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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248화 (1,24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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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제갈사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세계수를 제물로 부활할 시간을 단축시킨다고…?’

나는 약간 시간이 지난 후에 앗 하는 표정을 지으며 제갈사에게 말했다.

“흉신이 500년 후에 깨어나게 되어있는데 좀 더 빨리 깨어나려 한다는 소리냐?”

“바로 그거지.”

“그, 그게 되나? 그게 된다면 왜 지금까진 안 했던 거지.”

“…….”

제갈사가 침묵하더니 말했다.

“핵심을 잘 물어보았지만 그건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아니, 이제부터 그 원인을 알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건 지금껏 네 전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변인(變因)이기 때문이다.”

“변인….”

“황제 공손헌원이 사라진 여파가 변인에 영향을 준 건 확실해. 그러나 그게 단순한 흉신의 변덕스러운 행동 탓인지, 아니면 수많은 인과가 얽혀서 생겨난 우연한 사건 중 하나인지는 판단할 수가 없어. 정보가 너무 적지.”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여기서는 일단 자살하지 않겠냐?”

“……?!”

“29번째 삶은 분위기만 살피고 안정적으로 끝내는 거다. 내가 볼 때 더 이상은 너무 위험해. 전생횟수를 최소화시키고 싶지만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냐.”

엥?!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경악한 눈으로 제갈사를 쳐다보자 그가 악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크큭…. 못 알아들었냐? 자살을 추천한다고.”

“아니 잠깐! 이제 뭔가 좀 시작되려는 참 아니었어?! 서문혜를 구하러 이 세계수의 최상층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뜬금없이 왜 포기하라는 거야.”

“뜬금없지 않아. 전략적인 선택, 이른바 빠른 재시작이라는 거지.”

“…이, 이해가 안 되는군. 지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왜 여기서 포기하라는 거야.”

내가 항의하듯 말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그럼 이대로 흉신의 초대장을 받아서 놈을 만나면 어떻게 되리라 생각하지?”

“……!!”

나는 제갈사의 말에 흠칫했다.

제갈사는 앞으로 저벅 걸어나오며 말했다.

“흉신은 창힐과는 급수가 다른 존재다. 진지하게 승천을 노리고 있으며 그 황제 공손헌원과 동격의 [옛 지배자]. 당연히 승천의 가장 큰 축이라 할 수 있는 전생자를 직접 노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할 거면 진작에 했을 테지만 지금까지 네게 위해를 가한 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만 봐도 그의 심계가 매우 깊다는 걸 알 수 있지.”

“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내가 제갈사의 이야기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얼떨떨해하자 제갈사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반대로 외신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큰 굴레]의 바깥에 있는 외신들 입장에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굴레를 초월할 수 있는 존재가 [옛 지배자] 중에서 선별되는 매우 거대한 시험이 진행중이라고 치자고.”

“응.”

“그러면 그 중심에 존재하는 전생자의 전생이 고작해야 일개 [옛 지배자]의 권능과 마력으로 봉쇄되거나 양도할 수 있게끔 해두었겠나? 너 같으면 개나 소나 굴레의 초월자가 될 수 있게끔 해놓겠어? 그토록 허술한 시험이 [승천]이라곤 할 수 없을 거다.”

“……!!”

“창힐은 그 점을 간과한 거고 흉신은 예전부터 줄곧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게 차이점인 거다. 실제로 창힐은 너를 이용해서 큰 굴레를 넘는다는 [반칙]을 쓴 탓에 천암비서에 의해 봉인당하고 말았고, 반대로 황제나 흉신은 여태껏 네 존재 정도는 진작에 알아차렸음에도 직접 접근하지 않고 신중하게 간을 보고 있었다. 천암비서같은 방해물이 있으리라는 걸 어느 정도는 눈치챘던 거지. 시험의 본질을 이해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가 이제 이해가 되었나?”

“그, 그렇군….”

