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267화 (1,26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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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아군이 마을에서 많이 출현하기 시작하자 장내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특히 독고성의 무위를 알아본 고수들이 흠칫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당장이라도 무영검제와 사생결단을 낼 것 같던 두 명의 초절정고수들이 급격히 태세를 전환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슈웅

둘이 사라지자 무영검제는 그들을 쫓으려다가 어정쩡한 기색으로 그 자리에 멈췄다. 그는 마치 내 눈치를 살피는 듯 쭈뼛거리다가 말했다.

“서… 서문혜가 누구냐?”

그 말에 단숨에 좌중의 시선이 얼떨결에 나왔던 서문혜에게로 향했다. 서문혜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어르신께선 누구신지.”

“……!! 으음.”

무영검제는 침음성을 흘리다가 갑자기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촌장 백웅! 네게 우리 남궁가의 혈채를 갚으러 왔으나 지금은 때가 아닌 듯 하구나. 조만간 다시 보자!”

그는 다른 자들처럼 사라지려 했으나 나는 다른 두 놈과는 달리 무영검제를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무영검제가 도망치기 전 말을 걸었다.

“무영검제. 내가 남궁세가를 멸망시킨 이유는 바로 포학한 행위로 무수한 약자를 괴롭히는 무림세계의 악마들이었기 때문이오!”

“무엇이!? 이 가문의 원수 놈!!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걸 이용해서 제 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지 말아라!!”

무영검제가 내 말이 도발이라 생각하며 분개하자 나는 슥 하고 시선을 돌려 서문혜를 쳐다보았고, 서문혜는 지금 대화가 어떤 맥락인지 단숨에 알아챈 듯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촌장님의 말은 사실입니다. 저와 아버님과 무영문의 명예를 걸고 말할 수 있으니, 남궁세가에게 잔혹하게 유린당한 여인들이 촌장님 덕에 구출되었습니다. 그녀들은 현재 소을촌에 살고 있으며 몇몇은 본문으로 향해 강호에 남궁세가의 악행을 증언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

“촌장님께서 남궁환에게도 이 사실을 말했을 터인데 남궁환은 가문의 어르신에게 추문을 전달하진 않았던 모양이군요.”

“미… 믿을 수 없다. 그런 증인들의 말이 무슨 공신력이 있단 말이냐? 서로 입을 맞추고 짜면 손쉽게 이야기를 조작할 수 있을 터!”

“그렇게 피해를 당한 중소세가의 아녀자들이 무려 30여 명이 넘습니다. 그들은 남궁세가의 밀실에서 지속적으로 강간살해당했으며 그 증거가 고스란히 있습니다. 이런 극악무도한 악행을 누가 섣불리 꾸며낼 수 있겠습니까? 이미 저희 무영문은 그들의 증언을 몇몇 정도 대문파에게도 인정받았습니다.”

검마가 일을 무척 꼼꼼하게 처리했다는 말에 무영검제가 할 말이 없어진 듯 했다. 사파의 종주인 무영문이 대놓고 정파와 연수할 정도면 누가 보아도 빼도박도 못할 증거와 증인들이 산재해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

“믿는 건 어르신의 자유이지만 정녕 남궁환이 떳떳했다면 어르신께 복수를 의탁할 때 이런 전후사정에 대해 최소한의 변명을 했을 것입니다. 그는 일부러 추악한 진실을 숨기고 어르신을 이용한 게 아니겠습니까.”

“으… 으윽.”

무영검제가 크나큰 고뇌에 휩싸인 듯 했다. 그 또한 지혜가 있는 자라서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서문혜는 그런 심리를 읽은 듯 한 마디를 더하여 무영검제를 당황시켰다.

“그리고 정녕 남궁환이 가문의 떳떳한 후계자라면 하북팽가와 황보세가가 안휘에 쳐들어왔던 상황에서 고작 복수나 하려고 어르신을 이리로 보냈겠습니까? 그는 이미 대세가 기울어 명분도 없는 상황에서 남은 가솔들이 타 오대세가에 살육당하든 말든 개인적인 복수심만 충족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런 말은 전혀 안 했던 모양이군요.”

“뭐… 뭣? 하북팽가와 황보세가가?! 난 그런 말은 못 들었다! 설마 지금 본가는….”

