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282화 (1,279/1,615)

1282====================

사신지혼(四神之魂)

내가 금만재를 무술의 업에서 풀어주자 금천재는 내색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의 고수가 된다고 해도 자기 친아들이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걸 납득할 수 있는 부모는 그다지 없을 것이고, 뇌신류의 혹독한 수련은 보는 것만으로도 질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흠…. 안 한 일은 없을까?’

나는 천축무림과의 전쟁을 미룬 후 약간의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내가 혹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냐는 불안감에 가까웠다. 책사들이 있을 때는 그들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을 척척 계획해주었기에 별다른 고민이 없었지만, 지금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천하를 경영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책사들이 있을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만일에 내가 놓친 게 있다면 그것 때문에 재앙이 터지거나 평안이 사라지게 되리라. 나는 고민하다가 이윽고 뭔가를 떠올렸다.

‘그래…. 전 세계의 재앙 중에서 황궁이 가장 뜨거운 감자나 다름없었는데 너무 외면하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황궁에 포진하고 있던 고대의 괴물이 정리되었기 때문에 황궁세력이 천도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천도를 왜 꾸미는지 알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들이 돌발행동을 해도 내가 어디서부터 막아야할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다.

황궁에 직접 뛰어들어서 싸우진 않는다고 해도 황궁의 정보를 알아내야 해!

나는 이 고민을 망량에게 말했다. 그러자 망량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흐음…. 진언을 하기 전에 내게 몇 가지 좀 말해주시오.”

“무엇을 말이오?”

“제갈유룡이 본디 무엇을 꾸미고 있었는지 당신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오. 그리고 우리 제갈 일족의 사정도 잘 알고 있는 듯 한데…. 그것부터 알지 못하면 나로서는 책략을 진언할 수 없소.”

“…….”

“아무것도 모르는데 대체 뭘 말해주겠소.”

맞는 말이다. 게다가 역시 망량 입장에서는 황궁의 일이 자기 일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말해줄 수 있는 만큼은 말해주지….”

나는 내가 전생자라는 걸 밝히지 않는 선에서 제갈유룡의 음모, 그리고 제갈부나 황궁의 신, 팔부신중 등에 대한 걸 알려주었다. 한참동안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망량은 자신의 이마를 내 천(川)자로 만들며 염증을 내는 기색이었다.

“이토록 불의(不義)한 일에 제갈무후의 후예들이 가담하고 있었을 줄이야.”

“변명해주려는 건 아니지만, 제갈유룡에게도 나름대로의 대의는 있소. 다가올 500년 후의 종말에 마도의 힘을 빌려서 인류의 생존을 도모하려는 것이지.”

“…….”

잠시 나를 묘한 눈으로 보던 망량이 말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이미 황궁은 마굴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을 거고, 그 내부상태를 살피기엔 평범한 능력으로는 불가하오. 게다가 당신이 직접 나서기도 꺼려지는 상황이라 그 말이군.”

“그렇소. 괜히 내가 잘못 걸리면 그 자체로 일이 더 커지는 거요.”

“이해했소. 흐음….”

망량이 고민하다가 뭔가 생각난 듯 자신의 손가락을 딱 하고 마주쳤다.

“연금술사를 찾아갑시다.”

“응?”

“당신이 서역에서 데려온 그 자, 생 제르맹 말이오.”

“아…. 그 자는 왜?”

“내가 당신이 없을 때 그와 학문을 교류하며 토론했는데 그는 대학자가 틀림없소. 그리고 굉장히 오래 살아온 존재라서 연금술의 지식이 일반적인 인간과 궤를 달리하오. 단순히 그에게 마도구 연구만 시키기엔 그가 알고 있는 게 훨씬 많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일단 가 봅시다.”

저벅

나는 망량과 함께 마을 외곽에서 연구를 하고 있던 서방의 연금술사, 생 제르맹을 찾아갔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목갑 연구는 잘 되고 있나?”

생 제르맹은 늙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는 며칠만에 중원어를 다 익혔다는 듯 유창한 중원말이 흘러나왔다.

“흐음. 꽤나 진척을 보고 있소.”

“정말 내 목갑을 계속 맡기지 않아도 되는 거야?”

