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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청룡무관으로 향했다. 청룡무관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머지않아 청룡무관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근처의 작은 산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중얼거렸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본디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창천검룡(蒼天劍龍) 남궁환(南宮桓)이 약혼녀인 모용연(慕容演)과 함께 도피하다가 이 근처에서 진소청에게 도움을 받는 사건이 있었던 게 기억난다. 초창기에는 그 사건을 열심히 해결해 주려 하다가 사건의 본질이 남궁환 그 자체가 인간쓰레기이며 남궁세가 자체를 멸문시켜야 마땅하다는 걸 알게되자 그 이후부터는 관심을 두지 않고 악의 근원인 남궁세가만 멸망시키는 걸로 끝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황제 공손헌원이 일시 봉인되면서 모든 인과관계가 재편성된 상황. 그 사건이 어떻게 된 건지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는 남궁환과 모용연이 어찌되었는지 딱 한 번만 들여다보기로 생각하며 빠르게 움직였다.
‘예전엔 분명 관중의 조가장에 머무르고 있었지.’
시간으로 볼 때 내가 전생한 후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니 원래라면 이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으리라. 나는 조가장에 가서 남궁환과 모용연이 있는지를 살폈고, 이윽고 그들이 조가장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벌써 진소청이 구출했나? 아니면….’
나는 궁금해져서 조가장에 대뜸 들어가서 조가장주에게 말했다.
“남궁환과 모용연의 행적을 알고 싶은데 알려다오.”
기운을 약간 발휘하자 조가장주는 대번에 심령이 제압당했고, 자신이 감당치 못하는 고수인 걸 깨닫자 급히 입을 열었다.
“그, 그들은 진소청이 구출해서 청룡무관으로 갔소.”
“청룡무관? 남궁세가로 가지 않고?”
“강호에 남궁세가가 멸문했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행선지를 바꾼 걸로 알고 있소. 나도 자세한 얘기는 알지 못하오.”
“그렇군. 무력으로 겁박해서 미안하게 됐소. 이건 정보값이오.”
나는 휙하고 용문석굴에서 얻은 백금괴 중 하나를 조가장주에게 던져주었다.
“오오오!! 백금…!!”
조가장주는 백금괴라는 걸 알아채자 대번에 화색이 돌았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말은 지금 청룡무관에 가면 남궁환과 모용연이 있단 소리겠구나.’
본디 진소청이 구출한다면 남궁환은 남궁세가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이 머나먼 관중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으므로 당장 안휘로 도망치는게 본래 역사였다. 남궁환 입장에서 아무리 진소청이 무력으로 보호해준다 해도 자기 본가의 병력이 지켜주는 장소로 빠르게 도피하는 게 제일 합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남궁세가를 멸망시켰기에 남궁환은 본가로 복귀하지 못하고 잠시 청룡무관에 몸을 의탁하게 된 것으로 바뀐 모양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남궁세가를 멸망시키며 시작한 건 이번 전생이 처음이 아닌데?’
본디 남궁세가를 대충 멸망시키고 시작해도 여태 청룡무관에서 남궁환을 발견한 적은 없다. 지금까지는 남궁환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관중을 벗어났지만 이번 전생에서는 청룡무관에 몸을 의탁하기로 했다는 소리다.
이건 명백한 변화이다.
이전과는 달리 무언가의 변인이 연쇄효과로 남궁환의 거취에 영향을 미쳤다는 소리다!
‘살펴보기를 잘 했군….’
나는 조가장을 빠져나와서 청룡무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청룡무관의 정문에 도달하자 살찐 문지기인 방일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방일을 만나자 익숙한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얘야. 동냥이나 구걸은 안 되니까 썩 물러가라.”
방일과 방곡!
이선문하생이자 전생부터 나와 제법 알고 지냈던 사이였기에 감회가 새롭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그 울림을 음미하듯 즐겼다.
‘으으…. 황제 공손헌원이랑 옥좌 앞에서 목숨걸고 칼싸움 할 때만 해도 이 평범한 순간이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지….’
이렇게 생각하니 29번째 삶에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하고 마력부작용 때문에 이리저리 끌려다닌 게 너무 억울할 정도였다. 내가 눈을 감고 찡한 표정을 짓고 있자 방일이 허참, 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얘야. 우리 말 안 들리냐? 물러가라고.”
나는 눈을 번쩍 뜨며 입을 열었다.
“방일. 나는 소을촌에서 온 촌장 백웅이다. 청룡무관주 이광에게 황산파(黃山派) 발호의 일로 찾아왔다고 전하거라.”
“……?”
“이 꼬맹이 미친거야?”
