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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스사노오노미코토?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바로 기억이 안 나는군….
“그게 뭔데?”
“…….”
내가 반문하자 아베노 세이메이가 씁쓸한 눈으로 말했다.
“대륙에서 오신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동영 열도의 창세신이며 천진신(天津神)중에서도 특별히 손꼽히는 존재요. 아마테라스 님과 함께 3대 신격으로써 신화시대에 크게 활동한 신성이오.”
“음….”
그 설명을 듣고도 잘 감이 안 잡혀서 나와 드라큘라가 어리둥절해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제갈사가 내 주의를 환기시켜주었다.
“백웅. 무사시한테 그의 과거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않나? 그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가 고서에 적혀있는대로 신의 검술을 얻기 위해 인신공양을 했고, 그 때 들렀던 인신공양의 사당 중 하나가 스사노오노미코토의 사당이었지.”
“……아아!!”
“결국 무니사이는 아마츠카미의 사도에게 뒈졌지만.”
“기억나네.”
하도 기억이 많아서 그런 걸까?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기억의 한켠에서 그 때의 이야기를 기억해낼 수가 있었다. 여전히 드라큘라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라 아무 생각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옆에서 나와 제갈사의 대화를 듣던 아베노 세이메이는 흠칫했다.
“…당신들이 어떻게 그 때의 일을 알고 있소? 설마 당신들은 미야모토 무사시와 아는 사이란 말이오?”
“아….”
나는 그 말을 듣고서 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아베노 세이메이가 아마츠카미의 사도를 제압하러 출현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내게 있어서는 흔한 전생기억 중 하나이지만 아베노 세이메이에게 있어서는 몇십년 전 생생하게 겪었던 자기의 일인 것이다.
나는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아베노 세이메이에게 말했다.
“무사시와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 조만간 그 녀석과도 얘기를 해 볼 생각이오. 아무튼 난 인간의 적은 아니오.”
“…….”
“어쨌든 얘기를 자세히 해 보시오. 그 스사노오란 놈이 갑자기 왜 부활했단 말이오? 그리고 그게 아마테라스를 부활시키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지?”
아베노 세이메이가 입을 열었다.
“고신(古神) 스사노오노미코토가 부활한 것은 며칠 되지 않은 일이오. 그는 본디 후지산(富士山)의 땅속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그 신성을 되찾아 크게 치솟아 올랐고, 지금은 이 수해봉인지를 탈출하여 교토에 갔소.”
“며칠 되지 않았다고?”
“그렇소. 부활한 이유는 우리로서도 전혀 알 수 없으나, 아무래도 내 짐작으로는 초고대에 스사노오노미코토를 봉인시킨 어떤 존재가 소멸한 게 그 이유가 아닌가 싶소.”
“…….”
나는 그 말에서 대번에 눈치 챌 수가 있었다.
‘…스사노오는 아마 황제 공손헌원에게 제압당한 고신인가 보군.’
황제 공손헌원의 봉인이 풀리면서 곤 임금이 오도에서 깨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스사노오라는 신도 덩달아서 풀려난 것이리라.
아베노 세이메이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스사노오노미코토는.”
“그냥 스사노오라고 하시오. 부르기 편하게.”
“…알겠소. 아무튼 스사노오는 현재 교토에서 동영의 신왕(神王)을 자처하며 동영 전토에 있는 백귀야행(百鬼夜行)을 소집하고 있는 중이오. 이대로 스사노오를 놔두면 동영은 멸망하고 말 것이오.”
“흠. 그것 참 안됐구려…. 그래서 아마테라스는 왜 부활시키지 못하는 건데? 날뛰는 스사노오랑 뭔 상관이오.”
내 질문에 아베노 세이메이가 신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용맥(龍脈) 때문이오.”
“용맥?”
“그렇소. 대지의 혈관이며 치솟는 영력의 중심지. 스사노오가 교토에 간 이유도….”
아베노 세이메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옆에서 듣고 있던 제갈사가 그의 말을 끊어버리고는 말했다.
“교토에 잊혀진 고대의 용맥이 있었던 모양이군. 스사노오는 그 용맥을 이용해서 자신의 힘을 회복하려 들고 있고, 용맥의 뒤틀림 때문에 영성이 혼돈에 잠식되어서 질서의 신격인 아마테라스 부활의식을 치르기에는 위험해져 버렸다 이 말이겠지?”