나는 제갈사의 논리 정연한 설명에 감탄했다. 그리고 내가 여태껏 얼마나 거대한 흐름 속에 휘말리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엉? 그렇다면 흉신을 만나러 가도 되는 거 아냐? 어차피 놈이 내게 해를 가하지는 못할 테니까.”

“그게 바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인 거다. 너는 흉신이 초대장을 준 시점이 하필이면 28회차 막바지에서 황제 공손헌원이 봉인되고 난 29회차의 제일 초반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지 않으냐?”

“…….”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흉신은 네 전생이 시작된 순간 황제 공손헌원이 봉인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후 간접적으로 네 존재도 알아차렸을지 모른다. 그리고 가장 큰 경쟁자인 황제가 소실된 틈에 네게 전략적으로 접근한 거지.”

“그 말은….”

“너는 지금 호랑이굴에 들어온 거다. 당장 나가야 한다고.”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자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크크…. 모든 준비가 다 되어있는 흉신의 초대장이라…. 나같은 놈조차도 그 초대장의 주인에게는 도저히 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흉계가 도사리고 있을 게 뻔하고 내 능력으로는 절대로 그걸 읽어낼 수가 없어. 애시당초 차원이 다른 존재야.”

제갈사의 눈이 빛났다.

“그렇다면 당연히 몸을 사리는 게 맞지. 지금은 사려야 해. 그리고 전생자가 몸을 사리는 방법은 자살하는 것뿐이야.”

“흉신이 나를 고문하거나 봉인하지 않는데도 위험하단 말이냐?”

“크큭…. 너는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군.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를 조종할 때는 굳이 직접적인 위협이나 물리적인 압제만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다. 흉신이 너를 적당히 구슬리면서 벗어날 수 없는 저주나 제약을 걸어놓고 흐름을 자기 쪽으로 가져오려 한다면 네가 그걸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

“그것도 아니라면 나를 비롯한 동료들을 가상의 인질로 잡아놓고 살살 말을 듣게 할 수도 있지. 흉신 정도면 굳이 인질을 직접 잡지 않아도 언질이나 위협만으로 너 정도는 갖고 놀 수 있다. 나는 흉신이 네 머릿속에 심게 될 심리적인 교언의 독을 빼낼 자신이 없다.”

“그, 그런가….”

“큭큭큭.”

제갈사는 눈에서 혈광을 흘리며 키득거렸다.

“이광만 해도 굳이 너를 잡아놓고 고문협박을 일삼은 게 아니었는데도 몇 번이나 전생이 이어지는 동안 너를 자기 영향권에 두었지. 약간의 심리적인 빈틈을 노려서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자기한테 유리하게끔 귀속시키는 건 영악한 자들이 곧잘 할 수 있는 짓이고, 흉신같은 존재라면 그걸 차원이 다른 규모로 행할 수 있다. 네게 진실과 뒤섞인 가짜 정보만 조금 흘려줘도 넌 알아서 거짓된 적을 상상하고 허수아비를 찔러댈 테니까.”

“…으음….”

“이대로 초대장대로 흉신 앞에 가게 되면, 너는 수십 번의 생을 있는대로 휘둘리다가 흉신에게 육체와 영혼을 모두 바치게 될 수도 있겠지.”

너무 옳은 말이라서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어서 제갈사에게 말했다.

“하지만…. 내 흑요석의 기억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이번 생에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고 그저 휘둘리기만 했어. 사실상 얻은 게 없는 상태에서 30번째 삶을 시작해봤자 무의미하지 않을까?”

“크크큭…. 왜 얻은 게 없다는 거냐? 너와 내가 만난 순간 이미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까지 열심히 버틴 보람이 있는 거지.”

“응?”

“자아. 그러면 지금 네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황제가 봉인된 지금 상황에서 가장 선결해야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라.”

나는 제갈사의 말에 머리를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후 말했다.

“…[큰 굴레]를 돌릴 방법을 찾는 거잖아. 이번 생의 목표는 그걸 찾아내서 황제의 말대로 치우를 부활시키는 게 목표였어.”

