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273화 (1,27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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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이자나기노미코토에게 말했다.

“이 [거미] 두 마리의 이름은 어떠냐?”

나는 제단 위에서 번쩍 팔을 들었다. 그러자 이자나기노미코토는 잠시 이름을 인식하는 듯 말이 없더니 대꾸했다.

[고대의 환수종이군…. 그 정도론 안 된다.]

“뭐라고? 두 마리나 주는건데도 안 된다고?”

[당연히… 삼황오제가 걸어둔 봉인을 무마시키기엔 부족하지….]

“응? 무슨 소리냐.”

[…….]

이자나기노미코토가 침묵하다가 말했다.

[제안을 한 자여…. 네 제안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파악치 못한 모양이군…. 네가 한 제안은 네가 내게 공양할 [이름]을 대가로 나를 얽어매는 삼황오제의 봉인을 약화시키고, 그 대신에 나는 계약관계로 네게 이득을 주는 것. 당연히 거미 두 마리 따위로는 삼황오제가 내게 걸어둔 봉인의 인과율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한다….]

“아… 그, 그런가?”

[나를 농락코저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을 신중히 해달라….]

나는 생각보다 논리정연한 이자나기노미코토의 말에 약간 당황했다. 왠지 그냥 감에 따라서 제안을 해 봤는데 숨겨진 의미가 달리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또한 [이름]을 사용하는 계약은 신으로서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기에 지금의 이자나기노미코토는 신 특유의 오만함 보다는 냉정함이 느껴졌다.

내가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하고 나서 시도했으면 이렇게 허둥대진 않았으리라.

‘큭. 역시 봉황조각을 놓친 탓에 내가 초조해져있나….’

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정신력을 고르기로 했다.

“후우우… 잠깐만….”

생전 처음 시도하는 월요의 수호자와의 교섭이다. 좀 더 침착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좋아. 생각이 정리된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이자나기노미코토에게 말했다.

“이자나기노미코토. 아니 편하게 이자나기라고 부르겠다.”

[불러라…. 어차피 너희 인간들의 언어일 뿐….]

“지금 내가 이자나기 너의 봉인된 육체를 끌어내어 토벌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보다는 되도록 일을 원만하게 수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 어차피 이 세상은 지금 혼돈으로 물들여져서 적아가 따로 없으니 서로의 이득에 따라 관계를 맺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그러자 이자나기가 비웃듯 말했다.

[크흐흐… 네가 그냥 내 육체를 힘으로 토벌할 수도 있는데도 한 수 접어주고 있다고 말하고 싶나…. 그럴 거라면 난 교섭에 응하지 않을 테니 내 육체를 지지던 볶던 맘대로 하라.]

“…….”

[어차피 정신도 존재치 않는 내 텅빈 육체가 멸해봤자 나는 [옛 지배자]… 오랜 시간이 걸릴 뿐 또다시 살아나게 되어있지…. 그깟 육체가 사라지는 것으로 나를 위협하려 들지 마라.]

역시라고 해야할까? 이자나기는 내가 힘으로 우위라는 사실에 전혀 겁을 먹거나 위축되지 않는 듯 했다. 왜냐하면 애저녁에 그의 육체와 정신이 둘로 분리되어있었으며 영혼 없는 육체는 그저 신에게 있어서 소모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이자나기에게 말했다.

“위협하려는 게 아냐. 단지 지금 나로서는 당장 편한 길을 제쳐두고 너와 손을 잡으려는 길을 택하려는 만큼 손해를 어느정도 감수하고 있잖아. 그러니 너도 나름대로 양보를 해 주어야, 나중에 네가 봉인에서 풀려난 후에 더 이득일거란 소리다.”

[호오…? 나를 봉인에서 꺼내주겠다는 말이냐?]

“네 정신이 지금 달에 봉인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와 계약해서 날 돕겠다면 그 봉인을 약화 시키는 걸 도와줄 수도 있다. 다만 인간세상에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약속 정도는 해야겠지만.”

어차피 이 세상에서 한가락하는 신이나 마왕들이 개나소나 나대는 상황이다. 이자나기를 동료로 만들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끔 한다면 봉인을 풀어줘도 상관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자 이자나기가 뭔가 생각하는 듯 하다가 말했다.

