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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풀썩
“이… 이익….”
내가 멱살을 놓자 촌장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면서도 주변을 둘러보고 모두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파악한 듯 했다. 촌장은 잠시 후 내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초, 촌장 자리를 주면 나와 일가를 살려줄 테냐?”
역시 이 조그마한 마을의 촌장이라곤 해도 우두머리라서인지 기초적인 상황파악은 되는 듯 했다. 나는 씩 웃으며 촌장에게 말했다.
“살려는 주지. 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리고 네 모든 재산은 오늘부로 내 거다.”
딱히 촌장일가 재산따위 없어도 되지만 촌장이 부들대는 게 보고 싶다!
“으으으윽.”
재산을 다 가져간다는 말에 촌장이 원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윽고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살려만 주시오…. 크흑.”
“좋았어. 크큭.”
나는 방금 전까지 축 처져있었던 게 거짓말처럼 약간의 의욕이 되돌아온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첫 번째 삶]에서 내가 가장 바라던 꿈 중에 하나였어!’
워낙에 천암비서로 전생하면서 온갖 일에 다 휘말린다고 까먹었을 뿐이야!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거대해보였던 권력자인 촌장의 모든 부귀와 지위를 차지하고 싶었다!
‘…한 10번 죽었을 때 진작 해볼걸.’
그때쯤이었으면 이런 촌마을 지배자 정도는 쉽사리 했을텐데!
지금에 와서는 꽤 소소해진 감이 있었지만 여하튼 기분이 나아지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기분이 풀려서 근처 사람들의 혈도를 풀어주며 말했다.
“들었지? 오늘부로 내가 촌장이다!”
촌장일가 사람들이 두려운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자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촌장으로서 첫 번째 명령이다. 당장 마을놈들 다 여기에 집결시켜라!”
“예….”
내 명령을 들은 촌장과 촌장의 일가가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마을 내에서 촌장일가의 권력은 절대적이었기에 곧이어 한 시진쯤 지나자 거의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고, 나는 그 숫자를 대충 헤아려 보았다.
‘한 50여명쯤 되는군….’
이건 장정이나 남자들만 나와있는 거니 집안에 있는 가솔들이나 어린아이를 포함하면 이 마을의 총 인구는 이백에서 삼백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이 정도면 아주 작은 마을이라기 보다는 그냥 평범한 마을 수준이리라. 나는 마을사람들을 다 모아놓고는 내공을 실어서 외쳤다.
“오늘부로 내가 소을촌(小乙村)의 촌장이 되었다! 다 알아둬라!”
웅성웅성
마을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지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십대 꼬마아이이자 촌장일가의 노예나 다름없는 소똥이가 난데없이 촌장이라고 외치니 당황스러울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평소에 날 괴롭히던 또래의 소년들이 앞으로 나와서 이죽거리며 말했다.
“소똥이가 미쳤나.”
“크큭. 너 오늘은 얼마나 맞으려고 그래?”
불끈
‘아니, 이건….’
나는 평소라면 개무시했을 놈들이라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을 줄 알았는데, 놈들의 말과 행동을 보는 순간 주먹이 불끈 쥐어지며 살심이 일어나는 걸 느끼고는 놀랐다. 놀랄 수밖에 없는 게 이미 나는 아수라와 싸울 정도의 절대지경 고수가 되었는데 여태껏 놈들에게 당했던 기억이 의념을 발할 정도의 정신적 외상으로 남아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증오따윈 너무 격차가 나서 없어졌을 줄 알았는데…. 내가 아직도 저깟 병신들을 미워하고 있다니?!’
믿을 수 없어!
그리고 내가 그저 살심을 잠깐 품었을 뿐이지만 그 살심이 의념(意念)으로 변화하자 곧장 살인기경(殺人氣境)처럼 변화해서 소년들에게 날아가는 게 느껴졌다. 내가 급히 살해의 의념을 거두고 기경을 무마했지만 아주 미약한 살기가 소년들에게 닿는 순간이었다.
“커헉….”
“끄르르….”
“아이고?! 장태야!!”
소년들은 모조리 살기에 당해서 입에서 침을 흘리며 혼수상태에 빠졌고 아이들의 부모가 기겁을 했다. 그리고 나는 개중 장태라는 이름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수(長水) 아저씨!’
나한테 감자를 줬던 착한 아저씨였다. 물론 아들놈인 장태 놈은 예전에 대가리를 차서 죽여 버린 적이 있어서 미안했던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찰나지간에 살기를 거두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기를 억제하지 않았다면 혼수상태가 아니라 즉살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고쳐놓을까.’
굴공검의 요결을 이용해서 의념을 쓰면 원거리에서도 혈맥을 조종할 수 있다.
