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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스스스스
다음 순간, 나는 아수라의 투기(鬪氣)가 번져나오는 걸 보고는 직감했다.
‘저 새끼, 더 이상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싸울 생각이군!’
다른 고수가 상대였다면 투기가 그저 나를 겁박하려는 용도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저 놈은 싸우려면 귀찮게 상대랑 말도 섞지 않는다. 틀림없다.
왜냐하면 나는 아수라라는 놈의 성격을 몇 번의 생이나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뜻밖의 인물이 나타난 놀라움도 있었고 내게서 샛길의 진상에 대해 듣기 위해 대화를 조금 섞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아수라는 문답무용으로 일단 싸우고 보는 성격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얌전히 나랑 대화나 하면서 상대를 알아내려고 탐색할만한 놈이 아닌 것이다.
당장 멈춰야 해.
전력을 다해서 신력과 권능을 쓰면 못이길 놈은 아니겠지만 권능을 쓰면 이번 삶의 평화로움이 박살나기가 너무 쉽다. 여기서는 당연히 아수라와의 전투를 피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급히 입을 열었다.
“아수라! 너는 신역에 도달해서 무신을 만나고싶지 않느냐!!”
“……!!”
흠칫
아수라의 투기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아무리 막무가내인 아수라라고 할지라도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리라. 그는 마치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너는 정말 누구냐?”
저 질문은 아마 자신이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수천 년이나 되는 무인의 고민을 단숨에 꿰뚫어버린 의문의 괴인인 나의 정체에 경악하는 의미일 것이리라. 그도 그럴것이 아수라는 팔부신중에게 저런 속내를 털어놓은 적도 없었고 심지어 주군인 창힐에게조차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그 혼자만이 수천 년간 무예를 수련하며 끌어안고 있었던 고민을 단숨에 이야기해버리는 상대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내가 그걸 아는 건 당연하다.
왜냐면 500년 후의 아수라 자신이 진솔하게 털어놓은 이야기였으니까.
“소을촌장 백웅이다.”
“촌장…?”
“그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칼 뽑고 덤비면 그 순간 너에게는 기회가 없을 테니까 잘 기억해 둬.”
“…….”
내가 엄포를 놓자 아수라는 멈칫했다. 이걸로 아수라의 기습을 봉쇄한 나는 훗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아수라 너 자신에게서 부탁을 받았다. 반드시 널 내 동료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자 아수라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반발했다.
“미친 놈인가?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물론 지금의 너는 그렇지 않겠지. [이전 굴레]의 너 자신이다.”
“……?”
아수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알아듣는 듯 했다. 나는 말했다.
“네가 동료로 받아달라고 했던 이유는 간단해. 지금의 경지를 넘어 절대자의 길로 갈 수 있는 무예의 단서를 얻었지만 이전 생에 너 자신이 오만으로 인해 그걸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생에야말로 정신차리고 수련하겠다고 선언했었지.”
“…….”
아수라가 검을 쥔 손이 부들거리고 있었다. 나를 베고싶어서 손이 근질거리는 기색으로 보였다. 다만 내가 엄포를 놓은 덕에 덤비지는 못하는 듯 했다. 그는 살기가 충천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정말 미친 놈 같군. 그런 걸 나보고 믿으란 말이냐?”
“아수라. 너는 신역으로 향하려는 길이 좌절되자 어떤 길을 찾아내었는지 알고 있느냐?”
“으으. 무슨 헛소리를…. 나는 여기 있다. 나 말고 다른 나 자신이 어딨단 말이냐!”
“무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신을 벨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냐?”
“……!!”
나는 검을 들며 말을 이었다.
“지금 네가 창안해 낸, 그리고 내가 네게서 전수받은 기술을 직접 보여주지!”
나는 검에 정신을 집중하면서 암야참의 요결을 떠올렸다. 그리고 선검을 검 위에 덧씌웠고, 예전에 행했던 것처럼 검이 새까맣게 물드는 게 느껴졌다.
우웅
긴장된다. 이건 쓰고싶을 때마다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전에도 운좋게 성공했을 뿐 실제로는 미완성의 편법 그 자체다. 나는 제대로 시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며 선검의 힘을 빌려서 구현화하고 있을 뿐!
하지만 지금 전투없이 아수라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내가 심득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의념을 없애야 한다.’
그걸 위해서는 ‘고리’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고리를 역회전시키는 역륜(易輪)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
깊은 집중 속에서 조그마한 둥근 원이 아지랑이처럼 비친다. 나는 그게 바로 륜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미세하게 움직이는 륜을 거꾸로 돌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선검의 기운은 바퀴에 빨려들어가며 륜의 회전이 가속되었고, 종래에는 마치 빛을 빨아들이는 어둠과 같이 탐욕스러운 형상이 되었다.