[백웅이여…. 너는 제단에 염원하는 것만으로 육체를 통해 달에 있는 나의 정신에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렇다면 너 또한 위대한 혼돈에 인정받은 자…. 충분한 격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지만 하찮은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존재! 그러므로 나는 신으로서 너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응?”

뭔 말이야? 말을 건 게 뭐가 어때서?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이자나기의 말이 이어졌다.

[본좌의 욕심은 덜 부리도록 하겠다…. 허나 거미 두 마리로는 네가 말한 결과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게 사실…. 적절한 제안을 하도록 하라.]

“흐음.”

상대가 대화할 태도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거미 두 마리의 이름으로 이자나기와 교섭하려 한 게 너무 대가가 적은 건 사실인 듯 하다.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름]이 몇 개가 있지…?’

나는 슬쩍 팔뚝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이름의 목록을 살폈다.

우우웅

[ ????? ]

[ ??? ]

[ *** ]

[ @@@ ]

[ @@@ ]

[ @@ ]

[ 힘쎄고 체력강하고 매우빠른 고대거미 ]

[ 교활하고 상냥한 기습전문가 고대거미 ]

[ 기^ #호 ]

[ 유신(有信) ]

[ 항아 ]

[ 흑웅 ]

[ 아담 카드몬 ]

[ 드라큘라 ]

[ 사이탄 ]

[ 황금이 ]

…어? 생각보다 숫자가 많은데 뭔가 이상하다!

나는 뜻밖의 사실에 놀랐다. 왜냐하면 자세히 본 적이 없는데 지금 보니 좀 의아한 목록이었기 때문이었다.

‘‘못 읽는’ 이름이 3개… 그리고 ‘뜻을 모르는’ 이름이 3개.’

전자는 읽으려고 해도 내 두뇌가 그 이름을 인식하기를 거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후자는 순수하게 내가 저 언어를 해독할 수가 없는 것이었고 나중에는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하긴 할 것 같다.

단지 ‘못 읽는’ 이름 중 하나는 다른 2개와는 상이한 느낌이었다. 다른 2개는 신비한 기운이 앞섰지만 저 이름은 인공적인 기운이 강하다.

‘그리고 저 이름은… 조금 읽혀…. 음… 뭔지 알 것 같은데…. 왠지 지금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중간에 반쯤 읽히는 이름 1개가 보이지만, 저건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 없는 이름이라는 뜻 같다. 그 이유는 왠지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저 3개의 이름과 3개의 이름.

저건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분명하다. 나중에 해금(解禁)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뜻밖인 것은 과거에 내가 이름을 지어주었던 초상기인 ‘유신’의 이름이 내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름을 지어준 자는 내게 이름을 종속되는 건가? 하긴 항아가 있는 걸 보니 그렇겠군.’

그리고 또 한가지 이상한 것은 내가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이름이 이 팔뚝에는 새겨져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히노카쿠츠치는 왜 없는 거야?’

이건 뭔가 이상하다. 얼마 전에 계약했던 스사노오의 부하인 정령수 히노카쿠츠치 또한 멀쩡히 나와 계약관계인데도 팔뚝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존재하는 걸까?

무슨 기준이지?

내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이자나기가 말했다.

[괜찮아보이는 이름을 말해준다면 그 중에서 경중을 가리도록 하지….]

“흠, 어쩔 수 없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항아, 아담카드몬, 사이탄.”

격은 둘째치고 바쳐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을 이름이라면 이 정도다. 흑웅, 드라큘라, 황금이 등은 나와 깊은 애착이 형성되어 있기에 내어줄 수 없었다.

[…….]

이자나기가 잠시 후 말했다.

[항아와 사이탄을 받고 싶군….]

나는 그의 제안에 눈살을 찌푸렸다.

“뭘 2개씩이나 받아가려고 하나? 그리고 항아는 그렇다 치고 사이탄이 강력하다는 건 나도 아는데 너무 양심 없지 않냐?”

이 새끼 욕심 안 부린다는 거 거짓말이었구만!

