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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277화 (1,27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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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내 말에 신승은 한동안 현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시주께서 어찌 역근세수경을 찾으시는지 모르겠으나 본사에서는 오래전에 실전되었소.”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알고 있소. 수백 년 전에 어떤 강력한 절대지경의 마두가 역근세수경을 훔쳐갔다지?”

“허허…. 본사의 은밀한 비사까지 알고 계시는가. 그 말대로 노납이야말로 역근세수경의 행방을 알 수 있다면 애타게 찾을 것이오. 그런데도 어찌 노납에게 역근세수경을 달라하시는지 궁금하구려.”

“정확히는 지금 역근세수경을 달라는 게 아니오. 내가 이 말을 한 까닭은….”

나는 신승을 진지한 눈으로 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역근세수경의 단서를 갖고 있소. 그래서 앞으로 내가 역근세수경을 찾아낼 수 있게 과거 소림사를 창건한 초대 혜가(慧可)와 2대 소림사 주지인 도신(道信)의 기록을 모두 내게 넘겨주었으면 하오.”

“……!!”

“그리고 그 결과 내가 역근세수경을 찾아낸다면 그 역근세수경은 내 것이오. 어떻소?”

“미래에 찾아낼 역근세수경의 소유권을 달라…. 그 말씀이시오.”

“그렇소.”

“…….”

말이 좀 꼬이긴 했지만 신승 명호대사는 현명해서인지 바로 내 말뜻을 알아들은 듯 했다. 나는 내심 생각했다.

‘500년간의 기억전송에서 신승 명호대사는 역근세수경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가장 큰 실책은 소림사의 자료가 팔부신중과의 전투에서 소실된 거라고 했었다.’

내가 실종되고도 당분간은 별 문제 없었지만 팔부신중이 일으킨 요괴대란이 커지면서 소림사 또한 팔부신중에게 습격 받아서 중요한 시설이 불타고 말았었다. 그리고 그 때 소림사의 자료가 소실되며 역근세수경에 대한 가장 중대한 단서라고 할 수 있는 1대 창건자인 혜가와 2대 도신의 기록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500년 후의 신승은 늘 그 자료를 분석해야만 했다고 자신의 후회를 전뇌자의 데이터에 입력해두었어. 직접 역근세수경을 시전할 수 있었던 혜가와 도신이라면 뭐라도 단서를 남겼을 거라고….’

그리고 전생한지 얼마 안 된 이 시대라면 소림사도 멀쩡하고 1,2대 주지에 대한 자료도 고스란히 소림사 모처에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기에 일단 강한 말로 신승을 압박하며 교섭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역근세수경의 미래의 소유권 따윈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한번만이라도 내가 익히기만 하면 다음 생으로 전승되니까!’

혜가와 도신에 대한 자료를 받아서 외워야 해!

소림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역근세수경을 찾아낼 수가 있다!

내 말에 한참동안 생각하던 신승이 말했다.

“시주의 무공은 이미 하늘에 닿아있는 듯 하오…. 전설의 역근세수경을 얻는다 하여 그대의 무공이 크게 증강할 것 같지는 않은데 욕심을 부리는 이유가 무엇이오?”

나는 신승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소. 나는 수많은 기연과 영약을 취하여 이만한 경지에 올랐지만 사실 진짜 절대고수들에 비하면 미진하오. 그리고 내가 알기로 역근세수경은 신역(神域)에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단서! 그거야말로 소림사 최강의 신공이란 걸 알고 있소이다.”

“…….”

“어차피 이대로는 그대들도 얻을 수 없는 전설일 뿐이오. 허나 나를 도와준다면 당신들에게도 역근세수경의 내용을 모조리 공유하겠다는 걸 약속하오. 어떻소?”

그러자 신승이 눈에서 이채를 띄며 말했다.

“그대는 마치…. 본사가 그대를 돕기만 하면 역근세수경을 바로 얻어낼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있구려…. 도대체 어떤 단서를 갖고 있길래 그리 확신하는 것이오?”

