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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극호의 혼례는 약 사흘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본디 평범한 백성의 혼례를 이렇게 오래 하진 않으나 명문가의 영애가 신랑집에 직접 찾아와서 하는 것이니 이것 또한 간소화시킨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극호가 혼례를 치르는 동안 이광을 포함한 뇌신류 고수들에게 말했다.
“몸이 달아있겠지만 적어도 극호가 신혼을 끝낼때까지는 자제하자. 뇌신류 비기 하나 전수받으려고 못볼 꼴을 보이고 싶진 않겠지.”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암묵적으로 한 달 정도는 내 제안이 유예가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혼례는 사흘이면 끝났으나 극호가 이후에 마을에 혼수를 놓고 자리를 잡는 시간과 신혼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침 잘 되었다 생각하며 느긋하게 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 극호의 혼례가 끝나고 모용세가 사람들을 송별한 후였다. 문득 그날 밤에 미호가 산 위에서 수련하다가 내려와서는 내게 말을 걸었다.
“백웅 님. 정말 감사하옵니다.”
나는 미호의 기운이 예전보다 한층 기세가 강렬해진 걸 깨닫고는 말했다.
“전욱의 동상에 있던 기운을 다 흡수한 건가?”
지금껏 미호는 내가 전욱의 동상을 주어서 천우진식 수련법으로 음신지력을 흡수하는 중이었다. 그게 어느 정도 성취가 생겨서 마을로 내려온 듯 했다.
“다는 흡수하지 못했습니다. 절반 정도일까요…. 그렇다 해도 제 요력이 예전보다 크게 진보했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미호는 조심스레 말했다.
“…흡력 수련을 다 마칠 때까진 내려오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사실 수련하던 중 기이한 걸 느껴서 알려드리러 왔사옵니다.”
“기이한 것?”
“신력의 흡수가 정점에 이르렀던 황홀경에 신통(神通)이 깨어나서 머나먼 곳의 광경을 비췄사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거대한 섬에 봉인된 어떤 무시무시한 존재가 봉인을 풀고 나오려는 게 느껴졌는데….”
망설이던 미호가 입을 열었다.
“마치 여우같았습니다…. 산악보다 더 거대해보이는 여우였사옵니다.”
“…….”
그 순간 나는 얼굴이 굳어졌다. 미호가 그런 내 눈치를 살피다가 황급히 말했다.
“죄송하옵니다. 제가 헛것을 보았는지도.”
나는 미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아니야. 미호 네가 본 건 헛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놈이 존재할 걸.”
“그런 괴물이 존재한다는 말이십니까?”
“흠…. 그게….”
나는 미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내가 전생을 하면서 얻었던 정보 중 하나가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심 중얼거렸다.
‘금오도에 봉인되었던 달기(妲己)가 깨어나려 하는구나.’
놈은 굉장히 강력한 고대의 마왕 중 하나다. 팔부신중들도 달기를 상대하기 어려워했으며 특히 [옛 지배자]의 사도로서 가호를 받고있다는 점 때문에 무척이나 강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의 나라고 하더라도 권능을 제외한 순수무력만으로 달기를 토벌할 수 있다고는 감히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무예만으로 토벌하기는커녕 간신히 버티다가 기진이보나 권능을 이용해서 달기의 약점을 찌르는 식으로 싸울 수밖에 없으리라. 그냥 달기와 함께 죽는다고 치고 동귀어진한다면 그 정도로 어렵진 않겠으나 어차피 죽고나면 뒤가 없으니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단연 세상을 오시할만한 강대한 마왕 달기! 그 놈의 순수한 파괴력이 무지막지하다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미호의 신통력이 주는 경고를 깊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왜 미호에게 그런 신통력의 예지가…? 흠. 미호가 달기의 꼬리이기 때문이겠군.’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달기는 결국 여와가 세상에 떨쳐낸 음신(陰神)이나 다름없으며 미호는 그런 달기의 꼬리 중 하나였다. 혈연 이상의 종속관계일 테니 미호가 신력을 흡수하면서 달기와 신통력이 닿았어도 이상하진 않으리라.
하지만 그 사실을 지금 미호에게 밝혀도 될까?
‘제길…. 차라리 낙양에 가서 팔부신중이랑 싸우고 말지 이건 더 어렵잖아….’