방일의 표정이 기괴해졌고 방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이 녀석들과의 드잡이질이 3번째 전생부터 이미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이제와서는 그저 귀여울 정도였다. 나는 씩 웃으며 방일에게 말했다.
“안 되겠다. 일단 직접 보내주면 쉽게 말을 듣겠지?”
내가 장심을 뻗어서 장일의 다섯 치 앞의 공간에 갖다대었고, 이윽고 절기(絶技)를 운용해서 일 장을 펼쳐내었다.
진무칠절경(眞武七絶經)
명곡(鳴曲)
탄형심장(彈形甚掌) 격공(隔空)
“뭐… 으아아악!!”
투웅!!
진무칠절경의 방탄진기가 형성한 기의 공진이 메아리쳤다. 그리고 허공에서 몇 차례나 방일의 몸을 무형의 손이 밀듯이 튕겨내었고, 사소한 밀침이 거듭되다보니 방일의 몸에 가해지는 압력도 적었다. 살기를 싣지 않은 의념절기로 전개하니 살상력은 없다시피 했고 방일의 몸은 탄력을 싣고 훨훨 날아서 청룡무관 안으로 휘어지듯 들어갔다.
쿠궁
이윽고 멀리에서 와룡전(臥龍殿)에 방일의 몸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목표로 한대로 평소에 이광이 머무는 와룡전까지 날려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방일은 방탄진기에 둘러싸여 있었기에 피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리라.
‘원래라면 방탄진기를 심격공장의 형태로 이렇게 세밀하게 쓸 수 없었을 텐데. 역시 28번째 전생 이후로 내 무공의 세심함이 조금 진보한 느낌이 들어.’
전체적인 역량은 거기서 거기겠지만 거대한 뜻을 담고있는 절기들을 좀 더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같은 절대지경 고수가 아니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차이였지만 아무래도 극한의 수련동안 체화(體化)를 한꺼풀 지난 듯 했다.
‘여동빈이 그래서 내게 십연전을 주문했던 건가?’
여동빈의 말이 맞다.
생사를 건 싸움 속에서 얻는 게 분명히 존재하는 듯 하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약 반 각동안 서 있자, 안에서 이광과 진소청이 날듯이 뛰어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타닷
뜻밖인 것은 이광과 진소청 옆에는 극호 또한 같이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어리둥절한 생각이 들었다.
‘극호는 원래 이때쯤 관중 기루에서 호위무사 일이나 하고 있을텐데?’
역시나 남궁환의 변화처럼 청룡무관의 대응 자체에 변화가 생긴 듯 싶다. 그리고 잠시 후 이광이 자신의 창을 늘어뜨리며 내게 말했다.
“방일이 횡설수설하여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소만, 고인(高人)의 성명별호를 다시 한 번 이 이광에게 말해주실 수 있겠소?”
이광이 나타났다.
태도를 보면 방금 전 내가 쓴 의념절기의 수준을 읽으면서 내 무공도 얼추 짐작했기에 약간 저자세로 나오는 게 분명하다.
“…….”
드디어…
드디어 이 순간이 온 것인가!
지금껏 더 중대한 일이 산재해 있기도 했고 흑요석 받은 진소청이 맨날 사제의 의리로 말려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드디어 내 숙원을 풀 수 있게 되었나!
‘아, 아직 아니야…. 흐흐….’
나는 감동이 마음속에 물결치려는 걸 느꼈지만 애써 참아내었다. 아직 내가 계획했던 복수는 시작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참을성 있게 환희를 견뎌내야만 내 계획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나는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소을촌의 촌장 백웅이다. 황산파의 발호 때문에 이광 네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다.”
이광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황산파… 화산파와 종남파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더군. 허나 본 무관은 그들의 세력다툼에 상관치 않소. 반로환동하신 고인께선 장소를 잘못 찾아오신 게 아니오?”
역시 반로환동한 거라 생각해서 내 하대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하긴 내 무공을 보면 반로환동했다 생각하는 게 정상이긴 할 것이다. 나는 팔짱을 끼며 이광의 말에 대꾸했다.
“아니, 제대로 찾아왔다. 뇌신류(雷神流)가 동문(同門)을 찾지 않는다면 누가 찾겠는가?”
그 순간 나는 구궁파천뢰의 심결을 끌어올려서 전신에서 뇌기를 머금은 광구를 크게 한 바퀴 전륜(轉輪)시켰다. 원래 이건 큰 고통이 뒤따르는 과정이었지만 그 동안 연마를 많이 해서인지 고통이 많이 줄어 있었고, 전륜이 한 번 끝나자 내 몸에서는 가공할만한 전광(電光)이 뿜어져 나왔다.
파지지직!!
“……!!”
“아니….”
“헉?!”