“그 얘기를 들은 게 이미 한참 전입니다. 최근 정보를 듣기로는 남궁세가의 잔당들은 하북팽가의 단룡대(斷龍隊)에게 일패도지하여 대부분이 죽거나 투항했다고 하더군요. 또한 팽가와 동맹한 황보세가는 전투에서 승리한 후 미력한 남궁세가 사람들을 납치하여 하인으로 쓰려고 데려갔습니다. 남궁세가는 진짜로 멸망하여 무림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실로 인과응보. 하지만 남궁환이 어르신을 쓸데없이 여기로 보내지 않았다면 최소한 남궁세가는 명맥만은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정말 서문혜의 말대로였다. 남궁환이 쓸데없이 무영검제를 소을촌으로 보내지 않고 안휘 남궁세가로 보냈다면 무영검제가 하북팽가와 황보세가의 연합군을 상대로 싸우면서 남은 가솔들을 생존시킬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남궁환은 이미 남궁세가는 끝났다는 걸 알았기에 남은 가솔을 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무영검제를 조종해서 개인적 복수심만 채우려 했으리라.

그 말에 무영검제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믿을 수 없다! 어디 그 증인이라는 아녀자들을 내가 직접 만나보겠다!! 말을 지어내는 거라면 너희 모두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씩 웃으며 대꾸했다.

“좋을 대로 하시오.”

나는 무영검제를 데려가서 소을촌에 머물던 남궁세가의 피해자를 모두 대면시켜 주었다. 무영검제는 그들의 생생한 악몽을 들으며 점차 얼굴이 굳어졌고, 나중에는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져서 벽을 본 채 꿇어앉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

“하북팽가가 건물을 불태웠을지도 모르지만 원한다면 그들이 여성을 착취하던 곳에 데려다드릴 수도 있소. 뭐, 남궁환은 그게 보여질까봐 두려웠기도 하겠지.”

“으… 으으. 됐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무영검제는 결국 꿇어앉은 채 굵은 눈물을 쏟으며 절규했다.

“으아아아아…!! 설마 가문을 외면한 사이에 그들이 인면수심의 무리가 되었을 줄이야!! 나 남궁조, 인생을 헛살았구나!!”

이윽고 무영검제가 자신의 검을 꺼내며 여인들 앞에서 말했다.

“진실로 우리 가문의 만행에 사죄하오. 나 남궁조, 무사답게 죽음으로 그대들에게 속죄하리라!!”

까앙

곧장 자신의 목에 검을 찔러 죽으려는 무영검제를 막은 것은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독고성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냐.”

무영검제가 당황해하자 독고성은 얼음장같은 눈빛으로 말했다.

“무영검제! 죽어서 편해질 생각 말아라. 자기 가문이 저지른 일은 살아서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진짜 무사이다!”

“……!!”

“네 목숨은 여기서 끝났다 치고 이제부턴 우리를 도우란 말이다.”

독고성 입장에서는 무영검제의 일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독고성이 무영검제의 자진을 잘 막아주자 도중에 끼어들어서 입을 열었다.

“독고성 사형의 말대로요. 가문이 잘못한 거지 무영검제가 잘못한 게 아니잖소?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를 도와주시오.”

“무슨….”

“이대로 죽어버리면 당신이 끌고 온 저 소뢰음사 놈들을 우리에게 그냥 떠넘기고 죽는 거잖소. 정말 이렇게 똥만 뿌리고 갈 셈이오? 우리에게 또 죄를 저지르고 죽으려 하는군.”

“크윽.”

무영검제는 자신의 눈을 질끈 감은 듯 했다. 그러더니 뭔가 포기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놈들은 서장의 무림세력인 소뢰음사와 아수혈사문(阿修血死門)의 고수들이다. 모두가 서장에서는 손꼽히는 대문파지. 그런데 놈들이 갑자기 날 찾아와서 소을촌을 칠 거라면 같이 치자고 제안해 왔었다.”

“소뢰음사는 들어봤는데 아수혈사문은 뭐요?”

“전설적인 서장의 절세고수가 설립했다는 신비문파다. 소뢰음사도 소수정예지만 아수혈사문은 더한 놈들이라 문인이 이십여 명밖에 없으나 그들 하나하나가 매우 강하다고 들었다.”

“흐음.”

