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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293화 (1,29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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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망량의 계책은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망량은 마도팔문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위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는 듯 했고, 나는 그런 망량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망량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도와줄 게 없소. 그저 인간조직의 힘을 써서 할 수 있는 일이니 당신이 나설 때는 아니오. 그러니 소을촌장으로서 이번에 데려온 노예시장 인간들을 먼저 통솔해 주시오.”

“지금은? 나중엔 도와줄 수 있단 건가?”

“아마 계획의 후반부…. 지금부터 적어도 석 달이 지난 후가 될 거요.”

나는 깜짝 놀랐다.

“석 달! 너무 긴 거 아니오? 수정석비의 조각을 이용하는 놈들이 헤르메스를 강신시키고 어떤 짓을 저지를지….”

“전혀 그렇지 않소. 헤르메스를 불러들인 게 팔부신중의 전력보충을 위해서였다고 이미 말했잖소? 그렇다면 불러들인 이후에도 바로 행동에 나서는 게 아니라 고대괴물과 싸우면서 상실한 전력을 회복하기 위해 은인자중할 가능성이 매우 높겠지. 놈들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고 더 강대한 신적 존재와 싸울 일도 많아질 테니 힘을 더 비축해야 할 것이오.”

“아….”

“달리 말하자면 지금 전면전을 벌이고 싶지 않은 건 도리어 황궁세력측이오. 그냥 놈들 뜻대로 해주는 거지.”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생 제르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같소. 헤르메스라는 존재 자체의 힘이 거대하기에 불러들인 게 아니라 연금술의 비신(秘神)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권능이나 지식을 이용해서 팔부신중 자신들의 이득을 꾀하는 식이 될 것이오.”

“흠. 일종의 외부인사 영입인가.”

“다만 너무 시간을 주는 것도 좋지 않소. 헤르메스 정도 되면 신적존재의 힘이 강대하진 않아도 갖고있는 지식이 막대하여 어떤 변수를 만들지 모르오.”

“그렇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망량이 말했다.

“백웅. 말해두지만 외부 일을 너무 신경쓰지 마시오. 상황의 주도권을 갖고있는 건 당신이니 싸우고 싶을 때 싸우면 되는 것…. 전부 지키겠답시고 유리한 고지를 알아서 내어주면 가진 것마저 다 잃어버리는 게 병법의 상리요.”

“아, 알겠소.”

“도리어 지금은 내부의 결속을 탄탄히 해야 하오. 그건 책사인 내가 해줄 수 없는 일이니 거기에 집중해 주시오.”

내부의 결속이라.

‘음…. 일단 노예시장에 잡혀있던 사람들부터 어떤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자.’

나는 망량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제 노예시장 인간들을 데려왔을 때 다른 소을촌 고수들에게 그들의 신원파악을 하게끔 시켰고 오늘은 약간이나마 정리가 되어있으리라 생각하고는 독고성을 찾아갔다. 독고성은 내게서 일을 일임받아서 처리하다가 지필묵으로 작성한 명부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어제 하루종일 신원조사를 하며 매우 놀랐다. 각계각층의 인간들이 있는 건 짐작을 했지만 설마 황족까지 있을 줄은…. 노예시장이 이다지도 컸단 말인가?”

“…….”

“놀라지 않는군. 설마 짐작했던 거냐?”

“어느 정도는 정보를 입수했기에 노예시장을 공격했던 것이오, 사형. 아마 효성공주(曉星公主)라는 여인이 있었을 것 같은데.”

“맞다. 역시 뇌신류의 종사가 될 존재 답구나.”

감탄한 듯 자신의 턱을 쓰다듬던 독고성이 말을 이었다.

“공주의 처분은 섬서성주와도 친분이 있는 네가 알아서 하겠지. 다만 색목인들이 다수 있는데 그들의 정체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색목인? 뭔가 신경쓰이는 자들입니까?”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겠지. 내가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지닌 자들이었어….”

독고성이 명부의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지적하며 말했다.

“여기에 주목할 자들을 표기해두었다. 네가 직접 심문해 보아라.”

“고맙습니다, 사형.”

나는 주목할 자들을 하나하나 불러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바로 황족인 효성공주부터였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을촌장.”

“효성공주님이 맞으신지.”

“그렇습니다.”

효성공주!

그녀는 과거 내가 제갈사의 영혼과 더불어 노예시장에 상관정의 신분으로 침입했을때 노예시장 우두머리의 소개로 보았던 ‘매물’이었다. 그녀는 무척 뛰어난 미녀였고 예전에 봤을 때는 유리벽 너머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었던 게 기억난다. 물론 그 당시에서도 구출되어 백련교로 가게 되었으니 목숨 정도는 부지했었으리라.

나는 효성공주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했다.

