 진심이 되었으니 네가 자초한 것이다!”

그러자 이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고 옆에 있던 진소청은 아무런 표정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이게 이광의 역린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없이 꺼내놓을 수 있는 제안이었다. 이광은 이를 으득 악물더니 말했다.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오? 왜 나와 소청이의 사제관계를 파기해야한단 말이오!”

“이유를 말해줄까? 나는 진소청이 네 제자라는 게 더할나위없는 시간낭비이자 발목잡기라고 생각한다. 진소청은 지금껏 더 성장할 수 있었지만 네가 진소청을 억제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뭐라고….”

나는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관계가 없는 제 3자였다면 모르되, 이제 진소청에게 내 진신절학인 구궁파천뢰를 전수하고 그의 태사부가 된 이상 나 백웅은 그의 앞날을 책임져야할 의무가 생겼다. 이건 태사부로서의 올곧은 마음이다!”

“이런 개같은 소리를….”

“넌 진소청의 발목만 잡을 존재다. 무모한 내기의 대가는 스승의 자리를 내놓으면 치를 수 있을 것이다.”

“큭.”

내 말에 이광은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는 듯 했다. 평소의 냉정침착한 모습이 어디 갔냐는 듯 약간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저 모습을 보니 이광 스스로도 진소청과의 사제관계가 자기자신의 역린이었다는 걸 평소에 깨닫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만큼이나 진소청이 자기의 제자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광…. 그건 당연하지 않다….’

이광에 대한 내 개인적인 감정을 접어두고 객관적으로 그러하다.

만일 진소청이 무당파에 입문해서 칠대절학을 익혔다면?

만일 진소청이 소림사에 가서 소림사절기를 익혔다면?

만일 진소청이 백련교에 입교해서 화신류나 풍신류에 들어갔다면?

만일 진소청이 무영문에 가서 무영탈혼검법을 익혔다면?

만일 진소청이 십이율에 가서 십이율주의 제자가 되었다면?

그 어떤 경우든간에 이광의 밑에서 성장한 것보다 더 나았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꼭 그렇진 않겠지만 진소청의 재능이 어디서 어떻게 개화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진소청을 여태까지 절대고수로 키워내지 못했다는 건 이유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이광의 역량부족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건 30여번을 살아 온 전생자로서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다.

이광은 잠시 후 자신의 창을 꾹 잡으며 형형한 눈빛으로 외쳤다.

“좋소!! 하지만 내가 성공하면 그건 무효요!”

나는 이광이 쫄아서 제안을 물릴거라 생각했기에 도리어 흠칫했다.

“…좋다고? 정말?”

“뭐하시오? 창을 들고 준비하시오.”

“…….”

나는 이광의 근거모를 자신감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정말로 이광은 내가 란나찰 10만번을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어찌되었든 내게는 나쁠 게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창을 줘.”

파악

이광은 미리 준비한 듯 연무장에 있던 질좋은 강철창을 내게 던져주었고 나는 마치 찌르듯 날아오는 창대를 가볍게 받았다. 절대로 스승에게 창을 던지는 법이 아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씩 웃었다.

“횟수는 옆에서 진소청이 재는 건가?”

“가장 객관적일 것이오.”

부웅 부웅 부웅

나는 창을 몇 번 회전시켜 몸을 풀어보며 씩 웃었다.

“흐음.”

정말 오랜만에 창을 들어보는 것 같다. 검술의 길을 택한지 수십 년이 훨씬 넘지 않았는가? 검만 갖고 싸운지 오래되었고 그 동안 창술의 기법만 따로 뽑아썼기에 제대로 창을 쓰는 건 오랜만이라서 감회가 어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시작하겠소.”

두웅

나와 이광이 약 사 장의 거리를 두었다. 대결도 아니었음에도 서로를 마주보고 있으니 마치 대결처럼 느껴졌고, 실제로 이광은 약간의 살기를 내게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살기가 도리어 재밌게 느껴졌다.

‘…이광과 마주보고 란나찰 10만회를 하게 되다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운명이란 건 정말 알 수가 없다.

