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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선지자의 말에 기이함을 느꼈다.
“정말인가? 그 말대로라면 황제의 봉인이 이번 삶뿐만 아니라 다음번 삶까지 이어진다는….”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은가…?]
“어.”
[그럼 흉신과의 거래를 네게 숨긴 것에 대한 도리는 여기까지로 하지….]
“엥?! 누구 맘대로!”
내가 선지자가 멋대로 빚의 범위를 정해버리자 반발했지만 선지자가 묘한 말투로 대꾸했다.
[본디 황제의 봉인에 관해서 더 알려줄 필요도 없었지만 도리상 호의를 베푼 거라 생각지 않나…? 더 듣고 싶지 않다면 나로서는 그만둬도 상관없지만….]
“…….”
젠장…. 무척 교활하구만!
하지만 응하지 않을 수 없는 거래였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퉁쳐주지.”
사실 좀 더 선지자에게서 보물을 받아내려고 으름장을 놓을 생각이었지만 이대로 황제의 봉인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황제를 봉인하고 있는 저 어둠의 정체는 나로서도 모른다…. 말했듯 내가 처음 보는 마법…. 그러나 마법에 쓰인 주문의 원리는 짐작할 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수많은 지배자들의 결속(結束)으로 이루어진 초마법(超魔法)이라는 것이다.]
“결속?”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선지자가 말을 이었다.
[…아주 끔찍한 주문일 것이라는 것밖엔….]
선지자가 잠시 몸서리를 치듯 촉수를 크게 일렁였다.
[그리고 그들의 마력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봉인하는데 일차적으로 쓰였지만…. 너무나 강대한 주문이기에 황제 공손헌원이 그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마력역행에 당했다 볼 수 있다….]
“……?”
뭔 개소리야?
[뭔 개소리냐는 표정이군…. 아무튼… 저 괴물 같은 초마법으로 무엇을 봉인했는지는 짐작이 가지 않으나…. 저 마력역행의 부작용 또한 인과율…. 정해진 조건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그대의 전생이 이어지는 동안 이어지는 봉인이 되리라. 절대로 1회로 끝날만한 반작용이 아니다.]
“흠…. 아무튼 나로선 좋은 거군. 그럼 그 조건이란 건 뭐지?”
[그건 모른다….]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몰라?”
[…….]
선지자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내가 저 봉인까지 가서 삼 년 정도 연구를 거듭한다면 마법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응? 뭐라고?”
[만신전의 옥좌를 삼 년 간 차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마법을 분석해서 알려줄 수도 있고 황제의 봉인조건과 회차를 알려줄 수 있다.]
나는 아연해져서 신경질을 냈다.
“미친 소리잖아!! 아무리 황제가 봉인됐어도 저기에 날고기는 대신격이 얼마나 많은데 삼 년이나 있을 수 있겠냐고!”
[그래… 그렇겠지…. 그러니 더 이상 물어보지 마라. 그러려고 말했다.]
“…….”
[더 이상 질문이 없다면 이만….]
“아니, 잠깐! 아직 질문 있어.”
선지자가 무척이나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 게 왠지 느껴졌다. 저 놈은 외계인이라서 인간의 눈에 표정 같은 게 느껴질 리가 없었지만 왠지 나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생을 시작하고 나는 난데없이 엄청난 마력이 생겨났다. 눈도 새까맣게 변하고 보는 놈들마다 나를 강력한 마(魔)처럼 취급하는 중이지.”
[그래보이는군….]
“하지만 내 기억으로 내가 마력을 얻을만한 이유는 없었어.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좋아…. 이걸 정말 마지막 부탁으로 하지…. 기억을 넘겨봐라….]
“그래도 되겠어? 서문혜의 말로는 내 기억에 엄청난 암기가 있어서 인간은 버틸 수 없다고….”
[내가 인간 따위로 보이는가?]
“그렇다면야.”
우웅!
내가 흑요석을 넘겨주자 잠시 동안 선지자의 몸에 시꺼먼 불꽃이 흐르는 듯 했다. 그러나 선지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흑염을 재차 몸으로 흡수하고는 흑요석을 촉수로 들어서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흐음…. 과연 그렇군….]
“뭐가 그렇단 거야?”
[마력의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옥좌]에서 니알라토텝의 본체를 직접 목격했던 기억…. 그건 씻을 수 없는 우주적 금기이기에, 마력의 증폭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지…. 하지만 이 심상치 않은 마력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으니.]
