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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그 날 아수라와 망량을 내려 보냈다. 의념천주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볼 게 있었고 망량에게는 아수라를 마을사람들에게 소개시키라고 해 두었다. 물론 충돌을 피하기 위해 아수라의 정체를 액면그대로 말하지는 않고 내가 새로이 영입한 은둔고수 정도로 설명될 예정이었다. 그러면서 아수라에게 부연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소을촌은 지금 내 인생의 목표나 다름없다. 그러니….”
“안다. 다른 놈들이 날 도발하더라도 내가 최대한 참아주지.”
“…괜찮겠어?”
“뇌신류 놈들이 호전적이라서 어려울 거 같긴 하지만, 이것도 내 수행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그렇게 대꾸한 아수라가 훗하고 웃었다.
“생각이 좀 정리되면 다시 부르라고.”
“고맙다.”
당장 아수라와 의념천주 토론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아수라 말대로 늘 남한테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나 스스로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필요하다.
나는 동굴에서 가부좌를 틀고앉은 채 생각했다.
‘왜 의념천주는 기둥인 걸까?’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사실 이상한 일.
의념천주가 딱 그런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의념천주가 절대지경의 상징이자 강대한 힘의 원천이라 생각한다면 천지인(天地人)을 잇는 빛의 기둥이란 존재가 딱히 이상할 건 없다. 왜냐하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럴듯하고 멋있기 때문이다. 멋있으면 됐지 뭘 또 따지고 들겠냐는게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파고들면 이상할 수밖에 없다. 어째서 생각보다는 마음에 가까우며 적공조차 잘 되지 않는 의념의 결정체가 ‘기둥’이어야 하는 걸까? 기둥은 위와 아래를 동시에 떠받치는 것인데, 과연 기둥이 떠받치는 건 무엇이란 말인가?
우웅
나는 의식적으로 의념천주를 발현하여 의식을 집중해 보았다. 의념천주가 생긴 동안 나는 나 자신을 미래표현으로 하자면 마치 3인칭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 정수리 한가운데에서 허공의 어딘가로 향해 강대하게 뻗쳐있는 새하얀 의념천주를 목격할 수 있었다.
이게 전투 중에 격화되거나 의념의 발현이 강해지면 정수리를 넘어서서 전신을 뒤덮는 두꺼운 천주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의식을 끌어올려 의념천주의 끝을 보려고 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곤혹스러움을 깨달았다.
‘아…?!’
시야가 흡수된다.
나는 의념천주의 상단 끝까지 보려고 의식한 순간 내 의식이 그대로 새하얀 시야에 흡수되는 걸 느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3인칭으로 볼 수 없었으며, 마치 의념천주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 백광 이외에는 아무런 시야도 존재치 않았다. 극한의 빛은 극한의 어둠과 같다는 게 어떤 뜻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시야를 빠져나오려 했으나 잠시 후 현기증과 함께 집중력이 풀리며 육신으로 의식이 되돌아옴을 느꼈다.
비틀
“…….”
방금 그건 뭐지?
시야가 빨려드는 것에 전혀 저항할 수가 없었다. 아니, 시야라기 보다는 내 정신 그 자체가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나는 다시 한 번 시도를 해 보았고 똑같은 결과를 몇 번이고 느꼈다. 그리고 현기증이 점차 심해져서 속이 울렁거렸고, 나는 그 울렁거림 속에서 잠시동안 의념을 발현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껏 의념천주 그 자체에는 관심가진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설마 기둥의 끝을 볼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을 줄이야!’
나는 30번의 전생만에 이걸 깨달았다는 게 기가 막혔지만 사실 그럴 만 했다. 의념천주가 제대로 발동만 해주면 되는거지 그 끝을 뭐하러 보겠는가? 게다가 여태껏 강해지기만으로도 바빴기 때문에 도움도 안 되는 생각에 정신을 집중할 여유도 없었고 날 가르치는 자들도 내 둔한 재능때문에 가르치기만도 버거운 상태에 굳이 알려줄 이유가 없었으리라.
나는 큰 호기심이 느껴졌다.
‘왜 시야가 빨려드는 걸까?’
