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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아담카드몬?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단 하나, 익숙한 단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카발라….’
그것은 기초마법이론을 가르쳐주던 제갈사가 내게 설명해준 적이 있는 개념이었다.
카발라란 일종의 이계면서 통상적인 이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에 존재하는 세계라고 했다. 그리고 카발라에 속한 존재들은 총 9위계로 나뉘며 그 위계에 따라 겉모습과 권능이 차이난다는 것이다. 지난 28회차에서 내가 없는 동안 대웅제국이 서방세계와 전쟁을 치를 때 서쪽의 마도사들이 소환한 존재가 바로 카발라의 천사들이었다.
또한 카발라란 영지주의 마법에서 중대한 근원이 되는 장소이기에 영지주의 마도사들은 카발라의 표식부터 먼저 다 외운 후, 카발라의 언어이자 영지증명인 소드라는 걸 필수적으로 익힌다고 했었다. 물론 그것 또한 최소한 몇 년 이상 걸리는 어려운 공부이기에 제갈사는 내게 굳이 가르치지 않았었다.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내 머리로는 어려운 마도학인 소드를 공부하다가 허송세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담카드몬에게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네 녀석 혹시 시몬 마구스를 알고 있냐? 내가 아는 영지주의 관련자는 그놈뿐이다.”
[…모른다…. 나는 이곳에 갇힌 지 너무 오래됐다.]
“넌 여기에 왜 갇혔는데?”
[나는 아이온을 찾아 영겁을 헤매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어떤 존재가 아이온을 미끼로 나를 여기로 소환했고…. 소환하면서 내 힘을 상당히 많이 뺏어가 버렸다…. 육체만 남은 껍데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여태껏 탈출할 수 없었지….]
“누가 그런 짓을 했는데?”
[…나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 카발라의 존재들이 간절히 염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으며… 나를 소환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라는 것 뿐….]
“…….”
아담카드몬이 잠시 후 말을 이었다.
[부디 네가 이 위장에서 탈출할 때 나도 탈출하게 해 다오…. 그러면 내 이름을 걸고 너에게 은혜를 보답하겠다.]
“어떤 식으로?”
[그대가 원하는 것을 말한다면 최대한 이뤄주도록 하지….]
내가 원하는 것이라.
‘저 녀석도 상당히 강한 신적존재로 보이지만 지금은 힘을 뺏긴 상태라는 거지? 그러면 대단한 건 들어주지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바로 동료나 부하로 삼기에는 저 놈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다. 배신당할 우려가 너무 크기에 초면에 그런 제안을 할 순 없다. 나는 약간 머리를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가서 생각해보지. 다만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해 줘야겠다.”
[그렇게 하겠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엔 숨겨진 보물 같은 거 없나? 사흘 동안 가만히 있기 심심한데.”
[잘 모르겠다….]
역시 혼돈의 신격의 위장에 그런 걸 바라는 건 무리인가? 내가 내심 실망하고 있을 때 아담카드몬이 말했다.
[부디 날 버리지 말아다오…. 나는 반드시 아이온을 찾아서 돌아가야 한다….]
“아이온이 대체 뭔데 그러는 거야?”
마왕 시몬 마구스도 예전에 아이온 관련으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더니만 그게 뭐길래 저러는 거지?
아담카드몬이 천천히 말했다.
[카발라를 따르는 자들 중 신왕(神王) 데미우르고스가 되고자 하는 자는 많지만… 그건 사실 불가능한 이야기…. 데미우르고스가 되면 아이온에 이를 수 있지만 그 계보는 독립된 흐름이라 결코 나 같은 놈한테까지 기회가 오지 않지…. 그래서 아인소프오르의 기록을 보고 아이온을 찾아낼 수 있다는 그 자의 말에 혹했던 건데….]
“…….”