“……!!”
아베노 세이메이는 크게 놀란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지금 이 동영의 모든 용맥이 뒤틀려 버렸소. 교토의 대용맥을 억지로 부활시키는 바람에 모든 힘의 순환이 혼돈에 이르게 되어버린 것이오. 안 그래도 수해에 열려있는 거대한 이계의 통로 때문에 혼돈의 힘을 감당키 힘든데 이대로라면 동영을 시작으로 전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오.”
“흠….”
“당연히 아마테라스 님의 부활의식도 할 수 없소. 부활의식을 하려면 안정된 영성이 필요한데 지금 상태로는 하는 도중에 제단이 폭발해버릴 것이오.”
“말을 빙빙 돌리고 있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잖아.”
나는 아베노 세이메이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교토를 장악한 스사노오를 쓰러뜨려 달라는 말을 하고싶은 거겠지?”
“그래주면 고맙겠소.”
“흐음….”
나는 고민에 빠졌다. 마력을 통제할 방법을 찾다보니 부활한 고신 스사노오를 쓰러뜨리는 일이 생겨나다니! 그러다가 나는 문득 뭔가를 깨닫고는 외쳤다.
“잠깐, 교토?! 교토라면 거기에 미호가 있잖아!!”
“그 구미호를 알고 있으시오?”
“…제기랄!!”
나는 이를 악물었다.
‘미호가 위험해!!’
미호는 평소에 교토에 있는 덴노의 황궁에서 황후로 변신해서 인간인 척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스사노오라는 놈이 교토를 장악했다고 하면, 당연히 교토에 있던 미호 또한 위험에 빠진 것이리라!
내가 제갈사를 쳐다보자 제갈사가 클클 웃었다.
“큭큭큭! 나는 망량처럼 너를 말릴 생각 없다. 미호를 구하기 위해 스사노오를 토벌하고 싶으면 해라. 다만….”
“다만?”
“스사노오와 대화할 생각이 있는지를 확실히 하고 가라. 무작정 분노만 갖고 부딪힐 대상은 아니라고 보니까.”
“…흠.”
제갈사의 말에 나는 약간 격정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그래. 스사노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움직이는지 그 근본원인 정도는 알아야겠지…. 냉정하게 가자!’
나는 마음을 정리한 후 말했다.
“대화할 수 있으면 대화하겠다. 하지만 놈이 미호를 죽였다면 절대 봐주지 않겠어!”
“좋아. 그럼 어디 바로 가 볼까.”
“바로?”
“당연한 일. 약해진 고신이 용맥의 영력을 빨아먹고 있다면 시간을 지체할 일이 아니지. 시간을 주면 줄수록 토벌하기 힘들어진다.”
그렇게 대꾸한 제갈사가 힐끔 아베노 세이메이를 보며 사악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 늙은 너구리 놈아. 이번은 네 입장을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 한 번 더 이독제독을 노리고 우리를 움직인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네놈의 일족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주지.”
“…….”
절대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듯 아베노 세이메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갈사가 말하는 ‘예술작품’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비인외도의 작품이리라.
“명심해, 큭큭. 네가 진정한 의미로 우리 동료가 아니라면 봐줄 이유가 없으니까.”
“명심하겠소.”
“좋아. 그럼 스사노오에 대해 알고있는 모든 걸 이야기해라.”
“알겠소.”
우리는 약 반 시진 동안 스사노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아베노 세이메이를 놔두고 이동하기로 했다. 그를 데려가기에는 지금 동영 전역의 용맥이 들끓고 있어서 수해의 봉인까지 풀릴 위험이 있어서 놔둔 것이다.
파앗!
나는 제갈사와 드라큘라를 데리고 교토에 도착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갈사. 너무 세게 말한 거 아니냐? 스사노오 토벌 때문에 우리를 부추겼다곤 해도 세이메이는 악인이 아냐.”
“큭큭. 선인도 아니지. 저 놈은 동영의 인류만 보호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고대의 괴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천 년 묵은 대술법사가 보통 능구렁이인줄 아느냐? 지금 이 정도 말해두지 않는다면 나중에 배신할 가능성은 절대 무시할 수 없어.”