이광을 처음 만나서 그의 제자로 들어갔을 때 이러는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어쩌다가 나와 이광 사이에는 풀리기 힘든 악연이 생긴 것일까? 하지만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풀려하는 거라고 하더라도, 한 번은 풀고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흠. 머릿속을 비우자….’

나는 잡념을 털어버리기로 했다. 아무리 내 내공이 막대하다 하더라도 십만 번은 간단한 시연이 아니었기에 지금부터는 집중해야 하리라. 그리고 잠시 후 진소청의 외침이 들려왔다.

“시작하십시오!”

슈슈슉!!

슈슉!

나와 이광은 거의 동시에 란나찰을 펼치기 시작했다.

첫 란나찰의 일전(一轉)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이광의 창속(槍速)을 살폈는데 이상할 정도로 나와 속도가 비슷했다. 나는 란나찰을 엄청난 고속으로 펼칠 수 있었으나 일부러 평범한 속도로 전개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광의 시전 또한 내 속도와 아예 똑같았다.

‘으음?’

우연인가?

나는 내심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윽고 머지않아 백여 회를 넘어가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건 나와 이광이 동문(同門)의 사제(師弟)였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나는 좋든 싫든 이광에게 십여 년 이상 수련을 받으면서 계속해서 지옥훈련을 했고, 그 와중에 창의 수련속도 또한 내 몸에 배여있었다. 그리고 그 수련속도는 이광 또한 평소에 체화(體化)하여 몸에 굳은살처럼 배기게 만든 것이었으므로 자연히 호흡이 거의 똑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 의도하진 않았음에도 동시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

잡생각 하지 말자.

퓨퓨퓽

나와 이광은 란나찰 오백여 회전을 넘기면서도 전혀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고 창의 속도 또한 거의 일정했다. 마치 기계처럼 반복되는 와중에도 등근육, 팔근육, 허리근육, 다리근육을 쓰는 게 서투르지 않았고 최적화된 효율으로 힘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초장기간 몸을 쓰면서 체력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퓨퓨퓽

가볍게 일천 회전을 넘겼다. 보통 인간에게 란나찰 일천 회 반복을 시킨다면 전신에 땀이 나고 바닥에 땀웅덩이가 고일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겠지만 나도 이광도 서로 그럴 기색은 없었다. 아직 나도 이광도 굳이 내공을 체력으로 변환시킬 필요가 없었고 이 정도는 평소의 지옥훈련으로 얻었던 기초체력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족간(足間)이 신경쓰이는군.’

나는 반복해서 펼치는 동안에 발의 간극이 계속 달라지는 게 신경이 쓰였다. 아무래도 아예 창을 쓰지 않다가 써서 그런지 창술 반복수련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서투름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리라. 절대지경의 감각으로 이 오류를 계속 수정하곤 있었지만 이건 불리한 점이라 할 수 있다.

후 - 우

나는 약 삼천 회를 넘기고 있을 때 내 호흡과 심장고동이 갈수록 느릿느릿해지는 걸 느꼈다.

감각의 혼란과 함께 찾아오는 붕 뜬 환희의 느낌.

별로 내공을 쓰고있지 않으니 순수체력이 순식간에 한계에 치달았고 일종의 정신적 각성상태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각성상태에서 체력소모가 별로 안 느껴지고 한계를 쉽게 넘을 수 있단 걸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 상태가 끝나는 순간 체력과 기력이 급속히 빠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건 안 되지. 슬슬 내공을 변환시켜 볼까?’

치리링!

내공이 한 차례 터지듯이 전신에 뇌구와 함께 퍼져나갔고 동시에 각성상태가 빠르게 끝나면서 평범한 몸 상태로 되돌아왔다. 나는 각성상태가 끝나서 도야된 기분이 멎었지만 그 대신에 체력 또한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퓨퓨퓽

팔천 회를 넘겨서 구천 회로 넘어갈 때.

‘힘들어보이는군.’

나는 이광의 호흡이 조금 끊긴다는 걸 알아챘다. 아무리 그래도 구천 회는 일만 회에 가까웠으므로 보통 중노동이 아니었고 이광이 여태껏 아무리 수련했어도 체력에 부담을 느낄만한 횟수였다. 절정고수라도 여기까지 한다면 체력이 다 빠져서 기식이 엄엄해질 정도이리라.