선지자가 흑요석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했다.
[첫 번째 이유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여기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마도 그게 네 마력을 압도적으로 증폭시킨 거겠지…. 하지만 외부인인 나는 그 진짜 이유를 알 수 없다.]
“왜?”
[너 자신에게만 걸려있는 인과율의 고리…. [큰 굴레]를 전제로 걸려있는 인과율…. 이런 건 인과율을 계산하는 능력으로도 읽을 수 없지…. 언젠가 너 자신만이 이유를 알 수 있게끔 되어있다. 이번 전생자는 무척이나 복잡한 존재로군.]
“……?”
[후후…. 나는 사대신기의 조언을 듣기를 추천해주지…. 이 마력은 틀림없는 양날의 검이다.]
“흑요석의 암기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없다. 네 기억은 지상의 금속으로는 절대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욱씬!
나는 그 순간 두통을 느끼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마력 때문에 두통이 계속 생기는 것 같은데 이건 해결법이 없을까.”
[이미 웬만한 마왕을 뛰어넘는 마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인간의 육체이기 때문이겠지. 그 빈약하기 짝이 없는 육체를 더 강화시키는 게 좋을 것이다.]
“뭐? 이미 나는 엄청난 내공을 갖고 있는데….”
[단순히 그 내공으로도 감당이 안 될 만큼 강력한 마력인 것 뿐…. 육체를 강화할 방법은 알아서 생각하라….]
“…….”
[그럼 이만… 잘 가라.]
후웅!!
다음 순간 선지자의 모습이 장내에서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나와 이야기를 섞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하긴 본의 아니게 내게 속마음을 들켜서 거래에서 큰 손해를 보았다는 게 그에게 있어서 별로 기분 좋게 느껴지진 않으리라.
나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
뭔가 복잡한 얘기를 한 것 같지만 요점은 세 가지인가.
첫째. 황제는 적어도 전생 한두 번 내에 부활하진 않는다.
둘째. 내 마력이 증폭된 이유는 선지자 저새끼도 모른다.
셋째. 두통을 멈추려면 육체를 더 강화시켜야 한다.
“…….”
첫째나 둘째는 당장 중요하진 않은 이야기였지만 세 번째는 좀 다르다.
‘여기서 어떻게 더 육체를 강화하지?’
나는 몇 번 씩이나 천년설삼을 먹어대면서 내공을 강화시켰기에 옛날옛적에 인간의 내공경지를 뛰어넘었었다. 신승의 수준을 뛰어넘었을 때부터는 용맥을 건드려 지진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였고, 호법사자의 천령단에 비해서도 지속력이 딸릴 뿐 중단기전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않을 정도다.
사실상 인간으로써 이룰 수 있는 내공의 한계에 도달한 셈이다. 무한에 가까운 무진장의 내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천년설삼을 더 먹어야 하나?
하지만 그건 별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천년설삼을 먹어봤자 크게 내공이 늘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으며 예전에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먹어봤지만 별로 쎄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무공경지 자체를 올리는데 집착했던 것이다.
현재 천년설삼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천년설삼보다 급수가 낮은 흑백련이나 성련 따위를 잔뜩 먹어도 아마 마찬가지이리라.
나는 허리춤에 있던 오도 쪽으로 시선을 향하며 물었다.
“곤. 나는 이미 내공의 극치에 도달했다. 어떻게 해야 육체를 더 강화시킬 수 있을까?”
그러자 곤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인간의 육체에 굳이 집착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군. 선지자가 했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가?]
“뭐?”
[정말 멍청하군…. 선지자의 말뜻은 네 몸의 상태가 마치 큰 강물을 담은 포대와 다름없다고 한 것이다. 포대가 무척 질겨서 당장 찢어지지는 않으나 포대의 성긴 부분으로 계속 마력이 새어나오는 것이고, 그 마력을 감지한 자들이 너를 위대한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는 거지.]
“……!!”
[네가 인간의 몸을 고집하는 한 그 어떤 식으로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포대를 어떤 재질로 만들어봤자 포대일 뿐이니까. 강철 실로 포대의 구멍을 수선하더라도 결국 물은 새게 되어있지.]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글쎄…. 난 모르겠군…. 인간의 몸을 애초에 왜 고집하는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곤의 말에서 뭔가를 깨닫고는 반문했다.