마침내 준비가 끝나자, 나는 노호성을 내지르며 근처의 신전 기둥을 향해 일 참을 내뻗었다.
“하아아앗!!”
촤악!!
기둥은 가로로 베여나가며 절단면이 깔끔하게 비쳐보였다. 그리고 기둥이 미끄러져서 떨어지자 굉음이 남았다.
쿠구구궁…….
‘쩝….’
생각보다 물리적인 파괴력은 별로였다. 암야참의 특성이 원래 그런 거지만 뇌신류의 기술 중에는 훨씬 화려한 게 많았기에 들인 노력이 약간 아쉬웠다. 나는 아수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게 바로 너의 기술, 암야참(暗夜斬)이다.”
“…….”
아수라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검극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절단면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의념이 사라진 검이 되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일참은 왠지 혼돈을 벨 수 있을 것 같구나…. 나는 혼돈에 속한 존재로서 그걸 느낄 수 있다!”
“…훗. 알아봤냐.”
나는 천연덕스러운 척 웃었지만 속으로는 약간 진땀이 났다.
‘와…. 알아봐서 다행이다….’
사실 암야참의 발현이 너무 절세무공치고는 초라했기에 아수라가 못 알아보고 내게 화를 내며 덤빌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수라는 현 시점 세계최강의 고수 중 하나였고 암야참의 가치를 알아보는 듯 했다.
아수라는 이제 완전히 분노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백웅이여! 나는 더 이상 널 의심치 않겠다. 다만 질문이 있다.”
“해 봐.”
“어떻게 의념을 없앤다는 발상을 할 수 있었지? 의념은 절대고수의 근간이며 현실을 초월한 무공을 쓸 수 있게 해준다. 왜 의념을 없애야만 했던 것이냐?”
나는 아수라의 질문에 이미 그 자신이 했던 대답이 준비되어있었기에 가볍게 대답해주었다.
“의념이 무신의 도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하하!”
“뭐라고? 무신이 의념을? 으음….”
아수라는 갑작스러운 화두에 고민하는 듯 했다. 나는 재빨리 이야기를 넘길 필요성을 느꼈다.
‘나도 사실 저건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하겠으니까….’
계속 물어보면 곤란하다. 나는 고민하는 아수라에게 말했다.
“아수라. 이걸 받겠느냐?”
“그것은?”
나는 손위에 들린 흑요석을 아수라에게 내밀며 말했다.
“약간의 암기가 담긴 흑요석이다. 그리고 이 흑요석의 마법을 쓰면 네게 지금까지의 내 기억이 전송된다. 그 기억속에는 지금 네 의문에 대한 모든 해답이 있다.”
“으음….”
“혼돈의 존재이자 마왕인 너니까 흑요석을 버텨낼거라 생각한다. 받겠나?”
그러자 아수라는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오!”
“좋았어!”
파아앗
나는 아수라에게 기억을 전송했다. 이번 생 들어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파지지지직…!!
‘응?! 이거 대체 무슨….’
그 때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수라가 기억을 받아들이는 중에 내 팔뚝에 있던 이름들이 꿈틀거리며 마치 지렁이처럼 일렁였고, 동시에 따끔거리는 고통이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내 팔에서 전류같은 게 일어나더니 어둠의 힘을 내뿜는 게 보였다.
후와아악
마치 검은 안개처럼 뿜어나온 그것은 마력이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그 순간 경악했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런….”
츠즈즈즈
검은 안개의 마력이 서서히 흑요석으로 빨려 들어가자 아수라가 침음성을 내었다.
“그오오오….”
아무래도 마력은 점차 흑요석의 암기를 강화시키려는 듯 했다. 나는 그 순간 이를 악물고는 가장 심하게 원래 자리를 이탈하려고 하는 이름 하나를 붙잡아서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돌아가!!”
파앗
그 순간 - 내 머릿속에는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오오오오오!! 위대한 신이시여!!]
그것은 해골이었다.
어두운 촉수의 마굴 속에서 봉인되어있던 의문의 법사(法師)같은 그 해골이 자신의 얼굴을 덜그럭거리며 감동하는 영상이 머릿속에 비쳤다.
[저 묘청(妙淸)은 위대한 신의 명령을 받들겠사옵니다!!]
응?
슈슈슉
다음 순간 영상은 끝났고, 동시에 뿜어져나오던 마력도 [이름]속으로 회귀했다. 그리고 아수라에게 기억전송이 끝난 듯 아수라가 잠시 비틀거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아수라가 입을 열었다.