‘그래도 저번에는 3만5천 번에서 눈꼬리가 떨리며 부담스러워하던데 전보다 체력이 더 떨어진 건가?’

나는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광이 란나찰에 도전했던 때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고 이광은 그 동안 먹고 자고 란나찰 수련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실력과 체력이 좀 늘었어야 할 텐데 도리어 체력이 줄어들 수도 있는 건가?

퓨퓨퓽

하지만 나는 약 1만5천회에 도달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움직임이 더 안정적이다. 그리고 체력이 되려 회복된 기색….’

나는 이광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대체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보다 더 불안해 보이면서도 어느 순간 안정적으로 변하는 이유가 잘 감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의아해하는 동안 횟수는 순식간에 2만 번을 넘어서 2만5천에 이르렀고, 이광은 다시금 약세(弱勢)를 보이는 듯 했다.

우웅….

그 때였다. 나는 이광의 몸에서 알 수 없는 기광(奇光)이 일어나면서 그의 몸을 살짝 감싸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기광이 이광의 혈도와 이비인후에 흡수되는 찰나의 순간 그의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을 눈치 챘다.

“……!!”

서, 설마?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어서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이광이 다시 약세에서 체력이 회복되어서 란나찰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꽤 머리를 썼군.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잔머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는 대충 이광의 전략을 눈치챘지만 굳이 트집 잡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저건 완전한 공략법이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트집 잡는다면 이광은 이광대로, 진소청은 진소청대로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리라.

어디 할 테면 해 봐라!

파파팟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어느덧 해가 져 있었고 새벽이 와 있었다. 새벽도 꽤 진행되어 아마 몇 시진만 지나면 해가 뜰 것이고 아침이 되리라.

3만 회를 넘어서 4만회로 넘어가는 구간에 나와 이광은 서로 경쟁하듯이 창의 속도가 좀 더 빨라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 구간은 빨리 전개해서 빨리 넘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광의 체력과 기력이 아직 충분히 남아있다는 걸 예감하고는 생각했다.

‘이광. 종전의 기록인 6만 3천여 번은 가볍게 넘기겠군….’

꽤 하는데?

‘난 괜찮겠지.’

나는 내공을 계속 체력으로 변환시키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소모가 상당한 걸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창술의 숙련도가 둔해진 상태에서 체간을 쓰는 법이 서툴러서 소모되는 내공이 좀 더 많아진 모양이다. 그렇다 해도 아직은 전체내공의 2할도 쓰지 않았기에 여유롭게 끝까지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촤아 -

머지않아 태양이 떠올라서 산의 중턱에 매달리는 듯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착각이었고 이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5만여 회를 넘기고 있었으며 이미 란나찰 10만 번 도전은 중반에 이르러 있었다.

뚜욱! 뚜욱!

나도 이광도 이미 발밑에 땀웅덩이가 생긴 지는 꽤 되었다. 아무리 내가 무한에 가까운 내공을 갖고 있어도 생리적으로 땀이 흐르는 것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신이 땀으로 흥건한 가운데 땀이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나도 이광도 전혀 속도를 늦출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창을 휘둘렀다.

그리고 나는 이광의 눈과 마주치고는 흠칫 놀랐다.

독기!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있는 집요한 독기어린 그 눈빛은 내가 예전에 두려워하던 그 이광의 눈빛이 맞았다. 목숨을 걸고 있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눈빛에 놀라면서도 그의 체력이 상당히 소모되었다는 걸 알아챘다.

‘호흡이 흐트러지는 간극이 점차 짧아지고 있군. 5만 5천을 넘겼으니 당연한 건가?’

내가 예상컨대 이광은 7만 회까지는 어떻게든 쉽게 가겠으나 8만에서 8만5천 구간에서 상당한 고비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1만회 이상을 경주하여 10만 번에 성공할지는 절대적인 미지수라고 할 수 있다.

…설마 성공하진 못하겠지.

나는 내심 약간의 짜증을 느끼면서 좀 더 창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내가 좀 더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이광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려는 것이었다.