[아이온에 도달하면 완전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자기만의 세계를… 오오…. 굳이 데미우르고스가 되지 않아도 거기에 가기만 하면 된다는… 얕은 생각에… 이런 처지가 되고 말았구나….]
아담카드몬은 무척이나 깊은 탄식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온이라는 미끼에 속아 외신의 위장에 갇힌 신세가 된 자기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듯 했다. 나는 아담카드몬의 말을 잘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이온이란 곳에 가면 대단한 권능이 생기는가보구나.’
그런 이계가 있단 말이지? 다음에 찾아서 가 봐야겠다!
나는 대충 이야기를 머릿속에 정리하고는 말했다.
“아 맞다. 너 순간이동 할 줄 아냐?”
[할 줄 안다….]
“내가 순간이동술을 따로 배워야 하거든. 쓸만한 술법이 있으면 가르쳐줘. 그걸로 네 목숨의 빚을 어느정도 퉁쳐주지.”
사흘 동안 시간이 애매하게 남으니까 술법이나 하나 더 훑어볼까?
나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말한 제안이었지만 아담카드몬은 크게 기꺼워하며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씨앗]을 심어주도록 하지…. 이걸로 그대에게 목숨의 빚을 갚으리라.]
“응? 씨앗?”
다음 순간 일어난 일에 나는 크게 경악했다.
쿠콰콰콰콱
“으어어억?!”
초대형 거인, 아담카드몬이 갑자기 자신의 왼팔을 들어서 오른팔을 산 채로 뽑아버린 것이다! 아담카드몬은 뽑힌 오른팔은 산맥보다 더욱 거대했으며 뽑힌 팔에서 혈류가 미친듯이 뿜어져 나오자,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피로 강이 생겨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츄와아악
[…벼려내도다…. 이 육신… 위대한 진리에 연결되는 [열쇠]로 바뀔지어다…. 이는 우리의 신… 삼위(三位)의 일체(一體)이며 성부(聖父)의 독존(獨存)이시다.]
어마어마한 피분수를 내뿜던 아담카드몬이 자신의 오른팔을 들고 주문을 외우자 이 세상 전체에 울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담카드몬의 거대한 오른팔이 엄청난 속도로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종래에는 커다란 돌바위 정도로 줄어들었다.
부웅 부웅
그리고 아담카드몬의 오른팔이 계속 작아지면서 내 쪽으로 날아왔고, 내 삼 장 밖에 당도했을 때에는 겨우 인간의 팔뚝만한 크기로 변했다. 그리고 일 장 거리까지 오자 완전히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로 작아져서 마치 암기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내 가슴팍 앞에 빛을 내며 멈춘 것은 마치 식물의 씨앗처럼 생긴 광채덩어리였다. 나는 산맥만한 크기의 팔뚝이 이렇게까지 작아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눈을 둥그렇게 떴는데, 아담카드몬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열쇠를 몸 아무 곳에나 박아 넣으면 순간이동술을 쓸 수 있게 되리라….]
“…너 같으면 하겠냐!! 이렇게 수상쩍은걸 어떻게 몸에 넣어!”
[뭐라고…!! 싫다면 돌려다오…. 싫은데 굳이 줄만한 물건은 아니다.]
“응?”
[너무 나를 깔보지 마라…!!]
아담카드몬이 다소 자존심이 상한 듯 말을 하자 나는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어…. 이거 왠지 좋은 것 같은데…?’
그치만 망량선사가 항아리가 깨졌다는 표현까지 썼고 마력이 주체할 수 없이 뻥튀기된 지금 이런 수상쩍은 능력을 손에 넣어도 되는 걸까? 나는 극도로 고민을 했지만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아 그래! 하면 되잖아 하면. 순간이동술 못 쓰기만 해봐라.”
나는 광채덩어리를 집어 들고 내 왼손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광채덩어리가 크게 빛을 내더니 내 몸 안으로 흡수되었고, 잠시 후 빛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흠…. 아프진 않군.
나는 아담카드몬에게 물었다.