내가 성질을 내자 이자나기가 움찔하더니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할 셈이지….]

“항아랑 거미 2마리.”

[싫다…. 너무 박하지 않느냐. 그걸론 부족하다….]

“아 거참 되게 징징대네. 끄응.”

나는 투덜거리다가 머리를 굴려서 추가로 제안을 해 보았다.

“아담카드몬이랑 거미 1마리. 어떠냐?”

[…….]

“아담카드몬이 항아보다는 윗줄일 것 같은데.”

[흐음…. 잠시 생각해보겠다….]

잠시 후 이자나기가 납득했다는 듯 대답했다.

[좋다. 그렇게 하자.]

“그럼 이름의 계약은 이루어진 것인가?”

[그렇다…. 본계약을 시작하겠다.]

“깨어나도 인간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약속도 해 줘.”

[…알았다.]

이자나기가 주언(呪言)을 읊기 시작했다.

[나 [옛 지배자] 이자나기노미코토는 백웅과 이름의 양도계약을 하나니, 이는 위대하신 [아버지]께서 지켜보시는 한날한시의 백일몽…. 그리하여 [아담카드몬], [ 교활하고 상냥한 기습전문가 고대거미 ]의 2가지 이름을 받아들여 나의 이름을 강화하며… 월요를 백웅이 가져가는 걸 수호자로서 동의하노라. 또한 깨어나더라도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인간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겠다…. 이는 삼황오제의 봉인을 거스르지 않느니.]

츠즈즈즈

잠시 후 내 팔뚝에서 2개의 이름이 흐릿하게 떠올라서 이자나기가 있을 제단의 지하로 스며들듯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나는 이윽고 이자나기가 만족했다는 듯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주 만족스럽구나… 크흐흐… 너도 참 교활한 녀석이다.]

“엉?”

[삼황오제는 인과율의 역풍을 막으려고 내 육체를 수호자로 써먹으면서 단서조항을 달았지…. [수호자가 인정하면 월요의 획득에는 삼황오제가 간섭하지 않겠다]라고 말이다….]

“……!!”

[교활한 놈들…. 정신없는 육체가 그런 인정따윌 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하지만 너는 그 계약의 맹점을 훌륭하게 찔렀느니라.]

이자나기의 광소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크하하하…!!]

내가 잘 한 결정인건지 모르겠다. 일단 인간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시키긴 했지만 과연 사악의 결정체인 [옛 지배자] 이자나기노미코토가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킬까?

하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이자나기와 임시로 협력하기로 한 게 사실.

월요를 내가 빼돌려서 보관하기 위해서는 이 협력관계는 당분간 써먹어야한다.

‘정 안되면 저 놈이 힘을 되찾기 전에 와서 죽이면 되겠지 뭐….’

나는 좋게 생각하기로 하며 씩 웃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나는 안심하며 월요를 들고 그 자리를 나오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때였다.

우우우우!!

“……!!”

이중으로 쳐진 강력한 술법결계! 그 술법결계가 내 움직임을 막고 있었다. 내가 힐끔 유적의 입구 쪽을 보자, 그 곳에는 두 명의 승려가 술법을 펼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에 중얼거렸다.

“휴정과 유정인가.”

월요의 유적을 감시하라고 이 강화도에 머물러 있던 두 명의 고승들! 저들의 법력은 상급술법사 이상이었으며 특히 유정은 술법의 천재로 보였다. 법장을 들고 있던 휴정이 불호를 외우며 말했다.

“거대한 파괴음이 들려와서 구멍 쪽으로 와 보니, 본의 아니게 그대가 [이름]의 계약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소….”

“…….”

“이 제단 아래에 존재하리라 여겨지는 사악한 고신(古神)과 직접 [이름]을 주고 받다니…. 그대 또한 마(魔)의 존재임이 틀림없소. 그런 짓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오…. 그대는 틀림없는… 이면세계의 거물이오.”

“그래서?”

“나 휴정과 제자 유정, 그대를 목숨 걸고 봉인하겠소.”

