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285화 (1,28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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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을지문덕?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내가 알겠다는 표정을 짓자 성진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이전 전생에서 [나]에게서 직접 들었던 모양이군.”

“아니…. 초무린한테 들었어.”

그러자 성진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초무린에게? 지금은 투선이 된 그 녀석에게 들었단 말인가?”

“응. 분명히 호월 교주가 가우리의 을지문덕이라는 천재를 제자로 삼으려고 중원의 북방을 돌아다니던 중 초무린을 구해서 제자로 삼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가우리에서 을지문덕을 직접 만났으나 그에게 실망해서 되돌아갔다고 했지.”

“흐음….”

“너한테 을지문덕에 대해서 들은 적은 없어. 뭔가 다른 걸 알고 있는 건가?”

성진은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초무린은 그리 알고 있겠지만 나는 그 당시에 호월 사형에게 좀 더 상세한 전말을 들었다. 어린나이의 초무린과는 좀 다른 얘기였지….”

“말해 줘.”

“사형에게 듣기로 을지문덕은 불가일세(不可一世)의 천재, 아니 가우리 사상최고의 천재였다. 그의 나이가 스물이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무예수준이 초절정에서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으며, 학문에도 무척 능통하여 가우리의 대학사를 초월했으며, 군략(軍略)또한 굉장하여 대장군의 재목이었고, 시서예화에 달통하여 명인(名人)의 수준이었으며, 인심장악도 대단히 뛰어나서 가우리의 귀족가에서 이미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외모 또한 지금의 그대처럼 절세미남이었다고 한다.”

“…….”

“그 외에도 기마술이나 언변이나 농사법이나 암기술, 상업이나 법치 등등 다양한 것에 달통했다고 하더군.”

나는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그런 인간이 존재한다고?!”

무공이야 진소청 또한 그랬을 테니 무공의 천재일 순 있다고 친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물도 되지 않은 애송이가 학문 ,군략, 시서예화, 정치의 천재이기까지 하며 외모까지 타고나다니!

그렇게 완벽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성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히 말했다.

“그 모든 건 본인이 주장한 게 아니라 옆에서 정보를 모았던 사형의 객관적 평가였다. 도리어 세간에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숨기고 있었는데도 낭중지추처럼 드러나게 된 것이고 가우리의 모든 귀족과 왕족들이 그에게 가우리의 미래를 맡기고 있었다고 들었지.”

“…….”

“그리고 그대의 반응대로 사형 또한 무척이나 미심쩍어했지. 인간세상에서 정점을 찍을만한 재능을 하나도 아니고 열 개 이상 지니고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우연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미심쩍음 때문에 초월자와 연이 닿아있다고 의심했던 것인가?”

“그래…. 그리고 그 의심은 몇십 년 후 현실이 되었지.”

잠깐 눈빛이 가라앉은 성진이 말을 이었다.

“이후 을지문덕이 충분히 장성했을 때 여수전쟁(麗隋戰爭)이 발발했지. 당시 중원을 지배하던 대제국인 수(隋)의 양제가 가우리를 침공한 전쟁이었는데, 당시 수 제국과 가우리의 전력차는 어마어마했기에 누구든 가우리의 패멸을 예상했던 전쟁이었다.”

“그쪽 역사는 잘 모르는데…. 가우리가 이겼나?”

“수십만 대군이 살수(薩水)에서 전멸 가까이 몰아붙여졌고 수제국의 패배로 끝났다. 그 대첩을 주도한 게 바로 을지문덕이었다.”

“으음…. 과연 대단한 인물이군.”

“하지만 사형은 그 살수대첩을 의심하여 직접 조사했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게 뭐지?”

“당시에 지형상 수공은 불가능했는데도 여기저기에서 뜻밖의 수공이 발생하여 수 제국의 정예가 각개격파된 정황이 있었지.”

“……?”

“쉽게 말하자면…. 물이 없는 곳에서 물이 출현하여 파도와 홍수가 생겨났다는 말이다.”

엥?

내가 당황하자 성진이 말했다.

“물론 당시의 전황을 보면 가우리 군이 이미 전략적으로 이길만한 요건을 갖추고 이길 싸움을 걸었던 게 맞으나, 그 승리를 더욱 압도적으로 만들기 위해 신적인 권능이 개입했었다는 말이다.”

