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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243화 (1,24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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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흑웅의 외침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려가 재차 불꽃의 채찍을 휘둘렀다. 흑웅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냈었던 걸 아랑곳하지 않는 듯 빨리 끝내버리겠다는 의도가 가득 느껴졌다. 또 다시 [작은 굴레]가 뒤틀리며 인과를 무시하는 공격이 시작되었으나, 흑웅은 다시 한 번 검은 갑주를 내 몸에 덧씌우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촤촤촥!!

방금 전과 같이 내 팔에 려의 채찍이 감기자 려가 침음성을 내었다.

[크으.]

[나를 많이 얕보는군. 그럼 이번엔 이 쪽의 힘도 보여주지!]

흑웅이 그렇게 말하더니 흑웅 머리 뒤의 후광이 번쩍 하고 빛났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허공에 음신지력의 창(槍)이 생겨나더니 려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갔고, 려는 그 공격을 손으로 털어내려다가 갑자기 뒤로 빠르게 물러서며 자신의 채찍을 휘둘렀다.

투웅!!

둔중한 대기의 떨림과 함께 흑웅이 발사한 암창(暗槍)이 튕겨져서 하늘로 치솟았다. 려가 자신의 권능으로 암창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일어난 일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쩌적

암창을 막아낸 불꽃 채찍의 줄기가 그대로 절단되어버렸기 때문이다.

[……!!]

려가 평정심을 잃었는지 비틀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려는 적지 않게 당황한 듯 분노조차 표출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고, 흑웅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와 내 주인을 없애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는 당당한 자부심과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외침에서 흑웅이 완전히 부활했다는 걸 실감했고, 흑웅에게 놀라서 물었다.

“흑웅!! 어떻게 된 거냐?! 그 때 영락없이 잠든 줄 알았는데 어떻게 부활을….”

[주인이여! 지금 옛날 얘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오.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니 정신 바짝 차리시오.]

“…너 어째 말투가 변한 것 같은데.”

[당연하오. 나는 그 동안 많은 진화를 거듭했으니 옛날의 내가 아니오.]

담담하게 대꾸한 흑웅은 정면을 계속해서 경계했다. 더 이상은 나와 대화할 여유조차 없다는 태도였고, 나는 이윽고 그런 흑웅의 태도가 옳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있던 려가 광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크크크…. 투신(鬪神) 축융으로서 싸울만한 놈이 나타났군…. 전욱이시여. 허락해 주소서.]

전욱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재밌겠구나.]

후와악

정신을 차린 려의 모습이 갑자기 크게 뒤바뀌었다. 지금껏 열과 비슷하게 인간 문사와 같은 고급진 옷차림이었던 려의 덩치가 거대화하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청염(靑炎)이 흐르는 거대한 불꽃의 거인이 되었다!

나는 저게 어떤 현상인지 알고 있었기에 이를 악물었다.

‘만귀전 소속일 때는 려(黎)의 형상을 하지만, 소속을 해제하면 저 놈은 마신 축융(祝融)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강해지지….’

사실 예전에 팔부신중 다수를 상대로 홀로 몰아쳤던 형태도 려가 아니라 축융의 형태였다. 지금에서야 [옛 지배자]나 다름없는 축융의 진짜 권능이 발현되는 것이다. 나는 축융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으며, 원래대로라면 나 혼자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대라고 해도 무방했다.

과연 흑웅과 함께 싸우면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응?’

나는 긴장하며 선검을 소환하려 했으나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흑웅이 내 몸을 대신 통제하는 게 분명했다. 내가 당황하자 흑웅이 내게 말했다.

[주인이여. 맡겨주시오. 이 자리는 내가 뚫겠소.]

“뭐?! 저건 신이야! 축융을 상대로 혼자 어떻게 한다는 거야!”

[…얼마나 분했는지 주인은 알지 못할 것이오.]

“엉?”

[종말의 옥좌…. 천지신명을 건 그 마지막 대결에서 뻔히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나의 무력감을…!!]

설마 이 녀석….

황제 공손헌원과의 마지막 무공대결을 보고 있었던 건가?!

촤악

흑웅이 갑자기 전방에서 모습을 감추더니 내 몸에 흡수되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몸을 가득 뒤덮던 칠흑의 갑주가 더욱 단단해지고 힘을 지니더니, 이윽고 내 등 뒤에 태양빛 후광이 빛나는 느낌이 들었다. 흑웅이 본격적으로 내 갑주로 변신해서 싸우려는 게 분명했다.

갑옷의 모양은 왜인지 미래의 인공보패와 매우 닮아있었고, 특히 내가 예전에 장착했던 황룡마신의 형태와 거의 똑같다시피 했다.

어느 새 내 갑주의 수갑(手甲)에는 음신지력으로 만들어진 암창이 들려 있었다. 흑웅은 내 두골까지 완전히 뒤덮는 투구를 소환해서 장착하더니 말했다.