“하남의 영회왕(榮灰王)께서 공주님을 버리셨고 지금 그 곁에는 가짜 공주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

효성공주는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다 알고 계시군요…. 설마 제 자리를 찾아주실 생각이신가요?”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공주님의 처지에는 가련함을 느끼고 있으니 당분간은 이 소을촌에서 식객으로 지내주시지요.”

“아아…. 나, 나는….”

“적어도 이 마을에서 당신을 함부로 쫓아내거나 학대할 일은 없을 겁니다.”

“고마워요….”

효성공주가 잠시 체념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는 듯 했다. 다만 저것도 억지웃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씁쓸해졌다.

‘확답을 줄 순 없지. 내 힘으로 영회왕 정도 박살내는 건 어려운 게 아니겠지만 지금은 망량의 계책이 진행중이다. 섣불리 나섰다가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몰라.’

그리고 효성공주 이외에도 상당수 귀족이나 궁인(宮人)이었던 자들이 있었다. 주로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존재들이었고 그 혈족이었으니 상당히 고귀한 신분들이었다.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일단 조용히 있기로 했던 효성공주와는 달리 이들은 상당히 건방진 태도를 취하는 듯 했다.

“이런 시골마을의 촌장이 제법 수완이 있는 것 같군. 나는 본디 한 성의 성주 직속에서 일했으며 삼만의 군세를 부릴 수 있었으니 내가 복권하게 도와준다면….”

투욱

나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귀족을 쥐도새도 모르게 점혈해 버렸다. 그리고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공주도 제 처지를 파악하고 있는데 별것도 아닌 놈들이 왜 이렇게 나대?”

이 놈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들어주다가는 내가 원하는 평화로운 삶이 망가질 뿐만 아니라 또 나를 정치적으로 이용해먹으려 들 가능성이 높다.

‘망량이 나중에 이용해먹을 거라 해서 놔두긴 할 텐데, 이놈들이 소을촌 숙소에서 시끄럽게 구는 게 귀찮겠군.’

신분이 높은 놈들 특유의 오만함 때문에 다른 거주민들과 문제가 발생할 게 분명했다. 내가 고민하다가 독고성에게 이 문제를 상담하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그 귀족놈들을 싹 다 내게 보내게. 뒷말 안나오게 길들여주지.”

“뭔가 수가 있으십니까?”

“크흐흐. 백련교 근처 감숙이라고 그런 귀족들이 없었는줄 아나? 백련교에 있을 때 나도 그런 놈들을 좀 다뤄봤지.”

“…….”

뭔가 불길했지만 일단 독고성에게 다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독고성이 말했던 노예시장 색목인들과의 면담자리가 찾아왔다. 나는 혹시 몰라서 이번 면담에는 생 제르맹을 대동했고, 이윽고 첫 면담자가 입을 열었다.

“이것은 설마 마도구입니까?”

이국의 말이 그대로 중원어로 통역되어서 들릴 수 있는 것은 지금 상대가 생 제르맹이 준 마도구인 ‘목걸이’를 차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도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상대에게 호기심을 느끼고는 말했다.

“그렇소. 어찌 알고 있지? 당신의 이름과 정체를 밝히시오.”

그러자 마치 흑요석같은 머리칼과 새파란 눈빛을 지닌 그 아름다운 소녀가 말했다.

“저는 오스만 제국 아나톨리아에서 온 히야스민입니다. [옛 종족]에게서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스만 제국? 굉장히 서쪽이군…. 마도구는 어떻게 알아보았소?”

“저는 오스만 제국의 황실직속 마도연구가였습니다.”

“……!!”

“예니체리의 난에 잘못 휩쓸려서 이 꼴이 되었지만 마법에 대해서는 꽤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은, 마도사란 것이오?”

히야스민이 빙긋 웃었다.

“반대로 [옛 지배자]의 마력이 황실에 해가 가지 않게끔 마법을 연구하여 해주(dispel)을 전문으로 하는 학파입니다. 구해주신 은혜를 갚고 싶으니 저주의 해제는 맡겨주세요.”

내가 힐끔 생 제르맹을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오스만 제국에 그런 게 있다고 듣긴 했소. 고대정령의 힘을 빌려서 제령과 해주를 한다던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마 지체 높은 신분만 할 수 있는 고귀한 직업일 텐데 노예시장에 팔려버리다니. 예니체리의 난이란 게 무엇이오?”

“…….”

히야스민은 슬픈 눈으로 대답했다.

“[옛 지배자]가 강력한 마도사를 조종해서 오스만 최강의 무사단인 예니체리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의 힘으로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황제께선 예니체리들에게 시해당하시고 저 또한 천민으로 강등당한 뒤 노예시장에 팔렸습니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옛 지배자]? 오스만 제국도 꽤 큰 나라일텐데 그 놈들의 손에 들어갔단 말이오?”

