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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하남에 도착하자 여기가 예전 경매가 열리던 장소가 아니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여긴 하남 정주(鄭州). 예전에 경매가 열렸던 개봉(開封)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지만 어쨌든 최소한 수십 리의 거리가 있다.’
이렇게 미묘한 거리 차이가 발생했다는 건 역시 아수라의 말대로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내게 전생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마저도 눈치 채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나는 정주성의 입구에 속하는 산야의 길목에서 아수라에게 말을 걸었다.
“아수라. 나도 슬슬 함정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넌 어떻게 출발하기 전부터 알아챘던 거냐?”
아수라가 나뭇가지 위에 한 발로만 서 있는 상태로 대꾸했다.
“내가 무림에서 활동한 경력이 최소한 2천년이 넘는다. 천 년 전 달마가 중원에 오기 전에도 천축 설산에서 수행자나 소환악마들과 칼싸움을 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동안 무림인의 함정을 몇 번 겪어봤다고 생각하지?”
“…….”
“나 정도 되면 편지만 봐도 느낌이 온다. 이유는 딱 짚어서 말 못하겠지만 함정같았다.”
어…. 할 말이 없구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무림지존급 경험으로 발생한 감이라는 것뿐이지만, 그 감조차도 수천 년 동안 수만 번의 습격을 헤쳐 나왔다 하면 엄청난 신빙성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감탄한 눈으로 아수라를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너도 앞으로 죽고 죽이는 무림생활을 2백년만 더 한다면 질릴 정도로 감이 생길 거다. 그런 것보다 미리 말해둘 게 있는데.”
“뭔데?”
“함정에서 기다리는 주적이 풍신류라면 손속에 사정을 두고, 이족이라면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단칼에 끝장내라!”
“……!!”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왜냐하면 아수라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느껴졌고 너무 단호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수라가 이렇게 감정을 표출하는 게 놀라웠기에 반문했다.
“왜? 뭔가 이유가 있는 건가?”
“고수에게 여유는 좋은 거지. 하지만 지금 함정을 파놓은 게 [옛 종족]이라면 차라리 손속이 잔인하고 여유가 없는 게 좋다. 왜냐하면 그 놈들의 마법이나 저주에 잘못 걸리면 까다로워진다.”
“흐음….”
“아직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었냐.”
아수라가 말을 이었다.
“싸울 때 이족도 순수 무공만으로 다 죽인다고 이상한 오기부리지 말고 음신지력을 쓸 거면 적극적으로 쓰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아. 그 얘기였어?”
“네 녀석의 기억을 보면 이상한 오기가 있으니까. 중대한 국면에서 권능에 의존하기 싫다고 기를 쓰고 무공으로 도박을 걸잖냐.”
“…….”
맞는 말이었기에 나는 뻘쭘해졌다. 아수라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 나조차도 고위 이족을 상대할 때 좀 버겁다 싶으면 그냥 마왕으로 변신해서 마력으로 족치는 편이었다. 마법은 잘못 걸리면 정말 성가시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지금 마왕의 힘을 봉인했으니 마법에 취약하니, 그런 이족들은 모조리 네가 다 처리해줘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나는 주먹을 꾹 말아쥐며 말했다.
“이족을 상대할 땐 자존심 세우지 않겠다. 그냥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빨리 죽이는데 전념하겠어.”
“좋아, 그거면 됐어.”
우웅
‘저 연못이군.’
이윽고 편지에 나타나있던 장소에 도착하자, 나는 일각의 상징을 들어서 편지에 적혀있던 조그마한 산기슭의 연못에 던졌다. 편지에 이렇게 하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스스스….
그러자 연못 한가운데에 어둠의 공간이 열리더니 마치 징검다리처럼 어둠으로 만들어진 돌덩어리들이 치솟아 올랐다. 딱 봐도 차원문을 소환한 마법이었고 저 문으로 들어가면 다른 공간으로 가는 게 틀림없었다. 내가 그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아수라가 제지했다.
“잠깐.”
“왜?”
“함정인 걸 다 알고 왔는데 맨몸으로 저기에 가는 건 바보짓이지. 음신지력을 끌어내어 몸에 둘러 대비해라.”
“아! 알겠어.”
나는 아수라의 충고대로 음신지력을 끌어내어 임시로 몸에 두르는 방어막을 만들고는 차원문에 뛰어들었다.
쿠콰콰쾅!!
“크흡.”
아오 얼굴가죽 아파!!
잠시 후 폭음이 울려 퍼졌고 매캐한 연기와 함께 차원문이 거대한 폭발과 함께 터져나갔다. 나는 연기에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고, 대기하고 있던 아수라가 큭큭 웃었다.
