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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서문혜의 말에 별 생각없이 대답했다.
“이쪽은 미호라고 해. 동영에서 데려왔어.”
“…….”
“…….”
그 순간 나는 서문혜와 미호 사이에서 흐르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움찔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다소 냉막한 눈으로 서로를 보고 있었고 서로 감정을 안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진 것이다. 나는 그 상황에서 뭔가를 눈치챘다.
‘이런…!! 서로가 다른 종족이라서 경계하는 건가!’
서문혜의 근원은 거신족이며 미호는 근본이 삼황 여와인 대요괴였다. 둘 다 큰 틀에서는 질서진영에 속한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서로 다른 종족이기에 근본적으로 적대감이 있을수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미호는 완전히 질서측이라기 보다는 요괴이기에 반정반사(半正半邪)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급히 말했다.
“자 악수!!”
“?!”
“네?!”
나는 두 명이 당황하든말든 빠르게 손을 잡아끌어서 둘이 악수하게 만들었다. 서문혜도 미호도 무척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는 이것 또한 지나가야 할 관문이라고 느꼈다. 새롭게 만나는 두 사람이 불안해할 게 뻔했기에 내가 그들을 친하게 만들고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
나는 손을 잡은 두 사람에게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린 이제부터 다 같은 마을 사람들! 종족차별 그런 거 없소!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소.”
“…….”
“…네. 알겠어요.”
그리고 둘은 잠시 후 뭔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보는 듯 했다. 아주 깊게 웃는 걸 봐서는 경계심이 서로 누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좋아! 이제 서로 친해질 수 있겠군!’
둘 다 착한 녀석들이기에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된 것 같다. 나는 상황이 해결되자 서문혜에게 말했다.
“그럼 아직 마을 내부가 어떤 상황인지 설명을 듣지 못했소?”
“아…. 저는 마을의 책사이신 망량 님을 만나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잘 됐군. 그럼 내가 두 사람에게 마저 마을을 소개시켜주겠소.”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마을을 걸어다니며 소개를 시켜주었다. 그런데 걸어다니던 중 부담스러울 정도로 우리 세 사람에게 시선이 꽂혔기에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여인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기에 쭈뼛거리는 느낌도 들었다. 내 어색함을 느낀 건지 옆에서 같이 걷던 서문혜가 말했다.
“백웅 님. 시선이 부담스러우신가요?”
“흠…. 원체 못생긴 외모로 오래 살아서인지 적응이 잘 안 되는군.”
“저 또한 많은 미남들을 보아왔습니다만 지금 백웅 님의 미모는 전혀 본 적이 없었던 수준이에요.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면 이것보다 몇 배는 더할 것입니다.”
“…….”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미호도 한 마디 거들었다.
“백웅 님…. 제가 아까 외모는 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만, 서문혜의 말에 동감입니다. 너무 미소년인지라 향후 절세미남이 될게 뻔하니 여인이라면 눈을 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정도란 말이오?”
“우후후…. 제 미남 기준도 나름대로 높은 것 같습니다만 그 기준을 아득히 뛰어넘으셔서 할 말이 없습니다. 자랑스러워하셔도 될 듯 합니다.”
미호가 뭔가 부끄러운 듯 홍조를 띄며 배시시 웃는 걸 보자 나는 기분이 묘해졌다. 미호가 웃는 건 자주 보아왔지만 저런 류의 웃음은 거의 본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미호의 웃음이 어떤 뜻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자들은 간혹 너무 잘생긴 사람을 보면 그냥 웃음이 나온다고 하더니…!!’
저게 그 웃음이란 말인가?!
그리고 우리는 청룡무관의 고수들이 수련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는 반쯤 죽어서 피땀으로 얼룩져 있는 금만재가 보였고 이광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게 보였다.
“일어나라 금만재!!”
“억… 윽….”