“그걸 말해준다면 내 제안에 응하겠소?”

“단서가 무엇인지 들어보았으면 하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역근세수경의 내용이 따로 있소. 사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더욱 찾아다니는 것이오.”

“호오…. 말해주시오.”

“좋소!”

나는 이윽고 뇌정경을 운용해 기억을 강하게 되살리며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미래에서 보았던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선(仙)이란 단(丹)이며 진(眞)은 선(仙)이니 내단과 용맥을 합일하여 어짐을 손에 넣는 것이 바로 태정(太正)한 기의(氣意)였다. 그리하여 나는 폭포수 아래 터를 잡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력을 수행하고 조사(祖事)의 염(念)을 깊이 수양하였나니, 하루는 깨달음을 얻어 폭포 속에서 잉어를 잡으려 뛰어들었다가 낚싯줄이 발에 걸려 숨이 막히는 날이 있었다….”

“…….”

“그, 그리하여 폭(暴)이란 중주(重注)라, 삼염(三念)을 모아 상하단전에 올리고 내리길 반복하였고…. 그 날은 수행이 덜 되어 텐트로 나와 라면을 끓여…먹고…. 바지를 볕에 말리어….”

…으음…. 뭔가 말하다보니 정말 이상한 내용 같은데….

하지만 나는 신승의 얼굴이 어리둥절해지며 나 또한 약간의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래에서 보았던 그 내용을 좔좔 읊기 시작했다. 총 2만여 자 정도의 그 내용은 사실상 내가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역근세수경의 단서였기 때문이었다.

멈출 수 없다.

500년 후 전국옥새의 검색으로 등장한 390만 개의 단서 중 하나.

삶에_지친_현대인의_위대한_마음수련_역근세수경.tyt의 낭독을!

약 한 시진 후, 신승은 내 낭독을 모두 들은 후 입을 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단어가 많으나…. 어쩐지 그 내용에서 느껴지는 현기와… 그리고 주로 쓰인 단어들은 노납이 예전에 보았던 고문(古文)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하구려.”

나는 그 말에 확하고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이오?!”

신승은 찬찬히 자신의 눈을 감으며 염주를 굴렸다.

“노납은 귀하의 단서를 진실된 것으로 인정하겠소…. 그대만한 신인(神人)이 나같이 하찮은 자를 농락하려 이토록 구차한 행위를 할 이유가 없으며… 그대가 가져온 단서는 어쩐지 참일 것 같소이다.”

“……!!”

“앞으로 그대와 더불어 역근세수경을 탐색하는 여정에 동참하겠소. 노납도 소림사도.”

신승이 듣자마자 바로 인정하다니?!

나는 기쁘면서도 뭔가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이, 이거 아무리 봐도 내공도 별로 없는 수염난 아저씨가 폭포 근처에서 수련한답시고 멍청한 짓 한 내용같아서 믿음이 안 갔는데….’

혹시나 해서 말해본 게 신승의 감으로 그럴듯해 보일 줄이야.

정말로 이게 단서였단 건가!

내가 내심 놀라고 있을 때 신승이 말했다.

“따라 오시오. 본사의 숨겨진 장서각(藏書閣)으로 귀하를 안내하겠소.”

신승이 신법을 운용해서 소림사 본당의 뒤편에 있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향했다. 그리고 절벽에서 한참 밑으로 내려가자 이끼가 잔뜩 낀 어두운 장소가 나타났는데, 신승은 그 장소에서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거대한 바위에 손을 뻗어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장사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들기 힘들 것 같은 바위를 가볍게 빼낸 신승이 생겨난 출구로 들어갔고, 나는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소림사의 비밀장서각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좁은 땅굴을 조금 걸어들어가자 내부에는 잘 정비된 도서관이 존재했으며 시허연 냉기마저 감도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여기에 수만 권의 책이 있다는 걸 알곤 중얼거렸다.

“과연 이런 방법으로 책을 보존하고 있었군. 그렇다면 소림사 본당에 있는 장서각은 위장용이란 말이오?”