“예니체리 무사단의 힘은 매우 강력합니다…. 얼마 전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 하지만 그들은 무척 고결하고 강한 자들이었는데 어째서 [옛 지배자]에게 당한 건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히야스민이 고개를 떨구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귀하는 [옛 지배자]에 맞설 수 있는 강대한 존재로 보입니다. 제 목숨을 걸고 도와드릴테니 부디 타락한 예니체리들을 토벌하고 오스만 제국을 구해주십시오….”

“…….”

“당신이라면 무술이 극치에 도달한 예니체리의 대장(隊長)을 이기실 수 있어요….”

뭐, 뭔가 갑자기 일이 생기는 느낌인데.

나는 약간 위기감을 느끼고는 말을 돌렸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이, 일단 공을 세우길 바라오. 그럼 생각은 해 보지.”

“감사합니다.”

나는 히야스민이 물러난 후 골치가 아파서 관자놀이를 짚었다.

‘뭐야? 알지도 못하는 서방에서도 일이 또 벌어지고 있는 건가?’

내 기억으로 대웅제국의 정벌시기에 오스만 제국도 정벌한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뇌자의 기억으로는 오스만이 딱히 강력한 상대였다고는 기록되어있지 않았고 [옛 지배자]가 개입했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즉 - 28번째 삶과 지금의 삶은 서방의 정세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오스만 제국에는 원래 [옛 지배자]가 개입하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 생에는 개입해 버렸다는 뜻이다.

“…….”

설마 황제 공손헌원을 봉인한 여파가…?

나는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지만 애써 고개를 젓고는 다음 면접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번에 들어온 놈은 왜인지 이성이 없는 듯한 근육질덩어리 거한이었다.

“크르르르!!”

덩치가 어찌나 큰지 키가 십 척은 되어보여서 보통사람보다 몇 배는 커 보였다. 소형 거인족이라 해도 믿을 것 같은 그 거한이 텅 빈 눈으로 크르르거렸고, 그런 거한의 목 쇠사슬을 쥐고 있던 사내가 겁먹은 듯 말했다.

“왜, 왜 이 놈을 보고싶어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 전 그냥 노예시장에 고용되어서 잡일하던 놈입니다요….”

잡일꾼 사내는 그저 고용된 것 뿐이었기에 살려두었는데 이 자의 주된 임무는 이 근육질 거한에게 밥을 주고 돌봐주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이성이나 이지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듯한 눈 앞의 괴한은 확실히 요주의 대상으로 보였다. 당연히 이런 놈에게 이름이나 과거행적을 물어볼 수는 없었기에 나는 멍해졌다.

‘뭐하는 놈이지? 왜 노예시장에 온 거야?’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의 등장에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옆에 있던 생 제르맹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자는… 설마….”

“정체를 알고 있소?”

“잠시만 저 자를 제대로 제압해서 등을 보게 해주시오.”

“알았소.”

나는 생 제르맹이 ‘제대로’ 제압하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 저 쇠사슬은 진짜로 괴한을 묶어두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장식품일 뿐이었고, 괴한은 언제든 자유롭게 날뛸 수 있는 상태였다. 본디 노예시장의 이족들이 마법으로 놈을 제약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 제약이 없는 것이다.

파밧!!

쓔웅

내가 근육거한에게 달려드는 순간 근육거한의 거대한 강권(强拳)이 날아들었다. 그 강권에 실려있는 힘과 속도가 엄청나서 초절정고수의 절초에 못지 않았기에 나는 순간 흠칫했다.

‘순수한 육체능력이 이 정도라고? 진짜 인간인가?’

동양의 무예고수가 한평생 기공과 무예를 수련하여 의념까지 동원한 끝에 도달하는 육체능력에 순수한 몸뚱이만으로 도달해 있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육체 자체가 인간의 경지를 한참이나 넘어있었기에 나는 일순간 감탄하고는 강권을 뇌운유권으로 흘려보내려 해 보았다.

터엉!

유권의 궤적에 휘말려서 근육괴한의 주먹이 허공을 헛치며 기이한 파공음을 내자 괴한은 갑자기 입을 쩍 벌려서 나를 물려고 했다. 나는 너무나 우악스럽고 짐승같은 공격을 삼보절기로 피해내며 옆구리에 일 장을 먹였다.

꾸웅!!

주르륵

‘어? 이걸 맞고도 별로 안 아픈가?’

나는 기절시킬 생각으로 때린 공격이었는데 마치 모기물린 것처럼 따끔해하는 반응을 보자 놀랐다. 놈의 육체내구력은 정말 금강불괴에 버금가는 듯 했다. 나는 호기심을 느끼고는 약간 더 힘을 실어서 주먹을 날렸다.