“권능…!! 설마….”

“그래. 을지문덕이든 그를 가호하던 신적 존재든…. 무언가가 분명히 배후에 존재했었다. 사형은 그걸 알고 난 후부터 가우리를 경계하기 시작했지. 물의 힘을 다루는 신적인 존재가 그들을 가호하는 게 틀림없었으니까 말이야.”

나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단(檀)의 일족…!!”

“그것도 알고 있군.”

“당연히 알 수밖에 없지….”

틀림없다.

을지문덕은 단의 일족 중 한명인 게 분명했다. 나는 머릿속에서 예전에 500년후의 세계에서 정도령에게서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단의 일족이란 무엇이지?]

[제 기준으로 말하자면 환생(還生)을 해서 다른 몸으로 태어나는 겁니다. 다만 모든 단의 일족이 그렇진 않고 특수한 경우가 있지요.]

[그 말대로입니다. 단의 일족이 되려는 자는 제단(祭壇)으로 올라가서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그 때 낡은 육체가 바쳐지고 새로운 육체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그 중에서 하나의 정보를 골라내어 떠올릴 수가 있었다.

[네 번째 이득은 단의 일족끼리 경험의 공유입니다.]

[흠…. 인터넷을 아십니까?]

[현대의 인터넷에는 저장을 위한 공간이 따로 존재하는데 그걸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이라고 합니다. 딱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죠.]

[단의 일족이 어디선가 경험을 얻어서 공통저장공간에 업로드를 하면 다른 단의 일족이 그 경험과 술수를 가져갈 수 있다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흑요석의 술법만큼 편리하지 않고 기억전송이라기 보다는 객관적 지식의 편취에 가깝습니다. 누군가가 이미 공부하여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책이나 참고서를 받는 느낌이죠. 아주 기초적인 단계의 기억전송… 아니 요령전송에 가깝군요.]

바로 이거다.

이게 틀림없다.

“성진. 사실은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단의 일족은….”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단의 일족에 대해서 정도령에게 들었던 내용 전반을 성진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 내용을 꼼꼼하게 듣고 있던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백웅 그대의 말대로라면 을지문덕은 [단의 일족]끼리 공유되는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서 그 모든 재능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네. 아마 영아(英兒)일 때부터 의식이 존재했고 하나하나의 분야에서 재능을 끌어와서 수련해왔던 게 분명해.”

“…무섭군….”

나는 질려서 고개를 저었다.

설마 어렸을 때부터 천재가 되려고 노력할 수가 있다니! 그건 완전히 사기가 아닌가? 남들이 인생을 겪으며 수십 수백 년동안 노력해왔던 걸 어릴 때부터 날로 먹으면서 수련할 수 있다니.

나는 또 한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전율했다.

“자, 잠깐. 그렇다면 단의 일족은 그 을지문덕같은 인공적인 천재가 넘친다는 소리가 되는데.”

“아마 그렇겠지.”

“으으….”

예전 잠시 보았던 단의 일족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무공을 지니고 있었던 게 이해가 된다. 인공적으로 재능을 부여받은 자들이 불로불사까지 지닌 채 계속 수련해왔으니 그 결과물은 평범한 인간을 초월할 수밖에 없으리라.

“다만 한계는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계라고?”

성진이 말을 차분하게 이었다.

“을지문덕의 시대는 천여 년 전에 가까우며 그 이후로도 단의 일족은 많이 배출되었겠지. 허나 그들이 세상을 뒤집어엎거나 도모하지 못했다는 건 그들 사이에도 개인차와 역량차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네.”

“무슨 뜻이야? 다 천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란 건가?”

“아마도. 물론 그 모든 정련된 지식을 소화하는 것은 개인역량이 아니겠는가? 흑요석처럼 기억이 전송되는 게 아니라면 잘 정리된 자료가 있어도 그걸 내면화하는 건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아.”

“내 생각이지만 그 을지문덕이란 자가 다수의 재능을 내면화시키는데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단의 일족의 잠재력은 놀랍긴 하지만 신의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보네. 인간의 문명이 발전하면 언젠가 이룰 수 있을 정도겠지.”

“…….”

