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6====================
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망량에게 무예의 깨달음을 갈무리해줄 조언자를 구하러 마을을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망량이 말했다.
“흐음, 모순되는구려.”
“뭐가 말이오?”
“당신은 분명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는 게 읽혔는데, 정작 하는 행동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천하를 뛰어다니고 있다니…. 물론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원인을 제압하는 건 현명한 행동이외만 어쩐지 자가당착이라는 느낌이 가시질 않는군.”
“…….”
“이렇게 해서야 넉넉히 살 수나 있겠소?”
헉….
나는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걸 망량이 지적하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사, 사실은 지금 꽤 위태한 느낌이라서 말이오. 천하에 흉변이 일어나는 건 늘 피할 수 없었던 일이라서 일단 아는 한에서만 원인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천하를 태평하게 할 수 있을지.”
“천하를 태평하게…?”
망량이 눈에 이채를 띄더니 큰 대청에 자리를 잡고는 스윽 상체를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좀 더 내게 터놓고 얘기해 주시오. 내게 너무 깊은 사정을 말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나도 당신을 돕고 싶소.”
“으음.”
“난 천하경영을 늘 생각하던 사람이오. 우선은 지금 가장 중대한 문제부터 알려주시오! 내가 그 문제들을 풀어나갈 순서를 알려줄 수도 있을 거요.”
“…좋소.”
나는 망량이 도와준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 위태한 요소는 4가지 정도요.”
“말해주시오.”
“첫째. 내가 사실 얼마전에 고려 강화도에서 월요를 가져왔는데 실수로 수호자인 동영의 창세신 이자나기노미코토를 소멸시키고 말았소. 그래서 천계에서 날 찾아오지 않을지 걱정중이오.”
“…….”
망량의 표정이 벙 찌는게 보였다.
“둘째. 황궁에서 사신위 주작 제갈유룡이 황제를 옹위해 천도를 계획 중인 거 같은데 사실 낙양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대마물이 있으며 그 고대마물은 전설의 마왕 팔부신중과 대치중이었소…. 난 끼어들기 싫어서 안 끼어드는 중이오.”
“제, 제갈유룡. 그리고 마왕이라고….”
망량은 뭔가 띵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짚으며 비틀거렸다. 그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고 잠시 숨을 몰아쉬다가 말했다.
“나머지 두 개를 듣기가 겁이 나는군…. 또 뭐가 있소?”
“셋째. 금오도에서 고대의 마왕이자 신의 사도인 달기가 부활할 것 같소. 미호가 그 영향을 받아서 알게 되었소. 달기는 여와의 음신이라서 이놈한테도 천계가 개입할 것 같소.”
“…놀라기도 슬슬 지치… 는군. 마지막은….”
“마지막. 스사노오가 그러던데 머지않아 이 세상에 대홍수가 일어나오. 징조는 흑월(黑月)이라고 하던데 검은 달이 떠오르는 날 지상계를 쓸어버릴 대홍수가 시작될 것이라 하오.”
“대, 대홍수…. 고대에 세계를 휩쓸었던 그건가.”
“그렇소.”
“더 없소?”
“음…. 그러고 보니 서장무림이 중원을 몇 년 내에 습격할 거 같은데 그들의 배후에 만신전의 신격 중 하나인 파르바티가 있는 것 같소…. 근데 이건 나름대로 잘 흘려보냈던 거 같아서 지금 걱정하지 않소.”
“…미친… 이, 이런….”
망량은 내 말을 다 듣고 난 후 한동안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윽고 평정을 되찾으며 뭔가 생각을 하는 기색으로 바뀌었고 입을 열었다.
“하나같이 대영웅조차 기겁할 난이도의 재앙인데 그런게 4개씩이나 있는데도 잘도 천하태평을 추구한다 말한거요…?”
“어, 그게….”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쌓여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소.”
나는 망량의 말에 할말이 없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번 생은 정말 쉽고 평탄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망량 말을 들으니 천하가 고난에 휩싸인 거 같지…?’
이건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위화감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인식의 부조화가 어째서 생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너무 빡셌던 것이다.
이 정도는 고난으로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것도 황제 공손헌원과 싸우면서 개지랄을 했던 경험을 생각하면 너무나 완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망량이 이윽고 말했다.
