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266화 (1,26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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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한동안 꽤 많이 돌아다녔으므로 이제는 마을에서 쉬는 시간을 늘이기로 했다. 특히 아무리 나라도 화란까지 왕복하고 온 것은 사실상 지구를 한 바퀴 돈 것과 비슷했으므로 정신적으로 피곤한 기분이 들었다. 하늘을 나는 게 기분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쨍쨍한 태양빛과 구름만 계속 보는게 썩 기분좋기만 한 건 아닌 것이다.

‘딱히 잠을 잘 필요는 없지만 낮잠을 자 볼까.’

내공이 전례없는 극치에 도달해서 수면활동이 필요없는 몸이었으나 나는 의식적으로 잠을 청하기로 했다. 나는 촌장집에 들어가서 곧장 대청에 드러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약간의 인기척이 느껴지다가 곧 사라졌다. 내가 잠자는데 괜히 깨우지 않으려는 듯 했다.

짤막한 꿈속에서 나는 두 명이 서로 마주선 채 대치하는 걸 볼 수 있었다.

한 명은 전신에 시꺼먼 마도사의 복장을 입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말끔한 새하얀 과학자의 옷을 입고 있었다. 마도사의 복장을 입은 자가 과학자에게 말했다.

[니알라토텝. 이번 생은 내가 이겼다.]

그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닌, 마치 괴기스러운 이족의 언어처럼 들렸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언어 자체가 마도의 언령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

과학자의 몸 주위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라 있었고, 그것은 황제 공손헌원이 마지막에 니알라토텝에게 시전했던 봉인진과 완전히 똑같아 보였다. 니알라토텝이 자신의 몸을 힐끔 둘러보자 마도황제가 수인을 맺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주문이 성립했으니 너는 [큰 굴레]가 이어지는 동안 절대 빠져나올 수 없어. 전 우주에서 암약하고 있는 모든 [가면]의 행동도 이제 곧 멈출 것이다.]

나는 28번째 삶의 ‘종말’에서 봉인이 풀리고 모습을 드러내었던 니알라토텝의 인간형 모습을 본 적 있었고, 그 모습과 지금 보이는 저 과학자의 얼굴은 똑같았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은빛 머리카락에 안경을 쓰고 있는 지적이라는 모습이라는 것뿐이었다.

‘니알라토텝’이라고 불린 과학자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졌다. 설마 그런 무식한 주문을 만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옛 지배자]들이 불쌍하지도 않나?]

[…….]

[과연 마도황제. 대단하구나.]

마도황제.

그러고보니 저 놈의 복장 또한 낯이 익다. 잘 보니 저 놈은 [옥좌]에서 봤던 그 놈이 아닌가?

‘얼굴은 어떻게 생긴 거지.’

꿈 속에서 틔여있는 희미한 의식으로도 그것만은 알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나는 얼굴을 보려고 애썼지만 내가 뒤편에 있어서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는 각도였다. 내가 낑낑대고 있을 때 마도황제가 말했다.

[웃긴 소리. 처음부터 내게 마도(魔道)을 알려줄 때 이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예측했을 텐데.]

[응? 그런가?]

[시치미 떼지 마라. 넌 인과율을 읽을 수 있으니 내 스승이 되었을 때부터 여기까지의 흐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 자기 무덤을 판 거지?]

마도황제의 말에 니알라토텝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내 대답은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나는 승패가 중요하지 않아.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내 적수가 될 수 있는 네가 성장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주술을 모두 네게 알려주었지.]

[정말 그것 뿐인가? 너는 그저 순수한 혼돈일 뿐이란 건가?]

[더 이상 물어서 무엇하는가, 크크큭.]

[아니. 뭔가가 더 있다.]

[…….]

[묻겠다, 나의 스승이여.]

마도황제가 뇌까리는 말이 내 귓속에 박혀들어오는 것 같았다.

[최초의 [큰 굴레] 이전…. 모든 의지 있는 존재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던 원초(原初). 너는 그 때 무엇이었단 말인가.]

[크크크큭. 그게 알고 싶나? 하긴 그걸 알면 모든 우주의 비밀이 까발려지는 셈이군.]

[나는 널 봉인한 최초의 존재다. 물어볼 자격이 있을 텐데.]