“인간의 문명은 아직 우주적으로 볼 때 밑바닥에 가까우니…. 놀랄 일까진 아냐.”

나는 성진의 담담한 말에서 그가 무척이나 신과 인간의 수준차에 대해 확실한 기준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신급은 아니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는 건, 다시 말하자면 [옛 지배자]들이 어느 정도의 압도적인 권능을 갖고 있는지 충분히 체험해봤다는 뜻도 되리라. 과연 전대 전생자인 달마의 제자다웠다.

“도리어 내가 신경 쓰이는 쪽은 재능보다는 단의 일족이 얻게 되는 [새로운 육체] 쪽이다.”

“육체가 왜?”

“다른 재능은 노력으로 체화할 수 있다 하지만 외모만큼은 노력해서 변하는 게 아니지. 아예 변신술을 익히거나 골격성형을 하는 수밖엔 없는 영역이야. 하지만 을지문덕은 절세미남이었고, 그건 백웅 네가 말한대로 제단에서 낡은 육체를 바치고 새 육체를 얻을 때 그 육체의 잠재력이나 외견을 설정하는 게 가능하단 소리겠지.”

“흐음.”

“하지만… 그렇다면 이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게 있지.”

“그게 뭔데.”

“마니산 참성단의 제단에 바쳐진 [낡은 육체]는 어디로 갔느냐는 것일세.”

“아.”

그렇네?!

내가 약간 놀라자 성진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육체를 받아서 [단의 일족]이 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은 바로 [단의 일족]의 수장인 십이율주라는 자. 그런데 아까부터 말을 들어보니 그 자는 [옛 지배자]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옛 지배자]는 아냐. 그건 틀림없어.”

“그렇다면 인신공양을 받았으나 [옛 지배자]가 아니라서 그걸 직접 흡수하거나 영혼이나 육체를 취하진 않았다는 뜻이 되지. 그럼 그가 제공받은 낡은 육체는 어디로 갔는지가 의문이지.”

“흐음….”

“그 육체의 행방을 찾는 게 단의 일족의 진짜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리라 보네.”

성진은 근처의 바위에 앉은 채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지금 듣고 나서 생각한 거지만, 아무래도 호월 사형도 비슷한 의심을 했던 것 같네. 생각해보면 황우 사형을 갑자기 데려오려 했던 것도 단순히 황우 사형을 백련교에 복귀시키려는 게 아니라 황우 사형을 데려오며 사형이 속한 [단의 일족]에 대하여 조사하려 했던 것 같네.”

“…그 말대로라면….”

나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단의 일족]이 호월을 납치하거나 살해했단 말인가!”

“…….”

성진이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건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 무척 그들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 자들에게 호월 사형을 봉인하거나 죽일만한 역량이 있는지는 모르겠네. 호월 사형은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마왕과 [옛 지배자]의 중간쯤 되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 사실상 현상계에서 사형을 상대해서 이길 자는 당시에 전혀 없었어.”

“흠. 광룡파천황의 위력은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성진의 말에 동감했다. 과거 성진과 초무린의 말 속에서 묘사되었던 호월의 무공은 정말 엄청났고 지금의 나보다 훨씬 강해보였다. 홀로 천지를 제패할 수 있었던 진정한 무림지존이었던 것이다.

“술수를 썼다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호월 사형을 함정에 빠뜨릴 정도의 술수라면 더더욱 단의 일족에 섣불리 접근해선 안 되지. 그렇기에 을지문덕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네.”

“왜? 을지문덕 또한 [단의 일족]이라면 한통속. [단의 일족]에게든 그 자에게든 접근하는 게 무슨 차이가 있나.”

“을지문덕은 조금 다르다고 들었네.”

성진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는 그 시대에 가우리에서 하백(河伯)이라고 불렸다고 하더군. 그리고 무언가 반골의 기질이 느껴진다고도 호월 사형이 내게 이야기를 했었어. 왕과 귀족들이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건 호국(護國)과는 좀 다른 성격이었다고도….”

“하백…?”