이광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진소청과 극호도 구궁파천뢰의 기세에 경악한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궁파천뢰의 뇌기는 500여년간 뇌신류의 천재들과 뇌신류 초대종사 투선 초무린, 제갈사의 이혼대법 연구성과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
기존의 뇌신류 신공이나 내가기공으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순수하고 강대한 뇌기(雷氣)를 보유한 것이다. 그것도 내 내공과 합쳐지면서 기세를 더하자 마치 지상에 뇌인(雷人)이 강림한 듯한 형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쿠르르르!!
나는 한동안 정제되지 않는 뇌기를 뿜어내다가 역전륜으로 뇌기를 원래대로 되돌리며 이광에게 오만한 말투로 말했다.
“이광!! 네가 이청운 사형의 제자였다지?”
이광은 이청운의 이름을 대놓고 부르자 내심 당황한 듯 했으나 이내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고는 차분히 대답했다.
“그렇소. 뇌신류의 선배… 시오?”
“후후.”
내가 의미불명의 웃음을 흘리자 도리어 이광이 안달이 난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는 도저히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는 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 어떠한 뇌신류 전대고수 중에도 그대와 같은 자는 없었소.”
“네가 모르면 없는 건가? 벽력삼존(霹靂三尊)과 독고성(獨孤星) 사형은 알지만 나같은 자를 본 적 없으니 당황스럽나 보군.”
“…….”
이광은 내가 뇌신류의 내부사정을 무척 잘 알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린 듯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저 표정을 무척 오랜만에 보고 있었기에 내심 히죽히죽 웃었다.
‘저 자를 무력으로 찍어누르는 것만이라면 진작에 했겠지…. 하지만 이광을 이제 와서 힘으로 찍어내려봐야 난 아무런 감흥도 못 느껴…. 전생 자체가 반칙이고 그렇게 해봐야 진정한 천재들의 위대한 가능성 앞에서 재롱이나 부리는 것….’
500년 후의 여동빈, 장삼봉, 진소청을 봤기에 그게 얼마나 추한 짓인지 알고 있다.
전생초기 시점으로 결과적으로 내 경지가 높다는 건 그저 당연한 것일 뿐 재능 그 자체의 가치를 훼손시킬 순 없다. 정말 원수같은 놈한테나 엿먹으라고 시전할 수 있는 힘자랑일 뿐, 몇 번을 생각해봐도 무인으로써 너무나 추한 짓거리다.
게다가 이광은 힘으로 짓눌러봐야 마음속에서 반의를 키워서 언젠가 피의 복수를 저지르는 유형의 인간. 약육강식에 적응하면 적응했지 그렇게까지 큰 절망감이나 분노를 느끼는 자가 애초에 아니다. 그런 자였다면 수십 년간 귀계모략이 난무하는 황궁에서 살아남으며 사신위 청룡이자 황실어림군 총사범같은 위치에 갈 수 없다. 애시당초 그런 식으로는 이광에게 쌓인 울분을 되돌려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저 자는 자기가 믿어왔던 내면의 가치부터 뒤흔들어줘야 한다.
나는 이광에게 말했다.
“이광. 다시 묻겠다. 네가 이청운 사형의 제자가 맞겠지?”
“…그렇소.”
나는 빙긋 웃었다.
“이청운 사형의 제자라면 내게도 너를 각별히 돌봐줄 의무가 있겠군. 나 소을촌장 백웅을 도와서 황산파를 함께 무너뜨리는데 협조한다면, 이청운 사형이 미처 전해주지 못했던 뇌신지혼(雷神之魂)을 마저 전수해 주겠다.”
“뭣….”
“네가 이청운 사형의 마지막을 지켰다는 걸 알고 있다. 끝까지 원념을 들으며 자신을 원망하며 죽은 스승을 인적없는 야산에 매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쿠웅
“…….”
그 말을 듣자 이광의 얼굴이 완전히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팔을 부들부들 떨었고,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리고 대꾸를 하지 못하는 이광을 대신해서 옆에 있던 진소청이 한걸음 앞으로 걸어나와서 말했다.
“백웅 촌장님. 저는 청룡무관의 총사범인 진소청이라 합니다. 사문의 존장(尊長)이신 듯 한데 제 태사부이신 이청운 님과 어떤 관계신지를 확실히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마 재확인차 내 입으로 말해주길 원하는 것이리라.
나는 진소청을 모르는 척 했다.
“흐음. 진소청이라…. 500년 정도 수련하면 삼황오제도 막 찔러죽일 것 같은 녀석이구나.”
“네?”
“아니 그냥 해본 소리다.”
나는 잠시 후 어깨를 쭉 펴며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무엇을 숨기겠느냐. 사실 내가 바로 뇌신류 전대종사 이청운의 사제이다! 그의 스승인 전전대 종사 이강룡(李强龍)의 제자인 백웅이니라!!”