“솔직히 내 손을 벗어난 차원의 문제같소만…. 내가 객관적으로 책략을 주자면, 당신이 최우선으로 해결해야할 건 대홍수라고 생각하오.”
“대홍수? 어째서 그렇소?”
“일단 정리해보자면 첫 번째 문제의 적수는 천계, 두 번째는 팔부신중과 제갈유룡과 마왕, 세 번째는 금오도의 달기라고 할 수 있소. 이들의 강약을 떠나서 네 번째 대홍수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소.”
“그게 무엇이오?”
“바로 적이 인격체라는 것이오. 대홍수는 자연재앙이고.”
망량이 손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엄청난 경험과 힘을 지니고 있으니 인격체를 상대로는 왠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소.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그렇소. 충분히 3개의 문제를 해결할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으니 지금도 여유를 갖고 있는 거겠지. 막말로 적수가 인격체인 이상 어떻게든 그들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되고 당신은 촌장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거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네 번째, 대홍수의 경우는 다르오. 이 재앙은 인격체가 아닌 자연의 재앙이며 대홍수를 놔둘 경우 대명제국과 문명이 모조리 붕괴하게 되오. 그렇게 되면 적을 쓰러뜨릴 기회도 없이 당신의 평안한 삶은 종식하게 되겠지. 칼질로 전세계에 밀어닥치는 홍수를 막을 수도 없잖소.”
“……!!”
“설령 소을촌을 결계로 막아낸다 하더라도 문명이 붕괴하면 우린 원시시대 동굴에서 다시 시작해야하오.”
나는 망량의 말을 듣자 비로소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우선순위가 정리됨을 느꼈다.
“대홍수를 막지 않으면 나머지 3개의 재앙을 해결해봤자 무의미한 거군!”
“바로 그거요. 당신은 이번에 무술고수를 찾으러 나가면서 대홍수의 단서 또한 찾아오는 게 좋소. 그리고 대홍수부터 선제적으로 제압한 후 나머지 재앙을 억누르는 게 낫겠지. 그러고 보니 대홍수가 어느 정도 남았는지는 알고 있는 거요?”
“어… 그게….”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스사노오라는 신이 대홍수를 막기 위해 3년간 힘을 회복하겠다 했소. 그렇게 치면 지금부터는 최소 2년 정도는 시간이 있다 생각하지만…. 정확히 그 재앙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소.”
“2년… 흠…. 뭔가 스사노오 말고 홍수 관련으로 더욱 대책을 가진 자는 없는 거요?”
“홍수… 라면.”
문득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오도(吳刀)를 떠올리며 목갑에서 꺼내서 망량에게 보여주었다.
“모산파에 봉인되어있던 이 오도에 옛 임금인 곤(鲧)이 봉인되어 있소. 이 자가 치수를 행했다 했으니 한번 물어볼 생각이었소.”
“고… 곤?! 설마 고사에 나오는 그 존재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소만….”
“진작에 안 물어봤던 이유가 무엇이오?”
“이 자가 힘을 회복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어서 괜히 신경질 낼까봐….”
“지금이라도 당장 깨워서 물어보시오.”
“알았소.”
나는 오도에 힘을 불어넣으며 곤을 불렀다.
“나와라, 곤!!”
우웅
[왜 불렀나….]
곤이 영체를 드러내며 오도에서 출현하는 게 보였다. 나는 곤에게 말했다.
“곤이여. 곧 이 세상에 대홍수가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
“그 대홍수는 흑월(黑月)이 떠오르는 날 시작된다고 하던데 뭔가 짐작가는 게 있느냐?”
곤은 비늘로 뒤덮인 상반신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수의를 들썩이며 웃었다.
[크흐… 흐하하하하…. 그걸 뭐하러 내게 묻나…. 설마… 대홍수를 막겠다는 소리냐?]
“당연히 막아야지. 내 마을을 지켜야겠다.”
[마을…? 네 영토를 지키겠다는 소리인가.]
“그래. 뭐 문제라도 있냐.”
[흐흐…. 나 또한 그랬었지…. 내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자 모든 걸 다 바쳤었는데…. 삼황오제가….]
넋두리하듯 중얼거리던 곤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짐작가는 게 있다. 하지만 이 단서를 맨입으로 줄 수는 없다.]
“거래하자는 거냐?”
[그렇다…. 내게 강력한 공물이나 신보를 바친다면 알려주겠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공물을 준다면 내가 아는 걸 말해주지….]