“자 됐어. 이제 순간이동은 어떻게 쓰….”
그러자 아담카드몬이 크게 당황한 듯 말했다.
[…아니…? 아… 안 돼…!! 빨아들이는가?! 내, 내 이름을….]
슈아아악!!
[크아아악!!]
다음 순간, 아담카드몬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 전체가 내 손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헉!!”
나는 깜짝 놀랐지만 이윽고 아담카드몬은 순식간에 사라져서 산맥만한 거체가 통째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내 손에서는 빛이 번쩍거리며 빛나는 게 보였다.
주르륵
잠시 후, 내 팔뚝에는 또 다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이상한 언어로 쓰여진 이름을 [아담카드몬]이라고 읽을 수가 있었다.
“…….”
이번 생 들어와서 왜 자꾸 내 팔뚝에 이름이 새겨지는 거야?
나는 황당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이젠 대체 뭘 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젠장. 어쨌든 이곳을 벗어나려면 사흘 동안 있어야 해. 사흘 동안 가만히 수련이나 할까?’
파앗
나는 이 혼돈의 혈염운해에서 눈에 보이는 괴물들을 일단 다 처치하며 수련할만한 공간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머릿속으로 명상을 하면서 내가 배워왔던 무예의 고급원리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정신이 맑아진다….
그래…. 무예란 이런 것이구나….
암천향에서 하루 보내면 현실에선 대략 1년이지….
“……에엥?! 아 맞다!!”
나는 명상을 하다가 문득 기억난 딴생각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는 경악해서 펄쩍 뛰었다.
그렇다!
암천향과 현실의 시간흐름은 다르며, 여기서 하루를 보내면 현실에서는 1년 조금 넘는 시간이 흘러버린다! 그 때문에 예전에 암천향에 최초로 도전했을 때도 며칠 안 있었는데 무려 5년이나 되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던가!
‘안 돼! 낙양에서 그 난리가 나서 사흘의 시간조차 촉박할 정도였는데 그 상황에서 삼년이나 오년이 흘러버리면…!!’
도저히 뒷감당이 안 돼! 가뜩이나 동료도 모으지 못한 초기상태에서 세상이 망하는 환란이 반복되면 어쩌라는 거야!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되돌아가야 해! 일 년 이내라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을지도 몰라!’
머릿속이 급격히 회전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외신의 위장을 뚫기 위해서는 신공표의 사보검 수준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화력이 필요했으며 지금 내가 그 정도 화력을 갖고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젠장할!! 되든 안 되든 해본다!”
파아앗
나는 전력을 다해서 허공을 날듯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허공을 날기 시작했는데 기력이 급격히 소모되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현실이 아닌 암천향이기에 기가 더 빨리 소모되는 감이 있었다.
‘이 위장의 크기는 팔천 리나 된다! 지난번에 그 엄청난 거리를 기공으로만 이동하는 게 벅차서 여의봉의 도움을 받으려다 얼떨결에 신공표를 불러냈던 건데…. 그냥 날아서 팔천 리는 아무리 내 내공이라도 절대 못 가!!’
나는 암울한 기분이 들었으나 이내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아 맞다! 그 방법을 쓰면….’
나는 뜻밖에 머리가 잘 돌아가는 걸 느끼며 소환술을 썼다.
“나와라!!”
우웅
[끼유우!]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지며 광속의 마물이 소환되었다. 광속의 마물 등에 탄 나는 전신에 호신강기를 돋우며 다른 한 손에 전국옥새를 들어서 외쳤다.
“전국옥새! 이 위장의 막다른 곳의 좌표를 찍어 줘!”
[검색 중….]
삐빅
전국옥새의 검색이 완료되고 내 머릿속에 팔천 리 밖의 좌표가 떠오르자, 나는 비야키에게 이혼대법을 걸었다. 그리고 이혼대법이 걸린 비야키의 머릿속으로 내가 본 좌표를 전송하며 정신으로 말을 걸었다.