[아니. 그건 알려줄 수 없지.]

[뭐라고?]

니알라토텝은 입을 열었다.

[아쉽게도 내 유희를 끝낼 수 있는 건 네가 아니거든….]

번쩍

“……!!”

지, 지금 그건 뭐지?!

개꿈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너무 생생했는데….

“허억!!”

내가 뒤늦게 고함을 내지르자 근처에 있던 소을촌 사람들이 마구 달려왔다. 개 중 가장 빨리 달려온 것은 같은 집에 있던 금천재였고 그는 벌벌 떨면서 내게 말했다.

“초, 촌장님 왜 그러십니까요.”

“아니… 음… 쩝.”

나는 뭔가 말하려다 갑자기 입맛을 다셨다.

‘제기랄. 이런 걸 당장 상담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흑요석을 받은 동료가 주변에 하나도 없다는 게 이런 식으로 불편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봤자 무슨 소설쓰냐는 식으로 여길 게 뻔하다. 내가 뻔히 겪은 전생이야기만 해도 헛소리 취급을 받는데 니알라토텝과 마도황제 얘기를 도대체 누구에게 한다는 말인가?

결국 나는 지금의 꿈이 개꿈인지 아닌지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기억만 한 채 넘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금천재에게 말했다.

“야! 목마른데 물 좀 가져와.”

“네입.”

나는 시원한 물을 꿀꺽꿀꺽 마신 후 금천재한테 투덜거리듯 말했다.

“간만에 잠이 다 깨버렸네. 간만에 너랑 진솔한 얘기나 좀 해 볼까?”

“…….”

금천재가 바싹 얼어있자 나는 양반다리를 한 채 턱을 괴고 그를 쳐다보았다.

“사실 내가 너한테 청부살인당해 죽은 적이 있어서 이런 식으로 복수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냐?”

“네?! 무, 무슨… 저, 저,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래? 내가 널 협박하면서 너희집 비밀통로에 있는 은금고와 은괴를 싹 다 가져갔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너한테 청부받은 살수조장이 찾아와서 내 목도 따가고 그러겠지.”

“…그럴지도…. 아, 아닙니다.”

“큭큭큭.”

금천재가 자기도 모르게 수긍하다가 깜짝 놀라자 나는 킥킥 웃었다. 나는 잠에서 깬 기운 때문인지 물을 다시 벌컥 마시고는 말했다.

“사실 원수는 이미 갚았어. 지금 이건 미운 정일뿐이야. 알고 있냐?”

“…아니 무슨….”

“그냥 그런 게 있어.”

나는 일어나서 촌장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난 내가 정의라고 생각하진 않아. 그냥 내 마음가는대로 할 뿐이고, 너흰 우연히 나랑 인연이 닿아있었을 뿐이야. 알겠지?”

“아이구…. 알겠습니다요….”

“알긴 뭘 알아. 천상의 신도 내가 뭔 생각하는지 모를걸.”

나는 툭 내뱉듯 얘기하고는 밖으로 걸어나갔다.

하…. 왠지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혀있었던 윤곽이 이제서야 느껴진다.

‘인연….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한 번 맺어진 인연은 칼처럼 벨 수가 없어. 그 응어리에 맺혔던 감정 또한 마찬가지야.’

내 나름대로는 촌장일가에 대하여 은원을 정리했다 싶지만 제 3자가 보기엔 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내가 좀 이기적으로 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여태껏 얽히고설켰던 인연의 끈, 그리고 그 끈에서 파생되었던 감정의 굴곡은 정확한 계산으로 읽히거나 재단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었다. 결국 나로서는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애매모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설마 이게 인생이라는 걸까?

나는 여러모로 생각할 게 많아지자 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삶에서도 살면서 개같은 일이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생각이 많았던 적은 달리 없었다. 그 동안 보고 배우고 들은 게 많아졌기에 그런 것 같다.

내가 마을을 산책하고 있던 그 때였다.

“스승님.”

후욱거리면서 전신이 땀에 비오듯이 젖은 이광이 수련장에 서 있었다. 이광은 부들부들 전신을 떨었는데 체력과 기력이 한계에 도달해서 그런 게 분명했다. 내가 물끄러미 이광을 쳐다보자 그는 벌겋게 핏발 선 눈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란, 나, 찰 일만 번 다 했습니다.”

