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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다음 날부터 방일과 진소청을 수련시키는데 시간을 반반씩 할애했다. 그리고 약 사흘 정도를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진소청은 별로 가르치지 않고 방일에게만 시간을 쏟게 되었다. 왜냐하면 진소청은 내가 요결을 전수했던 첫 사흘 동안 모든 요결을 다 외우고 자기만의 요령을 터득해서 집중하는 걸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 가르칠 필요가 없어….’
나는 진심으로 편하다고 느끼면서도 두려워졌다. 과연 이런 녀석한테 내가 더 가르쳐줄 게 앞으로 존재하긴 할까?
하지만 진소청을 더 신경써봐야 나만 손해였으므로 나는 일단 방일을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방일의 수련진도가 느리다고 하더라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기에 그나마 어떻게 키워줄지는 답이 보였기 때문이다.
“촌장님. 지도를 부탁드려요.”
“음, 알겠소.”
그리고 종종 서문혜가 내게 찾아와서는 무예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왜냐하면 원래 그녀에게 지도대련을 해 주던 진소청이 구궁파천뢰 수련으로 빠지면서 그녀의 수련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서문혜 또한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녀를 가르치면서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뛰어난 자들을 가르칠 때마다 방일의 재능부족이 여실히 느껴지는군….’
서문혜가 열 걸음 나아갈 때 방일은 겨우 한두 걸음을 내딛는 느낌이다. 서문혜와의 재능차이도 이 정도라면 진소청과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아니, 서문혜도 진소청과 비교해서 그렇지 젊은 나이에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른 일재(逸才)이며 천재적인 재능의 젊은 무인이었다. 애초에 중원무림 전체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인 서문혜와 동네무관의 수련생 방일을 비교하는 게 서문혜에게 실례일 정도다.
가면 갈수록 방일을 가르치는 게 시간낭비처럼 느껴졌다. 내가 십 년을 열심히 가르쳐도 방일을 절정고수의 반열에 올리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게 뼈저리게 체감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예감을 억지로 떨치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내 재능을 경멸하던 자들에게 시간대비 효율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철저한 자기만족에 불과하지만 방일을 열심히 키우려는 건 그 때문이다.
어차피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이번 30번째 삶에서, 내 맘대로 하고자 하는데 누가 뭐라 할쏘냐.
세상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내 자기만족이 전부일 뿐이다!
그리고 약 한 달이 지났을 때 뜻밖의 손님이 소을촌에 찾아왔다.
“소을촌장 백웅은 어디 있느냐?”
웬 소동(小童)이 마을에 찾아오며 쩌렁쩌렁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외침을 들은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고, 이윽고 그 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당황했다.
“아니 명룡자?”
저 인간이 왜 온 거야?
내가 자신을 알아보자 명룡자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자신의 몸뚱이만한 장검을 내 쪽으로 겨누며 말했다.
“신승에게 듣기로 네가 전대미문의 고수라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주의이니, 나와 한 수 겨뤄줄 수 있겠느냐!!”
“…….”
신승이라….
나는 뭔가 감이 잡히는 걸 느끼며 검을 들었다.
“좋소.”
나와 명룡자는 삼 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섰고, 길지 않은 침묵 속에서 서로의 실력을 간파할 수 있었다. 명룡자 또한 절대지경을 한발짝 남겨놓은 최상승의 고수였지만 내가 발휘하는 의념천주의 존재를 느끼자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고, 이내 기세에서 지지 않으려는 듯 먼저 일 초를 발휘했다.
카앙!!
그리고 명룡자가 발현한 굴공참(屈空斬)에 나는 평범한 뇌신류의 검초를 이용해서 대항했다. 그러자 굴공참의 특징인 공간조작 때문에 내가 약간 말려들어가며 손해를 보았지만 연속으로 의념을 발휘해서 그 손해를 만회하며 명룡자에게 반격했다.
슈욱!
명룡자는 내 반격을 피해내었지만 팔에 생채기가 생겨났다. 내 검속이 빨랐고 그의 회피반경을 충분히 의념강기로 감쌌기 때문에 완전히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 일 초의 교환에서 명룡자는 뭔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절대지경이 맞구나. 그렇다면 너 또한 나처럼 반로환동의 경지인가…?”
나는 명룡자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대답하지 않겠소.”
괜히 대답했다가 귀찮아질 것이다. 나는 명룡자에게 그다지 정보를 주지 않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방금 전 명룡자가 굴공참을 써서 공격했을 때도 마주 굴공참으로 반격했으면 내가 훨씬 이득이었지만…. 내가 칠대절학을 알고 있다는 걸 알려주면 귀찮아져.’