휘익
내가 손을 휘두르자 의념이 날아가서 원거리에서 기절한 소년들의 혈맥을 자극해서 정신을 차리게끔 만들었다. 기절해서 꿈틀거리던 소년들이 천천히 눈을 뜨며 소생하자 마을 사람들은 경악해서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이럴 수가….”
사람들은 내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는 완전한 공포와 경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흠흠. 이제 알아들었지?”
“소똥아… 아니 촌장님…. 저희 마을의 촌장이 되시는 이유가….”
마을의 촌부 하나가 내게 조심스레 질문하자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지금 받은 것도 신의 능력이지!”
웅성웅성
사람들이 웅성거렸는데 그 웅성거림은 못 믿겠다기보다는 그럴만하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마을사람들에게 내 무공수위를 자랑해봐야 절정고수조차 신처럼 떠받들 인간들이라 별로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알기 쉽게 납득시키려면 신을 갖고오는 게 편한 것이다. 나는 추가로 쐐기를 박았다.
“신께서는 내게 소을촌의 촌장이 되어서 이 세상의 변란을 막고, 덤으로 소을촌을 부흥시키라고 하셨다!! 앞으로 내 말을 잘 들어라!”
“오오오오!!”
“촌장님 만세!!”
사람들은 금세 내 말을 납득했는지 손을 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너무 단순해서 맥이 빠질 정도였다. 그리고 늙은 할아버지 한 명이 말했다.
“촌장님의 성함을 소똥이라 할 순 없음인데…. 뭐라고 부릅지요….”
“내 이름은 백웅이다! 너도 몰랐냐 씨발!”
“아…. 몰랐습니다…. 헐헐….”
“…….”
아무런 악의가 없지만 역시 소을촌 녀석들 짜증나는구만!
“백웅이다! 까먹으면 뒤질 줄 알아라!”
“네!”
나는 내심 투덜거렸지만 이윽고 안색을 회복하고는 말했다.
“그럼 이만 해산! 일 있으면 또 부른다!”
“네이.”
마을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난 후 나는 촌장을 싸늘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이봐 전(前) 촌장. 네 이름이 뭐였지?”
“금천재(金千材)입니다요….”
알고있지만 그냥 물어봤다. 나는 금천재 촌장에게 말했다.
“너랑 금만재는 지금 당장 나를 따라와라. 알겠냐.”
어차피 세상으로 한 번은 나가봐야 하므로, 이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예전 울분을 조금 풀어야겠다.
“히익…?! 어딜 가시는….”
“네가 마을을 비우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그러자 금천재 촌장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틀 후에 매화표국(梅花票局)에 꼭 가봐야 합니다요…. 안 가면 마을에 피해가 옵니다요.”
“매화표국?”
“저희 마을과 거래하는….”
아, 이제 기억이 났다. 원래 촌장은 근처에 있는 매화표국과 연계해서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매화표국에 마을의 노동력을 공짜로 제공해주는 대신에 표국 사람들도 반강제로 소을촌에 들러서 돈을 쓰고 가는 구조였던 것이다. 촌장 입장에선 주 수입원이었으리라.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안 가면 어떻게 되는데.”
“어… 그게…. 매화표국에 지금 화산파(華山派)의 태상장로(太上長老)인 자령검선(紫靈劍仙) 환우정(桓優貞)님께서 와 계셔서…. 이미 그 분의 생신선물을 드리기로 표국과 약조가 되어있어서 이틀 후까지는 선물을 보내야 합니다요.”
“엉?”
“매화표국은 화산파의 속가제자들이 많은 곳이라…. 생신선물을 안 보내면 화산파가 저희 마을을 안 좋게 볼 수도….”
촌장이 조심스레 내게 압박을 주는 것 같았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다.
“하! 안 좋게 본다고? 화산파가? 그래서?”
“어…. 그럼 마을이 어려워지는….”
“당장 떠날려고 했는데 안되겠군. 그 태상장로란 놈은 지금 매화표국에 와 있나?”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요. 표국주의 옛 스승이라….”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내가 그 놈한테 생일선물을 주러 갈 거다. 너랑 금만재 두 녀석, 따라와.”
“네, 알겠습니다요.”
나는 마을에 있던 커다란 마차를 꺼냈고 그 마차에서 말을 빼고는 내가 마차의 간을 잡았다. 그리고 촌장과 금만재를 태운 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투두둥
“흐이이익.”
“으악.”
금천재와 금만재가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마차가 내 허공답보에 이끌려 날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깟 건 백련교 원로원도 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내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아 맞다. 깜박할 뻔 했네.’