“스승님 말대로 널 봐주지 않고 철저히 뇌신류 무공을 지도해주고 있잖느냐!! 아주 잘 말했으니 당장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금만재는 훌쩍거리며 피땀으로 젖은 얼굴으로 중얼거렸다.
“으윽…. 흑… 죄… 죄송합니다…. 흐흑….”
“…….”
음…. 역시 나한테 갈궈진 이광한테 잘 가르쳐보라고 도발하면 저 꼴이 되는군.
금만재가 저러는 걸 보니 너무 재밌는데?
나는 이광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봐 이광!! 스승님이 오셨다.”
이광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진소청이나 윤광, 지평의 시선도 내 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이윽고 내 모습을 보자 크게 당황한 얼굴이 되었고 특히 이광의 얼굴이 가관이었다. 이광은 잔뜩 구겨진 얼굴으로 씹어뱉듯 말했다.
“…기생오래비처럼 생긴 넌 누구냐? 어디서 스승을 사칭하느냐!”
“잔말할 거 없고 이거나 봐라.”
파지지직!!
“헉! 스승님….”
내가 구궁파천뢰를 운용하여 전광을 발출하자 이광은 단숨에 내 정체를 눈치 챈 듯 했다. 세상천지가 넓다 하지만 나같은 뇌신류 무공을 쓸 수 있는 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이광에게 말했다.
“섭하군, 이광. 이청운 종사의 사제이자 이젠 네놈의 스승인 나더러 기생오래비라니.”
이광은 잘못 걸렸다 생각했는지 목줄기와 이마에 땀이 나는 듯 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다가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외, 외견이 너무 달라져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그럴 수 있지. 내가 생각해도 많이 달라졌으니.”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말이야…. 수련은 계속해야지.”
나는 관대한 척 넘어가려다가 이광에게 새로운 과제를 내주기로 했다. 나는 검지손가락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오늘 너는 뇌령팔식 일만 번을 해야할 것 같아.”
“…….”
이광이 잠시 손에서 힘이 풀린 듯 했으나 다시 정신을 차린 듯 했다.
“저 금만재란 아이를 하루종일 가르치느라 체력이 소모되어 오늘은 좀….”
“어허!! 수련에 그리 태만해서야 되겠느냐!! 정말 위험하겠다 싶으면 내가 말려줄 테니 걱정말고 뇌령팔식을 수련하거라!”
“…….”
“자 시작!!”
부웅! 부웅!!
잠시 후 이광이 이를 악물고 뇌령팔식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두 배 분량 수련이었기에 이번에는 그저 땀에 젖는 것으로 끝내지는 못하리라. 그 모습을 보던 윤광과 지평이 경악한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나는 히죽 웃으며 그들을 보며 말했다.
“아 그렇지. 너희는….”
“으으으.”
자기들한테도 뇌령팔식 반복수련을 시키려나 싶어서 겁에 질린 윤광과 지평이었지만 나는 관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방일한테 뇌신류의 무공을 처음부터 잘 알려주도록 해라.”
“네?”
“저 녀석도 일개 무관제자였기에 너희 사범들이 제대로 다 알려준 건 아니었지 않느냐? 밀착수련을 시켜서 좀 더 빠르게 일류의 경지에 접어들 수 있게 도와주란 거다.”
“아…!! 알겠습니다. 방일, 따라와라.”
윤광과 지평이 방일을 데리고 허둥지둥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나는 방일을 언젠가 고수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지금의 나와는 수준차이가 너무 나서 금만재와 마찬가지로 가르쳐봤자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뇌신류 사범들이 어느 정도 가르친 후에나 방일을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 진소청에게도 가서 말했다.
“진소청. 수련을 금지했으나 당분간 여기 서문혜 소저에게 지도 대련을 해주도록 해라. 그 정도는 허용하마.”
“경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대련을 말씀하시는지요.”
“그래. 향후 뇌신류의 신공 또한 가르칠 생각이니 일문의 제자처럼 친절히 가르쳐 주어라.”