“…….”

내가 근처 바위에 앉아있던 진소청을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태사부님.”

“으음….”

아침새벽부터 시작하더니 결국 다 하긴 했단 말인가. 나는 잠시 이광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광. 내가 멍청한 짓을 시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아닙니다.”

“단정짓지 마. 네가 내 입장이라도 비슷한 짓을 하긴 했을걸. 되려 내가 덜 시키고 있을 수도 있고.”

“…….”

“아무튼 수고했다. 들어가서 쉬어라.”

“알겠습니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이광을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이것봐라?’

아무리 흑백련으로 내공을 강화시켰다지만 이광이 다 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란, 나, 찰 일만 번씩이면 결국 무기동작을 3만여 번이나 하는 셈이고 하나하나를 정확히 시전한다면 그 체력기력소모는 어마어마하다. 흑백련이 좋은 영약이라지만 천년설삼에 비하면 뒤떨어지니 현재 이광의 체력으로는 절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쨌든 해냈다는 게 놀라웠다.

‘좋아. 어디까지 하나 지켜볼까.’

그냥 기본기 십만 번을 시키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즐거운 걸까. 그건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나는 돌아다니던 도중에 서문혜를 만났는데 서문혜가 반갑다는 듯 말했다.

“촌장님. 오셨나요.”

“무공 수련은 잘 되고 있소?”

“네. 진소청 님께 지도대련을 받는데 정말 잘 가르쳐 주세요. 비슷한 나이대에 저렇게 강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그건 그렇소. 진소청은 인정할만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혹시 뇌신류에 들어올 생각은 있소? 그렇게 한다면 우리 뇌신류의 절기를 빠짐없이 알려줄 수 있는데.”

“으음…. 저 혼자는 결정할 수 없어요. 아버님께 여쭤봐도 될까요?”

“그리 하시오.”

내가 서문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지나가던 독고성이 마치 잘 만났다는 듯 내게 외쳤다.

“사제!! 자네가 익힌 구궁파천뢰를 내게 언제 알려줄 수 있겠는가?”

제길. 구궁파천뢰 욕심에 날 따라왔던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노골적인 거 아냐?

나는 독고성의 말에 내심 투덜거리다가 대꾸했다.

“그건 아직….”

“마을이 발전한 후라고 했었는데 자네의 기준이 대체 뭐지? 이미 이 마을은 보기 드물 정도로 큰 마을이 된 것 같네만. 조금만 더 건물을 지으면 작은 도시라 해도 믿을 것일세.”

“마을의 외견만으로 그게 결정되는 건 아니오. 나는 다른 목표가 있소.”

“다른 목표? 그게 뭐지?”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적어도 뇌신류 혼자서 풍신류와 화신류를 홀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고수가 많아질 때! 그 때부터 구궁파천뢰를 전수할 것이오.”

“……!! 자넨 호법사자의 실력을 알고 하는 말인가?”

“그들이 무량단이라는 무한의 내공을 쓸 수 있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소.”

“자네 혼자서 호법사자 둘을 해치울 수 있단 말인가…!!”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아니라 다른 뇌신류의 제자들의 힘만으로 감당가능할 때를 말하는 것이오.”

“…….”

“호법사자에 준하는 실력자가 사형 외에도 둘은 배출된 후를 생각중이오.”

독고성이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는 것 같았다. 그는 멍하니 있다가 자신의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으으…. 자네의 말이 허황된 망상인지 뭔지 헷갈리는군…. 설마 내게 구궁파천뢰를 가르쳐주기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나는 뜨끔했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은 내가 그렇게 속좁은 인간같소! 아니 그건 둘째치고라도 재흥 뇌신류를 위해서는 그 정도는 당연히 되야하지 않겠소!”

“그건 그렇지만 그게 구궁파천뢰의 전수를 미룰 이유와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네, 사제.”

나는 슬픈 표정으로 대충 말을 지어냈다.