“아무튼 뜬금없이 만나서 동맹을 맺은 놈들이라 나는 자세한 건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놈들은 진작에 소을촌을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소을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미 최정예를 포진시키고 있다.”

“그놈들의 위치를 알고 있소?”

“미안하다. 놈들이 나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아서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다.”

“뭐 그렇겠구만. 그럼 우리를 도와주는 거겠지?”

“…그래.”

“좋소. 그럼 이제 무영검제 당신은 우리 소을촌 사람이오.”

나는 적당히 무영검제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는 생각했다.

‘흐음. 서장 놈들이 왜 갑자기 소을촌을 노리고 있지?’

어차피 그리 대단한 놈들이 아니었으므로 소을촌 고수들의 실전경험을 쌓게 하려고 아까는 일부러 보내주었지만 생각보다 성가신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음에 만나면 서장 놈들을 봐주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옆에 있던 망량에게 말했다.

“망량. 서장무림고수들이 곧 습격할 것 같은데 어찌해야하겠소?”

“습격할 걸 미리 알고 있다면 별로 어려울 건 없을 것 같소. 내게 지휘권을 줄 수 있겠소?”

“물론이오.”

“좋소. 그럼 지금부터 내가 백웅 촌장을 대신하여 방어전을 지휘하겠소.”

그렇게 말한 망량은 자신의 손을 내뻗으며 신령스러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잠시 후 술법이 펼쳐지면서 커다란 광막(光幕)이 소을촌을 가득 휘감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빛의 방벽을 보면서 신기해서 말했다.

“이건?”

“전에 당신에게 받았던 식토 중에서 영기의 질이 떨어지는 흙포대들을 가져와서 평소에 마을 근처에 뿌려두었소. 그걸 결계의 축으로 하여 상급 팔괘결계를 지금 발동시킨 것이오.”

“호오!!”

“이제부터 소을촌에 쳐들어오는 자들은 팔괘의 진에 갇히게 될 것이오. 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마을의 고수들을 팔괘진에 배치하여 그들을 요격하겠소.”

“부탁하오, 망량!”

이윽고 망량의 지휘대로 독고성, 무영검제, 이광, 연종휘, 진소청, 서문혜 등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만큼의 고수는 아니었지만 대뢰옥에서 구출한 자들 중 고수라 불리는 자들도 작전에 참여했다. 이윽고 안개가 옅게 낀 소을촌의 곳곳에 고수들이 배치되자 어느 새 마실 나오듯 구경하고 있던 황연 장군이 감탄했다.

“훌륭하군. 천고의 절진이야.”

“황연 장군. 위험하니 들어가 계십시오.”

“하지만 더 대단한 건 바로 그대로군….”

“네?”

“그대의 무공은 서장 고수들과 혼자 정면으로 싸워도 다 없앨 정도로 강력할 터. 그런데도 자기 발톱을 내보이지 않고 최대한 숨기는군…. 파천황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정도로 조심성이 있다니 어찌된 일인가.”

“…….”

“허허…. 정녕 두려워…. 그대가 대명제국을 없애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수밖에 없겠군….”

황연은 이미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챈 것 같아서 내심 뜨끔해졌다. 그래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도 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황연 말대로 내가 대명제국을 없애는 건 여반장이나 다름없다. 억지로라도 황궁에 가서 전력을 전개하면서 다 때려 부수면 어떻게든 대명제국쯤은 멸망시킬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번 생의 목표는 그런 깽판이 절대로 아니었고 반대로 평온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대명제국을 멸망시킬 정도로 극단적인 일은 없는 게 좋은 것이다.

그렇게 한참동안 배치가 이뤄진 후 기다리자, 소을촌 중앙에서 진세를 잡고 있던 망량이 깃발을 흔들며 외쳤다.

“적이 쳐들어왔구나! 팔괘진 발동!!”

우웅

그러자 무지갯빛이 이지러지며 허공에 구획이 나타났으며 쳐들어 온 자들이 분단되는 게 멀리에서 보였다. 그리고 총 3갈래로 나뉘어진 적습의 무리들은 제각각 독고성, 무영검제, 뇌신류 고수들이 배치된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채앵! 챙!!

