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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다음 날부터 방일을 데려와서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광은 체력과 기력이 다 소모되어 본디 위중한 상태였겠지만 내가 기를 엄청나게 불어넣은 덕에 그저 탈진해서 회복중이었고 내 예상대로라면 사흘 후에 정신을 차릴 듯 했다. 나는 이광이 깨어나면 그때 찾아가서 놀리기로 마음먹고 그 때까지는 방일을 가르치는데 집중하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동안 배웠던 만큼 펼쳐봐라.”
“네.”
나는 방일의 무공수준을 잠시 보고는 괜찮다고 느꼈다.
‘독고성이 막 패긴 했어도 제대로 가르쳤군. 허술했던 기초를 다잡았고 방일의 검초에 균형이 생겼다. 원래부터 몇 년이나 무공을 배웠기 때문에 고련했을 때 성과가 나온 거겠지.’
하지만 성장하긴 했어도 그게 경지가 올랐다거나 실력상승으로 곧장 이어질 정도는 아니다. 그저 성장을 가로막던 걸 치워버리고 도약을 준비하는 단계였다. 나는 방일에게 말했다.
“방일. 네 꿈이 고수라고 했는데 어느 정도 고수가 되는 걸 원하는 것이냐?”
내 질문에 방일이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사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강호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였으면 했습니다.”
“뭐 그렇겠지….”
나는 방일처럼 하수였던 적이 있었으므로 그가 어떤 심정으로 말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밑바닥 무공을 갖고 있으면 높은 경지가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막연하고 추상적인 희망만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선 안 돼. 밑바닥일수록 더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만 성장할 수 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면 목표가 없어도 알아서 성장하지만 밑바닥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내가 경험적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내가 기준을 하나 제시해주지. 일단 구파일방 장문인을 정면에서 쓰러뜨릴 정도로 강해지는 게 어떻느냐.”
“……!!”
방일이 경악하다가 말했다.
“그, 그렇게나 말입니까? 그게 가능할까요?”
“적어도 지금 이광은 가능하다. 무당파나 소림사같은 몇몇 문파는 안 되겠지만 이광의 실력이 딱 내가 말했던 수준이지.”
“헉….”
“다시 말하자면 장래에 현재의 이광 수준의 고수가 되길 노려봐라. 어떠냐.”
“…….”
방일은 크게 고민하더니 말했다.
“해보겠습니다.”
“좋아. 해보자!”
나는 내심 씩 웃었다. 언젠가 내가 거쳐왔던 길을 방일도 걷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마음속으로 한가지의 다짐이 새롭게 생겨났다.
‘방일이 강해질 때까지는 이 일상을 절대로 지켜내리라.’
그리고 내가 제일먼저 방일에게 시킨 수련은 바로 란, 나, 찰을 비롯하여 창술을 연마하는 수련이었다. 방일 또한 지금껏 검술을 위주로 수련해 왔으므로 내가 내세운 수련법에 당황하는 듯 했다.
“저는 검술로 고수가 되려 합니다. 창술은 좀….”
“…….”
방일! 넌 지금 일류고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저 그런 무술인이다! 네 수준을 잊어버린 거냐? 시키면 좀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야! 란, 나, 찰의 수련효과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버럭하려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왠지… 이 상황이 익숙한데?’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 이건…. 이광이 나를 가르칠 때 있었던 그 상황이잖아!’
나는 전혀 의식한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때의 상황과 거의 똑같다시피 했다. 다른 점이라면 이광의 자리에 내가 있고 내 자리에는 방일이 서 있다는 차이였다.
“…….”
아냐.
나는 이광과 달라.
나는 그 새끼랑 다르다고!!
‘화를 내지 말자…!!’
나는 황망해져서 잠시 관자놀이를 짚고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잘 들어…. 창은 기본적으로 강기나 의념을 이용해서 간격을 마음대로 조율하는 경지 이하에서는 압도적인 길이로 인한 간합으로 전투에서 유리하다. 달리 말하면 가장 대중적이고 무난하며 강력한 무기이고, 그 무기술의 기본이 바로 란, 나, 찰이다. 너도 청룡무관에서 오랫동안 수련 받았으니 란, 나, 찰을 해본 적 있겠지.”
