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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내 말에 아수라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내가 영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서 바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다만 아수라는 처음에 자기가 얘기했던 대로 비웃지는 않고 곰곰이 생각하며 내게 되물었다.
“참 묘한 얘기를 꺼내는군. 마음이 없어도 의념을 쓸 수 있냐고?”
“그래.”
“왜 그런 고민을 하게 된건지 알 수 있을까?”
나는 침착하게 그의 말에 대꾸했다.
“사실 얼마 전에 여동빈이 천계에서 찾아왔었다.”
나는 여동빈을 만났던 이야기의 전말을 말해주었다. 그냥 흑요석을 전해줄까 싶기도 했지만 이제 마왕의 힘을 봉인한 아수라에게 여러 번 흑요석을 주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구두로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설명이 끝나자 나는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내 마음이 흔들린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번 내 삶은 쉬어가기 위한 것이고 어쩌다보니 소을촌을 만들게 된 거였다. 소을촌에서 안분지족하려는 거였는데 어느 순간 이 평화를 지키려고 더 일을 많이 하게 되어버렸으니 모순이 생겼어.”
“그건 그렇지.”
“그런데 요 며칠동안 동굴에 틀어박혀서 생각을 하고있다 보니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비단 지금뿐만이 아니라 훨씬 오래 전부터 내 마음속에는 상처가 쌓여있고 단시일에 치유될만한 게 아니었던 것 같아. 단순히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 번잡함 자체가 내 무예를 흔들 정도로 큰 게 아니었단 말이지. 반대로 처음부터 그 상처를 치유하려고 소을촌장의 삶을 꾸미다 보니까 힘든 게 힘든 게 아니었고 역으로 주변에서 지적해줘야 깨달은 거라고 할까….”
“흐음….”
나는 조금 머릿속이 꼬이는 걸 느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떠오른 게, 마음의 상처가 크고 불안하면 무조건 지금의 나처럼 실력이 떨어지게 되는 건가? 하지만 그건… 아니지 않아? 나 말고 다른 절대지경 고수들도 살면서 큰 삶의 역경과 고독을 거쳤을 건데….”
“…….”
“아, 제대로 설명이 안 되네 제길…. 어쨌든 그런데도 의념천주는 마음과 상관없이 발동되기 때문에 헷갈리기도 하고.”
나는 말하다가 내 생각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 같고 버벅거리자 짜증이 났다. 누군가를 적당히 속여넘기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을 상담하는 것이기에 쓸데없는 기교를 부리지 않으니 당연히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수라는 알아들은 듯한 눈빛으로 내 말을 받아주었다.
“그렇군. 마음이 무예에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상관관계가 모호한 점이 있었다고 느낀 거로군. 절대지경이라 불리는 무예의 절대자들이 그 마음의 상하고저에 일희일비한다는 것도 모순으로 느껴지고 말이지.”
“……아!! 그래 바로 그거야!!”
“흠. 나도 수천 년 전부터 꾸준해 해왔던 고민이긴 하군.”
아수라는 턱을 괸 채 말을 이었다.
“우리가 부정하려 해도 그 날의 심리상태가 무공의 역량에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다. 기분좋은 날은 무공이 한층 더 강렬해지고 기분나쁜 날은 약해지지. 하지만 절대지경쯤 되면 그 마음의 부침(浮沈)을 수양으로 통제하여 변화폭을 좁히기 때문에 평소에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할 일은 아니긴 하다.”
“…….”
“다만 네 말대로 그 수양으로도 통제불가능할 정도로 마음의 송곳이 내면의 장막을 뚫고 나와버리고, 심지어 그 기제가 이해되지 않는 때가 있지. 흔히 그걸 가리켜 무림에서는 심마(心魔)라고 표현하곤 했다.”
“심마라고?”
“그래. 평범한 수준에서는 심마를 겪으면 기경팔맥에 즉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내공이 폭주하거나 몸의 운신이 힘들어지지. 하지만 너는 가진 내공이 너무 많고 무예수준도 높아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뿐이야.”