“음….”
“흑요석을 쓸 수 없다는 건 네 생각보다 더 큰 제약이다. 이 시대의 세이메이는 네 28회차의 그 세이메이가 아냐. 충분히 경계할만한 대상이다.”
“알았어.”
왠지 정곡을 찔린 기분이 든다. 제갈사 또한 내가 28회차의 500년후 미래에서 날 위해서 희생했던 세이메이를 떠올리는 걸 알아챈 것이리라. 그리고 제갈사가 볼 때는 두 회차의 세이메이가 완전히 다른 인물이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걸 주지시켜 준 것이다.
“아무튼 놈이 거짓말은 하지 않았군.”
제갈사가 교토 외곽의 높은 언덕에서 도시 내부를 힐끔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저건 꽤 성가신 놈일 것 같다.”
우우우우 -
화안금정을 발동하자 내 눈에도 비쳐보이고 있었다.
마치 태산과도 같은 크기의 거대한 빛의 거신! 고대의 갑주를 전신에 두르고 있으며 고대 동영인 특유의 두발을 하고 있는 저 존재는 한 자루의 태도(太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무언가 집중을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보통 인간의 눈에는 그 빛의 거신이 전혀 보이지 않는 듯 교토의 인간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드라큘라에게 물었다.
“이봐. 저걸 지금 바로 쳐도 좋을까?”
“저건 본체가 아닌 힘의 현현입니다. 용맥에서 먹은 힘을 쌓으려는 도중에 나타난 환영같은 것이지요. 본체는 따로 있을 것입니다.”
“흠. 그래?”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요새가 틀림없습니다. 바로 들어가면 위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찰부터 먼저 하지요.”
“정찰?”
“제가 권속을 보내겠습니다.”
스스스스
드라큘라가 자신의 손 위에 마법진을 생성하더니 그 마법진 위에서 날개달린 박쥐가 수십 마리나 나타났다. 드라큘라는 손을 뻗으며 명령했다.
“가라!”
쉬쉬쉭
이윽고 박쥐가 시가지 쪽으로 향하자 드라큘라가 말했다.
“박쥐가 인간을 물면 그 인간은 제게 명령을 받는 권속이 됩니다. 그 권속을 이용해서 내부를 정탐하겠습니다.”
나는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서 그에게 질문했다.
“…권속이 된 인간은 괜찮나?”
“쓸만합니다. 육체능력도 상승하고 공포나 고통도 느끼지 않고 폭발시킬 수도 있어서….”
“아니,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냔 말이야.”
“네? 그럴 이유가 없는데….”
박쥐에 물린 인간은 평생 드라큘라의 노예가 되어서 부려먹히다 죽나보군.
‘젠장….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녀석도 사악한 마룡이군.’
나는 그런 드라큘라의 말에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박쥐를 되돌려. 인간을 쓸데없이 희생시킬 필요는 없어.”
“알겠습니다.”
드라큘라가 마법으로 소환한 박쥐를 불러들이자 나는 제갈사에게 말했다.
“이래저래 재보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아. 그냥 바로 스사노오와 싸우겠어.”
“큭큭. 최악은 아니고 차악의 전략을 택해주시는군. 정말 멍청해. 하지만 그게 바로 전생자 백웅이라는 건가.”
“젠장. 시간만 낭비하는 것보단 낫잖아.”
“최악이 뭔지는 파악하고 있으니 다행이군, 큭큭.”
제갈사가 광소를 흘리다가 말했다.
“정 그렇다면 나와 이혼대법을 교환하자. 네가 선택해야 할 시점에서 도와주마.”
“알았어.”
우웅!
나는 제갈사와 서로에게 이혼대법을 걸었다. 이로써 굳이 다른 술수를 쓰지 않아도 생각만으로 그와 통해있을 수 있는 것이다.
“가자.”
나는 이윽고 드라큘라와 함께 교토의 내부로 진입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드라큘라가 여기저기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거리에 하급 요마가 많군요. 백귀야행을 모은다더니 이런 요괴무리를 모아서 부하로 만든다는 뜻이었나 봅니다.”
“…그렇군. 인간으로 변신한 놈이 많네.”
겉으로는 번화한 대낮의 거리이지만 골목의 어둠 속에 요괴들이 꽤 보였다. 보통 인간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는 듯 했다.