“…전생자 백웅. 그러니까 네놈은 29번째 생의 나 자신이 했던 부탁을 들어주러 날 찾아왔다는 말인가?”
“그래. 암기는 괜찮나?”
“후. 갑자기 강력해져서 당황했지만 괜찮다…. 크… 흐흐.”
잠시 후 아수라는 헛웃음을 지었다.
“웃긴 일이군….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이다지도 추했을 줄이야.”
“…….”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휘익
아수라는 갑작스럽게 아까 고대신상이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동안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아수라를 신전에 앉아서 계속 기다렸다.
아수라가 방에서 나온 것은 그로부터 반 시진 후였다. 그는 뭔가 차분해진 표정이었고 내게 말했다.
“백웅. 너는 이번 30번째 삶을 평화롭게 네 멋대로 살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찾아왔다는 건 네가 진소청에게서 얻은 단서가 그만큼 막중한 것이었단 말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쉬어가는 삶이라지만 무(武)의 깨달음만은 포기할 수 없다.”
“왜지? 넌 이미 무공보다 권능 쪽이 강력해졌다. 흑웅과 사대신기만 잘 써도 삼황오제를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도 신기와 권능을 발전시켜나가면 모든 [옛 지배자]와 상대할만 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까지 무공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냐?”
“그건….”
나는 주먹을 꾹 하고 말아쥐었다.
“무공이 아닌 신의 힘으로는 니알라토텝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야!”
“…….”
아수라는 약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기… 기분? 별다른 근거가 없는데도 그것만으로 이렇게 집착한다고?”
“그래. 어차피 얼마나 더 전생할지도 모르는데 내 기분껏 하면 안 되는 거냐?”
“그건 그렇다만….”
“나는 무공이 좋아.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그러자 아수라는 뭔가 내 말이 마음에 든 듯 기분좋은 표정이 되었다. 그는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주 좋군. 네가 마음에 들었다, 백웅.”
“…마음에 들었으니까 싸우자는 건 아니겠지?”
“설마. 나중에 내가 좀 더 강해지면 싸울 거다.”
“이봐!”
“아무튼 나를 안내해라.”
아수라가 턱을 까닥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30번째 생, 평화의 억지력이자 동시에 네 무공수련을 도와주는 존재가 되어주마.”
“고마워!”
아수라를 동료로 얻었다!
나는 내심 뛸듯이 기뻐하며 아수라에게 말했다.
“아, 맞다. 알고 있겠지만 난 지금 비등을 못 써서 그냥 날아다녀야 해. 근데 여긴 너무 멀거든….”
“그래서?”
“중원까지 다시 뛰어가기 귀찮은데 마왕으로 변신해서 좀 태워다오.”
그러자 아수라가 팔짱을 끼며 당당히 말했다.
“아까 말하지 그랬나! 지금은 안 된다.”
“뭐?! 왜?”
이어진 아수라의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29번째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환멸하여 28번째 생처럼 나 자신의 모든 마력을 봉인했다!”
“…….”
“지금 나는 절대지경의 힘만이 남은 인간이 된 것이다.”
나는 멍해져 있다가 버럭 화를 내었다.
“야 이 새끼야!! 설마 방금 전에 방 안에 들어갔던 게….”
“내 힘을 봉인하러 들어갔던 거지.”
“아오 제기라아아알!!”
이게 대체 뭐야!!
여차하면 마왕 아수라의 힘으로 웬만한 팔부신중 놈들을 패주려던 계획이 무산되었잖아!!
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광하자 아수라가 말했다.
“너는 먼저 중원에 가라. 나는 들렀다 갈 데가 있으니 나중에 소을촌으로 찾아가지.”
“그냥 목갑에 들어와! 어디에 들르겠다는 거야. 너 나한테 무공깨달음을 줘야한다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급하지 않은 일이잖은가.”
“아니 그래도….”
“아수혈사문은 내가 옛날에 만든 문파였고 아수혈사문주는 내 먼 제자나 다름없는 놈이었다.”
“…….”
엥?
내가 약간 당황하자 아수라가 말을 이었다.
“널 원망하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인간제자일 뿐이니까. 또 애시당초 아수혈사문은 내 통제를 떠난 곳이었기에 그 사이에 브라만교의 지배를 받게 되었던 모양이군.”
“그랬군.”
“다만 네 기억을 보니 파르바티가 만신전의 의지로 세상에 관여하려 하더군.”
“그래서?”
“당분간 천축무림의 지배자 파순(波旬)으로 다시 활동하며 이쪽 무림을 정비해 둘 생각이다.”