요란하게 병장기와 강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멀리에서 들렸다. 원래라면 아군보다 적군의 고수의 숫자와 질이 압도적으로 높을 테지만, 지금은 망량이 미리 쳐놓은 팔괘절진 속에서 싸우므로 이쪽이 지형적으로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래서 적들이 팔괘절진에 분단된 사이에 독고성과 무영검제가 잘 싸워주고 있는 듯 했다.

‘흠. 하지만 소뢰음사 주지와 아수혈사문의 문주로 보였던 놈들은 무영검제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고수였다. 저 놈들을 가만 내버려두면 위험하겠는걸….’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망량은 이윽고 팔괘깃발을 좌상으로 치켜올리며 크게 진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슈슈슈슈슉

다시 한 번 팔괘진이 이지러지면서 적들이 제멋대로 분단되었다. 나는 걱정되어서 망량에게 말했다.

“망량. 각개격파도 좋지만 아무래도 아수혈사문은 하나하나가 절정고수들인 것 같은데 소을촌의 평균적인 전력으론 감당이 안 되는데.”

무려 스무 명에 가까운 절정고수, 그것도 상급 실력자를 보유하고 있다니 아수혈사문은 대단한 문파였다. 서장이 아니라 중원무림이었다면 이미 중원을 제패하는 한 축으로 꼽혔을지도 모른다.

“그런 건 별로 문제가 아니오. 알고 있겠지만 첫 대결에서 이미 독고성, 무영검제, 이광이 적들을 꽤 살상한 덕분에 적 전력의 2할이 줄었소. 나머지를 또다시 분산시켰으니 한결 상대하기 수월해졌겠지. 과연 삼황내문에 수록된 고대진법답게 강력하기 짝이 없구려.”

망량 또한 흑백련을 먹어서 내공성취를 이루면서 동시에 흑백련의 영기를 얻었다. 흑백련의 영기는 술법사에게도 보물같은 것이었으므로 망량의 술법진보가 빨라져서 고대진법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문제가 무엇이오?”

“바로 진소청이지. 백웅, 당신은 진소청이 성장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구려. 그래서 그걸 고려하면서 진소청에게 실전경험을 안 주고 무난히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중이오. 진소청이라는 말을 제약하면 꽤나 어려워지니까.”

“…….”

나는 뜨끔해져서 눈을 크게 뜨고 망량을 쳐다보았다.

헉. 어떻게 알았지?

“헉. 어떻게 알았지? 라는 표정이구려.”

“…아, 아니 그게 좀.”

“난 바보가 아니오. 당신이 진소청한테만 깨달음을 주지 않으려 노력중인건 다 알고 있었소. 진소청을 싫어해서 그러나 싶었지만 이내 그의 자질을 보니까 알 수 있겠더군. 저 자는 내 평생에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무공의 천재라는 사실을.”

“…….”

“이유는 따로 묻지 않겠소. 진소청쯤 되면 성장을 방해할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법 하오. 다만 나는 소을촌의 책사로서 촌장인 당신의 의견을 존중할 뿐이오.”

나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끄응…. 눈치챘다면 어쩔 수 없구려. 쪼잔하다고 욕해도 좋소. 다만 지금으로서는 진소청을 빠르게 성장하게 만들고 싶지 않소.”

“반대요.”

“응?”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며 진소청을 방해하려 하면 할수록 그는 더 성장할거요. 당신은 어떻게 해야 남을 방해할 수 있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구려.”

나는 망량의 말에 황당해졌다. 당연히 깨달음도 안 주고 명상만 시키면 깨달음이 제약될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는 망량의 말은 도저히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망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흐흠. 뭔가 구체적인 이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드는구려. 감이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진 않으나, 진소청은 어딘가 나와 닮은 부분이 있소. 그리고 그런 경우 남이 만들어놓은 하잘것없는 장애물은 도리어 자기를 불타게 만드는 성장의 동력이 되지.”

“음….”

“범상한 자가 생각하는 한계는 그런 자에겐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오.”

망량 또한 천재이기 때문일까? 진소청에 대해 뭔가를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여기서는 그냥 진소청에게 실전경험을 주시오. 앞으로도 마찬가지요. 경험을 베푸는 데 그렇게 쪼잔해할 필요가 없소.”

“그래도 된단 말이오?”

