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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상관혁에게 정보를 얻은 후 제갈사의 조언대로 이혼대법을 그에게 시전했다.
“내,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요?”
“미안. 족쇄를 채워놓아야 한다는군….”
우웅
상관혁의 손목에서 백(魄)이 내 쪽으로 끌려오는 게 느껴진다. 나는 상관혁의 백을 얻자 이제 그의 오감과 움직임을 원할 때 통제할 수 있다는 걸 알아챘고, 이내 손목을 놓았다. 상관혁은 자신이 ‘무언가’를 당했다는 걸 알아챈 듯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나는 그에게 엄포를 놓았다.
“마도사니까 따로 설명은 안 해도 되겠지? 배신하는 순간 발동하는 주술이다. 그리고 솔직하지 못해도 나는 알 수 있어.”
정확히 말하자면 이혼대법은 그런 게 아니지만 상대가 이혼대법의 정체를 모르고 있으니 말 자체가 족쇄가 될 것이다.
“…….”
“그럼 이제 백련교와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상세히 말해봐라.”
상관혁은 이내 표정을 관리하고는 대답했다.
“백련교측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제가 낙양의 분위기를 살펴서 신호하면 교주와 호법사자가 출진하여 화신류 호법사자가 내응한다는 게 전부입니다.”
“야차에게서도 지령이나 명령을 받았을 텐데?”
“…그 분께서는 다른 팔부신중이 도착할 때를 기다려 제게 신호를 준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팔부신중? 지금 이 낙양에는 다른 팔부신중이 없는 건가?”
뜻밖의 정보에 내가 눈에 이채를 띄자 상관혁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세상 곳곳에 흩어져있고 저마다 하는 일이 있어 단기간에 모이기가 쉽지 않기에 긴나라가 그들을 소집하는 중입니다.”
“흐음….”
“이제 저를 놓아주십시오…. 결코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제갈사가 시킨대로 대꾸했다.
“괴물의 정체는 짐작하고 있나?”
“음…. 그것만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팔부신중도 다들 당혹해하는 기색이라… 단지 무척이나 오래된 존재라는 걸 추측하시는 듯 했습니다.”
“오래된 존재…?”
“야차님조차도 잘 모를 정도로 오래된 존재라고….”
이건 중요한 단서일까?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곧 찾아올테니 이 자리에서 얘기한 걸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파앗
나는 드라큘라와 함께 그 자리를 나왔다.
‘한백령을 찾아가 볼까.’
한백령이 이런 신화적인 사태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녀는 비교적 중립적인 위치에 있으며 잠재적인 동료다. 일단 얘기해봐서 나쁠 건 없으리라.
하지만 내가 한백령을 만나러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난데없이 이변이 일어났다.
쿠르르륵!!
거대한 괴음과 함께 나와 드라큘라가 서 있는 곳만 가공할 압력이 덮쳐왔다. 주변에 있던 보통 인간들은 놀라서 우리 쪽을 바라보았고, 나는 호신강기를 발휘해서 버텼다.
“……!!”
“주군!! 크윽… 저는 본체로 변해서 응전하겠습니다!”
촤앗
드라큘라가 압력을 더 버틸 수 없는지 변신술을 풀며 흑룡으로 화했다. 그리고 그가 흑룡의 날개를 펼쳐서 비상하려는 순간, 꿈틀거리는 영체 덩어리가 드라큘라의 전신에 달라붙는 게 보였다.
[카아악.]
그는 발버둥치며 흑룡의 입김을 발사했지만 영체덩어리는 드라큘라의 공격에 전혀 해를 입지 않는 듯 했다. 나 또한 거대한 압력 때문에 몸이 짜부라질 것 같았지만 이대로 두면 드라큘라가 틀림없이 죽는다는 걸 직감하고는 전신의 집중력을 압축시켜서 절기를 시전했다.
절대검뢰 무량단!!
츠아아악 - !!
드라큘라의 몸을 마치 장난감처럼 갖고놀던 영체덩어리가 번개의 칼날에 잘려나가면서 드라큘라는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쿠웅!!
[크어… 어어어….]
나는 전신의 내공을 집중시켜서 간신히 압력을 풀어낸 후 드라큘라에게 달려갔다.
“이봐!! 괜찮아?!”
그러나 거리에 떨어진 흑룡 드라큘라는 그 짧은 순간에 중상을 입은 듯 기식이 엄엄해 보였다. 날개가 산에 녹은 듯 했고 몸에 걸쭉한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 참혹함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드라큘라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 주군… 더 모시지 못하여 죄송합….]
“제기랄!! 목갑에 넣어주마.”
목갑 내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 나중에라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그 때 드라큘라가 그 순간 내 팔뚝을 보더니 뭔가를 알아챈 듯 말했다.
[그… 그렇군요…. 이미 마(魔)를 새기셨습니까…. 정녕 위대한 존재시여… 흐흐….]