“네. 수련생 때 적어도 백 번은 해 봤습니다.”
“백 번 갖고 되겠나. 쯧.”
나는 혀를 차고는 근처의 목창을 꺼내서 자세를 잡은 후 천천히 창을 움직였다.
“너도 알겠지만 란, 나, 찰은 매우 간단한 동작들이다. 그러나 사실 모든 창술의 초식은 이 란나찰의 변형이나 응용에 지나지 않아. 보다시피 이렇게….”
파밧!
“감아치고, 돌리고, 막고, 쳐내고, 피하고, 찌르고….”
투둥
“다시 쳐내고, 흘리고, 찌르고…. 모든 게 이 간단한 것의 반복이고 변형!”
쉬익
“이 세상 모든 창술의 초식이 실전에서 응용될 때 이 근본에서 출발하는 것뿐이다.”
나는 가상의 적수를 상대로 싸우는 듯한 응용을 보여주고는 창을 수발했다. 그것만으로도 물 흐르듯 화려한 동작이었는지 방일은 멍한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창을 알게 되면 검은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검사로서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렇다. 창술의 긴 간합 속에서 강고한 기본기를 터득해서 내면화시킬 정도가 되면 검술의 좁은 간격 속에서 얼마나 짜임새있는 운용을 해야 하는지 더 쉽게 알 수 있지. 부족한 간합 속에서 어떤 기본기가 필요한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예전 창술수련 이후에 내 검술경지가 빠르게 진보했던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해서인지 방일은 쉽게 알아듣는 듯 했다.
“그, 그렇습니까.”
“그래. 검술 안에서 검술의 초식을 보면 객관적일 수가 없다. 창술을 수련하고 나면 비로소 검술이 가진 진짜 성격이 보이지. 아마 그래서….”
나는 뭔가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래서 그 때 이광이 내게 란나찰을 가르쳤던…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 때 이광은 내가 검술을 수련하는 걸 그리 마뜩찮게 여겼고 그저 창술로 대성시킬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검술성취에 도움이 된 건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잡은 것과 다르지 않아.
나는 고개를 흔들고는 말했다.
“아무튼 이대로 란나찰의 수련을 해 봐라. 무작정 반복만 하지 말고 그 동작이 가진 뜻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옆에서 보며 지도해 주겠다.”
“알겠습니다.”
나는 하루종일 방일을 가르쳤지만 역시나 별로 늘지 않았다. 예상했던 거지만 방일의 재능은 나랑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천재들을 가르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으며 마치 굼벵이가 기어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음…. 범재를 가르친다는 건 이런 느낌인가….’
나는 생경한 느낌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일단 그 날은 방일을 쉬게 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다음날도 방일을 열심히 가르치며 옆에서 지도해 주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을 때 이광이 정양을 끝마치고 다시 수련장에 나오기 시작했으며 다소 침울한 기색으로 보였다.
‘흐흐흐…. 과연 10만 번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광 네 녀석이 해내기 전까지 놀려주마.’
나는 음충맞게 내심 웃었는데 뜻밖의 이변이 그 때 일어났다.
“태사부.”
갑자기 진소청이 내 앞에 와서 포권을 하며 말한 것이다.
“저도 10만 번 란나찰의 수련에 도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
아니 넌 왠지 할 것 같아!
다른 누구도 아니고 진소청인데!
“아니 씨 넌 갑자기 왜….”
당연히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아니라고 하려 했지만 그 순간 뭔가를 알아채고는 히죽 웃었다.
“…아니다. 그래 어디 해 보거라!”
망량도 진소청을 굳이 억제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또 하나의 계산이 섰다!
“네!”