“흐음….”
나쁠 게 없는 제안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걸 네게 주겠다. 네 힘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겠지.”
나는 마도서 나인성본전을 그에게 내밀었다.
[호오…!! 강력한 마도서로군.]
그러자 곤은 단숨에 진짜라는 걸 알았는지 꽤나 동요하는 기색이었고, 만족스러운 듯 껄껄 웃었다.
[크흐흐…. 거래할 줄 아는 놈이구….]
나는 재빨리 놈의 말을 끊어먹었다.
“하지만 그냥 주면 내가 손해보는 거니까 이대론 안 돼.”
[뭐라고.]
“네가 말한 ‘짐작’이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단서에 불과하잖아? 하지만 네가 이걸 먹으면 본신의 힘을 회복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겠지. 내가 밑지는 장사니까 추가조건이 있다.”
[…흠…. 무엇이냐.]
“네가 규룡(虯龍)의 권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일 년에 세 번 쓸 수 있는 그 권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해 다오.”
[……!!]
그러자 곤이 크게 경계의 기색을 띄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네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도서는 줄 수 없단 거다.”
[…….]
“잘 생각해. 네 도움이 없더라도 내 힘으로 단서 하나 찾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내가 으름장을 놓듯이 말하자 곤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 계약에 응하겠다.]
“계약성립이군.”
화아악!!
잠시 후 화인(火印)같은 게 잠시 내 손등에 새겨졌다가 사라졌다. 나는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느끼고는 놈에게 순순히 마도서를 넘겼고, 곤의 영체는 받자마자 꿀떡꿀떡 목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흐으으으….]
마도서를 다 삼킨 곤이 흐느적거리며 잠시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 후 몇 배는 강력해진 영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계약대로 흑월이 뭔지 말해주지.]
“빨리 말해. 나도 다른 데 가볼 데 있으니까.”
[내가 알기로 그것은 바로 신(神)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
내가 반문하자 곤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의 시대에 대홍수가 일어날 때 대홍수를 주도한 존재는 바로 삼황오제였다. 그런데 삼황오제는 그 당시 한창 사방의 신격들을 제압하고 있던 중이었기에 여력이 많지 않았다. 섣불리 힘을 썼다가 인과율의 역풍을 맞을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들은 적당한 대리인을 찾아내었고 그 자에게 시켜 전세계에 홍수의 재앙을 일으켰다.]
“대리인? 그 자도 신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삼황오제가 아닌 삼황오제의 대리자, 흉행의 집행자라 할 수 있는 그 신격이 출현했을 때…. 흑월(黑月)이 중천에 떠오른 걸 보았다. 그 신의 신력에 감응한 자연현상이었을 것이다.]
뜻밖의 이야기다. 흑월이 자연현상이 아니라 신의 출현에 따른 현상이었다니?
나는 생각보다 귀중한 정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 놈의 이름은 뭐지?”
[글쎄…. 나는 그것까진 모른다. 나는 삼황오제에게 맞서기만으로도 힘에 부쳤으니까…. 하지만… 그 신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라는 것만 알고 있다.]
“엥? 신이란 원래 그런 거 아닌가?”
[…무성(無性) 그 자체가 그 신의 정체성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자라고 들었다. 또한 아주 비밀스러운 존재라고….]
“흐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흑월을 타고난 무성의 신이라고?’
정말 30번 전생하면서 처음 듣는 놈이다. 어쨌든 이건 큰 단서였으므로 곤에게 말했다.
“규룡의 힘을 쓰기로 계약했으니 앞으로 종종 보게 되겠군. 규룡의 권능을 쓸 때는 잘 부탁한다.”
[흐흐…. 파천황같은 자여…. 널 따라다니는 것도 재밌겠군…. 잠시 눈을 붙이겠다.]
슈욱!!
곤은 다시 오도 속으로 영체를 숨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힘이 바닥치고 있었기에 수면을 취해서 한시라도 빨리 마도서의 힘을 손에 넣고 싶을 것이리라. 그 광경을 옆에서 보고 있던 망량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곤이란 자 또한 마왕처럼 보이는데 그가 힘을 키워도 괜찮겠소? 그가 배신하면….”
“괜찮소. 어차피 그런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니까.”
곤이 배신하면 다음 생에 때려죽이면 그만이다!
“허어…. 대범하군.”