그는 뭔가를 결심하고는 흐릿한 눈을 떠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저 또한… 주군께 귀속되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영광….]
“뭐?”
[부디… 저의 이름을 받아주십시오…!! 크…크어….]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더 이상 드라큘라에게 여유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후와아악!!
다음 순간, 드라큘라의 전신이 마치 빛의 입자처럼 변하더니 내 팔뚝에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 내 팔뚝에는 알 수 없는 고대의 글자가 새겨졌고, 그 글자는 거대 거미의 이름 바로 밑에 자리를 잡았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하지만 내가 상황을 파악할 여유도 없이 머릿속에서 제갈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웅!! 드라큘라를 단숨에 제압했다면 그 괴물의 격은 우리 생각보다 더 높다. 지금은 싸우지 말고 그 자리를 피해!]
[…알았어!]
파밧!!
나는 멸혼보를 써서 괴물이 뒤덮은 범위를 재빨리 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괴물은 갑자기 자신의 영체에서 거대한 촉수를 수십 개나 뻗어내더니 뱀처럼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슈슈슉!
‘크으윽….’
엄청나게 빠르다! 그리고 육안이나 기감으로는 도저히 공격궤도를 알 수가 없어! 화안금정을 돋우어서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저 투명촉수를 감지할 수조차 없다는 게 골치가 아팠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신법으로 회피하다가 이윽고 무언가를 깨달았다.
‘비등을 못 쓰잖아.’
저 괴물이 뭔가를 한 듯 비등의 공간이동으로 이 자리를 회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별 수 없이 끝까지 멸혼보로 낙양성을 벗어나야만 했다.
타다닷
내가 낙양의 내성을 넘어서 외성의 성벽을 막 넘자 더 이상은 괴물이 쫓아오지 않는 기색이었다. 아마 쫓아오지 못하는 게 아니라 눈앞에 있는 야차가 신경쓰여서 나를 끝까지 쫓지 않은 것이리라.
“휴우.”
나는 한숨을 돌리고는 그대로 계속 달리려고 했다. 일단 최대한 신법으로 멀어져서 비등을 쓸만한 장소로 향해야겠다.
하지만 바로 그 때였다.
후웅!!
“……?!”
뭐야?!
눈앞에 웬 안개가 펼쳐지는 듯 하더니 내 몸은 알 수 없는 장소에 와 있었다. 정말로 뜬금없는 상황변화였다.
그리고 안개가 가득한 산길의 저편에서 흐릿한 인간의 신형이 보였고, 그 존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둠의 존재여. 낙양성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라.”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
나는 곧장 상대의 정체를 알아챘고,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잘 보니 그 장소의 근처에 있던 야산인 것 같았다. 그리고 상대의 농사꾼 차림을 살핀 후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어둠의 존재라고?”
“아니라고 할 셈인가? 그 흉측한 마력을 풀풀 풍기고 다니면서.”
싸늘하게 쏘아붙인 농사꾼 차림의 청년이 내 쪽으로 호미를 겨누며 말했다.
“스승님의 명으로 낙양을 감시하고 있던 차에 잘 되었다. 너희 사악한 놈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내야겠다.”
저 호미가 무척이나 하찮아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저 녀석의 손에 들려있는 이상 저 호미는 난데없이 세상을 뒤집는 요술을 부릴 수도 있는 것이다.
“…….”
저 녀석과 싸우면… 아마 총체적인 역량은 내가 위이기 때문에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녀석의 환술은 측정불가이기 때문에 싸우다가 어떤 변수가 나타나서 내게 치명상을 입힐지 모른다. 일단은 무인의 전투법에 익숙한 나로서는 환술의 극한에 다다른 저 녀석은 무척이나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목숨 걸고 싸울 상대가 아니다. 왜냐하면 저 녀석은 이전 생에 내게 있어서 최고의 동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직은 일면식도 없으나 흑요석의 암기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동료가 되었을 존재다.
하지만 흑요석도 없는 상태에서 저 녀석을 설득할 수 있을까?
나는 걱정스러웠지만 일단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나는 삼황오제의 사도인 백웅이고, 소호금천의 명을 받아서 활동하고 있다.”
“…사도라고.”
“이걸 봐라.”
나는 팔을 들어서 사도의 표식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그 표식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자 나는 팔을 내리면서 말했다.
“임무를 받아서 활동하던 중에 낙양을 정찰한 것뿐이다. 네가 천계와 관련있는 술사라면 나와 반목할 이유가 없을 텐데.”
농사꾼 청년이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군…. 대뜸 그런 말을 하면 누가 믿을 거라 생각하나? 마를 새겨 자신의 종복으로 삼은 사악한 술사를 이대로 풀어줄 거라 생각하는가?”
“뭐?”
“네가 떳떳하다면 나를 따라서 스승님께 가자. 그러면 네 말의 진위가 가려질 것이다.”
“…….”
뜻밖의 제안.