부웅 부웅
그 날 진소청의 란나찰 도전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진소청이 될지 안 될지는 지금껏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 동안 흑백련을 먹어서 내공이 증진되었기에 완전히 도전불가능까진 아닐 것이다. 하지만 10만 번이라는 횟수는 초인적인 체력과 기력이 필요했기에 아직 내공은 현저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다.
‘흠…. 하지만 이광과 달리 진소청은 그 동안 기본기 란나찰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련해왔던 녀석이야.’
평소의 꾸준한 기본기 수련으로 치면 뇌신류 그 누구보다도 성실했던 게 진소청이다. 그래서 나는 결과를 섣불리 추측하지 못하고 이광 때와는 다른 심정으로 열심히 진소청의 란나찰 10만 번 도전을 관찰했다.
부웅 - !!
‘…기분 탓인가?’
진소청의 창섬이 2만5천 번에 도달했을 때 나는 어째서인지 진소청의 창끝이 좀 더 날카로워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창끝에서 나는 파공음이 마치 의념을 싣듯이 내 귀에 날아와 꽂히는 게 느껴졌다. 그저 착각일 뿐이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뭔가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았다.
부웅
부웅
횟수가 차분하게 쌓여서 어느 새 5만회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진소청의 호흡이나 내공이 흐트러지기는커녕 이광처럼 한쪽 무릎을 꿇는 추태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물리적으로 과도한 운동 때문에 진소청의 전신에 땀이 비오듯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아직도 진소청은 여유가 있어보였다.
“으음?!”
나는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어… 어째서지? 진소청의 내공은 분명히 이광보다 적어. 이광이 내공을 수련한 기간이 수십 년 이상 많으니 똑같이 흑백련을 먹었다 해도 진소청의 내공은 아직 후기지수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거야. 근데 어떻게 아직도 체력이 그리 소모되지 않은 거야?!’
흑백련이 좋은 영약이라지만 천년설삼처럼 아예 격을 뚫게 해줄 정도의 영약은 아니다. 수십 년치의 공력을 보조해주긴 하지만 수준차를 메울 정도의 내공상승은 절대 아닌 것이다.
내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필사적으로 진소청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고, 이윽고 6만회를 넘어서자 뭔가를 알아챌 수가 있었다.
‘……의념(意念).’
세상에 이럴 수가.
나는 진소청이 가볍게 6만회까지 버틴 저력이 뭔지를 알아채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지, 진소청은 란나찰을 펼치는 자연체(自然體)를 유지하는데 의념을 쓰고 있었단 말인가?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건 말도 안 돼!’
의념이란 보통 폭발적으로 소모되곤 했으며 단발성 기술에 사용되어 현실을 뛰어넘는 용도가 많았다. 왜냐하면 의념의 양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소청처럼 자연체로 버티는 것 자체에 의념을 쓰면 금세 의념이 동나서 체력과 기력이 더 빨리 떨어질 게 뻔하기 때문에, 이광도 그런 무모한 방법은 쓰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진소청처럼 자연체로 버티며 체력기력 소모를 최소화시키는데 의념을 쓴다면 거의 무한대의 의념이 필요할 것이리라.
진소청이 벌써 절대지경인 걸까?
아니, 그건 아니다. 절대지경이었다면 의념천주가 감지되었을 것이다. 진소청은 분명히 아직 초절정에 머물러 있는 게 확실하다. 그리고 절대지경이라 해도 지금 진소청같은 식으론 못 버틴다. 그렇다면 도대체….
부웅!
부웅!!
8만회를 넘어서자 더욱더 소리가 가열하게 튀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진소청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져서 마치 잉어가 물살에서 튀어오르듯 탄성을 띄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지친 기색따윈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진소청의 전신에 흐르는 땀은 마치 웅덩이를 이룬 듯 했지만 진소청의 얼굴에는 묘한 열기가 감돌았고, 그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
재미? 재미라고?
저 고문이나 다름없는, 수련법조차 아닌 막무가내 반복이 재밌을 수 있단 말인가?