“왜지?”
“보통 무인의 내공이 세숫그릇, 초절정고수의 내공이 개울물이라 한다면 너의 내공은 장강(長江)이라고 할 수 있지. 거기에 사소한 왜곡이 생기거나 잠깐 엎어진다 해봐야 무슨 변화가 생기겠나.”
“…….”
“거기에 구궁파천뢰를 수련한 것도 한몫 하겠지.”
그렇게 말한 아수라가 약간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보며 말했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 너는 지금 심마(心魔)의 상태다. 초입이라고 할까…. 자각하지 못하는 단계로군.”
“으음…. 그렇군!”
나는 아수라가 내 상태를 정의해주자 그제서야 요 며칠 동안의, 아니 그 이전부터 내 마음을 갑갑하게 만들던 모든 상태가 이해가 되었다. 당장 몸이 뒤틀리고 피를 토하는 게 심마 현상의 통상적인 관념이었기에 그렇지 않은 내가 심마 상태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명상만 며칠째 빠져있는데 거부감이 없었던 건가….’
마음의 뒤틀림이 심해질수록 내 무공전반이 영향 받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명상을 시간낭비라 느낄 여력도 없이 자기자신에게 필사적으로 몰두했던 것 같다. 내가 다소 명쾌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을 때 아수라가 말했다.
“물론 심마는 둘째 치더라도 네 생각은 꽤 흥미롭군. 요는 절대지경의 실력을 좌우하는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 마음의 힘이 의념(意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민했던 것인가?”
“그래! 요 며칠 내내 그걸 생각했다.”
나는 아수라가 마치 독심술이라도 하는 듯 알아봐주자 무척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설명이 부족해서 못 알아들을 것 같았는데 마치 찰떡처럼 다 알아줄 줄이야!
“무예에 쓰이는 [마음] 그 자체가 의념과는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대우(對偶)를 설정해 본 거군. [마음]이 없어도 [의념]을 쓸 수 있느냐는 식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별개의 존재라면 하나가 없어도 다른 게 발동될지도 모르잖아.”
“…….”
“뭔가 대답을 줄 수 있겠나?”
그러자 아수라는 골치아픈 듯 인상을 찌푸렸다.
“모르지….”
“모른다고?”
“지금 네 의문은 내가 다 옛날에 한번씩 생각해봤던 거라서 이해할 수 있을 뿐이야. 수천년동안 수백수천 번은 생각했던 심마의 이론인데 설마 모르겠나? 다만 내가 다 풀어서 얘기해준다고 해서 내가 너의 그 질문에 답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모른다는 말인가?”
“그래. 결국 그 고민의 요점은 마음과 의념이 같은 것인가 하냐는 의문이 되겠지. 나는 전혀 모르는 영역이야.”
아수라는 슥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동굴의 벽에 기대어선 후 팔짱을 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만 접근방법을 달리하는 걸 추천해 보지. 지금같은 식으로 생각해선 수십년동안 면벽수련을 해도 모자랄 거다.”
“어떤 식으로?”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의념은 보통 인간들이 생각하는 집중력이나 필사적인 의지와는 별개의 영역이다. 왜냐하면 집중력과 의지가 극에 달한다고 해서 의념을 저절로 깨우치는 건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의념을 얻으려고 개고생했던 여정을 생각하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의념에 강력한 집중력과 의지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념에는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또 다른 균형감각과 조화가 필요했고, 그건 오랜 수양을 통해 인위적으로 발현되는 기술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의념을 수행하여 익숙해지다보면 어느 순간 절대지경이 되고 그때는 의념이 천주를 이루어 다른 차원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지.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의념이 내공처럼 수련해서 안정적으로 적공(積功)되는가?”
“…….”