“알겠습니다.”
“아, 이광이 뇌령팔식 일만 번 다 하는지 계속 지켜봐라.”
“…알겠습니다.”
나는 서문혜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소청의 실력은 매우 뛰어나오. 대련하다보면 그대가 얻는 게 많을 것이오.”
현 시점에서 그들의 실력은 세 단계 이상의 차이가 존재하는 듯 하다. 딱 지도대련을 하기 좋은 정도일 것이다. 서문혜가 기쁜 표정으로 무인의 포권지례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백웅 촌장님.”
나는 이런 식으로 어느 정도 가르침의 체계를 세워둔 후 망량에게로 갔다. 망량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기겁을 했다.
“……?!”
“뭘 그리 놀라오? 나요 백웅.”
“저, 정말로 성형술을… 그것도 복….”
나는 재빨리 망량의 혈도를 찍어서 입을 막았다. 옆에 미호가 있는데 괜히 들어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망량도 뭔가 눈치챘는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혈도를 풀어주었고 망량이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하아, 정말 당신은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구려. 대단하오.”
“하하. 한 번쯤은 잘생겨지고 싶어서 말이오.”
나는 망량에게 미호 등에 대해서도 다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던 망량이 말했다.
“정말 대단하군. 필요한 일만 하고다닌 느낌이구려.”
“이제 더 할 일은 없을 것 같소만….”
“흐음…. 사실 당신에게 보고해야하는 일이 하나 있소.”
“뭐, 뭐요? 큰 일은 아니지?”
내가 약간 두려운 목소리로 말하자 망량이 씩 웃었다.
“별 일은 아니고 마을확장에 대해서 성주(城主)에게 인가를 받는데 성공했소.”
“응? 무슨 말이오?”
“사실 지금 지은 임시 집터만으로는 사람들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오. 지금 데려온 사람만 해도 열 명이 넘어보이고 앞으로도 계속 인구가 유입될 게 뻔하겠더군…. 그래서 옆 마을까지 통합하여 우리 세력권에 넣기로 했고 인근 삼십 리에 대해 무제한 개간권과 벌채권을 얻어내었소.”
“흠…. 더 큰 마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단 소리군!”
“그렇소.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많은 건물을 지어야만 하므로 대뢰옥 죄수들 중 재경(財經)에 관련된 자들의 인맥을 얻어서 3개 목수단과 도편수단을 파견받기로 했소. 백오십여 명의 일꾼들이 와서 도로부터 넓히면서 큰 마을의 기초를 만들게 될 것이오.”
“잘 했소!!”
역시 망량이야! 뭐든 잘 하는구나!
내가 내심 감탄하고 있을 때 망량이 말했다.
“기왕 이리된 거 사공린 소저와 현천도인, 그 제자들을 지금 꺼내주시오. 한 번에 얘기를 하는 게 편하겠군.”
“그러겠소.”
나는 그들 모두를 목갑에서 꺼냈고 이윽고 망량이 당황한 그들에게 상황설명을 해 주었다. 그들은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도 이야기의 요점을 알아들은 듯 했고, 현천도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허허…. 도를 수양한다면 장소가 어딘들 상관없소. 내 제자들도 진즉 속세와 연을 끊은 자들이니 문제가 없소.”
“현천도인.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사공린이 차분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백웅 촌장님. 촌장님의 목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제 스승님께서 이런 기인(奇人)을 동료로 두었다고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흐음…. 그건 좀 더 힘을 갖추고 난 후에 물어보시오. 지금의 당신은 내가 만들려는 판을 알기에는 너무 미약한 존재. 이건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오.”
“……!!”
“당신의 무공을 진보시키는 데는 아낌없이 협력하리다.”
“알겠어요.”
사공린은 뭔가 분한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사공린은 나름대로 무공에 자부심이 있었기에 내 한 마디로 자극을 받은 듯 했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자 망량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을을 소개시켜줄 겸 숙소를 배정하러 나갔다 왔다.