나는 두 승려의 눈에 결사의 각오가 맺힌 걸 보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쳇…. 편하게 살려고 하다보니 여기저기로 꼬여버리는군. 목표만 향해 달려갈 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지금 내가 저들에게 계약내용을 말해주면서 이자나기에게 인간을 해치지 못하게끔 주의시켜뒀다고 해도 믿을 리가 만무하다. 어찌 인간이 고대의 악신에게 그런 계약을 걸 수 있느냐고 황당해할 게 뻔했다. 그리고 사실 그게 일반적인 상식이기도 하다.

그래도 일단은 얘기로 풀어나가는 게 좋을 것이다.

“잠깐 내 말 들어봐. 그게 아니라….”

하지만 내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갑자기 유적의 밑바닥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거대한 촉수같은 나무줄기가 튀어나왔다.

츄와아악!

츄와아악!!

콰칭

“으으음.”

“이럴 수가.”

단숨에 나무줄기가 내 몸 근처를 에워싸며 두 승려가 펼친 결계를 파괴해 버렸고 승려들은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음산한 이자나기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감히 인간 따위가 나와 계약한 자를 건드리려 드느냐….]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이자나기!! 설마 네 봉인된 육체를 조종할 수 있나?”

진짜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흐흐…. 이 내부에서만 움직일 수 있으나 네가 준 [이름]만큼 봉인된 육체의 통제력을 갖게 되었지…. 봉인이 풀리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아주 고맙구나.]

음충맞은 미소를 흘리던 이자나기가 말을 이었다.

[네놈들의 법력을 쭉쭉 빨아서 좀 더 몸을 회복해야겠다.]

촤좌좌좍

갑자기 수십 개의 촉수기둥이 더 튀어나왔다. 휴정과 유정이 그 촉수기둥에게서 몸을 지키려는 듯 부적술을 시전했으나, 촉수기둥이 몇 번 휘둘러지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결계가 깨어지는 게 보였다.

콰광

“허억.”

“너무 강합니다, 스승님…!!”

촤좌좌좍

이자나기는 생각보다 더 힘을 회복한 건지 순식간에 두 명의 고승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이자나기의 촉수는 인간의 주술방어를 마치 종잇장 뚫듯이 가볍게 휘저어버리는 듯 했다. 저들도 나름대로 고려에서 손꼽히는 술법사들이었는데 이렇게 무력한 걸 보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기랄!! 내가 착각했어!!’

약해진 이자나기는 물론이고 놈이 회복해봤자 그렇게 강적이 아니었기에 조금 풀어줘도 상관은 없으리라 여겼다. 실제로도 봉인된 이자나기 정도로 위협을 느낄 처지가 전혀 아니었다. 뭣하면 어떻게든 때려잡을 자신도 있었다.

‘시시한 기분이 들었던 건 나뿐이야! 보통 인간들은… 아무리 봉인되었다지만 [옛 지배자]를 감당 못해!’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30번의 삶을 겪으며 무수한 우주적 존재들과 맞서 싸우며 삼황오제나 흉신, 대마왕 같은 괴물들을 봐왔던 내 기준이다. 보통 인간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부류라고 해도 신에게 있어서는 벌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그것은 봉인된 신이라 할지라도 인간세상을 박살내는 건 어렵지 않다는 뜻도 되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틀림없이 후환거리가 되리라.

‘썩어도 준치, [옛 지배자] 이자나기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지금이라도 내 실수를 인정하고 계약을 취소해야겠어!

“나 백웅은 너와 맺은 계약을 취소한다!! 월요도 그냥 돌려놓고 갈 테니까 내가 준 이름을 내놔라 이자나기!”

[큭큭큭…. 뭐라고? 저깟 인간 때문에 잘 맺은 계약을? 어이가 없구나….]

흉소를 흘리던 이자나기가 말을 이었다.

[그럴 순 없지…. 내가 계약을 위반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한번 맺은 계약을 물린단 말인가…. 그런 짓을 하려면 네놈은 인과율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이제 월요의 거취는 너와 내 손을 떠났다!]

“윽….”

[저깟 인간들…. 그것도 널 봉인해서 죽이려던 인간들에게도 자비를 베풀려 하느냐? 너 또한 위대한 존재의 반열에 걸쳐있으니…. 벌레 따위에게 신경을 쓰지 말라….]