“여기에 대해서는 세상의 모든 무림인들이 얘기를 못할 수밖에 없지. 의념은 내공처럼 쌓이는 개념이 아니거든. 한가지의 뜻을 계속 [벽]에 밀어붙이다보면 그 개념이 확장되면서 마침내 언덕을 넘어서게 되는 느낌이고, 그 와중에 내공처럼 의념을 쌓아서 양을 불린다는 건 아예 개념이 맞지 않잖나.”
“그렇긴 하지.”
“절대지경끼리의 고하가 쉽사리 나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지. 의념의 순수한 양을 뻥튀기할 수단은 딱히 없거든. 그저 자신이 의념천주로 꾸려온 무술의 역량이 얼마나 창조적으로 발휘되는가가 승패를 가르는 것 뿐…. 여러모로 의념이란 건 불확실한 개념이다.”
나는 침착하게 듣고 있다가 아수라에게 반문했다.
“그 말은….”
“흥. 그걸 내가 깨우쳤으면 이러고 있겠나. 진작에 무신이라도 만났겠지…. 하여튼 복잡한 얘기긴 하지만 네게 단서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군.”
“단서?”
“그래. 복잡한 얘기라면 단순하게 생각하자는 거지. 우리는 절대지경의 고수, 의념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아수라의 말이 동굴에 울려퍼졌다.
“마음이란 무엇이냐.”
나는 그 질문에 머릿속이 또 한번 먹먹해짐을 느꼈다. 아수라의 저 질문은 내가 이 동굴에 틀어박힌 동안 틈만 나면 생각났던 질문이다. 그러나 과연 저 극도로 철학적인 질문에 해답이 있기는 할 것인가? 동서고금의 온갖 현자와 철학자들이 고민했음에도 답을 내지 못한 문제를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그러자 아수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철학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게 아냐. 말 그대로 마음이 뭔지 생각나는대로만 말해봐. 그런 식으로 네게 도움이 될만한 답을 천천히 찾아가는게 현실적인 해법이지. 그게 진짜 답이건 아니건 상관없어.”
일리가 있다. 나는 잠깐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흠…. 생각이 마음이잖아.”
“역시 백웅답게 단순하군. 그럼 모든 존재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나?”
“아닐 수도 있다. 네 방식대로 하자면 마음이 없음에도 생각하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틀린 게 되어버리지.”
“미친….”
그런 게 어딨냐?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생각을 해?
내가 어이없는 눈으로 아수라를 쳐다보자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인공지능(人工知能).”
“……!!”
“인공지능 뿐만이 아니야. 네 기억에 따르면 인간의 문명은 근미래에 생각할 줄 아는 기계를 만들어내게 되지. 그러나 그 생각하는 기계에게 과연 마음이 있나?”
“…그건.”
나는 대답하기 난감했다. 왜냐하면 사마령 교수가 내게 현대문명을 가르칠 때 했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1세기에 사용되는 인공지능이란 고도로 발달한 연산기계입니다. 창조적인 해결법을 스스로 찾는 기능이 있습니다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을 생명체라고 인정하지 않아요.]
[왜?]
[그 ‘창조적인’ 해결법조차도 인간이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스스로 발전하는 기능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시작과 끝을 찾아가는 효율성 자체가 의식의 근간일 뿐, 거기에 마음이나 감정은 존재하지 않죠. 0과 1에서 시작된 전뇌의 발달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품게 되자 진짜 새로운 걸 만들어낸 것처럼 세간에서 착각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인공지능은 인간의 자식이므로, 어떤 식으로 어떻게 발전되든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 없는 존재죠.]
…왜 이런 얘기가 지금에서야 생각나는 건지.
사마령의 이야기는 아수라의 이야기가 전적으로 옳다고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난감해하는 표정을 보자 아수라가 약간 즐거워하며 말했다.
“보아하니 기억속에서 사마령 교수의 이야기를 끄집어 냈군. 나도 사실 방금 생각나서 한 말이다.”