“위장이라기보다는 그 곳 또한 엄중한 서고가 맞소. 단지 이곳에는 평범한 불제자들에게 쉽게 용납되지 못하는 책들이 주로 봉인되어 있고, 이 책 중에는 귀하가 원하는 대로 초대주지 혜가와 도신의 유산 또한 있을 것이오.”

“있을 것…이라는 건 확신하지 못한다는 말이오?”

“그렇소. 노납 또한 소림의 맥을 잇는 자로서 이 비밀장서각을 관리하고 있으나 사실 이 장서각에서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얼마 없소. 왜냐하면 전부 외계의 언어나 고문(古文)이기 때문이오.”

펄럭

“보시오. 이게 인간세상의 언어같소?”

“…….”

나는 신승이 꺼내서 보여준 흑색과 은색이 섞여있는 기묘한 표지의 책을 보고는 잠시 침음성을 흘렸다. 책의 표지도 특이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보여준 내부의 글자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글자가 설마 움직일 줄이야!

동시에 나는 그 책의 정체를 깨닫고는 말했다.

“마도서(魔道書)로군.”

“그렇소. 이면의 세계를 알고 계시는구려.”

“이곳에는 금지된 마도서나 외계의 물건이 봉인되어있는 것이오?”

“그러하오. 하나같이 보통 인간이 오랫동안 접할 경우 미쳐버리는 마물들…. 소림사가 오랫동안 강호활동을 하며 마각을 드러낸 사악한 마도서를 불법으로 봉인하여 이곳에 가둬놓고 있었던 것이오.”

“그랬군…. 근데 그래도 양이 너무 많은 거 아니오? 수만 권의 마도서라니.”

“마도서는 이 중 얼마 되지 않소. 대부분이 사악한 외계존재를 목격한 단순한 괴행담이나 고대의 기술서같은 것들이오. 그것만 하더라도 세상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가리지 않고 봉인하고 있소.”

“그렇구만.”

나는 신승의 말에 납득하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는 말했다.

“잠깐. 혜가나 도신의 유산이 마도서와 함께 섞일 성질이란 말이오? 그 자들은 뛰어난 깨달음을 얻은 선인(先人)들일 테고 혼돈을 적대할 텐데.”

“물론 그렇지 않소. 허나 표면적인 장서각은 모두 오랜 시간 불법연구로 분석된 상태. 그대가 말한 숨겨진 유산이 있다면 이 장소밖에 남지 않았소.”

“흠.”

“노납 또한 이 장소를 관리만 할 뿐 굳이 사악한 마도서나 외계의 기술을 찾아보진 않았던 터…. 마기에 영향을 받을까봐 연구한 적은 없었소.”

“그래서 그랬던 거군.”

“음?”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신승의 말에 어째서 미래의 신승이 이런 보물같은 지식창고를 놔두고도 뒤늦게 소실된 후에야 후회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마도서나 사악한 기술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오염되기 때문에 그걸 익히 알고 있는 신승이 일부러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마도서 창고 어딘가에 소림사 초대의 기록, 역근세수경의 진짜 단서가 있을 확률이 높아.’

아마 소림사의 역사가 오래 이어지면서 자료가 섞여버린 탓이 아니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신승. 괜찮다면 이 비밀장서각을 내게 주실 수 있겠소?”

그러자 신승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건 아니 될 말. 무모한 요구요.”

역시 그런가? 오늘 처음 만난 괴인이 소림사가 수천 년간 지켜온 비밀장서각을 통째로 가져가겠다는데 신승이 동의할 리가 없으리라. 하지만 나는 여기서 좀 더 세게 나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내 동료 중에는 마도서나 서적분석이 전문인 자가 있소. 그리고 마법에 오염되지 않게 스스로를 방어할 수도 있지. 그 동료의 도움을 받아서 이 수많은 자료들을 빠르게 분석하는 게 낫지, 설마 이걸 일일이 찾아봐야 한다는 소리요? 마도서를 읽으면 정신이 타락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

“흠…. 정 그렇다면 귀하에게 신뢰의 증표로 담보를 맡기겠소. 그 담보를 댓가로 장서각을 대여해갔으면 하오.”