아수라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마왕의 힘은 잃었어도 아직 내 무림의 영향력은 크게 쇠하지 않았다. 신의 끄나풀을 찾아내면 네게 도움될 정보를 전해주지.”
“…알았다.”
이건 이것 나름대로 이득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수라에게 말했다.
“천천히 와라. 어차피 난 이번 생에 뭔가 급격하게 진행할 생각은 없어.”
“알고 있다. 나중에 보자.”
파앗
나는 아수라를 등지고 중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소을촌에 도착하자 나는 바로 독고성을 찾아가서 말했다.
“독고성 사형.”
“갑자기 마을을 떠나더니 어딜 갔다온 건가?”
“일전에 진소청이 10만회를 가볍게 달성한 이유를 들으러 왔소.”
아수라가 신변정리때문에 늦게 오게 되었으니 이렇게 된 이상 체면불구하고 어떻게든 궁금한 걸 직접 물어볼 수밖에!
그러자 독고성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뭐라고? 그걸 몰라서 내게 물으러 왔다고?”
“그렇소. 난 의념의 섬세한 운용은 서툰 편이라 그 날 제대로 원리를 파악치 못했소. 또한 사형을 농락하고자 했던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걸 알아주시기 바라오.”
“으음…. 뭐 그렇다면야….”
독고성은 그럭저럭 수긍하고는 말했다.
“진소청은 자연체를 유지하는 자기자신의 동작 자체를 의념화시킨 것이네.”
“그게 무슨 말이오?”
“말로 하면 좀 설명하기가 그런데, 진소청은 아마 평소에 수만 번이고 수십만 번이고 란나찰을 수련한 경륜이 있었겠지. 그리고 그 경륜을 바탕으로 자기자신의 가장 완벽한 란나찰자세를 염상하고, 그 자세 자체를 의념으로 반복구현하게끔 한 걸세. 그리고 내부에서만 기와 의념이 순환하며 정해진 자세만 반복하게 되니 당연히 의념은 채찍에 지나지 않고 몸과 기는 최적의 상태로 소모되지 않은 채 활기를 더하게 되겠지.”
“……!!”
그런 것도 가능한가?!
나는 추가로 질문했다.
“진소청처럼 하실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오?”
“끄응. 정말 몰라서 물어보나. 진소청처럼 완벽하게 란나찰을 수련했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네. 최소한 수 년간의 뼈를 깎는 수행과 경험치가 있어야 하니 하루아침에 구현할 수 있는 의념도 아니지. 당연한거 아닌가.”
“그럼 저런걸 전투에는 써먹지 못하오?”
“당연하지. 동일자세반복의 의념화일 뿐인데 실전에서 적이 다른 자세로 공격하면 자세를 변형시킬 수 없잖나. 말 그대로 의념을 하나의 자세를 위해서만 돌릴 뿐이니 싸움에 쓰면 망하겠지….”
“그렇군….”
독고성이 이윽고 말했다.
“아무래도 자꾸 실없는 소리를 하는걸 보니 날 시험하려는 모양이군. 구궁파천뢰가 그리 아까운건가?”
“…….”
왠지 독고성을 애매하게 설득하면 그가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할 듯 하다.
나는 턱을 만지며 잔머리를 굴리다가 말했다.
“사형. 이렇게 합시다.”
“뭐를 말인가?”
“생각해보니 사형에게까지 그 기준을 적용하는 건 너무한 것 같소. 그러니 사문의 선배로서 기강을 잡는 일을 해 주시오.”
“기강이라면…?”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광이 십만 번을 달성하면 그 날 사형에게도 전수하도록 하겠소. 그러니 앞으로는 이광의 수련을 관리감독 해주시길 바라오.”
그러자 독고성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별로 가능성이 없을텐데 정녕 나를 농락….”
“단!”
나는 독고성의 말을 끊으며 단서를 달았다.
“이광이 제풀에 지쳐 도전 자체를 포기한다고 선언한다면…. 바로 그 날 또한 사형에게 구궁파천뢰를 전수하는 날이 될 거라 생각하오.”
“…….”
독고성은 빠르게 내 말뜻을 알아들은 표정이었다. 그는 약간의 의혹이 섞인 듯 나를 쳐다보더니 이윽고 평정을 되찾고는 말했다.
“어차피 이광 놈, 마음에도 들지 않았네. 내 사제의 뜻을 잘 알아들었으니 염려말게.”
“잘 부탁드립니다.”
불만은 잘 넘긴 것 같았다.
독고성이 이제부터 내가 안 보는 곳에서도 열심히 이광을 조져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