나는 혹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오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제길. 갔다가 죽는 거 아냐?’
평소라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겠지만 지금 나는 마력덩어리나 다름없는 상태다. [옛 지배자]나 사악한 존재를 싫어하는 그 자 앞에 간다면 단숨에 소멸당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황제 공손헌원처럼 봉인당해버릴지도 모른다.
‘이혼대법이 연결이 안 돼…. 제갈사의 말이 안 들리는군….’
역시 저 놈의 환술은 최강이다. 설마 이혼대법의 효과를 일시적으로 끊어버릴 수 있다니…. 이 공간 자체가 환술이기에 가능한 일인가?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젠장!!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너 정말 재수없는 거 아냐? 나중에 기억 주면 너 한 대 맞는다!!”
그러자 그는 황당하다는 듯 대꾸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어디서 봤다고 예전이라는 거냐. 나는 너 같은 놈 처음 본다.”
“그래 그러시겠지! 하 참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말했다.
“이봐! 정 그렇다면 나를 보패 산하사직도에 봉인해! 너 그거 갖고 있잖아!”
그러자 상대가 흠칫하고 놀랐다.
“뭐? 네놈이 어떻게 그걸….”
“거기에 넣어가면 네놈도 안심할 거 아냐. 어차피 날 거기에 넣을 생각이었지?”
“…….”
“저항하지 않을 테니 집어넣어봐. 그걸로 된 거 아냐.”
내가 검을 집어넣고 얌전히 두 손을 앞으로 내밀자 상대는 수상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어차피 네가 저항하든 말든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그럼 받아라.”
슈슈슉
다음 순간, 눈 바로 앞에 거대한 족자가 소환되어서 나를 덮쳐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족자가 빠르게 덮쳐와도 찰나의 순간에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대신에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천우진 이 개새끼야….”
그렇다.
낙양을 탈출한 나를 난데없이 환술로 가둬서 윽박지르러 온 것은 바로 환신 천우진이었던 것이다.
우우웅!!
그리고 나는 보패 산하사직도 안에 들어간 순간 예전과 똑같은 감각이 내게 덮쳐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수려하게 펼쳐져있는 기암괴석의 절벽 - 그 절벽의 위에 있는 오두막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상태였다.
‘시작이군.’
나는 28번째 생에 천우진이 내게 해 줬던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럼 탈출시도조차 할 기회가 없는 거 아니냐?]
[강대한 힘을 지닌 존재의 경우는 다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속박당해서 찰나와 같은 영원을 느끼는 셈이 되지. 차원을 낮춘다 하더라도 그 존재 자체의 격을 떨어뜨릴 수는 없는 보패 산하사직도의 한계야. 그래서 과거에 강대한 마력을 지닌 제갈사가 갇혔을 때 지속적으로 탈출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고.]
[흐음. 생각만 할 수 있다는 말이군.]
예전에도 한 번 산하사직도에 들어와서 생각만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별의별 짓을 다 하려다가 간신히 탈출했던 경험이 있다. 나는 그 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제 발로 산하사직도에 들어온다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천우진과 싸우게 된다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제압할 자신이 없었기에 내 나름대로의 타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사이탄의 언령을 외치다보니 아마테라스가 그에 반응해서 서로 소멸하면서 산하사직도에 숨겨진 시공간으로 들어갔었지….’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써 볼까?
나는 산하사직도에 음신지력을 내뿜으며 잠시 육체의 자유를 찾고는 나직이 말했다.
“사이탄….”
바로 그 때였다.
덜컹! 덜컹!!
산하사직도의 세계가 격렬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어리둥절해서 흔들리는 세계의 천공을 바라보자, 그 천공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런 기억이 없는데 너는 어떻게 나와 이름의 인과율을 이은 거지? 너도 외우주에서 온 존재란 말이냐?]
“…….”
쿠오오오
잠시 후 마치 유리를 깨듯 천공에서 거대한 칠흑의 뱀이 흘러나오며 눈을 빛내어 나를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너와 이름의 계약을 연장하는 걸 거부하노라!]
파앗
그 말을 끝으로 뱀의 환영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윽고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 맞아. 지난 생에는 [옛 뱀]과 합의해서 선악과를 찾는 대신 놈의 힘을 빌린다는 계약을 했었지만, 이번 생에는 그런 게 따로 없었으니.’
놈 입장에서는 뜬금없이 이어져있는 계약에 황당해하면서 스스로 근거 없는 계약을 취소시키러 직접 찾아온 셈인가?! 하지만 이렇게 취소시킬 수 있다면 드라큘라 때는 왜 그냥 이어진 거지?
“어….”
그리고 놀라움을 다스릴 새도 없이, 나는 내 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편법으로 내가 관리하는 봉인을 깨려하다니 정녕 천방지축이구나, 소호금천의 사도.]
새까만 고양이가 가부좌를 틀고 있는 내 앞에 마주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