무언가 현미경같은 마도구로 열심히 모형을 살피던 생 제르맹이 대꾸했다.

“첫 날에 근본구조와 마도식은 팬텀 클라우드에 복사해두었소. 그것만 연구하는데도 시일이 걸리니 나중에 필요하면 말씀드리리다.”

“팬텀 클라우드?”

“연금술사만의 비법이 있소이다.”

그는 목갑연구를 맡기러 서방에서 데려왔었는데, 그는 첫 날만 목갑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더 이상 본품은 필요 없다며 내게 돌려주었다. 그 덕에 나는 목갑을 자유자재로 갖고다닐 수 있었지만 생 제르맹이 어떤 원리로 연구를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생 제르맹이 현미경에서 눈을 떼더니 말했다.

“…오늘은 뭔가 용건이 있나 보군. 무슨 일이오?”

그러자 나를 따라온 망량이 입을 열었다.

“생 제르맹. 목갑연구는 잠시 멈추고, 원격정탐용으로 괜찮은 도구를 만들어 주시오.”

“원격정탐이라? 천리안(千里眼)의 능력을 가진 마도구는 제법 흔한 편이니 내게 재료만 주면 금방 만들어줄 수 있을 거요.”

망량의 말에 생 제르맹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지만 망량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흔한 위력을 가진 게 아니오. 적어도 상대의 방어결계를 뚫을 수 있으며 이쪽 또한 역으로 탐지당하지 않으며, 내구도 또한 튼튼한 원격정탐 마도구를 근시일 내에 만들어 주셔야겠소.”

“…….”

“당신의 능력이라면 아마 가능할 거요.”

그러자 생 제르맹은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상급의 마도구를 제작하라는 거군.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충분한 재료가 필요하오. 내게 재료를 줄 수 있다면야 만들 수 있소.”

“상급? 최상급이 아니라?”

“목갑만큼 뛰어난 최상급 마도구는 무척 드문 것이오.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 되는 최상급을 제작하려면 몇 십 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허나 그 아래급의 상급이라고 한다면…. 재료가 충분하면 단시일에 만들 수 있소.”

“좋소. 어떤 재료가 필요하오?”

“적어드리겠소.”

생 제르맹이 한참동안 쓱쓱하고 커다란 양피지에 재료 목록을 적었다. 그 재료 목록을 한참 살피던 망량이 말했다.

“내 힘만으로는 못 모으겠군. 나머지는 내가 모을 테니 백웅 당신이 3가지 재료를 모아주시오.”

“어떤 걸 모으면 되오?”

“화룡(火龍)의 비늘, 사막아귀의 심장, 수정의 빗방울.”

“……?! 아, 아니 그런 걸 어디서 구하지?”

“글쎄…. 나머지는 귀하긴 해도 상식선이라서 내가 마도팔문에 명령을 내려서 구하게 하면 되오만, 이거 3가지는 감도 안 잡히는구려…. 나보다는 백웅 당신이 세상을 많이 돌아다녔으니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

“으음.”

나는 힐끔 생 제르맹을 보았지만 그는 멀뚱히 날 쳐다볼 뿐이었다. 아마도 나 정도 되는 기인이면 이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정말 극히 희귀한 거라면 자기 입으로 방법을 얘기해줄 것이리라.

‘끄응.’

듣기만 해도 엄청 희귀할 것 같은 3가지 재료! 나는 망량조차 지혜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내 경험에 떠맡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딴 걸 어디서 구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와서 한숨을 쉬었다.

“제길…. 선지자한테 가서 구하는 것도 왠지 나만 뜯길 거 같고…. 저런 걸 팔아주는 미친 놈이나 시장이 어디 있….”

그 때였다.

“아앗!”

나는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그리고는 외쳤다.

“이족의 노예시장!!”

예전 삶에서 풍신류가 이족과 합심해서 운영하던 그 괴랄한 노예시장에서는 인간은 물론이고 별의별 특이한 물건을 다 팔지 않던가! 나는 그 곳이라면 충분히 생 제르맹이 요구한 재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 어떻게 참석하더라? 흐음…. 맞아. 제갈사가 따로 참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었지.’