이 전생정보를 미호에게 누설한다는 것은 동시에 미호의 근원을 찾아줘야만 하는 의무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끝은 결국 달기토벌이나 서왕모토벌, 나아가서는 여와봉인같은 무지막지한 난이도의 시련이 다가온다는 뜻이리라. 나는 이미 전생하면서 그 꼴을 호되게 겪었기에 미호에게 진실을 전하기가 망설여졌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미호. 그 괴물은 아마 천계에서 머지않아 토벌자가 강림할 거야. 우리 일이 아니니까 재액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놈에게 상관하지 말자.”
아 모르겠다. 일단 미뤘다가 나중에 달기가 깽판치면 천계한테 손 얹어주지 뭐! 맨날 내가 먼저 재앙을 막으려고 나서니까 나만 피보잖아!
“그, 그래야겠습니다.”
“그래. 일단은 날 믿고 힘부터 키우라고!”
“감사하옵니다.”
휘리릭
미호는 다시 산으로 수련하러 돌아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턱을 긁적였다.
‘보통 이럴 때라면 책사들이 달기봉인해제에 대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그리고 달기가 왜 풀려나는지 알아봐 주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군…. 흐음, 내가 혼자서 달기에 대처하려면 뭐가 최선이지.’
달기 또한 경험적인 대처로는 답이 안 나오는 놈이다. 아직도 일대일로 쓰러뜨리기는 버거운 상대인데다가 사실은 칠요나 신기를 잘 모아서 잘 성장한 동료들과 함께 싸워도 모자랄 판이다. 나는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하다가 푸념을 했다.
“제기랄…. 금오십천군 그놈들은 봉인을 맨날 뚫리고 지랄이야. 달기가 풀려나면 지들이 사는 금오도도 같이 멸망할텐데…. 어?”
그 순간이었다.
나는 뭔가를 깨닫고는 손가락을 딱 하고 마주쳤다.
“바로 그거야!!”
나는 서둘러서 망량을 찾아가서 말했다.
“나 잠깐 나갔다 오겠소. 외적이 쳐들어오면 마을을 잘 지켜주시오.”
“엇…. 어딜 가시오.”
“금오도에!”
“……?!”
파밧
나는 마을을 뛰쳐가서 아라사로 날아갔다. 그리고 아라사에 있던 흑룡의 봉인이 어찌되었나 살폈는데, 다행히도 아직은 원정군이 이반4세와 싸우려고 꺼내지 않았는지 얼음봉인이 유지되어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흑룡 드라큘라를 꺼내려고 신력을 주입하는 척 했다.
쿠구구구
[그만두게. 세상에 재앙을 풀어놓지 말게!]
[흐으…. 흐으…. 나를 풀어주려는 건가?]
나는 그 순간 두 개의 목소리 중 멀린에게 외쳤다.
“성배의 수탐자 멀린!! 금오도의 결계를 깨고 차원을 넘을 수 있는 수정구가 필요한데 나한테 내놔라.”
[……!!]
멀린은 뜬금없이 내가 구체적인 제안을 하자 약간 당혹한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대는 어찌 비비안의 수정구를 알고있는가…. 내가 맡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비비안? 설마 서방 팔리아스에 있던 신적 존재를 말하는 건가?
‘그 여자와 멀린이 무슨 관계지?’
나는 수정구에 얽힌 뜻밖의 사실에 어리둥절했지만 그걸 알아봤자 딱히 쓸모없었으므로 관심을 끄고는 내가 할 말만 하기로 했다.
“그거 나한테 내놔. 그러면 마왕 드라큘라의 봉인을 푸는 건 그만두겠다.”
[으음…. 설마 처음부터 그런 의도로!]
“그러면 어쩔건데? 닥치고 수정구나 내놔!! 내가 가져가서 받기도 귀찮으니 당장 이 자리에 소환시켜.”
내가 으르렁거리며 압박하자 멀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알겠다.]
슈슉!!
잠시 후 내 눈 앞에 예전에 받았던 수정구가 출현했다. 이 수정구는 예전에 멀린이 내게 대영제국 총독부에 포진한 마도사 무리를 쓸어버리고 금요를 탈환하는 용도로 줬던 것이었고, 이 수정구는 마도사의 마법이나 결계는 물론 차원결계도 파괴하는 능력이 있다고 들은 적 있었다. 그 때 이 수정구를 잘 써먹어서 팽조와 싸워이겼던 기억이 있었기에 나는 이 수정구를 찾으러 멀린을 일부러 출현시킨 것이다.
‘보통은 영수 사불상을 타야 금오도에 갈 수 있겠지만 지금 사불상을 얻으려면 천계와 지독하게 얽혀야겠지. 이게 최선이야.’
자, 이걸로 계획의 첫 발을 내딛은 건가?
“음흐흐흐….”