느낌상 내 시야가 빨려듬과 동시에 내 정신이 내 의념천주의 한가운데에 들어가 버리는 기분이 든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왜 의념천주에 빨려들어가는 것인지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 날 하루종일 명상하며 고민했고, 다음 날 미호에게 부탁하여 아수라를 다시 올라오게 했다. 아수라는 자기 말을 지킨 듯 뇌신류 고수들과 싸우지 않은 듯 했고, 내 이야기를 얌전히 들어주었다.
아수라가 말했다.
“나도 몇 번인가 해봤던 짓이군. 아니, 수십 년 동안 수천 번은 해봤는데 안되어서 포기했던 경험이 있다.”
“역시. 혹시 뭔가 얻은 건 없었나?”
“전혀…. 한 번 빨려들어가면 근성과 정신력으로 빠져나오는게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의념천주가 감옥이 되어버린 느낌이지. 혹시나 그 안에서 의념을 적공할 수 있나 시험도 해 봤는데 안 되더군.”
“흐음.”
“의념천주의 정체를 파고들 생각이냐? 말해두는데 나도 수십 년동안 아무 답이 안나왔던 문제인데 그렇게 쉽지 않을거다.”
“…….”
아수라의 말에 망설여졌다. 고대부터 살아왔던 무인인 아수라가 수십년동안 시도해서 헛수고였던 걸 과연 할 수 있는가? 그 수십 년 동안 차라리 다른 술법이나 잡술을 수련한다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있는힘껏 노력해봤자 헛수고가 된다면 너무나 허망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내 결연하게 말했다.
“할 거야. 이건 미래의 신승이 내게 준 단서니까….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이 걸리더라도 천주(天柱)의 정체를 밝혀낼 거다.”
“흐음. 하긴 전생자니까 시간은 썩어나겠군. 힘내라.”
“네가 말 안해도 그럴거야.”
“네가 소을촌을 육성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 좋은 거라고 본다.”
“응?”
“너 혼자서는 안 될 연구가 여러 명의 절대지경 고수가 있으면 뭔가 단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아수라는 대수롭잖은 듯 말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망량이 네게 전할 말이 있다던데.”
“뭐지?”
“어제 근처의 표국에 소을촌장에게 보내는 서신이 도착했다더군. 그걸 아직 개봉하지 않은 듯 하던데 내려와서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당장 가지.”
나는 내려가서 망량에게 서신을 받아서 뜯어보았다. 그리고 안에 있는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고는 힐끔 아수라를 보았다.
“아수라. 날 좀 도와줄 수 있겠냐?”
“깨달음 상담은 아닌 것 같군. 그 서신은 뭐지?”
“이족의 인간노예시장이다. 곧 열린다고 내게 알려주려 이족이 편지를 보냈어.”
편지에는 사흘 후에 하남(河南)에서 열린다고 되어있으며 열리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혈계(血界)로 통하는 이공간의 문을 여는 방법이 따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문’의 ‘열쇠’ 역할을 할 일각(一角)모양 장식물이 편지에 동봉되어 있었다.
‘아마 이 일각모양 장식물을 매개물로 차원문을 여는 거겠지….’
이젠 마법에도 꽤 익숙해져서 대충 어떤 원리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아, 그건가.”
아수라는 팔짱을 끼더니 훗하고 웃었다.
“노예시장을 박살낼 생각인가보군.”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 언제 오나 했는데 마침 딱 잘 되었어.”
“큭큭…. 노예시장이 박살나고 나서 일이 일파만파로 번져서 각지의 세력이 자극받을 걱정은 하지 않는거냐?”
“당연히 했지. 하지만 그 걱정 때문에 안할 수는 없어.”
이어진 아수라의 말은 잠시 나를 흠칫하게 만들었다.
“이상하군. 여태껏 하지 않다가 굳이 이번에 도전하는 이유는 뭐냐. 꼭 해야하는 일은 아니겠지만서도.”
나는 살짝 망량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 말대로 굳이 양심때문만은 아니야. 지금까지 더 급한 일이 많아서 굳이 안했던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나는 주먹을 꾹 말아쥐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 백련교주의 지시로 노예시장을 부쉈을 때는 전리품을 모조리 백련교에 갖다바쳤기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 하지만 이번에 노예시장을 해방한다면, 거기에 있는 모든 물건과 노예들을 소을촌으로 갖고올 거다.”