“…씁.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어서 뭐라고 할 수가 없어. 하지만 기계에 마음이 없다는 건 인간의 관점일 뿐 녀석들에게도 비슷한 게 있을수도 있잖아.”
“전뇌자(電雷子)처럼 말이냐?”
“…….”
아픈 기억이군.
내가 침묵하자 아수라가 말했다.
“사실 난 네 500년 후의 미래를 함께 겪은 게 아니라 그저 기억으로 봤기 때문에 전뇌자가 어떤 녀석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뇌자가 사마령의 예측을 벗어난 존재이며 강인공지능쯤 되면 생명체라고 볼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
“그럼 됐네. 인공지능도 마음이 있는 거잖아.”
내 반박에 아수라가 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러면 더 문제가 되는데?”
“뭐가 문제가 돼?”
“생명체가 가진 심장이나 뇌의 기능이 마음의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면, 안드로이드가 된 신승이나 강인공지능 전뇌자같은 기계마저도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아수라가 고개를 까닥였다.
“마음에 필요한 건 대체 무엇이 되는 거냐? 무엇이 마음을 만들어 내는 거지?”
“…….”
“더 깊게 들어가자면, 한때 인간이었던 내가 신의 육체를 이식받는 것으로 마왕이 되었지만 여전히 인간의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 그러나 내 뇌는 인간시절의 그 뇌가 아니야.”
“아….”
“생각을 만들어내는 뇌조차도 필수조건이 아니지. 육체는 마음에 있어서 별로 중요한 게 아니란 소리야. 하지만 그럼 무엇이 필멸자의 ‘마음’을 만들어내는 거냐고.”
“아, 아니 그게….”
“이렇듯 마음이 구성되는데 물질이 전혀 필요 없는 거라고 한다면, 돌덩어리나 마음을 가진 존재의 차이는 어디서 구분되는 거지? 돌덩어리에는 왜 마음이 없냐.”
“…….”
헉….
너, 너무 어렵다….
나는 단숨에 생각이 하얗게 비워지는 것 같았다. 내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우물쭈물하자 아수라가 말을 이었다.
“뭐, 사실 이런 건 말장난일 뿐이지. 내가 수천년 동안 이미 생각했던 걸 다시 입으로 정리했을 뿐이야. 사실은 마음이 뭔지 알 게 뭔가 싶다.”
“…엥? 이제 와서 그런 소리냐?”
아수라는 염증이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이 그러니까.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고 해서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니잖나?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자칭 현자, 사두라고 하는 자들이 이런 철학적인 이야기로 잘난체를 했지만 모두 내 칼 한방에 목이 달아났다. 나는 그 때부터 마음에 대해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
“입만 살아있는 놈들의 말장난일 뿐이야.”
단순무식한 새끼….
내가 질려하고 있자 아수라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래도 기왕 온 김이니 네가 답을 찾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 주지. 내 질문에 스스로 머릿속에서 정리되는 게 있다면 털어놓아 봐라.”
“그래.”
어찌되었든 아수라는 지금 나를 도와주러 온 거였다. 내게 찾아온 심마를 극복할 때까지 옆에서 도와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에 평정심을 되찾고는 다시금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잠깐…. 그러면 이젠 또 마음과 생각은 별개라는 게 되어버리는 건가?’
나는 전뇌자와 안드로이드 신승의 예시로 기계에게도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반대로 마음을 가지지 못한 기계가 훨씬 많았다. 그렇다면 마음을 가진 기계는 그렇지 못한 기계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흐음…. 어떻게 해야 기계가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 그런 이야기가 되어버리나.’
마음을 가진다고?
마음은 소유하고 아니고의 개념인가?
하지만 생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미 마음은 자연스럽게 있었는데 그게 정말 별개일 수가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느껴지는 게 있어서 홀로 중얼거렸다.
“의념은 생각이 필요없어. 그저 마음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이 구현될 뿐….”