파파파팟

지금껏 나와 이광의 횟수는 거의 동일했으나 지금 내 행동으로 인해 나는 순식간에 천여 번의 횟수를 앞서나가게 되었다. 나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이광이 내 행동에 위축되기를 원했지만 이광은 이를 악물면서 자기 흐름을 잃지 않으려 하는 기색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쒸이익!!

이광의 창이 전방으로 뛰쳐나온 듯 했다. 난데없이 날아온 이광의 창에 나는 놀랐으나 보아하니 이광의 손에 땀이 번질거리는 바람에 한 순간의 실수로 창대를 놓친 모양이었다. 나는 창대를 잡아채서 그에게 돌려주려 했으나, 그 순간 이광은 내가 보기에도 믿을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타앗

의념(意念)으로 이기어창(以氣御槍)을 발현하여 자신의 손으로 창을 회수한 이광! 그의 전신은 피로와 열기 때문에 시뻘겋게 달아 있었고 이기어창 때문에 더더욱 힘이 소모된 게 느껴졌다.

“……!!”

짤막한 한 번의 동작이었지만 나는 크게 놀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시전을 멈추고는 말했다.

“미쳤나?!”

한 호흡 한 호흡의 체력조차 아껴야 할 상황에서 이기어창처럼 기력을 소비하는 기술을 사용하다니! 저 한 번의 기술로 적어도 오백 번 시전할 체력이 낭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만있었으면 내가 그냥 잡아서 돌려줬을 텐데 저게 대체 무슨 바보 같은 짓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광은 잠시 후욱거리며 그 자리에 멈춰서 있다가 형형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부. 당신은 자식이 있소?”

“없다.”

“내겐 있소….”

이광이 버럭 소리를 쳤다.

“그리고 이 대결에 혈연(血緣)이 걸린 이상, 난 절대로 당신에게 빚을 지지 않겠소!”

퓨퓨퓽

다시 이를 악물고 란나찰의 시전에 돌입한 이광을 보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나는 그가 말한 자식이 누구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진소청….’

자식처럼 생각하는 진소청을 내게 뺏기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이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힘을 아껴야지 더욱 자존심을 곧추세우는 건 대체 뭐지?

이성적으로는 잘 알 수 없는 이광의 행동에 나는 혼란을 느꼈지만 이내 고개를 털고는 나 또한 란나찰에 돌입했다.

모르겠지만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게 더 짜증나.’

나는 이광을 이해할 것 같은 나 자신이 더 싫어졌기에 더 이상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는 다시 수련에 돌입했다.

‘제길….’

하다보니 질린다.

난 이미 이 수련으로 더 이상 얻을 게 없는데 이광을 더 굴복시키려고 미친 짓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광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는 건 더할나위 없는 짜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당초 어떤 마음으로 10만 번을 수련했던 거였지?

퓨퓨퓽

어느덧 나와 이광의 도전횟수는 7만 회에 도달해 있었다. 이광은 이미 신기록을 갱신한 상태였고 아직도 할 만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체력과 기력이 많이 줄었다는 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이광이 아까처럼 기광을 일으켜서 자신의 체력을 회복하는 폭도 크게 줄어든 게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10만 번은 순수한 인간의 체력이 열 번 이상 다 소모되어도 해낸다는 보장이 없는 미친 짓. 전략을 조금 잘 세웠다 하여 쉽사리 성공시킬 리가 있겠는가?

이 짓거리도 곧 끝날 것이다.

나는 이광이 굴욕을 느끼고 쓰러지는 얼굴이 무척 보고싶어졌다.

퓨퓨퓽

8만 회 -

“커… 허….”

그 횟수를 넘겼을 때 내 예상대로 이광은 약간 비틀거리며 호흡이 크게 거칠어져 있었다. 전신의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른 걸 보면 체력이 한계에 도달할 대로 도달한 게 틀림없었다. 이 고비를 멀쩡히 넘길 리 없다는 건, 몸을 자주 써 본 무인이라면 누구든지 예감할 수 있으리라.

과연 네가 남은 2만 번을 해낼 수 있을까?

“헉…. 헉….”

나는 이죽거리며 뭔가 말을 걸려다가 문득 나 또한 숨이 꽤 차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음?!’