망량은 혀를 내두르고는 말했다.
“대홍수를 막을 방법은 정해졌구려. 흑월을 형성하는 무성의 신, 삼황오제의 대리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어서 그 자를 사전에 제압하는 것! 그걸 이뤄낸다면 세상을 구하는 것이오.”
“알았소!”
“기한은 2년 정도로 잡읍시다. 굳이 이번 강호행이 아니라도 2년 내에만 단서를 알아내면 되겠지.”
“2년… 긴 시간이겠군!”
나는 상황정리를 끝내고는 마을을 나설 준비를 했다. 그리고 방일을 데려가기로 했다.
‘방일한테 틈틈히 무공을 가르쳐줘서 빠르게 일류급 이상으로 성장시켜야겠다.’
파앗
나는 마을을 나서서 내가 최초로 생각했던 목적지로 향하기로 했다.
‘천계의 절대지경 투선들을 곧장 만나기는 좀 그렇지. 그들이 강하긴 하지만 그들이 보고들은 게 모두 천계에 보고되니까.’
그렇다고 이청운을 되살리기도 백련교주 때문에 껄끄럽고 그 백련교주한테도 이번 생의 사건이 심화될까봐 섣불리 찾아가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무사시나 아수라에게 찾아가는 게 맞을 것 같지만 나는 그들을 최우선으로 찾아가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이 있었기에 하남으로 간 것이다.
‘뭐, 29번째 삶에 약속한 것도 있고…. 내가 지금 무술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찾아갈 녀석은 하나밖에 없지. 다만 그 녀석을 당장 만나기보다는 먼저…. 여길 와야겠어.’
진작 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촌장의 삶이 더 재밌어서 오기가 귀찮았던 것 같다.
후웅
나는 빠르게 산문을 통과했는데 산문을 지키던 무승들은 내가 지나쳐 간 것조차 인식 못한 것 같았다. 너무 신법이 빨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살짝 허공을 날다가 이윽고 소림사에서 제일가는 고승이 머무는 장소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타닷
나는 바위 위에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고 있는 승려를 보며 포권했다.
“반갑소. 나는 소을촌장인 백웅이라고 하오.”
가사를 입은 승려는 슬며시 눈을 뜨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절대지경의 고수…. 신인(神人)인가?”
역시 저 자는 뭔가 다르다. 내가 그리 역량을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단숨에 내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를 알아챈 것이다. 나는 그를 섣불리 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우리 마을에도 소림사처럼 서장의 고수들이 습격해 와서 격퇴한 일이 있었소. 소림사에서도 그들을 잘 격퇴하였는지 궁금해서 찾아왔소.”
그러자 승려는 현묘한 눈으로 아미타불, 하며 불호를 읊조리곤 말했다.
“소뢰음사의 주지와 아수혈사문의 문주가 본사에 와서 스스로 오체투지하고 서장무림의 침공을 예고했던 그 일…. 백웅시주께서 행하신 일이었구려.”
“음?”
“그들의 혼백이 크게 흐트러져 있었소…. 배교와 연이 닿으신 모양이구려.”
“…….”
굳이 숨기려 했던 건 아니지만 상황을 이렇게 잘 파악하고 있다니 과연 정파무림의 태두다웠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소림사라면 그 자들을 죽이지 않고 가둬둘 거라 생각했소. 그들이 본진에 되돌아가지 않는 한 서장의 침공은 미뤄질 거라 생각해서.”
“그 말씀대로 그들은 본사의 뇌옥에 가둬져 있소.”
“다행이군. 죽이지 않는 게 중요하오.”
그렇다. 나는 일부러 소을촌을 침공했던 소뢰음사 주지와 아수혈사문주를 제압한 후 이혼대법을 걸어서 소림사로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소림사에게 놈들을 가둬두게끔 하면서 경각심도 주고 서장의 침공도 늦추는 효과를 기대했었다. 눈앞의 승려는 그런 내 속내를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실로 무림의 홍복이로다…. 허허….”
승려가 옅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
“시주께선 다른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구려…. 경청하겠으니 말씀하시오.”
“흐음. 불쾌하게 듣지 말아주시오.”
이윽고 이어진 내 말에 승려의 얼굴이 약간 굳어지는 게 보였다.
“신승(神僧) 명호대사. 역근세수경(易筋洗隨經)을 내게 주실 수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