망량은 갔다와서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털썩 의자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휴우…. 아까부터 뭔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 것 같더군. 뭐가 말하고 싶소?”
역시 망량의 눈치는 귀신같다.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상담하고 싶었던 일을 입 밖으로 꺼냈다.
“망량. 사실 황산파의 변란은 내가 제압했소. 용중일을 굴복시켜서 내 수하로 두었고, 그와 짜고 현천도인의 이름을 내세워서 백련교주의 중원진격을 막았소.”
“허어? 좀 더 자세히 말해보시오.”
“사실은….”
내가 황산파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망량은 잠자코 전부 들었다. 나는 설명을 끝내고는 그에게 말했다.
“지금 내 평화로운 삶을 위협하는 세 가지의 요소는 백련교, 황궁 낙양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머지않아 일어날 세계적인 대홍수라고 할 수 있소. 하지만 나는 그 재난을 막으려고 뼈빠지게 움직이고 싶지도 않소. 그렇게 움직이다보면 어느 새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서 동란(動亂)에 휘둘린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흠….”
“최대한 별일 없이 평화를 유지하고 싶은데 어찌하면 좋겠소.”
지금까진 임기응변으로 처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판이 넓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더 이상은 임기응변으로 처리하기보다 명확한 전략이 있어야만 변수를 통제할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망량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다.
망량은 무척 복잡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볼 때 당신은 전례 없는 천외천(天外天)의 힘을 지닌 신적인 존재요. 그런 당신의 힘으로도 해결한다는 보장이 없을 정도로 어려운 고난이 앞으로 존재한다니, 들을수록 암담한 마음만 드는군.”
“…….”
“하지만 스승님의 도움으로 그 흉신이란 존재를 제압했다면 정말로 남은 고난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오. 이런 상황이라면 딱 어울리는 계책이 하나 있지.”
“그게 무엇이오?”
망량이 씩 웃으며 말했다.
“강 건너 불구경(隔岸觀火)이라는 계책이오.”
“……?”
“농담이 아니오. 지금 당신 주변에는 수많은 이유로 촉발된 사건들이 산재해 있는데 이걸 지금까지처럼 하나하나 당신이 초인처럼 해결하러 다니는 건 이제 한계에 부딪힌 거요. 당신이 정말 세상을 구해야하는 사명감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불씨가 재료를 잃을 때까지 멀리서 지켜보는 게 답이 아니겠소?”
“으음!”
“물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무고한 자를 구하는 활동은 계속하고 싶다는 거겠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소.”
“그게 무엇이오?”
“백웅 촌장께서는 이제 강력한 정보단체를 손에 넣어야만 하오.”
망량은 앞으로 쭈욱 상체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눈과 귀가 되어서 중원 전역을 감시하고 상황을 알려줄만한 조직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오. 그렇게 해야만 백웅 촌장의 평화로운 마을생활을 앞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오.”
“흐음…!! 이해했소. 그럼 그 정보단체를 어디서 얻어야 하오?”
“글쎄.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단체는 개방이나 하오문이라 하니 그들을 수하로 부려도 되겠지만… 당연히 무림인 전부가 정보의 귀중함을 알고 있으니 무림역사 내내 쉴 새 없이 무수한 무력단체가 그들을 굴복시키려 했었소.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건 그들이 특정한 수뇌부에 의존하지 않는 체계였기 때문이오. 아무리 강한 힘이 있어도 그들과는 정보를 거래할 수밖에 없고 부하로 부리기는 힘드오.”
“그렇다면 방법이 없소?”
“그럴 리가. 아주 단순한 방법이 있소.”
망량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마도팔문(魔道八門)의 위치를 모조리 알아내시오. 그리고 나서 그들을 전부 깨부숴서 당신 발밑에 무릎 꿇리고 마도팔문의 정보력을 손에 넣는 것이오. 그러면 천하무림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흑도무림의 모든 눈과 귀가 당신의 손에 들어올 거요.”