어디서 들었던 단어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자 성진이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사형은 을지문덕을 제자로 삼기는 힘들다 여겼지만 그와는 별개로 가우리를 방문했을 때 그와 어떠한 연결고리를 만들었던 걸로 보이네. 대화 속에서 그런 게 느껴졌지. 내밀한 동맹(同盟)을 맺은 것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

“내가 을지문덕을 찾아보자 하는 건 그런 이유일세. 정공법으로 [단의 일족]을 찾으려 해봐야 그 신비의 일족은 잘 꼬리를 드러내지 않을 게 뻔하니, 차라리 그들 내부의 반골과 손을 잡자는 말이지.”

정공법으로 찾아내기 힘들다는 건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여태껏 [옛 지배자]가 세계를 뒤엎기도 하고 신단수에 직접 우리가 쳐들어가기도 하고 별의별 수단을 다 써봤는데도 [단의 일족]이 자기들의 밑천까지 다 드러낸 경우는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들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얻어낸 것도 정도령이 놈들을 배신한 덕분이었다.

“그런가….”

나는 성진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고대 가우리 최고의 천재였던 을지문덕은 어쩌면 [단의 일족] 자체의 역린(逆鱗)일지도 모른다는 것!

어쩌면 그게 호월의 실종을 찾아내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는 단서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윽고 뭔가를 깨닫고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 500년 후의 성진 당신도 당연히 그걸 알고 을지문덕을 찾으려 했을 텐데 결과적으로 못 찾았잖아. 이거 허탕치는 거 아냐?”

움찔

그러자 성진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 어쩔 수가 있나. 내가 전생자인 백웅 그대보다 지식과 경험이 많을 수는 없잖은가! 나는 내가 줄 수 있는 한에서 최대의 정보를 줄 수밖에 없네.”

“으음….”

“지금과 500년 후라는 그 당시의 차이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잘 모르겠으나 그 차이점에 주목해야할 듯 싶군….”

“차이점이라….”

그때와 지금은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으음…. 잘 모르겠다…. 머리쓰기가 너무 어렵군.’

나는 한동안 머리를 쓰려다가 쥐가 나는 걸 느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천천히 알아보지 뭐. 아무튼 앞으로 내 동료가 되어서 많이 도와줘.”

“알겠다.”

“아, 맞다. 네 부하인 녹월과 묵월단의 힘도 앞으로 쓰고 싶은데 괜찮겠지?”

“물론이다. 이 금패를 가져가면 녹월이 나를 보는 것처럼 충성할 거다.”

이걸로 녹월과 묵월단도 소을촌의 부하가 된 거군.

나는 성진에게서 금패를 받은 후 말했다.

“다음에 보자.”

파앗

나는 일단은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망량에게 성진을 만났던 이야기와 십이율에 대해서 말했다.

‘500년 후의 이야기란 걸 말하면 티가 날 테니 적당히 꾸며볼까….’

다른 곳에서 겪은 일인 양 이야기에 각색을 가하는 건 꽤나 진땀빼는 일이었지만 망량은 별 의심 없이 들어주는 기색이었다. 나는 망량이 이야기를 다 듣자 질문했다.

“하여 나는 십이율이라는 단체에서 정보를 얻어내고 싶으나 십이율은 고려국의 모든 무림과 정재계에 손을 뻗치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접촉하면 바로 정보가 들어가게 될 거요. 안 들키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구려.”

그러자 망량은 왜 그리 어렵게 생각하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것도 이미 당신과 성진과의 대화에서 계책이 나와 버렸는데 뭘 걱정하시오.”

“응?”

“반간계(反間計)를 쓰시오. 소수정예를 이용해서 큰 왕국을 이면에서 다스린다는 게 말로는 그럴 듯 해보이지만 지배구조의 특징상 허술할 수밖에 없지.”

망량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 말대로라면 [단의 일족]은 고려국을 암중에서 지배하고 있지만 그 지배력은 완전하지 못하오. 그들의 손에 조종당하는 십이율의 나머지 11개 문파는 알게 모르게 만하령문에게 반발심을 갖고 있으며, 현 고려국의 지배자인 정씨가문의 가주 정철욱 또한 마찬가지.”

“흐음…. 그들 중에 첩자를 만들어서 그 첩자를 통해서 정보를 전해 받으라는 말이오?”

망량이 부채를 쫙 펼치며 자신있게 웃었다.