뭐, 뭐지? 왜 나도 힘이 들지?

나는 물먹은 솜처럼 몸이 늘어지자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윽고 내가 약간 오만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 집중하지 않아서인가?’

지금까지 계속 하면서 일념으로 란나찰 시전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계속 이광을 살피고 있었던 게 악재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아무리 내공을 체력으로 변환시킨다 하더라도 아주 조금씩 누적되는 신체적 피로만큼은 나도 어쩔 수가 없었기에 나도 체력이 소모된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안 돼! 나도 이젠 이광을 보지 말고 집중해야겠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이제는 이광의 상태를 보지 않고 란나찰에만 일념을 다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건 마음뿐이었고 눈은 계속 맞은편에 있는 이광에게로 갔고 집중력이 계속 분산되었다. 그래서인지 8만 5천회를 넘겼을 땐 나조차도 약간의 피로와 함께 일순간 체력이 밑바닥으로 떨어진 걸 느꼈다.

비틀

‘젠장!’

뭐가 잘못된 거지? 분명히 내게 있어서는 땅짚고 헤엄치기만큼 간단한 게 아니었나?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이윽고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다.

란나찰 10만번 같은 극한수련은 단순한 내공의 산술적 계산으로 그 한계를 따질 수 없는 것이다.

내 무진장한 내공과 수련경험 덕에 당연히 쉽게 해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기신이 일치되어 안정감을 얻는 상태에서나 적용되는 일. 내가 집중하지 않고 딴데 정신이 팔리면 10만 번이 아니라 20만 번을 하는 것 같은 피로감이 적용된다는 걸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과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을 때는 해냈던 건데 이제 와서 못 이룬다는 건 말도 안 돼!

퓨퓨퓽

이윽고 나와 이광이 서로 9만 회를 넘겼고 이제 1만여 번만 더 시전하면 끝이 보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과정까지 서로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는지 또다시 해가 져서 밤이 되었고 야간에 창 휘두르는 소리가 이어지는 듯 했다. 부엉이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 풀잎벌레가 찌르르 우는 소리가 마치 광포한 야수의 울음소리처럼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두근

두근

심장이 마구 뛴다. 머릿속으로는 아직도 무지막지한 내공을 변환하면 여유로울 거라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팔다리에 가해지는 부담이 그 이상인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내가 정신과 육체의 집중이 합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근육이 더 심하게 눌리는 것이다.

“크아아악!!”

나는 견디지 못하고는 구궁파천뢰의 뇌구를 몸속에서 마구 유동시켰다. 그러자 뇌구가 마구 움직이며 파직거려서 뇌전을 내뿜었고, 그 와중에 내공이 한 차례 폭발적으로 소모되면서 내 체력이 많이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이걸로 10만 번은 어떻게든 해낼 것 같았지만 나는 내심 왜 이렇게 힘든지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고된 일은 할 만큼 했고 뭐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지는 거지?

도리어 눈앞의 이광이 더더욱 정신집중을 유지하며 끝까지 따라오는 이유가 뭐냐?

파파팟

파파팟

점차 시간이 느려진다. 란, 나, 찰의 세 동작이 윤전하면서 나는 홀황경에서 이광과 서로 창을 맞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반강제로 의식이 동결된 듯한 흐름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심어(心語)로 말을 걸었다.

[이젠 의념의 회로화(回路化)도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나?]

나는 진작에 이광의 전략을 눈치챘다.

그것은 바로 진소청과 같은 방식으로 의념에 동작을 입력하여 반복시행시 의념과 체력의 소모를 최소화시키는 것. 진소청이 가르쳐줬는지 이광이 스스로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틀림없이 그러할 것이다. 란나찰 10만 번을 성공시키는 지름길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이광은 진소청처럼 몇 년 간 란나찰만 수련했던 경험이 없기에 의념을 그처럼 완벽히 구현할 수 없다. 독고성이 진소청의 방식을 눈치챘음에도 자기는 따라할 수 없다고 포기했던 이유가 그것이다. 당연히 이광은 진소청처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허나 이광은 어찌 했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의념을 자기의 몸 내부에서 회전시키면서 마치 기계의 회로(回路)처럼 정해진 흐름을 돌도록 해 두었다. 그리고 의념의 흐름에 기(氣)가 뒤늦게 따라오면서 기력의 소모와 회복이 일정한 고리 내에서 반복되게 만든 것이다. 효율성은 진소청의 전략보다 덜했지만 어찌되었든 란나찰을 효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론은 좋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도 이젠 한계다.