“마음의 밭을 이야기하는군. 확실히 의념은 그런 개념이지. 불가의 팔식(八識)처럼 마음과 생각이라고 하기엔 더욱 원초적인 걸 퍼올리는 것 같아.”
“그리고…. 미래의 안드로이드가 된 신승은 의념도 쓸 수 있었어.”
“그건 좀 흥미롭군. 그러고보니 그런 기억도 있었지.”
“…….”
나는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무언가가 기초로 자리잡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아수라에게 요구했다.
“아수라. 마을에 있는 망량을 데려와 줘. 아주 정중하게.”
“그러지.”
타닷
잠시 후 아수라가 마을에서 망량을 데리고 도착했다. 망량이 자기 발로 술법을 써서 온 듯 했고, 아수라를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촌장. 이 자는 누구요?”
“음…. 놀라지 말고 들으시오.”
하지만 놀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말을 이었다.
“마왕 팔부신중의 한 명인 아수라이자 천축무림에서 수백년간 지존의 자리에 있는 파순이오.”
“…….”
“아, 마왕의 힘은 지금 봉인해서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무, 무슨….”
그러자 망량은 얼굴이 잠시 새하얗게 되었고, 아수라는 망량을 쳐다보지도 않고 허공만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망량에게 서둘러 말했다.
“정말 아수라는 우리 적이 아니오. 도리어 앞으로 우리 마을을 도와줄 조력자가 되겠지. 아무튼 긴장하지 마시오.”
“흐으으음…. 알겠소…. 어찌되었든 납득할 수밖에…. 그래서 나를 면벽수련하는 동굴에 불러온 이유가 뭐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망량에게 말했다.
“망량. 당신은 생각과 마음이 별개라고 생각하시오?”
“허어? 그거 참 철학적이군….”
“으으. 역시 당신도 어려운 건가….”
그러자 망량이 장난스럽게 으쓱했다.
“그럴 리가. 당신처럼 초인적인 존재가 이렇게 인간적인 고민을 하다니 신선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오.”
“그럼….”
“이런 현학적이고 쓸데없는 토론은 언제든 환영이오. 전후사정을 말해주면 성심성의껏 말해드리리다.”
“좋소.”
나는 망량에게 지금까지 아수라와 했던 문답에 대해서 차례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망량은 생각에 잠기는 표정이 되었고,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마음과 의념이 무슨 관계인가 고민하다가, 이젠 생각과 마음의 차이에 대해서 한 번 짚어보고 싶어졌소. 하지만 너무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하니까 머리가 빠개질 것 같으니 이런 걸 제일 잘 알 것 같은….”
“내게 질문하고자 했던 거군.”
“그렇소.”
“흐으음….”
망량이 침음성을 잠시 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부채를 쫙 하고 펼치며 말했다.
“오랫동안 공부를 해 온 학인의 입장에서 생각이란 걸 정의하자면 바로 인과(因果)를 도출하는 능력이라오. 마음과는 확실히 다를 수밖에.”
“……? 응? 인과가 왜 나오는 거요?”
“그야 생명체가 생각을 갖게 된 이유부터 짚어봐야하기 때문이 아니겠소.”
망량은 간만에 즐거운 얘깃꺼리가 생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 들은 이야기지만, 인간은 자생적으로 나타난 생명체가 아니며 혼돈의 존재들이 빚어서 만들어낸 종족이라 했소. 다만 태생적으로 하위종족으로 만들어졌으되 인간의 근본이 되는 건 오랜 세월동안 이 땅에서 진화해온 원생인류라고 들었지. 그러므로 인간은 오랜 세월동안 생각을 하는 능력을 뇌를 발달시키면서 키워왔던 것이오.”
“흐음….”
“근데 생각해보시오. 원생인류라 하는 원시적인 존재들이 어째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했겠소? 그건 바로 생각을 하는 능력이 생존에 적합한 능력이었기 때문이오. 그래서 뇌의 용량을 키우면서까지 진화한 거지.”