나는 수정구를 손에 들고 흡족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내 귀에 마왕 드라큘라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치사한 놈…. 풀어줄 것처럼 하더니 결국 나도 이용해먹었던 것이냐!]
“응? 나중에 풀어줄게.”
[뭐라고….]
“대신에 나한테 평생 복종하는 게 조건이다, 드라큘라.”
그러자 드라큘라가 이를 부드득 가는 게 뇌리에 들려왔다.
[꺼져라…!!]
“응 그러지 뭐.”
나는 기분좋게 그 자리를 빠져나와서 이제 금오도로 향하기로 했다.
‘흐음. 비등을 쓸 수 없지만… 이렇게 가깝다면 그냥 모스크바에 잠입해야겠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나는 재빨리 원정군의 숙영지에서 벗어나서 이반 4세의 성이 있는 모스크바에 잠입했다. 그리고 기척을 숨기고 들어가서 크렘린 왕궁 심처에 있던 비밀도서관 내부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주변에 몇 개의 봉인이 있었지만 왜인지 내게는 별로 해를 끼치지 못하는 듯 했다. 또한 기관장치도 간단한 수준이었기에 숨쉬듯이 헤치고 들어갈 수 있었다.
끼이익….
나선계단을 내려와 문을 열고 고대의 도서관에 들어가자 나는 텁텁한 냄새에 인상을 찡그렸다.
‘으. 간만이군.’
이 도서관에서 얻었던 지식을 망량이 해석한 덕분에 창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는 딱히 아는 걸 또 알려고 찾아올 필요가 없어서 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흠. 여기인가? 아니 여기…?”
나는 천천히 타인의 기억을 더듬으며 고대의 도서관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알 수 없는 외계의 문자가 새겨진 조그마한 호부를 책상 밑에서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이거군…!!”
나는 물론 이 호부를 여태껏 직접 얻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도서관으로 와서 호부를 탐색해서 얻었던 기억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단숨에 호부를 손에 넣은 것이다.
나는 마저 기억을 떠올리며 호부를 손에 쥐고 외계어를 고대키릴어로 변환한 주문을 천천히 외웠다.
“…라 프롤트 에그마르수… 라으자 르토스 아자토스.”
우우우우우 -
다음 순간 -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던 공간이동의 호부가 발현하면서 내 몸은 고대의 도서관에서 익숙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것은 바로 아주 머나먼 곳에 존재하는 이계(異界)였다.
파앗!!
언젠가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던 장소. 그리고 수많은 외계인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또한 그 정면에는 마치 출렁이는 물로 이루어진 듯한 투명한 거대거울이 세워져 있었고, 그 거울에는 아주아주 익숙한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그 얼굴이 내게 말했다.
[복희…?]
나는 그의 질문에 훗하고 웃었다.
“아니. 나는 백웅, 전생자다.”
[……!!]
그 자가 흠칫하고 놀라자, 나는 공간이동의 호부를 손에서 꺼내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예전 생에서 제갈유룡이 너희 종족의 호부를 찾아내어서 너희 본성(本星)으로 직접 찾아간 적이 있었지. 제갈유룡은 너희와 인연이 있는 고대의 도서관이면 당연히 그런 게 존재할거라 생각하고 탐색했었고 찾아냈던 거야. 너희 본성과 직접 이어진 마도구를.”
[…호오. 과연 전생자답군.]
“직접 아스타나로 가볼까도 생각했는데 너무 자주 하늘을 날아다니면 눈에 많이 띌 것 같았거든. 그래서 본의아니게 너희 별로 와 버렸어.”
[상황은 이해했다…. 그래서 어째서 나를 찾아왔느냐 전생자.]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선지자, 거래다! 내가 금오도로 갈 수 있게 해 다오.”
그렇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바로 선지자의 고향별이자 본성! 28번째 삶에서 내가 실종된 사이 제갈유룡이 선지자와 거래하고자 필사적으로 찾아내었던 단서인 공간이동의 호부를 사용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제갈유룡이 있을 때는 선지자가 전생자의 동료들을 굳이 만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을 썼던 것이다.
이 공간이동의 호부는 선지자의 본성과 지구에 있는 도서관을 연결하는 이동수단이었다. 엄청난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대신에 딱 정해진 두 장소만 왕복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긴 했다.
눈앞의 거대거울에 비치고 있던 선지자는 잠시 후 거울 바깥으로 걸어나왔다.
우웅
그것만으로 엄청난 우주의 거리를 도약한 선지자가 대번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선지자가 말했다.
[대가는…?]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은 줄 수 없다.”