‘조금 더 세게 때려도 죽진 않겠지!’

꽈광!!

“끄어어어!!”

삼 할 정도 더 힘을 실어서 치자 그제서야 거한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약간 주먹의 흔적이 옆구리에 남았고 뼈가 부러진 듯 했다. 그러나 지금의 공격은 호신강기를 터뜨릴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기에 고작 저 정도 반응이란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질린 눈으로 놈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코앞에서 핵폭탄이 터져도 살아남을 놈이군. 아무튼 한대만 더 맞아라.”

퍼억!!

나는 또 다시 한 대를 때리며 팔을 꺾어서 거한을 제압하고 혈도에 기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기를 아무리 불어넣어도 안에 있는 미지의 저항력이 내 힘에 저항하고 있었기에 쉽사리 혈도제압이 되지 않았다. 내 내공으로도 이럴 정도라면 평소에는 아예 기공조차 통하지 않는 몸이리라.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마도생명체 같은 건가?’

내가 황당해하고 있을 때 가까이 와서 생 제르맹이 그의 근육질 등짝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뭔가 주문을 외우며 등에 손을 갖다대었고, 이윽고 근육질 등짝으로 울룩불룩하며 커다란 무기의 형상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거한이 비명을 내질렀다.

“끄어, 어, 어어어어어어!!”

우드득 우드득

거대한 몸뚱이의 등짝에 마치 피부 아래에 박힌 것처럼 떠오른 형상은 바로 대검(大劍)! 사람 키만한 그 대검은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몸 안에 쑤셔넣은 듯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생 제르맹에게 말했다.

“이건 뭐지? 이 새끼는 자기 몸에 칼을 넣고 다녀?”

“…….”

생 제르맹이 잠시 후 내게 말했다.

“백웅 촌장. 이 대검을 강제로 그의 몸에서 빼주실 수 있겠소?”

“음….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저 대검은 서방제일의 강검(鋼劍)이며 수호자께서 직접 내리신 최강의 검 중 하나요. 주인을 무척 가리기 때문에 해꼬지를 당할 수도 있소.”

나는 그 말에 눈에 이채를 띄었다.

“당신, 이 놈의 정체를 알고 있군.”

“…….”

“좋소. 한 번 해보지.”

촤악!

잠시 후 나는 검을 들어서 단숨에 놈의 등과 살가죽을 분리시켰다. 그리고는 선혈과 함께 튀어나온 거대한 대검에 손을 뻗어서 잡았다.

우웅!!

그러자 대검을 손에 잡는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리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대가 이 자의 업(業)을 대신 받아주려 하는가….]

어디선가 들어봤던 목소리다. 나는 그 말에 머릿속으로 대꾸했다.

[이제 이건 내 칼이야.]

[…이질적인 자여. 업을 정말 감내하겠는가?]

[그게 뭔지 몰라도 안좋은 거면 감내 안 할 거야.]

[…….]

상대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잠시 업의 계승을 유예해주지….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목소리가 잦아들면서 내 손에는 거대한 대검이 은빛을 뿜어내며 들려있게 되었다. 나는 대검에서 뿜어져나오는 영기가 칠요만큼은 아니라도 굉장히 강렬하며 또한 순은으로 뒤덮여있는 걸 알고 감탄했다.

“이거 좋은 칼이군!”

그리고 내 공격에 당해서 등짝이 피범벅이 되었던 거한이 잠시 후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한은 아까와는 달리 이성이 되돌아온 듯 고개를 흔들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오….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저주가 풀렸는가.”

그러자 거한에게 생 제르맹이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오.”

“……?! 생 제르맹? 당신이 내 저주를 풀어줬소?”

둘은 서로 아는 사이로 보였다.

“그럴 리가…. 수호자님께서 직접 내린 저주를 내가 어찌 푼단 말이오.”

“그럼….”

“설명하자면 길지만 어쨌든 저기 백웅 촌장께 예를 갖추시오. 당신이 받은 업(業)을 대신 짊어지고 저주에서 구해주셨소.”

그 말에 거한은 내 손에 들린 은빛 대검을 힐끔 쳐다보더니 쿵 하고 내게 무릎을 꿇었다.

“정말 감사하오! 세상이 끝날 때까지 미쳐버리는 신의 저주였는데 이렇게 구해주시다니.”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 당신은 누구요? 왜 등짝에 칼을 넣고 다녔던 거지?”

그러자 거한이 말했다.

“나는 저 연금술사 생 제르맹과 함께 [옛 지배자]에 맞서싸우던 서방 최강의 대기사(大驥士), 샤를마뉴 대제의 최강의 검이었던 롤랑이오!! 앞으로 잘 부탁드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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