이자나기가 마치 애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나는 도리어 성이 나서 버럭하고 외쳤다.

“계약에 네놈을 죽이지 말란 법도 없었지! 경고하는데 이쯤해라, 이자나기!”

[크흐흐…. 쉽지 않을 것…. 그리고 죽일 테면 죽여봐라…. 어차피 이름의 양도는 끝났으니 회복도 더 빠를 것이다…. 흐하하….]

“진짜 그만두지 못해?!”

[하하하하….]

그 순간 머릿속에 어둠 그 자체인 기이한 의지가 스쳐 지나갔다. 한도 끝도 없이 거대한 우주가 일순간 머릿속에 펼쳐졌다.

정말로 계약을 해지하기를 원하는가?

마치 마지막 의사를 확인하는 듯한 그 의지는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다.

‘이 새끼가 날 갖고논다 이거지….’

나는 이자나기가 내 머릿속에 장난을 친다고 느껴져서 더 화가 났다.

“오냐!! 정말 해지할거라고! 그래 어디 해볼….”

내가 이를 악물고 선검을 소환해서 발밑에 있을 이자나기의 육체를 파괴하려던 순간이었다.

키리리링

갑자기 제단에서 익숙한 문자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2개의 문자는 빠른 속도로 날아오더니 다시 내 팔뚝에 새겨져서 박혔다.

치지직

“끄윽!”

나는 잠시 인두로 팔뚝을 지지는 고통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주 잠깐의 격통이 지나가자 나는 다시금 팔뚝에 아까 이자나기와 거래했던 이름이 새겨졌음을 알 수 있었다.

‘어?’

이게 돌려받아지는 거였나?

내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였다.

[헉…. 뭐라고… 어째서… 내… 내가 역풍을?!]

후와아악

무척이나 당혹한 듯한 이자나기의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폭풍이 땅밑 지하에서 소용돌이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이자나기의 육체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고 있는지 흉측한 파열음이 연속적으로 맺혔고, 이자나기가 고통어린 외침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아!! 이, 이럴 순 없어!! 나는 계약을 위배한 것이 없다!! 전지자(全知者)여, 위대한 우주의 도서관이여!! 이런 역풍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내가 봉인 당했다 하여 우주의 법도를 모를 줄 아는가!!]

누군가에게 따져 묻듯 처절하게 외치는 이자나기였지만 잠시 후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백일몽…. 그… 그 관용문구가…? 다른 자들과 달리 저 자에게만? 그것은 설마….]

잠시 후 이자나기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크아아아아아!!]

슈우우욱

삽시간에 촉수기둥이 모두 시들어서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가루가 되어서 흩어졌고 사방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한창 죽을 위기에 놓여 있던 휴정과 유정은 혼절했는지 저 멀리에 엎어져 있었다.

우우우우

우우웅

잠시 후 제단 밑에서 거대한 안개같은 게 뿜어져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 안개는 무척이나 농도가 짙었고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그 사악한 기운이 한참 후에 뭉쳐지더니 마치 갈 곳을 찾는 것처럼 헤매이기 시작한다는 걸 느꼈다.

“…….”

나는 혹시 하는 마음에 팔뚝을 들어 보았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안개가 마치 조그마한 화살처럼 뭉쳐서 내 팔뚝으로 날아와서 꽂혔다.

푸확

“꺼윽.”

역시나 아팠다. 나는 격통을 참고서 잠시 후 내 팔뚝을 보았고,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이자나기노미코토 ]

안개의 화살을 맞은 팔뚝에 하나의 이름이 추가되어 있다.

“이럴 수가….”

나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을 꿈뻑거렸다.

이해는 가지 않지만 이자나기노미코토와 맺은 계약을 내가 일방적으로 해지해버리는 데 성공했고, 심지어 이자나기가 인과율의 역풍을 맞아서 소멸해서 그 이름이 내게 귀속되어버린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젠장, 모르겠…군!! 어쨌든 일단 정리하고 나가야겠어!”