[뭐라고?]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앞으로도 쓸 일이 창창한데 그런 식으로 중요한것부터 주면 내가 훨씬 손해잖아. 안 그래? 넌 일단 좋아보이는 것부터 다 받아놓잖아. 이 나쁜놈아.”
[…….]
“그러니까 일단 외상을 달아놓을게.”
그러자 선지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웃기지 말아라…. 너는 전생자, 우주제일의 먹튀가 아닌가…. 외상은 결코 불가하다.]
“웃기지 말아야 하는 게 어느 쪽일까?”
[뭐라고?]
나는 자신있게 선지자를 손가락질했다.
“너 황제 공손헌원 봉인된 거 알고는 있냐?”
[뭣…. 그럴리가….]
하지만 선지자는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눈으로 뭔가 주문을 외웠고, 이윽고 뭔가 낌새를 챈 듯 딱딱하게 몸이 굳는 듯 했다.
[거짓말하는 거 아닌가…?]
아무래도 확실히 만신전을 염탐하긴 꺼려지면서도 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진짜야. 왜 봉인되었는지 궁금하지?”
[…….]
“이게 바로 내 외상 담보물이다. 나를 금오도로 보내준다면 왜 황제가 봉인되었는지 가르쳐주지.”
[필요없다….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겠는가.]
“진짜 필요없어? 네 입장에서는 차원결계를 뚫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거기까지 이동만 시켜주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이렇게 좋은 정보를 알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려는거야?”
[…….]
선지자가 혹한 듯 고뇌하는 낌새가 느껴지자 나는 양 팔을 출렁거리며 예전에 놈이 했던 짓을 따라했다.
“질러라~ 지르란 말이다~ 어디 가서 이런 고오급 정보를 듣겠느냐~”
[헉….]
“나같으면 지른다~!!”
선지자는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쉬는 기색으로 말했다.
[좋다…. 특별히 외상을 받아주마…. 꼭 이유를 알려달라.]
“흐흐. 그러셔야지.”
선지자한테 외상을 달아놓는데 성공했다!
[그럼 금오도로 보내주겠다….]
“아 맞다. 내가 생각하는 장소로 바로 보내줄 수 있지? 그리고 내가 신호하면 인간세계로 돌려보내.”
[그러지….]
파앗!!
선지자가 지팡이를 휘두른 순간 나는 어두컴컴한 공간에 와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생각대로군! 수정구를 갖고 온 덕에 금오도의 차원결계에 튕겨지지 않았어.’
나는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었으며 순간적인 신투의 감각으로 내게 남은 시간을 알 수 있었다.
‘금광성모가 나를 때려잡으러 오는 시간은 아마도 숨을 서른 번 쉴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타다다닷
나는 재빨리 사방을 의념으로 파악한 후 데굴데굴 구르듯이 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으나 예전에도 두 번 와봤으므로 감으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숨을 열두 번 쉴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알을 손에 잡을 수가 있었고, 알을 잡자마자 바로 목갑에 쑤셔넣었다.
나는 바로 도망치지 않고는 통로에서 나타날 금광성모를 잠시동안 숨죽이고 기다렸다. 그리고 금광성모가 침입자를 감지하고 출현하는 순간, 바로 기습적으로 놈에게 달려들어서 만상지투를 시전했다.
만상지투(萬象之偸)
시야 훔치기!
[카핫!]
만상지투로 기습적으로 적의 [시야]를 훔친다 생각하고 시전하자 금광성모는 짧은 비명소리를 내더니 허둥거렸다. 그리고 놈을 옆으로 스쳐지나가면서 눈쪽을 보았는데 역시 육체적인 외상은 없었지만 시야만 상실된 게 틀림없어보였다.
‘좋았어. 저 놈은 나를 못 봤어.’
혹시 모르니까 후환을 방지하기 위해 침입자의 외양도 확인하지 못하게 해야겠지!
하지만 십여 초가 지나자 곧장 금광성모에게서 빼앗은 [시야]의 의념이 내 손에서 소멸되는 걸 느꼈고 금광성모가 크게 분노한 듯 외쳤다.
[쥐새끼같은 놈!!]
콰과과광
나는 뒤에서 날아오는 금광성모의 미친듯한 부적세례를 신법으로 피해내면서 열심히 튀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면서 외쳤다.
“선지자 부탁해!!”
파앗
나는 다음 순간 인적 없는 산속에 떨어져 내린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으차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만세를 불렀다.
“해냈다!!”
달기가 금오도에서 난동부리면 깨질 게 뻔한 금오도의 알을 미리 찾아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