[여기로 가!]
[알겠심다!]
촤아악!!
광속의 마물이 눈 깜짝할 사이에 팔천 리 밖으로 이동해 있었고, 나는 전신의 호신강기가 너덜너덜해지며 격통이 전신에 덮쳐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억지로 고통을 참으면서 마물을 되돌려 보낸 후 눈알에 힘을 집중했다.
“으으으으읍…!!”
그리고 눈이 화끈해진다 싶을 때 격하게 외쳤다.
“광 - 선!!!”
쿠콰콰콰쾅
다음 순간 내 눈에서 은빛의 파괴광선이 뿜어져나가며 위벽을 때리기 시작했다. 천공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는 듯한 환영과 함께 차원이 쩌적거리며 갈라졌고, 나는 위벽이 서서히 찢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크아아아악!! 눈 따가워!!!’
마치 벌레가 눈알을 물어뜯는 것처럼 가렵다!! 하지만 어떻게든 빨리 가야하니까 이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치지지직
이윽고 위벽의 한켠에 미세한 구멍이 뚫리는 게 보였다. 나는 한참을 지져서야 위벽이 뚫리는 걸 보고 이 위벽이 생각 이상으로 튼튼한 벽이며, 이런 걸 단번에 뚫어버린 신공표의 사보검이 상상을 초월하는 공격력을 지닌 신급 보패라는 걸 실감할 수가 있었다.
‘아니면 외신의 위장이라서 소호금천의 권능이 잘 닿지 않아서 광선이 약화된 건가…?’
쐐액
어찌되었든 위벽의 구멍이 약 삼 장 크기로 뚫렸을 때 나는 허공을 박차고 위벽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위벽을 나오자 우주공간이 내 눈에 들어왔는데, 나는 이 우주공간에서 은빛 길의 반대편을 따라서 끝까지 가면 암천향이 나타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와… 음….”
그리고 내가 소환술을 써서 광속마물을 불러내려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그러고보니 이 은빛 길으로는 가본 적이 없네?’
저번에도 가 보려다가 암천향에 가는 게 더 급해서 안 갔던 걸로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순간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은빛 길의 반대편에 있는 암천향으로 가게 되면, 당연히 토요가 있는 측천무후의 궁전으로 가서 그녀를 설득하여 현실세계로 빨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측천무후를 과연 빠르게 설득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일까? 자칫하다가는 측천무후가 불러낸 호위 팔부신중과 싸우다가 횡액을 당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이 은빛 길을 끝까지 따라가면 암천향의 [달]이 나온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달에 도착하기 전 비신의 도시라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 그 도시에 가면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정보를 이용해서 더 빨리 도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암천향의 달은… 예전에 창힐이 마지막으로 들렀다는 장소였지.’
과거에 팽조를 수기공양으로 불러내어 얻어낸 정보였다. 그 정보를 얻었기에 암천향을 탐험할 필요성을 느꼈었던 것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창힐이 천암비서에게 먹혀서 소멸된 것 같지만, 뭔가 수상쩍긴 하다.
애초에 창힐은 왜 암천향의 달에 갔었던 걸까?
“…….”
은빛 길.
왜인지 이 길으로 암천향의 달에 가면 무척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라는 직감이 든다…. 많은 것을 얻겠지만 그만큼 더 위험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가지 말자….’
나는 고개를 절레 젓고는 재빨리 광속마물을 타고 은빛길의 맞은편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쓔우웅!!
“카학! 우아아악….”
나는 암천향에 도착한 순간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도착한 장소는 예전처럼 [청동의 별] 지역이었으며 별다른 적수는 없는 장소였다. 하지만 나는 눈알광선을 세게 쓴 여파인지 눈이 멀어서 앞을 볼 수 없었고 눈이 파먹히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다.