풍신류가 인간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이족들이 마법을 이용해서 이공간을 만들어 초대하는 형식이라 일반적인 방법으론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곳의 관리인급이라 할 수 있는 노예상인과 친분이 있던 제갈사는 뒷길로 참석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 방법을 내게 일러준 적이 있었다.

‘…설마 써먹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빠르게 마을을 벗어나서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내가 도착한 곳은 바로 옛 서하국(西夏国)의 수도였던 장소로서 지금은 원제국에 멸망당해서 폐허만 남았다가 한족의 주도로 재건된 시골이었다. 물론 서하국이 있었던 시기도 수백 년 전인지라 재건이 됐다고는 해도 이곳은 중원의 변방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이곳의 인구 중 대부분이 회족(回族)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며 회족을 통해야만 한다는 걸 제갈사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근처의 회족 중 몇 명을 붙잡아서 그들에게 거금을 주며 물었다.

“회족의 족장이 이 근처에 산다 들었소만 만나보고 싶소.”

“외부인이 대체 무슨 용건으로?”

나는 그 질문에 쓱쓱 하고 제갈사에게 배운 외계의 글자를 몇 개 적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 회족은 못 알아보는 눈치였지만 바로 그 옆에 있던 자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듯 했다. 그 자가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이런 식으로 절차 없이 찾아와서 참여하려 드는 건 반칙이란 거 모르오?”

“제갈사의 추천을 받았다고 전해 주시오.”

“으으으음…. 저 객잔에서 기다리시오.”

나는 그들이 가리키는 허름한 객잔에 앉아서 한 시진 정도를 기다렸다. 그러자 한참 후 고풍스러운 서하의 옛 복장을 입은 늙은 노인이 객잔을 찾아왔다.

“바로 당신이 날 만나자 한 자인가….”

“본론부터 말하지. 경매시장에 참가하고싶소.”

“제갈사의 추천을 받았다 해도 아무런 증거가 없군. 우리 종족의 글자를 쓸 줄 안다고 해서 우리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 제갈사는 이제부터 집어치우지. 어차피 더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테고. 나는 경매참가비를 충분히 낼 테니 그걸로 퉁쳐주시오.”

“어떤 참가비?”

스윽

나는 마을에서 재배한 흑백련 중 몇 송이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걸 자세히 보던 늙은 노인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꽤 뛰어난 영약…. 하지만 경매에 이 영약보다 뛰어난 가치를 지닌 건 별로 나오지 않을 텐데 배보다 배꼽이 큰 게 아닌지?”

“그건 당신이 걱정할 게 아니지 않소?”

“…….”

고민하던 늙은 노인이 말했다.

[아니…. 걱정해야겠군…. 방금 전 들어온 정보로는 요즘 들어 풍신류를 방해하려 날뛰는 괴인이 있다고 들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이족의 괴어(怪語).

[듣던 바와는 다른 형상이지만…. 네가 바로 그 괴인이 아닌지 의심스럽군….]

그 목소리와 동시에 늙은 노인은 물론이고 이 마을에 있던 대부분의 회족들의 몸이 서서히 변형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단숨에 이족의 형상이 되었다.

저 족장같은 이족은 본 적이 있다.

틀림없이 노예시장에서 상관정인 척 하고 경매에 참여했을 때 만났던 그 노예상인이다.

‘역시….’

제갈사의 말대로 옛 서하의 수도에는 [옛 종족]들이 임시로 모여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예시장에 일일이 백련교와 접촉해서 참가하느니 이들에게 직접 찾아오는 게 빠르다고 제갈사가 방법을 일러줬었다.

나는 일이 꼬였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도리어 눈앞의 이족 족장을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 아닌데? 증거있나?”

[…….]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거래나 하지. 눈이 있다면 내가 그딴 짓이나 할 놈은 아니란 건 알 수 있을 텐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전신에서 잠시동안 신력을 내뿜었다.

쿠와아앗

[……!!]

[으아앗.]

족장은 물론이고 다른 이족들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족장으로 보이는 존재는 약간 두려운 듯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화… 화신? 사도? 어찌 당신같은 존재가 이런 곳에….]

“네가 알 바 아니지. 처음부터 너희를 권위로 깔아뭉개지 않고 점잖게 대화해주려 했는데 나는 싸움도 별로 싫어하진 않아.”