“다 왔습니다. 저기가 본거지인 것 같습니다.”
드라큘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바로 교토의 덴노가 거처하는 황궁이었다. 바로 거기에 빛의 거신의 발이 똑바로 서 있었고 힘이 그 안으로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안 좋은 예상이 맞아들어가자 이를 악물며 말했다.
“가자.”
미호가 무사해야 할 텐데.
타닷
나와 드라큘라가 황궁 내부로 들어가자 결계가 느껴졌다. 드라큘라가 자신의 한쪽 팔을 용인(龍人)처럼 변화시키며 크게 휘둘렀다.
쩌적!!
드라큘라의 일격에 결계는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졌고,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크악.”
“어억.”
아무래도 이 황궁에 있던 인간 술법사들이 결계가 깨진 반동으로 쓰러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안으로 달려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둘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강력한 존재들이군. 여기엔 무슨 일로 오셨는가?]
츠즈즈즈
강렬한 화염을 내뿜는 기이한 환수(幻獸)가 우리 앞에 나타나 있었다. 저 환수에게서 느껴지는 영력은 요괴 따위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고, 드라큘라조차 환수를 가벼이 보지 못하는지 멈칫거리는 듯 했다.
나는 아직 검을 뽑을 때는 아니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삼황오제 소호금천의 사도, 백웅이다. 너 또한 이름을 밝혀라.”
[……!! 소호금천!! 그럴 수가.]
“보아라.”
우웅
내가 팔뚝을 내밀자 소호금천이 줬던 그의 상징이 한 순간 빛나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상징을 본 화염의 환수는 흠칫하더니 이윽고 대답했다.
[…나는 카쿠츠치(軻遇突智)의 화신(化神)인 정령수(精靈獸) 히노카쿠츠치. 위대한 존재를 만나뵈어 반갑소.]
무척 예의바른 어투였다. 상대가 내 신분을 인정했다는 증거였다.
“카쿠츠치? 그것도 아마 천진신이었을 텐데 너는 스사노오와 어떤 관계냐.”
[…….]
화염의 환수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대들은 우리를 토벌하러 온 것인가?]
“상황에 따라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서로의 이득이 맞다면 굳이 그러고 싶진 않다.”
[호오….]
“스사노오란 놈과 얘기하고 싶다. 그는 어디에 있나?”
다음 순간, 황궁 전체에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를 찾는가? 삼황오제의 사도여!]
쿠우우우우!!
다음 순간, 교토 외곽에서 보았던 빛의 거신전사의 형상이 평범한 인간의 크기가 되어 눈앞에 소환되었다. 고대의 복식을 한 그 존재는 자신의 태도 끝을 바닥으로 향하게 하며 내게 말했다.
[내가 바로 스사노오노미코토. 오만한 황제 공손헌원의 손에서 벗어난 자유의 존재로다!]
나는 스사노오노미코토의 전신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꽤 강한 것 같다.’
적어도 드라큘라보다는 훨씬 강하다는 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놈의 전신을 두르고 있는 막강한 패력은 저 자가 원래부터 싸움에 익숙한 투신(鬪神)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지금도 막 봉인이 풀려서 힘이 밑바닥인 상태에서 회복중이라는 걸 감안하면, 저 놈이 완전히 힘을 다 회복하고 나면 절대 필멸자의 힘으로는 손도 댈 수 없는 괴물이 될 것이다.
‘나중에는 아마테라스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스사노오를 쓰러뜨리려면 지금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우선 미호가 무사한지 알고 싶다. 나는 일단 그녀를 구출하러 왔으니까.”
[미호? 황후로 변신해 있던 그 구미호를 말하는 건가?]
“그래. 설마 죽인 건 아니겠지?”
[여우야. 이리 나오너라!]
쉬익
스사노오가 외치자 저 멀리 있던 기둥 쪽에서 무언가가 순간이동의 술수로 출현했다. 나는 그게 미호라는 걸 알아채고는 반갑게 외쳤다.
“미호! 무사했구나.”
그러자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던 미호는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사… 삼황오제의 사도가 제게 무슨 일이신지.”
“무사해서 다행이야! 다친 덴 없어?”
“으으으….”