“인간의 몸을 버리란 말이냐?”
[상식이 있다면 다들 그리 생각지 않겠나?]
“그럴 수는 없어. 나는 인간이야.”
[니가 인간이든 말든 알 바 아니다. 그러니까 알아서 해라. 내 문제는 아니니까.]
“…….”
나는 대번에 조언을 끊어버린 곤의 태도에서 이놈이 겉으로만 동료일 뿐이고 끝까지 내 문제를 상담할 존재는 아니라는 걸 느꼈다. 하긴 이 놈과도 이해관계로 얽혀있을 뿐이니 거기까지 바라는 건 내가 병신일 것이리라.
‘젠장…. 역시 제갈사나 백련교주의 도움을 받아야 돼.’
나는 더 이상 동료들을 만나는 문제를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선 이 자리를 떠나서 서문혜가 있는 곳으로 갔다.
파앗!
“다녀오셨군요.”
“서문혜. 흑요석을….”
우웅
나는 흑요석의 기억을 서문혜에게 전했고, 서문혜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예전처럼 어둠의 기운을 손 위에 모아서 밖으로 방출해 버렸다. 그러나 서문혜가 심상치 않게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했다.
“하아… 하아….”
“괜찮소?”
“백웅 님…. 저도 두 번이나 기억을 받아들이니 무척 힘들군요…. 거신족의 힘으로도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암기입니다. 마치 우주의 악의(惡意)를 형상화시킨 듯한….”
“…….”
“앞으로는 가능하면 말로 전달해 주세요…. 방금 전의 암기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을 정도이니 다음번에는 저도 미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미치겠다. 뭐가 이렇게 강력한 암기가 적용되어 있단 말인가?
나는 무척이나 답답했지만 서문혜가 그 때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군요.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제갈사를 동료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어요. 이제부터는 완전한 마도(魔道)의 영역이니 최고의 전문가인 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겠어요.”
“제갈사라도 미칠 거라고 하지 않았소?”
“십중팔구는… 제갈사는 이미 미쳐있기에 광기에 내성이 있으나 그건 버틸 수 있다는 것뿐이지 순수한 마(魔)가 그의 정신세계를 잠식하는 것까지 막진 못해요. 인간이 고통을 느끼지 못해서 고문에 견딜 수 있다 하더라도 고문으로 인한 출혈과 쇠약 때문에 죽게 되는 것과 같지요.”
“으음….”
“그 정도로 강력한 암기예요. 이건 정신내성의 영역을 벗어났기에 저처럼 초월적 종족의 잠재력으로 마력 자체를 몰아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만 견딜 수 있어요…. 제갈사는 뛰어난 사법사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기에 그런 능력은 아마 없을 거예요.”
단숨에 이해가 되었다. 내가 미간을 찡그리자 서문혜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제가 도와준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요.”
“도와준다니?”
“흑요석으로 기억을 전송할 때 제가 제갈사에게 침투하는 암기를 흡수해 보겠어요. 그렇게 한다면 제갈사의 정신이 터지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거예요.”
“……!! 그건, 당신이 위험해진다는 거잖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백웅 님의 마력을 빨리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뿐이니 제갈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해요.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요.”
“서문혜….”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쉽게 죽진 않을 거예요.”
나는 잠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까지 서문혜가 헌신적으로 나를 도와주다니!
나는 서문혜에게 반드시 이 빚을 갚아야한다고 생각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고맙소.”
“그럼 가요.”
파앗!
나는 서문혜와 함께 장령곡으로 갔다. 그리고 장령곡에 진입하자 이미 형산파의 조희태가 목이 잘려서 죽어 있었고, 죽은지 꽤 된듯 시체에 파리가 꼬여 있었다. 물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기에 조희태의 시신을 뒤로 하고 장령곡 내부로 들어갔는데 뜻밖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장내에는 제갈사가 있었으나 그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제갈사는 무척이나 지루한 표정으로 무언가 책을 읽고 있었고, 그런 제갈사의 맞은편 의자에는 웬 차가운 인상의 미녀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자의미녀(紫衣美女)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호오. 너희는 누구냐?”
“…….”
보랏빛 옷을 입은 냉미녀의 물음에 나는 잠시동안 할 말을 잊었다.