“당연히 관계가 있소. 구궁파천뢰는 자칫했다가는 심마(心魔)가 일어나는 무공인지라 출중한 고수들이 호법을 서 주어야만 연마가 가능하오. 구궁파천뢰가 폭주하면 열 배 이상 강해질 텐데 나는 그렇게 되어버린 사형을 감당하기 힘드오.”

“아…. 그런가…?”

당연히 뻥이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력한 무공은 그만큼 익히려면 큰 대가가 필요한 법! 이강룡 사부의 유언도 뛰어난 고수를 많이 육성하라는 것이었기에 내가 강호에 나와 사형과 이광 등을 모으고 있는 것이오.”

“그렇군….”

“그럼 사형은 가서 방일과 금만재나 좀 가르쳐 줄 수 있겠소?”

“방일? 그 애송이는 사범들이 가르치고 있던데 내가 손수 가르치라고?”

“사범들도 무공연마할 시간이 필요하니 같이 좀 가르쳐 주시오. 뇌신류의 동량이 될 아이들이오.”

“흐음. 알았다.”

나는 대충 독고성을 몰아낸 후 마을 근처를 거닐면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무공수련을 하기도 싫었고 뭘 열심히 할 의욕도 없었기에 이렇게 탱자탱자 보내는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약 열흘이 지났을 때였다.

“이리 오너라!!”

쩌렁쩌렁한 사자후가 마을 전체에 울려퍼졌다. 나는 매일매일 이광에게 란, 나, 찰을 시키는 재미로 살고 있었는데 금천재 집에서 낮잠을 자다가 그 사자후에 깜짝 놀라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뛰쳐나가자 그 곳에는 세 명의 고수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들 중 한가운데에 있던 대장장이 옷차림의 장년인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을촌장 백웅이란 놈이 누구냐!!”

나는 당연히 그 장년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두 놈은 생전 처음 보는 놈들이었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내가 백웅이오만 당신은 혹시 무영검제 남궁조?”

그러자 도리어 무영검제가 흠칫하며 놀랐다.

“네놈은 어찌 나를 일면식에 알아보았단 말이냐!”

“흠. 설마 남궁환 그 놈이 가문을 멸망시킨 원수가 나라고 해서 찾아온 것이오?”

“그렇다!! 네놈이 저지른 게 맞구나!!”

“남궁환은 어디 있소?”

“네놈에게 말해줄 것 같으냐!!”

우웅

무영검제가 자신의 배후에 의념절기라고 할 수 있는 무영검기를 일으키며 살기를 증폭시키자 나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죽이는 것도 귀찮아서 남궁환이 도망치게 내버려뒀는데 무영검제한테 복수해달라 찾아갔었나 보군.’

그것까지는 손쉽게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무영검제와 동행한 두 명의 고수였다. 나는 무영검제에게 물었다.

“남궁가를 멸망지경으로 몰아넣은 건 내가 맞소. 그런데 질문할 게 하나 있소만.”

무력으로 무영검제를 이기는 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전에 말빨으로 무영검제의 진을 빼놓고 싶다. 그래야 무영검제를 영입할 때 저항이 한층 덜할 것이다.

“무엇이냐!”

“당신은 만일에 내가 전대 무영문주 서문휘(西門輝)의 사제라면 어떻게 할 것이오?”

“…….”

무영검제는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었지만 동시에 서문휘라는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 머리가 띵해 보였다. 왜냐하면 서문휘야말로 무영검제의 과거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존재였고, 이 시점에 그를 거론한다는 건 무영검제로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무영검제가 잠시 분노를 누그러뜨리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개소리군…. 서문휘의 사제인 게 나랑 무슨 관계란 말이냐?”

나름대로 정보에 대해서 탐색을 노리고 하는 말이었지만 도리어 내가 기다렸던 바였기에 나는 내심 웃으면서 무영검제를 더욱 뒤흔들었다.

“어허!! 이리도 염치가 없을 수가!”

“무엇이?”

“당신이 사실 남궁세가의 무공이 아닌 무영문의 무공인 무영탈혼검법을 사사했으며 진짜 스승이 무영문 전전대 조사인 서문걸 어르신이란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소? 무영문의 무공을 가지고 남궁세가의 원수를 갚겠다니 정녕 당신은 철면피요?”

“……!!”