나는 먼저 천암비서가 있는 동굴로 향해서 안에서 천암비서를 갖고나온 후 재출발했다. 그리고 무진장한 내공을 이용해서 마차를 끌며 날아다녔고, 약 일 각 후 매화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꽈광
나는 매화표국의 5층 전각 중 최상승으로 마차를 들이박으며 금천재와 금만재를 기공으로 보호해서 땅에 내리게 했다. 그리고 부숴진 5층 전각에 내려앉자 그 곳에는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매화표국주와 화산파의 고수들이 있었다. 약 십여 명 정도 있는 화산파 고수들은 대부분이 젊었기에 아무래도 후기지수들을 데려온 듯 싶었다.
“아… 아니.”
“하늘에서 마차가?”
다들 당황하고 있을 때 나는 금천재 촌장을 쳐다보며 턱을 까딱했고 금천재 촌장이 우거지상을 쓰며 조심스레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표… 표국주…. 여긴 우리 소을촌의 새 촌장이신 백웅 촌장님이신데… 태상장로 환우정 님께 생일선물을 드리러 오셨소….”
“…….”
매화표국주는 입을 쩍 벌린 채 경악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 일어난 듯 했다. 그리고 매화표국주가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에 뒤편에 있던 늙은 화산파의 고수가 앞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허허…. 내가 바로 환우정이오. 소을촌의 백웅 촌장께선 내게 무슨 일이시오?”
나는 환우정이 모습을 드러내자 팔짱을 끼며 당당하게 말했다.
“환우정! 네가 매화표국주의 스승이고 화산파에서 높은 지위에 있지? 그럼 앞으로 소을촌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해라!”
앞으로 내 계획에 따르면 소을촌에는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하다. 물론 내가 그 정도 돈은 융통할 수 있겠지만 화산파와 표국을 끼고 있어야 좀 더 편리하게 환전할 수 있으리라.
“…….”
“약속한다면 내가 앞으로 너희 화산파를 잘 대해주지. 화산파도 잘 나가게 될 거다.”
그러자 환우정이 대노한 듯 으르렁거렸다.
“이런 미친 종자가… 감히 너따위 아해가 촌장이랍시고 대화산파의 태상장로인 내게!!”
“어? 말이 좀 거칠었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순화하기로 했다.
“소을촌을 좀 도와줘라. 부탁 좀 하지.”
환우정은 내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옆에 있던 제자들을 불렀다.
“강준! 이일루!”
“넵!”
“넵!”
“화산파의 일대제자인 너희가 저 놈을 잡아서 혼내주거라!”
타닷
강준과 이일루라는 일대제자가 곧장 화산파의 검법을 쓰며 내게 덤벼들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힐끔 살펴보고는 뭔가를 깨달았다.
‘아, 이 녀석들 낯익다 싶었는데 그때 그 놈들이었군.’
화산파에서 이족이 난동을 부릴 때 벌레한테 뇌를 당해서 나한테 칼 휘두르던 놈들이군?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씩 웃으며 말했다.
“이야 반갑다 이 녀석들아!”
투퉁
그리고 나는 수도 손날치기로 일격에 강준과 이일루를 기절시키고는 바로 환우정의 앞으로 날아가서 앞발차기를 했다. 딱히 초식도 없는 앞발차기였으나 환우정은 앞발차기의 속도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멈칫
나는 환우정의 명치를 발차기로 후려갈기기 직전 코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리고는 말했다.
“태검문주와 싸우면 백초지적밖에 안될 놈이 무슨 태상장로라고 까부는지 모르겠군. 생각보다 화산파는 수준이 더 낮잖아.”
태검문주가 쓸데없이 겸손했던 것이리라. 그가 아마 관중무림의 최강자 중 한명이었던 건 틀림없으리라.
“허… 허억….”
환우정 또한 초절정고수이긴 한 듯 이 일합으로 자신과 나의 실력차이를 파악해서 공포에 젖은 얼굴이 되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를 일초만에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귀… 귀하는 대체 누구시오….”
“알 거 없고 아까 내 제안 어떻게 생각해?”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생각해 봐. 너희 화산파를 내가 도와준다고. 네놈의 생일선물치곤 굉장히 비싼데.”
“……!!”
환우정은 내 말뜻을 알아챈 듯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귀하의 말에 따르겠소!!”
“좋아. 표국주 너도 알아들었으리라 본다.”
나는 대충 교섭이 수월하게 끝나자 금천재와 금만재를 다시 마차에 태웠다. 마차는 내 내공으로 보호하고 있어서 부숴지지 않았으므로 한번 더 쓸 생각이었다.
“자, 그럼 나중에 보자!!”
휘잉
나는 마차를 끌고 허공을 날아갔다. 그리고 허공을 나는 중에 이제 마차비행에 익숙해진 듯한 금천재가 내게 질문했다.
“어,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대뢰옥.”
“그게 뭡니까요….”
나는 히죽 웃었다.
“그런 게 있어. 좋은 데.”
비등을 먼저 얻는 게 순리겠지만 비등이 봉인당한 거나 다름없으니 우선 목갑부터 얻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