“뭐, 뭣이…!!”
이광이 대경해서 주춤거리며 뒤로 몇 걸음을 물러났다. 철석간담의 이광조차도 이런 상황은 도저히 예상하지 못한 듯 했고, 그는 이윽고 버럭 소리를 치며 말했다.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 스승님과 독고성 외에 이강룡 태사부께 사사한 자가 있다고는 듣지 못했다! 직접 들었건만 어디서 거짓부렁을….”
저 말대로 그 두 사람만이 종사의 직계였으며 나머지 동항렬의 천뢰지경 고수들은 종사 외의 뇌신류들의 맥을 잇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
“내 스승이신 이강룡 종사께서는 절세천재 이청운 사형이 모든 뇌신류 비기의 전승을 끝내자 말년에 무공을 완성시키러 떠났지. 그 후의 행적은 네가 모를 것이다.”
좋았어. 여기까진 되살린 이청운한테서 배우면서 들었던 과거 뇌신류의 정보다. 틀린 점이 없으니 이광은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
이광도 사실 앞에서 뭐라 반박을 하지 못하고 찝찝한 표정을 짓자 나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혼(武魂)의 완성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며 결국 험지에 도달한 스승님은 새외의 고수들에게 합공을 받아 큰 부상을 입었고, 나는 그 분을 구조하여 뇌신류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
“그래서 이청운 사형도 내가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으냐? 내 뇌신류 무공을 감히 네가 부정할 수 있겠느냐?”
파지직!!
내가 구궁파천뢰의 뇌기를 다시 일으키자 이광의 눈빛이 혼탁해졌다. 정말로 분간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게 분명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백 년도 전의 일인데 네가 알 수 없으면 닥쳐라!!”
이광 너도 모르는 과거 일로 구라를 치면 알 수 있을 턱이 없지!!
결국 이광은 반쯤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소. 백번 양보하여 그대가 사문의 존장…이라면…. 내가 따르는 게 맞소…. 하지만….”
“하지만?”
“…어째서…. 시골마을 촌장인 것이오? 자존광대한 뇌신류의 고수가 어찌 그런 비루한….”
“…….”
“방금 문하생들에게 듣기로 소을촌은 벽지의 깡촌마을이라 들었소….”
음…. 아픈 점을 찌르는군. 그보다 그 짧은 시간에 거기까지 분석했나?
나는 둘러댈 말이 마땅치 않아서 입을 쩝쩝 다시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입을 열었다.
“나는 무혼을 연성하려고 노력하던 중 진정한 무의 극의는 귀농(歸農)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느니라.”
“…귀농… 말이오?”
“그렇다.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서 대자연의 기를 느끼는 수련을 하고 싶었다. 도가에서도 자연과의 합일을 주장하지 않느냐?”
“그건 도인들의 헛소리….”
내 헛소리에 대응해서 이광이 옳은 소리를 하자 나는 급히 소리를 질렀다.
“갈(渴)! 우리는 무공으로 대자연을 이길 수 없다고 하더라!! 내가 아는 가장 강한 무인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했는데 어디서 지적질이냐!”
“아니….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오?”
“장삼봉 진인이 그랬다!”
거짓말 아니거든!
“…….”
이광은 이제는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그 얼굴은 자기 직감으로 볼 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지만 도저히 한 마디도 반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참혹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표정이었다.
이광이 간신히 정신력을 회복하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조… 좋소. 당신이 사숙이란 걸 인정하겠소. 그럼 황산파를 물리치는 걸 돕는 대신 뇌신지혼을 가르쳐준다 이해하면 되겠군…. 그럼 앞장서시오.”
누가 이광 아니랄까봐 은근슬쩍 자기 유리한 거만 알아듣는군!
‘하지만 그럴 거라고 예상했지.’
나는 팔짱을 낀 채 단호히 대꾸했다.
“아니. 중요한 과정이 하나 빠졌지.”
“무엇이 빠졌단 말이오?”
“아무리 동문지간이라 하더라도 내가 평생을 익혀온 진신절기를 전수해주는 것이다. 단순히 사숙의 의리로 절대무공을 전할 수는 없으니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야하지 않겠느냐?”
“…….”
“뇌신지혼을 전수받고 싶다면 네가 해야할 게 있다. 내가 너를 새로운 제자로 받아들이는데 필수적인 과정이지.”
이광은 설마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좋아. 많이들 보고 있군.’
나는 주변에 청룡무관 문하생이 충분히 몰려들어서 구경하고 있다는 걸 슬며시 보고는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들어서 내 바로 앞의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구배지례(九拜之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