왜냐하면 10만 번 자체가 나의 미친 내공과 체력이 아니면, 혹은 진소청같은 미친 재능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니까. 나는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기에 이광이 좌절하는 꼴을 보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심어에 이광의 의식이 반응하여 답변을 되돌려 주었다.

[난 포기하지 않소.]

그 순간 - 나는 머릿속에 둔중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무의미하고 무미건조하게 란나찰의 수행이 이어지는 동안 9만 5천회를 넘었으며 이윽고 9만 9천회에 도달하여 1천여 회를 남겼다. 나도 이광도 거의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시뻘게진 얼굴을 마주한 채 그저 란나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퓨퓨퓽!

창의 파공음을 들으면서 생각한다.

‘이번에도 깨달음은 없다….’

장삼봉과 무쌍패 대결을 할 때도 느낀 거였지만 역시나 깨달음은 없다.

내 재능으로는 그저 미친듯이 반복수련한다 해서 꼭 깨달음을 얻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게 현실적이고 세상의 이치에 가깝다. 극한의 수련으로 경지를 넘어간다는 환상은 그저 무인들이 갖고있는 열망일 뿐 돈오(頓悟)가 세상에 그리 쉽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모든 실력자들은 돈오가 아니라 점수를 통해 실력을 쌓아온 것. 그 실력의 위계는 시간의 위력이기도 하다. 편리한 깨달음이라는 한 마디로는 그 간극을 절대 메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 나는 다른 의미로 깨달음을 얻고 있는 중이었다.

흐름을 잘못 타서 십만 번을 이광과 함께 하면서 괜히 체력이 누더기가 되어가는 동안에도 어느 새 내 머릿속은 평안해지고 있었다.

까아앙!!

마지막 열 번의 시전을 남겨두고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고 그 순간 나와 이광의 창이 허공에서 부딪히는 걸 느꼈다. 왜 부딪혔냐면 역시 서로가 잘못했기 때문이었다.

‘족간….’

처음부터 신경 쓰였던 발의 간격이 십만여 번을 진행하면서 점차 앞으로 진행되더니, 어느 순간 나와 이광의 거리는 이 장도 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홀황경에서 서로 마구잡이로 창을 휘두르다가 창이 부딪힌 거겠지.

그리고 창이 부딪힘과 동시에 내 창 너머로 이광의 의지가 느껴졌다.

포기할 수 없다.

란(欄)의 한 동작이 입(入)하여 나(拿)의 동작에서 호흡을 곧추세운다. 그리고 찰(扎)에서 호흡이 멸(滅)했다. 동작과 호흡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호흡이 이어지면 동작이 이어지고, 호흡이 끊기면 동작도 끊긴다. 무호흡이란 무동작이었고 상리를 벗어난다.

이광의 눈은 백안(白眼)으로 변해있다.

“흐어어어!!”

그의 호흡은 어느 새 끊겨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호흡 없이 억지로 근육만으로 움직이며 남은 십여 번의 시전을 향해 도전했고 이미 이성따윈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체력의 한계에 한계까지 도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을 쥐어짜는 불꽃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도달하지 못한다.

그는 무슨 수를 써도 더 이상은 할 수 없다.

그것이 순수한 현실의 한계다.

앞으로 천천히 쓰러지는 이광의 마음 속 외침이 마치 메아리처럼 내게 들려오는 게 느껴졌다.

란. 나. 찰.

란… 나… 찰…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떤 기억이 생각났다.

[그렇다. 너는 총 3가지의 기본기를 연마하게 될 텐데 이 모든 것이 비기(秘技)라고 봐도 좋다. 그게 바로 창술의 신묘함이지.]

[란, 나, 찰!]

[네에?! 그건 정말 기본기 아닙니까?]