“신뢰의 증표라니?”

스윽

이윽고 나는 목갑에서 월요를 꺼내서 삼종신기를 신승에게 내밀었다.

“받으시오. 이것이 바로 칠요 중 하나인 월요 삼종신기요.”

“……!!”

“천계에서 찾으러 오면 그냥 줘도 되오.”

“이, 이것이 진짜 칠요란 말이오?”

신승이 수양에도 불구하고 말을 더듬을 정도로 놀랐다. 전설의 칠요를 대뜸 내가 꺼낼 줄은 몰랐으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반드시 역근세수경을 찾아내야만 하오. 당신에게 월요를 담보로 맡기는 건 내 결의의 증거요!”

어차피 월요를 갖고다녀봤자 해방시켜서 쓰지도 못하고 문제의 소지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바에야 슬쩍 소림사에 맡겨두면 설령 월요를 찾으러 천계가 찾으러 와도 나한테까지 시비 걸 확률은 줄어들겠지! 천계가 함부로 소림사를 멸망시킬 리도 없고!

“…….”

신승은 한동안 내 눈을 마주보았다. 그리고는 불호를 외우며 말했다.

“아미타불…. 부디 그대가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할 영웅이길 바라겠소….”

“허락하는 것이오?”

“허락하겠소.”

“고맙소. 역근세수경의 단서를 찾으면 다시 논의하러 오겠소.”

휘리리릭

이윽고 나는 반 시진에 걸쳐 목갑에 모든 비밀장서각의 책을 다 집어넣었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오면서 신승에게 말했다.

“아 맞다. 하는 김에 방주도 내가 갖겠소.”

“…….”

“나는 방주의 숨겨진 기능을 해금해서 움직일 줄 아오. 내가 쓰는 게 더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이오.”

“백웅 시주… 당신은 대체….”

신승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후 평정을 되찾고는 말했다.

“나쁜 일에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그대의 소유로 하시오.”

“고맙소. 방주는 알아서 갖고 가겠소.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그리 하시오.”

파앗

나는 소림사를 나오며 생각했다.

‘방주를 움직이려면 저번처럼 만상지투를 이용해서 또 비밀장소를 돌파해야하는데 저번에 해 보니까 너무 아팠어.’

손이 터질 것 같았고 사실 그 때 행했던 만상지투가 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잘못하면 손목만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으므로 지금 섣불리 행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방주가 필요 없는 상태에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현 시점에서 방주를 움직일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좋아. 이제 가 볼까.”

나는 소림사에서 나온 후 천축으로 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만날 자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휘이잉

나는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날아서 천축까지 날아갔고, 이윽고 천축의 바다를 넘어 땅에 도달하는 시점이 되자 방향을 잡기 위해 무던히 고생했다. 지금부터 내가 찾아갈 장소는 비등 없이 맨몸으로 찾아가본 적이 없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억을 살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으…. 바할랏사가 대체 어디야?”

전국옥새랑 비등이 없으니까 너무 불편하다. 역시 방주라도 갖고올 걸 그랬나?

하지만 나는 이내 후회를 접으며 최선을 다해 근처 현지인들에게 수소문하며 바할랏사라는 특이한 영산이 있는 지역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천축을 돌아다니던 중 사흘만에 바할랏사의 위치를 알고는 찾아갈 수가 있었다.

천축대륙의 남서쪽, 그 중에서도 대륙에서 떨어진 외딴 섬.

그곳이 바로 바할랏사였고 나는 섬을 향해서 날아가지 않고 배를 빌려서 탔다. 근처의 고기잡이배를 빌렸는데 허름하고 딱 두 명만 탈 수 있을 정도였다. 약간의 금을 주자 선뜻 배를 빌려준 현지인들이 말했다.