보나마나 명룡자가 칠대절학을 배우겠다고 생고집을 피우며 나와 얽히게 될 것이다. 명룡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소을촌을 찾아왔는지 모르는 이상 아는 것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상책이었다.
명룡자는 자신의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초면에 검을 맞대서 무례했구나. 사과를 받아다오.”
“괜찮소. 무슨 일로 무당파의 고인께서 찾아오셨는지 알 수 있겠소?”
“흐음…. 사실은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다.”
그리고는 명룡자가 자신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탁이다!! 제발 우리 무당파를 도와다오.”
“……?!”
나는 이윽고 명룡자를 촌장의 집으로 데려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명룡자는 다소 침잠한 기색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무당파에 얼마 전에 선전포고를 담은 도전장이 날아왔다. 그 도전장을 보낸 자는 바로 천축의 브라만교라는 문파다.”
“브라만교라면 천축 최대의 문파가 아니오?”
“…잘 알고 있군.”
명룡자는 암울한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현천도인의 소문을 알고 있는가?”
“…….”
“그래서 짚이는 게 없지는 않다. 우리도 모르게 무당파가 수많은 적이 생겨났으니 어찌 바람 잘 날 있겠나. 그러나 브라만교는 너무 먼 곳이기에 어째서 사생결단을 내자는 선전포고를 해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도전장을 가져온 자의 무공이… 심상치 않았다.”
“어느 정도였소?”
“…그 자는….”
명룡자가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나와 청자배 도인 세 명이 한꺼번에 덤볐는데도 도리어 밀릴 정도였다. 명백히 절대지경의 고수였지.”
“……!!”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뭐? 천축에 또 절대지경의 고수가 있었다고?’
청자배 도인 셋이라면 틀림없이 현 무당파 장문인인 청풍자, 그리고 그의 사제인 청일자와 청균자다. 그들 셋의 무공 또한 초절정고수 중에서 매우 높은 편이었고 명룡자와 그들이 합공했다면 현 무림에서 당해낼 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있다고 한다면 명룡자의 말대로 절대지경이 틀림없으리라.
근데 그런 자가 또 있었다고?
절대지경의 고수가 천축에 아수라 말고도 또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천축무림의 최고봉인 브라만교의 최고수라지만….’
천하 무림이 정말 넓다는 걸 다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음…. 근데 좀 이상하군…. 그런 놈이 있었다면 왜 대웅제국 때는….’
내가 상념에 잠겨있을 때 명룡자가 말했다.
“그 자는 자신이 파르바티의 뜻을 받드는 브라만교의 대호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신을 대신해서 우리 무당파를 징벌하러 석 달 후에 찾아 오겠다했지. 다시 올 때는 브라만교는 물론이고 천축무림의 최정예를 데려오겠다고 했다.”
“…….”
“브라만교의 대호법 하나도 상대하기 힘든데 도저히 우리 무당파의 힘만으론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신승에게 상담하러 갔는데 그 놈은 너와 만났던 일을 이야기하고는 너만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
“으음.”
신승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 알 만 하다. 아마 내 무공이 절대지경에 이르렀단 것과 이면의 사정을 다 안다는 이야기를 했으리라. 확실히 신승의 말대로 내가 명룡자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약간 골치아프다는 걸 알아차렸다.
‘…틀림없어. 소뢰음사 주지와 아수혈사문주가 소림사 뇌옥에 감금되어서 시간을 벌었긴 하지만 의심스러움을 느낀 브라만교에서 일단 무당파부터 의심해서 때려잡으려는 거야.’
신격 파르바티의 예지라는 게 그렇게 정확하지 않다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놈들은 자기들의 힘에 자신이 있어서 중원무림을 일단 때려잡고 볼 생각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만신전의 신격을 뒷배로 두고 있는 무림종파가 뭐가 두렵겠는가?
‘그렇게 치면 파르바티는 내게서 의심을 한 차례 거뒀을 수도 있어. 의심하고 있다면 후속전력을 소을촌에 또 보냈을 텐데 무당파를 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니까.’
달리 말하자면…. 명룡자를 내가 도와주는 순간 나는 다시금 파르바티의 의심에 포착될 확률이 극히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명룡자가 말했다.
“정녕 도와줄 수 없겠나? 무당파가 망하면 결국 남은 중원문파 또한 브라만교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잠시 생각 좀 해보겠소.”
나는 잠시동안 크게 고민했다.
평화로운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명룡자가 망하든 말든 내버려두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 상태에서 만신전과 드잡이질 하면 평화로운 삶은 무조건 물건너갈 것이다. 그러나 결국 무당파는 내게 걸려온 시비를 난데없이 뒤집어쓴 셈이 되어버린다.