“내 추측이지만 진소청이 진짜 높은 지경으로 올라가는데 방해가 되는 건 그깟 실전경험이 아닌 다른 영역일 거요. 당신은 도의상 비난까지 받으면서 그렇게 쪼잔한 방법을 쓸 필요가 없소. 원한다면 나중에 내가 진소청을 억제할 방법을 알려주지.”

“……!! 알았소.”

“그럼 다시 진을 운용해 보겠소.”

슈슈슉

망량은 다시 진을 펼치면서 아군이 유리한 지형과 적이 불리한 지형을 계속 생성하면서 꾸준히 서장고수들의 전력을 깎아내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서장고수들은 당초의 3할에 불과할 정도로 수가 적어졌고, 나는 슬슬 내가 나설 때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파앗

내가 전선으로 나아가자, 거기에는 한창 혈투를 벌이고 있던 아군의 주요고수들과 서장세력의 장문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망량의 진법 덕분인지 아군은 크게 다치거나 죽은 자가 하나도 없었지만 서장고수들의 시체는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소뢰음사의 주지가 이를 부드득 갈며 내게 외쳤다.

“이노옴…!! 비겁하게 진법을 써서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단 말이냐. 네놈 스스로는 우리를 당해낼 수 없으니 이런 방법을!”

“비겁해서 미안하군. 지금이라도 누구 명령을 듣고 소을촌을 치기로 한건지 말한다면 살려줄 수도 있다.”

“웃기지 말라!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걸 후회하게 해주마.”

파바밧

남아있던 서장고수들 전부가 일제히 공격해 왔다. 초절정 초입에 이른 자들도 몇 섞여 있었으며 거의 전원이 절정고수 이상이었기에 숨막힐 정도의 공세였다. 독고성과 무영검제조차 움찔할 정도였으나 나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누가 네깟놈들 못 이길까봐 편법을 쓴 줄 아느냐?”

뇌령인(雷靈印)

콰광

이윽고 나는 범위를 축소시켰지만 그만큼 파괴력을 급증시킨 뇌령인을 소뢰음사 주지에게로 날렸고, 소뢰음사 주지가 극락대수인을 마주 전개해서 내 장법을 쳐내려는 것 같았다.

“헉, 허어어억!!”

그러나 이내 광선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환영과 함께 소뢰음사 주지의 한쪽 팔이 그대로 뇌령인의 궤적에 걸려서 사라져 버렸고, 그는 일순간 느낀 뇌령인의 위력을 믿을 수 없는지 동공이 미친듯이 떨렸다. 그가 펼치는 극락대수인의 위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뇌령인의 힘에 경악한 듯 했다.

그리고 내가 단숨에 소뢰음사 주지를 무력화시키자 전황은 급히 기울어서 머지않아 서장고수들은 모두 죽거나 사로잡히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아수혈사문주는 자신의 병기인 청마편(靑魔鞭)을 손에 잡은 채 내게 목을 잡혀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크… 으윽…. 드… 듣던 것과 너무 다르… 그 분과 맞먹는… 절대고수가… 아닌가….”

“그 분?”

“…….”

아수혈사문주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혀를 깨물어 죽으려 했지만 나는 그에게 이미 이혼대법을 썼으므로 그의 자진을 막을 수 있었다.

“어딜.”

나는 혼절한 아수혈사문주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한숨을 쉬었다.

“조용히 살아보려는데 시작부터 귀찮군. 이놈들을 여기서 싹 다 묻어버리면 이놈들의 배후에 있는 자들이 잠잠해지겠소?”

내 말에 독고성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걸세, 사제. 여기에 쳐들어온 자들은 구파일방 서넛과 맞먹는 전력이라 할 수 있지. 그만한 전력이 홀연히 증발하게 되면 그때야말로 배후의 적은 사생결단을 내려하지 않겠나.”

“빌어먹을. 일이 더 커지는 건 원하지 않는데.”

“우선 놈들을 심문해서 정보를 알아내는 게 좋을 걸세, 사제.”

“좋소.”

나는 감옥용으로 지어놓은 건물에 서장고수들을 싸그리 가둬버렸다. 그리고는 소뢰음사 주지와 아수혈사문주를 데려가서 곧장 이혼대법을 걸어서 심문했다.

“이봐. 누가 소을촌을 치라고 시켰나?”

“으어… 어….”

곧 이어서 심령을 제압당한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위대하신 브라만의 교주, 파르바티 님의 명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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