“여기서 평생을 살았는데 바할랏사에 가려는 자는 처음 보는군. 거기는 코딱지만한 작은 무인도에 불과한데 중원인이 뭐하러 거기에 가려는 거요?”

“…….”

나는 대꾸하지 않고 배를 몰아서 바다로 출항했다. 고기잡이배라고 하더라도 내가 내공을 잔뜩 불어넣으면 새보다 빠른 속도로 날듯이 갈 수 있었고 나는 머지않아 안개가 잔뜩 낀 망망대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할랏사가 보이는군.”

먼 곳에 영산 바할랏사가 있는 섬이 보이자, 나는 해무가 잔뜩 끼자 미리 가져왔던 정어리와 고등어를 잔뜩 배에서 바다로 들이부으며 외쳤다.

“위대한 칼파의 후예가 지혜를 이어받아 공양하나이다. 유세비크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소서.”

우우웅

그러자 잠시 후 섬에 있던 영산 바할랏사가 새파란 빛을 허공으로 광선처럼 뿜어내는 게 보였다.

스아아아!!

바다 전체가 새하얗게 변하더니 망망대해에 소금이 가득 차는 것 같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바다가 완전히 굳어서 마치 소금의 대지에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고깃배에서 내려서 한걸음을 디뎠는데 여기는 이제 바다가 아니라 완전히 백토(白土)처럼 느껴졌다.

나는 소금의 대지를 한동안 걸었고, 그렇게 몇 백 걸음을 걷고 있자 갑자기 주변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질적인 고대사막의 밤 풍경이 내 근처에 출현했다. 방금 전까지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있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저기군.’

나는 먼 곳에 보이는 고대유적을 보고는 빠르게 신법을 써서 달려갔다. 그리고 유적에 발을 들이자마자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중간문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리고 중간문까지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고즈넉한 고대의 벽돌방이 있었고 벽돌방에는 고대의 신상(神像)이 놓여있는 게 보였다.

나는 신상을 집어 들고 벽돌방 바깥으로 나왔는데 바로 그 때 전방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자는 삼엄한 살기를 내뿜으며 내게 으르렁거렸다.

“멈춰라.”

나는 그와 십여 장의 거리를 두고 멈춰섰다. 커다란 유세비크 거대유적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던 나와 그 자는 한동안 침묵했고, 상대가 나를 강하게 노려보며 말하는 게 들려왔다.

“네놈, 어떻게 이 유세비크에 들어온 거지? 이곳은 고대의 마법으로 수호받는 곳이라서 물리적인 방법으론 들어올 수 없다.”

나는 가볍게 대꾸했다.

“알아. 천축의 타르 사막에 있지만 정작 타르 사막을 지나다니면서는 절대 올 수 없게 되어있지. 그래서 수만 명의 인간들이 왔다갔다 하면서도 발견하지 못한 고대의 유적인 거잖아.”

“그렇다.”

“하지만 영산 바할랏사 근처에서 해무가 낄 때 물고기를 공양하면 유세비크로 올 수 있게 공간을 이동시켜준다는 걸 알고 있지.”

“……!!”

그 말에 상대가 눈을 부릅뜨는 듯 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나? 유세비크의 수호자인 나만이 알고 있는 그 샛길로 왔다고 말하는 것이냐?”

“그래.”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나는 능글맞게 대꾸했다.

“말도 안 되는 거 같지? 여기서 태어나서 자란 너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생전 처음 보는 자가 알고 있으니까.”

“…….”

“하지만 말이 돼. 29번째에는 워낙 갑작스럽게 만났다만 원래 이렇게 만나려 했었지.”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바로 너 자신이 알려줬거든, 아수라.”

28번째 생에 500년 후의 아수라가 직접 알려준 정보.

바할랏사에 공양을 해서 유세비크로 오는 샛길로 와서 고대신상을 건드리면 저절로 자극받아서 유적수호자 아수라가 찾아올 것이라고 500년 후의 아수라에게 직접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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