[전욱!! 축융이 죽어도 간섭하지 마시오!]

헉?!

나는 흑웅의 외침에 질릴 정도로 경악하고 말았다. 대체 만귀전의 중심에서 이게 무슨 오만한 소리란 말인가?! 축융은 크게 분노했는지 몸의 청염을 크게 부풀리고 있었고, 그 외침을 들은 전욱조차도 황당한 듯 잠시동안 눈을 크게 뜨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전욱이 크게 껄껄 웃었다.

[흐하하하…. 좋다!! 어디 해 보아라, 나를 닮은 소왕(小王)이여.]

[간다!]

츠즈즈즈

흑웅이 내 몸을 움직여 돌격창의 자세를 잡았다. 나는 이 기묘한 자세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이광이 취했었던….’

뇌신류에는 존재치 않는 자세이지만 무예의 뜻을 얻은 자에게 그런 사소한 자세의 변형은 별로 의미가 없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무예의 진경이 높지 않으면 이런 변칙적인 자세는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흑웅은 과연 어느 쪽이란 말인가?

[내 진짜 힘을 보여주마!!]

축융이 창노한 포효를 내지르며 자신의 청염 채찍을 휘둘렀다.

슈파파팟

그와 동시에 수십만 개나 되는 채찍의 궤적이 생겨나며 일순간 하늘 전체가 빛으로 둘러싸이는 듯 했다. 나는 예전에 세계수 결전에서 축융이 이 수법을 쓰자 팔부신중 본체들이 한 번에 튕겨나가는 걸 본 적이 있었으므로, 이름은 모르지만 축융의 절기 중 하나라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이나 신선 수준의 힘으로는 절대로 방어나 회피가 불가능하며 마왕조차도 일격에 살해할만한 절기인게 분명했다.

‘으윽…. 지금이라도 무쌍패를 써서 방어를….’

나는 의념을 발동시키려 했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았다. 의념을 형성하려 하자 인위적으로 흑웅의 의지가 파고들어서 내 의념천주를 해산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는 몰랐지만 지금 나는 흑웅 말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내면에서 외쳤다.

‘야!! 움직이게 좀 해 줘! 무쌍패 한번만 써줘도 훨씬 유리할 거 아냐! 내가 그렇게 걸림돌이란 말이냐!’

[반대요. 지금의 주인은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지금은 억제할 수밖에 없소.]

‘뭐?’

[악마의 절기 만상지투…. 그걸 봉쇄할 수밖에 없소. 적어도 지금만큼은!]

쿠오오오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흑웅의 전신에 고도의 음신지력이 뭉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흑웅의 손에 들려있던 창의 색깔이 갑자기 바뀌는 게 보였다.

반백반흑(半白半黑)으로 변화하여 마치 살아있는 광채처럼 꿈틀대던 그 창은 잠시 후 희미한 윤곽만이 남은 무형(無形)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무형으로 변화하는 그 순간, 나는 놀라운 것을 느꼈다.

‘……!!’

마, 말도 안 돼!

저건 권능만으로 만들어진 창이 아냐!

어째서 기둥이….

그리고 다음 순간 - 흑웅의 눈이 예리하게 빛나더니 공격을 개시했다.

천조음신류(天照陰神流)

암흑창(暗黑槍)

일섬(一殲)

투쾅

흑웅의 일격이 수십만 개나 되는 채찍의 환영을 갈라서 일직선으로 쭉 꿰뚫어나갔다. 놀랍게도 채찍의 궤적이 제대로 흑웅의 갑옷을 때려서 무수한 참선을 만들었으나 모든 공격이 흑웅의 갑주에 생채기만을 남겼을 뿐 내 육체는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다. 그리고 암흑창 일섬이 축융의 가슴팍에 도달하는 순간, 축융이 권능을 발현했다.

[네놈만 갑옷을 지닌 줄 아느냐? 나도 투갑이 있느니라!]

까앙!!

축융이 자신의 몸을 뒤덮듯 소환한 고대의 갑옷! 그 갑옷이 덧씌워지자 흑웅의 암흑창은 깡 하고 튕겨져 나갔고 흑웅이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흑웅과 일 초를 나눈 축융이 괴소를 흘렸다.

[크흐흐…. 싸워볼 만 하군…. 재밌어….]

흑웅은 냉담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전욱이 남아있어서 재미를 찾을 여유는 없다.]

[뭐?]

[네 방어력을 무효화시키는 천조의 권능을 간파하지 못했구나. 그 상태에서 암흑창을 맞았다면 끝이다.]

쿠콰쾅

그리고 갑작스럽게 축융의 가슴팍이 터졌다. 정확히는 마치 내부에서 폭발한 것처럼 축융의 사지와 육공에서 청염으로 된 청혈(靑血)이 줄줄 흘러나왔고 축융은 무슨 일이 일어난 지 파악하지 못한 듯 멍청하게 서 있기만 했다. 축융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몸을 부들거리며 말했다.