“크큭, 초반엔 그랬지. 하지만 그건 이제 후순위로 미뤄졌다. 그렇게 뜬구름잡는 거대한 목표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겨버렸기 때문이야.”

“더 급한 일?”

“그럼 무엇이 선순위로 바뀌었을까.”

“음….”

나는 침음성을 내며 고민했지만 바로 와닿지가 않았다. 내가 머리를 감싸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제갈사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그건 바로 흉신(凶神)을 견제하고 그의 영향력을 벗어날 방법부터 찾는 것이다.”

“음…!!”

“생각해 봐라. 네가 대뢰옥에서 포로들을 구출하는 건 당연한 듯이 이뤄지는 초반의 보물찾기의 일환이다. 그러나 흉신의 부하라고 할 수 있는 [몽환의 악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거기에 끼어들어서 네게 초대장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건 무슨 뜻이겠나?”

내가 아무리 바보라도 이정도쯤 되면 제갈사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잔뜩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흉신은… 내가 전생하자마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인가.”

“바로 그거다. 잘 이해했군.”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흉신은 매우 신중한 성격이야. 앞으로도 자신이 부활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직접 찾아오진 않을 테고 수하들을 시켜 널 초대하는 방식이 되겠지. 그러나 흉신이 부활하고자 작정한 이상 그 유예기간은 결코 길지 않을 거고, 그 맞대면의 시간이 오면 너는 황제 때보다 더한 괴로움을 겪게 될 거다.”

“…….”

“이번 생의 성과는 흉신이 세계수를 이용해서 부활할 수 있으며 그 기간이 길지 않다는 걸 확인한 셈이 되겠군.”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다가 이를 악물었다.

“제, 제기랄…. 그럼 전생하고 나서 대뢰옥의 포로구출을 하지 말아야 하나?”

“그것도 너무 단순한 생각이지. 흉신쯤 되는 자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지 못하겠나? 단지 언젠가 다가올 접근이 조금 미뤄지는 것뿐이다.”

“그래서 흉신의 영향력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군. 어떻게 해야 하지?”

“크크크. 딱 하나의 방법이 있다. 하지만 과연 네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어떤 방법인데?”

제갈사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바로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재결속이다.”

“…….”

엥?! 뭐시라?!

나는 너무 황당한 소리를 듣자 경악해서 입을 벌렸다. 제갈사가 농담이라도 한 줄 알고 빤히 쳐다보았지만 제갈사는 진심인 듯 했다.

“지, 진짜?!”

“크크큭. 황당한가? 그래도 이게 지금 최선의 대안이다.”

제갈사는 팔짱을 끼며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이른바 신들의 합종연횡(合從連衡). 흉신을 막고 네가 자유로이 움직일 책략은 그것밖에 없다. 황제가 없어서 사분오열된 자들이라 하더라도 다같이 힘을 합치면 흉신을 막을 수 있으리라.”

“…….”

“이 책략이 성공한다면, 넌 황제를 뺀 삼황오제와 흉신이 전쟁하는 사이에 힘을 키우며 정보를 모으면 돼.”

“말도 안 돼!! 삼황 중에서 여와 빼곤 봉인된 거나 다름없고 오제도 둘이나 소멸된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잘 뭉치지도 않는데 어떻게!”

“크크크…. 충분히 가능한 일. 네가 지금까지 전생하며 모아왔던 걸 잘 활용하고 전생동료들을 잘 키우면 그렇게 불가능하진 않아. 다음 생의 ‘나’에게 지금의 대화내용을 기억으로 전달하면 바로 알아듣고 널 도와줄 거다.”

츄우욱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갑자기 자신의 팔에서 날카로운 뼈를 꺼냈다. 악마와 같은 그 몸뚱아리에서 나온 뼈는 마치 예리한 명도처럼 날카로웠고, 제갈사는 슥 하고 내게 그 날카로운 뼈를 내밀며 말했다.