“예상대로군. 함정이었어.”
나는 성이 나서 버럭 소리를 쳤다.
“씨발!! 이럴 거면 내가 굳이 육탄돌격 안 해도 됐잖아! 그냥 차원문을 멀리서 없앴어도….”
“함정 아닐 수도 있었잖아? 함정이니까 됐다.”
“…….”
그 때였다.
[오오…. 함정인 걸 알면서도 왔단 말인가?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군….]
슈슈슉
근처에서 노예상인 이족들의 무리가 다섯 마리 정도 출현했다. 그 중 가운데에 있던 놈은 내가 일전에 겁박했던 노예상인의 우두머리 이족이었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놈에게 말했다.
“미쳤나보군. 내가 두렵지도 않은가?”
[흐흐흐…. 허세는 그만 부리도록.]
“뭐?”
노예상인 우두머리는 괴기스러운, 이족 특유의 흉소를 흘리며 말했다.
[크흐흐흐, 백웅이여! 그대에 관하여 우리의 모든 정보망을 동원하여 조사하였고…. 그대가 사도나 화신이 아니라 그저 강력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미 파악했다!! 신력 또한 봉인할 방법을 찾았으니, 그대는 곧 우리의 노예가 될 것이다!]
“…….”
예전의 나였다면 저 도발에 바로 발끈해서 덤벼들어 베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경험이 쌓여서 약간이지만 냉정해졌으므로 곧장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내 능력을 아는 이족들이 내 앞에 저렇게 가까이 모습을 드러낼 리가 없지. 아무리 이족이라도 이 정도 거리에서는 절대지경의 급습을 당해내지 못해. 그렇다면….’
저건 실체가 아닌 환영이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곤 곧장 화안금정의 능력을 발동했다.
우웅!
‘역시.’
눈앞의 모습이 환영인 게 선명히 보였고 놈들의 본체가 수십 수백 장 떨어진 이 숲의 어딘가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놈들이 흩어진 것을 보자 정확히 이 위치를 중심으로 하여 다섯 지점이었다.
‘다섯 점…. 이 방위는… 설마….’
나는 슬며시 품에서 순어구를 들어서 마음속으로 아수라에게 내가 알아낸 놈들의 위치를 대략 말해주었다. 그러자 아수라가 순어구로 답변했다.
[마도의 오망성(五芒星)이군. 그럼 지금부터 움직여서 봉쇄하거나 도망치기는 늦었다. 이 산 전체가 마법진이 되었으니 눈앞의 저놈이 손가락만 까딱하거나 주문만 한마디 중얼거려도 발동된다.]
[뭐?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냥 지금 눈알광선을 쏘는 거다. 그럼 저 놈들은 다 죽겠지. 이보다 간편할 순 없다만….]
[…안 돼. 소호랑 얽히기 싫어.]
[그럴 줄 알았다. 그럼 사대신기나 써라.]
[알았어!]
나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의식을 사대신기의 공간으로 향했는데 이 동작은 신기하게도 현실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 했다. 나는 잠시 후 수신기 바루나에게 외쳤다.
“바루나여!! 신기의 힘으로 나를 포위한 이 마법을 분쇄할 수 있게 도와다오!”
바루나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내며 팔짱을 꼈다.
[흠. 분쇄는 내 전문이 아니다. 방어와 치유가 바로 내 본질이지. 마법의 힘에서 너희를 보호할 방어막을 만들어 줄까?]
나는 실망스러워서 투덜거렸다.
“어… 별로네. 사대신기답지 않게 쩨쩨하군. 이깟 이족놈들 함정도 못 날리냐?”
바루나의 눈에서 흉흉한 섬광이 번득였다.
[뭐? 이놈이 오냐오냐하니까 싸가지가 없구나. 전생자라고 감히 사대신기의 정령에게 말을 함부로 해도 되는 줄 아는가?]
“…….”
음…. 약간 바루나가 열 받은 것 같다….
나는 움찔하면서 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 아니 눈앞의 이족놈들이 별거 아닌 건 사실이잖아. 사대신기의 위력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거지 뭐….”
[흐음. 그렇긴 하군.]
대충 넘어가 준 바루나가 말했다.
[그런 건 아그니와 대화해 봐라.]
아그니?
후웅
잠시 후 바루나의 모습이 사라지고, 바로 곁에 전신이 화염으로 뒤덮인 새로운 정령이 출현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나는 잠시 경악해서 외치고 말았다.
“한백령?!”
믿기지 않는다. 정말 화신류 호법사자 한백령의 모습이다!! 전신이 화염으로 뒤덮여있긴 하지만 선명한 윤곽선이 한백령의 모습을 구현화하고 있었다. 흑발의 미소녀의 모습이 화염 한가운데에서 일렁이며 도리어 미(美)를 뽐내고 있는 중이었다.