“바로 그렇소. 당신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단의 일족]은 강대한 단체이지만 자신의 실력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 있는 것 같더군. 그렇다면 반란을 사전제압하기 보다는 일어난 후에 사후처리를 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고, 어느 정도의 첩자는 감지도 하지 못하거나 알아도 건드리지 않는 편이리라 생각하오. 생각 외로 내부관리에 허술할 수 있겠지.”

“…….”

“분명히 그 자들은 소수정예가 지닌 지배구조의 단점이 클 것이오!”

첩자라…. 그런 계책은 여태까지 전생에서 써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색다른 관점에 흥미로워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누굴 첩자로 만드는 게 낫겠소?”

“흠.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려. 방금 전까지 말한 건 그냥 내 머릿속에서 조합한 붕 뜬 계책일 뿐이라서…. 십이율 중에서도 중심인물에 가깝고 반골의 성향이 크면서도 손쉽게 [단의 일족]에 제압당하지 않을 만큼 출중한 실력을 지닌 인물을 꼬드기는 게 최선일 것이오.”

“결국 을지문덕을 찾으라는 얘기 아니오?”

“에잉…. 그건 수단이 아니라 결과이자 목표잖소. 그 자는 호월이 점찍어놓았던 옛 반골이고, 당신이 접근할 건 이 시대의 새로운 인물이어야 하지.”

“으윽, 어렵군.”

대체 그런 놈이 누가 있단 말인가?

‘반골심이 강하고 실력이 출중하고 중심에 가까운 놈이라…. 십이율 가주 중에 그런 놈이 있었나…. 으으.’

나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느낌에 투덜거리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은 마을에서 며칠 쉬면서 낙양부터 정탐할까 하오. 정탐마도구도 생겼으니 여유있게 하고 싶군.”

“그러시오.”

스윽

나는 정탐의 망원경 [리히트오그]를 들어서 낙양황궁의 내부를 다시금 살펴보기로 했다. 팔부신중은 오래 쳐다보면 눈치 챌 수도 있으니까 가능하면 접근하지 않고 이곳저곳의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으리라.

‘흠. 이 기회에 다시 황궁 내궁의 지도를 그려놔야겠어.’

나는 그로부터 두 시진 반 동안 옆에 지필묵을 놓고 리히트오그로 관찰하여 내궁의 지도를 다시 그렸다. 이렇게 미리 파악을 해 두면 나중에 은신술을 써서 황궁침투를 할 때 편할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살펴보던 중, 나는 내성의 구석진 곳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튀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푸욱

[꺽.]

싸늘한 칼날이 쓰레기 불쏘시개를 버리던 황궁무관의 가슴팍을 꿰뚫었고 무관은 비명소리도 내지 못하고 즉사했다. 잠시 후 무관은 축하고 늘어져버렸고, 무관을 살해한 의문의 무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운이 없군. 하필 내 은신장소 근처에 오다니…. 일 척만 옆으로 갔어도 살려주려 했다. 그나마 고통 없이 보내준 걸 다행으로 여겨라.]

그것은 동영어였다.

의문의 무사가 주변을 둘러보며 시체를 묻을 장소를 고민하는 듯 하다가 구석진 곳의 나무 밑을 파기 시작했고, 잠시 후 무관의 시체를 다 묻은 후 품에서 웬 약병을 꺼내서 그 위에 뿌렸다.

촤아아아

그러자 약품이 땅에 스며들며 뭔가 녹는 소리가 났다. 무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율주가 시체의 뼈와 살을 녹이는 약이라더니 과연 그렇군. 흙을 덮고 뿌리라는 이유를 알겠어.]

슈슈슉

잠시 후 그 무사가 보이지 않는 허공을 베며 슬며시 걸어들어가자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정탐마도구인 [리히트오그]에도 전혀 존재가 감지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내가 방금 전에 놈을 발견한 것은 대단한 우연이었던 것이다.

“…….”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르는 걸 느끼며 입을 멍하니 벌렸다.

십이율에 첩자로 보낼 인재.

반골심이 강하고 실력이 출중하고 중심에 가까운 놈.

“…미야모토 무사시….”

틈만 나면 십이율주랑 한 판 붙으려는 반골심.

절대지경에 이른 실력.

십이율주의 첨병으로서 [특위]의 지위를 가진 놈.

나는 주먹을 불끈하고 쥐었다.

“너밖에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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