[너… 너….]

풀썩

거신 축융이 앞으로 무릎을 꿇듯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축융이 당한 걸 보자 단번에 무공수법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 침투발경(浸透發勁)!’

침투의 내가경력을 정해진 투로와 방향에 따라 상대의 몸에 축적시키고 시간차로 발현시키는 강력한 내가무공! 주로 도가에서 발전되었으며 그 역사가 오래되어서 사대무류에서도 침투발경을 익힌 자가 많았다. 지금 축융이 당한 모습은 영락없이 침투발경에 당한 피해자의 전형적인 말로였던 것이다.

비록 흑웅은 창을 썼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뇌신류 창술의 고수라면 당연히 창끝에 침투발경을 모아서 상대의 체내에 내경(內經)을 축적시키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어떻게?!

신이라면 침투발경 따위의 내공수법은 싸그리 무시해버릴 수 있을 텐데 저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아냐.’

이내 나는 방금 전에 느껴졌던 창의 해방, 그 와중에 울려퍼졌던 진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념천주(意念天柱).’

흑웅이 만들어낸 반백반흑의 창을 무형의 창으로 바꿀 때 일시적으로 느껴졌던 의념의 진동은 분명히 의념천주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축융을 단숨에 고꾸라뜨린 흑웅은 저벅 하고 내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오며 전욱에게 창을 겨누며 말했다.

[전욱이여! 이 자리는 내 주군을 놓아주시오. 간절히 부탁드리오!]

침묵하며 흑웅의 외침을 들은 전욱이 팔짱을 낀 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렇군…. 축융과 그다지 역량차이는 없는데도 단숨에 쓰러뜨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들이 의념이라고 부르는 그 힘 때문인가? 네놈은 혼돈의 대극(對極)에 존재하는 힘을 잠시동안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구나.]

[…….]

[축융이 방심한 탓도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전욱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흑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는 본좌와도 인과율이 이어져 있다. 너는 마치 나의 자식과도 같구나. 어찌된 일이냐?]

전욱이 껄껄 웃었다.

[묘하구나. 심심풀이로 만들어냈던 자식이라는 장난감들보다 네가 더 친밀하다니….]

[으음….]

그 말에 흑웅이 약간 평정심을 잃은 듯 했다. 전욱의 간단한 말이었지만, 흑웅은 왠지 전욱의 말에 전의를 약간 잃어버린 듯 했다. 흑웅과 밀접히 붙어있는 지금 흑웅의 감정변화 또한 알 수 있었다.

‘어이! 정신차려!’

내 외침에 흑웅은 다시 중심을 잡은 듯 했다. 그리고 흑웅이 정신을 차리는 사이에 전욱이 서서히 손을 뻗었다.

[어찌되었건 네 무위(武威)에 찬사를 보낸다. 너 정도로 강한 놈은 천지천상에 그리 흔치가 않지.]

[주인을 놔 주시오.]

[아니. 그럴 순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너희 둘을 내 부하로 만들고 말겠다.]

[그리 쉽게 될 거라 생각하오?]

흑웅의 반문에 전욱이 진득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야. 네 앞에 있는 게 누구라 생각하느냐?]

쿠구구구!!

전욱의 힘이 거대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흑웅은 그 기세에 짓눌리지 않으려는 듯 갑옷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며 창을 굳세게 잡았다. 그리고 전욱의 힘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증폭을 거듭하자, 흑웅의 갑옷에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쩌적!!

쩌적!

지금도 계속 강해지는 중이었고, 흑웅의 잠재력으로는 이미 감당이 되지 않는 수준을 한참 넘어선 듯 했다. 나는 흑웅의 내면에서 그 압도적인 힘의 팽창을 실시간으로 바라보자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육체를 통제할 수 있었다면 입술이 파리하게 떨리면서 손발이 미친 듯이 떨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으리라.

‘이… 이런 미친….’

흑웅의 힘을 보고 생각했었다. 잘만 하면 전욱에게 한 방 먹이고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 어째서일까. 아주 예전, 전욱을 막연하게 두려워하던 그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거리감. 예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생각하는 데도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악몽 같은 절대자의 위력.

쿠구구

더욱 강해지고 있다….

[크으으….]

흑웅조차도 이젠 전신을 떠는 걸 통제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창끝이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흑웅의 힘으로 승산을 논할만한 상황을 지나쳤다는 뜻이었다.

‘으… 으아아….’

이건 악몽이야.

나는 순식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하늘 전체를 달이 채우고 있을 때와 같은 절대적인 무력감과 함께 - 격외(格外)의 존재와의 격차는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이윽고 완전히 흑암의 거인으로 화한 전욱의 입에서 마치 비웃음과 같은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네 앞에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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