[흠?]
내 외침을 들은 불의 정령 아그니는 잠시 후 고개를 갸웃하더니 한백령의 얼굴로 훗하고 웃었다.
[딱히 의식하지 않고 아무 모습이나 취하려 했는데 하필 [기억]된 모습으로 변했나 보군. 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모습으로 하도록 하지.]
“무, 무슨 말이냐?”
[잠시 저쪽과 ‘연결’된 여파지…. 바꿀까? 말까?]
“…….”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잠시 후 평정심을 되찾고는 말했다.
“…아니. 그 모습이 얘기하기 편할 것 같아. 이대로 얘기하자.”
[그렇다면야.]
방금 전 아그니가 [기억]되었다는 표현을 썼다. 그건 지금 저 한백령의 모습에 뭔가 사대신기의 비밀에 대한 단서가 숨어있다는 뜻이었다. 그 비밀을 알아낼 때까지는 저 모습으로 놔두는 게 좋으리라는 건 나도 알 수 있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아그니. 뜬금없이 의인화 형태로 나와주는 이유가 뭐지?”
[네가 세계의 안정에 공(功)을 세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뭐?”
[황제 공손헌원이 봉인되는데 일조했지 않나? 다른 녀석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 행위에 큰 공적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네놈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면 최근에는 공을 인정해서 슬슬 만나줄까 생각했지.]
“잠깐…. 네가 직접 의식을 드러내지 않고도 내게 힘을 빌려준 적이 있었잖아.”
[그런 식으로는 온전히 내 힘을 부여할 수 없지. 이제부터 제대로 네놈과 일해볼까 싶군.]
나는 기가 막혀서 말했다.
“아니 잠깐…. 생각해보니 그럼 이번 생이 아니라 29번째 생에 나와줘도 되는 거였잖아!”
[착각 마라. 널 완전히 인정한 게 아니니까. 지금은 굳이 바루나가 청했으니 나와준 것뿐이지.]
“으윽.”
오, 오만하구만….
아그니의 콧대 높은 자세에 내가 할말을 잃자 아그니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잘 알아둬라. 넌 아직 모두에게 시험받는 중이다. 다만 공적을 더 세운다면 더욱 네게 협조할 것은 약속해 두지.]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시험이라고? 전생자만이 사대신기를 구사해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거 아니었나! 대체 뭘 위해서 시험한다는 거야!”
[웃기는군…. 전생자는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다. 당연히 우리 또한 본디 우주의 사주(四柱)이자 궁극의 고대신 중 하나였으니 자격을 시험할 수 있지. 힘을 빌려줄 필요가 없는 놈이라면 주지 않아.]
“…….”
[시험받기 싫다면 그것도 좋다. 사대신기를 포기하는 건 말리지 않겠다.]
제길… 까다롭다….
나는 짜증이 났지만 감정을 가라앉히며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아무튼 내 용건은 지금 이족들의 함정을 한방에 쓸어버리는 거야.”
[충분히 가능한 일. 대신 토멸(討滅)에는 충분한 대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겠지?]
“내 마력을 주지. 파괴에 필요한 만큼 다 가져가라.”
[좋다…. 나 염신(炎神) 아그니의 힘을 빌리는 기초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알리노라!]
화르륵!!
다음 순간, 내가 눈을 뜨자 내 손에는 염신 아그니의 사대신기가 들려있었다. 사대신기의 형태는 예전에 달마의 외차원에서 봤던 것과 완전히 똑같았고, 이윽고 아그니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들려왔다.
[미래세계의 기억 속에 재밌는 형태가 있군.]
“응?”
[이 형태는 고대의 전쟁에서 따온 형태. 앞으로 네가 좀 더 쏘기 쉽게 해주마.]
지이잉
잠시 후 사대신기 아그니의 형태가 내게 있어서는 익숙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무척이나 낯선 것으로 변화했다. 나는 한손에 딱 잡힐 정도의 크기의 흉기(凶器), 시꺼멓고 기다랗고 매끈한 몸통과 둥그런 살의의 원형을 보며 당황했다.
“이, 이건….”
[마음에 안 드나?]
“아니 뭐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겠지!”
철컥
나는 흉기 뒷면의 철을 엄지손가락으로 당겼다. 그러자 내 전방에 있던 노예상인 우두머리가 나를 비웃는듯 껄껄 웃었다.