죽음을 각오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돌파했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나는 아찔해지기까지 했다.
눈앞에서 움직이는 진소청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게 정말 나랑 같은 인간인 것일까?
나는 멍하니 있다가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그래…. 저건… 아수라가 말했던 거 아닌가?’
28번째 삶에서 아수라에게 암야참(暗夜斬)을 배울 때였다. 그 때 아수라가 선검을 이용해서 암야참을 발동하는 요령을 가르쳐 줄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기(氣)는 적연부동(寂然不動)하나 정중동(靜中動). 무림에서는 유명한 격언이지.]
[그럼 어째서 멈춰있는데도 움직인다고 하겠나? 기 그 자체의 성질을 잘 살펴보는 게 좋다.]
기는 움직이지 않으나 정 속에서 동하느니.
멈춰있는데도 움직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때 아수라가 내세웠던 화두를 그 당시에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에 선검을 이용한 편법으로 때웠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말의 생생한 체현을 눈앞에서 보면서 아주 조금, 진의(眞意)를 이해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멈춰있는데도 움직이는 이유, 그것은….
‘기(氣)가 객관화되어 의념과 동조하는 것이다…. 기 그 자체는 움직이지 않아도, 의념이 움직이면 내포된 기는 저절로… 이, 이건 마치….’
이혼대법 혼백(魂魄)의 관계와 비슷한 것 같은데….
나는 뭔가 감이 잡힐 것 같았지만 필설로 형용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단지 깨달음의 끄트머리를 손에 잡았다는 건 확실했기에 아둥바둥대며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부웅!!
후웅
그리고 내가 멍하니 관조하고 있을 때 어느 새 진소청의 시연은 9만회를 넘어 있었고, 9만 5천회를 넘어서자 그걸 지켜보고 있던 뇌신류 문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성을 내고 있었다.
“오… 오오….”
“더 빨라진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진소청의 란나찰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어째서 가속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그 가속이 진소청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몸이 홀로 움직이는 돌풍처럼 변했기 때문이란 사실이었다. 진소청이 무아지경에 이른지는 오래였고 그의 창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하나의 마물(魔物)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키잉 -
은은한 강기가 진소청의 창끝에 맺혔다 스러졌을 때, 나는 그게 무형강기(無形罡氣)의 발현이란 걸 알아차렸다. 본디 깨달음이 있어야 펼칠 수 있는 극고의 경지였으며 무영문에서 목표로 하는 최종경지 중 하나이기도 했으나 진소청의 창끝에서 한 순간 펼쳐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휘오오오
진소청의 창무(槍舞)가 갈수록 격렬해지며 움직임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고, 란과 나의 사이에 내전과 외전의 경풍이 몰아치며 찢어지는 듯한 바람의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자체가 마치 예술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아름답다….
한 치의 낭비도 없이 다듬어진 저 창섬 한 번은 무인이 평생동안 휘둘러도 도달하기 힘든 완벽한 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문외한은 저게 뭐가 아름답냐고 하겠지만 같은 길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자일수록 느끼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건 무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파앙!!!
“뇌신류 제자 진소청.”
이어진 진소청의 낭랑한 목소리에 나는 현실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란, 나, 찰 10만번 시전을 완료했습니다.”
“…….”
나는 뭐라고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진소청의 천재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내 경지보다 낮은 단계에서 내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수준까지 무예의 극치를 선보일 줄이야. 그리고 예전에 이광이 내가 10만 번을 펼쳤을 때 흥이 나서 뇌공섬을 펼쳤던 그 심리가 단박에 이해가 되고 말았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면 나 또한 나도 모르게 무량단을 펼쳐서 진소청과 대무(對武)하려 했으리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래…. 약속대로 네게 구궁파천뢰를… 전수하겠다.”
“감사합니다.”