“아…!! 그렇군.”
나는 망량의 계책을 듣자 바로 이광에게로 갔다. 이광은 열심히 뇌령팔식을 연마하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약 반 시진이 지나자 파김치가 되어 후욱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이광에게 말했다.
“일단 그만.”
이광이 비틀거리며 뇌령팔식의 전개를 멈추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급히 네가 할 일이 생겼으니 오늘은 수련을 그만두자.”
“…….”
“이광. 강호에 나가라. 그리고 신녀문에 접촉해서 마도팔문의 수뇌부가 어디있는지에 대해 모두 알아와라.”
당연히 이런 일을 시킬 땐 이광한테 시키면 될 것이다. 이전 생에도 이광은 정보단체 신녀문을 이용해서 나머지 마도팔문의 정보를 캐낸 적이 있었고 이번에도 가능할 것이리라.
“스승님께선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
“마도팔문을 손에 넣으려고.”
“…알겠소. 흐으….”
나는 이광의 얼굴에 큰 짜증이 서려있는 걸 보자 약간 기운을 북돋아줄 필요를 느꼈다.
“이번 일을 잘 처리한다면 뇌령팔식 반복수련은 그만 시키도록 하겠다. 그리고 경지를 진보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려주마.”
“…정말이오?”
“그래. 약속하지.”
“그 약속을 꼭 지키시오.”
“오늘은 지쳤을 테니 내일부터 움직여라.”
“네….”
“아, 잠깐. 가는 길에 금만재를 데려가도록.”
이광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 애새끼…. 아니, 아이를 왜 데려가야 합니까.”
“어허! 앞으로 뇌신류의 동량으로 자라날 아이 아닌가! 데리고 다니면서 열심히 수련시켜 주라고.”
이광의 이마에 짜증어린 혈관 하나가 뿍 하고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알겠습니다.”
금만재 어디 죽어 봐라!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에 돌아가는 이광의 뒷모습을 보며 흐릿하게 웃었다.
‘흐흐흐흐흐… 이광 너도 말이다….’
뺑뺑이… 뺑뺑이다…!!
중요한 걸 안 가르쳐주는 걸 알면서도 속을 수밖에 없는 그 답답함을 너도 느껴봐야 해, 이광!!
‘가만 놔두면 이광이 알아서 정보를 가져와 주겠지.’
그때까진 마을에서 여유롭게 지내볼까!
나는 다음날 이광이 떠나자 다들 무공수련하는 걸 제일 뒤에서 지켜보며 느긋한 하루를 보냈다. 금만재는 이광을 따라서 떠나게 되자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금천재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서 울부짖었다.
“으아아아아아!! 살려줘!! 아빠!! 저 인간한테 더 맞으면 나 죽어!!”
금천재의 얼굴이 납빛이 되었고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금만재. 나는 소을촌 앞에서 내 앞에서 배째라고 드러눕는 너의 열정에 감동받았다. 그렇게 고수가 되고 싶을 줄은 몰랐지.”
“아, 아, 아니….”
“이 고난을 이겨내야 너는 고수가 될 수 있다. 힘 내거라!”
“으아아아아!!”
뻐억
“스승님. 다녀오겠습니다.”
이광의 창대에 머리를 맞고 기절한 금만재는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금만재의 명복을 빌어주고는 망량에게 말했다.
“아직 구출할 사람이 있어서 다녀올 생각이오.”
“또? 이번엔 누구요.”
“성질 더러운 놈이오.”
후웅
나는 사천당문으로 날아가서 어린 당산과 그의 어머니를 구출했다.
“네가 당산이지?”
“큭. 당신은 누구….”
나는 얼떨결에 구출당한 당산의 수혈을 짚어서 기절시키며 중얼거렸다.