그러자 아수라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의리와 실익을 함께 챙기고 싶다는 건가? 예전에 마저 못한 일을 처리하려는 느낌도 드는군.”
“그런 거지.”
“후후…. 뭐 한다면 따라가 주마. 싸울 장소가 있다면 대환영이니까.”
이를 드러내며 웃은 아수라가 옆에 있던 망량에게 말했다.
“이봐. 거기 망량이라는 책사. 한가지 묻고싶은 게 있는데.”
“무엇이오?”
“넌 지금 우리가 뭘 하려는지 예측하고 있을 거다.”
“음…. 옆에서 듣고있으면 알 수밖에 없을 것 같소만…. 노예시장 공격에 대해 내 찬반의견을 물으려는 것이오?”
“설마. 이 자리에 있는 이상 넌 참여할 수밖에 없지. 너는 모든 걸 감안하고 백웅의 등용제안을 받아들인 걸테고. 내가 물어보려는 건 다른 거다.”
“……?”
“없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십중팔구는 노예시장의 또다른 주최자인 풍신류 놈들이 와있을 거다. 거기에 풍신류 수장이 있다면 죽여야할까 포로로 잡아야 할까?”
“흐음….”
“백웅 녀석이 의외로 우유부단한지라 지금 미리 정해두고 가는게 좋을 것 같아서 말야. 거기서 죽이니 마니 말싸움하고싶지 않거든.”
“일리있는 말씀이오.”
꽤 그럴듯한 질문이라 생각했는지 망량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죽이지 말고 포로로 잡읍시다.”
“이유는?”
망량은 뭘 묻느냐는 듯 대꾸했다.
“그걸 묻는 것 자체가 이유지. 애초에 풍신류의 호법사자에게 질 가능성은 커녕 죽이니 마니하는 걸 두 분이 논한다는 것 자체가 각각이 그의 힘을 초월해있다는 뜻이 아니오? 그럼 잡을 수 있으면 잡아서 향후 그를 포로로 하여 백련교와의 불가침조약을 이끌어낼 수 있을 듯 하오.”
“호오. 불가침조약이라…. 거기까진 힘들겠지.”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아수라는 대답하지 않고 피식 웃었고, 나는 어색한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망량에게 말했다.
“망량. 백련교주는 풍신류 수장 용비천을 그리 중요한 존재로 생각지 않소.”
“음? 내가 마도팔문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 바에 따르면 그는 가공할만한 고수이며 무한의 내공을 가진 호법사자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런 자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소?”
나는 뻘쭘해져서 전생하면서 얻었던 정보를 그에게 털어놓았다.
“어…. 그게… 용비천과 동급 이상인 놈…. 그러니까 천령단의 소유자가 수신류에만 최소 다섯 명이고 필요하면 무리해서라도 더 만들어낼 수도 있어서….”
“…….”
“굳이 교주가 안 나서도 용비천 정도는 부하 선에서 정리되오….”
망량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듯 했다.
“무, 무슨 그런 괴물같은 무림단체가 다 있소? 백련교가 정말 그 정도란 말이오?”
“어… 그게… 사실 그 부하들도 백련교의 모든 것은 아니오.”
“…….”
망량이 잠시 경악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자 차마 추가정보를 입밖에 내지 못했다.
‘백련교주가 나서면 그는 용비천을 길어도 3초 이내에 죽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용비천이 열 명 있어도 혼자 다 죽이겠지….’
하지만 이런 정보는 알든 모르든 지금은 상관없는 정보다. 나는 망량을 이런걸로 놀리고싶진 않았기에 일단 말을 돌렸다.
“아무튼 그렇소. 용비천을 갖고 협박해도 그냥 죽일테면 죽이라고 무심하게 나올 게 백련교주요.”
“흐으음. 과연….”
망량이 골치아픈 듯 부채를 관자놀이에 꾹꾹 밀다가 말했다.
“…그렇다 해도 일단 포로로 잡읍시다. 풍신류가 백련교 내에서 하찮은 존재라 해도, 어쩌면 용비천 본인만이 알고 있는 귀중한 뭔가가 있을지도….”
“귀중한 뭔가?”
“그냥 감이오. 아무튼 노예시장을 토벌한다면 소을촌의 고수들을 데려가실 거요?”
“물론. 실전경험을 쌓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소.”