본디 내가 노렸던 것은 이광이 느끼게 될 열패감이었다. 자기 제자인 진소청이 자기보다 먼저 10만 번을 성공해서 구궁파천뢰를 수련하게 되면 제자보다 뒤쳐졌다는 열등감에 발악하게 될 것을 노린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된 셈이었지만 나는 전혀 통쾌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도리어 한 방 맞은 것만 같은 어이없음과 경악에 휩싸여서 벌려진 입을 한참이나 다물기가 힘들었다. 이광 또한 멍하니 서 있다는 게 전혀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진소청에게 물었다.
“진… 소청… 물어볼 게 있다….”
“네, 태사부님.”
“설마 너는… ‘고리’를 인식한 거냐?”
진소청이 방금 선보인 게 내가 생각하는 그 경지라면 아수라가 말한대로 진소청 또한 일순간 암야참의 수준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
진소청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저는 염의(念意)를 저의 자연체에 가두어 그 안에서 회전시켰습니다. 회전하며 그 응력이 가운데에 뭉치는 게 느껴지게 되면 체력의 소모가 최소화된다는 걸 명상하다가 알게 되어서 그렇게 해 보았습니다, 태사부님.”
“뭐? 회전? 그게 뭐야.”
“흠…. 바깥에서 저 자신을 관조하는 상태에서 의념으로 체간을 통제하니 힘의 흐름이 저절로 원형을 띄는 걸 알게 되었고, 원이라서 그냥 회전시켜볼까 생각했습니다.”
“…….”
트… 틀렸다…. 무슨 원리인지 감도 안 잡혀….
어떻게 했냐….
회전을 이용했다는 건 알겠는데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제… 제기랄!’
내가 더 경지가 높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하지만 나는 체면 때문에 모르겠다는 말도 솔직하게 하지 못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아주 잘 했다…. 하하… 하….”
그 때 독고성이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며 끼어들었다.
“이노옴!! 대충 어떻게 했는지 알겠으나 그런 건 실전에서 안 먹히지 않느냐! 편법을 써놓고 통과했다 할 수 있느냐! 결국 외부에서 한 번 치면 무너지는 모래성같은 의념운용이잖느냐.”
엉?! 독고성은 한 번 듣고 무슨 원리인지 알아들었나?! 설마 보면서 대충 깨닫고 있었던 거냐?!
내가 내심 경악하고 있을 때 진소청이 민망하다는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태사숙…. 구궁파천뢰를 배우고 싶은 욕심이 앞섰습니다.”
“끄응!! 종사, 이런 걸 통과로 인정해준단 말인가? 너무하는군.”
“어, 음, 그게….”
나는 어버버하다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했으면 된 거요! 진소청 통과!”
“끄으으응…!!”
“독고성 사형도 진소청처럼 하면 되잖소.”
“흥! 내가 진소청녀석처럼 못 하는 이유를 뻔히 알면서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
아니, 모르겠는데요….
“사제는 좀 더 사형을 존중해주게!”
독고성은 화를 버럭 내고는 자기 수련장으로 가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기 수련을 하러 가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진소청도 내일부터 구궁파천뢰를 전해주겠다고 하고는 보내버렸다.
“음….”
나는 텅 빈 수련장에 남아서 고민했다. 독고성의 말을 보아하니 이광도 진소청의 방식을 따라하지는 못할 확률이 높았으니 이광의 시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 되는 걸까?
‘이대로는 안 돼…. 방금 진소청을 통해 얻었던 깨달음의 끝자락을… 어떻게든 이번 생에 좀 더 갈무리시켜야 해!’
쉬는 건 쉬는 거지만 무공수련과 심득은 좀 얘기가 다르다. 만일 이번에 얻은 깨달음을 놓치고 유야무야해버리면 내 재능으로는 1000년이 지나도 다시 못 깨달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큰 위기감을 느끼고는 주먹을 꾸욱 말아쥐었다.
“어쩔 수 없군.”
현 시점에서 나보다 더 깨달음이 높은 무인을 구해서 소을촌에 데려와야 한다.
그래야 이 마을에서 보내는 휴가가 좀 더 의미있어지리라.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