‘젠장…!! 설마 저 놈이 있었다니!’
빨리 찾아오지 않은 탓일까? 며칠의 시간을 두고 온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저 놈이 찾아올 줄이야!
‘…아냐, 뭔가 이상한데? 예전에도 비슷한 시기에 제갈사를 찾아온 적이 있었지만 그 때의 제갈사에게는 저 놈이 찾아오지 않았었….’
내가 생각을 더 이어가기도 전에,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던 제갈사가 입을 열었다.
“저들은 인간으로 둔갑한 [옛 지배자]의 사도같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스승님?”
“크크크…. 아직 저 놈의 대답을 듣지 않았으니 듣고 나서 생각해 보자.”
자의미녀가 다시 한 번 내게 질문했다.
“너희는 누구냐고 물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서문혜가 내게 눈짓을 하며 전음을 보냈다.
[백웅 님. 저 자가 끼어들었을 때 제갈사와 교섭해봤자예요. 어떻게든 내쫓아야 해요. 백해무익한 존재입니다.]
“…….”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상대가 절대 만만치 않은 놈이었기에 망설여지고 있을 뿐이다.
힘으로 물리쳐야 하나?
아니면 말빨로 때워야 하나?
웬만하면 후자를 택하겠지만 저 두 녀석은 똑똑하기도 더럽게 똑똑한 놈들이기에 자칫하면 내가 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힘으로 해치우기도 무척이나 어렵다. 게다가 힘을 썼다가 제갈사가 도주해서 나를 적대하게 되면 정말로 일이 꼬이게 되리라.
‘제기랄…. 되는 대로 해 보자!’
나는 잠시 후 마음을 먹고는 씩 웃으며 자의미녀의 말에 대답했다.
“나는 삼황오제 서방상제 소호의 사도인 백웅이다.”
“호오, 소호라고…?”
스윽
그러자 자의미녀가 제갈사와 눈빛을 교환하는 게 보였다. 보나마나 저 사제가 흉계를 꾸미는 게 뻔했기에, 나는 더없이 긴장되는 걸 느꼈다. 세상에서 사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저 놈들이 내게 음모를 꾸민다면 내가 당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의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연거푸 말했다.
“내가 찾아온 건 장령곡주 제갈사가 배교교주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그게 사도와 무슨 상관이지? 너만한 존재에게 있어서 인간 사법사 따위는 벌레 같은 존재일 텐데.”
“상관이 있지. 내가 지상에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데 이혼대법(移魂大法)이 큰 도움이 될 테니까.”
“…….”
“누가 배교교주 제갈사인가? 그와 대화를 하고 싶다.”
나는 이미 제갈사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지만 제갈사는 내 눈빛을 마주치지 않고 딴생각을 하는 듯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틀림없이 못된 생각을 하는 중이리라.
그러자 자의미녀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허튼수작 부리는군. 이미 삼황오제의 영역이 부숴져서 그 세력이 크게 약해졌다는 걸 아는데 우리에게 손을 벌리겠다고?]
“뭣….”
[여기서 되돌아가는 걸 권해드리지. 제자를 대신해서 축객령을 전해주마.]
음침한 마력이 느껴지는 신적 존재 특유의 영언.
자의미녀의 목소리가 악마처럼 변하자 나는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미 저 놈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하며 대꾸했다.
“축객령? 네가 뭔데 당사자를 대신한단 말이냐?”
쿠구구구
쿠르르르릉
잠시 후 자의미녀의 몸뚱이가 흩어지더니 시꺼먼 가루가 허공에 터져 나오듯 비산했고, 그 시꺼먼 모래가루 같은 것들이 허공에서 기이한 형태를 만들어내었다. 마치 수많은 머리가 달린 촉수의 괴물처럼 보이는 [그것]이 이윽고 나를 위협하듯 말했다.
[나는 외신과 계약한 자이며 연금술의 신 헤르메스의 제자인 시몬 마구스. 우리 배교는 몰락하는 삼황오제와 손을 끊겠노라.]
역시 마왕 시몬 마구스!
배교의 초대종사이자 제갈사의 스승이며 현존하는 모든 마도사중에 가장 강력한 존재 중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딱 도왕 벽지상 때의 모습 그대로 나타나 있었기에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때 가만히 있던 제갈사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
이어진 말에 시몬 마구스가 딱딱하게 굳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노망나셨군요.”