‘제길. 어쩔 수 없군!’
평화로운 삶이 뭐가 어떻단 말인가?
나 때문에 뒤집어써서 예전 전생동료인 명룡자와 무당파가 멸망한다면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내게서 비롯된 시비는 내가 해결하는 게 옳은 일일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명룡자. 그 대호법이란 놈은 아직 무당파에 있소? 아니면 자기네 문파로 되돌아갔소.”
“뻔뻔하게도 무당파에서 삼심 리 떨어진 마을에서 숙식하고 있다. 아무리 덤벼도 자기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럴 것 같았소.”
절대지경의 고수라면 그 정도 자신감은 있을 것이다. 나는 주먹을 꾹 말아쥐며 말했다.
“안내해 주시오.”
“그 말은… 우리를 도와주겠단 건가?”
“그렇소.”
나는 거칠게 대답했다.
“기왕 도와주게 되었다면 후환 하나 없이 다 쓸어버리겠소!”
명룡자가 크게 기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고맙다.”
이제 멈출 수가 없다.
‘이 개새끼들… 내 평화를 위협하려고 깔짝대는 걸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것 같으냐!’
휘이잉
나는 이윽고 명룡자를 따라서 호남성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뛰어가서 명룡자가 안내한대로 브라만교의 대호법이 머물고 있다는 마을 앞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명룡자는 마을의 삼 리 바깥의 수풀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저 자의 기세를….”
엄청난 기(氣).
이렇게 멀리에서도 기세가 느껴질 정도면 이미 인간을 초월한 내공이다. 나는 상대가 절대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걸 느꼈지만 내면의 분노는 멈출 기색이 없었다. 나는 가타부타 말도 하지 않고 마을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슈웅 -
그 자는 마을 안의 우물 근처에 앉아서 햇빛을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다가오자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대였군. 교주의 예지를 어지럽히고 본교의 앞길을 방해하리라 예정된 존재가.”
“어….”
“나 또한 멀리서 그대를 느끼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왜?!
나는 순간 황당해서 주먹에서 약간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왜냐하면 새로운 적을 맞닥뜨리리라고 예상했었는데 뜻밖에도 아는 얼굴이 눈앞에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놈을 보자마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는 말했다.
“어…. 니가 왜… 브라만교의 대호법이지?”
정말 예상 밖이다. 그러자 대호법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나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러나 나는 그대를 본 적이 없다.”
“…….”
나는 그 자의 갈빛 피부와 강인한 권각을 보았다. 그리고 얼굴 또한 내가 아는 그와 한 치의 틀림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진국준(陳國峻)! 대월국의 수호신인 네가 왜 천축 브라만교의 대호법이 되어있냐고!”
그랬다.
눈앞에 있는 자는 바로 남만 대월국의 절대지경 고수인 진국준! 권각의 절대고수이자 수백 년을 이미 살아온, 남만을 대표하는 초고수가 내 눈앞에 있었다. 28번째 삶에 천계 공략을 함께 하던 자라서 내가 못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자 진국준은 눈에 이채를 띄었다.
“…뭐라고? 이 몸의 진짜 주인과 면식이 있었나 보군.”
“뭐?”
“하하… 하하하.”
진국준, 아니 진국준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가 낭랑한 미소를 터뜨리더니 말했다.
“그대의 이름이 뭐지?”
“알려줄 것 같으냐.”
“후후…. 그대 또한 특별한 존재가 틀림없을 터. 나는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며 내 이름을 밝히겠다.”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자신의 몸을 굽히며 천축의 예법으로 인사하며 말했다.
“이 자의 몸을 빌리고 있는 나의 이름은 시바. 나의 반려 파르바티를 돕기 위해 화신(化神)을 이용해서 인간세상에 내려와 있다.”
“……!!”
시바?!
‘서, 설마.’
28번째 생의 종말에 모습을 드러내서 천계를 침공했던 파괴신 시바!
그 놈이 지금 내 앞에서 진국준의 몸에 빙의해있다는 뜻인가!
나는 뜻밖의 상황에 당황스러웠지만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쩌라고? 말하라고 한 적 없는데.”
“크큭…. 시치미를 뗄 셈인가.”
“뭐가.”
시바가 ‘진국준’의 몸을 스스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이 자와 계약하여 화신으로 몸을 지배하는 대신 대월국을 보호해준다는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인과율의 역풍을 피하며 세상에 간섭할 수 있게 되었지. 너 또한 마찬가지 아니냐?”
“뭐?”
“후후…. 너도 빙의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몸에 감도는 신력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것.”
이어진 시바의 말에 나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너는 어디서 온 [옛 지배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