내가 우드득 하고 주먹소리를 내자 족장이 급히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위대한 분을 몰라뵈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응? 그럼 나 참가비 안 내는 거지?”

[…어찌 받겠습니까. 원하신다면 바로 저희가 만들어놓은 장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직 경매가 안 열리지 않았나?”

[손님이 없어도 물품은 이미 다 도착해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사가시길. 대신 저희 종족을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좋아, 안내해.”

우우웅!!

나는 이족들의 마법으로 혈계로 향하는 차원문이 열리자 거기로 발을 딛으며 생각했다.

‘음…. 편법을 쓴 느낌이군!’

제갈사의 계책대로라면 뭔가 좀 더 회족과 협상을 하는 단계가 있었는데, 나는 귀찮아서 거기까지 안 하고 그냥 대충 힘으로 뭉개버렸다. 그런데도 편하게 들어오자 힘이 책략보다 앞선다는 걸 실감해버린 것이다.

쉬이익

나는 그들의 말대로 노예경매장에 이미 물건이 다 도착해 있으며 철창에 갇혀있거나 한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물건들을 들여다보다가 이족 족장에게 말했다.

“화룡(火龍)의 비늘, 사막아귀의 심장, 수정의 빗방울. 혹시 있나?”

[모두 있습니다…. 그걸 찾아오신 겁니까?]

“오? 다 있다니…. 구하기 쉬운 물건이었던가?”

[그렇지 않습니다. 본디 저희는 마법으로 영구적으로 물체를 보존할 수 있기에 한 번 수집했던 경매물품이 안 팔릴 경우 다음 경매까지 계속 보존해놓습니다. 그것들은 노예시장에서 잘 나가지 않는 희귀한 물건이었기에.]

“아…. 그런거군.”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다보니 [옛 종족]이 희귀한 물건을 수집해서 기뻐하며 경매시장에 내놓았지만 인간들은 그 가치를 몰라서 사가지를 않았고, 그렇다고 이족들에게도 그리 매력적인 물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건값을 줄 테니 빨리 가져와.”

[잠시 기다리십시오….]

이윽고 세 가지 재료가 내 앞에 나타나자 나는 흑백련 한 송이를 던져주며 생색을 냈다.

“자!”

[…….]

“꼽냐? 싸울래? 사람이나 파는 새끼가.”

[아, 아닙니다. 가져가십시오.]

“좋았어!”

나는 쾌재를 부르며 세 가지 재료를 목갑에 넣고는 노예상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 그리고 조만간 다시 올 건데 그때 보자. 다음 경매가 열리기 전에 소을촌에 사자를 보내서 알려라.”

[아….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다른 일이 있으니까 놔두지만, 나중에 다시 가서 이 노예상인들을 다 조지고 사람들을 구출해야지!

파앗

나는 경매시장을 벗어나서 현실로 되돌아온 후 생 제르맹에게 재료를 주었다. 그러자 생 제르맹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아, 아니…!! 어떻게 상급 마도구의 재료를 하루만에?! 적어도 일 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거늘…. 정녕 대단하시구려.”

“이제 상급 마도구 만들 수 있나?”

“딱 칠 주야만 주시오. 그 안에 만들어내겠소.”

“좋아.”

나는 칠 주야동안 마을 사람들과 무공수련을 하거나 잡담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칠 주야 째가 되자 생 제르맹이 내게 기다란 망원경을 건네주었다.

“내가 만들어낸 회심의 역작인 [리히트오그]! 내 평생에 이것보다 잘 만든 건 별로 없소.”

“그냥 망원경 같은데? 별로 다를 건….”

“머릿속에 살피고 싶은 곳을 떠올리고 렌즈를 살펴보시오.”

나는 머릿속에 낙양 황궁의 옥좌를 생각했다. 그리고 리히트오그를 살피자, 곧장 옥좌에 황제 주후총 대신 팔부신중 야차가 앉아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헉!’

진짜 망원경으로 보고싶은 걸 볼 수 있네?!

‘근데 주후총은 어디 갔지? 죽였나?’

나는 의아해했지만 이윽고 섬뜩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옥좌에 앉아있는 야차가 리히트오그의 시선이 위치한 곳을 쳐다보는 시선이었다. 나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야차의 독백에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상하군…. 누가 술법으로 정탐하고 있나? 내 과민반응인가….]