“그러면 데려갈 자들을 선별하여 내게 말해주시오.”
나는 잠시 후 물러나와서 소을촌의 고수들을 모았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는 사악한 풍신류와 이족들이 연합하여 만들어낸 노예시장을 부수러 갈 것이오! 우리 소을촌이 대의를 위하여 활동하는 것이니 모두 도와주시오.”
그러자 독고성이 당혹스럽다는 듯 말했다.
“난데없이 무슨 소린가? 대의? 노예시장?”
“그게….”
나는 노예시장에 대한 정보를 모두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자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나는 천천히 말했다.
“노예시장의 노예가 된 자들 중 일부를 우리 소을촌 주민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오.”
“그거야 촌장인 자네 마음이네만…. 이족이라면 마법도 쓰곤 하는 괴상망측한 괴물들 아닌가. 그런 것들과 싸우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위험한 놈들은 내가 다 잡아족치겠소. 실전경험도 쌓기엔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소.”
“흠 그렇다면야….”
“자, 다들 목갑에 들어가시오. 목적지에 도착하면 꺼내겠….”
이윽고 나는 토벌대 전원을 목갑에 넣으려 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연금술사 생 제르맹이 나를 제지했다.
“잠깐!”
“왜 그러시오?”
“지금 얘기를 들으니 노예시장의 방대한 물품과 인간을 목갑 안에 넣어올 생각인 듯 하군. 맞소?”
“그렇소만.”
“…….”
뭔가 고민하던 생 제르맹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부터 목갑의 실체에 대하여 짐작가는 게 생겼소. 그리고 그 한정조건도 어렴풋이 짐작이 가기 시작했는데…. 확실치가 않소만….”
“……?”
“백웅 촌장. 잘 들으시오.”
생 제르맹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절대 목갑을 꽉 채우지 마시오.”
나는 황당해했다.
“응? 무슨 소리요? 그게 한정조건이라고?”
“아직은 어림짐작일 뿐이오. 이게 아닐지도 모르오. 마도술식을 해석하려면 아직 많이 멀어서….”
“엥….”
“그래서 더 확실해지면 말해줄려 했는데 어쩔 수 없겠군. 일단은 꽉 채우는 게 위험한 것… 같소. 음.”
“뭐 그렇다 칩시다. 그 한정조건을 어기면 어떻게 되오?”
“…….”
생 제르맹이 망설이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소. 위험할 거요.”
“으음.”
괜히 불안해진다.
‘꽉 채운다고…. 비슷한 상태까지 간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정말 그게 조건일까? 왠지 아닐 것 같다.
완전히 꽉 채운 적은 없는 것 같지만 매번 충분할만큼 넣었기에 그게 정말 ‘조건’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목갑을 꽉 채우지 말라니, 노예시장에 있는 물건의 규모가 수십 명이나 되는 수신류 고수들과 수백 명의 일꾼이 며칠동안 옮겼다는 걸 생각하면 전혀 장담할 수가 없는데.’
그래도 일단 생제르맹 말을 귀담아듣는 게 좋겠지?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소.”
휘익
나는 토벌대를 목갑에 넣은 후 아수라와 함께 경공을 써서 서신에 적혀있던 장소를 향해 경공을 써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날아갈 수 있었지만 마왕의 힘이 봉인된 아수라는 내공의 한계가 있어서 일단은 땅을 뛰어가야했기에 그의 보조를 맞춰주기로 한 것이다.
옆에서 뛰던 아수라가 말했다.
“아마 함정일 거다. 이족이든 풍신류든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어? 출발하고 나니까 무슨 개….”
나는 인상을 구겼고 아수라가 짖궂게 웃었다.
“크크.”
“함정이면 가면 안되는 거잖아.”
아수라가 이죽거렸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잘만 뛰고 있구만. 멈추지도 않고.”
“…….”
…음, 들켰군.
내가 입을 다물었지만 아수라가 계속 말을 걸었다.
“이봐, 백웅. 네가 지금 함정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는 이유를 알고 있나?”
“뭘.”
“함정이 있어도 다 때려부수겠다는 마음인 거 다 안다.”
“그래서?”
“슬슬 애송이 티를 벗기 시작한 거다.”
이어진 아수라의 말에 나는 약간 마음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너도 이제 슬슬 절대자의 시선에 익숙해지고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