“……?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생각해야 생존할 수 있는건데.”
내가 황당해하자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전혀 당연하지 않소. 동물이 제대로 생각해서 인간처럼 도구를 만들고 무리와 왕국을 만들어내는 걸 본 적이 있소? 혼돈의 하위종족이라지만 현재 이 세상에서는 인간만이 갖고있는 능력이오. 즉, 인류가 무수한 동식물과의 생존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해 배양해낸 특수한 능력이지.”
“흠!”
“다만 동물 또한 기초적인 생각은 갖고 있소. 그 생각을 고도화시킨 게 인간일 뿐이지. 그렇다면 생각이란 근본적으로 어떤 점에서 생존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 같소?”
“어…. 그게… 해선 안될 것과 해야할 것을 구분하게 해줘서?”
내가 더듬더듬 대답하자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것이오. 가(可)와 불가(不可)를 구분하는 능력. 그것은 본디 생명체의 본능에 존재하는 능력이지만 그걸 한층 고도화시킨 게 바로 ‘생각’이오. 그리고 이 생각의 본질이란 건 바로 인과(因果)를 유추하는 능력이지.”
망량은 한층 강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해보시오. 우리는 어떻게 ‘현명한’ 행동과 ‘어리석은’ 행동을 구분할 수 있소? 그 행동의 원인(因)과 결과(果)를 정확히 읽어내어 가(可)한 행동을 한다면 현명한 것이오. 반대로 그 원인과 결과를 몰라 불가(不可)한 행동을 선택한다면 어리석은 것이오. 아주 간단하지 않소?”
“으음…. 그, 그런가.”
내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생각이 더욱 고도화되면 지능(知能)으로 구분되지. 즉, 똑똑하다는 것은 바로 어떤 사건에 대하여 그 인과(因果)를 정확히 살필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오.”
“호오…!!”
“미래예지 능력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 아무리 뛰어난 지능을 갖고 추리를 하더라도 실제로 인과(因果)를 확실히 알고있는 존재를 상대로는 원숭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니까.”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탄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팔짱을 끼며 듣고 있던 아수라가 문득 입을 열었다.
“재밌는 얘기군. 그렇다면 인과율(因果律) 또한 생각이 고도화된 지능으로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인가?”
“으음! 인과율….”
망량은 침음성을 내다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질문이구려. 스승님께 배워서 인과율의 개념은 알고 있으나, 그게 우리가 통상적으로 쓰고 있는 인과라는 단어와 같은 것이라고 보지 않소. 위대한 우주적인 법칙일 터인데 나 따위가 어떻게 인과율을 운운할 수 있겠소.”
“뭐 그렇겠지.”
“다만….”
망량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만일 이 세상의 모든 질료와 법칙을 알고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모든 인과를 계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이론상으론 그렇소.”
“…….”
“뭐…. 그 전에 우주의 한계를 관측할 수가 있어야 하겠지만 이건 더 터무니없구만.”
뭐지…. 어디선가 비슷한 얘기를 들어본 것 같은데.
나는 망량의 이야기에서 기시감을 느끼다가 말했다.
“흠.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우주의 모든 인과를 파악하고 있는 존재라는 뜻이 되는구려?”
“뭐 그렇게 될 거요. 헌데 그런 게 어딨겠소. 신적인 존재들도 그럴 순 없을텐데.”
“하긴.”
황제 공손헌원도 인과율 계산능력이 있었지만 본인이 끼어들면 읽을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다. 그리고 황제 공손헌원보다 뛰어난 [옛 지배자]는 우주에 거의 존재치 않았으니, 그런 존재는 아마 있을 수가 없으리라.
‘시답잖은 상상력이었나.’
나는 입을 쩝쩝 다셨고 망량이 말했다.
“아무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생각과 마음은 완전히 다른 개념일 수밖에 없소. 생각은 인과를 유추하는 능력이지만 마음은 꼭 그렇진 않거든.”