하지만 나는 살면서 이런 일을 수십 수백 번도 넘게 겪어보았기에 즉시 정신을 차리고는 해야할 일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당황하고 굳어 있는다고 누가 내 일을 대신 해주는 건 아냐!’

그리고 저편에 기절해있는 휴정과 유정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어서 그들의 몸을 침식하는 이자나기의 마기를 몰아내었고, 동시에 그들에게 이혼대법을 시전해서 방금 전까지의 기억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기억조작까지는 내 이혼대법 기술이 부족해서 힘들겠지만…. 내 얼굴이나 이름이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을 거야.’

잔뜩 술에 만취해서 사물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본 것처럼 기억을 흔들어놓는 건 가능하다. 나는 그들에게 이혼대법을 시전한 후 유적에서 데리고 올라가서 그들이 원래 거주하던 곳에 눕혀놓았다. 그리고는 강화도를 떠났다.

나는 하늘을 날아가던 중 손에 들려있는 월요 천총운검을 힐끔 보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큰일났네….”

어쩌다보니 이자나기가 소멸해버렸는데 결국 내가 이자나기를 무력으로 쓰러뜨려버린 것과 마찬가지 모양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이대로라면 내가 걱정했던 천계에서의 개입이 곧이어 찾아올 것만 같았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나는 마을에 도착해서는 불안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천계에서 팔선이 와서 여동빈이 나한테 검을 들이밀며 한 판 붙자고 할 것 같은 기분에 좌불안석이 되었다. 내가 너무 불안해하는 게 눈에 보였는지 망량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왜 그렇게 허둥대시오? 바깥에 나가서 뭔가 사고쳤소?”

마, 망량한테 상담하고싶어… 다 알고있는 상태의 망량한테….

나는 홀리듯이 입을 열었다.

“아…. 그, 그게… 흑요석… 받겠….”

“응?”

“아, 아니오!!”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급히 집어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망량한테 흑요석을 주는 건 위험도 있을뿐만 아니라 도리어 아는 게 독이 된다고 망량의 정신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 아직은 내 행복한 소을촌의 삶이 실패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내가 촌장집의 대청에서 멍하니 앉아있기만 하자 망량이 찾아와서 말했다.

“촌장. 당신을 보고 있으면 기우(杞憂)라는 말이 생각나오.”

“응?”

“지금 혹시 하늘이 떨어져서 깔려죽을까 걱정이라도 하는 것이오? 하하하.”

“…안 그래도 천계에서 투선이 와서 깽판치거나 마왕놈들이랑 구궁파천뢰 쓰면서 싸울까봐 걱정이었는데 어떻게 알았소?”

“…….”

망량은 약간 질린 듯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쉬었다.

“당신의 농담은 농담처럼 안 들릴 때가 많아서 신기하군. 여하튼 그런 일 없는 것 같으니 그냥 평소처럼 지내시오.”

“음.”

“뭘 걱정하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늘 보고받는 바로는 천하는 여전히 무사태평하오. 걱정 관두시오.”

“아, 알겠소.”

나는 망량의 말에 다소 안심하며 그날부터 다시 뇌신류의 연마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날 뜻밖의 인물이 찾아왔다.

풀썩

오체투지를 하며 땅에 엎드린 웬 잘생긴 청년. 그는 전신이 실전으로 다져진 근육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흑의를 입고 있었다. 그 청년이 무릎을 꿇은 채 죽음을 각오한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게 들려왔다.

“마도팔문의 종주시여!”

이어진 말에 나는 천계의 걱정거리를 잊을 수가 있었다.

“명하신대로 흑야문 살수조장이 왔습니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

오호라….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있잖냐…. 넌 아마 괴로울 거야.”

“넵.”

나는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실감할 수가 있었다.

“나는 받은 대로 돌려주는 사람이거든….”

“저는 귀인께 원한을 진 일이 없습니다.”

“아. 없겠지…. 적어도 지금 넌 없다고 생각할거야.”

“……?”

살수조장은 내 말이 아리송한지 의아해하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그를 잡아 일으켜주며 빙긋 웃었다.

“소을촌에 잘 왔다, 살수조장.”

너한테 2번 죽었던 거 기억하고 있다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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