[놈!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네가 란나찰이 뭔지 알긴 하느냐?]

[평생 수련해도 모자란 것이 기본기인데 감히 그딴 소리를 하다니!]

[네가 기지도 못하면서 나는 사람을 비웃는 건 용서할 수 없다.]

…….

치리링!

나는 내가 왜 그 순간 손을 내뻗어서 구궁파천뢰(九宮破天雷)의 요결을 발휘하여 원거리에서 이광의 경맥을 향해 뇌구를 투사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투사된 뇌구는 이광의 심장을 향해 적중했고, 살의를 담지 않은 뇌구가 마치 빨려들듯이 이광의 경맥에 흡수되어서 일순간 그의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꾸웅

이광이 쓰러지려던 순간 억지로 진각을 밟으며 버티고 섰다. 그리고 더 이상 일어설 힘도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 창대를 지팡이삼아 자신의 체간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게 보였다. 입가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리는 가운데 이광이 형형한 눈빛을 뿜어내며 아주 천천히, 란(欄)을 펼치는 게 보였다.

아까까지와는 달리 한 번 한 번의 초식에는 숨을 열 번 쉬는 것 이상의 시간이 소모된다. 너무 느렸지만 나는 숨을 몰아쉬며 멍하니 이광의 마지막 란나찰을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란, 나, 찰.

란, 나, 찰….

쐐액!

마지막 십만 회에 도달하는 순간 이광의 힘없는 찰(札)이 정확한 찌르기 자세로 뻗어져 나오는 게 보였다. 꼿꼿하게 곧추서서 허공을 찌르고 있는 그 창극(槍戟)은 한동안 멈추어서 움직이지 않았으나, 잠시 후 진소청의 선언과 함께 내려가기 시작했다.

“란나찰 십만 번, 완료하셨습니다.”

쿠웅

이광은 앞으로 쓰러져서 기절했다. 이대로 놔두면 무조건 죽을 것이며 체력과 기력이 한계를 넘어서 소모된 게 분명했다. 진소청은 그런 이광을 부축하며 일어섰고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태사부.”

“…….”

“사부를 요양할 곳에 데려다 놓겠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다가 진소청에게 말했다.

“진소청. 너와 이광의 인연을 끊으려 했던 내가 밉지 않느냐?”

그 말에 진소청은 우뚝하고 멈춰 섰다. 그는 내 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 천천히 대답했다.

“정말 끊으려 하셨다면 마지막에 구궁파천뢰로 스승님을 돕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역시 진소청은 눈치챘군.

나는 겸연쩍게 대답했다.

“아니. 그건 그냥 변덕이었다. 진심으로 난 너와 이광을 단절시켜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셨다면 어째서 변덕이 생기신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건….”

…….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침묵하자 진소청이 말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은원(恩怨)과 공과(功過)가 있는 법. 태사부께서도 사부님께 원(怨)만을 품지는 않으신 거라 생각합니다.”

“…….”

“이만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파앗!

진소청이 빠른 신법으로 이광을 데리고 내려가자 나는 한참이나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이광의 창을 천천히 집었다.

난 어째서 아까 이광을 마지막에 도와줬던 것일까?

진소청의 말대로 왜 변덕이 생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그의 창을 들여다보다가 별다른 의미 없이 란나찰을 한 번 더 해 보았다.

퓨뷰븅

“아.”

그 순간 나는 란나찰을 하면서 더없이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행했던 10만 번 중에서 단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청량한 감각이었다. 마치 나를 얽어매고 있던 무언가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

마음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더없이 무거웠던 창끝이, 마음 그 자체를 버리는 순간 가벼워지고 말았다.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도리어 집중이 되지 않았지만 생각을 없애는 순간 잡념이 거두어졌다.

…애초에… 망량을 잃고 나서 극도로 후회하며 느꼈던 그 감정이 지금 남아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 순간의 생생한 감정은 기억나지만 그 때의 정신과 감흥은 되새길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 때의 10만 번과 지금의 10만 번은 처음부터 달랐으리라.

그리고 나는 비로소 내가 아까 얻었던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직면할 수가 있었다.

“신념(信念)이 무(武)를 만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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