“마침 잘 됐군. 그럼 당신은 마음이 뭐라고 생각하오? 마음은 감정이오?”
“마음이란 유심론(唯心論)의 세계에서만 설명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오.”
“……?”
유심론은 또 뭐야?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망량이 자기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유물론의 반대되는 개념이오만…. 쉽게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관념이자 유심이라는 것이오. 즉, 우주의 실체는 이 우주 모든 존재들의 정신(精神)과 관념이 모인 것이며, 물질은 그에 따라 부차적으로 존재한다는 관점이지.”
“…….”
“너무 어렵게 설명했구려. 예시를 들자면 으음….”
저벅
망량이 천천히 동굴 바깥쪽으로 걸어갔고, 열 걸음 정도를 걸어가자 동굴 바깥으로 손을 내미는 동작을 취하며 말을 이었다.
“백웅. 지금 당신의 위치에서 육안으로 동굴 바깥의 세상은 한정적으로만 보일 것이오. 특수능력을 쓰면 더 보일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보이는 범위는 한정되겠지. 그렇지 않소?”
“그렇소만….”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동굴 바깥의 세계는 당신이 보고있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 것이외까?”
나는 당혹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당연히 존재하지.”
“허나 유심론에 따르면 그럴 수도 있소.”
“……?”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오로지 마음(心)이며 식(識)일 뿐. 마음이 존재하기에 물질의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이오. 그리고 이 말을 확장시켜서 생각한다면, 존재가 인식하지 않는 범위의 세계는 관측하기 전에는 존재치 않는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소?”
“그, 그럴 리가.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이오?”
“인식하지 않는 곳에는 마음이 존재치 않으니까. 마음과 식(識)이 없으면 물질도 없지. 그게 유심론에 따르면 합리적일수도 있소.”
“…….”
그게 말이 되나?
안 되는 거 같은데 망량 말을 들으니까 되는 거 같기도 하고….
내가 당황해서 멍하니 있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수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궤변이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설령 인류가 모르고 있더라도 그 곳에는 태초의 악신과 [옛 지배자]가 존재한다. 굳이 너희의 섬김을 받지 않아도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전능에 가까운 사악이 있다는 소리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유심론을 파괴한다고 볼 수 있지.”
그러자 망량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수라. 화내지 마시오. 나는 그저 유심론이 뭔지 백웅에게 알려주려고 예시를 들었을 뿐이오. 유심론이란 관념론이니, 사실 종교인들이 가장 믿기 쉬운 이론이며 실재적 세계관과는 거리가 멀지. 나는 그저 학인일 뿐이니 이것 또한 이론의 하나로 파악할 뿐 믿고있진 않소.”
“흥.”
“아무튼 그렇소. 이 유심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음은 육체나 생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별개의 독립된 존재지. 마음의 인지(認知)가 추구하는 건 생각이나 지능같은 인과(因果)가 아니야. 그러므로 육체가 있어야 마음이 있느니 하는 논란이 유심론의 세계에서는 애초에 논란이 되지 않는 것이오. 왜냐하면 마음은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 되어버리니까….”
“그, 그것 참 편리한대로 써먹는 느낌이구려.”
“그래도 어쩔 수 없소. 이게 원래 이런 이론이라서.”
망량은 빙긋 웃고는 말했다.
“자 어떻소? 당신의 고민에 좀 도움이 된 것 같소?”
“…솔직히 잘 모르겠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같군.”
“그럴 줄 알았소. 사실 유심론은 나도 그 실체를 잘 모를 정도로 까다롭고 어려운 이론이오. 도움이 안 되었다면 불가(佛家)라도 찾아가보길 권하오.”
“불가는 왜?”
“유심론이라 할 수 있는 팔식(八識)의 개념은 불가에서 소승불교를 근간으로 하여 나타난 것들이오. 그 근간은 천축에서 출발하였으며 달마가 서방에서 중원으로 전파하러 가져왔다고 알고있소.”