야차는 리히트오그같은 마도구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지만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려면 노력해야하는 모양이었다.

과연 상급마도구!

‘쉽게 정탐당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충분히 만족해서 만든 것 같았다.

‘더 살펴보면 위험하겠군.’

나는 리히트오그에서 시선을 떼고 덮개로 마도구를 껐다. 그리고는 말했다.

“놀랍군. 이건 혹시 사용횟수나 사용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조건이 있소?”

“없소. 그렇기에 리히트오그는 최상급이 아닌 상급인 것이오.”

“응?”

“아무런 제한조건이나 위험조건을 걸어두지 않으면 그 어떤 최고의 장인이 만들어도 일정위력 이상은 보일 수 없으니 이게 상급의 한계요. 최상급의 마도구를 만들려면 조건을 검으로서 반대급부로 마도구의 위력을 올리게 되는 거지.”

“아하….”

제약을 걸어야만 최상급의 마도구가 될 수 있는 거군!

“다만 재료가 풍부하게 들어갔으니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제한조건을 걸어서 최상급으로 위력을 올려줄 수 있소.”

“알겠소.”

이제 일일이 천하를 뛰어다닐 필요 없이, 이 리히트오그를 이용해서 원거리에서 원하는 곳을 정탐하면 될 것이다.

‘좋아. 이제 조금 준비하고 노예시장을 털러….’

그리고 내가 내심 기뻐하고 있을 때 생 제르맹이 내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 리히트오그로 내가 원하는 걸 정탐해줄 수 있겠소?”

“응? 어디를 말이오.”

생 제르맹은 약간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말했던 대로라면 나를 모사하고 있는 호문클루스가 낙양황궁에 있겠지…. 그놈을 살펴봐 주시오.”

“알겠소.”

스스스

잠시 후 리히트오그에 거대한 석판이 여러 개 깔려있는 방이 눈에 비쳤다. 그리고 제단처럼 보이는 곳곳에는 여러 명의 남녀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는데, 나는 그 숫자가 다섯 명이라는 걸 알고 침음성을 흘렸다.

“음…. 벌써 초상기인을 저만큼이나….”

틀림없다. 저기는 천람의 방이며, 초상기인을 보관해두는 장소이다. 저기에 있는 건 모두 초상기인인 것이다. 그런데 아직 전생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다섯 마리씩이나 제작해두었다니?

그리고 천람의 방 한가운데에는 가짜 [연금술사]이자 가짜 [생 제르맹]이 서 있었다. 그 놈은 클클대며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크흐흐…. 설마 일이 이리도 쉽게 풀릴 줄은 몰랐군…. 설마 그 괴물이 이리도 유용할 줄이야….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암천향의 소환문도 만들 수 있다!]

……?!

뭐야?!

내가 놀라고 있을 때 가짜 연금술사가 말했다.

[흐음. 역시 완성시키기엔 재료가 부족한가? 제갈유룡에게 인신공양의 제물을 부탁해야겠군…. 보름에 마을 하나씩 없애면 되겠지.]

나는 거기까지 듣고는 리히트오그에서 눈을 떼고 덮개를 닫았다. 덮개를 닫지 않으면 상대에게 정탐당할 위험이 높아진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황해서 생 제르맹에게 말했다.

“이런 제길! 놈이 초상기인을 다섯 마리나 만들었고 마을을 습격하려 하오.”

“초상기인? 호문클루스를 말이오?”

“그렇소.”

“이제 좌표가 남았겠군. 나도 한 번 봅시다.”

생 제르맹의 말에 나는 리히트오그를 그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생 제르맹이 망원경을 한동안 살피더니 씨익 하고 웃는 게 보였다.

“큭큭큭…. 역시… 네놈은 절대 알 수 없었겠지….”

그리고는 생 제르맹이 시선을 떼며 말했다.

“백웅. 내가 어쩌다가 저 가짜놈, 호문클루스를 만들게 되었는지 알고 있소?”

“그건 잘 모르겠소만. 어쩌다 그런 실수를 했소.”