“그래놓고는 무영문주 자리를 달라고 서문휘 사형에게 개소리 하다가 비무에서 진 후 도망쳐서는 설조라는 가명으로 대장장이 노릇을 하다니…. 쯧쯧!”

내가 전생동안 모았던 정보를 이용해서 갈구자 무영검제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허… 허억….”

그가 평생 혼자만 간직하고 있었던 비밀을 생전 처음보는 가문의 원수가 낱낱이 꿰고 있으니 그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특히 그의 양옆에 있던 두 명의 의문의 고수들이 정말? 하는 눈빛으로 의아하게 무영검제를 쳐다보자 그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듯 했다.

“이… 이건 모함이다. 이놈. 대체 어떻게 그런 걸….”

“무영검제. 지금 이 마을에 누가 와 있는 줄 알고 싸움을 거는 것이오?”

“누가 왔는지 내가 알게 뭐란 말이냐.”

“바로 그 서문휘의 아들이며 현 무영문주인 검마 서문대룡의 딸, 서문혜가 와 있소. 그녀는 지금 열심히 무공지도를 받고 있는 중이지.”

“…….”

“내 명성을 듣고도 겨우 당신들 셋이서 오진 않았을 테고 다른 무림세력들이 같이 합공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 같은데, 만일 이 소을촌이 쑥대밭이 되어 서문혜가 살상당하면 무영검제 당신은 그 마음의 빚을 어찌할 생각인지.”

무영검제가 급히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자… 잠시만…. 정말이냐?”

“내 이름을 걸고 그렇소만. 이대로 서문혜가 위험에 처하면 실로 당신은 무영문에 더없는 죄를 저지른 개새끼구려.”

“…….”

무영검제는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왼쪽에 있던 까까머리를 입은 홍의(紅衣) 장년인에게 말했다.

“오, 오늘은 물러갑시다. 아무래도 내가 좀 더 알아봐야겠소.”

그러자 홍의 장년인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무영검제. 장난하시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는 당신도 가만두지 않을 거요.”

“제길! 미안하다니까. 하지만 역시 이대로는 좀….”

“우린 당신 말만 듣고 우리 문파의 전 병력을 이끌고 왔는데 이렇게나 배은망덕하다니. 천하제일검의 명성을 현천도인에게 뺏긴 이유가 있었구려.”

“크윽…. 빌어먹을…. 감히 날 모욕해?”

홍의장년인이 그를 힐난하자 무영검제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더러운 땡중새끼! 소뢰음사(小雷音寺) 장문인이라고 나를 졸로 보는 것이냐!!”

다음 순간 무영검제가 무영검기를 쏟아부으며 자신의 절기로 홍의장년인을 공격했고, 홍의장년인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 자신의 장인(掌印)을 부풀게 만들며 공력이 넘실거리는 청안(靑眼)을 빛냈다.

의념절기(意念絶技)

극락대수인(極樂大手印)!

꽈과광

두 초절정고수의 절기가 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천재지변이 일어나듯 광대한 소리의 파장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그리고 무영검제의 절기가 좀 더 강했는지 홍의장년인이 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나 있었고, 그런 홍의장년인 옆에서 청의장년인이 살기를 내비치며 자신의 허리춤에서 채찍을 꺼내었다.

촤르륵

의념절기(意念絶技)

청마살육편(靑魔殺肉鞭)

쉬쉿

채찍의 날카로운 끝이 빛의 화살처럼 변해서 무영검제의 견정혈을 노리자 더 이상은 무영검제가 공격하지 못하고 펄쩍 뛰며 물러났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저들의 실력을 단숨에 간파할 수 있었다.

‘무영검제가 가장 강하다. 하지만 저 홍의장년인과 청의장년인도 반 수에서 한 수 부족할 뿐 비슷한 수준에 올라있다.’

다시 말하자면 세 명 모두가 초절정고수 중에서도 최상위에 오른 자들!

나머지 둘이 무영검제를 합공한다면 아마 무영검제는 당해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내가 흥미롭게 그들의 자중지란을 쳐다보고 있을 때 마을 안쪽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사제?”

그를 시작으로 여태껏 마을 내에서 열심히 무공수련을 하던 자들 대부분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마을에서 걸어 나오는 자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독고성 사형. 오늘 푸닥거리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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