“……!!”
“이 수련법이 향후 선종(禪宗)의 화두(話頭)라는 수련법으로 발전했는데 어쨌든 근간은 천축이오.”
달마?!
내가 흠칫하고 놀랐다. 그리고 말했다.
“달마대사가 팔식이란 걸 전수했단 말이오?”
“그렇소. 소승불교 종파의 이론같은 걸 불경과 함께 중원의 불승들에게 주었는데 소림사를 통해서 전 대륙으로 퍼졌다던가…. 제대로 퍼진 건 선종의 발흥 때부터일거요. 하여간 기록으로는 그리 되어 있군.”
“으음….”
“왜 그러시오? 달마대사가 왜.”
하지만 나는 대답하기 힘들었다.
‘달마가 이유 없이 유심론을 다루는 팔식의 이론을 중원으로 갖고 오진 않았을 거야.’
달마는 전생자였다.
[옛 지배자]와 맞서싸워 세상을 구하여 진공가향을 행하려 했던 존재!
그런 달마가 자신의 후대에 유심론의 수행법을 전하려 했다는 것은, 유심론이란 게 전생자에게 있어서 무언가 [의미]가 있다는 뜻이리라.
아수라도 그런 내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입을 열었다.
“이봐. 기지도 못하면서 뛰려고 하지 마라. 망량보다도 유심론을 모르면서 또 의욕만 앞서서 뛰쳐나가려는 거냐? 신승이라도 찾아가서 질문하게?”
“하지만….”
“심득(心得)이란 그렇게 벼락치기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네 심마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 망량의 이야기를 단서로 좀 진득하게 생각을 해 보라고.”
“음…. 알았다.”
아수라의 말이 옳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자리에 앉아서 명상을 시작했고, 망량과 아수라는 그런 나를 멀뚱하니 쳐다보기 시작했다.
‘…마음, 생각, 그리고 의념…. 모두 다른 것이구나.’
꽤 긴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평소에는 다 비슷한거라 생각했지만 전문적으로 파고드니 하나하나가 다른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마음과 생각의 차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하지만 의념은?
마음이 유심론에 따라 인지를 형성하는 존재이고, 생각이 인과를 유추하는 능력이라면 의념은 과연 어느 쪽이란 말인가?
“…….”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의념이 어느 쪽이냐 하면 생각보다는 ‘마음’에 가까운 존재다.
늘 무예를 펼칠 때마다 딱히 생각은 없어도 되지만 의념천주에 마음의 작용이 없으면 아예 의념 자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음이 없으면 의념은 쓸 수 없는 것이 맞다.
그 때였다.
[나는 자기자신을 신승 명호대사라고 생각하는 안드로이드일 뿐 아닌가?]
[의념은 쓸 수 있으나 의념천주는 쓰지 못하는 게 현재 노납의 한계. 백웅 그대는 이 점을 유념하여… 의념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봐 주시오.]
[의념을 넘어선 곳에… 무(武) 그 자체의 의지가 존재할지도….]
내게 의념을 실은 나한주권의 시전을 보여주었던 안드로이드 신승의 말.
그 말에는 깊은 현기가 깃들어 있었으며, 나는 그 당시에는 신승의 말 뜻이 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흘러가고 말았다. 그리고 상당한 시일이 지난 지금, 나는 조금이나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 것 같았다.
의념천주(意念天柱).
의념과는 별개로 절대지경의 경지에서 만들어낸 기둥!
나는 지금까지의 담화에서 이 의념천주만이 사상의 연결고리에서 붕 떠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생각이나 마음, 의념같은 건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만 의념천주만은 어째서 기둥의 형태인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이 의지의 기둥은 과연 [무엇]을 떠받치고 있는 것인가?
“그렇군.”
500년 후의 신승은 내가 의념천주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를 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