“이쪽 동방에서 초상기인이라고 하는 호문클루스는 사실 인간을 인공적으로 만들려는 시도였소. 서방은 하도 [옛 지배자]에 시달리다보니 인신공양이 넘쳐났고, 진짜 인간대신에 호문클루스를 [옛 지배자]에게 바치면 인명피해가 줄어들 거라는 연금술사들의 염원이었던 것이오.”

“호오….”

호문클루스가 인신공양의 피해를 줄이려는 연금술이었다고?

처음 듣는 얘기에 내가 신기해하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나 또한 드루이드의 혈통을 잇는 적자이며 비비안의 제자였기에 당연히 호문클루스 제작에 뛰어들었소. 그리고 한때 최고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페섹테어 포토툽(Perfekter Prototyp)을 만들어내었으나, 나는 최종단계에서 망설임 때문에 실패하여 저 불량품을 세상에 놔주고 만 것이오….”

“망설임?”

“인성(人性)…. 호문클루스에게 인성을 부여하느냐 마느냐 하는 갈등에서 나는 부여하기로 했었소. 그래야 완성되었다 할 수 있으니까. 허나 인성을 부여하는 의식에서 나는 깨닫고 말았소.”

생 제르맹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간을 근원으로 하는 한…. 호문클루스에게 그 어떤 인성을 부여한다 하더라도 결국 극악(極惡)의 성향으로 치닫게 된다는 걸. 왜냐하면 인간조차도 악신의 장난감이며 혼돈에서 부화한 혼돈의 자식이기 때문이지.”

“……!!”

“나는 그 당시에 이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 없었기에 망설이다 실패했고 세상에 저런 재앙을 내놓은 셈이 되어버렸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굉장히 중대한 얘기같소만…. 사실 나랑은 별 상관없는 얘기요. 그런 얘기를 꺼낸 이유가 무엇이오?”

“흐흐. 저런 악랄한 존재를 만들 수도 있다는 계산은 이미 했었단 얘기요. 설마 내가 제어장치 하나 안 만들고 놔뒀겠소?”

“응?”

“여태껏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절망 때문에 굳이 안 건드렸을 뿐…. 지금 그 제어장치를 발동해주겠소.”

그렇게 말한 생 제르맹이 다시금 리히트오그를 이용해서 연금술사를 보았고, 동시에 주문을 외웠다.

우우웅

파앗!!

“허억?!”

“……?!”

다음 순간, 바로 내 코앞에 황궁의 연금술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놈조차도 당황해서 경악하고 있을 때 생 제르맹이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실패작이여. 나는 창조주 생 제르맹. 이름을 부여한 자가 바로 나이니 지금부터 너의 진정한 이름을 고치겠다.”

“뭐, 뭐라고…. 창조주여 설마….”

“널 그냥 죽이는 건 너무나 관대한 일이지. 내 연구의 밑거름이 되어라.”

“…프… 프랑켄슈타인….”

뭔가를 깨달은 황궁의 연금술사는 뒷걸음치다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 마!!! 하, 하지 마라!!!”

그러더니 놈이 갑자기 내 쪽을 바라보며 공포에 질린 듯 말했다.

“이봐! 날 도와줘!! ‘그것’의 부품이 되는 건 절대….”

그러나 그의 비명을 아랑곳하지 않고 생 제르맹이 천천히 말했다.

“페섹테어 포토툽(Perfekter Prototyp)이여. 너는 이제 프랑켄슈타인의 심장(Herz von Frankenstein)이다.”

슈와아악!!

다음 순간 - 황궁의 연금술사의 몸에서 ‘껍데기’가 벗겨졌다. 인간의 살가죽이 마치 고무줄처럼 늘어나면서 뜯겨나갔고 그 와중에 피와 혈관, 근육이 선명하게 비쳐보였으며 어마어마한 비명소리가 놈에게서 터져나왔다.

“끄아아아아악 - !!”

슈와아악!

슈와악!

보이지 않는 허공의 어둠 속에서 강대한 흡인력으로 계속해서 연금술사의 피와 살을 빨아들이자, 머지않아 비명은 사라져 버렸고 존재했었다는 증거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마친 생 제르맹이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로써…. 초상기인이 완성될 걱정은 당분간 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오.”

“…….”

“밥값을 한 것 같아서 다행이구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알 수 있었다.

‘…[이름].’

[이름]을 이용하면 지금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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