미호는 크게 질색하는 표정으로 기둥 뒤에 숨었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하자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큭큭, 미호는 너랑 지금 일면식도 없다. 마력을 뿜어내는 사도라는 괴물이 아는 척하면서 관심 주는 것 자체가 일개 대요괴 입장에서는 공포스러울걸.]
“…….”
[괜히 충격받지 말고 마음 추스려라.]
나는 제갈사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스사노오. 이 황궁에 있던 자들을 다치게 하진 않은 모양이군.”
[그럴 이유는 없지. 나는 인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다행이군.”
[…재밌는 자로군. 삼황오제의 사도는 대개 오만하며 인간따윈 벌레로 여기는데 인간의 생사에 신경쓰는가?]
스사노오는 재밌다는 듯 껄껄 웃었다. 그 모습에서는 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사내다운 패기가 느껴졌다. 나는 스사노오에게 말했다.
“미호나 인간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당신과 굳이 싸울 생각은 없어. 하지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군.”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어디 말해보아라.]
“왜 후지산의 화산 지저에 봉인되어 있었던 거지? 그것도 황제 공손헌원의 손에.”
[그건 홍수 때문이다.]
“홍수?”
내 반문에 스사노오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삼황오제가 서방의 [옛 지배자]들과 짜고 인류를 한 차례 몰살시킬 작정으로 일으켰던 세계적인 대홍수. 나는 그걸 막으려 하다가 삼황오제의 손에 봉인당했다.]
“……!!”
[내가 인간을 대홍수에서 구해내려고 삼황오제와 싸웠던 기록이 야마타노오로치라는 괴물을 쓰러뜨린 기록으로 둔갑했더군…. 하하하!]
그랬단 말인가?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스사노오에게 말했다.
“설마 황제 공손헌원과 싸웠던 건가? 네가 그렇게 강한 놈인가?”
[…….]
그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한 차례 싸해지는 걸 느꼈다. 옆에 있던 히노카구즈치는 적지않게 당황하고 있었고 드라큘라 또한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리고 당사자인 스사노오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황제와 싸우진 않았지. 전욱(顓頊)과 제곡(帝嚳)이 날 공격해서 황제의 술법으로 봉인시켰다.]
“전욱과 제곡이….”
[놈들은 아직 건재한 것 같지만 황제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보군. 후후.]
곤의 경우와 비슷해보이지만 다르다. 곤의 경우와 달리 술법을 건 전욱과 제곡은 생존해 있으나 황제가 소멸한 것만으로도 봉인이 풀린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오싹해졌다.
‘제… 제기랄….’
그렇다면 저 놈 뿐만 아니라 황제의 술법을 이용해서 봉인했던 고대의 신격들은 지금 다 부활해버렸다는 소리 아니야?!
[하고싶은 말이 그런 과거사는 아닐 텐데. 본론을 이야기하지 그러나?]
“단적으로 말하지. 나는 아마테라스를 부활시키려고 한다.”
[…….]
뜻밖의 이야기인지 스사노오가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근데 네가 여기서 용맥을 빨아먹고 있어서 부활의식을 치를 수가 없어. 그만둘 수 없겠나?”
[믿을 수가 없군. 삼황오제의 사도가 나의 혈육을 부활시킨다고? 너는 나를 놀리러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얌전히 대화나 하고 있진 않겠지. 나는 진심이다.”
[흠…. 쉽게 믿기 힘든 일이군.]
나는 스사노오 앞으로 걸어가서 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의심스러우면 내게 아마테라스의 신체가 있는지 살펴봐라. 나는 이걸 이용해서 수해의 관리자인 아베노 세이메이의 도움으로 아마테라스를 부활시키려 한다.”
“…….”
스사노오가 말없이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경악한 듯 말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어찌 이런….]
“될 것 같지?”
[정말 기이한 존재로구나! 허어.]
스사노오는 연신 탄식하다가 잠시 후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안 된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3년만 참아 다오. 그 때가 되면 네게 전면적으로 협조하겠다.]
나는 놈의 말에 황당해서 버럭 외쳤다.
“…이 새끼가… 장난치냐!! 싸우자 그거냐?”
[아니. 그게 아니다.]
이어진 스사노오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조만간 또 한 번 전 세계에 대홍수가 올 것이다. 그걸 막으려면 내게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