한참 후 고통이 조금 진정되자 나는 시각 대신 기감으로 주위를 판단하며 전국옥새를 이용해서 토요가 있는 측천무후의 황궁 좌표를 찾아내었다. 그리고는 곧장 이동했다.
쿠당탕
“…….”
너무 아프다…. 광속의 마물을 세 번이나 탔으니 아무리 호신강기를 둘렀어도 전신이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나동그라진 곳은 바로 측천무후가 앉아있는 옥좌의 바로 앞이었다.
측천무후가 기이하다는 듯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매우 강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구나.]
이런 젠장. 망량선사가 그만큼이나 암기를 없애줬는데 소신격인 측천무후가 저런 말을 할 정도라고?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서 말했다.
“나는 소호금천의 사도 백웅! 만나서 반갑소!”
[여는 그리 반갑지 않다. 삼황오제의 사도가 감히 적대자를 모시는 이 궁에 침입하다니….]
스스스
측천무후에게서 강렬한 마력과 살기가 치솟아 오르는 게,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기감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측천무후의 힘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해서 최소한 투선 이상이라는 게 확실했다.
‘어?! 제기랄!!’
측천무후가 팔부신중 불러내서 같이 공격하면 감당이 안 되는데?
나는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걸 느끼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나, 나는 동맹을 맺으러 왔소이다!!”
[동맹…? 소호금천이 우리와 말이냐?]
“그렇소!”
저질러 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수습하지…?
나는 암담함을 느꼈지만 일단 되는대로 말하기로 했다.
“낙양에 출현한 그 마물을 같이 퇴치합시다! 거기에 조력하는 대신 당신들과 임시동맹을 맺기 위해서 온 거요. 그런 놈은 피차 빨리 없애고 싶잖소!”
[뭐라고…?]
“싫으면 마시오. 나는 굳이 동맹 안 맺어도 되니까.”
사실 동맹 안 맺는 순간 전투가 벌어지고 나는 결국 팔부신중에게 합공당해서 죽겠지만 일단 허세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야기에서 약하게 보이면 의심만 산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쉬쉭!
그러자 갑자기 측천무후의 주위에서 두 명의 신형이 순간이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좌우에 모습을 드러낸 그 둘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들의 얼굴을 둘 다 알고 있었기에 기감으로 그들의 형상을 감지한 후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헉! 저 놈들은… 이미 여기에 와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당황한 걸 얼굴표정에서 감추려 할 때 풍채있는 장년사내가 옆에 있던 팔검(八劍)의 검객에게 말했다.
“벨 수 있겠나?”
그러자 팔검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없이 자신의 팔검 중 한 자루를 뽑았다.
“상당한 고수… 재밌겠어.”
나는 그들의 반응에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이미 교섭결렬이다!
‘씨발!’
그리고는 재빨리 검을 들면서 외쳤다.
“아니 잠깐 생각해보니까 동맹을 하는 게 좋을 거 같기도 한….”
다음 순간 팔검의 검객이 내게 뛰어들며 일섬을 날렸다. 그 속도는 단연 내가 봐 왔던 모든 검객 중 최상의 수준이었고, 그게 당연했다. 왜냐하면 현 시점에서 저 검객은 세계최강의 고수인 파순(波旬)이였기 때문이다.
폭광누멸검(爆光漏滅劍)
내가 아는 그의 최강의 초식이자 무공 중 하나 - 나는 그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 폭광누멸검의 초식과도 여러 번 대련을 해 보았기에 당연히 이 공격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폭광누멸검을 상대할 수 있는 절기는 몇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최강의 일검을 쏟아 부었다.
“하아아아!!”
무량단(無量斷)
꽈과광!!
절대지경의 의념이 부딪히며 측천무후의 황궁이 크게 부숴지는 소리가 울렸다.
‘제기라아아알!!’
이딴 식으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고!!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29번째 생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팔부신중(八部神衆) 아수라(阿修羅)와 겨루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