“이제 선택해라. 자살할래, 아니면 죽여줄까?”

“잠깐만. 더 알려줄 건 없어? 다음 생에 도움될 거라던가….”

“크크크크크…. 너도 점점 미쳐가는군. 이젠 죽음의 고통보다는 정보에 대한 아쉬움이 먼저 자리잡는구나.”

“아니 그거야 뭐….”

제갈사는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고 즐기는 듯 히죽대다가 문득 내게 은빛봉황조각을 내밀었다.

“안 그래도 그 동안 내가 얻은 정보를 주려 했다. 받아라.”

“이건?”

“네가 사라진 후 마테오 리치와 교섭해서 나머지 한쪽의 은빛봉황조각을 받았다. 하나는 네가 암천향으로 갖고 사라졌지만 어쨌든 기억전송금속이기에 마도의 편법을 써서 여기에 내 기억을 담아두었지.”

“오오!!”

“말해두지만 편법이니까 네 흑요석의 술법처럼 효율이 좋지 못해. 개략적인 흐름만 담겨있다.”

“알았어.”

내가 은빛봉황조각을 꽉 쥐자 제갈사가 자신의 손을 펼치며 말했다.

“좋아…. 간다!”

파아아앗!

잠시 후 일 년 하고도 석 달에 이르는 제갈사의 기억이 내 머릿속으로 마치 시커먼 먹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불쾌하고도 이질적인 기분, 그리고 머리의 혈관에 쏟아지는 두통 때문에 나는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아악!!”

이게 대체 뭐야?! 기억전송이 이렇게 불쾌하고 아픈 거였나?!

내가 입을 벌리며 괴로워하자 제갈사가 킬킬 웃었다.

“전송받으면서 들어라. 다음 생에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말해주지.”

슥 하고 제갈사의 골도(骨刀)가 내 목에 핏방울을 내며 날을 드리웠다. 제갈사의 차가운 말이 내 귓가에 흘러들어온다.

“첫째. 삼황오제를 규합할 방법을 찾아라. 이건 아마 나를 포함한 제갈세가의 책사들을 포섭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으윽….”

“둘째. 사대신기를 난사해서 마력을 최대한 무(無)에 가깝게 만들어라. 셋째. 흉신이 세계수를 부활시키려 하기 전에 제곡을 찾아가서 놈이 흉신진영에 합류하는 걸 막아라.”

스윽

골도가 천천히 목젖을 가르고 들어오려 했다. 나는 이것이 나의 29번째 죽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머릿속을 번뜩하고 스치고 가는 기억이 있었다.

이 기억은 제갈사가 겪은…?

나는 기억을 읽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아직은 아냐!!’

파캉!!

나는 재빨리 의념천주를 발휘해 엄청난 움직임으로 골도의 끝을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깨진 골도의 첨단이 허공을 날아가는 게 보였다.

제갈사는 나를 죽이려다가 방해받자 의외라는 듯 말했다.

“백웅. 지금 당장 죽어야 할 당위성은 충분히 설명한 것 같은데?”

“콜록, 콜록…. 잠깐만… 아픈 게 무서운 건 아니고….”

나는 피 섞인 가래침을 퇫하고 뱉은 후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그게 뭐지?”

“쿨룩….”

나는 약간 목이 찔려서 기침을 하다가 기공으로 상처를 지혈하며 말했다.

“제갈사… 나한테… 숨기는 게 있지? 그래서… 기억을 전송하는 사이에 어영부영 죽이려고 한 거잖아.”

“…….”

제갈사가 침묵하는 사이에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삿갓을 쓴 그 새끼가 여기에 와 있는 게 사실이냐.”

제갈사의 기억전송술 와중에 스쳐지나간 하나의 장면.

그것은 내게 있어서 최악의 악연 -

마법으로 이 세계수를 정탐하고 있던 제갈사의 시야에, 최상층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삿갓무사의 모습이 보였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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