“대웅제국을 배신했던 건 용서해주기 힘들지만 어쨌든 지금 네 처지는 좀 과하게 불쌍하군. 생지옥에서 구출은 해 주겠지만 배신했던 벌로 이번 생에 사천당문에게 복수하는 건 금지하겠다.”
그냥 구해주지 말까도 생각했지만 역시 당산의 인생은 너무 처참했다. 기왕 소을촌을 운영하는 김에 그를 구해주는 게 좋을 것이다.
“너는 누구냐!”
“알면 뭐할 거냐!”
퍼버벅
사천당문의 고수들이 단숨에 나를 포위하듯이 에워쌌지만 나는 단숨에 다 때려눕혔다. 그리고 사천당문의 가주인 일수나찰(一手羅刹) 당무극(唐無極)이 튀어나와서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게 출수했다.
“만천화우(滿天花雨)!!”
쒸이이익 -
무시무시한 기세로 수많은 암기들이 날아들었으나 나는 그 암기들의 속도와 정확성을 보자 비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후!”
따다당!!
“아, 아니!!”
나는 선 자리에서 뇌검을 휘둘러 그 암기들을 모조리 다 쳐내고 말았다. 내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모든 암기를 쳐내자 당무극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듯 안색이 파리해졌으나 나는 그를 조롱했다.
“…당산의 만천화우에 비하면 십분지 일도 안 되는 위력이군. 그거 받아내느라 죽을 뻔 했었는데 이 따위가 정말로 만천화우란 말이냐?”
“뭐… 뭐라고….”
“암기술은 잘 모르지만 어디 이거나 받아봐라. 이번 생 당산의 복수다.”
퓨웅
나는 땅에 박혀있던 표창 하나를 손에 잡고는 구궁파천뢰의 뇌기를 가득 실은 후 손목의 탄성을 이용해서 당무극에게로 대충 날렸다. 진신내공을 상당히 담았기 때문인지 갑작스레 허공에서 가속하는 게 눈에 보였다.
퍼벅!!
“끄아아악.”
당무극은 피하지 못하고 어깨를 적중당해서는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깊게 박혔기에 근육까지 갈라지는 중상이 틀림없었다.
‘역시 대충 날렸다지만 구궁파천뢰의 뇌기가 의념 때문에 급격히 가속해서 강력해졌군.’
그렇다곤 해도 딱히 초식조차 아닌 것에 당할 줄이야.
나는 사천에서 손꼽힌다는 초절정고수인 당무극이 너무 약했기에 한숨을 쉬었다.
“흥. 전공이 무색할 정도군. 이렇게 약할 줄이야.”
아니 내가 너무 강해진 건가?
나는 고개를 젓고는 사천당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을로 와서 구출한 당산과 그 어머니도 마을촌민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별다른 일 없이 약 이십여 일이 흘렀다. 나는 그 동안 마을 사람들의 무공수련을 봐 주거나 망량이 불러온 목수와 도편수들이 마을을 개축하는 걸 지켜보았다.
“스승님.”
그때쯤 이광이 외출을 끝내고 복귀했다. 그는 얼마나 얻어터진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퉁퉁 부어있는 금만재를 데리고 온 것이다. 이광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흘 내로 신녀문이 마도팔문의 종주가 있는 곳과 그 내부도면을 전서구로 마을에 보내줄 것입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다 했습니다.”
“그렇군. 잘 했다.”
“이제 뇌신지혼을….”
나는 히죽 웃으며 이광에게 말했다.
“아직 기본기를 익숙게 하지 못하지 않았느냐? 그래서야 뇌신지혼은 가르쳐줄 수 없지.”
그러자 이광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뇌령팔식은 더 시키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을 텐데…!!”
“당연하지. 누가 뇌령팔식을 더 시키겠느냐.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흠.”
“그 대신….”
이어진 내 말에 이광의 얼굴이 망가지는 게 보였다.
“오늘부터 란, 나, 찰을 일만 번씩 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