[크하하하!! 우리 일족의 비전을 이용해서 만든 대신결계(對神結界)! 그대의 신력은 봉인되었다! 그게 어떤 초능력인지는 몰라도 이제 닥쳐올 저주를 해결할 순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말을 들었지만 굳이 내 음신지력이 움직이는지 아닌지 시험해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 놈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내 입장에서는 사대신기가 발동만 해 주면 다른 건 별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놈에게 흉기를 겨눈 채 말했다.
“너…. 이게 어떤 무기인지 모르냐?”
[크크. 그게 뭔데?]
“이건….”
나는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총(銃)이라고 해.”
꾸욱
타아아아앙!!
다음 순간 - 아그니가 격발되며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날아갔다. 거대한 환염의 파괴가 무형파(無形波)를 일으키며 노예상인은 물론이고 놈이 숨어있던 곳을 싸그리 날려버린 것이다. 미리 화안금정으로 놈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기에 단숨에 해치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파공음이 터져 나오면서 천지가 부숴지는 듯한 굉음이 사방에 울려퍼졌다.
쿠콰콰쾅
아그니의 흉탄은 산의 구릉을 통째로 날려버리고도 모자라서 그대로 튀어 올라서 궤적을 바꾸어 다른 이족들이 숨어있는 장소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아수라가 탄성을 질렀다.
“유도탄(誘導彈)이군!”
콰과광
콰과과광
잠시 후 오망성의 모든 위치가 부숴지면서 노예상인 이족들이 한놈도 남김없이 전멸한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파괴의 향연이 끝나자 나는 내 몸에 덧씌워져 있었던 기분 나쁘고 축축한 기운같은 게 사라지는 걸 느꼈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정말 신력을 못 쓰게 하는 저주같은 걸 내렸었나 보군.’
술자들을 다 해치움으로써 저주도 해제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적을 모조리 해치우자 아그니의 총이 연기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고 아그니의 말이 머릿속으로 울려퍼졌다.
[마력을 좀 많이 가져가게 되었구나. 몸조리 잘 하도록 해라.]
응?
다음 순간, 나는 현기증이 나면서 그 자리에 풀썩 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전신이 허해지는 느낌과 함께 한기를 느끼며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크웨에엑.”
뭐, 뭐야.
마치 팔이 텅 빈 것 같은 이 불쾌한 무감각은?!
[이름]이 새겨져있던 팔목을 반사적으로 쳐다보자 팔목 전체가 마치 홍인들처럼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 몸 전체가 텅 빈 하얀색처럼 된 것 같았다. 내가 헛구역질을 반복하자 옆에 있던 아수라가 질린 듯 말했다.
“정말 경우가 없을 정도로 마력을 다 퍼갔나 보군…. 네 내공과 기력조차 고갈될 정도라니 보통 인간이라면 수천 번 죽었을 것이다.”
“허억…. 허억…. 우웩.”
스윽
아수라가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목갑이나 내놔봐. 경매장의 차원위치는 알아냈으니 내가 나머지 고수들을 데리고 가서 다 죽여주지.”
“…부탁하지.”
나는 아수라에게 목갑을 건네주었고, 아수라는 잠시 후 아까 부숴졌던 연못의 차원문 근처로 가서는 갑자기 검으로 공간을 베었다. 그러자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아까 부숴진 줄 알았던 차원문이 다시 나타났다.
“엥?! 그게 되나?!”
“놈들은 오만한 놈들이었으니 널 해치우고 나서 바로 경매장의 [매물]로 만들려 했겠지. 아까 그 함정만 걷어내면 진짜 경매장으로 가는 문이었던 거다.”
“…….”
“그럼 좀 있다 보자고.”
휘익
아수라는 차원문으로 뛰어들어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황망히 보다가 뒤따라가려 했지만 전신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걸 느꼈다.
저릿저릿
“크윽….”
너무 부작용이 심하다. 사대신기를 구사해서 [이름]의 마력을 최대한 줄이려 한 거였기에 목적에는 부합하지만, 너무 연비가 나쁜 것 같다. 마력을 줄이는 건 좋지만 신기를 한 번 쓸 때마다 이렇게 모든 힘을 소모하거나 강력한 영력을 제물로 바친다면 남아나지를 않으리라.
그리고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앞으로의 과제를 깨달았다.
‘…사대신기를 여러 번 쓸 수가 없어….’
강대한 [옛 지배자]를 상대로 한다면 사대신기의 힘을 수십 번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때도 이런 식으로 싸울 수는 없다. 한두 번 쓰고 나면 힘이 다해서 뻗어버리니 도대체 실전에서 어떻게 써먹는단 말인가.
‘둘 다 가져야 해.’
사대신기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모른다면 어쩔 수 없다.
마력(魔力)과 신력(神力)을 모두 최상의 경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